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이야기
메이 싱클레어 지음, 송예슬 옮김 / 만복당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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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엇은 오스카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 남자로 인해 지루함을 느꼈다. 오스카 역시 헤리엇과 사랑에 빠졌지만, 그녀로 인해 지루함을 느꼈다. 막힌 공간 안에서, 매일매일, 두 사람은 서로에게 실로 대단한 지루함을 안겨주었다.

 

7개의 단편이 모두 기이한 현상을 이야기한다.

사후세계, 죽은 자의 영혼, 초자연적인 힘, 유령 등이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그로테스크한 그림들과 함께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하게 만든다.

 

상당히 철학적인 느낌을 받은 <절대적 세계의 발견>은 죽은 스폴딩씨가 자신을 마중 나온 아내와 친구를 보며 그곳을 지옥으로 생각했지만 그들은 불륜을 저지르고도 천국에 있었다. 스폴딩은 자신이 지옥이 아닌 천국에 왔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그들이 천국에 온 까닭은 "아름다움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천국은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꾸밀 수 있었고, 우리가 지옥으로 알고 있는 곳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아름다움을 사랑하지 않고,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시 세상에 태어난다는 이야기가 이후의 많은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을 거 같아서 흥미롭게 읽혔다.

 

<희생자>는 21세기 범죄소설의 원조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약혼자가 떠난 이유가 자신이 모시고 있는 노신사의 조언 때문이라 생각한 스티븐은 그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자신의 범죄를 감쪽같이 은폐한다.

교살한 것도 모자라 목을 그어 피를 뺀 후 토막을 내어 채석장 굴에 버린다.

이 끔찍한 살해 이후 모든 알리바이를 완벽하게 꾸민 후에 그는 자신의 살인을 점점 잊어간다.

그가 보통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던 중 노인의 유령이 그를 찾아오는데...

 

<증거의 본질>

사랑하는 아내의 사후 재혼을 한 마스턴은 죽은 아내가 자신의 약속을 지키려 하는 걸 본다.

죽은 아내는 참한 여자와 결혼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여자와 결혼하면 그 반대가 될 거라고 생전에 말했다.

마스턴은 그저 육체적인 용도(?)로 결혼을 했고 그러자 그때부터 죽은 아내의 유령이 출몰하여 그들의 합방을 방해한다.

그러길래 괜찮은 여자를 골랐어야지. 마스턴!

 





그동안 애거사는 가엾은 밀리를 탓했었다. 하지만 밀리의 간섭과 하딩의 집요함을 극도로 위험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애거사 자신의 결점이었다. 결점만 없었어도 그들이 애거사 내면의 가장 깊은 평온까지 침범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신비한 힘이 그들을 막아주었을지도 모른다.

 

 

약간 정신과적인 해석이 돋보이는 작품 <크리스탈의 결점> 꽤 긴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런 신비한 힘을 가진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쩜 애거사는 21세기에선 정신과 의사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막연한 공포와 그들의 정신을 붙잡아 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으로.

신비한 힘으로 표현된 그것은 순수한 크리스탈이어야만 품을 수 있었는데 애거사에겐 결점이 있었다.

약간의 사이코적 공포감과 함께 정신 분석학적인 이야기가 마치 미스터리 드라마 한 편을 본 느낌이다.

 

이 단편들을 읽으며 죽음 이후의 세계와 유령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일찌감치 이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던 메이 싱클레어의 솜씨가 참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이분은 어떤 세계에서 사셨길래 이런 이야기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처음엔 쉽게 몰입하기 어려웠다. 아마도 길게 풀어 하는 이야기가 짧게 끊어가는 이야기에 길들여진 내 눈에 조금 늘어지는 감을 주었다.

하지만 읽어가다 보면 그런 이야기 방식이 이미지를 더 극대화하고 상상력을 더 자극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좀 더 풍부하게 싱클레어가 그린 세계를 느낄 수 있었다.

 

고전적인 색다름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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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 -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고전 읽기의 즐거움 서가명강 시리즈 15
홍진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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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명작들은 각기 자신의 시대에 중요했던 사회문화적 이슈들을 그 시대에 재미있다고 여겨졌던 방식에 따라 풀어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명작들은 그 재미와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일찍 문학의 '맛'을 알았다.

내가 섭렵했던 고전들은 지금까지도 나의 영양분으로 내 무의식에 남아 있다.

고전을 어렵다고,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이다.

자극적이고,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지금

간간이 재독의 기쁨을 누리게 되는 고전들이 있다.

이 책은 데미안, 변신, 젊은 베르터의 고통을 통해 독일 문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데미안은 오래전에 읽었고

젊은 베르터의 고통은 작년에 재독을 했고

카프카의 글들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헤세가 유년기와 젊은 시절을 보낸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전통적인 인간관과 세계관, 가치체계가 붕괴되었지만, 아직 새로운 인간관과 세계관, 가치체계가 자리를 잡지 못한 혼돈 상태가 이어졌다. 개인의 삶으로 비유하자면 교육을 통해 배운 부모 세대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이유 없이 거부하지만, 아직 이를 대체할 새로운 가치관과 세계관을 갖추지 못한 현대 유럽 문명의 '사춘기'와도 같은 시기가 바로 유럽의 세기전환기였던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태어난 <<데미안>>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지금도 데미안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딘지 모르게 막연한 동경과 설레임을 느낀다.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데미안을 세상에 내보낸 헤세는 전쟁으로 그전의 가치관이 무너진 세상에 나름의 처방전을 썼는지도 모른다.

내 안에서 길을 찾으라는 헤세의 메시지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깃발을 꽂았다.

 

독일 문학은 괴테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한다.

젊은 베르터의 고통은 내게 낯설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더 익숙하고 더 시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진짜를 알고 나면 슬픔과 고통 사이에 느껴지는 간극이 크다는 걸 깨닫게 된다.

오래전에 읽었고, 얼마 전 재독 한 베르터는 내게 다르게 읽혔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나서 베르터의 고통 속에 숨겨진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시대 상황과 그 나라의 문화를 알아야 고전이 제대로 읽힌다는 걸 또 한 번 배웠다.

 

내가 실패한 고전 중에 백 년 동안의 고독이 있다.

읽다가 끝도 없이 중복되는 이름들 때문에 포기했는데 그 이유를 오랜 세월이 흘러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그 나라의 전통과 문화를 모르면 그 나라의 문학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미문학은 잘 읽을 수 있지만 그 외의 나라들의 작품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 또한 그 나라들에 대해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요전에 카프카 전집을 읽으면서 참 많이 갑갑했었다.

내가 읽고 느끼는 것들이 제대로 읽고 느끼는 것인지 알 수 없어서.

리뷰를 쓰면서도 나는 나를 믿지 못했었다.


 

개인적으로 카프카의 작품들을 한마디로 설명할 때 보통 이렇게 이야기한다. "카프카의 작품은 입구도 여러 개이고, 출구도 여러 개인 미로와 같다."



이 문장이 위로가 되었다.

카프카를 어렵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정답은 각자의 느낌에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프만스탈의 672번째 밤의 동화는 접해보지 못한 작품이고 작가였다.

책은 책으로 이어진다.

내게 호프만스탈을 만나야 할 숙제가 주어졌다.

 

어렵고, 고리타분하고, 예전에 읽었으니까.라고 생각하며 미뤄두었던 고전 읽기가

지금 이 시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새로운 환경 안에서 1년을 지낸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위한 가치관 정립을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옛 것에서 새것을 찾아야 하는 이 시기에 고전은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침서가 될지도 모른다.

수많은 싱클레어들에게 고전은 진정한 데미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제 고전을 느리게 읽으며 음미하는 시간을 가져 본다면

지금 방황하고 있는 싱클레어같은 마음이 카프카의 혼돈 속에서 제자리를 찾는 고통을 감수해낼지도 모르겠다.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고전은 우리가 그들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이제는 그들의 지혜를 이해해야 하는 시간이니까...

 

 

 

* 21세기북스의 협찬을 받았으나 온전히 내 맘대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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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의 내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3
하라 료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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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자키에게서 북유럽의 향기가 난다!

 

 

 

 

 

의뢰인 모치즈키 고이치를 만난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하라 료.

나에게는 이름만 들어서 알고 있었던 작가다.

왠지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이 느와르풍이라서 기억에 남았던 하라 료의 작품을 나는 이제야 읽었다.

<<지금부터의 내일>>은 사와자키 시리즈 시즌 2의 두 번째 작품이다.

 

 

와타나베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사와자키.

전 파트너 와타나베가 죽은 지 오래지만 간판을 바꾸지 않고 탐정 일을 계속하는 중이다.

의뢰건은 늘 시시콜콜한 일들이고 그나마 건수도 별로 없는 어느 날.

'신사'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남자가 와타나베 탐정 사무소를 방문한다.

근처 밀레니엄 파이낸스 지점장 모치즈키 고이치라고 이름을 밝힌 그는 어느 요정의 주인 히라오카 시즈코의 신변 조사를 의뢰한다.

 

 

 

의뢰인이 아니다. 그것이 내 첫인상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고, 나보다 수입도 많고, 세상 모든 일에서 나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것만 같았다. 탐정 업무라면 내가 더 낫겠지만, 탐정에게 부탁해야만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해도 대부분의 경우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사람으로 보였다.

 

 

웬만해선 연락하지 말 것.

어쩔 수 없이 연락해야 할 경우 명함 뒤에 있는 집으로 연락 달라는 모치즈키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다 말고 자리를 뜬다.

맡고 있던 사건이 의외로 일찍 끝나게 되자 사와자키는 모치즈키의 의뢰를 앞당겨 수사한다.

그리고 히라오카 시즈코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모치즈키에게 연락을 취하지만 닿지 않고 하는 수없이 그의 직장으로 찾아가지만 그곳에 2인조 강도가 침입한다.

 

 

의뢰인 모치즈키는 사라지고

2인조 강도는 강도질에 실패하고

사건을 맡은 형사 니시고리는 사와자키를 보자마자 으르렁거린다.

 

 

뭔가 화끈한 일들이 벌어질 것만 같은 조마조마한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홀연히 사라진 모치즈키를 찾는 사와자키는 의문의 미행을 당하고

과거의 무언가가 아직도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니시고리는 사와자키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고

동네 폭력배들까지 사와자키를 찾아온다.

게다가 혹시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냐고 사와자키를 떠보는 청년 가이즈와 낡을 대로 낡은 건물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까지.

사와자키의 주변은 어수선하기만 하고 의뢰인은 감감무소식이다.

도대체 모치즈키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하드보일드란 원래 계란을 완숙하다는 표현으로 사용되었으나 문학에서는 '비정. 냉혹'이라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불필요한 수식 일체를 빼버리고, 신속하고 거친 묘사로 사실만을 쌓아 올리는 수법의 하드보일드.

그래서인지 지금부터의 내일을 읽는 내내 뭔가 어두운 골목길을 헤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흑백 영화를 보는 느낌이 점점이 커지면서 읽은 페이지가 쌓일수록 내 방안 가득 담배 연기가 자욱해졌다.

장면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담배연기가 이상하게 감각을 자극해서 나를 이야기 속으로 밀어 넣는다.

 

 

사가라 오라버니가 사와자키 씨에게는 허세를 부려도 안 되고, 거래는 더 안 되고, 거짓말은 절대로 안 된다더군요.

 

 

사와자키를 알지 못해도 이 문장 하나로 그가 어떤 탐정인지를 알게 해준다.

발로 뛰고, 화려한 액션과 총질이나 칼부림이 없어도 이 이야기는 자꾸만 손이 간다.

일본 형사물에서 빠질 수 없는 잔혹한 장면이 없어도 자꾸만 독자의 마음을 흔드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사와자키에게서 오슬로의 해리 홀레를 떠올렸다.

어디에 그 두 사람을 엮을 수 있는 게 있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읽는 중에 계속 홀레가 생각났다.

사와자키는 누군가를 잃지도, 사악한 살인자를 대하지도, 처참한 살인 현장과 맞닥뜨리지도 않고, 술도 마시지 않지만

그에게서 홀레의 그림자를 느끼게 되는 이유를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뭔가 알 수 없는 유머 코드가 숨겨져 있어서일까? 읽다가 나도 모르게 피식거렸다.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한 편의 코미디 같아서 어이없고, 유치해서.

 

 

 

거리의 불빛이 어둠과 경쟁하는 탓에 있는 것이 잘 보이지 않고 없는 것이 보이는 듯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문득 만나게 되는 문장 앞에서 하라 료라는 작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는 14년 동안 이 하나의 작품을 썼다.

아마도 웬만한 장르소설에 닳고 닳은 내 감정이 이 아무런 트릭 없는 무방비 상태의 작품 앞에서 자꾸만 갸웃거리게 되는 이유가 그 세월에 있지 않을까?

14년을 들여 만들어 낸 장면들엔 우리가 무심코 읽어 내려도 온몸에 스밀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담겨 있다.

그것은 어떤 문장으로도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

<<지금부터의 내일>>은 사와자키의 14년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사와자키를 알고 그를 기다려온 독자들의 시간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는 이 작품이 하라 료를 읽는 처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마음에 남는 이유를 그 세월에서 찾고 싶다.

공들인 작품은 그 가치를 독자들이 알게 된다.

오래 기다린 독자들은 물론. 그를 처음 만나는 독자들도 알게 되는 건 바로 세월 속에 묻어 둔 이야기들이 장면마다 점점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수없이 쓰고 지웠을 그 시간들의 수고로움이 담배 연기처럼 자욱하다...

 

 

하라 료의 이전 이야기들을 찾아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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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명은 가족 - 어느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걸까?
류희주 지음 / 생각정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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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은 때때로 정신질환을 낫게 해주는 둥지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정신질환을 촉발시키거나 악화시키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가족은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이자 사회의 시작이기도 하다.

가족 안에서 배우고 익히고 습득한 모든 것들이 사회생활에 밑거름이 된다.

그러니 어쩜 모두가 갖고 있는 크고 작은 병들은 가족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 류희주는 기자였다가 정신과 의사가 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의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자 정신과 의사가 되어 환자들과 상담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우리가 중독된 것은 일이나 섹스, 알코올 그 자체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거칠게 말하면 중독이 되면 분비되는 쾌감의 물질 '도파민'에 홀리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모든 중독은 도파민 중독이라고 할 수도 있다.(중략)

도파민이 비정상적으로 과다하게 분비되면 조현병의 원인이 된다.

도파민은 원활한 운동 기능에 관여한다. 도파민 신경세포가 퇴화하면서 생기는 대표적인 질환은 파킨슨병이다.

 

 

양조장 집 아들로 태어나 알코올중독으로 병원에 실려간 아버지를 보고 자란 남자는 결국 알코올의존증 환자가 되었고

그의 의붓딸은 약물 중독자가 되었다.

피가 섞이지 않아도 가족으로 사는 동안 서로의 문제점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이 그들에게는 서로 다른 중독증이 생겼다.

 

거식증은 보통 10대 중후반에 처음 발병한다고 알려져 있다. 늦어도 20대. 굉장히 빠르지 않은가. 말하자면 젊은 병이다.

 

크래커를 잘게 잘라서 결국은 버리는 거식증 환자.

170cm의 키에 50kg가 조금 넘은 몸으로 살이 쪘다고 생각하는 사람.

거식증에 걸린 딸 때문에 엄마는 우울증에 걸렸다.

자기 통제감과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게 거식증 환자들의 전형이라고 한다.

뚱뚱이 거울로 자신을 재단하는 거식증 환자는 음식을 거부함으로써 부모로부터 독립된 자아를 느끼게 되는 만족감도 덤으로 얻는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그릇된 인물상을 심어주고 있다.

바비인형 같은 몸매의 소유자만이 매력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회의 의식이 거식증 환자를 키워내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시기인 거 같다.

 

망상증에 빠진 남편 때문에 병원을 찾은 할머니는 결국 치매에 걸리고, 자신을 낳아준 친모를 죽도록 팬 지적장애를 가진 남자의 이야기는 가슴이 아프다.

요즘 많이 듣는 병명은 공황장애이다.

이 책에도 공황장애를 앓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별거를 택한 아내와 그 아내를 잊지 못한 남자에게는 공황발작이 찾아온다.

이 글을 쓴 저자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오른팔이 맥없이 떨어지는 현상을 겪는다.

키보드를 두드릴 수도, 밥숟가락을 들 수도 없는 상태에 도달했다.

수술까지 했지만 완전한 치료는 되지 않았다.

 

우울과 불안의 터널을 지나다 보면 결국 이런 생각에 다다른다. 내 마음 하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데, 무엇이 내 뜻대로 될까. 그래서 우울과 불안은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겸허하게도 만든다.

 

 

마음이 몸을 지배할 때 우리에겐 병명 없는 병이 생긴다.

마음의 병은 몸을 고장 내고 우리에게 그걸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음 들여다보길 거부하고 다른 경로로만 병명을 찾는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진 마음의 병은 어떤 건지를 생각해 봤다.

내가 내 주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가 있었는지

그걸 지적당할 때 이유 없이 화를 냈다면 그건 나에게 아직 치유가 덜된 상처가 있다는 뜻이다.

그 원인은 스스로만 알뿐이다.

그걸 외면만 하다가는 결국 표면으로 뛰쳐나오게 되어 있다.

병이 더 깊어지기 전에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는 법을 배워야겠다.

 

사실.

요즘 책도 싫고, 글 쓰는 것도 싫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다 싫은 지경에 있다.

그 이유가 뭔지 생각하는 것도 싫어서 그냥 멍하니 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을 읽는 시간도 그래서 더 오래 걸렸다.

그래도 이 책으로 한 가지를 얻은 게 있다면 마음이 힘든 걸 온몸으로 비명을 지르기 전에 알아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나 자신의 탓이든

내 주변인의 탓이든

무언가가 나를 힘들게 하는 탓이든

그 '탓'을 찾아내어 스스로를 구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한 가족이 건강한 가정을 만들고

그 건강한 가족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의 가장 작은 단위인 '나' 와 많은 대화를 나눠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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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2-20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변두리 로켓 고스트 변두리 로켓
이케이도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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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씁쓸한 반전이 다음 번 이야기를 기다리게 한다. *

이 세상에서 최후에 살아남는 건 정당한 비즈니스뿐이야. 난 그렇게 믿고 살아왔어.

 

쓰쿠다제작소는 거래처 데이코쿠중공업에 로켓 발사에 필요한 밸브를 납품하고 있다.

최대 거래처인 데이코쿠중공업이 로켓 발사에서 손을 떼려고 하는 지금 쓰쿠다제작소에는 또 한차례 시련의 바람이 분다.

로켓 발사 중단이 기정사실화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농업용 트랙터 트랜스미션 개발에 뛰어들기로 한 쓰쿠다제작소는

기어 고스트의 트랜스미션 제작에 참여하기로 한다.

 

이번 이야기의 중심은 기어 고스트에 있다.

쓰쿠다제작소의 위기를 대체하기 위한 트랜스미션 밸브 개발에 쓰쿠다제작소의 손을 들어 준 기어 고스트가 위기에 몰리면서

비즈니스의 도리란 어떤 것인지.

조직의 리더가 어느 것에 기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의 밥줄에 영향을 끼친다는 걸 점점이 느끼게 된다.

게다가 쓰쿠다제작소의 재무를 담당하는 도노무라는 300년 가업인 농사가 자기 대에서 문을 닫을 위기에 직면하고 고향으로 내려갈 준비를 한다.

 

역경을 딛고 일어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이야기의 조마조마함은 자꾸 페이지를 넘기기 바쁘다.

비슷한 스토리 안에서 자신이 가진 생각을 하나씩 하나씩 엮어 내는 이케이도 준의 솜씨는 읽는 와중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되새기게 만든다.

 

"만년에는 경영이 점점 악화됐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직원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고생스러운 가운데서도 빚을 갚고 퇴직금을 지불할 수 있을 정도의 저금은 남겨두셨죠. 당신은 사치를 부리기는커녕 여행 한 번 제대로 가보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 아버지는 제 자랑입니다."

 

과거에 발목을 잡혀 스스로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삶을 선택한 이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을 정도를 지켜서 놓치는 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삶을 아무렇지 않게 빼앗을 궁리를 하는 이

비겁한 술수를 마다하지 않고 손쉬운 길을 택하는 이

 

이 모든 인물들이 엮어 내는 이야기는 단순한 줄거리 안에서 빛을 내는 중이다.

사양길에 접어든 농업을 택한 이의 의중과 위기에 처한 농업을 위해 앞으로의 인생을 바칠 거라는 사람의 연설 앞에서

식량위기를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농업의 가치를 전하고 싶어 하는 이케이도 준의 마음이 엿보인다.

 

정도를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꾸짖는 변두리 로켓.

각자의 뜻이 맞아 의기투합했던 청춘은 6년 만에 서로의 길을 달리한다.

그들의 다음 행보가 어떤 이야기를 끌어올지 궁금하다.

 

이번 편은 다음 편을 위한 전주곡처럼 느껴진다.

진짜 이야기는 변두리 로켓 네 번째 이야기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변두리 로켓 고스트가 이케이도 준이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의 서문이라면

이 뒤에 이어질 이야기는 이 변두리 로켓 시리즈의 진면목을 보여줄 거라 멋대로 상상해 본다.

 

회사도 사람과 똑같거든. 손해와 이득 이전에 도의적으로 올바른지가 더 중요하지 않겠어?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없으면 애당초 사업 자체가 성립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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