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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귀를 너에게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3월
평점 :
그렇단다. 용에게는 뿔은 있지만 귀는 없지. 용은 뿔로 소리를 감지하니까 귀가 필요 없어서 퇴화해 버렸어. 쓰지 않는 귀는 결국 바다에 떨어져 해마가 되었단다. 그래서 용에게는 귀가 없어. 농이라는 글자는 그래서 '용의 귀'라고 쓰지.
聾 = 龍 + 耳 즉 용의 귀는 '농(聾)'이라는 뜻이다.
미와와 미와의 학교 친구 에이치에게 마스오카 노인이 농자를 설명하는 장면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아라이는 통역일을 시작한지 2년째되었고, 그 사이 미유키와 살림을 합쳐서 아라이, 미유키, 미와는 가족이 되어 함께 살아가는 중이다.
간간이 들어오는 통역일로 살림은 아라이가 맡고 미유키는 교통과에서 형사과로 가기를 희망한다.
미와는 아라이에게 말을 하지 않는 학교 친구 에이치에게 수화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하고, 아라이는 이를 받아들여 에이치에게 수화를 가르친다.
'함묵증' 들리지만 소리를 내지 못하는 병을 가진 에이치는 집중력과 기억력이 좋아 수화를 빠르게 배워간다.
그러던 중 맞은편 아파트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목격한 이야기를 수화로 전한다.
한편 2년 전 문제가 되었던 '해마의 집' 폐쇄가 결정되고, 방송과 학회에서는 '정육학'을 기본으로 하는 교육방침을 장려하는 분위기다.
부모 양쪽이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정상적인 가족만이 제대로된 육아를 할 수 있다는 취지의 교육학이다.
아라이는 농인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신카이를 위해 통역을 하게 되는데 중도실청자인 신카이의 생각을 마주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용의 귀를 너에게.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들은 농인을 비롯 발달장애를 가진 에이치를 통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들어보지 못한 병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취조시 수화 통역의 준비도 마찬가지다. 어느 지자체든 청각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사고나 사건의 당사자가 되었을 때 피해자. 가해자를 따지지 않고 수화 통역사 파견을 해야 하는 제도가 있다고 하지만, 수사관이 알지 못하거나 혹은 필담으로 충분하고 보청기를 하면 들릴 것이라는 '현장'의 잘못된 판단으로 그 제도를 이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취조시에 통역을 맡으면서 아라이는 부당함을 몸소 체험했기에 그가 겪는 마음의 고통은 읽는 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야기 속의 상황인데도 답답하고, 화가나는 상황들 앞에서 얼마나 많은 보통의 사람들이 무지함으로 그들을 대하는지 나 스스로를 반성해보는 시간이었다.
음성일본어의 발성을 강요받는 일, 그건 저에게 아주 괴로운 일입니다. 굴욕적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네요. 그것은 저에게 '언어'가 아닙니다. 제가 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스스로 알 수 없으니까. 그것은 제 언어가 될 수 없습니다.
소리 자체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발성을 하도록 강요 하는 것은 정말 누구를 위한 것일까?
수화 통역사는 과연 누구를 위한 통역사일까?
수화 통역사 대부분이 청인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수화 통역사의 수화를 대부분의 농인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실은 누구의 잘못일까?
이 이야기를 읽으면 무수한 물음들이 머릿속을 떠다닌다.
전혀 상관없을 거 같은 살인사건은 에이치 주변과 연결되어 있고, 정육학의 본질을 파헤치게 되는 사건은 '교육'이라는 것에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 이야기에 쓰인 에피소드에는 이길보라작가의 에피소드도 담겼는데 이길보라 감독의 독립영화를 보고 작가 마루야마 마사키가 직접 찾아와 이길보라 감독을 만나고 그녀의 이야기를 아라이의 이야기를 통해 담아냈다고 한다.
어떻게 이렇게 디테일하게 감정선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책을 읽으며 여러번 했는데
작가의 환경과 작가의 노력이 이 작품을 만들어내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읽었다.
감정적이지 않게 양쪽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아라이의 생각이나 입장을 통해서 현실의 모순을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하는 작가의 필력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어느 한쪽의 이야기로 치우쳤더라면 이렇게 많은 공감을 얻지 못했을 거 같다.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작품은 아주 많다.
하지만 계속 생각하게 하고, 계속 물음표를 던지게 하는 작품은 많지 않다.
데프 보이스 시리즈, 법정의 수화 통역사 시리즈는 읽는 이에게 적절하게 스며와 적절하게 적셔준다.
그 적절함의 수위를 잘 조절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더 많은 작품들이 나와주길 바란다.
에이치를 통해서 에이치가 자신만의 언어를 갖을 수 있게 이해하고 도와준 미와같은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를 깊이 이해하고 그 아이를 위해 모든 걸 감내하는 엄마의 마음.
에이치의 상황을 알고 사랑과 이해로 에이치를 지도했던 선생님과 대조적으로 에이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눈총을 주었던 선생님의 이야기를 보면서 교육자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리즈를 통해서 들리지 않는 세계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이 시리즈를 통해서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의료계나 범죄를 다루는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들리 않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이제부터라도 배워간다면 앞으로 생길 상처들이 전보다는 많이 줄어들테니..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되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