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를 가볍게 생각했던 나는 어릴 때 스치듯 읽었던 책 내용만으로 그저 흥미로운 여행기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저 거인국 소인국에서의 걸리버 모습을 생각하며 나도 어느 날 걸리버처럼 그런 곳에 떨어지게 되면 어떻게 할까?라는 호기심만 생겼을 뿐이다.
어른이 되어 제대로 읽게 된 걸리버 여행기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당시의 시대 상황을 교묘하게 비꼬아서 인간들의 탐욕을 질책하는 모양새는 그가 이 이야기를 꾸며내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소인국에서 산악 인간으로 불리며 그곳에 적응해나가는 걸리버는 왕국과 왕에게 나름의 충성을 보이지만
늘 그렇듯 주위엔 걸리버를 질투하고, 그를 인정하지 않고, 그를 없애버리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뭔가 대단한 능력이나 힘을 가졌다 싶으면 인간의 세 치 혀 안에서 생사가 결정되는 것은 이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변함없는 것인가 보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로 인해 걸리버는 자신을 구할 수 있었다.
걸리버는 어디를 가던 그곳 사람들의 성향을 살피며 그곳에 최대한 빠르게 적응하는 재능이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인간이 가진 최대의 무기가 아닌가 싶다.
걸리버에게 이런 대처 능력이 없었다면 그는 분명 소인국에서 죽어 거인국도, 라퓨타도, 일본도, 후이늠국도 가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디에서든 재빠른 적응력을 보이는 걸리버의 생존력은 이 시대에 우리가 이 책을 읽고 배워야 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글로벌화되어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때에 이 뛰어난 적응력은 상대를 알아가려는 노력만큼 자신의 입지를 다질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 책이 당시의 정치사회와 인간 문명을 통렬하게 비판한다고 했다고 하는데
글쎄.
지금 시각으로 이 정도는 양반급이지 않나 싶다.
스위프트가 살았을 당시보다 지금은 더 복잡해졌지만 정치는 발전하는 사회의 반에 반도 못 따라가 가고 있고
인간의 본성은 그때보다 훨씬 다양하게 더 많은 것을 탐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세상에 많은 걸리버들이 생겨도 스위프트가 생각하던 세상은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뒤집기의 달인이니까.
좋았다 나빠지고, 나쁘다가 조금 더 좋아지는 형식이 되돌이표처럼 되풀이될 뿐이다.
작가들의 이상적 세상은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고
인간의 본성적인 세상은 현존하는 미래다.
고전을 통해서 우리가 아무리 배운다 해도 실천이 안되면 소용없는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