잔혹한 어머니의 날 1 타우누스 시리즈 9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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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 악은 사람들의 눈에 뜨지 않게 나타나는 법이죠.



오랜만에 만난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나이가 좀 더 들었다.

여덟 번째 이야기 여우가 잠든 숲이 보덴슈타인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춰낸 거라면

이번 아홉 번째 이야기는 피아가 알 수 없었던 가족의 비밀이 담겨 있다.

신문배달부가 발견한 한 노인의 죽음이 자연사에서 연쇄살인범의 흔적으로 뒤바뀐다.

견사에 갇혀 있던 노인의 개가 파헤쳐 놓은 건 사람의 시체가 묻혀 있던 곳이다.

시립화된 랩핑된 시체들이 발견되고 그저 평범한 죽음이라고 생각했던 사건이 살인사건으로 변질되었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자행되어 온 연쇄살인범의 소행으로.

하나의 사건을 주축으로 또 하나의 이야기를 숨겨 두는 노이하우스는 이번에도 그렇게 사건과 별 관계없을 거 같았던 사람이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서는 트릭을 보여준다.

이번엔 등장인물이 꽤 많다. 그만큼 용의자가 많단 뜻이다.

노인이 죽은 저택은 전쟁 때엔 수녀원이었고, 그곳에서 전쟁고아들이 키워졌다.

전쟁이 끝난 후에 그 장소를 사들인 라이펜라트 부부는 그곳에서 보육원에서도 두 손든 아이들을 입양해서 키웠다.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리타 라이펜라트와는 달리 남편 테드는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지 않았지만 그곳에 살았던 입양아들을 면담하면서 감춰졌던 리타의 두 얼굴을 만나게 된다.

어머니의 날에 자신이 책임졌던 입양아들을 불러 모아 파티를 즐겼던 리타는 그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았을 때 무지막지한 체벌을 가했다.

욕조에 처박고, 아이스박스에 가두고, 우물에 가두고, 랩으로 싸두는 벌들은 연쇄살인범의 흔적이 되었다.

오래전 실종자 명단과 일치하는 시체들이 나오고, 그들과 같은 수법으로 죽은 여자들의 시체가 스무 명이 넘는다.

모두 어머니의 날 전날에 실종된 여자들이었다.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는 언제나 사회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사건의 본질은 늘 사회 문제의 민낯을 드러나게 한다.

그래서 타우누스 시리즈를 읽으며 나는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다는 걸 느낀다.

미국 범죄소설이 범인이나 형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타우누스 시리즈는 끔찍한 범죄를 해결하는 상황에서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사건과 연관되어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이 잔혹한 어머니의 날의 연쇄 살인범은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아이다.

이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 느낀 불안감이 한 발 한 발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더욱 강해졌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것은 그냥 느낌이었다.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어렴풋한 느낌.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 불안한 느낌은 이 집의 과거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피아의 사건에 대한 직감은 늘 적중한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직감을 늘 무시하려는 엥엘과장과 사사건건 부딪힌다.

이번에도 정치놀음에 능한 엥엘과장은 죽은 노인을 범인으로 정하고 사건을 종결하려 한다.

난 산더 형사가 훌륭한 경찰이라고 생각해요.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고 선악을 구별하는 감각도 탁월하고...



동생의 연인이자 상사인 엥엘과 늘 대립관계에 있던 피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말이 엥엘의 입에서 나왔을까?

그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용의자의 범위가 좁혀지고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클라스의 정신감정을 맡았던 사람이 피아의 여동생 킴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자기중심적이고, 분노조절이 안되며, 폭력을 휘두르고 입양아들 중에서 가장 잔인했던 클라스는 오래전 노라라는 또래 여자아이를 죽인 혐의도 받고 있었다. 그런 그가 전처와 변호사와 심리 상담사를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고 나서 킴이 사라진다.

나는 그들의 공포를 느낀다. 그 공포는 차 안을 가득 메우고 내 살갗과 머리카락에 들러붙는다. 나는 그것의 냄새를 맡고 맛볼 수 있다. 그리고 황홀함에 취한다.



피아와 보덴슈타인을 중심으로 수사가 이루어지는 과정 중간중간 범인의 속내가 나온다.

어딘가 숨어 있지만 알 수 없는 범인의 마음은 수사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아낸다.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마음은 자식을 버린 어미에게 벌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커간다.

한 번의 살인은 또 다른 살인을 불러왔다.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니까.

버림받고 학대당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 슬픔과 고통을 잊지 못한다.

그럼에도 양부모가 되어 주었던 그들과의 끈을 놓지 못한다.

그 뿌리라도 손에 쥐고 싶어 하는 그들의 심리를 자기 편할 대로 농락한 어른들의 모습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애쓰는 형사들과 그들의 눈을 피해 새로운 살인을 계획하는 범인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애쓰는 버려진 아이와 비밀을 간직한 어른은 마지막 범죄의 희생양이 되기 직전이다.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과연 그들을 살려 낼 수 있을까?

이번 이야기는 전작에 비해 번역이 매끄러워서 예전의 피아와 보덴슈타인이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다.

가급적이면 시리즈의 번역은 한 사람이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왜냐하면 캐릭터의 이미지가 아주 미묘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작 여우가 잠든 숲은 읽는 내내 생소한 느낌 때문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죠.

예를 들면 파트너와의 문제, 사회적 궁핍, 정신적으로 감당이 안 되는 경우도 있고요. 아이아버지에게서 버림받은 경우가 대다수죠. 과거에는 집안의 압박이 컸습니다. 임신한 미혼 여성들은 부모에 의해 강제로 보육원에서 출산하고 아이를 입양 보냈습니다.

버려진 아이들.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들.

그 사각지대에서 자신들의 욕심을 채운 어른들...

늘 그렇지만 읽고 나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게 노이하우스의 매력이다.

재밌는 건 용의자들로 지목된 사람들 중에 항상 범인이 감춰져 있다는 것이다.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숨겨진 비밀들이 감정을 조여오는 느낌이 이 시리즈의 묘미다.

그 모든 묘미들을 한곳에 몰아넣은 것이 바로 이 잔혹한 어머니의 날이었다.

우리 모두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을 다룬 노이하우스 매력의 극치!

잔혹한 어머니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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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 조금 덜 젊은 이가 조금 더 젊은 이에게 전하는 사연
성신제 지음 / 드림팟네트웍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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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정한 '잘남'과 '못남'의 기준에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마음 속으로 무시할 뿐, 보듬어 주진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은 편한 글이 읽고 싶어진다.

몰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스며드는 그런 글들.

 

 

70대 덜 젊은이가 더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들이 자근자근 비처럼 내린다.

누구나 잘 나갈 때가 있다. 인생에서.

그리고 인생은 늘 생각지도 않은 굴곡이란 복병을 숨겨 놓는다.

그것이 경제적 어려움이던, 건강이던, 인간관계이던 누구나 그 복병을 무사통과하는 자는 없다.

 

 

저자 성신제는 경제와 건강의 복병을 만났다.

18번의 수술과 바닥까지 내딛은 상황 속에서 묵묵히 걸었다.

포기하지 않음이 그가 가진 용기였다.

 

 

이 에세이가 아주 잘 쓰인 에세이라고 말하진 못하겠다.

최근에 아주 잘 쓰인 에세이들을 많이 읽어서인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프로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아마추어의 진심을 느낄 수 있다.

 

 

좋은 글은 멋지게 포장된 글도 아니요

화려한 문체로 쓰여진 글도 아니다.

소소한 글 속에 담긴 글쓴이의 진심이 느껴지는 글이 정말 좋은 글이다.

 

 

이 작은 책엔 저자의 이야기와 저자가 만나 이야기를 나눈 더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담담한 삶의 이야기들이 공감되기도 하고, 용기를 주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한다.

 

 

 

혼자 먼저 가서 좋을 것 하나도 없다.

함께 가야 좋은 것이다.

 

 

보조를 맞춰 걷는다는 건 마음이 맞는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어린아이의 걸음에 발을 맞추는 엄마의 걸음엔 질문이 없다.

나이 든 엄마의 걸음에 발을 맞추는 자식의 걸음엔 질문이 따른다.

"더 천천히 갈까요?"

 

 

말없이 발맞추어 걸으면 되는 것을.

내 발걸음에 발을 맞춰 주었던 엄마처럼.

 

 

글을 읽으며 많은 부분에서 놓치고 살고 있던 것들을 발견한다.

그 발견이 이 책의 가치다.

어떤 글은 굉장한 필력으로 사람을 압도하지만

어떤 글은 잔잔함으로 사람에게 스민다.

 

 

나는 압도하는 글보다 스미는 글이 좋다.

 

 

70생을 살아낸 어른의 이야기엔 삶을 살아낸 지혜가 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읽는 사람의 몫이다.

 

우리 모두 내가 먼저 제대로 해야 할 일을 하지도 않고서, 받을 것만 생각하며 투덜대고 상대방을 비난할 때가 많은 것 같다.

 

반성하게 하고

깨닫게 하고

이해하게 하는 글이었다.

 

 

아빠가 멀리서 편지 한 장 보내주신 거 같다.

내가 지금껏 살아 보니 인생이란 게 이런 거 같더라... 는.

 

 

오늘,

아무것도 하기 싫다면,

한 발짝만 내디뎌 보자.

어느 길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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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밤의 양들 - 전2권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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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은 세상을 구하려 했고 또 한 사람은 자기 목숨을 구하려 했지. 하지만 나는 알 길이 없다. 그들이 과연 그것을 구했는지 그렇지 않은지.

 

 

 

유월절 일주일 전 성전에서 벌어진 네 번의 연쇄살인 사건.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사건을 추적하는 살인자이자 사형수인 마티아스.

이 살인사건을 해결해야지만 그는 목숨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7일을 모티브로 이루어진 글이다.

기독교도가 아니어도 이 이야기는 많은 영화나 이야기를 통해 상식처럼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를 우리의 작가가 우리의 언어로 재현해 낸 이야기는 한 편의 스릴러를 보는 듯하다.

 

 

유월절을 며칠 앞둔 예루살렘은 성지순례 행렬이 넘쳐나고 곧 있을 유월절 행사로 들썩이는 가운데 첫 번째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성전 한복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은 처참했다.

성전 수비대장 조나단은 사형수 마티아스를 불러내 사건 조사를 명함다.

살인사건을 해결하게 되면 마티아스는 사형을 면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어린 나이부터 밑바닥을 전전하며 밀정으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마티아스는 사건을 조사하면서 예수의 제자들이 사건과 연루되어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소문을 막아야 해! 소문은 스스로 살아 움직이거든. 한번 들을 때는 근거 없는 말이라도 두 번 들으면 그럴싸하고 세 번 들으면 믿게 되는 거야. 핵심은 그자가 무슨 짓을 했느냐가 아니라 무슨 짓을 했다고 사람들이 믿느냐는 거야.

 

 

 

예수의 기적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그가 곧 메시아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도시는 그를 비방하는 세력과 그를 믿고 따르는 군중들로 나누어져 있었고, 불씨만 당겨지면 화르륵 타오를 정도로 들끓고 있었다.

한편 총독 빌라도는 자신이 총애하는 테오필로스를 통해 살인사건을 조사하게 하고, 테오필로스는 마티아스에게 같이 수사하기를 요청한다.

서로를 신뢰함과 동시에 의심하면서도 자신이 가진 모든 정보를 결코 교환하지 않는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사건 현장을 다니며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종교를 떠나서 이 이야기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마치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소설 속에서 묘사한 느낌도 난다.

 

 

 

증거가 있어서 체포하는 게 아니라 체포해서 족치면 혐의가 나오게 되어 있어.

 

 

 

빌라도의 욕망

각 단체들의 욕심

무언가를 바꿔보려 노력하는 마음

무언가가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

자신의 종교만이 유일하다 믿는 믿음

믿음이 부족한 자를 믿게 만드는 힘

믿음을 주었어도 믿음을 배반하는 마음들이 오롯이 모여 있는 이야기다.

 

 

역사적 배경과 그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조금도 껄끄러움이 없는 것은 작가가 치밀하게 준비한 12년의 세월이 책 속에 담겨있기 때문인 거 같다.

역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이야기지만 많은 이들이 사실이라 믿는 이야기를 우리만의 시각으로 다시 재 조명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예수의 업적과 고난을 찬양하기 위한 모습들만 보다가 뭔가 더 객관적인 관점으로 상황을 보게 되었다는 생각을 주는 작품이다.

밀정이자 살인자이고 사형수였던 마티아스를 통해 그가 결국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밝히고자 했던 그 진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고 있던 테오필로스의 기억이 기록으로 남겨짐으로 인해 역사는 숨겨진 것을 드러내는 속성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진실은.

감춰질 수 없다는걸.

누군가에 의해 언젠가는 밝혀지게 마련이라는걸.

이 책을 통해 또다시 배우게 되었다.

 

 

 

역사를 현대사로 끌어오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작가이다.

이정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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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예찬 -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품격 있는 휴식법
로버트 디세이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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쁨은 현대인의 고질병이다.

 

 

세상이 편해지고, 기계가 사람이 할 일을 많이 줄여주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전보다 오히려 더 바쁘고, 더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어째서 이렇게 사람들은 늘 바쁜 걸까?

 

우리는 갤리선의 노예처럼 은퇴를 향해 미친 듯이 노를 젓고, 마침내 은퇴에 이르러 채찍질에서 벗어나고나면, 어느덧 세상의 모든 시간 대신 끝없는 무를 바라보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게으름이란 게 나태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느낌을 주는 단어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게으르다는 소리를 듣게 되면 인정하기보다는 변명이나 부정을 하게 마련이다.

게으름 예찬이란 제목만 보고는 내가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지런한 사람은 어딜 가나 칭찬이 자자하다.

하지만 게으른 사람은 어딜 가나 눈총 받게 마련이다.

왜 그럴까?

 

난 정해진 규칙 없이 사는 사람으로서 주변 사람들이 보았을 때 게으른 축에 속한다.

그들이 제시간에 일상적으로 하는 일을 나는 제때 하지 않는다.

밥 먹는 거부터 시작해서 설거지, 청소, 잠자기, 일하는 거까지. 모두.

그냥 내 시간에 맞춰 한다.

그것이 주변인들이 보는 나의 게으름이다.

내가 보기엔 딱히 그들과 나와 다른 점은 없다.

시간을 쪼개 써야지만 부지런한 건 아니지 않은가?

 

요즘 우리는 바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니 참으로 미련하기 짝이 없다! 바쁘다는 말은 사실 자신이 노예상태에 있음을 광고하는 것이다.

 

 

이 책은 휴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쉰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정말이지 뇌까지 쉬어주는 것이 진정한 쉼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건 도태되는 일이 아니다.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그 시간조차 맹렬하게 뇌가 움직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 맹렬함조차도 내려놓는 게 디세이의 게으름이다.

디세이가 말하는 휴식엔 다양한 예가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으름은 독서와 걷기다.

 

무언가를 공부하기 위한 책 읽기는 공부지 게으름이 아니다.

그저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책을 고르는 자체도 휴식이자 게으름이다.

걷기 역시 천천히 목적 없이 유유자적하며 하느적 하느적 걷는 것이 휴식이자 게으름이다.

운동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곁을 돌아 볼 여유 없이 빠르게 걷는 건 목적이 있는 움직임이지 휴식도 게으름도 아니다.

 

게으름 예찬은 결국 쉬어가라는 작가의 당부다.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결코 늘어지거나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있다.

오히려 맹렬하게 사는 시간 속에서 잊혀지고, 무시되고, 빠뜨리는 삶이 중요한 순간들을 챙기라는 뜻이다.

 

의미 있는 것들만으로는 아름다운 삶이 되지 않는다.

사람은 늘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게서 위안을 받는 존재이니까.

그리고 별 소용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인생의 빚을 지게 되는 법니다.

 

정말 잘 산다는 건

잘 게으르게 휴식하는 법을 안다는 뜻이다.

 

느리고, 천천히 가도 모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결은 같다.

유럽이 우리보다 모든 면에서 느리게 움직이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삶의 질은 우리보다 넉넉하다.

우리에겐 그 넉넉함이 필요하고 그 넉넉함은 스스로 찾는 게으름의 여유에서 생겨난다.

 

옛 속담에 [급할수록 돌아가라] 라는 말이 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는 후손들이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다.

디세이가 말하는 게으름 예찬을 먼 조상들은 몸소 실천했으니 말이다.

 

나만의 여유를 찾는 것.

그건 누구도 내게 주지 않는 것이다.

오직 나만이 내게 줄 수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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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윈도 모중석 스릴러 클럽 47
A. J. 핀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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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하는 것은 야생사진을 찍는 것과 같다.

그들의 삶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

 

아동심리상담사로 활약했던 애나 폭스는 지금은 광장공포증으로 집 밖을 나서지 못하고 칩거 한지 일 년쯤 되었다.

그녀의 하루는 카메라로 창 뒤에서 이웃들을 관찰하거나 흑백영화 스릴러를 보는 것이 전부다.

일주일에 한 번 물리치료사가 다녀가고, 주치의 폴딩 박사가 상담차 들리고, 별거 중인 남편 에드와 딸 올리비아가 들리는 거 외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물론 지하실에 세 들어 사는 데이비드는 제외다. 그는 가끔 그녀가 손대지 못하는 집안의 자잘한 문제들을 살펴주는 조건으로 싸게 세 들어 살고 있다.

그녀의 주식은 와인이고, 간식은 처방약들이다.

절대같이 먹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지만 그녀는 그것들을 같이 섭취하고 있다.

별다른 사건 없이 그저 나름 평온한 삶을 살던 애나에게 맞은편에 새로 이웃이 이사 오면서 예상치 않은 만남을 갖게 된다.

엄마의 심부름으로 양초를 들고 애나의 현관에 나타난 이선.

애나는 본능적으로 이선의 집안에 문제가 있다는 걸 느낀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애나가 이선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할로윈을 맞아 동네 아이들이 애나의 집으로 계란을 투척하고 그것을 못 견뎌하던 애나가 밖을 나서자마자 실신을 하는데 그때 이선의 엄마 제인이 그녀를 도와준다.

그렇게 안면을 튼 두 사람은 단 하루 같이 몇 시간을 지내며 서로를 알아간다.

그리고 며칠 후 애나는 밤중에 비명소리를 듣는다.

본능적으로 러셀가에 문제가 생겼다고 느낀 애나는 카메라를 들고 러셀가의 거실을 관찰하다 제인이 칼에 찔려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한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하는 애나는 제인을 구하기 위해 911에 신고하며 밖을 나서지만 결국 몇 발자국 걷지 못하고 실신한다.

깨어난 애나 앞에 현실은 감당하기 어려운 사실만을 나열한다.

러셀가에서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녀가 알던 제인은 사라지고 알지도 못하는 여자가 제인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

사람들은 그녀가 술과 약, 그리고 그녀가 보던 스릴러 흑백영화들 때문에 환상과 망상을 본 거라 말한다.

아무도 그녀를 믿어주지 않는다.

이선마저도.

정말 그녀는 약과 술에 취해 헛것을 본 걸까?

그녀가 본 것은 그녀의 뇌가 만들어낸 이미지에 불과한 걸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어. 나에게, 나를 통해, 위험하고 새로운 일이.

독나무가 뿌리를 내린다. 자라서 사방으로 뻗어간다.

덩굴은 나의 장기와 폐와 심장을 옥죈다.

이 이야기는 하루하루의 일을 적고 있다. 마치 일기처럼.

그래서 빠르게 읽히고, 더더욱 초초하게 만든다.

마치 시간의 그물이 촘촘하게 나를 엮어가는 기분이다.

중반을 넘어가게 되면 나조차도 애나를 의심하게 된다.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에 무한 신뢰를 가져야 하는 독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도 애나를 믿지 못하겠다.

그것이 이 이야기의 묘미다.

애나와 같이 술에 취하고, 약에 취하게 되면 나도 그녀의 진위를 헤아릴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병이 그녀를 갉아먹어가면서 종국엔 그녀가 어떠한 짓을 저지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읽게 된다.

작가는 어쩜 그녀가 본 것들이 그녀가 저지른 일들일 수도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필력을 가졌다.

그래서 이어지는 반전이 나를 강타하는 강도가 높아진다.

그럴 줄 짐작도 못했단 말이지!

 

나는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내 머리도 한때는 잘 정리된 문서 보관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낱장의 종이들이 이리저리 떠다닌다.

 

 

자신이 본 것을 믿는 그녀가 약과 술에 취한 상태에서도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눈물겹다.

아무도 그녀를 믿지 않고, 아무도 그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만약에 내 주위에 애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리틀 형사처럼 그녀의 손은 잡아 주며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일까? 아니면 노렐리 형사처럼 선을 긋고 대하는 사람일까?

만약 내가 애나라면 그토록 확신하며 계속 흐릿한 기억을 끄집어 내어 사건을 짜 맞추는 노력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곳에 서 있다. 주변은 고요하다. 시선을 떨궈 우산을 바라본다. 모든 것을 빼앗긴 느낌이다. 공허하다. 또다시, 나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사투.

자신과 그리고 자신을 믿지 않는 모두와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애나를 지켜보면서

결국 나 자신을 지키는 건 나 자신뿐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옛 속담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 는 말이 떠오르는 마지막 사투는

모든 사람들의 본능 중에 가장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생존에 관한 본능이었다.

 

 

나는 똑같은 일을 옥상에서 비를 맞으면서 해냈다. 나는 생존을 위해 싸웠다.

죽고 싶지 않은 게 분명하다.

그리고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삶을 시작해야 한다.

 

이미 영화화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인지 애나 역의 에이미 아담스의 얼굴이 겹쳐지는 바람에 책을 읽은 게 아니라 영화를 본 거 같다.

그래서 더 실감 나게 읽은 작품이었다.

출판 편집자였던 작가라 그런지 독자들이 좋아하는 포인트를 아주 잘 집어낸 거 같다.

그래서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무엇을 예상하던 이 책은 당신의 허를 찌를 겁니다.

어떤 식으로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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