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해 기억해 모중석 스릴러 클럽 48
섀넌 커크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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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납치됐어. 놈들은 네 아기를 훔쳐서 괴물들에게 팔아넘길 셈이야. 그리고 너를 채석장에 내다버릴 거야. 네가 여기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 네가 너 자신을 구해야 해. 이건 현실이고, 받아들여야 해. 네가 가진 도구는 오로지 이 방에 있는 도구들뿐이야. 이 사태를 해결하고 작전을 수행하자.



자신의 감정 스위치를 자유자재로 켰다 껐다 할 수 있는 소녀가 있다.

16살 이 독특한 소녀는 현재 임신 중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과 병원에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어 소녀는 등굣길에 납치된다.


십 대 임산부의 납치.

돈을 노린 거로 생각했지만 아기를 노린 거였다.

임신한 소녀들을 납치해서 아이를 낳게 하고 아이는 팔고, 소녀들은 죽이는. 그런 범죄자들이 있었다.

납치하고 감금하는 자들.

임신한 소녀들을 물색하는 자.

그녀들의 건강을 담당하는 의사.

그리고 아기를 원하는 수요자.

이렇게 구성된 조직들이 저지른 범죄가 밝혀지는 과정은 그야말로 소름 끼친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해지는 소녀의 복수는 더 소름 끼친다.


체크메이트다, 이 새끼야.!


 

 

 

 

 

 

 

 

승승장구하는 변호사 엄마와 군에 복무하다 은퇴한 물리학자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소녀는 뇌의 구조가 일반인과 좀 다르다.

감정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아이다.

의사들은 그것을 스위치에 비유했다.

즉. 말하자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정에 지배받지 않고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는 재능이 소녀에게는 있었다.

그런 소녀라는 것을 몰랐던 범인들은 그야말로 운이 지지리도 없는 녀석들이었다.


납치된 순간부터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고, 범인을 분석하고, 자기가 머물게 된 곳이 어떤 곳인지 추측하고

범인의 행동을 면밀하게 관찰하면서 탈출할 계획을 꾸미는 임신 7개월의 소녀.


이런 주인공을 보셨나요?


'사십 대 중반이겠지. 우리 아빠랑 비슷한 나이일 거야.' 나는 겨우 열여섯 살이었지만, 저 끔찍하고 징그러운 놈의 뒤통수를 칠 지능은 있었다.



이 새로운 개념의 범죄 소설은 두 명의 화자가 번갈아 가며 이야기한다.

납치당한 열여섯 소녀의 시선과 FBI 수사관의 시선.


과잉기억증후군과 인간의 한계를 능가하는 시력으로 FBI에 지원한 로저 리우 수사관.

그에겐 후각이 발달한 롤라라는 파트너가 있다.

너무 늦게 실종 신고를 접한 그들이 찾는 소녀는 도로시 M. 살루치.


누가 들으면 충분히 의심스러워할 만한, 혹은 아예 믿지 못할 우연의 일치였다. 그래, 정말이지 절묘한 우연의 일치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녀가 이 사건의 수사 과정 전체를 암시하는 실마리나 예고를 던져줬던 것만 같았다.



절묘한 우연의 일치.


이 모든 이야기는 정말이지 리우 수사관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읽어갈 때 더더욱 흥미로웠다.

마치 소녀가 필사적인 탈출을 감행하기 위해 작전을 짜면서 범인의 일거수일투족과 주변 상황을 감지하며 하루하루 디데이를 향해 나아가는 절박한 상황을 연출한다면.

리우 수사관의 이야기는 한 편의 블랙 코미디를 보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읽다 보면 납치범이 오히려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이렇게 술술~ 풀리다니. 이게 가능해?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것이다.


뭔가 절박한데 안심스러운 상황.

인간 말종의 범인들이 무섭게 굴어도 우습게 느껴지는 상황.

무슨 이런 우연의 일치가 있어? 라고 갸웃거리는 상황.

뭐야. 이게 다야? 할 때 치고 들어오는 급박한 상황.

뭐 새로운 어벤져스들이야? 라고 생각하게 하는 캐릭터들.

그리고 정말 야금야금 영혼을 갈아먹게 만드는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진정한 복수!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이 팀들이 아까와져서 시리즈가 나오길 기대하게 된다.

읽어 보지 않으면 그 느낌을 온전히 알 수 없는 이야기.

복수해 기억해.


변호사인 작가의 데뷔작.

데뷔작이 이렇게 신선한 건 또 오랜만이네~


나는 가차 없이, 끈질기게, 맹렬하게, 그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정의를 위해 음모를 꾸미는 건 대자연의 법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지나치게 세속화되어 무가치해진 현대 법률에는 어긋날지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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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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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독서 카페 리딩투데이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토니 모리슨의 재즈를 읽었다.

 

진짜 조언을 해주지. 뭐든 사랑할 만한 게 남았으면 아무거라도 그냥 사랑해봐.

 

딸 나이의 소녀를 사랑한 남자 조.

결국 그 아이를 총으로 쏴버리는 조.

그 사실에 반쯤 정신이 나간 바이올렛은 남편이 죽인 아이의 장례식에 칼을 들고 나타난다.

확인하고 싶었다.

무엇이.

그 아이에게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죽은 도카스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젊었을 때의 자신과 닮은 점이 있는지를 찾아본다.

도카스의 행적을 좇으며 그 아이에 대해서 알아가려 한다.

그런 바이올렛의 마음엔 무엇이 담겨 있는 걸까?

어째서 그렇게 해야만 할까?

 

바이올렛의 감정 따위는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않은 그 교활한 암캐인가? 아니면 통통한 딸아이인가? 저 여자애가 그녀의 남편을 빼앗은 계집일까, 아니면 그녀의 자궁에서 사라진 딸일까?

 

 

아이 없이 살아온 조와 바이올렛.

점점 말이 없어지는 바이올렛과 그것이 견디기 어려운 조는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풀었다.

남자들이 늘 하는 방식.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보면서 상실과 부재의 아픔을 느낀다.

그들에게 도카스는 갖지 못한 아이였다.

그게 편할 거라 생각하며 살아갔지만 결국 그것은 하나의 상실로 남아 끝없는 허기를 뱉어냈다.

 

 

 

 

 

 

 

 

 

삶의 질곡을 같이 넘어온 사람들에게 완벽하지 않은 것은 외로움이었다.

엄마가 되지 못한 상실감을 앵무새를 기르며 달래는 바이올렛의 마음속엔 조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 당시의 여자들에겐 의무이자 권리였던 아이는 그렇게 바이올렛에게 시간이 흐를수록 벽으로 쌓아 올려졌겠지.

조에겐 관심이 필요했다.

사랑받고 있다는.

 

오래된 연인들이 서로에게 심드렁해지는 것처럼 오래된 부부에게도 그런 시기가 온다.

그 사이에 절충 선이자 징검다리인 매개체가 없다면 그들은 그렇게 서로에 대한 벽이 쌓아지는 걸 방치할 뿐이다.

 

여러 가지 사회 상황과 각자의 삶의 굴곡과

치정과 울분과 분노와 답답함이 이 이야기를 지배하고 있다.

 

제목처럼 재즈는 즉흥적인 삶을 얘기하고 있다.

어느 정도 삶이 안정되었을 때 복병처럼 튀어나오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도 싶은 그때.

즉흥적이고 강렬한 느낌에 사로잡혀 해서는 안 되는 일도 하게 되는 그때.

 

음악은 즉흥적으로 흐르면서 많은 사람들을 흠뻑 적시지만

인간사는 그 즉흥적인 마음 때문에 그동안 쌓아 온 생이 허물어지기도 하지.

끈적끈적한 여름밤의 열기처럼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재즈의 선율처럼

바이올렛과 조. 그 두 사람을 둘러싼 주변의 이야기들은 파편처럼 남겨질 거 같다.

 

인생의 중반을 넘긴 시점에서

자기 자신을 찾고 싶어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 이야기에도 역시 희생은 필요하다.

젊음은 늘 그렇게 자신을 바쳐 원하는 걸 이룩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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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문은강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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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고복희를 괴팍한 여자라고 정의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단지 고복희는 '정확한' 루틴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원칙을 중히 여기는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로봇 같은 여자. 고복희.

그녀는 원더랜드라는 호텔을 가지고 있다.

프놈펜에서.

 

자그마한 한국 사회를 이루고 있는 그곳에 호텔을 짓고 영업을 하지만 특유의 퉁명스러움과 융통성 없음으로 서비스 업인 호텔은 점점 손님들이 떨어지고 있다.

이제 그곳엔 손님 없이 사장 고복희와 현지인 매니저 린 만 남아있다.

그리고 가끔 와서 진상을 떠는 만복회 회장 김인석이 있을 뿐이다.

린이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한 달 살기 프로그램에 누가 올까 싶었지만 누군가 찾아온다.

앙코르와트를 보기 위해.

 

나는 네가 아니잖아. 그 단순한 대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인정하는 거니까. 내 삶이 네 삶보다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대학 졸업 후 취직도 못하고 세월만 축내고 있던 박지우.

인터넷을 보다 한 달 살기 광고를 보고 용기를 낸다.

그래. 나도 가자. 해외여행!

 

매일매일 앙코르와트에 가서 사진 찍고 글 쓰고 SNS에 자랑하리라 생각했던 그녀는 고복희의 호텔 원더랜드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앙코르와트를 가는 건 머나먼 여정이었다.

 

원더랜드.

그곳은 편안하고 깔끔하고 쾌적하게 꾸며진 작은 호텔이었지만 원칙과 규칙으로 똘똘 뭉친 사장 고복희로 인해 점점 손님들이 뜸해진다.

게다가 심심하면 찾아와서 이리저리 심기를 불편하게 깝죽대는 김인석은 호시탐탐 고복희가 백기를 들고 호텔을 넘기기를 바라고 있다.

서로 돕고 살아도 팍팍한 객지에서 고복희는 홀로 이 모든 것들에 맞서고 있다.

정작 본인은 맞서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원칙이 사라진 사회에서 고복희씨의 원칙들은 정말이지 고루해 보이기도 한다.

저렇게 융통성 없이 어떻게 호텔을 운영할까?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지켜 달라는 건데 그것이 잘못은 아니지 않나?

그 기본을 안 지키는 사람이 문제인 거지 기본을 지키고 사는 고복희씨가 잘 못된 건 아니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이 더 많다.

규칙을 무시하고 자기가 옳다고 믿고, 자기주장만 하는 사람들.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관대하지 못하다.

게다가 혼자인 여자들이 무언가를 하기에는 세상은 언제나 지뢰밭이다.

한바탕 꿈을 좇아 낙후한 나라로 이민 온 사람들의 삶은 고달프다.

우리나라의 60~70년대의 모습을 한 프놈펜은 그들이 한몫 잡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모두가 그 행운을 누릴 수는 없다.

 

뭔가 이루고 싶으면 죽도록 하라고 하는데. 제가 봤을 때 죽도록 하는 사람들은 진짜 죽어요. 살기 위해 죽도록 하라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죽도록 무언가를 해도 죽도록 아무런 보상이 없는 삶도 있다.

현실에 맞서라고 하지만 그렇게 해서 뭔가 더 나아지는 세상은 이미 과거가 되었다.

그럼에도 맞서야 한다. 그래야 살.아.라.도. 갈 수 있으니까.

 

지우도, 린도 복희씨도 자기만의 규칙으로 살아야 한다.

남의 규칙 따위로 자신을 갈아먹지 않아야 한다는 걸 두 사람은 복희씨에게 배웠다.

나도 같이 배웠다.

원칙이 무시되는 사회에서 까짓것! 이라고 생각하며 나 자신도 얼마나 많은 기본을 무시하며 살았을까?

작은 것들을 지켜가며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것이 살기 좋은 사회가 되는 것이다.

 

복희씨의 힘은 그것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힘이 사악한 힘으로부터 원더랜드를 구하는 계기가 됐다.

누구나 한 방은 있다.

 

복희씨의 한 방은 아직 남아 있다.

언젠가 그녀가 디스코를 추게 될 때 그 한방의 빛이 발해질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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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 45분, 나의 그림 산책 - 혼자 있는 시간의 그림 읽기
이동섭 지음 / 홍익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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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일상을 다독여줄 수 있는 그림과 이야기.. 만으로 위로가 될 거 같은 느낌입니다.
궁금한 에세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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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가 돌아왔다
김범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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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이후, 집안은 비로소 화해와 용서, 잃어버린 67년, 감동의 대 서사시가 엄숙하게 전개되었다. 할머니 표정에 그 감동과 희열이 역력했다. 60억 이전, 할머니의 기괴한 모습들은 아마도 긴장과 공포, 불안과 어색함이 만들어낸 갑옷이나 방패 같은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염병에 걸려 돌아가신 할머니의 실체는 독립운동을 하던 할아버지와 그 동지를 팔아먹고 일본 순사와 바람나 쌍둥이 남매를 버리고 도망간 매정한 여인네였다.

그리고 67년 만에 할머니가 찾아왔다.

그 할머니의 실체는 60억이었다.

 

코믹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뒤끝은 깔깔하다.

웃픈 이야기라는 말이 왠지 약하게 느껴진다.

끝순이이자 제닌.

네 명의 남편 중 세 명의 폭력을 피해 달아나고 달아나야만 했던 끝순이이자 제니.

그녀는 마지막 남자에게서 편안함을 느끼고 그와 함께 한 세월 속에서 비로소 행복을 느꼈지만

두고 온 쌍둥이 남매에 대한 아픔은 세월 속에 켜켜히 쌓여만 갔다.

 

독립운동가이자 부여 명문가 최씨 집안의 장남인 할아버지와 진보 시대의 일꾼이자 노동자의 친구를 자처하는 금배지가 꿈인 아버지 사이에서 입사 시험 88 연속 낙방으로 10년간의 백수 생활을 통해 스스로 벌레로 전락해 버린 아들.

이 최 씨 집안 삼대에겐 누명을 쓰고 도망을 갈 수밖에 없었던 할머니 끝순과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어머니, 그리고 이혼으로 받은 빌딩마저 집을 위해 저당 잡히고 새로운 삶을 꿈꾸는 여동생 동주가 있다.

 

돈으로 무엇이든 다 되는 세상이라지만 이 뜬금없는 60억 앞에서 서로의 민낯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사람들을 읽어가며 사는 게 참 노곤하단 생각을 해본다.

남자들은 하나같이 무능하고, 그 무능을 폭력으로 메꾸며 자신의 여자들에 의지하며 살아내는 그들은 동석이가 스스로 벌레라고 지칭하는 그 모습들이 아닐까.

자신의 꿈을 위해 가족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아는 남자들 틈에서 자신들을 희생하며 삶을 묵묵히 견디어 내는 여자들은 그 어디에서도 대접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끝순 할매의 60억이 내게는 달콤함과 씁쓸함을 동시에 맛보게 해준다.

 

그나저나 60억은 정말 있는 걸까?

 

가장 어려울 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 말이다. 사람들에겐 그런 순간이 찾아 온단다. 그때 사람들은 무서워서 진실보다는 거짓을 찾게 되지. 내가 그랬어. 정말 맷돌로 갈아버리더라도, 끓는 물에 삶아 버리더라도 네 할아비를 기다리고 진실을 얘기해야 했어. 그런데 난 도망쳤지. 그게 그땐 최선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최악이었어. 피할 수 없는 길을 피하면 그 대가를 아주 오래도록 치러야 한다.

 

할머니는 오래전 누명을 벗었지만 결코 고향땅을 밟지 못했다.

그들이 그 오랜 세월 그 땅을 딛고 산 그들이 그녀를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아들딸도, 며느리도 손주들도 그녀를 위해 그들을 이해시키지 못했다.

 

굳어진 마음의 벽은 진실 앞에서도 굳건한 법이니까.

 

긴장을 하면, 위험이 닥치면, 남자는 폭력을 생각하고 여자는 비상을 생각한다.

그래서 남자는 누군가를 때리고 여자는 마음속으로 하늘을 난다.

 

사랑하는 여자를 친구에게 빼앗기고 그럼에도 계속 친구에게 빌붙어 술을 얻어먹는 동석의 삶.

아직도 잊지 못하는 그 여자가 친구의 손에 멍들어 감을 알았을 때도 동석은 단지 무릎을 꿇었을 뿐이다.

이 정말 비루해 보이는 화자이자 최 씨 집안의 삼대째인 동석은 그들 중에 처음으로 할머니에게 마음을 연 장본인이다.

오랜 세월 눈칫밥을 먹어 본 자의 혜안이라고나 할까?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무얼 잘 하는지 알지 못한 채로 떠나간 연인을 그리며 피시방에서 고스톱이나 치며 세월을 보냈던 동석은 할머니를 통해 자신의 잊어버렸던 꿈을 되찾는다.

 

이 피는 물보다 진한 이야기를 읽는 내내 웃었고, 찡했다.

정끝순 여사의 화려한 귀환은 그동안 돌아오고 싶었지만 돌아올 수 없었던 그녀들의 대리 귀환이었다.

그래서 그 60억이 주는 아우라가 더없이 귀중했다.

 

그것이 진실이든, 뻥이든.

그것이라도 없었으면 정끝순은 그저 제니로 밖에는 남지 못했을 테니.

 

다 원수야, 모두 원수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두 짐이야.

 

동주의 외침이 메아리치지만

가족은 그렇게 서로에게 짐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짐이라고 생각한 그들에게 나 역시 짐이었음을.

그러니 이제라도 사랑하자. 은근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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