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킬
아밀 지음 / 비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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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빵과 진저브레드 - 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 이야기>를 즐겁게 읽으며 번역가라면 이런 마음으로 번역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던 그런 번역가를 만난 느낌을 가졌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번역가분은 팔색조다.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이고 소설가다.

 

비채에서 출간된 <로드킬>은 6편의 중. 단편을 모은 작품집이다.

SF, 판타지로 이루어진 그의 글들은 독자들에게 그 이후의 세상을 상상하게 만든다.

 

 

우리는 늘 희귀하고 신비로운 존재였다. 다른 인간 여자들은 모두 편의와 힘을 위해서 자궁을 버리고, 유전자를 변형하고, 줄기세포를 이식받고, 장기를 대체하고, 수명 연장 약을 투여받았다. 다른 인간 여자들은 모두 새롭게 진화한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어머니들은 달랐다. 그들은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지 못했거나, 어떤 오래된 종교적 도덕적 신념 때문에 그런 선택을 거부했거나, 또는 변방의 오지에서 과학적 기술을 접해보지도 못한 채 '자연 친화적'인 생활 방식을 유지하며 살았다.

 

 

자연 친화적 생활 방식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여자들에게서 태어난 소녀들은 한 곳에 갇혀서 생활한다.

'보호' 받고 있는 소녀들은 '자궁'을 가지고 있다.

그 소녀들은 정말 보호받고 있는 것일까?

 

<로드킬>은 끝없이 탈출을 감행했던 소녀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녀들의 성공담은 전해지지 않는다.

연약하고 갓 선택받은 여름을 데리고 '나'는 보호소를 탈출한다.

자궁을 가진 소녀들은 탈출에 성공할까?

보호소를 떠난 소녀들은 진화된 여자들이 사는 세상에서 진화되지 못한 채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진화된 여성들이 사는 세상에도 강간과 폭력은 존재하고 남자들의 횡포는 계속된다.

그것이 나를 괴롭힌다.

여성에게 진정한 자유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거 같아서.

 

처음으로, 라비는 자신의 고독이 두렵지 않았다. 고독이 주는 자유가 무엇인지 라비는 처음 느꼈다.

 

 

할머니의 죽음으로 부족 최후의 주술사가 된 <라비>

할머니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라비의 이야기는 한 나무에 의해 서술된다.

독을 품고 있는 자주콩.

그들은 오랜 시간 이 부족 주술사들의 비밀 병기였다.

이제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이는 라비뿐.

개화된 부족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돈'이었다.

그리고 라비는 그 '돈'을 인류학자에게 자주콩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준 대가로 받아들고 문명세계로 도망친다.

라비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될까?

 

뉴스 속보에 전국 미세먼지 평균 농도가 몇으로 뜨든 간에 이 일대의 공기질은 언제나 '최고 좋음'을 유지한다. 저 멀리 알프스에 빙하가 다 녹아 사라지는 날에도 이곳의 날씨는 언제나 쾌청할 것이다.

 

<오세요, 알프스 대공원으로>

한평생 한곳에서 살아온 경숙.

자신의 낡은 도시에 공기청정탑이 세워지면서 그곳은 가장 쾌적하고 살기 좋은 도시가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있는 자들과 없는 자들로 묘하게 갈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걸리는 '강시병'은 이제 가진 자와 없는 자를 가리지 않고 번져간다.

오로지 '전염병'만이 부와 가난을 가리지 않는다.

폐쇄된 화력발전소를 개조한 마루아트센터의 굴뚝에 그려진 파란 새 마크.

그것은 아마도 미래에 대세가 될 '강시병' 환자들을 상징하는 새가 아닐까...

 

나는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부터가 비현실인지 모르겠다. 무엇을 신뢰할 수 있고 무엇은 믿어선 안 되는지 모르겠다. 무엇이 고통이고 무엇이 행복인지조차 모르겠다.

 

 

<외시경>으로 보이는 옆집 자주색 실크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누구일까?

남편의 또 다른 여자?

아니면 과거의 자신?

이 단편에서 느껴지는 과도한 폭력의 기운이 더운 여름을 더 뜨겁게 만든다.

 

당신의 언어를 구걸하는 나를 이해해주기를.

당신의 이야기 밖에서 이렇게 외면당해온 나의 침묵을 제발 알아봐줘. 당신이 말할 때마다 닳아 없어져가는 나의 얼굴을 알아봐줘.

 

<몽타주>

사랑을 잃었을까?

믿음을 잃었을까?

소설 속에서라도 살아나고 싶었던 사람은 결코 그러지 못했다.

소설 속에서라도 찾고 싶었던 사람은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

글조차도 그날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했으므로...

 

마을이 처녀 공양을 시작하게 된 기원은 이와 같다.

 

 

전설로 비롯된 이야기가 전설이 되는 기이한 체험을 하게 하는 <공희>

전설의 고향 한 편을 본 느낌이다.

바다뱀의 저주였을까?

재주와 본능을 억누르게 하는 건 현대에서 커리어를 잃는 것과 같다.

자수에 놓인 대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아이를 낳지 않고, 결혼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현대 여성의 모습으로 투영된다.

그녀에게 자수를 빼앗아 고이 자기 곁에 머물러 주기를 바랐던 무사의 사랑은 진정 사랑이었을까?

자꾸 곱씹게 만드는 이야기가 내 안에서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6편의 이야기는 모두 시공간이 다르다.

하지만 그 다른 시공간 속의 여자들의 모습은 서로 비슷하다.

자유를 구속하고, 본능을 억제당하고, 재주를 짓밟히고, 가스라이팅과 강간, 폭력 앞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다.

그녀들은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설사 그 마지막이 죽음이라 해도 어떡해서든 앞으로 '나아' 가려고 애쓴다.

소리 없는 비명이 이야기 전체에서 울리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 속 여자들의 결말은 바로

읽는 이

독자들의 마음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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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떠나면 고맙다고 말하세요
켈리 함스 지음, 허선영 옮김 / 스몰빅아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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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말하든지 당신은 희생자가 되기로 마음을 굳힌 것 같아.

 

 

3년 전 갑자기 가족을 버리고 떠난 전 남편이 3년 후 갑자기 나타나 저런 말을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답할 건가요?

 

아이 둘과 대출 융자금만 남기고 남편은 홍콩으로 출장 가서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한다.

나이 어린 여자랑 홍콩으로 사라진 남편 대신 모든 걸 떠맡아야 했던 에이미.

그 3년 동안 에이미는 홀로 서는 법을 익혔다.

두 아이 코리와 조와 함께 그들은 가족으로서 자신들의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갑자기 연락도 없이 나타난 남편 존.

그동안 자기의 빈자리를 보상하고 아이들에게 아빠 노릇을 하기 위해 돌아왔단다.

그리고 에이미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휴가가 생겼다.

존이 아이들과 지내는 동안 에이미는 뉴욕에서 열리는 도서관 사서 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나지만 도착하자마자 난관에 부딪힌다.

처녀 적 절친 탈리아가 가르쳐준 아파트 주소는 어딘지 허름하고, 게다가 아무도 살지 않는 거 같다.

그리고 탈리아와는 전혀 연락도 되지 않고, 여행 가방과 함께 뉴욕에 홀로 남겨진 에이미는 소싯적 기질을 발휘해 호텔에 짐을 맡기고 컨퍼런스로 향한다.

그곳에서 한국계 섹시한 도서관 사서 대니얼을 운명처럼 만난다.

 

#맘스프린가

이 해시태그가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탈리아의 잡지사는 에이미를 타깃으로 맘스프린가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에이미는 졸지에 줌마렐라가 된다.

뉴욕에서 완벽하게 변신에 성공한 에이미.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어깨의 긴장이 풀리고 있다. 그전에는 존재조차 몰랐던 어깨 위의 낯선 짐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을 느꼈고, 목과 머리 아래쪽에서 긴장이 풀리며 상쾌함도 느꼈다.

 

 

 

아이들을 못 미더운 남편 손에 맡기고 뉴욕으로 떠나는 에이미는 자신의 어깨가 가벼워지는 걸 느낀다.

3년간 가족의 생계와 독박 육아를 하던 에이미의 긴장이 풀어지는 시간이다.

독박 육아를 하는 모든 엄마들의 로망.

혼자만의 시간.

내 주변에도 육아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미루는 엄마들이 있다.

친한 친구들이 아이 때문에 잠깐의 자기 시간을 내지 못해서 매번 약속을 바꾸고, 미루는 경우를 종종 겪는다.

그러니 그들과 여행을 떠나는 하룻밤의 수다파티는 꿈도 못 꾼다.

정작 그들의 남편은 아내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자기들 볼일을 마음대로 보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

 

모성애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간절하게 몇 시간이라도 자유를 누리고 싶은 엄마들.

에이미가 보여주는 캐릭터에 나는 짜릿함과 답답함을 동시에 느꼈다.

경제적 독립을 했지만 아직도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희망을 가진 에이미.

하지만 뉴욕 생활은 에이미를 점점 변하게 한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버려졌던 "에이미"라는 인간의 자아가 뉴욕에서 살아난다.

끊임없이 죄책감과 현실의 만족 사이에서 갈등하는 에이미의 모습이 답답하다가도 이해가 된다.

 

수많은 여자들을 대변하는 에이미의 모습은 그래서 그녀가 다시 찾은 자신을 놓지 않기를 응원하게 된다.

 

 

자, 내가 아빠를 다시 받아주겠냐고? 솔직히 받아준다고 해도 우리 중 누구도 행복해질 것 같지 않아. 또 단지 아빠를 네 삶에 머물게 할 목적으로는 재결합하지 않을 거야. 그게 아빠를 머물게 할 유일한 방법이라면, 우리 중 누구도 진심으로 아빠랑 있고 싶지 않을 테니까.

 

 

 

에이미와 딸 코리가 주고받는 메일 속에서 독자는 에이미의 심정과 아이들의 심정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은 때론 어른들 보다 더 어른스럽다.

코리와 조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응징을 가차 없이 아빠에게 하고 있었다.

 

언뜻 신데렐라 스토리 같지만 그 이면에 여성의 독박 육아와 경제적 독립과 커리어를 아우르는 멋진 이야기를 담아냈다.

에이미는 자신 앞에 닥친 어떤 문제에서도 도망치지 않는다.

존이 그 문제들 앞에서 전원이 꺼진 로봇이 되는 것과는 다르게...

 

그가 자는 모습을 보면서 이 남자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에 새삼스레 깜짝 놀란다. 3년 전에,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마다 글자 그대로 잠에 빠져 그 어려움을 나 혼자 헤쳐나가도록 내버려 둔 배우자와의 종신형에서 나는 벗어난 셈이다. 내게 일어난 가장 최악의 일이 또한 내 삶에서 가장 행운의 순간이 되었다.

 

 

최악과 최고는 항상 같이 붙어 다닌다.

최악에서 최고를 찾아내는 건 바로 당신의 의지다.

에이미처럼 의지의 인간이 되느냐 존처럼 전원이 꺼진 로봇이 되느냐의 선택은 모두 당신 자신의 결정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자신의 시간을 모두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여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 아낌없이 내어주는 시간들 중 몇 시간 만이라도 자신을 위해 온전히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라고.

아이들은 엄마가 아닌 아빠랑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는걸.

그런다고 당신이 나쁜 엄마가 되는 건 아니라는걸.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그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걸.

그리고 아이들에게 쏟는 정성 중에 일부분은 꼭 덜어서 남편에게 줘야 한다는 걸.

 

에이미가 비로소 존의 마음을 이해하는 장면에서 나는 짜증이 좀 낫지만(아마도 계속 존이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므로.)

그래서 에이미가 더 좋아졌다.

자신을 발견하고, 과거를 이해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에이미.

주저앉아서 계속 존을 탓하거나, 존에게 벌을 주려 노력했다면 재미없을 이야기가 되었겠지만

앞으로 나아가며 자신의 인생을 찾아내는 에이미의 이야기라서 이 더운 날에 시원한 청량감을 남겨주었다.

 

지금 맘스프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독박 육아를 하는 중인 아내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있는 남자분들에게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남편이 미워지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받을 수 있는 주변의 모든 도움을 받는 것은 염치없고, 나쁜 엄마가 되는 지름길이 아닙니다.

당신 자신과 당신 가족을 구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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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 세계지질공원으로 떠나는 여행 - 유네스코가 인증한 한탄강 지질명소 톺아보기
권홍진 외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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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 계곡은 한탄강 물의 작용으로 새로 태어난 젊은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뜨거운 용암이 식으면서 만들어진 검은색의 현무암 수직 절벽은 태고 때의 지구를 연상하게 하는 풍광을 간직하고 있다.

한탄강 유역은 자연의 풍광을 심미적으로 감상하며, 시간에 따른 지구환경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곳으로, 자연이 주는 선물과도 같은 곳이다.

 

 

한반도의 허리에 위치한 한탄강 세계지질공원은 2020년 7월 10일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선정되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제주도, 청송, 무등산에 이어 네 곳의 세계지질공원을 갖게 되었다.

 

풍경 좋은 곳으로만 알고 있었던 한탄강.

멋진 풍광을 보면서도 그곳에 담긴 역사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이 책은 한탄강 알리미들이 세계지질공원 지질명소 안내서와 더불어 지질 해설사와 관광 프로그램으로 개발하고 교육하는 데 기본 자료가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쓴 책이다.

 

한탄강 유역의 수많은 절경들과 함께 그곳에 깃들인 전설과 그곳이 생성된 과정들을 엮었기에

재밌는 이야기도 알 수 있고, 곁들여 눈으로 보고도 알 수 없었던 한탄강 유역의 역사적 가치들도 함께 알아볼 수 있는 유익한 책이다.







첫 장은 한탄강 유역에 숨어 있는 역사, 지리, 문학, 예술 등 인문학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며 한탄강만이 지닌 지형과 지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고.

두 번째 장은 지질명소로 지정된 26곳의 지형 및 지질의 특징에 대해 서술하면서 각 명소에 얽힌 인문학 이야기도 곁들였다.

그래서 지루해질만하고 집중력이 떨어질 때쯤 재미난 이야기나 전설들이 나와줘서 책을 읽는 보람(?)이 있었다.

재인 폭포에는 외줄 타기 재인의 슬픈 이야기가,

교동가마소에는 노총각 신랑의 새드 엔딩이,

화적연의 전설은 아직까지도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 되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슬퍼서 풍경이 더 아름답게 보이나 보다.

각각의 명소를 찾아가는 안내표시와 함께 그 명소의 지질학에 대한 설명들이 한탄강을 새롭게 느끼게 해준다.

페이지마다 담겨 있는 사진들은 풍경뿐 아니라 한탄강이 품고 있는 지질학의 연대기도 설명해 준다.

그냥 눈으로 보면서 멋지다!라고 생각했던 모습들은 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용암이 흘러 본래의 한탄강 줄기는 묻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한탄강은 새로이 생긴 것이라는 사실 앞에서 유구한 역사가 느껴진다.

주상절리의 개념을 확실하게 배웠고, 전곡리 유적지에 자신들의 흔적을 남긴 구석기 '전곡리인'들의 고향이 아프리카라는 사실을 알고 내가 그토록 아프리카에 가보고 싶었던 이유를 비로소 찾은 거 같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사진만 찍기보다는 그곳이 왜 지켜져야 하는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간다면

그 유구한 세월을 품은 비경 앞에서 절로 숙연해질 거 같다.

아이들과 함께 놀러도 갈 겸, 자연 학습도 할 겸 겸사겸사 가보기에 참 좋은 곳이다.

물론 이 책을 필수로 지참해서 아이들과 함께 자연 공부도 한다면 훨씬 더 유익한 시간이 될 거 같다.

명소를 찾아가는 법

그곳에 담긴 옛이야기

그 지형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곳에 있는 바위는 어떤 바위인지

단순히 사진으로만 보고 글로만 익힌 지식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만지며 느낄 수 있는 시간이 함께 할 수 있는 한탄강 세계지질공원은 자연 박물관이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전혀 아는 게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역사를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한 나였다.

다음에 다시 갈 때는 이전과는 다른 마음과 다른 눈으로 한탄강을 보게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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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아무거나 먹지 마세요
안티 투오마이넨 지음, 전행선 옮김 / 리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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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만, 환자분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될 겁니다."

 

 

버섯 회사 사장 야코.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다가 그가 의사에게 들은 말이다.

 

오랜 시간 동안 서서히 중독된 독으로 인해 그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간 그는 아내와 회사 직원과의 뜨거운 정사 장면을 목격한다.

 

 

내 마음속을 질주하는 이 음모론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어쩌지? 내 아내와 아내보다 열 살이나 어린 그녀의 연인이 정말로 날 독살하기로 한 거라면?

 

아내는 열 살이나 어린 직원과 불륜 중이고 그와 동시에 그를 죽이려 독을 탔으며 회사까지 장악하려고 한다.

그 와중에 새로 생긴 버섯 회사는 최신 장비를 갖추고 그의 사업을 가로채려 하고 있고

그는 언제 죽을지 모를 몸이 되었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서

속절없이 녹아드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면 어찌하시겠습니까?

 

내 안의 무언가가 거칠게 떨어져 나가서 아래쪽의 차가운 심연 속으로 곤두박질쳐 내려가는 것 같다. 그런 감각이 몇 초쯤 지속한 다음 멈춘다.

 

 

멀쩡했다가도 갑작스레 찾아오는 몸의 이상 증상.

아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를 속이고

경쟁 회사는 직원들과 접촉해 높은 연봉을 제시하며 그들을 빼내려고 한다.

게다가 그들은 마을에서 내로라하는 말썽꾼들이고 다혈질이다.

충격적인 소식과 장면을 목격한 날 그는 새로운 경쟁자를 찾아간다.

하지만 사무실엔 아무도 없고 야코는 열린 사무실로 들어가 그들의 최신식 장비들을 보게 된다.

별 볼일 없으리라 생각했던 그의 경쟁자들은 완전무장을 하고 그의 밥그릇을 뺏기 위한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

그리고 그의 진짜 불행은 시작된다.

 

시한부 선고와 아내의 불륜보다 더 끔찍한 일은 뭘까?

 

다혈질 경쟁자들 중 둘이 그를 만나러 간다고 말하고는 실종된다.

야코는 시체를 치우기 바쁘고, 경찰은 은근히 그를 떠보러 찾아온다.

야코는 이 상황에서 오로지 회사를 구하기 위해 홀로 싸운다.

과연 그는 복수를 하고 회사를 지키는 일을 동시에 해낼 수 있을까?

 


 

 

 

어떻게 사는 것이 최선인가? 어떻게 살아왔어야 하는가? 만약 삶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만약 일주일이 남았다면? 한 달이 남았다면? 난 이런 문제는 거의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니,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웃픈 상황들 사이로 죽음을 앞둔 야코의 사색들은 지나간 인생들을 되짚어 보게 만든다.

나 역시 어떻게 사는 것이 최선이고, 어떻게 살아왔어야 하는지 죽음이 얼마 안 남았다면 무엇을 할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야코라고 그가 그런 상황에 빠질 거라는 상상을 한 번이라도 해봤을까.

하지만 상황은 드라마처럼 펼쳐지고, 야코는 죽음을 앞둔 사람답게 두려울 것도, 무서울 것도 없다.

침착하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 남자의 모습은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오싹하기도 하다.

 

핀란드 소설은 처음이다.

그런데도 낯설지 않고 술술 넘어간다.

게다가 철학적이기도 하고, 무려 코믹하기까지 하다.

 

핀란드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야코의 아이스크림과 도넛은 속절없이 녹아든다.

열정적이지 않지만 열정스럽고, 과도하지 않은 거 같으면서도 과하다.

그리고 고맙게도 반전이 있다.

 

북유럽 스릴러의 '고요한 맛'

이제 시작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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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살인 - 죽여야 사는 변호사
카르스텐 두세 지음, 박제헌 옮김 / 세계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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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 동안 누군가를 때린 적이 없다. 그리고 마흔두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살인을 했다. 현재 업무 환경에 비추어보면 도리어 늦은 감이 있다. 인정하건대, 일주일 뒤 여섯 건이 추가되긴 했다.

 

 

업무 스트레스와 아내와의 불화, 사생활이 없는 의뢰인의 요구로 스트레스가 극심한 비요른.

그는 변호사다.

그의 의뢰인은 마피아.

삐걱거리는 가정생활을 회복해보기 위해 그는 아내가 요청한 명상을 배워보기로 한다.

 

사랑이 우리 사이에 놓인 연약한 식물이라면 가족이라는 화분에 분갈이를 하면서 제대로 돌보지 않은 게 분명했다. 한마디로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현대 가정 대게가 겪는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명상을 시작한 비요른은 일주일간 요쉬카 브라이트너에게 수업을 받고 그의 책을 받는다.

실생활에서 문제가 닥칠 때마다 호흡법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명상 책을 펼쳐서 지금 놓인 상황과 마음 상태에 걸맞은 부분을 찾아 읽으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매 챕터마다 브라이트너의 책에서 발췌한 문장이 나오고 비오른은 그 명상법에 따라 정신을 가다듬고 문제를 해결한다.

마피아 담당 변호사라는 신분은 각종 범죄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 방법을 의뢰인을 위해 여태 써먹었을 뿐이었다.

그 갈고닦은 방법을 비요른은 이제 자신을 위해 쓰기로 한다.

 

명상 수업으로 비요른은 조금씩 안정감을 찾아가고 관계 회복을 위해 아내와는 잠시 떨어져 있기로 한다.

온전히 쉬기 위해 쉬는 날은 휴대폰을 꺼둔다.

사랑하는 딸 에밀리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내기로 한다.

 

이렇게 단순하게 시작한 그의 새로운 삶은 에밀리와 호숫가로 주말여행을 떠나기 전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모든 것이 뒤바뀐다.

휴대전화를 꺼두는 걸 깜빡 잊어버린 순간이었다.

그 전화를 안 받았다면 비요른은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 소풍이 먼저. 그다음에 일. "

 

비요른에게 닥친 문제는 바로 그의 의뢰인 드라간이 사람을 죽이는 모습이 동영상에 찍히고 쫓기는 신세가 된 것.

비요른은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드라간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그를 차 트렁크에 태워 주말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명상 수업에서 배운 대로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를 멀찍이 떨어뜨려 놓는다.

트렁크에 있는 드라간을 꺼내주지 않고 철저하게 잊어버리는 것.

59.7도까지 올라간 트렁크 온도에서 그의 의뢰인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첫 문장을 읽으면서 이 남자에게 상당한 공감을 했다.

이 명석하고 부지런한 변호사가 명상을 통해서 어떻게 자신을 탈바꿈 시키는지를 알게 될수록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의뢰인을 죽이고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시체를 처리하고, 그의 대리인이 된 변호사 비요른.

드라간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본떠 모형을 만들고 그걸로 모든 명령을 전달하고 그걸로 자신의 입지를 만들어가는 수법은 그가 오랜 시간 공들여 세운 계획처럼 보인다. 하지만 비요른은 명상을 통해 절박한 상황을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뜨려 놓았을 뿐이었다.

 

스릴러의 격을 한층 업그레이드 한 작품이다.

 

이것이 계획된 이야기가 아니라서 더 흥미롭다.

그저 비요른은 순간순간 자기 자신에게 충실했을 뿐이었다.

명상법에 따라.

 

명상은 사람을 죽이고 코를 부러뜨릴 수 있다. 그리고 빙산도 녹일 수 있다.

 

 

 

명상으로 자신의 또 다른 인격을 각성한 살인자가 범죄를 저지르는 이야기. 라고 생각하고 읽어간 이 이야기는

엉뚱하고, 피식피식 웃기고, 뭔가 조마조마, 불안불안한 감정을 끝까지 몰아간다.

그래서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읽어 버렸다.

 

재밌는 건 비요른의 살인 행각과 사기 행각을 응원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가 잡히지 않기를 바라고, 더 많은 나쁜 놈들을 파괴하기를 바라며

아예 마피아 조직 전체를 접수해버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겨버렸다.

그건 아마도 비요른이 지극히 평범한 가장이기에 그런 거 같다.

회사일로 바빠 가족과 시간을 점점 보내기 힘들어지고, 자기가 번 돈으로 좋은 집에서 편하게 생활하는 아내는 항상 자신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게다가 마피아의 뒤를 봐준다고 은근 그를 경멸하는 아내의 모습에서 그는 자신이 이렇게 된 건 바로 당신이 누리는 모든 자유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고뇌 속에서 시시각각 쌓여왔던 그의 분노가 명상을 통해 조용하고, 깔끔하게, 새로운 시각으로 주변을 정리해가는 영리한 수법을 보여준다.

보통 사람들이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에 대해 은밀하게 감추고 있던, 상상만 했던 일들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해낸다.

드라간의 시체를 처리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능수능란한 연쇄살인범 같다.

 

문제는

이 이야기가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독일에서 명상 살인은 3권까지 나왔다.

그러니 우리는 이 이야기가 계속된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당연히 다음 편을 빨리 만나고 싶다!

왜냐하면.

비요른에게 살인의 욕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 유능한 형법 변호사는 자신이 아는 법률 지식과 자신이 훔쳐버린 드라간의 '힘'을 가지고 어떤 일을 벌이게 될까?

비요른은 드라간의 라이벌 보리스를 트렁크에 싣고 떠난다.

이로써 마피아 양대 산맥의 수장 드라간과 보리스는 비요른의 손에 넘겨졌다.

앞으로 비요른은 어떤 일을 벌이게 될까?

이 이야기가 시리즈로 연결된다는 사실이 참으로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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