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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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마음에 들지 않았느냐고 다시 물어봤는데, 딱히 이유는 없다는 거예요.

아무튼 마음에 안 든다, 아무튼 마음에 안 든다, 그 말만 자꾸 하더군요.



가가 형사 시리즈 3번째 이야기는 악의다.

두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번갈아 이어지면서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이야기가 뒤집어지는 묘미를 이 한 권에서 만끽했다.

게이고의 솜씨를 이제야 제대로 '맛' 본 기분이다.

노노구치의 수기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단순해 보인다.

히다카라는 유명 작가의 친구 노노구치는 히다카 덕분에 동화책을 낸 작가이다.

히다카가 캐나다로 떠나기 전 잠시 만나러 온 노노구치는 히다카의 냉혈한 모습을 본다.

자신의 마당을 어지럽히는 옆집 고양이에게 농약 경단을 먹여서 죽였다는 히다카의 말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각인시킨다.

그리고 그날 저녁 히다카는 시체로 발견된다.

노노구치와 가가는 예전 중학교에서 같이 교편을 잡았었다.

히다카의 살인 사건을 담당한 가가는 그곳에서 노노구치를 만난다.

언제나 사소한 것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가가답게 이 이야기에서도 남다른 트릭으로 모두를 속아 넘긴 범인의 수법에 유일하게 속지 않는다.

유명한 작가의 뒤에 고스트라이터가 있다.

친구의 아내와 불륜의 상대가 되어 친구를 죽이려고 한다.

그러다 도리어 친구에게 발목 잡혀서 그의 영원한 그림자가 된다.

노노구치가 그랬다.

히가타의 악랄함이 그를 그의 그림자로 만들었다.

순간적인 살의에 의해 히가타를 죽이게 된 노노구치는 시한부 인생이다.

위암이 재발해서 생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다. 그런 노노구치를 히가타는 놓아주지 않았다.

게다가 노노구치는 사랑하는 여자가 그 일로 자살을 했다고 생각했다.

노노구치는 자기 자신도 사랑하는 사람도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살인은 벌어졌다.

근데.

정말 그게 다일까?


당신이 최대한의 집념을 기울여 만들어낸 프로그램은 히다카씨가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철저히 파괴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살인 또한 그 프로그램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노노구치 씨~ 그 솜씨로 스릴러를 한 편 써보지 그러셨어요? 그랬다면 대박 장르 작가가 되었을 텐데.

기록이란 살아남은 자의 것이라고 했던가!

노노구치의 기록은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한다.

게이GO에게 농락당하는 느낌이 썩 괜찮다.

이것은 반전이라는 말이 아까울 정도의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를 이렇게 슴덩슴덩하게 써 내려가는 게이고의 필력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어디에나 있다는 학교폭력.

그것은 그 시절에 끝나는 과거가 아니다.

언제나 현재에서 불쑥불쑥 내가 가장 정점을 찍을 때 나타나서 나를 나락으로 끌고 간다.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지 말라 했다.

그토록 겪어 본 사람이.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사람이.

결국 자신의 과거 때문에 가장 소중했을 사람에게 더 없는 해를 입혔다.

"악의" 라는 단어가 이 책을 읽고 나면 다르게 느껴진다.

악의란 결국 스스로의 이기심이 자아낸 자기방어가 아닐까?

나쁜 마음은 스멀스멀 자라난다.

스스로 마음먹기도 전에 마음에 뿌리를 박아 버린다.

이 이야기의 끝 가가의 말에서 나는 악의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게 됐다.

악의란

삐뚤어진 가치관이 심어 놓는 자기방어다.

스스로는 절대 자신의 잘못을 알 수 없다.

누구도 그 잘못을 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없다.

자기방어란 그런 것이니까..

가가도 결국 그 악의를 헤아리지 못했다.

그것은 평생 그의 가슴에서 녹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가가가 인간적인 형사로 남을 수 있는 지렛대가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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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마음
이두온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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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관광의 묘미는 그런 것이니까.

 

비말.

이곳엔 평원이 있다.

그리고 그 평원엔 비밀이 숨겨져 있다.

어느 해 태풍이 몰아치는 날 그 평원의 비밀이 파헤쳐졌다.

 

마을을 떠난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마을 어귀도 벗어나지 못했다.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그들은 그것을 돈벌이로 받아들였다.

 

썰물처럼 호시절이 빠져나가고, 쇠락해가는 마을에 먹고살 만한 일이란

그곳에서 벌어졌던 살인의 추억을 매해 곱씹는 것이었다.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은 비말의 살인 축제를 즐겼다.

살인자의 행적을 쫓고, 용의자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매해 범인에 대한 단서를 추정하여 범인일 거 같은 사람을 잡는 놀이.

살인이 놀이가 된 마을. 비말.

 

밴나, 오기, 나조, 노박, 위도, 사불, 야기, 이비

등장인물들의 이름까지도 싱숭생숭한 이 이야기는 읽기 시작하면 끝을 볼 때까지 내려놓기 힘들다.

다음 장에서 어떤 이야기가 벌어질지 알 수 없어서.

 

미치지 않았다고 난 아이큐가 138이라고 외치는 밴나는 나조씨의 살인범을 찾기 위해 마을을 들쑤시고

살인범을 팔아서 매해 축제를 벌여 지역을 살려 보려는 마을 사람들은 그런 밴나를 못마땅해한다.

살인범이 잡히기보다는 살인범이 활개치고 다녀야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으니까.

 

자식의 죽음을 파는 그의 어머니가 있었고, 살인마의 범죄를 파는 마을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것으로 먹고 자란 온 우리들이 있었다.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그려지는 이야기 때문에 영화 속 화면을 나 홀로 걷고 있는 느낌이다.

밴나를 따라가다 위도를 만나고, 위도를 따라가다 밴나를 만난다.

밴나의 환상과 위도의 환상은 닮았지만 닮지 않았다.

 

마을은 살인보다 더 추악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고, 어린아이의 기억을 묻어 두기 위해서 아이는 정신 병원에 보내졌다.

살인 사건의 단 하나의 목격자는 그렇게 미친년이 되어 무엇을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게 되어 버렸다.

작은 마을일수록 통제하는 누군가가 있다.

한마을의 명줄을 한 손에 쥐락펴락하는.

 

그들은 다 알고 있었지만 눈 감았다.

그리고 원 없이 이용했다. 이용당하고 있는 줄도 모르게끔.

살인자 보다 더 무서운 말짱한 사람들의 마을 비말.

 

그곳에서 제정신인 사람들은 목숨을 잃었고, 눈 감은 사람들은 명맥을 이어갔고, 동조한 사람들은 마을의 유지가 되었다.

살인마가 오히려 더 불쌍하게 느껴지는 비말의 민낯.

 

이런 마을이 없다고 장담하지 못하겠다.

대도시 보다 더 살벌한 것이 바로 비말 같은 작은 마을이니까.

서로가 서로의 알리바이가 되어 철벽처럼 굳건한 곳.

 

그 굳건함을 깨려는 사람들은 더 이상 살아있을 수 없다.

그게 그들의 룰이니까.

 

평원에 울려 퍼지는 단말마의 비명보다 더 악랄한 사람들.

그들 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은 살인의 추억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세상은 점점 더 비열해지고, 비말은 그 모든 것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한국에도 이런 스릴과 환상을 섞은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가 있다는 걸 알았다.

이제 온전한 언어로 환상과 스릴과 미스터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두온.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이름 석 자를 기억하자.

이제 겨우 가제본을 읽었을 뿐인데 벌써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살인의 추억 X 이끼 = 타오르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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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나라 - 짐 로저스의 어떤 예견
짐 로저스 지음, 전경아.오노 가즈모토 옮김 / 살림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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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흐름으로 세상의 변화를 읽고 앞을 내다보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게 떠오르는 법이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생각는 것, 이것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한 힘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짐 로저스는 '투자의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세계 3대 투자가이다.

예일대에서 역사를 옥스퍼드에게 철학, 정치, 경제학을 공부한 로저스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다르다.

그의 남다른 통찰력은 그가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서 직접 건져올린 것들이다.

누구보다 빠르게 성공했고, 그만큼 빠르게 실패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다.

이 책에 담긴 앞으로의 전망과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다고 해서 얼마만큼 내 실생활에 써먹을 수 있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투자가도 아니고 주식을 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어 두는 이유는 세상 돌아가는 방식을 알기 위해서다.

* 한반도는 '세상에서 가장 자극적인 나라'가 될 것이다.

그는 한국의 저출산율로 인한 인구 감소와 고령인구의 증가로 인한 사회적 비용 등이 앞으로의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테지만, 만약 북한과 통일을 이룬다면 그 문제들이 해결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된 한반도는 매력적인 투자처가 될 것이다. 다만 주변국의 변수를 염두에 두어야 하겠지만.

북한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하는데 한국 내에서는 그러한 변화를 감지하기가 어렵다.

그는 북한이 중국처럼 개방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지금 상황을 봐서는 그렇지 않을 거 같다.

통일 한국이 이 세계적인 투자가에게는 매력적인 곳인가 보다. 통일이 된다면 말이지만.

* 큰 가능성을 간직한 일본

일본을 좋아하는 로저스지만 일본에 대한 평가가 좋지만은 않다.

일본이 계속 폐쇄적인 정책을 편다면 일본은 오래지 않아 사라질 거라 단호하게 말한다.

지금 아베가 하는 짓을 보면 틀린 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폐쇄적인 나라는 발전하지 못한다는 로저스의 말에 동감한다.

* 중국, 세계의 패권국에 가장 근접한 나라

미국이 점점 힘을 잃어가고 그다음 세계 경제를 이끌어 갈 주역으로 중국을 꼽았다.

값싼 노동력과 자본으로 전 세계 부동산 값을 올리고, 전 세계로 해외여행을 보내서 중국인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중국에 대한 전망은 속이 쓰리다.

하지만 중국도 점점 채무가 늘어나고,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기 시작하게 되면 그 끝은 어떻게 될까?

중국과 대만이 통일될 거라는 전망도 내놨는데 과연? 그럴까 싶다.

통일보다는 무력 흡수시키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지금 홍콩에 하는 짓을 보면 그다음이 대만이라고 말해도 될성싶기 때문이다.

역사도 지들 맘대로 고쳐대고, 모두가 중국 거라고 우겨대는 그들의 행태를 보면 중국이 아시아의 강자인 건 맞지만 그만큼 우려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인구수도 많고, 전 세계로 자국민들을 보내서 정착하게 만드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 중국의 행동를 보자면 언젠가 전 세계의 인구 절반 이상이 중국인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 미국과 대등한 관계에서 힘겨루기를 할 수 있는 상대는 중국뿐이다.

트럼프가 큰소리치고 있지만 결국 자기들 손해.

* 아시아를 둘러싼 대국들

러시아에 대한 로저스의 해석은 신선하다.

러시아의 농업이 발달하고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미국의 깽판이 불러온 나비효과가 아닌가!

인도는 주목해야 하는 나라다. 언제든.


무역전쟁이 절대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거기에 있다. 즉, 소수 노동자를 보호하려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을 고통에 빠뜨리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러한 경위를 모른다.



* 투자의 원칙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든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부 최종적으로 여러분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



이 말은 새겨야 할 거 같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야 하는 이유가 저 말에 있기 때문이다.

성공엔 기다림과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눈을 키우는 것이 필수요소다.

남들 얘기를 듣고 투자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발품을 팔아서 정보를 직접 얻는 것이 가장 좋다.

이건 진리다.

앉아서 편하게 돈 벌려고 하는건 앉아서 편하게 다 날리는 지름길이다.

* 돈과 경제의 미래

얼마 전 읽은 초예측 부의 미래에서도 나왔던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 나와서 반가웠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많은 것들이 변할 것이다.

실제로 많은 은행 지점들이 문을 닫았고, 현금보다는 카드나 앱 결제가 주를 이루고, 사람 손은 점점 AI로 대체되고 있다.

게다가 그러한 현상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그 규모가 확~ 앞당겨져 왔다.

이제 인공지능이 많은 부분에서 인간을 대신할 것이다.

AI와 블록체인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시대에 있다.

우리는 변화를 인지하고도 인정하는 속도는 인지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 도태되고 만다.

투자는 늘 몇 걸음 앞서는 눈이 있어야 가능하다.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미래를 살지 못한다.

짐 로저스의 예상이 얼마만큼 맞을지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

그가 예상한 것들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짐 로저스는 세상을 보는 남다른 '촉'을 가졌다.

그것을 들여다본 것만으로 이 책을 읽은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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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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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함은 열린 채 헝클어진 상태였다. 정리를 좀 해야겠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 물건들을 정돈해야겠어.

 

 

지극히 평범한 문장 앞에서 가슴이 미어진다.

그것이 스토너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리뷰에서 스토너를 만났다.

한결같은 찬사 앞에서 생각했다. 그 이유를.

 

윌리엄 스토너.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과 대학에 들어간 청년은 자신의 앞날에 연로한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지을 거라는 흐릿한 미래만을 가지고 대학에 갔다.

그곳에서의 시간 동안 스토너는 자신의 길이 다른 곳에 있음을 깨닫는다.

과를 옮기고 졸업식날까지도 그는 부모님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아들이 자신들을 이미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은 그저 묵묵히 아들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스토너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 대부분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인 것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한 문장들 속에서 벼려진 날카로운 지성들이 쉴 새 없이 공격해 오는 스토너.

문장 하나하나를 무심히 읽어가다가 도리어 그 문장들 속에 잠겨 들어가는 나를 바라본다.

지루할 거 같은 이야기가 지루할 틈이 없고,

평범할 거 같은 이야기가 결코 평범해지지 않는다.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으면 안 되네.

 

 

슬론 교수의 이 말은 어쩜 청년 스토너에게 각인되어 평생을 그렇게 살게 하는 바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스토너의 주위에서 그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해주는 어른은 없었으니까.

 

한 사람의 일생을 앞에 두고 이렇게 복잡한 기분을 느끼긴 처음이다.

마치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생전에 알지 못했던 그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게 되는 상황이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스릴러도 아닌데 쫄깃하게 긴장감 있고,

사랑 이야기도 아닌데 그 처연한 감정 앞에서 반발심과 동시에 수긍을 하고 있다.

 

아버지가 가엾어요. 편안한 삶이 아니었잖아요.

 

 

 

하나 있는 딸과의 시간조차도 마음껏 누리지 못한 스토너.

항상 어떤 결정 앞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 결정을 내리는 스토너가 답답하면서도 진정한 영웅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뺀 담백한 이유로 인생을 결정해 가는 의지.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대하는 그의 변함없는 모습들.

어떤 격한 감정도 내보이지 않는 그 사람 스토너.

 

우리는 아주 작고 사소함에도 스스로를 내보이기 바쁘다.

로맥스처럼 철저하게 자신을 포장하고,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서 온당치 않음을 온당함으로 관철시키려는 사람 앞에서

스토너 처럼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는 기억되는 사람은 아니다.

적어도 그가 속한 작품 세계에서는.

우리가 고전이라 부르며 항상 가슴에 새기는 작품들 중에는 스토너 같이 기억되지 못했던 작품들도 많을 것이다. 그 당시엔.

 

하지만.

시간이 흘러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의 생각이 더 다양해질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건

위대함을 떠난 지극히 평범함을 줄곧 유지하는 것이다.

스토너처럼.

 

그는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냈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불행 위에서 스스로 원하는 길을 위해 고집을 꺾지 않고, 타협을 하지 않고, 무심하게 걷고 또 걸었다.

흔들림 없는 그 완고함에 나도 모르게 푹 빠지게 된다.

우리가 스토너에게서 보는 위대함은 바로 그 완고함이다.

 

감내하고, 인내하고, 참아내고, 견디는 힘.

 

읽고 싶었던 책을 읽었다.

절판된 초판본 표지를 그대로 복원한 책으로.

 

스토너는 자신의 인생을 용기 있게 살았다.

용기 없는 사람이라면 그 자리를 이탈했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랬다면 스토너는 그저 가벼운 이야기로 남겨졌을 것이다.

스토너가 세월을 지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 책이 된 것은 자신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냈기 때문이다.

어떤 압력에도, 시련에도, 거짓에도, 세월에도.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결코 한 번도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온전히 자신의 인생을 살아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는 시대에 스토너는 진정한 의미의 영웅이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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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벨트 게임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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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자르려면 이즘이 필요하다.

 

 

아오시마제작소는 연간 500억 엔의 이윤을 내는 중소기업이다.

탄탄한 기술력으로 입지를 다져온 회사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미국 발 경제 위기로 인해 타격을 입은 일본 경제도 여기저기서 수출량이 줄어들면서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게다가 막강한 영업력과 자본으로 밀어붙이는 경쟁사 미쯔와가 후려치는 가격으로 아오시마의 숨통을 조인다.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유한 미쯔와 때문에 사면초가인 아오시마제작소는 비용 절감 차원에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그리고 아오시마에겐 연패를 자랑하는 연간 3억 엔의 비용이 드는 야구팀이 있다.

존폐의 위기에 놓인 야구팀은 얼마 전 감독이 사표를 내고, 투수와 4번 타자를 데리고 미쯔와 전기로 이적해버리고 말았다.

그 자리에 고등학교 야구 감독이었던 다이도가 오고, 선발 선수들을 베테랑들을 빼고 신입들로 채운다.

회사와 야구팀은 창립 이후 최대의 위기에 직면한다.

과연 이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이케이도 준은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로 이름만 알고 있는 작가였다.

기업 소설의 대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이 작가의 필력이 참 담백하다.

그 담백함으로 이야기하는 곳곳에 인간에 대한 기본적 배려가 담겨 있어서 뭉클했다.

 

위기에 직면한 기업이 어떤 리더를 두었느냐에 따라 많은 사람의 생사는 달라진다.

사장으로서의 호소카와의 고뇌와 어떻게 해서든 공정하게 구조조정에 임하려는 중간 간부 미카미의 모습은 냉정한 기업인의 모습과는 다르다.

이들의 어깨엔 많은 이들의 삶이 올려져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그런 칼자루를 자신을 위해 휘두른다. 반도 같은 사람은 자신의 욕심을 위해 모든 걸 희생시키는 쪽으로 밀고 가지만 호소카와는 모두를 살리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려고 노력한다.

겉으로만 보면 절대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존폐 위기의 야구팀과 작은 기업의 모습으로 보여진다.

 

"가치관이 달라지면서 비용 대비 효과를 검토해야 할 시대에 접어든 지금, 이렇게 되는 건 어쩔 수 없겠지.

이게 세대의 변화가 아니겠나'

시대의 흐름은 얼마나 냉정한가. 그리고 그 시대를 거스를 수 없는 자신은 얼마나 나약하고 허무한 존재인가.

 

 

담백한 문장으로 만들어지는 긴장감과 시시각각 죄어오는 압박의 기운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다.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주주들과 함께 고생한 회사원들의 안위까지도 생각해야 하는 경영진들의 고뇌 앞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저 상황에서 자신의 안위보다 회사와 사원들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만약 반도 같은 사람만 있다면 이 세상은 살벌한 세상이 될 것이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추구하면 이루어지는 것들이 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다. 라고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짧게 등장하는 인물들 마저도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게 다 해결되지만 독자가 생각하는 바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는데 이야기의 묘미가 있다.

약간의 반전이라고 할까?

 

야구팀의 이야기보다 기업팀의 이야기가 훨씬 쫀득했다.

그들의 방식에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 담겼다. 겉에서 보는 구조조정은 잔인하고 무분별하게 보인다.

마구잡이로 보이는 구조조정 그 안에서도 분명 고뇌하고 고뇌하던 미카미 같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분명 그 안에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는 이야기였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아오시마가 왜 야구팀을 만들고, 그것을 소중히 키워왔는지를.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면서, 아무리 열세에 놓여 있더라도 최후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순수하게, 존엄하게, 강렬하게...

 

살면서 잊어버린 감정들이 문득 깨달아질 때가 있다.

본질을 깨달을 때의 감동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루스벨트 게임은 야구에서 가장 재미있는 게임 스코어는 8 대 7이라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말에서 나왔다.

인생의 묘미도 이것에 있다.

 

열심히,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흔들릴 때마다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람이 먼저인 사람다운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 '맛'에 이케이도 준의 이야기를 읽는가 보다.

 

야구장에 갈 수 없는 이 시대에 책으로 멋진 야구 경기를 읽었다.

일본 기업 문화의 극과 극을 보았다.

호소카와 같은 리더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호소해본다.

 

누군가에게 혹~ 한 제의를 받았거나

누군가를 잘라 버릴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모두가 어떤 것의 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심연을 키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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