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보이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박현주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학생으로서 두 번째로 운동장에 들어서는 건 처음보다도 더 어려웠다. 처음에는 놀라움이라는 요소가 책상이라는 안전한 항구까지 실어다 주기 때문이었다. 이제, 건물을 나가 운동장에 들어서면서, 오세이는 사람들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오가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고, 오가 자기들과 다르다는 선을 가능한 한 확실히 긋기 위해.

 

 

네이버 독서 카페 리딩 투데이에서 함께 읽는 책으로 선정된

호가스 셰익스피어 다섯 번째 이야기는 오셀로를 개작한 뉴 보이.

진주 귀걸이 소녀의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작품이다.

 

백인들만 다니는 초등학교에 전학 온 흑인 남학생 오세이.

담임 선생님의 총애를 받는 디.

디는 오세이를 돌봐주라는 담임의 말에 그와 짝이 된다.

오세이라는 발음을 어려워하는 디에게 오세이는 자신을 오라고 부르게 한다.

 

오와 디.

서로의 다름에 끌리는 아이들.

그들을 위험하게 살피는 아이들.

운동장에 깔린 위험을 감지하는 미미.

이들의 하루는 어떻게 끝날까?

 

형들에 이어 학교의 짱 자리를 이어 받은 이언은 오에게 달린 호기심의 눈들에게 마음이 쓰인다.

학교의 인기남인 캐스퍼와 인기녀 디는 오세이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언은 그 아이들에게 흠집을 내고 싶었다.

 

그들을 모두 끌어내린다는 생각을 하니 흐뭇했다. 흑인 소년뿐 아니라, 학교에서 제일 인기 있는 황금의 소년과 황금의 소녀도. 캐스퍼와 디는 이언의 엄마가 달걀 프라이를 하려고 쓰던 테플론 프라이팬과 같았다. 아무것도 들러붙지 않았다. 이언은 그들을 만질 수조차 없었다. 그들은 이언의 영역보다 한 단계 위에 있었다.

 

 

오전, 오후, 방과 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이언의 교묘한 계획에서 시작된다.

좋은 것을 좋게 보지 못하는 습성

옳은 것을 옳게 보지 못하는 성질.

 

질투는 사소한 이야기에서 불이 붙고, 진실을 확인할 생각도 없이 스스로 뿌려진 씨앗을 키워낸다.

결국 오는 이언의 계략에 말려들고 디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위험을 감지했던 미미는 그저 이언에서 벗어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로 인해 미미는 가장 아끼는 친구 디가 함정에 빠지도록 방관한다.

그리고 그 대가는 끔찍하게 그녀에게 내려진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 했던 이언에 의해.

 

백인 학교에서 홀로 서려 했던 오는 결국 세치 혓바닥에 의해서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다.

자신의 냉정함을 잃은 건 결국 디의 친절과 관심이었는데 여태껏 받은 적 없었던 배려와 사랑은 오의 냉정함을 앗아 갔다.

 

검은 것은 아름답다!

 

한나절 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많은 인생을 망칠 것이다.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무섭도록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였다.

여태껏 읽은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중에 가장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내 마음은 아직 그 무질서한 운동장에 남아 있다.

미미가 쓰러져 있고, 오세이가 행동을 취한 채로 끝나 버린 그 혼란스러운 운동장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0가지 물건으로 다시 쓰는 여성 세계사
매기 앤드루스.재니스 로마스 지음, 홍승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0가지 물건으로 다시 쓴 여성 세계사.

 

이 책에 실려 있는 100가지 물건들은 여성들을 해방시키기도 했지만 동시에 여성들을 그만큼 착취하고, 해치고, 옭아매는데 한몫했다.

그럼에도 여성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싸우고, 쟁취하고, 끝없이 항의한다.

오늘날까지도.

 

 

 

1. 몸과 모성, 섹슈얼리티

 

호텐토트의 비너스 엽서는 실존했던 인물로 코이코이 부족과 부시먼 부족 사이에서 태어난 여성 사르키를 말한다.

사르키는 1810년 납치되어 영국에 끌려와서 반나체로 여흥거리고 전시되었다.

그녀는 다른 여성과는 다른 엉덩이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을 사람들은 여흥거리고 삼아 그녀를 전시했다.

 

프랑스의 동물 조련사에게 팔려간 그녀는 죽어서도 편치 못했다.

그녀의 몸은 갈갈이 분해되고 박제되어 파리 인류학박물관에 전시되었다.

넬슨 만델라가 미테랑 대통령에게 그녀를 돌려달라 요구했지만 그녀는 2002년이 되어서야 남아프리카 땅에 묻혔다.

 

생리대의 발명은 여성들의 활동을 훨씬 편하게 만들어 주었고, 아기 포대기와 유모차의 탄생은 육아에 보탬이 되었다.

하지만 아기 포대기가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건 몰랐던 사실이다.

 

 

 

 

2. 아내와 가정주부

 

잔소리꾼 굴레.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을 억압하기 위해 동원된 것이 정신병원만은 아니었다.

잔소리꾼 굴레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여성들의 입을 막아왔던 물건은 200년간 이어져왔다.

1967년에야 영국 형법에서 제거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여성들에게 저 굴레가 씌었을까?

저 굴레는 현대에 와서 여성 혐오 표현들과 이어진다.

모욕감을 주는 말들로 여성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저 잔소리꾼 굴레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아줬음 좋겠다.

 

이혼이 자유롭지 못했던 18세기와 19세기 영국에서는 아내를 파는 관행이 생겼다.

공공장소나 신문, 포스터로 광고 되거나 마을 안내원이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기혼 여성은 유언장을 남길 수도 없었으며 임금을 조정하거나 재산을 사고 팔 수도, 계약을 할 수도 없었다. 비록 개인의 결혼 생황에서 개인적인 행동양식의 차이는 있었지만 법적으로는 아내가 결혼하면서 가져온 소지품이나 돈은 자동으로 남편의 소유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하루 평균 세 명 이상의 여성이 남자친구나 남편에게 살해당한다.

 

 

 

강간과 가정폭력으로 자행되는 살해 행위는 안팎으로 여성들에게 안전한 곳은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만든다.

 

3. 과학과 기술

출산에 사용되는 겸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의사가 아닌 이발사가 발명했다.

출산은 여성들만의 전유물로서 산파가 주로 담당했지만 간혹 난산인 경우에는 의사가 필요하기도 했다.

의사가 없는 곳에서는 이발사가 의사 노릇을 하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피터 챔벌린이라는 이발사가 산모와 아기를 위한 겸자를 발명했다.

이 겸자는 난산일 때 아기의 머리를 다치지 않게 보호하는 구실을 했는데 결국 이 겸자는 남자 의사들이 출산을 담당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여성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출산에서 남자 의사들이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출산에서도 여성 스스로의 힘과 자연적인 출산은 배제되고 돈벌이를 위한 의사들의 주도적인 출산환경으로 바뀌게 되었다.

겸자를 쓸 이유가 없음에도 겸자를 쓰는 환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식기세척기, 진공청소기, 전자레인지, 전기믹서, 제빵기 등 이후 이어진 전기냉장고와 그 밖의 가전은 여성의 삶을 변화시키고 노동력을 절약하며 여성을 고된 가사에서 해방시킨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여성은 여전히 상당한 시간을 가사노동에 들이고 있으며 '노동을 절약하는' 가전이 보급되면서 점점 더 높아지는 청결 기준과 음식 준비에 대한 기대치를 충족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4. 패션과 의상

재봉틀은 여성들이 집 밖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으나

또한 현장에서 노동력 착취의 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

 

실리콘 가슴은 인위적인 미의 기준이 가져온 참상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몸에 만족하지 못하도록 사회가 바비 인형의 모습을 미의 기준으로 삼았기에 많은 여자들은 자신의 유방을 부풀리기 위해 위험을 불사한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더 다양한 모습들이 미의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미의 기준은 인형이 되어서는 안 된다!

 

5. 소통과 이동, 여행

 

자전거는 여성의 현대성과 자유를 상징하고,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여행을 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비행기를 조종하는 여성도 탄생했고, 서구사회의 가정주부들에게 미니는 혁명을 일으켰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남자들 보다 작은 차를 몰고 여성 운전자에 대한 비판과 농담은 계속되고 있다.

 

6. 노동과 고용

 

중세 시대엔 남녀 모두가 자수를 놓았다는 사실은 신선하다.

하지만 자수는 점점 여성스러움을 주입하며 여성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 여성들은 자신들의 힘을 담아냈다. 여성스러움의 주입을 여성의 힘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결국 여성은 이 세상에 자기가 살았다는 것을 보여줄 뭔가를 남기고 갈 만한 것이 별로 없었어요. 심지어 자신이 낳고 기른 자녀들마저 아버지의 성을 따르잖아요. 하지만 퀼트만큼은 여성이 물려줄 수 있는 것이었죠.

 

 

 

퀼트, 자수, 뜨개질 등은 여성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집단적인 일이다.

이것을 위해 모여서 외로움을 달래고 기술과 우정을 키웠다.

 

19세기에 남장을 하고 군의관이 된 마거릿 앤 버클리.

남자들이 점유한 직업에서 일하기 위해 스스로 남장을 한 여자들이 많았다.

살기 위해서 남장을 한 수많은 여자들을 우리는 소설 속에서 만나기도 한다.

현재에도 여성은 남성과 똑같은 일을 해도 임금을 훨씬 적게 받는다.

사실이다.

 

7. 창작과 문화

랭골렌의 귀부인들.

참 멋진 삶을 살았던 여성들이었다.

자기들만의 세계를 창조한 여성들이다.

그녀들의 관계가 동성애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녀들은 자신들만의 저택에서 자신들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주며 화려한 삶을 살았다.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아냈다는 점이 인상 깊다.

 

낙태는 아이를 가진 사람에게 결정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결정권은 법과 종교가 가지고 있다.

아직도.

 

8. 여성의 정치

이집트의 하트셉수트라가 파라오였다는 사실은 3000년 동안 숨겨진 사실이었다.

역사 속에서 사라진 여성 지도자가 하트셉수트라뿐은 아니겠지.

부디카는 로마군을 전복시키려는 시도를 한 이세니 부족의 여왕이었다.

잔 다르크는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순교자이자 수호성인이다.

마녀처럼 화형에 처해지긴 했지만.

 

마녀 잡는 망치. 라고 해서 살벌한 망치를 떠올렸지만 이것은 심문하는 책이다.

이 책은 결국 여성과 사회 내 여성의 지위에 대한 깊은 불안을 존재한다는 걸 나타내는 책이기도 하다.

마법사를 잡는 망치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많은 능력 있는 여성들이 마녀라는 이름으로 처형당했다.

여성의 힘을 두려워한 소인배들의 모략으로 사라져간 능력 있는 여성들의 한은 어느 세월에 풀릴까?

 

1893년 세계 최초로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나라는 뉴질랜드다.

미국도 못한 걸 뉴질랜드가 해냈다!

 

여성의 역사는 지금도 부단히 나아가고 있다.

모든 면에서 전보다는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잘 못된 대우를 받고 있다.

하지만 내 엄마 세대에 비해 나는 조금 나은 삶을 살고 있고, 나보다는 내 조카들의 세대는 우리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살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100년 후

이와 같은 책이 다시 나온다면 그 책에 담길 우리의 이야기가 좀 더 당당하고, 좀 더 평등하고 자유로웠던 기록으로 남겨지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프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이유정 지음 / 북스토리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관습이란 이름으로 인지했던 이유 모를 행동, 이유 모를 사회, 이유 모를 수많은 것들에 물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 이전에 스스로 물음이란 걸 가져본 적이 있었는가. 그제야 깨달았다. 문제는 근종이 아님을! 덕분에 반성 없이 묵인했던 많은 불평등을 반성했고, 식탁 위, 냉장고 안 등 손과 눈길이 닿는 많은 것들에 담긴 모순을 인지했다.

 

 

 

20대 후반 결혼을 앞둔 그녀는 자궁근종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예비 신부에게 출산을 이유로 수술을 권했던 병원을 나와 스스로 자신의 병에 대해 생각하게 되기까지

주변의 반응은 다채롭다.

 

 

여자애가 어떻게 하고 다니는데, 그런 종양이 생기는 거야?

 

 

자궁근종은 여자들의 자궁에 생기는 종양이다.

크고 작은 종양들은 거의 모든 자궁에서 자라고 있다는 게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다.

문제가 되는 건 그 종양이 10Cm를 넘어가도록 계속 자라는 게 문제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체크해야 하고 종양이 커지게 되면 불가피하게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어느 부위에 어떻게 생겨나는지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어쨌든 이 종양이란 여자의 행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얘기다.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여자 어른들이 아직도 있다는 게 우리의 현실이기는 하지만.

 

 

자궁근종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개선해 보려는 의지가 담긴 책이다.

그 의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병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각종 논문과 자료를 찾아서 읽고, 공부했다.

근종은 호르몬과 관계가 있었다.

나도 자궁근종을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는 의사를 만났기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지만

만약에 의사가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면 당장 수술을 했을 것이다.

이 책의 작가처럼 근종에 대해 알아보려 하지도 않고.

 

 

이 책엔 근종에 대해서 공부하고, 그것을 줄이거나 자라는 속도를 느리게 하기 위해 노력한 작가의 경험담이 담겨있다.

환경 호르몬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먹거리를 조심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겪은 시행착오도 담겨있다.

이 모듯것들을 읽어 가면서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너무 모르고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 몸인데도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내 몸에 좋은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의심하지 않고 남들이 좋다는 걸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환경 호르몬에 대해서도 정말 별생각 없이 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주변의 많은 것들을 관습이라는 관점으로 당연하게 인식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비판적 사고 없이 여성 질환을 가진 환자에게 '여성성이 훼손되었음'이란 무의식적 낙인을 찍었다. 문화란 이름으로 사고방식을 결정짓는 과정에 대한 비판이 없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여성 질환에 대한 편견.

이것을 비판 없이 받아들인 상처들은 여기저기에 널려있다.

그저 습관처럼 내뱉는 말들은 우리가 우리도 모르게 습득한 말들이다.

자라오면서 여자 어른들이 하는 말을 여과 없이 저장했기에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말들이 무의식적으로 나오지만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못 한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그저 자궁근종을 극복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내가 막연히 부당하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들에 대해서.

내가 심각하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늘 그러려니 하고 생활에 묻어 버렸던 문제들에 대해서.

내가 나 하나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묵살했던 문제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노력하고, 개선할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내는 작가의 모습에 뭉클해졌다.

누군가의 이러한 노력들이 울림이 되어 나처럼 그저 생각만 하고 말았을 사람들의 귓가에 종소리가 되어 울린다면

앞으로의 삶의 질이 조금은 나아지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생리통이 유달리 심했던 작가는 근종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생리통을 경감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시도도 해본다.

면 생리대를 쓰고, 좋은 먹거리를 먹고, 혈액순환이 잘 되게 몸을 따뜻하게 하면서 생리통의 고통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생리통 역시 모든 여자들이 당연하게 겪는 것이라 생각하고 유난 떨지 말라고 배웠다.

정말이지 생리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해서 그날, 빨간 날, 홍언니, 공산당이 쳐들어왔다 등등으로 부르며 여자들끼리만의 은어로 소통하던 것들이 우습게 느껴진다.

 

 

생리통을 생리통이라 말하지 못하고, 생리를 생리라 말하지 못했던 홍길동의 누이들이여!

 

이 책은 나도 모르게 뒤집어쓰고 있었던 관습적인 것들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내 몸에 대해서도 바르게 생각하는 기회를 주었다.

 

 

그녀가 자궁근종을 극복해내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녀가 자신의 몸을 이제야 알아가는 이야기다.

그녀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내 몸에 이상이 오기 전에

내 몸이 비명을 지르기 전에

내가 나를 챙겨야겠다.

 

 

그리고 병원은 정말 한 군데 이상 다녀봐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도 인연이 있다.

기왕이면 좋은 인연으로 만나면 그만큼의 고통을 더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발품을 팔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자를 돈으로 보는 의사 말고, 정말 환자의 고통을 공감해 주는 의사를 만나기를 소망한다.

 

 

자궁근종 하나로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게 된 시간이었다.

수술을 미루고 1년 반 정도 자신의 몸을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은 그녀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아프지 않고 내 삶을 바꾸는 시간을 가지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남자는 곰
뱅상 부르고 지음, 박정연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남자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리고 나는 또 다른 것들을 알고 있었다.

근사했다!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곰.

나는 곰과 사랑에 빠졌다.

서로가 알고 있던 모든 걸 나누며 행복했던 시간들.

 

그러나

그런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가 사.라.졌.다.

 

 

 

 

 

 

 

그를 찾아 나섰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많은 남자들이 곰을 대신해 나를 찾았지만 그 어떤 남자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잊으려 노력했다.

일상을 살고

사람을 만나고

파티에 갔다.

 

그리고.

어느 파티에서 곰을 만났다.

그는 나를 기억 못 했지만.

 

그리고 다시 새로운 시작.

또 그가 떠나면 어쩌지?

나는 그를 감시했다.

 

한 번 떠난 사람은 언제든 또 떠날 테니까.

 

그리고 곰은 또 나를 떠났다.

 

나는 그의 뒤를 밟았다.

잠옷 바람으로 길을 걷고, 기차를 타고, 곰이 들어간 숲에서 길을 잃었다.

 

그녀는 곰이 사라진 일상을 살아내야 했다.

숲에서 그녀를 구해준 남자와 함께 일상을 살고.

아이를 키우고.

여러 해를 보냈다.

 

잊혀질때쯤

파티에서 곰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 그들은 춤을 추었다...

 

 

 

 

 

 

 

 

 

 

 

감각적인 그림이 이야기를 대신한다.

막바지에 이른 그들의 페이지는 춤으로 사라진다. 점점이.

 

곰은

모든 것을 주고받았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었을 것이다.

사라져서 더는 찾을 수 없는.

 

일상으로의 회귀.

삶을 살아내지만 비어진 한 귀퉁이에선 끝없이 손짓하는 무언가가 있겠지.

 

결국은

나머지 삶은 추억 속에서 사는 것이다.

다시 만나면 어떨까?

그때 헤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함께 있다면 우리는?

 

추억을 소환한 상상 속에서 나는 다른 삶을 살고

현실에선 주어진 삶을 사는 것이지.

 

빨강에서 분홍으로 그녀의 삶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녀는 곰과 함께 춤을 추며 페이지 너머로 사라진다.

 

그 너머에서 그들은 춤을 추며 살 것이다.

다시 사라지지 않고,

다시 헤매이지 않고,

다시 떨어지지 않고,

다시 그리지 않고.

 

이 책은

읽는 이의 경험에 따라

이야기의 흐름도

이야기의 맺음도

다르다.

 

모두가 곰과 그녀를 자기 경험으로 해석할 테니.

그래서 늘 새로울 이야기다.

 

사랑은.

그때그때 달라요.

누구와 하느냐에 따라

언제 하느냐에 따라

내 마음가짐에 따라

상대 마음에 따라

 


 

참 세련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용한 아내
A.S.A. 해리슨 지음, 박현주 옮김 / 엘릭시르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그도 알고 그녀도 알며, 그녀가 안다는 사실을 그도 안다. 요는 가식. 중요하기 그지없는 가식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실이 공공연히 선언되지 않는 한.

 

 

 

길버트 부인.

그녀의 공식 이름이다.

그녀와 토드는 이십여 년간 부부관계를 유지한다.

토드는 끊임없이 바람을 피우지만 언제나 돌아왔다.

그녀는 그런 그를 두고 본다. 그를 위해 집을 가꾸고, 요리를 한다.

언제나 토드의 자리는 자신의 옆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나타샤는 스물한 살의 여대생이자 토드의 절친 딘의 딸이다.

바람을 피우고 피다가 결국은 친구 딸과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었다.

게다가 그 아이는 임신까지 했고,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 모든 건 그냥 지나갈 거야.

그전과 동일하게.

 

심리 상담을 하며 자신의 영역을 일궈 나가는 조디.

건축일에 종사하는 토드.

남부럽지 않은 이들의 겉모습은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는 울타리 구실을 할 뿐이다.

아이 없이 사는 두 사람만의 관계는 토드가 아이를 갈망하면서 틈이 생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었던 토드의 바람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럼에도 다시 돌아올 거라 믿었던 조디에게 토드는 자신의 집에서 나가달라는 강제 퇴거 집행을 한다.

 

이런 적은 여러 번 있고, 지금도 그중 하나다. 토드와 결혼하지 않은 게 어쩌면 실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때. 때로는 어째서 결혼에 그처럼 극렬히 반대했는지 기억해내기도 힘들다.

 

 

 

조디와 토드는 사실혼 관계였다.

법적으로 조디는 토드에게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20여 년간 같이 일군 이 모든 것들에 그녀의 몫은 없다.

그녀는 토드가 선심 쓰듯이 다 가지라고 말한 가구들 외엔 소유할 게 없었다.

 

그녀의 친구 엘리슨이 그녀에게 해결책을 내놓는다.

그의 유언장엔 아직 조디의 이름이 있을 테니 토드가 결혼하기 전에 그를 없애버리자고.

그러면 그녀는 이 집에서 쫓겨나지 않아도 된다.

그의 모든 것이 그녀의 것이 되니까.

 

비슷한 유형의 이야기들이 많지만 이 조용한 아내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토드는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와 그 곁에서 온갖 것을 견뎌낸 어머니의 틈에서 자랐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그는 자수성가해서 지금의 부를 일궜지만 안정적인 가정 앞에서도 좀체 마음을 다잡지 못했다.

조디는 그런 토드를 이해하고 분석하면서 그저 이 상황을 유지해가기만을 바랐다.

평범한 가정에서 좋은 부모 아래서 좋은 교육을 받았던 조디에게도 어두운 과거가 존재했다.

그녀 스스로 지워버렸던 과거의 기억.

어쩜 그것들로 인해 토드와 조디는 완벽한 가정을 꾸미고도 불완전하게 살아왔는지 모른다.

사실혼 관계는 토드에게 불안정한 닻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자꾸 흔들렸는지도 모르지.

 

아들러 심리학에 근거한 심리 상담사 조디는 결국 토드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알리바이도 만든다.

조디의 계획은 완벽하게 성공할까?

 

그 남자.

그 여자.

토드와 조디의 시각이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이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심리와 감정과 변화를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다.

토드가 빤하게 보인다면 조디는 결코 다 보이지 않는다.

그게 이 이야기의 매력이다.

 

잘 알 수 없는 주인공과 빤히 보이는 주인공 두 사람의 이야기를 번갈아 읽어가며 내 삶도 돌아보게 된다.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감정적 변화들.

유지하려는 자와 벗어나려는 자의 끝없는 줄다리기.

토드는 집을 나와서야 자신이 무엇을 버렸는지 깨닫는다.

조디는 토드가 집을 나가고 나서도 다시 돌아올 거라 믿는다.

그래서 조금 답답했다.

이 여자 이렇게 상황 파악이 안 되나?라는 생각 때문에 답답했는데 어쩜 그건 조디가 토드를 너무 잘 알아서 일 것이다.

그 남자는 결국 언제든 싫증을 내고 내게 돌아올 거라는 믿음.

그건 조디만이 토드에게 줄 수 있는 안정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해 그녀가 늘 긴장하고 살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 테지만.

 

결국 모든 일은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

신은 언제나 불공평한 듯이 공평한 법이니까.

헌신한 자에게는 그에 합당한 대가가 주어지는 법이다.

불성실한 자에게도 그에 따르는 대가가 주어지듯이.

 

완벽한 이야기였다.

작가의 첫 소설이자 유작이라는 게 아쉽다.

다음 소설은 더 멋진 이야기였을 텐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