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딱 한 개만 더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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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 형사의 담담한 말투에 문득 공기가 농밀해지는 것 같았다. 미치요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가가 형사 시리즈 6 번째 이야기는  거짓말, 딱 한 개만 더.

5개의 에피소드가 담긴 단편집이다.

짧지만 임팩트 넘치는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가가 형사의 교묘함이 느껴져서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보통 거짓말은 범인들이 많이 하는데

그 범인이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거짓말을 하도록 유도하는 가가의 거짓말은 가가 시리즈 중에 최고의 장면만을 담아 놓은 느낌이 든다.


거짓말, 딱 한 개만 더.


발레리나였던 히로코가 베란다에서 추락사한다.

얼핏 보면 추락사지만 살인의 냄새를 맡은 가가는 교묘하게 빠져나가려는 범인의 발목을 잡고 만다.

가가가 누군가?


부지런히 범인을 찾아다니며 꼬치꼬치 물어 본 걸 또 물어보며 얘기 도중에 쉴 새 없이 구멍을 뚫어 놓는다.

생각 없이 가가에게 대답하던 사람들은 나중에야 본인들의 대답에 허점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하지만 깨달으면 너무 늦는다는 것!


발레리나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 예전에 썸 타던 발레리나와의 후속담이 나올까 기대했었는데 아니었다.

가가 형사의 특별한 점은 초반에는 가가에 대한 것들을 알려주더니 중반부터 아예 사적인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가의 연애 이야기가 궁금하고, 졸업 후 흩어진 친구들 이야기도 궁금해진다.


그저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서 단서를 모으고 증거를 찾는 줄 알았던 가가가 심증은 있고, 물증이 없는 범인을 다루는 솜씨가 담뿍 담긴 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즐거웠다.

뭔가 딱딱하고, 예의는 바르나 재미는 없고, 예리하지만 나서지 않는 그런 가가의 모습을 보다가

이렇게 트릭을 쓰는 가가를 보니 왠지 속은 기분이 듬과 동시에 새로운 모습을 알아낸 기분이 든다.

난 이번 편의 가가가 무척 맘에 들었다.


네, 당신의 범행은 완벽했어요. 쓸데없는 말을 지어내지도 않았고, 오히려 최대한 거짓말을 줄이려고 연구했지요. 우리는 아무리 의심스러운 사람이 있어도 결정타가 없으면 손을 쓸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약점을 찌른 거예요. 당신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거짓말을 딱 한 개만 더 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발레리나의 자존심.

과거의 영광.

스스로 인정해 버린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저지른 일.

잘못은 인정하며 살자.



차가운 작열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독박 육아.

경력단절.

쓸모없음.

자신을 찾고 싶었던 여자의 어리석음이 불러온 참사.



두 번째 꿈


가가라는 형사는 외퉁수 장기를 두듯이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그녀를 궁지로 몰아넣은 것이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딸을 통해 이루려 했던 그녀.

오로지 그 꿈을 위해 매진하기로 했지만 둘 중 한 사람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아이에게도 꿈이 있다.

내 꿈을 이어 받게 하지 말고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하게 하자.


어그러진 계산


잘 짠 계획이었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었다.

하지만 그 나는 놈도 어쩌지 못한 것이 바로 사고였다.

그로 인해 그녀는 혼자서 그 짐을 지어야 했다.

그저 행복하고 싶었던 여자는 그렇게 평생 불행을 끌어안고 살아야 했다.



친구의 조언


가가와 만나기로 약속한 친구는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고

온몸에 골절상을 입고 입원한다.

친구를 병문안 온 가가는 친구의 사고에 의심을 품고 자신이 조사한 바를 이야기한다.

가가의 이야기를 들은 친구의 선택은?


단편의 묘미를 유감없이 발휘한 게이고의 화려한 솜씨를 읽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호흡이 긴 이야기 보다 이 짧은 이야기에서 가가의 매력이 더 발산되는 거 같아서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가볍게 읽으며 짧게 추리력을 점검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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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름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1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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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피곤을 옆으로 치웠다.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쇠이빨, DNA, 사라진 피 0.5리터.

더 이상 경찰이 아닌 해리는 경찰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라켈과의 결혼 생황을 이어가고 있다.

올레그도 경찰 학교 학생이 되었고, 지금 그들은 해리 인생에서 가장 많은 평온과 행복으로 채워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미카엘 벨만은 눈 하나를 잃은 대신 경찰청장이 되어 있었고, 공석인 법무부 장관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

카트리네는 강력계 반장이 되었고, 골칫거리 베른트센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오슬로에 피를 먹는 살인자가 나타났다.

대담한 살인은 계속되고, 심리 학자 중에는 이 살인마가 뱀파이어 병에 걸린 것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다.

벨만은 어떻게든 법무부 장관이 되기 위해서 이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폼 나게.

그러나.

경찰 조직 내에 스파이가 있었다.

언론에 정보를 팔아먹는.


자네가 좋은 선생인 건 의심하지 않지만 선생이 자네만 있는 건 아니잖아.

그에 비해 수사관으로서는 자네가 독보적이고.

미카엘이 저 말을 했다고 해서 해리가 움직인 건 아니었다.

행복은 해리에게 사치였으니까.

미카엘은 자신의 승진을 위해 해리를 이용할 뿐이다.

해리는 오슬로 경찰의 전설이니까.


첫 번째 희생자의 모습에서 해리는 익숙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의 그 직감은 곧 사실로 밝혀진다.

그가 놓쳤던 악마.

4년 동안 해리에게서 도망쳐 다니던 악마가 돌아왔다!


놀아줘.


발렌틴 예르트센.

가슴에 악마의 얼굴을 문신한 남자.

그가 해리에게 놀아 달라고 자신의 정체를 살인 현장에 남겨둔다.


그놈처럼 자네의 목마름은 불과 같아, 그래서 그 불을 꺼야 하지. 그 불은 꺼질 때까지 계속 타오르면서 가까이 있는 모든 것을 삼켜 버릴 거야. 안 그런가, 홀레?

폴리스의 마지막 장면이 예사롭지 않아서 곧바로 이어지는 이야기로 생각했지만

그로부터 4년의 시간이 흘렀다.

해리는 교수로 자리를 잡고, 미카엘은 경찰청장으로 승진하고, 카트리네는 강력반 반장이 되고, 올레그는 경찰학교 학생이 되었다.

캐릭터들은 점점 완숙미를 뽐내는 동시에 끝을 보이는 지점에 서 있는 목마름.

제목이 왜 목마름인지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시작은 해리가 첫 번째로 잡아넣은 자로부터 시작되었다.

'약혼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핀네.

그가 뿌려 놓은 씨앗들이 발화되어 범죄의 꽃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이 이야기의 퍼즐을 맞춰 볼 수 있다.

얼기설기 얽힌 실타래 같은 관계들이 가닥가닥 펼쳐지면서 그다음이 어떻게 펼쳐질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이야기의 중막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래서 당신도 속은 거예요.




발렌틴을 잡으면 해결될 거라 생각했었다.

모든 독자가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또 하나의 시작이었을 뿐이다.

행복은 잠깐 주어진 것일 뿐.

그다음에 따라오는 고통을 잊기 위한 잠시의 진통제였을 뿐이다.

해리가 발렌틴과의 싸움을 하는 와중에 라켈은 지병으로 코마에 빠지고, 올레그 역시 알 수 없는 유전자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스파이는 계속 정보를 언론에 팔고, 발렌틴의 수법은 점점 악랄해져서 해리와 관계된 사람들을 노리고 그들은 여지없이 희생된다.

목격자의 죽음.

이제 성형으로 얼굴을 바꾼 발렌틴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

해리만 아는 딱. 한 사람만 빼고.

그 목격자를 해리는 지킬 수 있을까?


가장 잔인한 범죄의 이면에도 원인이 있다.

인정받지 못한 마음은 비뚤어진 방향으로 자신감을 갖게 만들었다.

단지 인정받기 위해 인간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네스뵈는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건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다.

시리즈가 추가될수록 이야기는 더 촘촘해지고, 더 복잡해지고, 더 많은 걸 담아낸다.

하나의 이야기는 그걸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저 뒤에 어딘가에서 만나게 될 이야기의 씨앗이 된다.

그래서 해리 홀레는 여타의 스릴러 시리즈에 나오는 형사들과 그 급이 다르다.


해리 홀레는 독보적인 존재다.

그리고 그를 형사이게 만드는 살인자들도 어디에도 없는 악랄한 존재들이다.

범인에게도 서사를 주고, 형사에게도 나름의 서사를 부여해 준 요 네스뵈.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이야기는 하나의 성이 되어 간다.

결코 침범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성.


그리고 시리즈가 갱신될수록 백미는 바뀐다.

그동안 모두가 스노우 맨을 해리의 최고 이야기로 여겼다면

이제 그 자리는 목마름으로 채워질지 모르겠다.


지금 겨우 가제본을 읽었을 뿐인데.

다음 편을 기다리는 중이다.

목마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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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결석을 할까? 중학 생활 날개 달기 1
이명랑 지음 / 애플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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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졸업 후 혼자만 다른 중학교에 입학하게 된 윤현정.

첫 체육시간이 있는 날 하필이면 생리가 터진다.

생리통이 심한 현정이에겐 반에서 제일 불량한 남학생 이태양이 짝이다.

 

 

초등학교 때는 담임 선생님에게만 얘기하면 끝났는데

중학교에 오니 매 과목마다 선생님이 달라져서 매번 생리통이라고 얘기해야 하는 불편함과 동시에

남학생 짝이 옆에 앉아서 계속 시시콜콜 간섭을 하니 현정이는 정말 죽을 맛이다.

게다가 현정이가 양호실에 있는 동안 부탁하지도 않은 급식 당번을 턱~ 하니 맡아 놓고 고마워하라는 막무가내 이태양과 현정이 속도 모르고 오해하는 중학교 올라와서 간신히(?) 사귄 여자 친구들의 냉랭함이 현정이를 더 힘들게 한다.

 

 

현정이의 중학교 생활은 과연 평온할 수 있을까?

 

 

이명랑 작가의 청소년 소설이다.

대학생 두 아이의 엄마인 이명랑 작가의 이 글을 읽는 동안 현정이가 처한 사항이 나와 같아서 옛 기억이 새록새록 했다.

나도 나 혼자만 다른 중학교에 배정되어서 이미 같은 학교에서 온 대다수의 아이들 무리에서 혼자만 동떨어져서 서먹서먹했던 기억이 났다.

나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아이들은 생리하는 것에 대해 창피함을 가지고 있나 보다.

그래도 나는 여학교라 덜했는데 현정이는 남녀공학이니 남학생들 앞에서 생리통이나 생리에 대한 얘기 자체가 껄끄러웠을 것이다.

게다가 오지랖 넓은 짝꿍의 참견 때문에 학교 가기가 더더욱 싫었던 현정이었다.

 

 

"근데 넌 날개 달린 생리대 쓰냐, 일자 생리대 쓰냐?"고 능글맞게 웃으며 장난치듯 물어보던 이태양 얼굴이 자꾸 생각났다.

 

남녀의 차이에 대한 수행평가를 태양이와 한 조로 받게 된 현정이는 생리통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런 현정이를 불러낸 태양이는 자그마한 행복이라는 이름의 강아지를 데려온다.

그리고 그날 현정이는 태양이의 다른 모습을 본다.

 

 

 

 

그런데 여자에게는 너무 익숙하고 너무 당연한 것이 남자에게는 너무 낯설고 신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려 주지 않으면 모를 수도 있는 거구나. 싶었다.

 

 

 

태양이는 현정이를 배려해 수행평가 자료를 다 준비하고

이 자료를 통해서 현정이는 반 아이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게 된다.

누나가 둘인 태잉은 여자들의 생리통에 정통했다.

아픈 누나들 대신 집안일도 하고, 심부름도 하고, 생리대까지 사다 주는 자상한 남자. 이태양~

 

 

현정이는 이 수업 이후로 중학교 생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쌓인 오해들을 풀어내는 과정을 보는 재미가 나를 기분 좋게 만든다.

 

 

중학생들이 읽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나름 유익했다.

남자들은 말해주지 않으면 잘 모르는 여자의 마음.

여자들은 말해주지 않으면 잘 모르는 남자의 마음.

서로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알기 전까지 그들은 서로에 대한 불신 때문에 가까워지지 못했다.

동성끼리도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모른 체 오해만 쌓아가면 결국 톨이 킬 수 없는 관계를 만들 뿐이다.

 

 

더 늦기 전에 사소한 오해들은 풀어가기 바란다.

그러려면 먼저 다가가는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중학교에 들어간지 이제 일주일밖에 안된 현정이는 그렇게 새로운 인간관계 속으로 한 발짝을 떼었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현정이의 중학교 생활이 즐겁기를 바라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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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정리하는 중입니다
이평 지음 / 부크럼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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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 이라는 공간 속에서 매일 저녁 9시에 사람들에게 글을 배달한다.
이 매일이라는 말에 작가의 성실함이 담겨 있다.
이 책은 그 성실함이 만들어 낸 결과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조언을 구하고, 조언을 하고, 생각을 하고, 다짐을 한다.
하지만 관계는 내가 생각한 대로 나아가지 않는다.




역지사지, 사람은 역으로 지랄해줘야 자기가 무엇을 잘못한 지 안다

이 문장 앞에서 속이 후련했다.
늘 지랄을 떠는 사람은 가끔 자기 같은 사람에게 지랄을 들어야 비로소 자신을 돌아 보게 된다.




아무래도 자아 성찰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과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과의 대화나 만남은 피곤하다.
자기주장만 하기 때문이고, 자기 말만 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내 생각만 옳고, 내 말만 하던 시간이 있었다.
그때의 나를 소환해서 물어보면 아마도 이런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 아무도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아서... .



사실 나는 말없이 들어주는 타입이었다.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기만 하고 별말이 없던 사람인데 어느 순간부터는 남의 얘기를 안 듣고 내 말만 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건 아마도 반대 의지였나 보다.
내가 그만큼 들어줬으니 이젠 내 말을 들어 달라는.
이제는 그 반대의 길을 가려 한다.
그동안 많이 떠들었으니 이젠 귀를 기울이자.



 


인생을 살면서 자존감을 낮추게 되는 일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스스로 저항한다면 단단히 자존감을 무장할 수 있다는 소리예요.

 

 


스스로를 반성하고, 고민하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서 나온 글에는 무수한 공감이 빗발친다.
하나의 글에 나를 비추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누군가의 잔잔한 글들은 결국 단단한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그 글이 자기 자신을 다독이는 글이라면 더더욱.



 


꿈을 이루는 데 나를 방해하는 것. 그것은 시련이 아니다. 정말 나를 방해하는 것은 안정감이자 권태로움일 것이다. 평화로울 때 마음이 가장 무력하고 고요할 때 기습당하기 쉽다.



매일매일 글을 올리며 마음을 갈고닦았을 사람의 삶이 느껴져서 좋았다.
그렇게 매일 하루를 돌아보고 관계를 돌이키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이 책의 글들이 전달해 주는 온기가 도움이 되었다.



그 어떤 관계든
스스로 정리할 수 있다.
그것을 냉정으로 해석하고, 나쁨으로 인정된다 해도
나 자신을 괴롭히는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그저 그 시간을 나를 위해 할애해야 한다는 생각은 틀리지 않다.



실속 없고, 지속되지 않을 관계를 위해 시간을 내고, 노력을 하고, 애정을 쏟느니
책이나 읽고, TV나 보고, 영화나 보면서 뒹굴거리는 시간이 더 낫다고 생각한 지 오래됐다.



핸드폰 속에 저장된 전화번호는 얄팍하지만
그 얄팍함 때문에 외롭지 않고, 신경 쓸 일 없고, 방전될 일 없다면
그 얄팍함이 나를 살리는 길임을 깨달은 지 오래다.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나의 평온함이다.



내가 평온하면 그 평온함으로 세상을 바로 볼 수 있고
그렇게 바라보는 세상은 언제나 평온할 테니.



관계를 정리할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나다움을 찾는 데 도움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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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윅 클럽 여행기 찰스 디킨스 선집
찰스 디킨스 지음, 허진 옮김 / 시공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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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느 집에 가든 그 주인에게 폐를 끼칠 운명이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픽윅 클럽의 수장 픽윅. 시인의 감성을 가진 스노드그래스, 아니라는 말을 못 하는 윙클과 첫날부터 사고를 치는 터프먼.

이 네 신사분들의 여행기는 첫날부터 사기꾼 징글 씨를 만나면서 그 앞날이 고단하다는 걸 예견할 수 있다.

가난한 신사 징글을 일행으로 받아들여 같이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모두가 첫날의 고단함으로 뻗어서 잠들었을 때 터프먼과 징글은 호텔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참석한다.

하지만 변변치 못한 징글의 옷 차람 때문에 터프먼씨는 윙클씨의 옷을 징글에게 입히고 무도회에 참석하는데 그곳에서 징글은 한 여인에게 치근덕대다가 그녀를 맘에 들어 하던 장교에게 결투 신청을 당한다.

 

 

아침이 되자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의 이름을 호명 받은 윙클씨는 술김에 자신이 실수를 했나 보다 생각하며 결투장으로 간다.

비밀리에 결투를 하는 걸 보면 결투가 법으로 금지된 지 얼마 안 된 시대였던 모양이다.

결투 당사자가 윙클씨가 어젯밤에 만난 그 윙클씨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 신사들의 여행이 계속될 수 있었을까?

 

 

이렇게 징글씨는 징글징글하게 신사들과 엮이면서 터프먼씨에게는 사랑의 상처를

픽윅씨에게는 체면을 구기는 상처를 남긴다.

 

 

 

 

픽윅씨는 그 소리가 듣기 싫었다. 사람이 속으로 피를 흘리면 자신에게 위험하지만 속으로 웃으면 다른 사람에게 위험한 법이다.

 

 

이 이야기의 매력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와 당시 시대적 상황도 알 수 있고, 당시 사람들의 생각들도 알 수 있다는 데 있다.

옛사람들이 더 잔인하고 무자비하다.

그때의 삶이 그랬던 거겠지만.

법과 정치도 지금과는 다르지만 어느 면에서는 정말 한치도 틀리지 않다.

디킨스 시대와 21세기 사이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인간의 본성이 직접적인 것에서 간접적인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일 뿐.

 

 

신사 중의 신사 픽윅씨는 하인을 얻기 위해 하숙집 바델 부인에게 너무 신사적(?)으로 얘길 하는 바람에 그녀가 청혼을 한다고 오해하게 만든다.

그렇게 오해한 바델 부인은 그 시대 여자들이 그 상황에서 늘 그렇듯이 픽윅씨의 가슴으로 쓰러지며 기절한다.

이 일을 계기로 바델 부인은 픽윅씨를 혼인 빙자 혐의로 고소한다.

픽윅씨에게 일어나는 일들 중에 가장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픽윅씨의 하인으로 일하게 될 새뮤얼 웰러는 원래 구두닦이였다.

나는 이 인물이 이 작품에서 가장 맘에 든다. 꽤 현실적이면서 기민한 캐릭터라 이 어리버리한 신사분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다.

하지만 샘도 징글의 하인이라고 자칭하는 자에게 속아서 픽윅씨의 명예를 크게 실추 시킨다.

 

 

이 여행기의 진정한 의미는 아버지 같은 픽윅씨가 젊은 신사들과 함께 여행하며 겪는 일들에서 픽윅씨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있다.

처음엔 너무 세상 물정 모르는 신사들이 거들먹 거리며 세상 구경을 하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적는 단순 여행기로만 생각했지만

그 시대에서 올바르게 사는 법을 신사분들이 잘 보여 주고 있다.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것은 비단 자신만의 안위를 지키겠다는 뜻이 아니다.

나뿐 아니라 상대방의 명예까지 지켜주려는 마음이 이해되면서 이 여행기의 진정한 의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고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이 신사분들의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깨닫게 된다.

 

 

유쾌한 여행기로 시작해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는 픽윅 클럽 여행기.

찰스 디킨스는 역시 풍자 속에 날카로움과 진실과 섬뜩함을 두루 담아 놓았다.

 

 

 

1,256페이지의 두께이지만 읽는 동안 지루함은 없었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 투데이에서 짝꿍과 함께 읽은 픽윅 클럽 여행기.

찰스 디킨스의 글을 단편들만 읽다가 이렇게 긴 글을 읽은 기분이 즐겁다.

픽윅 클럽 여행기 속에 담긴 또 다른 이야기들에서 디킨스의 매력을 풍요롭게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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