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암살자 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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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념비를 원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알렉스를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


1부의 떡밥들이 2부에서 많은 파장을 몰고 온다.

아이리스는 모든 걸 기록했다.

사실을, 추억을, 기억을.

2번의 전쟁을 겪고, 아버지에게서 리처드에게로 팔려간 아이리스는 그 자체로 눈먼 암살자였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것에도 나서지 않았던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기록을 한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남자의 핏줄에게 들려주기 위해.

그 핏줄을 되찾기 위해.

어쩜 그것 역시 그녀의 희망사항일지 모른다.


내게 네게서 무엇을 원하게 될까? 사랑은 아닐 것이다, 그건 너무 과분하다. 용서도 아닐 것이다, 그건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그저 내게 귀기울여 주는 사람을 원할 것이다, 그냥 나를 바라봐 줄 누군가. 그렇지만 무엇을 하든 나를 미화하지는 마라, 나는 장식된 해골이 되고 싶지는 않다.


두 여자와 두 남자.

엉켜버린 관계들.

현실과 소설과 소설 속의 소설.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아이리스는 기록자였다.

현실에 눈 감고 생각 속에 살았다.

그녀의 현실은 소설 속에 있었다.

그리고 진짜 현실은 소설 보다 더 비참했다.


로라는 자신의 희생이 헛된 것임을 알고 언니의 자동차를 몰고 벼랑으로 달렸다.

아이리스는 로라를 지키지 못했다. 자신의 딸도 지키지 못했고, 손녀도 지키지 못했다.

자기 안에 자아가 너무 많은 사람은 누구를 위해 희생을 할 수 없다.

아이리스가 그렇다.

그녀가 한 번이라도 희생을 고려했다면 적어도 한 사람은 그녀와 함께 살아갔을 것이다.


리처드의 죽음은 설명되지 않는다.

어쩜 아이리스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어쩜 그녀 스스로 리처드를 죽음으로 몰았을지도 모르겠다.

로라를 잡지 않았던 것처럼.

또는 알렉스를 위해.


개인의 기록은 과연 온전할까?

같은 기억도 각자의 편의에 따라 다르게 저장되는 것이 기억인데.

우리는 아이리스의 이야기만을 알뿐이다.

로라도 알렉스도 리처드도 오로지 아이리스의 기억 속에 존재했던 모습으로 기록될 뿐이다.

눈먼 암살자는 현실을 보지 못하고 결국 자기 안에 갇혀 있는 것들만 재생할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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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쓰고, 함께 살다 - 조정래, 등단 50주년 기념 독자와의 대화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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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의 길이와 좋은 작품의 수는 비례한다.


조정래 작가의 등단 50주년을 맞아 독자들과의 대화를 옮긴 홀로 쓰고, 함께 살다.

다양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조정래 작가의 답이 강렬하고 힘이 있어서 책을 읽는 내내 초로의 고수에게 기를 받는 느낌이었다.


3부로 나뉘어 문학의 길과 자신의 작품세계와 문학과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한결같은 느낌으로 전해주신다.

그 올곧은 느낌이 바로 선생을 버티게 하는 힘인 거 같아서 자연스레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다.


20여 년 전에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읽었다.

삶이 고달픈 시기였다.

현실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 때 태백산맥과 아리랑은 현실을 이겨내야 하는 이유를 주었다.


태백산맥과 아리랑의 인물들에 비해서 내 삶은 온전해 보였기에...






자는 열렬한 응원자인 동시에 냉정한 심판자입니다. 그들은 뜨겁게 응원을 하면서 냉정하게 평가를 내립니다.


작가에게 독자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답이다.

그러므로 항상 나태해지지 말고, 늘 꾸준히 글을 쓰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남한테만 하는 말이 아닌 스스로 지키는 모습이다.

글을 쓰기 위해 스스로 외로워졌고, 매일을 손글씨로 앉아서 글을 쓰느라 죽을 고비도 넘긴 자신의 이야기로 조금 빛을 봤다고 기고만장해 있는

신인 작가들에게 일침을 놓는다.





"우리 민족과 조국을 가장 뜨겁게 사랑한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


등단 50주년 동안 만들어진 팬층은 다양했다.

그의 작품을 열심히 필사하는 독자도 있고, 대하소설을 여러 번 완독하는 독자들도 있다.

우리의 현대사를 그토록 처절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작가와 동시대를 살고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모르는 역사.

내 조부모와 부모들이 어떤 역사를 살아냈는지를 나는 그의 소설들을 읽으며 깨우쳤다.

이념을 앞세운 무리들이 무지한 국민들을 어떤 식으로 이용했는지,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라는 대로 했던 사람들의 마지막이,

자신의 신념이 이루어지지 못한 조국에서 사라져간 인물들의 서사는 분명 있었던 사실이다.


역사 시간에 가르쳐 주지 않은 시대적 이념의 희생자들의 아픔을 나는 조정래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배웠다.

한쪽으로만 보아서는 안되는 이유도, 그들이 밤과 낮의 생활을 다르 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럼에도 용서받지 못한 일들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전반에 대한 노 작가의 시선과 일침은 젊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된다.

어른다운 어른이 없는 대한민국에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이 어른의 말씀은 묵직하고 날카롭게 파고든다.


아 아베여, 그대의 공을 치하하노라. 그대의 덕에 대한민국 국민들의 민족의식이 강대해지고 드높아졌으니!


이렇게 유머러스하게 아베를 한 방에 보내버리시니 이것 또한 그분의 내공이다.


재능 + 노력 + 독거 = 작가의 삶


조정래 선생님이 작가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신 말이다.

재능은 노력을 이기지 못하고, 노력과 함께하는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 바로 작가의 길이라고 하셨다.


홀로 쓰고, 함께 살다.

책을 읽고 제목을 음미하니 이처럼 잘 지은 제목이 또 없다는 생각을 한다.

외롭게 홀로 쓰신 글은 함께 살고 있는 모두가 두고두고 함께 읽는 글이 되었다.


나는 아직 한강을 읽지 못했는데 언젠가는 선생님의 책들을 모두 찾아 읽고

이미 읽었던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재독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그때랑 지금은 아마도 또 다른 감동을 받을 거 같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

조정래 대하소설들을 읽고 궁금한 것이 있는 사람

작가란 어때야 하는가를 알고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 같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았으나, 온전히 내 맘대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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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끈질긴 서퍼 - 40대 회사원 킵 고잉 다이어리
김현지 지음 / 여름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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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괜찮아, 서툴고 평범한 날들도 반짝이는 날들만큼이나 좋아.

십 년 전의 나에게, 심 년 후의 내가.


한 우물을 판 다는 건 점점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현직 회사원이자 작가라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매일 하루의 감정을 정리하는 일기를 꾸준하게 쓴다는 일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 모든 걸 해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이 끈질긴 서퍼라는 제목의 책의 작가 김현지.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지는 않지만 '노동자 의식'을 가지고 일한다.

불편하고 초라하더라도 진짜 세계에 살고 싶다.


남의 일상의 글들을 읽으며 생각에 빠진다.

나의 이 시간은 어땠는지

나는 이럴 때 어떻게 버티고

나는 그럴 때 어떻게 나를 위로했는지.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지금 지나는 사람의 가슴에 담긴 이야기들은

그때의 나에게 위로가 된다.


지금은 뒤돌아 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때의 나에게 나는 아무런 위로도, 격려도, 용기도 주지 못했다.

매일매일 머릿속에 그득한 생각들을 덜어내기만 했지 나 자신에게 다짐한 일들은 자고 일어나면 잊혔다.


괜찮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괜찮아진다. 그래서 계속하고 싶어진다.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을 배웠다.

늘 쓰는 말이지만 저 한 줄의 문장에서 나도 위로를 받는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2권의 책을 낸 40대 싱글.

아무나 이룰 수 없는 일이다.


매일 꾸준하게 쓴 일기의 힘은 글이 되고, 그 글들은 책이 되었다.

누구나 꿈꾸는 일을 해낸 그녀에겐 매일의 다독임과 반성과 다짐이 있었다.


누군가의 기록을 읽으면서 끄적이고 싶어진다.

나도 저렇게 매일 느끼는 바를 남기고 싶어졌다.

그것들이 모이면 훗날의 내가 지금의 나를 더 잘 기억할 수 있을 테니.


서퍼는 파도를 기다린다.

가장 좋은 파도가 오길.

그 시간이 언제일지 몰라도 망망 대해를 바라보며 가장 완벽할 파도를 기다린다.

포기하지 않고, 매일 바다를 향해 기다림을 부르는 서퍼.

그 끈질김의 노력이 결국 내가 되는 것이다.


남의 속내를 읽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했다.

꾸준히, 열심히, 매일을 살아갈밖에...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았으나, 온전히 내 맘대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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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의 지혜와 잠언
다봄 지음 / 다봄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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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단순한 말로 인생의 정곡을 찌르는 인디언 격언들. 곁에두고 읽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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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비늘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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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어의 비늘은 백어가 처음 한 번만 주는 거야. 그것만 행운이고 나머지는 전부 불운을 가져오지. 백어의 비늘을 훔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화가 난 백어가 자기 비늘로 소금 도둑의 목을 뎅강 잘라. 내 목이 잘리게 생겼는데 어떡해. 살려면 내가 먼저 백어의 목을 잘라야지.


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이 독백은 책을 읽고 나면 소름 끼치게 더 다가온다.

인간의 욕심이 불러오는 참사를 정당화시키는 인간 합리화의 정석인 저 말이 인간으로서 인간을 용서하지 못하게 만든다...


별어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무인도 백어도.

그곳에 어머니를 안치한 순하는 마을 사람들의 요청으로 이장을 하기 위해 별어마을을 찾아온다.

몇 년 전 순하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한 현장을 목격했다.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백어도에 돌무덤을 쌓아 시신을 안치했으나 백어도의 전설을 믿는 마을 사람들의 요청으로 뭍으로 이장을 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돌무덤을 드러낸 순간 믿지 못할 전설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


백어의 전설은 사실이었다...



모든 사실은 이야기로 남는다. 이야기가 오래되면 함축과 상징으로 오그라들어 결국 아는 이만 아는 암호가 되어버린다. 머리와 꼬리가 떨어지고 어디서부터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허구인지 전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용보는 대학동창 준희의 소개로 마리를 만난다.

지극히 평범한 용보는 마리에게 청혼을 하고 마리는 그 청혼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용보는 마리에게 작은 증표 하나를 받는다.

소금 결정체.

그때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인생은 때론 알지 못했던 그때가 가장 행복했었다는 걸 깨우쳐 준다.


내 소금만 손대지 마. 그럼 괜찮을 거야.


착하지만 성실하지 못한 남자는 당장의 행운을 놓치기 싫어 저 말의 의미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유명한 벽화 화가인 마리가 아무것도 내새울 거 없는 자신과 결혼하다는 사실이 그때는 가장 중요했다.

소금은 소금일 뿐.

무슨 대단한 가치가 있을까.

세상 만물의 가치는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이지...


사람의 인연은 미래의 것만큼 과거의 것도 모호하다. 스쳐지나가는 모든 것의 의미를 집어내는 것은 무리다.

사람은 세상 모든 존재들을 잇고 있는 섬세한 섭리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조선희 작가의 책을 처음 읽는다.

인어의 전설은 아주 많은 서양 이야기에서 다뤄졌고, 나는 그 서양 문학을 읽으며 인어에 대한 관념을 각인한 사람이다.

하지만 소금 비늘이라는 이 작품으로 나는 우리에게도 인어의 전설이 존재했고, 그것이 서양의 인어들 보다 훨씬 신비롭고, 훨씬 공포스럽고, 훨씬 슬픈 이야기라는 걸 각인했다.


서양의 장르문학에 길들여진 내 눈에 조선희 작가의 소금 비늘은 색다른 세상의 문을 열고 들어 간 느낌이다.


백어의 소금 비늘을 탐한 자 죽음으로 갚으리...


욕심은 훔치려는 마음을 자라게 하고

한 번 훔치고 나면 그다음은 당연한 게 되어 버리지...

인간의 탐욕과 멈출 줄 모르는 탐심.

백어는 착한 사람이면 되었는데... 욕심은 사람을 착하게 두지 않는다.

마리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착하고 능력 없는 남자가 가장 골치 아픈 남자라고.


현재는 모두 털리고 과거의 시간은 잘려 나가고 미래는 꽉 묶여버린.


노력 없이 거저 얻은 행운은 지켜지지 않는다.

지킬 능력이 안되는 사람에게 갔기 때문에.


백어는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사람들을 죽여가면서도 계속 인간으로 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마리는 '선택'을 했다.

'섬'을 위해...


정임도 '선택'을 했다.

'순하'를 위해.


선택 한 자와 선택받은 자의 조합이 오랫동안 행복하기를...


교묘하게 욕심을 피해 갔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서 가진 자의 오만을 보았고

진실을 코앞에 갖다주어도 고집스레 내치는 사람에게서 무지의 무력함을 보았다.

속절없이 스러진 젊은 죽음 앞에서는 '딱! 한 번만' 이 가져오는 저주의 실체를 보았다.


소금 비늘은 인간 안에 잠재된 모든 습성을 적나라하게 까발린 이야기다.

묻혀 있던 전설을 현실로 만들어 낸 작가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질 뿐이다.

지금은.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았으나, 온전히 내 맘대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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