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모양처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4
M. C. 비턴 지음, 전행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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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 투데이에서 함께 읽는 죽음 시리즈 4번째.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네 번째는 현모양처의 죽음.

제목에 뼈가 들어간 이야기다.

한적하지만 바람 잘날 없는 로흐두 마을에 토머스 부부가 이사를 온다.

빈집을 개조해 민박을 운영하려 한다는 토머스 부부.

부인 트릭시는 정부 보조금을 받을 정도로 가난하다며 집집마다 다니며 안 쓰는 가구나 접시 물건 등등을 수거한다.

하지만 왠지 해미시에게 트릭시는 골치 아픈 존재가 될 거 같은 예감이 든다.


여유로운 시절은 끝나 버렸다. 날씨는 형편없어졌고, 프리실라는 남자와 함께 돌아왔으며, 부부 한 쌍이 불편하고 골치 아픈 문제들을 일으킬 듯한 분위기를 잔뜩 풍기며 로흐두로 이사를 왔다.



아니나 다를까 붙임성 좋은 트릭시는 마을 여자들을 대번에 휘어잡고 무슨 무슨 단체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것뿐이랴~ 남자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며 마을 식단까지 바꿔 버리는 위력을 발휘한다.

트릭시에 취한 여자들은 집안을 단장하고 옷차림과 헤어스타일도 트릭시화하며 남편들에게 건강식만 준다.

점점 마을 남자들은 화가 나기 시작하고, 트릭시에 대한 증오가 들끓고 해미시의 눈 밖에도 나버린 트릭시가 어느 날 자신의 집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내 생각에 그 여자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일하게 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죽은 트릭시에 대해 알아 갈수록 마을은 분열되고, 이혼하려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게다가 그녀가 집집마다 돌면서 안 쓰는 물건들을 수집했는데 알고 보니 그 물건들이 고가의 골동품들이었다.

게다가 마을 의사인 브로디는 트릭시의 죽음을 심장마비로 얼버무리고 마려 하는데 해미시가 살인임을 단정한다.

꼴 보기 싫은 블레어가 호출되고, 새로 온 총경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블레어는 해미시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이번에도 그를 수사에서 빼버리기 위해 엉뚱한 지시만 내리지만 해미시가 누군가?

그는 자신만의 촉으로 사건을 파헤친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예측 가능한 범인일까?

예측 못했던 범인일까?

매클레인 부부를 바라보고 서 있는 동안, 해미시는 만약 트릭시 토머스가 아직 살아 있었다면 자신이 그 여자를 살해했을지도 모르겠다는 몹쓸 생각을 했다. 맥클레인 부부는 그래도 오랫동안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 왔지만, 이제 그들의 삶은 다시 전과 같을 수 없을 터였다.



이번 편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살인 사건도 마을의 크고 작은 다툼도 아니다.

바로 해미시의 심경 변화다.

총경으로부터 승진 제의를 받지만 해미시는 단호히 거절한다.

거절 이유는 완벽했다.

"자네 정말 행복한가?"

"한 인간으로 행복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행복합니다."



성공에 관심이 없는 해미시가 안타까운 프리실라는 해미시가 어느 순간 자신에게 쏟던 관심을 꺼버렸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찾아오는 아쉬움이 뭔지 프리실라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했던 남자들이 하나같이 별 볼일 없이 사라지는 것을 또 한 번 보고 나서 프리실라는 해미시에 대한 생각이 전과 다름을 느낀다.

이 두 사람의 밀당은 언제쯤 갈무리가 될까?

시리즈가 계속되는 동안 밀당이 계속되는 걸까?

살인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 배경과 살인을 해결해가는 과정도 흥미롭지만

이번 편에서 해미시와 프리실라의 감정이 전세 역전이 되었기에 다음 편에 대한 갈망이 더더욱 고조된다.

어쩔 수 없이 프리실라도 해미시도 속물근성을 버리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계속 깨닫게 되는 이 시리즈가 좋다.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점점 매력이 상승하는 해미시를 보게 되는 재미도 쏠쏠하고

속이 빤히 보이는 밀당을 주고받는 해미시와 프리실라의 진행 중 이야기도 재밌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새록거리는 매력들이 이 책의 묘미인 거 같다.

참으로 조용하고 별다를 거 없는 로흐두 마을.

그러나 번번이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로흐두 마을은 과연 살기 좋은 조용한 시골마을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드는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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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장
아거 지음 / KONG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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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영화를 보다가, 드라마를 보다가, 만화책을 읽다가 보면

우리가 만나게 되는 문장들이 있다.

홀연히 가슴속에 들어와 영혼에 지진을 일으키는 그런 문장들.

그 문장 앞에서 누구는 플레그를 붙이고

누구는 밑줄을 긋고

누구는 형광펜으로 표시를 하고

좀 더 부지런한 누구는 필사를 한다.

그리고 그보다 깊은 감각을 가진 이는 '토'를 달았다.

문장 앞에서 멈춘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모두가 공감하고 아끼는 문장도 있지만

특별한 기억이나 추억, 누군가를 떠올리거나 어떤 상황들이 생각나서 혼자 덩그러니 서 있게 되는 문장도 있다.

이 책에 담긴 문장들에는 그러한 저자의 이야기가 담겼다.

읽었던 책에 나온 문장 앞에 나도 서 본다.

나는 그냥 무심코 지나친 이 문장에서 어떤 이는 이토록 할 이야기가 많았다는 걸 가만히 느껴 본다.

모르는 책에서 나온 문장 앞에서 또 그렇게 서 본다.

이 책을 읽게 되면 나는 이 문장에서 무엇을 느낄 것인지 가늠해 본다.

순간적으로 느끼게 되는 어떤 동요를 잊지 않기 위해 표시해 두고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를 적어두는 순간들이 모여 책이 되었다.

말실수가 많은 저로서는 글이 말보다 편합니다. 그래서 글을 씁니다.

 

 

쓰면서도 생각한다.

왜 글을 쓰는지.

그가 글을 쓰는 이유 중 저 이유가 가장 맘에 든다.

나 역시 말실수가 많아서 글이 말보다 편할 때가 많다.

말은 조리 있게 못 하지만 글은 어느 정도 감정을 닦아 낼 수 있기에 상대의 마음과 내 마음을 생각하며 다듬을 수 있어서 나도 글이 말보다 편하다.

좋은 문장들을 뽑기는 쉽다. 어쩌면.

하지만 그것도 내 것으로 정리해 두지 않으면 잊히는 문장이 된다.

이 책안에는 잊히지 않고 길이 기억될 문장들이 담겨 있다.

작가가 이 문장들이 잊히지 않도록 남겨 두었기 때문에.

그걸 읽는 나는 조금의 수고스러움도 없이 좋은 문장을 훔쳐볼 수 있었다.

무엇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해도 그것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노력이 필요하다.

기억하기 위한 노력.

그 느낌을 간직하기 위한 노력.

이 책의 노력이 나에게 새로운 습관을 부여해 줄 거 같다.

좋은 문장 앞에서 섰을 때 그저 표시만 해놓지 않고 왜 좋았는지

그 문장이 내게 일깨워 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의 기록을 남겨두는 버릇.

그럼 마음이 조금 더 풍요로워질 수 있을 거 같다.

나를 정리하는 시간으로 매일 읽었던 책에서 발견한 문장을 적고 그 울림을 적어 보는 것.

그것 또한 나의 기록이 될 것이다.

당신이 있어 조금 덜 외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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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 - 음악에 살고 음악에 죽다
금수현.금난새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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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아무리 힘겹고 어려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늘 그렇게 우리들 가슴속에 영원히 잊히지 않을 아름다운 선물을 주곤 하셨습니다.




금난새 지휘자는 알았어도 그분의 아버지 금수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이 책의 삼분의 이는 금수현 님의 글이다.

올해 탄생 100주년이다.

그 기념으로 아들 금난새 씨가 아버지가 기고했던 글들을 추려서 자신의 글과 함께 책으로 엮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


자유롭고, 유머러스하고, 뼈 있는 이야기가 만담처럼 담겨있다.

1962년 3월부터 6월까지 일간지에 썼던 칼럼 중에 일부분을 가져왔다.

책을 읽으면 그 시대나 지금이나 시대의 고민은 같다는 걸 알게 된다.

그때도 취직하기 어려웠고, 그때도 갑질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때도 살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뭔가 아득한 낭만이 존재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금수현 씨의 낙관적인 생각이나 웃음기가 글에 넘치기 때문인 거 같다.


사람이란 이런 꾀를 쓰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 주는 것 없이 미운자, 세상을 모르고 까부는 자, 남에게 실례를 예사로 하는 자, 능글맞게 억지 부리는 자를 욕이나 주먹으로 망신 줄 것이 아니라 슬쩍 기지로써 녹아웃시키는 것도 통쾌한 일이다. 첫째 모욕죄니 폭행죄니 하며 고소당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사회 각 분야에 대해서 은근슬쩍 농담조로 이야기를 하는데 분량이 매우 짧다.

그 짤막한 이야기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울컥할 때도 있고, 낄낄거리게 웃길 때도 있다.


시대를 앞서가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의 남다름이 이야기 곳곳에서 보이기에.

글에서 밝은 에너지가 느껴진다.

60년대 초라면 정말 먹고살기 바쁜 시대였을 텐데,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전력투구 하려던 때일 텐데도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참 따뜻하고 위트 있다.


우리가 자식을 기를 때 사랑한다는 것과 편안하게 해준다는 것은 구별해야 될 줄 안다. 아이에게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것은 결코 좋은 것은 아니다. 그보다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해결하는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실패도 귀중한 경험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아이에게서 실패의 경험을 뺏지 말라고 말한다.

난제를 어른이 풀어주면 창의성이 생겨나지 못함으로.

참 깨어있는 어르신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글을 읽을수록.


우리 예술에도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를 가져야 할 것이거늘 이 공감이란 정치에서도 필요하다.




글을 읽다 보면 글에 베어 있는 온기가 내게로 전해진다.

모든 글에 따스함과 웃음이 담겨 있어서 읽고 있으면 마음이 잔잔해진다.

그분의 삶이 그려진다.

언제나 밝은 에너지로 사셨을 거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의 코드를 찾아내셨을 거 같다.

그래서 금난새라는 아들을 키워내셨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책을 읽고 나서 가뿐한 마음이 들었다.

심지어 삶이 가벼워지는 느낌까지 든다.


내 주변엔 이토록 세상을 밝게 본 어른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비판적이고 어두운 어른 쪽에 속해있었다.

유머와 위트를 배운 적이 없기에 늘 무겁게 살았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이렇게 세상을 밝고 재밌게 읽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늘 심각하고, 걱정이 많다고 해서 세상이 나아지는 건 아닌데.

내 머릿속 어른은 늘 심각하고, 걱정 많고, 근엄하다.

쓸데없는 체면을 차리느라 인생이 골로가는 줄도 모르고 살고 있음이다.


전쟁과 혁명 직후의 세상을 살면서도 이렇게 해맑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시대 신문에 실린 칼럼인데 무겁고, 진중하고, 항상 걱정을 일삼은 글이 아니어서 신기했다.


이 땅에 첫째 무지를 없애고, 그 뒤에 할 일은 대화나 행동 속에 센스와 유머가 포함되어야 살맛이 나겠다.



이분의 생활신조가 드러나 있는 글을 마주하고 있다.

나 역시 이렇게 살고 싶었는데 나는 어디에서 재미없는 어른이 되고 말았을까?

센스와 유머를 포함시키는 인생을 살아야겠다. 앞으로.


인생이라는 이름의 오선지 위에도 음표처럼 배려와 감사 같은 것들이 채워져야만 비로소 아름다운 소리가 울려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잊고 사는 것들을 깨우치게 해 준 한 권의 책.

사실 억지로 읽게 되었던 책이었는데 의외로 내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어서 남다른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책에도 인연이 있다면 이 책은 내게 센스와 유머 그리고 배려를 인생에 채워 넣으라고 알려주는 지침서의 인연으로 내게 온 거 같다.


언제나 세상은 기대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영원할 수 있는 무언가를 깨닫게 되는 법이다.

오늘도 여전히 예외는 없었다.

책에는 언제나 진리가 담겨 있으니.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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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말했습니다
정영진 지음 / 보다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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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 않아도 미안하다고 먼저 말하기로 해요.

시간이 지나면 미안하지 않지만 미안하다고 말하는

마음을 알게 될 거예요.

 

사랑에 대한 말들이 간지럽고, 유치하고, 그저 그렇게 입에 발린 말이라는 걸 깨닫고 살아가는 나날이었다.

붙박이 사랑을 하고(?) 있는.

어쩜 사랑이라는 틀안에 들어와 있다고 맘 놓고 널브러져 있던 나 같은 사람.

 

책장을 넘길 때마다 옛 감성이 스멀스멀 되살아난다.

그땐 그랬지.

그땐 이랬는데.

이 마음 나도 알지.

그때가 좋을 때다.

한참 좋구먼.

이런 말 참 잘도 한다.

예쁘네. 맘도, 말도.

 

사랑은 끝이 없는 거라던데

내 사랑은 어디에서 자라지 못하고 멈춰있는 건가.

성장하지 못한 사랑이 저만치에서 울먹거리고 있는 거 같다.

 

서로에게 설렘을 주려고 노력하는 것, 그게 사랑인 거지. 단 한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심장이 터지도록 전력질주하는 거, 그게 사랑인 거지.

 

 

설렘을 주려고 노력하고, 심장이 터지도록 전력질 했던 적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해진다.

사랑의 울타리 안에 들어오면 그 순간부터 사랑이 멈춘다. 라고 생각했다.

사랑이 멈추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법을 잊은 게지.

 

연애를 하는 동안의 그 달달함들은 결혼과 동시에 삶으로 직행하고

그 삶 속에서 사랑은 제자리에서 붙박이장이 되어 버리고

그 안에 차곡차곡 사랑했던 감정들을 이불 개켜두듯이 쌓아 올려두고 문을 닫아 버렸다.

 

사랑에는 세심한 양념과 꾸준한 가열이 계속되어야 함을 밥하느라 잊어버린 게지.

그저 밥만 잘 해주면 된다고 생각했던 게지.

 

달달한 사랑의 말들 앞에서 쑥스럽고, 유치하다고 생각했던 마음들이

어느새 부럽고 나도 하고 싶다는 감정으로 변해가는 시간들이었다.

 

새로운 사랑을 준비하거나

사랑이 시작되었거나

사랑이 진행 중인 사랑들에겐 참고서 같은 주옥같은 사랑의 마음들을 베끼기에 좋고.

 

붙박이 사랑 앞에서 널브러져 있던 마음들엔

다시 기름칠을 하게 되는 책.

 

사랑이 말했습니다.

 

사랑은 노력이지.

잃지 않고, 잊지 않기 위한 노력.

나는 그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나를 반성했던 시간이었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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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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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러분에게 자유를 전해주려고 왔습니다.



멋진 신세계.

제목의 반전은 첫 장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더 이상 아이를 직접 낳지 않는다.

배양된 아이들은 단계별로 인간화된다.

계급은 없지만 계급화된 사회.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가족의 개념이 사라진 세상에선 밤마다 세뇌의 목소리가 꿈길을 인도한다.


1932년에 발표된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혁신적이다.

그리고 너무나 공포스럽다.

이 신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세상이 된다면 인간은 더 이상 인간으로 불릴 수 없을 것이다.


그건 부조리한 짓입니다. 알파 태생에 알파 길들이기를 받은 사람이 엡실론 반백치의 일을 해야 한다면 미쳐버릴 겁니다. 미치거나 닥치는 대로 물건들을 때려 부수기 시작하겠죠. 알파들은 알파의 일을 하도록 해준다는 여건하에서만 완전히 사회화 합니다.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대목에서 소름이 끼친다.

모두의 스펙이 같은 처지에서 누구도 엡실론의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지금 우리 사회도 알파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들이 몸담을 수 있는 곳은 한계가 있다.

그리고 알파들은 힘들거나 몸을 쓰거나 하는 일은 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난자와 정자를 수정 시켜 배양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지능 수준을 정하고 사회 각 분야에서 쓰임새 있도록 조정하여 태어나게 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야만인 존.

인간들이 인간적으로 살고 있는 곳에서 온 이 야만인의 고뇌는 이 멋진 신세계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그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왔노라 소리쳤으니까.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 책에 나와있는 기술들이 이미 이루어진 세상에 내가 살고 있음으로.

앞으로의 미래가 이렇게 갈지 아닐지는 알 수 없으나

인간은 좀 더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을 미덕을 삼고 기술과 과학을 발전시켜왔다.

세상이 점점 편리해지고 자동화되면 될수록 인간은 외로워지고, 더욱 바빠진다.

마음의 여유 같은 건 누릴 새도 없이 쳇바퀴 돌듯이 하루를 돌고 나면 소진되어 버리니까.

우리가 상상하는 멋진 신세계는 어떤 것일까?


소수의 인간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다수의 인간은 소마에 길들여져 만족이라는 함정에 빠져 사는 곳.

자유의지를 잃은 인간들에게 자유는 깨달을 수 없는 감정이다.

그래서 상징적인 야만인 존의 등장은 이 신세계의 모순을 잘 보여준다.

그것조차도 실험에 의해 차단되고, 설계되고, 가꾸어진 것이었지만.


결국.

인간의 선택은 영원한 안식뿐일까?

미래의 씁쓸함을 미리 맛본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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