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왼편에 서지 말아주세요
김슬기 지음, 백두리 그림 / 봄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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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여전한' 사람으로 머물러 있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누군가에게서 다수와 어딘가 다른 모습을 발견하더라도 그를 그 모습 하나로 섣불리 판단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슬기.

2007년 10월 14일.

자고 일어나니 얼굴 한쪽에 마비가 왔다.

안면 마비.

중학교 1학년이었다.

 

수많은 병원을 다니며 희망을 걸어봤지만 그녀의 희망은 매번 실망으로 끝났다.

원인도 알 수 없는 안면마비는 그녀를 떠나지 않았으니까.

 

중학교 1학년.

14살에 찾아온 그 일을 아이는 어떻게 견뎌냈을까?

 

그녀에겐 할머니가 있었고, 엄마가 있었다.

물론 다른 가족도 있었지만 그녀의 글에서 제일 많이 언급된 가족의 이름은 할머니와 엄마였다.

그만큼 슬기 작가가 의지하고, 그녀 곁에 제일 많이 있어 주었던 분들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녀의 아픔보다도 사람들의 무신경함에 더 신경이 쓰였다.

그 무신경한 사람들 대열에 나도 들어 있는 거 같아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아픔으로 느끼지 못하는 공감 불능력자들이 많은 거 같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은 아니었나를 되씹어 보는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나는 침묵했거나, 외면했거나, 모른척했었던 거 같다.

이유는 치졸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나의 무지였다.

 

아는 척하는 게 왠지 미안하고, 물어보기 겁나고,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아마도.

슬기 작가의 주변에도 나 같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녀의 고통과 외로움을 같이 느껴봤다.

그녀가 무심코 받았을 많은 상처들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누군가의 아픔을 제대로 알기란 참 어려운 것이다.

 

 

 

 

이 책에 담긴 그림들은 슬기 작가의 그림이다.

그녀의 아픔을 놀림감으로 생각한 사람들도,

그녀의 아픔을 돈벌이로 생각한 사람들도,

이 책을 읽으며 자신들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하지 마'는 내가 옳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 가르치는 말인데, 아프지 말라고 나한테 가르치는 건가 싶다. 저게 걱정할 때 쓸 만한 말이 맞나? 그리고 아프지 않는 게 내 맘대로 되나? 누구보다 아프면 나부터가 싫다. 누구보다 나 자신이 제일 아프지 않고 싶다고. 나도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게 아닌데...

 

 

 

보통 아픈 사람에게 늘 하는 말은 '아프지 마'라는 말이다.

이 말이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는 걸 슬기 작가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에게 아프지 말라고 말하는 건 어떤 도움의 소리인 걸까?

앞으로 다른 위로의 말을 생각해 둬야겠다.

 

어떤 원인으로 발병한 건지

왜 치료가 안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아마도 본인 자신이 제일 답답했겠지만.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글이 참 귀엽다.

귀엽다라는 표현을 쓴 건 이 글에서 원망이나 분노가 느껴지지 않아서다.

20대의 그녀지만 아직도 풋풋한 14살 소녀의 모습이 글에 담겨있다.

그래서 글들이 귀엽다.

원망과 분노가 아닌 귀여운 투정의 글이 그래서 더 아프기도 하고, 그래서 더 와닿기도 했다.

 

사진 속 내 아픈 표정은 웃음이 될 수도 없지만, 추억이 될 수도 없을 테니까.

 

사진 찍지 말아 달라는 그녀의 요청을 무시하고 대놓고 이상한 사진만 찍어 올린 사람들은 반성해야 한다.

그들이 꼭 이 글을 읽어 보았으면 한다.

자신들이 어떤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주었는지 알고 반성하기를 바란다.

 

나는 슬기 작가가 이 글을 쓰는 동안 자신을 단련시켰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자신을 이미 노출시켰다.

그건 그만큼의 자신감이 만들어 낸 일이다.

성형수술을 고려했던 그녀에게 의사 선생님이 해주신 말은 정말 의사로서 그녀에게 해준 말이니 그녀가 그 말을 깊이 새겼으면 좋겠다.

지금의 모습을 나아지게 만들기 위해 더 큰 상처를 숨기고 다니는 그런 오류를 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답다는 것은 결국 슬기롭다는 것. 그 자체니까.

 

이름처럼 잘 살 거라 믿는다.

그녀의 글에 담긴 온기처럼.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지켜주는 가족들의 사랑 안에서 낯모르는 사람들에게서 받는 고통들이 씻길 거라 믿는다.

이 글이 많이 읽혀서 슬기 작가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누군가 무심코 그녀의 왼편에 서게 되었을 때 그녀가 불편해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슬기 작가님.

이름처럼 슬기롭게 앞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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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 7인 7색 연작 에세이 <책장 위 고양이> 1집 책장 위 고양이 1
김민섭 외 지음, 북크루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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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의 무게는 살아 내야 하는 하루치의 무게인 걸까.

 

7명의 작가들이 하나의 주제로 7가지 글을 쓴다.

독자들은 그들의 글을 매주 받아 읽는다.

구독자에게 보내는 7인 작가의 에세이.

그렇게 시작된 글들은 이렇게 모여서 한 권의 책이 되었다.

 

7인 7색의 글들에 담긴 저마다의 개성이 읽는 '맛'을 가중 시킨다.

 

남는 건 모진 상처와 자괴뿐일 걸 알면서도 감정에 휩쓸려 파탄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란 얼마나 쉬운가.

그럼에도 절대 그 경계선을 넘지 않고 그 바깥에서 단단하게 서서 호흡을 고르며 다른 걸 볼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D는 그런 '어른'이었다.

 

 

회전교차로의 출구를 찾지 못하고 계속 맴돌기만 한 김민섭 작가의 멀어진 친구가 김혼비 작가의 친구 D의 이야기를 읽는다면 그때의 그 순간을 조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감상적인 생각을 해본다.

절묘하게 앞뒤로 이어지는 이 고양이 이야기에는 다른 방식으로 상황을 보는 친구들이 나온다.

내가 그들이라면 나는 어떨까?

파릇한 20대라면 나는 회전교차로의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마도 친구 D를 닮으려 노력 중이다.

 

 

 

 

남궁인 작가의 글은 연신 재미지고 즐겁다.

아마도 7명 중에서 독자의 웃음을 책임지는 포지션을 맡았나 보다.

 

사실 나는 이 7명의 작가들에 대해 아는 게 없다.

그분들의 글을 읽은 적은 있지만 어떤 글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이름은 아는 분들이 있는 거 보면 분명 글을 읽은 적은 있는데 말이다.

다만 내가 요즘 작가들의 글을 많이 읽지 않아서 아는 게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작가분들의 이름을 나에게 각인시켰다.

그분들의 스타일을 에세이를 통해 알게 되다니 그래서 더 기쁘다.

 

그의 어색한 다가옴을 우리는 두 팔을 벌려 환영해야 한다.

축하한다, 어디에서 그걸 살 수 있니, 어디로 가면 그걸 볼 수 있니, 라는 말에 더해, 나는 너를 읽었어, 너를 보았어, 나는 이 부분이 좋았어, 다음에도 꼭 너를 나에게 보여 줘,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런 친구를 많이 두고 싶지만, 언젠가는 꼭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 누구라도 나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보일 수 있고 나는 그것을 그의 자존감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언젠가는 정말로 그런 삶의 태도를 가진 친구가 되고 싶다.

 

 

김민섭 작가의 친구에 대한 글을 무척 공감하면서 읽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에.

 

소설보다 에세이가 쓰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에세이를 통해 본 작가들이 훨씬 다정하게 느껴진다.

그들의 일상과 그들의 속내를 엿 본 느낌이 즐겁다.

 

이 언젠가 프로젝트가 계속되길 바란다.

멤버는 바뀌더라도.

글을 향한 열망을 가진 새로운 멤버들이 독자와 바로 연결되어 따뜻한 응원을 받으며 자신들의 글을 더 깊이 있게 써낼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이런 즐거운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무엇을 읽을까? 고민스러울 때 집어 들기 좋은 책이다.

책을 선물하고 싶은데 네가 어떤 글을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 하며 건네기 좋은 책이다.

책을 안 읽는 사람에게도 책을 읽게 만드는 책이 될 것이다.

 

누군가 무엇을 먹겠냐고 물어볼 때 대답하기 싫을 때가 있다.

나도 뭘 먹고 싶은지 몰라서 그냥 '아무거나' 라고 말했는데

찰떡같이 알아들은 친구가 내 입맛에 꼭! 맞는 것을 찾아다 주었을 때 느끼는 그 행복감.

이 책을 읽고 난 나의 기분이 그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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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천문학 - 미술학자가 올려다본 우주, 천문학자가 들여다본 그림 그림 속 시리즈
김선지 지음, 김현구 도움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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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역시 그 시대, 그 사회의 지배적인 주류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의 표상이 아닐까.

 

 

미술학자가 올려다본 우주, 천문학자가 들여다본 그림.

이 말처럼 미술학자 아내가 천문학자 남편의 도움으로 그림 속 우주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리스 신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생소할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 나오는 신화 속 신들의 이름은 로마식 이름이다.

그러고 보면 별자리의 이름은 거의 로마식이다.

 

첫 번째 파트는 우리가 알고 있는 행성과 그에 관한 신화 속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 번째 파트는 그림 속에 숨어있는 천문학으로 별, 우주, 밤하늘을 그린 화가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파트별로 다루어지는 그림들과 이야기들은 우리가 한 번씩은 어디선가 들어 본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것이 뭔가 더 전문적인 느낌이 들어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즐거웠다.

얼핏 알았던 이야기들을 정확하게 알게 되는 느낌이 들어서.

 

금성은 비너스의 별이다.

관능적이고, 섹스어필한 비너스는 미의 여신이자 사랑의 여신이다.

 

비너스는 거의 누드화로 많이 그려지는 데 그것의 의미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중세의 플레이 보이 정도쯤이라고만 해두자.

 

원래 아름다운 여성의 몸은 풍만한 몸매였다.

트위기 이후부터 비쩍 마른 몸매를 미의 기준으로 삼았다니 트위기가 원망스럽다.

뱃살을 드러내기 위해 옷 속에 말총이나 주석으로 만들어진 미니 패드를 차고 다녔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어떻게든 뱃살을 안 보이게 하기 위해 거들 안에 몸을 욱여넣고 사는 시대인데 말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깎여버리고 모양새를 너무 많이 다듬어 버렸다.

 

 

 

 

명화 속 UFO는 사실일까?

 

고고학자와 역사학자들은 어떤 고대의 유물을 볼 때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의 관점과 사고로 분석해야 한다고 한다. UFO 그림들에 대한 오해는 현대인의 시각으로 과거의 것을 보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림 속에서 발견되는 UFO의 증거들을 많은 사람들이 고대에서부터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만

사실 그런 그림들은 종교적 의미로 그려진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설명 없이 그림만 보면 정말 우주선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다.

그림만 보고 나도 깜빡 속았는데 그건 그런 현상을 좇는 사람들의 잘못된 해석이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명화와 관련된 책들을 몇 권 보았지만 이처럼 뭔가 잘 정돈되면서 풍부한 느낌을 가지게 해주는 책은 처음인 거 같다.

표지부터 읽고 싶게 만드는 이 책은 많은 것들을 독자들에게 남겨 준다.

천문학에 대해서 아는 거 하나도 없던 나도 이제 10개의 행성에 대해서는 누군가에게 약간의 설명을 해줄 수 있을 정도는 알게 됐다.

행성의 이름과 관련된 신들의 이야기도, 그들의 이야기가 담긴 그림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담은 책인데도 불구하고 복잡하지 않다.

그래서 읽기 편했고, 읽는 동안 눈도 생각도 행복해졌다.

 

같은 걸 봐도 우리는 서로 다른 걸 본다.

이 책이 그렇다.

같은 그림에서 뽑아낸 이야기들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느껴본다.

 

그동안 미술사나 명화에 관한 에세이들을 많이 보았는데

이 책은 집에 두고 간간이 꺼내 읽고 싶어지는 책이다.

 

미술학자와 천문학자를 통해 본 그림과 밤 하늘과 우주.

정말 신선하고 풍부했다.

내게 다른 시선을 부여해 준 이 책에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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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가난의 시대 - 2020 문학나눔 선정도서
김지선 지음 / 언유주얼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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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우아한 삶은 과연 공존할 수 있을까?

 

제목을 참 시적으로 잘 뽑아낸 책이다.

그래서 절로 궁금해지는 책이기도 하다.

 

가난과 우아는 공존할 수 없다고 많이들 생각하고 살고 있다.

가난한데 어떻게 우아할 수 있어?

다들 이렇게 생각할 거 같다.

 

그럼 다르게 물어보자.

우아하면 가난하지 않은 걸까?

 

삶은 각자의 멋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 그 안에서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며 살아내는 것.

나는 그것을 우아라고 말하고 싶다.

 

남들 눈에 비친 나로 수 없는 헛발질로 기진맥진해서 사는 거보다는

내 안의 나를 보며 내가 진정 원하는 것들을 위해 사는 것. 그게 우아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우아라는 말과 가난이라는 말을 사전적 의미대로만 본다면 이 책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어쩌면 우리의 사치는 앞이 조망되지 않는 내리막 세상에서 터득한 날카로운 생존 감각인지도 모른다.

 

 

여력이 돼도 택시 타는 걸 사치라고 여기고 못 타는 사람이 있고,

택시는 그저 조금 편하고, 빠르게 가는 이동 수단으로 생각해서 타는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이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사람 눈에는 지지리 궁상으로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 눈에는 아끼는 것이 되고,

어떤 사람 눈에는 돈 지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 눈에는 합리적이 되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학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 책이 다르게 읽힐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도 이해한 사람이다.

나는 이 책에 담긴 글들이 좋았다.

명쾌하고, 잘 쓰인 글에 읽을 책 목록이 더해지기는 했지만.

 

우리 세대가 집단적으로 망각하고 있는 것은, 가난이다. 사실 우리는 돈이 없다. 놀라울 정도로 말이다. 이 '팩트'는 일 년 내내 심해에 잠겨 있다가 연말 정산을 할 때쯤에나 슬그머니 수면 위에 떠오른다. 이미 망했거나, 서서히 망해 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어느 시대나 가난했다.

내가 어릴 때나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다들 가난하다.

 

이 가난은 어디서 오는 걸까?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만을 의식한 탓에 마음 저 밑바닥에서부터 길어 올려지는 허기쯤 될 거라 생각된다.

그래서 다들 마음이 가난하다.

그 가난의 깊이를 알지 못하니 물질로서 가난의 잣대를 키운다.

그러니 우아하게 살기는 글렀다.

 

우아와 가난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품위를 지키는 삶.

개성을 가진 삶.

스스로의 기준으로 사는 삶.

그것이 우아한 삶이다.

 

그 우아함을 잃은 우리는 모두 가난하다.

우아한 가난의 시대.

우아를 찾는 삶을 살자는 뜻일 게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사전적 의미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겐 닿지 않을 말.

우아한 가난의 시대.

 

나를 찾아 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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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 룸
레이철 쿠시너 지음, 강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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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보지 못할 그 길에 사랑을 느꼈다. 참으로 좋고 유익한 길이었다.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좋고 유익하고 소중한 것이었는지, 얼마나 부서지기 쉽고 소중한 것이었는지. 모든 것들이.

 

 

스트립 클럽 마스 룸에서 일하던 로미 홀.

그녀는 몇 달 동안 스토킹 해온 커트 케네디의 머리를 내려쳤다.

타이어 공구로.

그리고 그 장소에 로미의 아들 잭슨이 있었다.

두 번의 종신형을 언도받은 로미는 스탠빌 교도소로 보내진다.

 

 

 

당신은 나를 기다리던 커트 케네디를 발견한 그 밤에 내 운명이 결정됐다고 판단할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 내 운명을 결정지은 건 재판과 판사와 검사와 국선변호인이다.

 

처음 만나는 작가 레이철 쿠시너는 범죄와 처벌이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자 범죄학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교도소와 법원을 다니며 공부를 했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 교도소의 상황은 굉장히 디테일하다.

마치 작가가 직접 수감생활을 하고 쓴 느낌이다.

등장인물들의 범죄행위도 사실처럼 느껴진다.

 

갇혀서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자유로웠던 시간에 대한 향수.

거의 왕래 없던 엄마가 법정에 있는 걸 봤을 때 느끼는 안도감.

그녀에게 소중한 아들 잭슨 곁에 엄마가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로가 되었는데..

그 엄마마저 어느 날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홀로 남은 아들 때문에 괴로워하는 로미.

그런 로미에게 일말의 동정도 보이지 않는 교도관들.

아무도 로미의 괴로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그날도, 그날 이후도...

 

 

 

사람들 대부분이 자백을 하는 이유가 교도소에서 평생을 썩고 싶지 않아서라는 사실을 나는 알지 못했다.

 

 

두 번의 종신형.

로미는 가석방조차도 허락받지 못한다.

남은 생은 전부 감옥에서 보내야 한다.

 

로미는 사람을 죽였다.

그건 사실이다.

그것에 대한 죗값은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녀가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그 남자는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죗값을 치르지 않았다.

그녀를 한계점을 몰아붙인 커크 케네디는 과연 무죄인가? 

 

 

 

 

 

책을 읽는 내내 갇혀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들의 이야기들은 사실적이고, 직접적이고, 이해할 수 없었다.

가난과 범죄는 쌍둥이처럼 붙어 다닌다.

죄를 물어야 하는 법은 진정한 죄를 보지 못한다.

 

로미가 제대로 된 변호를 받았다면 정상 참작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로미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국가 교정 시스템은 과연 올바르게 운영되고 있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이야기였다.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위트는 번역임에도 그 느낌들이 와닿는다.

아마도 영어를 잘해서 원서로 읽는다면 그 묘미를 더 잘 알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작가들로부터 눈여김을 받고 있는 레이철 쿠시너.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었다.

소설 속에서 버무려진 사실들이 읽고 나면 점점히 더 박혀오는 이야기다.

 

억울한 죽음도, 억울한 죄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로미가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그 사실이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법은 공정하게 펼쳐져야 하지만 그리 공정하게 흘러가진 않는 법.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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