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 대하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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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과거의 메어리이자 반복이다. 슬픔도 없다. 순전히 죽음을 앞둔 아주 작고 마른 고양이 때문에 엄청난 괴로움, 외로움, 배신감 속에서 몇 날 며칠 눈물을 흘리던 오래전 기억과는 조금 다른 경험 앞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도리스 레싱의 고양이에 대하여는 1967년, 1989년, 2000년에 발표한 에세이를 하나로 묶은 것이다.

19호실로 가다로 많이 알려진 도리스 레싱이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들을 관찰하고 쓴 에세이다.

[특히 고양이는]

 

어린 시절 아프리카에서 살던 시절에 온 집안을 점령했던 고양이들을 처리했던 이야기들이 인상적이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

하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고양이들을 감당하기 어려워 그들에게 총을 겨누었던 어머니.

동물을 죽이는 일이 집안일을 맡았던 어머니에게 주어지고, 어머니는 결국 어느 주말 자신의 짐을 남편에게 맡기로 집을 비운다.

고양이들을 방에 가두고 그곳에서 들리는 총소리가 집안을 가득 메우던 풍경.

그런 야생의 땅에서 문명의 도시로 돌아온 그에게 도시의 고양이들은 색다름이었다.

 

누군가 키우다 버린 고양이

주인 없이 도시를 배회하는 고양이

자연 속에서 제멋대로 야생을 탐하던 고양이들만 보다 도시 속에서 사람에게 길들여진 고양이들은 왠지 서글픔을 주었다.

인간의 편의에 의해 거세당한 고양이들.

그러고 싶지 않지만 도시에서 고양이를 키우려면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

 

세심한 관찰력으로 고양이들의 행동을 지켜보며 그것을 글로 써 내려간 레싱의 글들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고양이에 대한 경이로움을 주기 충분하다.

레싱의 글로 남겨진 고양이들은 도도하고 우아하며 말끔하고 영리하다.

유일하게 인간을 집사로 만들어 버리는 동물. 고양이.

 

나는 원래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서워한다.

앙칼진 울음과 사악미가 느껴지는 모습 때문에 나는 그냥 냥이가 무섭다.

레싱의 글에서 냥이는 다 생각이 있다.

쳐다보는 눈빛, 가르랑 거리는 소리, 스치는 몸짓에서도 다 자신만의 의사 표시가 있다.

레싱의 고양이들을 본 적 없지만 그 고양이들의 모습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 같이 움직인다.

 

이런 것이구나. 레싱을 읽는다는 건.

 

[살아남은 자 루퍼스]

 

길고양이었는지, 버림받은 고양이었는지 분명치 않았던 루퍼스.

아프고 노쇠한 몸으로 레싱의 집을 찾아와 갈증을 채웠던 루퍼스가 결국 레싱의 부엌 의자 하나를 차지하고

레싱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끝없이 다른 고양이들과 대치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모든 일이 진행된 곳은 부엌, 그중에서도 주로 녀석의 의자 위였다. 녀석은 그 의자를 떠나는 것을 무서워했다. 작지만 녀석만의 장소. 녀석이 매달릴 수 있는 삶의 발판.

 

 

 

 

 

지능적인 루퍼스의 행동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언제든 쫓겨 날 수 있는 상태에서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는 근성이 루퍼스라는 고양이를 굉장히 매력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녀석이 왜 이러는 걸까? 계획을 세우고 계산적인 행동을 하는 법을 어떻게 터득했을까? 어떻게 해서 이처럼 생각하는 고양이가 되었을까?




루퍼스는 떠돌이 고양이었다가 레싱의 집으로 들어온 지 몇 주 만에 응접실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한 고양이가 된다.

원래 있던 부치킨과 찰스를 제치고.

고양이 세계에서의 묘한 알력을 보는 재미가 있다.

그래서인지 이 루퍼스에게 나는 자꾸 마음이 갔다.

생존법을 터득한 이 녀석이 불쌍하고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하다.

 

[엘 마니피코의 노년]

 

부치킨의 또 다른 이름이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던 부치킨은 어깨뼈에 암에 걸려서 앞다리 전체를 제거해야 했다.

세발의 부치킨.

이 녀석의 고통을 견뎌내는 의연한 자태를 보며 고양이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포기하지 않는 의지.

자신의 남은 다리로 의연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다.

 


녀석은 얌전했다. 그런데 어느 날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밖을 내다보니, 녀석이 세 다리로 균형을 잡고 고개를 들어올린 채 생전 들어 보지 못한 소리로 울부짖고 있었다. 일부러 연극하듯 지르는 소리가 아니라,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가슴에서 우러나온 소리였다.



다리를 잃고 대변을 보고 나서 흔적을 지우려고 애쓰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원래 어깨가 있던 자리의 근육들이 움직이고 있지만 그 자리는 텅 비어 있다.

자신의 뒤처리를 스스로 하지 못하게 된 고양이의 당황한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고양이에 대하여.

나는 고양이를 무서워하고 길러 본적도 없지만 이웃집에서 잠시 빌려왔던 고양이와 아무런 경고 없이 집에서 마주쳤던 순간의 오싹함이 아직도 남아있다.

검은 고양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부엌 한켠의 창고.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고양이와 마주치고 기겁을 하게 놀라서 소리를 지르던 그때의 기억이 내게 있는 고양이의 기억이다.

 

내 기억은 공포로 얼룩졌지만

그 기억에 대한 위안을 이 책을 읽으며 받았다.

나만큼 그 검은 고양이도 놀랐을 것이라고 레싱이 내게 말해주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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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알고 있다 다카노 시리즈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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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는 무엇을 손에 넣었을까? 문득 야나기도 이곳 홍콩에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도시를, 아니 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야나기의 모습이 보였다.

 

 

<숲은 알고 있다>는 요시다 슈이치의 다카노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다.

두 번째 이야기이지만 다카노의 과거로 돌아가기 때문에 사실상 첫 번째 이야기라 해도 무관하다.

외딴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다카노와 야나기.

야나기에게는 지적 장애가 있는 동생 간타가 있다.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이 두 소년에겐 은밀한 비밀이 있다.

바로 그들이 산업 스파이라는 것이다. AN 통신에 속해 있는 이들은 어릴 때부터 그들 손에 길러져 스파이로 자란다.

18살이 됨과 동시에 임무를 부여받고 본격적인 스파이가 된다.

서른다섯까지 살아남는다면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다카노의 과거는 끔찍했다.

그 끔찍함을 잊고 새롭게 시작한 인생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언제나 감시의 눈과 언제나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조직의 조직원들에게 희망찬 앞날 같은 것은 사치다.

다카노에게도 한줄기 빛 같은 풋사랑이 찾아오지만 그것조차도 사랑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다카노의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그런 다카노에게 야나기와 간토는 형제와 다름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야나기는 다카노에게 자신은 탈출할 거라 말하며 자신이 없어지면 동생을 지켜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말도 없이 야나기는 섬에서 자취를 감춘다.

18살이 되면 본격적으로 조직을 위해 일해야 하는 그들의 가슴에 조직은 폭탄을 심는다.

24시간 안에 연락이 닿지 않으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세계적인 물 메이저 기업인 'V.O. 에퀴'와 일본의 '니치오 파워'가 손을 잡으려 한다. 그럴 경우, 어떤 그림이 떠오르나?

 

 

수도사업을 민영화시켜서 이득을 보려는 기업들이 수원이 자리하고 있는 곳의 땅을 사들인다.

그것을 염탐하고 정보를 취합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거는 곳에다 판다.

이런 작업을 하는 자들이 모인 곳이 바로 AN 통신 조직이다.

조직에 쓸모 있는 자들은 아낌없이 써먹고, 쓸모없는 자들은 가차 없이 쳐내는.

겉으로는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의 보호자를 자처하지만 그 아이들을 위한 것은 애초에 없었다.

오직 그들을 이용하려는 자들만 모여 있는 곳이었다.

결국 야나기의 배신은 혼자 이룬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야나기를 꼬셔서 조직을 배신하게 한 것이었다.

다나카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될까?

잔잔한 섬 풍경 사이로 약간의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일들은 미끼에 지나지 않았다.

마지막에 가서 펼쳐지는 이 이야기의 재미는 배신과 함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쿄, 방콕, 홍콩, 서, 중국으로 이어지는 배경이 이 작품의 스케일을 짐작케 한다.

다카노에게 사랑은 사치인 걸까?

아니면 조직에 노출시키지 않기 위한 그의 전략인 걸까?

내가 네 앞에 있었던 걸, 내가 이 섬에 있었던 걸..... 전부 기억해줘. 시오리가 기억해주면 좋겠어.

 

 

아무도 믿을 수 없다.

조직의 그 누구도.

철저하게 혼자여야 하는 다카노에겐 그를 진정 아끼는 사람들이 있다.

잠시 자신을 맡아 주었던 사람들.

그들의 마음을 알게 되는 날이 올까?

 

그러나 자기 자신 이외의 인간은 누구도 믿지 말라는 말에는 아직 도망갈 길이 남아 있다.

오직 한 사람, 자기 자신만은 믿어도 된다는 뜻이다.

 

 

다카노의 앞날에 어떤 일들이 있을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배신과 음모가 내내 따라다닐 거라는 건 알 수 있다.

그가 그 모진 생존의 그물 속에서도 삶의 의지로 찾아낼 수 있는 안테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가 살아남아 조직을 떠날 수 있을 때까지 그를 지켜줄 수 있는 신호를 보내는 안테나.

그들이 공항에서 만난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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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호흡의 필요
오사다 히로시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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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느 날 갑자기 어른이 된 게 아니었다. 문득 정신이 들어 보니, 이미 어른이 되어 있었다.

'되었다'가 아니라 '되어 있었다'.

 

 

문장을 따라가다 나도 어른이 된 순간을 짚어 본다.

어느 날 문득 나도 모른 사이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때 일지도 몰라.

하나에서 아홉 개의 글을 읽어가며 나는 더디게 어른이 되어갔다.

어딘지 모를 순간

어떤 때인지 모를 시간

어느 곳인지 알 수 없던 공간에서 나도 그처럼 어른임을 느꼈다.

 

 

일상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들이 담담하게 그려진 풍경 속에서 잠시 마음을 산책했다.

작가의 기억 속을 걷다 온 기분이 한가롭다.

 

 

 

너라는 한 사람밖에 될 수 없었다. 그걸 알았을 때, 바로 그때였다.

 

 

어른의 모습으로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는 어린 나를 본다.

한 번도 되돌아보지 못했던 내가 이 글 안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문장을 바라보며 어느 순간 깨닫지도 못하고 어른이 되어 버린 서툰 나를 다독거린다.

 

 

 

한 명의 아이가 아니라, 한 명의 어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순간.

나조차도 모르고 지나쳤던 그 순간을 이제야 이해받고, 이제야 위로받는다.

 

심호흡의 필요.

삶의 매 순간마다 필요했을 이 숨조차 남 들을세라 조용히 품어왔을 수많은 이들에게

가만히 그렇게 어른이 되었노라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그랬던 거라고. 가만가만 읊조려 주는 목소리 때문에 나보다 지혜로운 어른에게 위로받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큰 나무 밑에 무엇이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지만, 나무 크기만큼의 침묵이 있다.

 

 

오사다 히로시는 일상의 단어들을 가져다 문장을 만들었다.

지극히 당연한 줄로 알았던 것들을 마치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벅찬 순간이었다.

처음 만나는 작가의 글은 가끔 나를 흔들 때가 있다.

평범한 문장들인데 그것들이 모여 마음을 흔든다.

 

공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던, 아무것도 없던 공터에는, 다른 어디에도 없던 것이 있었다. 너의 자유가.

 

 

 

언젠가 느꼈을 나의 느낌은 흩어져 공기 속으로 사라졌지만

오사다 히로시는 그 느낌을 담아 문장을 만들었다.

그래서 그의 글들을 읽다 보면 어딘가에서 홀로 서성이고 있던 잃어버린 나를 만나는 느낌이 든다.

 

내가 잊고 있었던 나.

어딘가에 흘려 버리고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나와 산책을 다녀온 지금

곁에 두고 마음이 산란해질 때 꺼내 볼 책이 하나 늘었음이 고맙다.

 

 

일본 작가에 대한 나만의 편견을 가차 없이 녹여내는 시와서의 책들은

그렇게 내게 특별해지고 있는 중이다...

 

 

나를 찾는 시간이 필요하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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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안 나이트 - 천일야화 현대지성 클래식 8
작자 미상 지음, 르네 불 그림,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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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에 사는 네 가지 색깔의 물고기들은 서로 다른 종교를 거진, 이 도시에 살던 네 종류의 사람들이랍니다. 흰색은 이슬람교도들이고, 빨간색은 불을 숭배하는 페르시아인, 파란색은 기독교인, 그리고 노란색은 유대인들이지요.

 

 

 

아라비안 나이트.

천일야화라고도 불린다.

왕비의 배신으로 여자들을 믿지 못하게 된 왕은 매일 결혼하고 첫날밤을 치르고 나면 다음날 신부를 죽인다.

백성들은 두려워하고 매일 왕과 하룻밤을 지낸 여자들을 죽이던 재상도 마음이 편치 않을 그때

재상의 딸인 셰에라자드가 스스로 왕과 결혼하기를 자처한다.

재상은 극구 말리지만 딸의 결심을 바꾸지 못하고 슬퍼하며 셰에라자드를 왕에게 시집을 보낸다.

셰에라자드는 꾀를 써서 동생에게 자기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만나러 와서 재밌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청을 넣으라 귀띔한다.

왕과 하룻밤을 보낸 다음날 일찍 동생이 찾아와 마지막으로 재밌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청하고 왕은 셰에라자드가 동생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허락한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천일야화다.

1000일 동안 죽지 않기 위해 이야기를 해야 했던 셰에라자드의 본 마음은 어땠을까?

왕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이야기를 훨씬 재밌게 만들려 고심했을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이 이야기에는 배신과 나눔과 베풂, 모험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 26편을 엄선해 담은 현대지성 클래식엔 멋진 삽화가 담겨 있어 보는 눈을 즐겁게 한다.

르네 볼의 이국적 삽화들이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나의 부는 노력 없이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신밧드는 7번의 여행에서 모두 죽을뻔하지만 살아 돌아온다.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 돌아온 신밧드는 자신의 재산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덕을 베푼다.

그가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막대한 부를 벌어오는 이유도 어쩜 그것에 있지 않을까?

혼자 독식하지 않고 어려운 이들을 도움으로써 자신이 가진 것을 더 값있게 쓴 결과로 무서운 여행지에서 죽지 않고 살아올 수 있는 것이고, 부자가 되는 발판을 마련했던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알라딘은 디즈니가 아주 잘 각색해 놓은 이야기만 보다가 날것의 이야기를 읽어 보니 색다른 느낌이다.

알라딘의 배경이 나는 여태 중동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선 중국으로 나온다.

알라딘이 중국에 살았다니~ 정말 뜻밖의 정보다!

옛 페르시아에선 중국이 신비롭고 먼 나라였나 보다.

우리가 옛 페르시아를 생각하듯이.

그래서 그런지 중국 배경의 알라딘이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그로 인해 읽는 즐거움이 더해졌다.

이 아라비안 나이트에 담긴 모든 이야기에는 남의 것을 탐내지 말고, 신의를 어기지 말고, 가진 것을 나누고 사랑을 지키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어쩌면 셰에라자드가 왕에게 예전의 마음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던 게 아닐까?

늘 누군가의 마음을 혼탁하게 만들어 처음에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혹독한 죽음으로 그 죗값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왕으로 하여금 자신을 속인 왕비를 용서하고 본심으로 돌아오라는 셰에라자드의 마음이 담겼을 거 같다.

그녀가 스스로 나서서 왕비가 되고자 한 이유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유 없이 매일 사라져가는 여자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함이 가장 컸으므로.

그냥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해왔던 이야기들을 어른이 되어 다시 읽어 보니 어릴 땐 보이지 않았던 이야기 속 내용에 담긴 메시지를 해석하는 능력이 생긴 거 같다.

이 책에 담긴 어떤 이야기도 결국 노력 없이 그냥 얻는 것들은 없다.

특히 가진 것을 흥청망청 노느라 다 써버리고 그때까지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로부터 박대 당하는 아부 하산의 이야기는 남 얘기 같지 않아서 더 기억에 남는다.

그럼에도 아부는 사람 만나기를 꺼리지 않는다.

대신 매일 곧 떠날 사람들을 집에 초청해서 저녁을 대접하고 그들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미행을 나온 왕을 접대하게 되고 왕은 아부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아부를 하루 동안 왕으로 만들어 놓는다.

하루 동안 신나게 왕 노릇을 하던 아부는 그것을 잊지 못하고 자신이 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정신병원까지 가게 된다.

선의에 의해 베푼 친절도 어쩜 독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왕의 잘못은 아부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이다.

하룻밤의 꿈같은 이야기는 결국 아부를 미친 사람으로 만들었으니까.

누군가에게 베푼 선의가 온전한 선의가 아니게 되는 그 상황은 누구의 잘못일까?

다른 나라 동화나 이야기들과는 조금 색다른 이 아라비안 나이트엔 굉장히 현실적인 의미들이 많이 들어있다.

온갖 마법과 우연과 황당한 이야기들이 가득하지만 그 속에서 아련하게 빛나는 현실적 의미들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진정한 읽기라고 말할 수 없을 거 같다.

두터운 완역본이 부담스러운 분들에게 이 아라비안 나이트를 추천합니다.

화려한 삽화가 눈을 더 즐겁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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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 특별 합본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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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은 거기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화도 그 의미를 읽으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뜻에서 신화는 미궁과 같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내게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어릴 때부터 계속해서 읽어가고 있는 이 그리스 로마 신화들은 거의가 번역본이었다.

남의 나라 사람의 생각을 주워 담은 신화 이야기는 다른 듯 같고, 같은 듯 달랐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좋은 이유는 내 나라말로 신화를 써 내려갔기 때문이다.

찰떡같은 비유와 동서양을 아우르는 해석은 여느 책에서는 볼 수 없는 읽을거리였다.

 

 

5권의 책 합본으로 이루어진 이 특별판의 두께는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벽돌 책이다.

그 안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얽힌 그림이나 조각상들의 사진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윤기 선생님이 직접 다녀온 유적지의 사진과 그곳에서의 경험담이 담겨 있다.

 

 

 

 

 

 

들어가는 말과 나오는 말에서 다루어지는 전체적인 책의 느낌들이 책을 읽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등장인물이 많을 뿐더러 아주 많은 이야기들이 가지를 뻗고 있지만 우리가 아는 이야기들은 거의 비슷하다.

유명하거나, 자주 다루는 신화들만 다루다 보니 깊이 없는 겉핥기 식의 이야기들이 많았다.

이 책엔 이야기의 유래가 담겼고, 각 인물들과의 관계도 잘 설명되어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하면 중복되는 이야기들이 있는 점이다.

그것 역시나 앞뒤 이야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만 합본인 관계로 중복 느낌이 많이 들었다.

 

 

이 이야기를 비교적 쉽게 느낀 이유는 우리말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해박한 지식과 방대한 이야기의 맥을 간추려서 우리 작가가 우리글로 적어 내려간 이 책의 묘미라면 오래전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지탱하고 있던 신화가 결국은 우리에게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연결해 놓은 사실이다.

이것이야말로 이윤기 선생님의 해박한 지식이 없었다면 그 근거를 대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 이해의 열쇠가 신화라면 신화 이해의 열쇠는 무엇일까? 상상력이다. 상상력의 빗장을 풀지 않으면 그 문은 열리지 않는다.

신화라는 이름의 꽃은 장엄하면서도 무시무시하다. 신화가 고대 비극 작가들의 영감을 끊임없이 자극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닫힌 상상력으로는 신화를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지 못하면 영감을 받을 수 없다.

21세기에도 그리스 로마 신화는 우리에게 인기가 많은 이야기다.

그건 신이라는 존재가 무한한 능력을 가진 존재이지만 인간과 다름이 별로 없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지전능한 신들이 하는 짓거리가 모두 인간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음은 인간사에 많은 위로가 된다.

신임에도 당해야 했던 고통들은 많은 인간들에게 영감을 준다.

 

 

최근에 유명세를 치른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원작인 닥터 포스터가 메데이아와 이아손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메데이아와 이아손의 이야기는 이 합본의 제5권에 자세하게 나온다.

자신의 조국을 배신하고 동생까지 죽이며 이아손을 택했지만 결국 그에게 버림받은 메데이아는 자신과 이아손 사이에 낳은 아이 둘을 죽이고, 이아손이 결혼한 코린토스의 공주까지 죽이고 도망친다.

 

제우스는 결혼을 관장하는 여신 헤라의 남편이지만 늘 끊임없이, 물불 안 가리고 바람을 피운다.

그리고 매번 걸린다.

헤라는 남편을 벌주지 못하고 제우스의 희생양들에게 벌을 내린다.

여신이 헤라가 이럴진대 인간 여자라고 다를까.

 

 

복잡하고, 끝이 없는 이야기 그리스 로마 신화.

더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가셨으면 좋았겠지만 우리에겐 5권이 이윤기 선생님이 남겨주신 이야기의 전부다.

좀 더 일찍 이 이야기가 진행되었더라면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들을 읽는 즐거움을 누렸을 텐데..

그분의 못다 한 이야기가 어딘가에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을 그 누군가에게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아쉬움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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