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영 ZERO 零 소설, 향
김사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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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네년이 얼마나 해괴한 짐승인가 그것은 오래전에 눈치를 챘건만...."

 

 

 

작가정신의 소설, 향은 중편소설을 다룬 시리즈다.

그 첫 번째 소설이 김사과의 0 영 ZERO 零 이다.

 

 

영국 형사 드라마 루터엔 알리스라는 범죄자가 나온다.

천재적 두뇌를 가진 알리스는 부모를 살해하고 강도가 든 것처럼 꾸며놓았지만 예리한 루터에게 발각되고 만다.

감쪽같은 연기와 알리바이로 무장했지만 범인에 대한 감각이 예리한 루터에게 꼼짝없이 발각된 알리스는 그로부터 루터의 주변을 돌며 루터에게 방해되는 것들을 제거하고 다닌다.

 

 

 

이 책 속의 알리스를 보며 루터의 알리스가 떠올랐다.

물론 이 책 속의 알리스는 이상한 나라의 알리스가 될 수도 있다.

 

 

 

독특하다고 생각하며 읽었지만 어쩌면 우리 마음속에 깊이 묻어 두었던 악마적 기질을 끄집어 낸 이야기랄밖에.

 

 

 

(너같이 무가치한 인간을 본일이 없어.) 네가 가진 지적인 능력을 오로지 타인들이 불행하도록, 그 불행을 기원하고 실행하는 데 바치고 있어. 그러는 가운데, 너는 너의 그 악행의 얼룩을, 네 끔찍한 감정과 상상의 찌꺼기를, 증거 없는 범죄의 흔적들을 죄다 나라는 인간 쓰레기통에 처박았어.

 

 

 

 

주변인들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고, 나보다 잘나가는 사람을 불행으로 이끄는 알리스.

그녀는 언제나 웃음과, 넉넉함과, 상냥함과, 자제함으로써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매력적인 사람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녀의 실체는 교묘함이다.

교묘하게 흘리는 말과, 표정, 행동으로 완벽하게 보이는 사람들을 흠집 내고,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사람을 피하게 만드는 묘한 재주를 부린다.

 

 

 

완벽하게 보이지만 완벽하지 않은 여자.

남의 상처에 눈물을 흘리지만 속으로 웃는 여자.

상냥하지만 악마 같은 여자.

모든 관계를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는 여자.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교묘함을 흘리는 여자.

 

 

 

꾹꾹 눌러 담았던 악마적 기질을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나에게도 알리스 같은 친구가 있었다.

모두의 중심에 서야 직성이 풀리고, 모두의 관심을 받아야만 살아있음을 느끼고.

자기보다 관심을 더 받는 친구를 쳐내야만 하는 운명을 가진 그런 친구.

 

 

 

알리스를 대하면서 그 친구가 떠오른 건 내가 세영이나 성연우의 기분을 알기 때문이다.

어딜 가나 그런 사람은 무리에 한 명 꼭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의 감정을 초토화 시키고 자기는 아무 잘 못 없다는 표정으로 무심한 듯 모두에게 잘못의 화살을 던져버리는.

 

 

 

알리스를 통해 느꼈던 카타르시스는 아마도 내 속에 내재되어있던 나도 당하고만 살지 않을 거야!라는 외침이 아니었을까.

독특한 주인공을 만난 기쁨이 있는 소설이다.

뭐 이런 애가 다 있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애는 의외로 주위에 한 명 꼭 있다.

당하기 전까지는 그 진의를 알지 못하는.

당하고 나서도 그 진의를 믿지 못하는.

그런 사람.

 

 

 

첫 시작부터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시작 한 소설, 향.

앞으로 만나게 될 이야기들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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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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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빅 엔젤의 미소를 믿었다. 그래야 했으니까. 그들은 언제나 빅 엔젤을 믿어왔으니까. 그는 그들의 법이었으니까.

 

 

70세 빅 엔젤.

암 선고를 받은 그는 마지막 생일을 위해 파티를 연다.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일가친척을 모두 불러 보아 성대한 파티를 계획했다.

하지만 그의 생일을 얼마 앞두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장례식은 빅 엔젤의 생일 하루 전이었다.

 

 

파티를 위해 모였던 사람들은 장례식에 간다.

늘 시간을 지켰던 빅 엔젤은 멕시칸 타임을 누리는 식구들로 인해 장례식에 지각을 하고 만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자기 한 몸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빅 엔젤은 그저 식구들이 빨리 움직여 주기만을 바라지만 우왕좌왕 식구들은 모두 느긋하기만 하다.

 

 

가부장 중심과 가족주의의 멕시칸.

많은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사연이 주를 이루는 이야기.

마치 백 년 동안의 고독 21세기 판처럼 느껴진다.

 

 

빅 엔젤에겐 아버지를 뺏어간 동생 리틀 엔젤이 있다.

미국 시민권을 위해 만난 여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리틀 엔젤.

굶주림에 시달렸던 빅 엔젤의 형제들이 아버지 없이 살고 있을 때 리틀 엔젤은 온갖 것을 누리며 살았다.

그들은 그렇게 믿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사람들은 풀고 싶은 회한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저마다의 방법이 있다.

이 책에선 갖가지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모여서 시끄럽고 복잡 복잡하고

정신없고, 아찔하고, 멋지게 맞불을 놓는다.

이야기들은 저마다 자유 의지를 가지고 몇 년을 건너뛰고 수십 년을 무시한 채로 다가오는 듯했다. 빅 엔젤은 어느새 시간의 폭풍 속에 서 있었다. 그에게 과거란 마치 라스 풀가스 극장에서 본 영화처럼 보였다.

 

아픈 몸으로 빅 엔젤은 현실감보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과거의 기억을 본다.

아름다웠던 기억보다는 괴로운 기억이 선명하다.

죽음 앞에서 나도 그럴까?

 

"네가 아기였을 적에, 내가 널 씻겨주었는데."

미니는 눈이 따갑지 않은 베이비 샴푸를 짜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네 아버지였어. 그런데 지금은 네 아기가 되었구나."

 

 

아버지를 돌보는 미니.

목욕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딸 앞에서 빅 엔젤은 아이처럼 투정을 부린다.

 

 

사랑스러운 가족이다.

다툼과 욕설이 난무하는 사이지만.

그 안에 끈끈한 정들 이 뭉쳐져 있다.

 

 

우리가 하는 건 말이다. 얘야. 바로 사랑이란다. 사랑이 답이야. 아무것도 사랑을 막을 수가 없어. 사랑에는 경계도 없고 죽음도 없지.

 

 

거칠고, 상스럽고, 도무지 경계가 없는 가족들의 이야기.

그런데도 그들이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애정을 확인할 때마다 온기가 생긴다.

우리네 정서와는 조금 다른 멕시코인들의 가족애는 마치 코미디 한 편을 보는 거 같았다.

 

 

파티는 극적으로 마무리되었고

모두는 서로의 앙금을 거두었다.

아버지의 아들

아들의 아들

그들은 그래서 가족이었다.

 

 

매번 더 나아지고 있는.

그러나 옛 감성을 그리워하는.

 

 

대 가족을 어깨에 지고 스스로 법이 되어 살아야 했던 빅 엔젤.

그가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조용히 죽음의 시간으로 여행을 떠났음에 안도하게 되었다.

그가 없는 빈자리를 채울 누군가가 있음으로.

 

 

가족은 늘 그렇게 채워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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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 콜렉터
캠론 라이트 지음, 이정민 옮김 / 카멜레온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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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줍는 일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달프다. 프놈펜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곳 사람들은 남들이 내다 버린 것들에서 삶을 일구고자 오늘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오늘의 배고픔을 덜기 위해 내일의 희망과 거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이다.

 

캄보디아 프놈펜.

그 안에서도 스퉁 민체이. 이곳은 쓰레기 매립장이다.

그곳에 움막을 짓고 쓰레기를 주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상 리도 그들 중 한 명이다.

그녀에겐 기 림이라는 남편과 니사이라는 아들이 있다.

부부가 하루 종일 일해도 하루 살이 삶일 뿐. 나아지는 형편은 아니다.

게다가 니사이는 늘 설사를 달고 살고, 매달 집세를 받으러 오는 괴팍한 노인네는 성질이 고약하다.

 

소피프 신.

집세를 걷으러 다니는 이 노파는 늘 술에 절어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에게 매달 집세를 주면서 시달리는 상 리에게 어느 날 우연히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동화책 한 권이 두 사람의 인연을 바꿔 놓은 운명이었음을 알지 못했다.

 

매캐한 공기와 희뿌연 연기가 책을 읽는 내내 주위를 맴돌았다.

기 림과 상 리는 그 와중에도 어찌나 착실하고 서로를 아끼며 살아가는지 눈물을 흘리는 것도 미안할 지경이다.

상 리는 그런 남편을 자신의 영웅으로 생각한다.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책 한 권.

집세를 걷으러 왔다 그 책을 보며 오열하는 소피프.

그런 소피프에게 글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상 리.

 

이 기적 같은 일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다.

아들이 만든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 이야기를 쓴 아버지.

어째서 나는 이 이야기를 캄보디아인이 썼다고 생각했을까?

왠지 유려한 글을 읽으면서 상 리가 글을 배워 쓴 자전적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역시 책을 다 읽고 작가에 대해 읽기까지 이 책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은 쓰레기 매립장과 아들을 위해 글을 배우려고 한 어머니라는 키워드만 가지고 어리석게 덤벼댄 나의 조급함이 일으킨 착각이었다.

작가의 이름을 보고서도 한치의 의심도 들지 않았던 이유는 그만큼 이 이야기가 몰입도가 좋았기 때문이다.

 

소피프 신만 빼고는 모두 다큐멘터리에 얼굴을 비친 사람들이다.

책의 뒷면에 그들의 사진이 있다.

그곳에서도 그들의 미소는 해맑다.

 

나도 글을 읽는 게 약을 대신한다거나 몸을 낫게 해준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뭔가를 기대하게 하고 무언가와 맞서게 하는 힘을 길러 준다고 생각해요. 책을 통해 아이가 용기를 얻을 거라 믿고 싶어요.

 

아들은 계속 아프고, 상 리는 소피프를 통해 글을 배운다.

그러면서 점차 소피프에대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집세나 받으러 다니는 괴팍한 여자는 과거에 대학교수였다. 문학을 가르치는.

소피프에겐 어떤 일이 있었을까?

 

상 리와 소피프의 수업 시간에 언급되는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참 흥미롭다.

이제 책을 알아가는 맛을 알게 된 내게 문학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그들의 절절한 삶 속에서 글을 배운다는 건 어쩜 누군가에겐 웃기는 일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대리만족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도전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상 리 주변의 사람들은 그녀를 비난하지 않고 지지해준다.

 

가난은 서로를 갉아먹기도 하지만 서로의 품을 나누어주기도 한다.

어떤 삶을 선택할지는 스스로의 결정에 달렸다.

 

글을 깨우치면서 느끼는 희열.

글을 알게 됨으로써 알게 되는 깨달음.

글을 통해 깊어지는 생각의 사슬.

상 리를 통해 나도 점점 생각의 깊이가 깊어진다.

 

어쩌면... 스퉁 민체이에서 사라진 건 당신 자신일 수도 있어요.

 

 

소피프에게 던진 상 리의 일갈은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말일지 모른다.

자신을 잊고 현실에 수긍해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

 

소피프의 과거에서 캄보디아의 과거를 본다.

내전으로 인한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았다.

크메르루주 군대가 프놈펜을 장악하고 일어난 학살에서 모든 것을 잃고 자기 자신마저 잃어버린 소피프의 이야기에서 한국전쟁을 떠올린다.

비슷한 아픔을 공유한 캄보디아에 대해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다는 사실도 이 책에 대한 고마움이다.

 

모든 것을 잃은 여인은 자신의 이름도 잃고 다른 이름으로 살아야 했다.

자신을 살려준 이들을 위해 살아냈던 영혼은 철저하게 자신을 망가뜨렸지만

결국 희망이라는 그물에 걸려 자신의 마지막 제자를 키워낼 수 있었다.

 

그 후로 내내 대가를 치르며 살아왔지.

선택을 할 때는 신중해야 해. 반드시 결과가 따라오게 되어 있으니까.

좋든 나쁘든.

 

현실에서 길어올린 감동이었다.

스치듯 지나칠 그들의 일상에서 이렇게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낸 작가의 솜씨가 아름답다.

책을 읽고 난 마음에 잔잔한 파문이 인다.

 

어떻게 주어진 삶에 감사해야 하는지

어떻게 앞으로의 삶을 짊어지고 나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서로를 믿고 살아야 하는지

 

어디에 있든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삶은 그렇지 않은 삶보다 풍요롭다.

상 리에겐 희망이 있었고, 그 희망은 이루어 줄 인연을 연결해 주었다.

그리고 그 인연은 오래되고 깊은 상처의 틈을 아무려주었다.

세상은, 사람은, 문학은 그렇게 서로를 이어가는 인연의 끈으로 이루어져 있다.

 

배움은

그래서

끝나지 않아야 한다.

죽을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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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을 잘라드립니다 - 하버드 교수가 사랑한 이발사의 행복학개론
탈 벤 샤하르 지음, 서유라 옮김 / 청림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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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쳐요. 직접 만나서든, 인터넷을 통해서든, 남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은 결국 자기 자신을 더럽힌다고요.

 

 

프로보다 아마추어의 분투기가 사람들 마음에 더 와닿을 때가 있다.

프로에겐 그에 합당한 대우가 주어지기에 그만큼은 해야 한다는 이름값이 있지만

아마추어에겐 프로정신이 요구되지 않기 때문이다.

 

 

쟁쟁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의 이야기가 인용된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건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동네 이발사 아비의 말이 바로 아마추어적인 감동을 준다.

 

 

동네 사람들의 머리칼을 자르고, 다듬는 아비의 손길엔 인생을 통한 연륜도 함께 흐른다.

아비의 가게는 단순히 머리를 다듬기 위한 곳이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그것을 누릴 가치를 가진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아비의 말

아비의 손길

아비의 마음

이 모든 것을 온전히 느끼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저자는 하버드 교수다. 행복학을 강의하는.

그런 그가 동네 이발사 아비에게서 행복함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2년간 그것을 모아서 책으로 엮는다.

 

 

이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건 단순해 보이지만

책을 읽을수록 마음이 복잡해진다.

아비와 저명한 학자와의 차이가 뭘까?

 

 

 

인간은 누구나 인생의 등대가 필요해요.

 

자신의 가게가 바로 아비의 등대다.

욕심부리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의 등대.

아비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는 삶이 평범해 보일 수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힘든 그 평범한 삶을 아비는 누리고 있다.

온전하게.

 

 

얼마나 현명해야 할까?

아비처럼 살려면.

 

 

이 책은

나에게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주었지만

뜻밖의 음악 선물도 주었다.

아비의 가게에서 흐르는 음악들을 찾아 들으며 나도 잠시 아비의 인생관을 느껴 보았다.

이런 음악을 매일같이 들으며 자신의 등대에서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는 삶.

 

 

아비 앞에서 하버드대 교수도 행복 전도사라는 타이틀도 다 부질없게 느껴진다.

이론은 실천을 따라가지 못함으로.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쉬웠다.

음악이 흐르고, 커피향이 나는 아비의 가게.

아비는 머리뿐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도 다듬어 주었다.

 

 

저는 가난을 원치 않아요. 하지만 굳이 부자가 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죠.

 

보통 현명하지 않으면 깨달을 수도 실천할 수도 없는 말이다.

무엇이든 계기가 있으면 확장하고, 부풀리고, 더 갖기 위해 애써야 하는 이 세상에서

아비처럼 생각하고 아비처럼 산다는 건 어떤 걸까?

 

가난을 원치 않지만, 부자가 될 필요도 없다.

이 간단해 보이는 문장이 내 머릿속을 자꾸 휘젓는다.

지금 우리가 아등바등 살아가는 이 힘겨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유가 이 문장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삶을 통달한 것처럼 보이는 아비는 끝없이 배우고, 음악을 사랑하고, 자신의 일을 즐기는 사람이다.

강요하지도 않고, 신뢰를 주며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서 자신의 머리칼과 함께 고민을 잘라낼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일까?

그런 곳이 동네에 있다는 걸 깨닫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숨은 현자 아비.

무릇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나서지 않는 법이다.

조용히 묵묵히 자신의 기본을 지키며 살아가니까.

 

 

 

 

사람은 역할의 함정에 빠지기 쉬워요. 자리가 사람을 규정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중요한 건 처한 상황에 관계없이 자신의 본질을 기억하는 거예요.

우리는 진짜 자신, 진정성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해요.

 

 

 

나는 지금 얼마나 진정성 있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한 시기다.

이 시기에 이 책을 만나게 되어 고맙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아비가 제시해 주었다.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은 이제부터 나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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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 인생의 이야기
나쓰메 소세키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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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란 엿가락 만드는 기술과 같다. 늘이려면 얼마든지 늘어난다. 그 대신, 진정한 맛은 줄어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소세키의 글은 처음부터 내게 자신을 이야기하는 글로 다가 왔다.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이 대표작인 이 작가의 글을 나는 소설이 아니라 수필로 먼저 만났으니 그를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로서 만났다는 건 어쩌면 내겐 더 깊이 그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고, 수필, 담화, 강연, 서간

이렇게 다섯 분야로 나뉘어 실린 그의 글들을 대하다 보면 숙연해질 때가 많다.

한 세기 전의 사람인데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분명하고 날카로웠다.

 

사람을 보라. 금시계를 보지 마라. 옷을 보지 마라. 도둑은 우리보다 더 멋진 옷을 입는 사람이다.

 

바보는 백 명이 모여도 바보다. 자기편이 많다고 해서 자신에게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일찍이 영국 유학을 다녀왔고, 지병으로 고생했지만 글을 멈춘 적은 없었다.

그는 편지를 많이 썼고, 찾아오는 사람들 모두에게 자신의 시간을 나누어 주었다.

 

문부성이 내린 박사 학위를 거절하는 모습을 보면 그의 소신이 보인다.

나라에서 하라면 해야 하는 그 시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 여겨서 그것을 끝까지 거절하고 그 전말을 신문에 기고하는 모습은 시대상으로 꽤 파격적인 거 같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스스로 주류로 들어가는 자리를 박차는 모습은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이 시대에 살고 있다면 아마도 옳지 못한 역사의식에 대해 뼈 때리는 문장으로 꾸짖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옳고 그름과 사람으로서의 행보에 뚜렷한 소신이 있었던 사람의 글이 읽을수록 몸가짐을 바르게 한다.

 

자극이 강한 도시를 떠나 갑자기 태고의 수도로 날아온 나는 마치 삼복더위에 달구어진 돌이, 푸른 바닥에 하늘도 비치지 않는 어두운 연못 속으로 가라앉은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문장들도 가슴 한켠에 담아두게 된다.

저 문장은 도쿄를 떠나 교토에 도착한 심정을 표현했다.

어떤 느낌이었을지 문장을 자꾸 곱씹어 본다.

 

나는 호의가 메마른 사회에 존재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 어색하게 느껴졌다.

 

소세키의 글을 읽다 보면 시대를 잊게 된다.

그의 감각이 21세기에도 뒤처지지 않으니 마치 요즘 핫한 양준일의 90년대 비디오를 보는 느낌이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담긴 자상함에 마음이 저리기도 하고

그의 유머스러움에 가슴이 따뜻해지기도 한다.

시대를 앞서 간 사람의 멋스러움을 글 곳곳에서 마주치게 된다.

 

개인적으로 강연 부분에서 나의 개인주의라는 제목의 글이 참 맘에 들었다.

황족과 화족들의 교육기관에서 한 강연에서 그가 강조한 것들은 지금 이 시대에도 간절하게 요구되는 것이어서 글을 읽으면서 맞아! 소리를 여러 번 했다.

 

병중에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소세키야말로 글쟁이라 불릴만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대표작들을 읽고 싶어졌다.

 

몰랐던 작가에 대해

꾸며진 이야기가 아닌 생활 속 이야기에서 느낀 감각들이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어떤 효과를 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올곧음에 대해 소설 속에서 좀 더 다양한 모습으로 알게 되지 않을까.

 

강단과 소신.

이 두 가지로 나는 소세키를 기억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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