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일기 (리커버 에디션)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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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다시 볼 수 없다니!" 이 말은 영원히 죽지 않는 그 어떤 존재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1977년 10월 25일.

롤랑 바르트의 마망이 돌아가셨다.

22살에 첫아이를 낳고 23살에 전쟁미망인이 되었다.

그리고 여든네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글들은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날부터 적은 짧은 단상들을 모은 책이다.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메모지에 짤막한 생각들을 적어 두었다.

2년간 계속된 메모들은 그의 책상 위에 둔 케이스에 담겼다.

 

롤랑은 어머니 사후 2년 뒤에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자살로 보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짧은 글들엔 상실과 슬픔들이 존재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달 동안 옆에서 간호했던 롤랑의 슬픔들이 곳곳에서 송곳처럼 날카롭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녀를 돌본 지난 6개월 동안에는 정말 그녀가 나의 '모든 것'이었다. 내가 글을 써왔다는 사실을 나는 완전히 잊어버렸었다. 나는 오직 그녀를 위해서만 존재했었다.

 

 

어머니 곁에서 보낸 6개월 동안 점점 쇠락해가는 어머니를 지켜보던 아들의 마음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글을 써왔다는 사실까지 잊을 정도로 그는 어머니에게 헌신했다.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신 세상에서 그가 느끼는 상실감은 누구라서 헤아릴 수 있을까.

 

이제 나는 그녀없이 흘러가게 될 긴 날들의 행렬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롤랑은 어머니에게 심적으로 많이 기대었던 거 같다.

그의 마망은 모든 어머니가 아들에게 그렇듯이 정신적인 지주였을 거라고 생각된다.

단지 임종을 지키는 것과 몇 달에 걸쳐 서서히 꺼져가는 생명을 지켜본 사람의 마음은 다를 것이다.

더 복잡하고 외로운 마음이 깃들어 있는 모습으로 느껴졌다.

 

[역할의 혼란] 수개월 동안 나는 그녀의 어머니 역할을 했다.

내가 잃어버린 사람이 그녀가 아니라 나의 딸이었던 것처럼.(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까? 전에는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너무도 사랑했었고 너무 사랑하고 있는 이들이, 내가 죽고 또 그들보다 오래 살았던 이들마저 죽고 난 뒤에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 거라면,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나는 죽어서도 계속 기억되어야 할 필요가 있고, 내가 살았던 흔적을 세상에 남겨둘 필요가 있을까?

슬프기만한 수 많은 아침들...

 

 

 

긴 글들이었다면 마음을 쏟아내었겠지만 짧게 남긴 단상들은 못다 한 이야기 같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상실의 고통을 느꼈을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어쩜 그 모습은 우리 모두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

 

그리워하는 마음

빈자리에 남겨진 외로움

다시 볼 수 없는 상실감

누구도 다 이해할 수 없는 그만의 감정들.

 

어느 날 불쑥 찾아올 죽음 앞에서

이제 대할 수 없는 마망의 고결함 앞에서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마망의 그 빈자리에서

자라는 슬픔을 본다.

 

하나의 세계가 닫힌 그 너머에서 홀로 견뎌야 했던 외로운 영혼의 글들 앞에서 그저 숙연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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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쇼팽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3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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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쇼팽의 분노,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무고한 이들을 바라보던 쇼팽의 슬픔이 미사키의 연주 속에 깃들어 있었다.

 

읽는 내내 음악이 흐르는 추리소설.

 

음악 이야기인가 추리소설인가.

잔인한 테러의 참상 속에서도 이 책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건 책속에 흐르는 쇼팽의 음악 때문이다.

마치 음악을 눈으로 보는 듯한 유려한 표현들에 매료됐다.

이 작가는 피아노를 전공한걸까?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문장들이다.

쇼팽의 음악을 틀어 놓고 읽을 생각이었지만 오히려 음악이 방해가 될 정도였다.

마치 글로써 쇼팽을 완전히 마스터한 느낌이랄까?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 작가로 명성이 자자한 나카야마 시치리.

그는 클래식과 미스터리를 접목시켜 음악 탐정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내게는 이 시치리를 처음으로 만나게 해준 작품이 바로 <언제까지나 쇼팽>이다.

 

미사키 요스케.

돌발성 난청 장애를 가진 그가 폴란드에서 열리는 쇼팽 콩쿠르에 참가한다.

폴란드는 테러와의 전쟁을 겪고 있는 나라였다.

대통령 전용기가 폭파되고, 도시에서 크고 작은 폭탄 테러로 어수선한 가운데 치러지는 쇼팽 콩쿠르.

콩쿠르가 시작되고 출연자 대기실에서 열 손가락이 모두 잘린 형사의 시체가 발견된다.

범인은 '피아니스트'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걸 아는 형사가 죽었다.

콩쿠르는 이대로 계속될까?

 

폴란드 쇼팽 콩쿠르.

그곳에 참가한 폴란드의 기대주 얀 스테판스는 4대째 내려오는 음악가 집안이다.

스승이 콩쿠르의 심사 위원장이고 아버지가 그를 훈련시키지만 딱히 쇼팽에 대한 본인의 의지를 갖지 못한 얀은 대회에 대한 부담감과 아버지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한다.

하지만 반항하지 못하는 열여덟의 소년은 테러 현장에서 살아남으면서 마음과 태도에 변화를 느낀다.

 

얀의 시선으로 말해지는 이야기에서 미사키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다.

주인공의 활약이 거의 없는 주인공이라니! 다른 추리소설과는 다른 방식의 서술이 독자를 더 매혹시킨다.

 

폭탄이 터지고, 도시는 아수라장이 되어도 쇼팽 콩쿠르는 계속된다.

쇼팽에 대한 연구를 작가가 얼마나 치밀하게 했는지 이 이야기 한 편으로 쇼팽에 대한 인간적인 면과 음악가적인 면모를 마치 다 알아 버린 기분이 든다.

그만큼 쇼팽에 대한 절절함이 이 이야기 안에 담겨 있다.

그건 쇼팽의 이야기이자 폴란드의 이야기며, 얀의 이야기이자, 미사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완고할 정도의 투지.

쓰러지고 또 쓰러져도 끝까지 다시 일어서는 불굴의 영혼.

그것은 폴란드의 국민성과 정확히 겹친다. 그러므로 미사키의 연주에 폴란드 청중들이 동조하는 것이리라.

 

 

쇼팽의 음악을 이야기하느라 추리소설의 본래의 성질에 대해서는 대충 넘어간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주인공 미사키의 활약이 별반 없다가 나중에 짠~ 하고 나타나는 느낌도 있다.

그럼에도 굉장히 서정성 넘치는 추리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주인공의 시선이 아닌 제3자의 시선으로 보는 주인공의 모습은 생소한 만큼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마도 작가는 이 이야기에서 다른 걸 말하고 싶었던 거 같다.

 

음악이 인간의 마음에 끼치는 영향력

부모가 아이에게 끼치는 영향력

나라가 국민에게 끼치는 영향력

테러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

세계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참사가 끼치는 영향력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를 수 있는 건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아니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 같다.

 

그래서 쇼팽 콩쿠르는 테러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고.

테러의 참사를 겪으면서도 얀은 피아노를 멈추지 않았고.

장애의 고통 속에서도 사카키바와 미사키는 자신의 길을 멈추지 않았고.

전쟁의 위기 속에서도 사람의 마음을 믿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를 악을 행하고자 한다.

그러나 늘 그 악을 막으려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언제까지나 쇼팽은

잔인한 이야기를 폭탄처럼 터뜨려 놓고, 그 위에 쇼팽의 피아노를 흩뿌려 놓았다.

그래서 참혹함으로부터 나 자신이 보호되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그 느낌은 이 이야기를 좀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준다.

 

여태까지 내가 경계해왔던 일본 추리소설의 잔혹함과 비정상적인 일탈이 전혀 없는 이야기였다.

잔혹함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잔잔한 위로를 함께 던져주는 이야기꾼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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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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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이란 이런 것이구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인 가가 형사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는 졸업이다.

하나의 과정을 마무리하고 다른 과정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길.

졸업.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까지 함께 한 7명의 친구들은 각자의 진로를 계획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대학 졸업반이다.

도도와 쇼코, 와코와 하나에, 가가와 사토코, 그리고 나미카

세명이 커플을 이루고 나미카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가가가 사토코에게 고백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졸업은 끝맺음과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쇼코의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 친구들은 서로를 향해있던 보이지 않는 벽을 체감한다.

모든 비밀을 서로 공유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서로 보고 싶은 것만 보았고 알고 싶은 것만 알았던 것이다.

고교 3년 대학 4년의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들은 서로에 대해 잘 알았지만 그 잘 알았던 만큼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쇼코의 죽음으로 서로의 돈독함에 균열이 생기지만 그래도 그들은 일상을 이어나간다.

쇼코의 죽음은 자살처럼 보이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고, 그게 내내 걸린 가가는 추리를 하지만 밀실 살인 사건에서 단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사토코 역시 쇼코의 일기장을 중심으로 뭔가 추리를 해보지만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고교 은사인 미나미사와 선생집에서 모여서 설월화 게임을 하며 다도 시간을 갖던 친구들 중에 나미카가 독극물에 희생된다.

나미카의 죽음으로 인해 범인은 그들 중에 있다는 게 밝혀졌다.

하지만 나미카의 죽음도 자살로밖에는 볼 수 없는 정황에서 가가는 추리의 날을 바짝 세운다.

 

 

경찰이냐 교사냐의 기로에서 사토코에게 결혼하자고 말해버림으로써 교사의 길을 선택한 가가는

쇼코와 나미카의 죽음을 자살로 보지 않고 혼자만의 추리를 계속한다.

 

 

경찰인 아버지가 가정에 소홀해서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고 생각하고 있는 가가는 자신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교사의 길을 택한다.

그것이 옳은 길인지 아닌지는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밝혀지겠지만 이 졸업이라는 작품에서 가가의 결심은 확고해 보인다.

추리소설의 맛은 스피드에 있고, 범인과의 머리싸움이 추리소설의 백미이지만 졸업에서는 그런 부분이 별로 나오지 않는다.

다만 잘 알았다고 생각했던 친구의 죽음을 통해 서로의 거리를 확인했을 뿐이다.

 

 

 

사토코는 조금 전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새삼 확인했다.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원인은 바로 이것이다. 자살인가 타살인가. 방금 도도가 말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타살일 경우 자신들 중의 누군가가 범인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우정은 어디까지 일까?

 

 

 

자신들의 앞날을 위해 시합 전 친구의 음료수에 약을 타는 우정.

친구의 약점을 이용해 자신의 복수를 결심을 하는 우정.

자신의 미래를 위해 친구도 죽일 수 있는 우정.

 

 

그들이 쌓아온 신뢰는 어디에서 무너져 내린 걸까?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다시 보이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아직은 어설프고 뭔가 발산하지 못한 매력을 갖추고 있는 가가.

 

 

일본 추리소설의 건조함이 내겐 맞지 않아서 그동안 잘 안 읽었던 이유가 있었다.

게이고의 주 종목인 추리소설이 아닌 나미야 잡화점으로 나는 게이고를 처음 만났다.

그래서인지 가가 형사에 대한 기대가 컸기도 했다.

 

 

게이고 특유의 따뜻한 시선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 건조함으로 툭툭 부러지는 듯한 느낌의 감정으로 읽힌 졸업.

우리와 다른 정서라서 그런지 상당한 이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시작이 가장 가까운 친구의 죽음으로 시작되었듯

가가의 앞날이 그리 평탄치 않을 것이고

사람을 바라보는 가가의 시선도 달라질 거라 생각되니 다음 편이 기다려진다.

 

 

사토코와 가가는 쿨하게 헤어진다.

혹독한 시련을 맞으며 가가는 졸업을 했다.

가까운 친구를 잃고 시작하는 일반인으로서의 가가의 앞날이 어떻게 나아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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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예측, 부의 미래 - 세계 석학 5인이 말하는 기술·자본·문명의 대전환
유발 하라리 외 지음, 신희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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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19년 방송된 NHK 다큐멘터리 <욕망의 자본주의 2019 : 거짓된 개인주의를 넘어서>의 내용을 엮은 책으로 세계 석학 5인 유발 하라리, 스콧 갤러웨이, 찰스 호스킨슨, 장 마르셀 티롤, 마르쿠스 가브리엘을 인터뷰 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질문자가 질문을 하고 그것에 대한 답을 듣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인지 내내 인터뷰를 듣는 느낌이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다.

 

미래에 대한 통찰은 우리의 삶을 좀 더 발전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사회 전반적인 석학들의 미래에 대한 예견은 대부분 실현되고 있는 현상으로 이 책을 읽다 보면 막연하게 생각했던 어떤 현상들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주변인들에게 읽어 보라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미래에 대해

미래를 위해 지금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잡아주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현대 자본주의 앞에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는가

 

 

기술 자체는 나쁘지 않아요. 다만 기술이 너무 큰 힘을 갖게 되어 우리가 그 노예로 봉사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크게는 인간을 위해 기술을 봉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죠.

 

 

요즘 부상하고 있는 키워드인 빅데이터가 자유로운 시장을 없앨 수 있다는 말이 흥미롭다.

우리가 우리도 모르게 제공하는 정보들이 빅데이터 안에서 분류되고 모아져서 우리를 제재하고 통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데이터 역시도 누군가의 소유일 테고, 그 데이터를 소유한 사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엄청난 자원을 가진 것이 된다.

과연 우리는 이것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까?

 

이것이 또 다른 감시자가 되어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제어하는 데 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이 말이 희망적으로 들려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환경들을 잘 터득하고, 그것들이 올바르게 사용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겠다.

 

 

스콧 갤러웨이의 거대 디지털 기업들은 세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구체적으로 구글은 신, 애플은 섹스, 페이스북은 사랑, 아마존은 소비를 향한 욕구에 호소합니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대목이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을 줄여 GAFA 라고 부른다.

이 GAFA가 세상을 쥐락펴락하면서 자본주의 체제에도 변화가 왔다.

갤러웨이는 이 거대 그룹들이 분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거대한 조직을 세분화시켜 독립 시켜야 서로 경쟁하면서 소비자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는 '세계는 우리가 만들어나간다'고 믿습니다.

지금이 바로 개입할 때입니다.

 

 

99퍼센트가 1퍼센트의 하인이 되는 사회가 되지 않으려면 GAFA에 맞설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는 의견에 찬성한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GAFA의 존재가 이렇게 무시무시한 줄 몰랐다.

그들이 세계의 모든 것을 쥐고 흔들고 있음을 정확하게 깨닫고 있지 못했다는 사실 앞에서 갑자기 무서워진다.

우리는 편리를 위해 이들을 사용해왔다.

그 편리함이 우리를 속박하고, 우리를 조종하고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쌓아 놓은 부의 축적이 제대로 배분되지 않아서 오는 한쪽의 빈곤은 누구의 책임일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우리의 책임이다.

 

 

찰스 호스킨슨의 암호화폐는 어떻게 잠들어 있는 부를 깨우는가

 

 

비트코인, 즉 암호화폐의 진짜 대단한 점은 다양한 능력, 아이디어, 지식, 스킬을 지닌 사람들이 시장에서 평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데 있습니다.

내겐 생소한 암호화폐 이야기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이야기 같다.

그건 암호화폐가 실생활에서 거의 범죄에 사용되는 이야기만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호화폐의 장점은 적자생존을 따르기 때문에 가장 경쟁력 있는 것만 살아남는다.

그리고 국가 개입 없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고, 복잡한 절차를 거치는 대신 자금을 암호화폐로 조달하여 글로벌 시장에 들고나가면 비즈니스의 성장 잠재력을 인정한 사람들이 그것을 구입하고, 그 자금이 곧 투자금이 된다는 이 사실이 내겐 참 신선하게 느껴졌다.

투자금을 위해 대출을 받으러 수많은 서류를 준비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저 같은 개발자들은 암호화폐나 블록체인 기술의 존재 의의가 사람들에게 '다른' 선택지를 제공하는 시장의 창출에 있다고 믿습니다.

적자생존이라는 다윈의 법칙으로 시장의 룰을 재창조해야 합니다.

 

장 티롤의 좋은 사회를 만드는 새로운 경제학이란 무엇인가

 

 

 

 

거대 기업들이 독점력을 행사하는 시장에서 정부는 신규 사업자가 진입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이분은 호스킨슨과는 다른 견해를 가지시는 거 같다.

암호화폐가 유해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암호화폐는 범죄나 탈세 등에 악용되어 뉴스에 오르기 때문에 나 역시 암호화폐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부정적인 생각을 먼저 했는데 티롤은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짚어 준다.

 

 

 

시장은 우리 세상과 우리 마음을 보여줄 뿐 그것이 어떤 사회적 관계를 강화 또는 약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시장이 아니라 우리의 지나친 욕망입니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탈진실의 시대에 가치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가

 

 

우리는 기계나 SNS에 의해 제어된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그 배후에 있는 '누군가'에 의해 제어되고 있는 거죠

 

 

이분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우리가 생각 없이 사용하는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그림자들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가 읽고 있는 인터넷 기사들이 소설이나 드라마를 본 것일 수도 있다는 해석이 정말 탁월하다.

 

가짜 뉴스는 약간의 진실을 양념처럼 뿌리기에 진짜 진실은 거짓 속에 스며들어 거짓을 더 맛있게 하는 조미료가 된다.

 

 

 

저널리즘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저널리즘의 힘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려는 자세가 실종된 민주주의는 이미 민주주의로서 기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멀리 가지 않고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저널리즘이 사라진 기레기들의 세상에서 진실과 가짜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양상 해내고 있는 실정이다.

진실보다는 거짓에 선동되고, 진짜보다는 가짜를 더 믿어 버리는 사회.

이런 사회가 지속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철학은 사고방식을 바꿈으로써 현실을 바꿉니다. 특히 우리는 같은 현상을 다른 각도에서 보고 파악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5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미래에 대해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것들이 체계적으로 내게 각인되는 기분이랄까?

 

이런 교양서 재미없고 어렵다고 생각해서 피해왔는데 이 책을 통해 색다른 책 읽는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다가올 미래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대충 알고 있는 것들을 명확하게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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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V 빌런 고태경 - 2020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정대건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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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이 영화 같을 줄 알았는데..... 오케이는 적고 엔지만 많다. 편집해버리고 싶은 순간투성이야.

 

 

2020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 GV 빌런 고태경.

GV 빌런이란

영화 상영 시 관객과의 대화를 말하는 GV(Guest Visit)와 악당(Villain)의 조합어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등장해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조혜나는 원 찬스라는 영화로 감독 소리는 듣지만 망한 영화의 감독이자 인생의 실패자로 스스로를 낙인찍고 살아가는 서른 초반의 영화인이다.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를 위해 살지만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인생에서 알바로 전전하며 살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GV 빌런 고태경과의 만남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혜나가 좋아하는 영화의 조감독 출신이었던 고태경은 사시사철 베레모를 쓰고 영화를 보는 중년의 남성이 되었다.

그런 그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하면서 혜나의 멈췄던 시간은 다시 흐른다.

 

 

 

나는 고태경과 나를 동일시하는 동시에 고태경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다.

 

 

고태경처럼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극장을 전전하며 GV 빌런은 되고 싶지 않은 그였지만 그와 자신의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언뜻 실패한 인물처럼 보이는 고태경.

언제나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고태경.

언젠간 극장에서 자신의 영화를 상영한다는 꿈을 가진 고태경

그러나 현실에선 택시 운전과 노인회관에서 영상 편집을 강의하는 쉰 살이 넘은 고태경이었다.

 

 

 

서른의 나이에서 혜나가 바라보는 미래의 오십 대 고태경은 자신과 닮았지만 그렇게는 되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이었다.

 

완성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모든 완성된 영화는 기적이야.

 

 

완성작 한 편 가지고 있지 않은 고태경의 말은 망했더라도 완성작을 가진 혜나에게는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무언가 완성작 하나를 가지고 있는 인생.

그건 여태 생각해보지 못한 자기 자신이었다.

 

 

이야기 곳곳에서 나를 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다.

내 인생도 엔지와 편집해버리고 싶은 순간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렸다.

이 구차스러운 인생들의 이야기가 과연 아름다운 영화처럼 해피엔딩이 될까?

내가 궁금한 건 그것이었다.

 

 

 

해피엔딩 보다 더한 해피엔딩

 

자기가 좋아한 것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았다. 우리가 추구하던 꿈과 기대하던 삶이 전부 무너진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 같은 거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선배들도 선생들도 부모님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승호처럼 현실을 살며 꿈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윤미처럼 자신의 꿈을 깎아내리고, 미워하고, 비판하면서 헐뜯는 삶을 살 수도 있고

혜나처럼 맨땅에 헤딩하면서 계속 부딪히고 나아가는 삶도 있고

태경처럼 계속 꿈을 꾸며 언젠가는! 이라는 환상을 유지하는 삶을 살 수도 있다.

 

 

이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지점에서 혜나의 몇 꼭지 성장한 모습을 뿌듯하게 지켜보게 된다.

계속 꿈을 꾸고 희망을 가진 태경에게서 행복을 본다.

 

 

 

난 나름대로 나쁘지 않게 살고 있었다고. 그런데 자네가 내 인생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나서부터 몹시 불편해졌어. 자네가 나를 패배자라는 렌즈로 보니까.

 

 

 

나 역시 혜나의 시선으로만 고태경을 보았다.

어쩜 우리 모두 패배자라는 렌즈로 주변을 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행복이라는 렌즈로 보는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내게 GV 빌런 고태경은 패배자의 렌즈로 바라보던 시선을 행복의 렌즈로 갈아끼워주는 역할을 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흔들림 없이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인생을 꾸리는 바탕이 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뭔가 답답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이 이야기가 불편하지 않게 읽힌 이유는 방황했던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덤덤하게 지키고, 서로를 이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법을 서로에게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실패가 나의 일부라는 것을 명확하게 안다. 인생이 '원 찬스'가 아니고 내가 다 날려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이다. 기회를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와 연출 노트를 열심히 쓰면서. 기회가 왔을 때, '나는 준비가 아직 안 된 것 같아' 라고 말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동안 실패를 인정해 주지 않는 사회에서 살았다.

이제부터는 그 실패를 인정해 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실패 없는 성공은 없는데도 우리는 성공만을 이야기했다.

이 소설은 실패가 나의 일부라는 것을 인지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읽고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세상을 보는 관점을 조금 달라지게 만들어 주는 소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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