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와 융 -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두 영성가의 가르침
미구엘 세라노 지음, 박광자.이미선 옮김 / BOOKULOVE(북유럽)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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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와의 만남

 

 

헤세는 갸름한 얼굴에 밝고 빛나는 눈을 하고 있었다. 위아래로 흰옷을 입은 그는 고행자나 고해자처럼 보였다. 백단향의 향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칠레의 작가 겸 외교관인 미구엘 세라노가 헤세를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이다.

그가 표현하는 헤세의 모습은 작가라기보다는 현자의 모습으로 비친다.

 

데미안을 처음 읽었을 때 헤르만 헤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그 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다.





우리의 관계는 결코 문학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마술적인 만남이었다.

 

 

뭔가 전문적인 글일 거라 짐작했던 이 책은 내 예상을 벗어났다.

미구엘 세라노의 글엔 경건함과 존경이 묻어 있었다.

매번 그가 헤세를 만나러 가는 장면에선 내 마음마저 경건해졌다.

칠레에선 작가들을 외교관으로 파견하는 사례가 있다던데 그가 인도 외교관으로 발령 난 것이 매우 합당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로 글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매우 인상적이다.

 

헤세가 융과의 교류로 마음의 안정을 얻고, 그 안정이 그의 작품세계에 담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헤세와의 마지막 만남 이후 평소 헤세를 만나고 싶어 했던 아들과 함께 헤세를 찾아가는 그의 설레고 뿌듯한 마음이 내게로 전해졌다.

하지만 헤세는 이미 영면에 들었고 존경하던 작가의 죽음을 뒤늦게 전해 들은 미구엘은 그날 헤세가 즐겨 듣던 음반을 사가지고 돌아간다.

 

헤세와 함께 음악을 들을 생각이었다. 헤세에게 내 감각을 빌려주어 음악을 듣도록 해드리고 동시에 그가 내 곁에 있음을 느껴보고자 했다.

 

 

그가 헤세의 죽음을 기리는 장면이 참 아름다우면서도 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헤세, 융, 세라노는 그들의 비밀 클럽에서 서로 연결되었던 영혼들이 아니었을까?



 

융과의 만남





제일 감동받은 것은 그를 에워싼 비밀의, 혹은 신비한 기운이었다. 게다가 이 온화한 인물은 잔인하고 파괴적인 면도 있어서, 불꽃이 여기에 불을 붙이는 경우 예기치 않게 그런 면이 불쑥 튀어나올 수 있었다. 상대방을 꿰뚫어 보는 그의 눈은 안경 너머를, 어쩌면 시간 너머를 보는 것 같았고, 코는 매부리코였다.

 

 

구스타브 융과의 만남은 내게 좀 어려운 부분이었다.

헤세와의 만남이 경건함과 조심스러움으로 이루어졌다면 융과의 만남은 진지함과 격렬함을 동반한 토론의 시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름만 알았던 융의 생각들을 대화체로 읽고 있자니 융이라는 사람이 가진 신비한 매력이 눈에 보이는 거 같다.

 

"박사님은 백인들이 머리로 생각한다고 믿으십니까?"

"아뇨, 그들은 그저 혀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저 말로만, 오늘날에는 로고스를 대신하는 말로만 생각합니다...."

 

제가 <자기>라고 부르는 것은 <자아>와 무의식의 사이, 양쪽에서부터 똑같은 거리에 있는 이상적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완성 상태, 혹은 전체성의 상태에 있는 개체성에 대한 가장 포괄적이고 자연스러운 표현일 겁니다.

 

"정신은 정신을 끌어들입니다. 꼭 만나야 할 사람들만 만납니다. 우리는 무의식에 의해 지시를 받는데, 무의식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인들에게 뭔가 조언을 해야 할 때 잘 해주는 말이 있다.

"너 자신에게 물어봐. 너의 무의식이야말로 너를 가장 잘 아니까. 너에게 가장 최선의 길을 알고 있는 건 바로 너의 무의식이야."

융에 대해 알지 못했어도, 나는 가끔 마음이 하는 소리가 진정한 것임을 깨달은 경험이 몇 번 있다.

이 무의식에 대한 대화를 들으며 융의 생각들 중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 뿌듯해졌다.

 

헤세와 융과 세라노는 서로 다른 듯 닮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본 거 같다.

마치 꼭 만나야 할 사람들처럼.

 

이 책에는 많은 것이 담겼다.

그것을 알아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그저 서로 왕래한 유명 인사들의 모습만 볼 수도 있고.

헤세의 사유와 융의 분석을 이해할 수도 있고.

그들의 필체를 만나 볼 수도 있고.

그들의 노년의 모습을 그림처럼 엿볼 수도 있고.

그들의 영적인 삶을 가까이 느껴 볼 수도 있고.

말로만 들었던 분들의 생각과 그들의 마지막을 느껴 볼 수도 있다.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는 읽은 자의 몫이다.

 

나는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을 얻었고

융의 무의식에 대한 것을 아주 조금 이해했으며

이들이 보통 인간과는 다른 영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에 경건함을 느꼈다.

 

세 사람 다 <인도>에 매력을 느꼈지만 가본 사람은 융과 세라노뿐이었다.

헤세가 인도에 가봤더라면 어떤 작품이 탄생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뭔가 심오하면서도 아득한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영혼이 이어졌던 헤세와 융은 조용히 영면에 들었다.

그들을 이어갈 '제자'들이 어딘가에 존재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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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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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 함께 가난을 나누면 된다는데

산다는 것은 남몰래 울어보는 것인지

밤이 오는 서울의 산동네마다

피다 만 오랑캐꽃들이 울었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이름을 들으면 저절로 떠오르는 싯구가 있다.

[울지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대표적인 시 '수선화'가 정호승 시인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시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읽고 난 지금은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진다.

 

 

1973년 [첨성대]로 신춘문예에 당선돼 데뷔한 정호승 시인은 현재까지 꾸준한 활동을 하고 계시다.

이 책에는 50년간 작품 활동을 해온 정호승 시인의 대표작 275편의 시가 담겨 있다.

총 7부로 나누어진 시집엔 시대적 상황과 함께 개인의 삶이 담겨있는 시대와 인생을 관통하는 시들이 모여있다.

 

 

1부의 시들은 아득한 느낌 속에서 삶의 불공평함이 엿보인다.

불행한 사람들의 고통이 시어를 통해 그려진다.

산업화 시대에 앞만 보고 달리던 그들의 모습이 애처로운 시선으로 담겼다.

 

 

남들은 다들 배우러 간다는데

원수놈의 돈을 벌어보겠다고

이른 새벽 종짓불 밝혀서 쑥국밥을 먹고

네가 고향을 떠나던 날

웬놈의 진눈깨비는 그렇게 뿌렸는지

마지막 편지

 

 

고향을 떠나 미싱사 보조로 일하면서 열심히 살았던 딸이 연탄가스로 목숨을 잃고

돌아오지 않을 딸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심정이 마음을 얼얼하게 만든다.

낳은 아이를 키우지 못하고 해외로 입양 보내야 하는 누이와 별을 잃은 사람들에게 별을 나눠주기 위해 구두를 닦듯이 별을 닦는 구두닦이.

전쟁통에 태어난 혼혈아들과 겨울 밤거리의 눈사람이 되어 버린 맹인 부부. 이들은 모두 과거에 있을 거 같지만 어느 시대에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시인은 말한다.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꿈을 받아라

꿈을 받아라





2부의 시들에선 최루가스가 날리고 여기저기 죽음이 흩날린다.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라' 다짐하는 겨울강에서 '내 인생도 곧 끝나는 거 같다'고 편지를 쓴다.

'새벽 술국을 먹으며 사북을 떠난다' 폐광의 설움을 뒤로하고 정처 없는 길을 떠나는 광부의 심정으로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하늘과 가까워져 / 이제는 새벽이슬이 내리는 사람' 전태일을 기린다.

'서러운 네 무덤가에도 봄은 오느냐'고 외치는 아들 잃은 어머니의 울부짖음 앞에서 시인은 '우리가 물결처럼 다시 만나야 할 날들을' 생각한다.

 

 

1, 2부가 시대를 관통한 삶을 그렸다면 3부부터는 우리가 익히 안다고 생각하는 정호승 표 시들이 담겨있다.

그동안 정호승 시인의 삶과 사랑에 관한 주제들의 시들만 읽다가 이렇듯 시대를 이야기하는 시들을 대하니 절로 마음이 다잡아진다.

과격하지도 울분으로 가득한 시가 아님에도 그래서 더 절절하게 생각하게 만들고 느끼게 해주는 시어들이 슬프게 아름답다.

 

 

시를 자주 읽는 편이 아니지만

가끔 일부러라도 찾아 읽는 시 앞에서 나는 복잡한 그 무언가가 스스로 정리되는 기분을 느낀다.

함축된 시어들 사이에서 복잡한 말들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그 순간이 좋아서 시를 읽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이 시집을 읽는 동안

누군가의 50년 세월을 함께 살아낸 기분이다.

인간사와 사랑과 종교와 생활이 모두 함께 담겨 있는 이 함축적인 인생은 시어가 그려내는 풍경 앞에서 그 세월을 음미하게 만든다.

고요하면서도 서정적인 말들은 잊고 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미처 알지 못했던 감정들을 되살려 낸다.

날선 글과 직설적인 언어가 판을 치는 이 시대에서 잔잔하게 세상의 모든 것을 그대로 비추는 물그림자 같은 시어들이 나를 다독여 준다.

 

 

좋은 글은

사람들에게 더 나아진 기분을 같게 한다.

정호승 시인의 시를 음미하면서 내가 예전보다 조금 더 나아진 어른이 된 거 같다.

8월이 그렇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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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 미세스 - 정유정 작가 강력 추천
메리 쿠비카 지음, 신솔잎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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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도 몇 번이나 든 생각이었지만, 이사가 우리 가족에게 어떤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까 불안해졌다. 지금까지는 윌이 말했던 산뜻한 새 출발과는 분명 달랐다.

 

 

대도시 시카고에 살다가 인구 1000명의 섬으로 이사를 온 세이디네 가족.

세이디는 이곳에 오는 걸 반대했지만 모든 상황이 이곳으로 오게끔 만들었다.

겨울 잿빛이 만연한 섬. 그 언덕 위의 집.

자살한 시누이는 그 집과 조카딸 이모젠을 남동생에게 남겼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와 적막한 이곳에서 온몸으로 그들을 거부하는 이모젠의 어두운 모습은 막 도착한 세이디의 마음을 할퀴어 놓는다.

 

여름 한때 관광객들이 다녀가는 동안을 제외하고는 조용하기 그지없는 섬.

섬이란 자체가 고립을 뜻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이곳에서 세이디는 하나밖에 없는 진료소에서 의사로 근무하기로 했다.

학교에서 퇴학당한 아들 오토와 자신의 실수는 아니었지만 자기가 맡아야 하는 수술을 맡지 않음으로써 대신 수술을 한 레지던트의 실수로 환자가 죽게 되자 세이디는 병원 응급실을 그만둔 터였다. 게다가 윌의 외도로 인해 그들의 가정은 깨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여러모로 상황이 안 좋았던 그들은 최선의 선택지로 윌의 누나가 남겨준 집으로 이사를 왔지만 적응하기는 힘들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 낯선 날씨.

직장이건 이웃이건 모두 세이디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이모젠은 극도의 반항을 하는 중이고 아들 오토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그래도 윌은 육아와 살림을 책임지면서 학부모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그러던 중 이웃 중 한 명인 모건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자잘한 범죄는 있었어도 살인은 없었던 이 섬에 세이디네가 이사 오자마자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그리고 세이디는 경찰이 자신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상황일까?

 

이 이야기의 화자는 4명이다.

세이디, 카밀, 마우스, 윌.

카밀은 세이디가 윌을 만나기 전 윌을 먼저 만난 사이지만 세이디에게 윌을 빼앗기고 그녀를 질투하며 윌의 주변을 맴돈다.

마우스는 어린 소녀로 어느 날 새엄마가 나타나면서 인생이 꼬인다.

 

세 여자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면서 독자들의 시선을 분산시킨다.

물론 어느 정도 읽게 되면 트릭을 알게 되고, 그래서 쉽게 단정하게 된다. 범인을.

그러다가 뒤통수 맞게 되는 것이 이 이야기의 매력이다.

알고 있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

 

우리가 어디를 가든 불행이 쫓아오는 것은 아닐지 생각했다.

 

 

불행을 키우는 건 세이디가 아닐까.

늘 불안불안하고 자신감 없어 보이고 자기 생각에만 빠져 있는 세이디가 답답하고

너무 나대는 카밀은 뻔뻔해서 뒤통수를 한 대 때려주고 싶고

마우스는 너무 가엽다가도 이 아이가 새엄마를 죽이는 건 아닐까 싶은 마음이 앞선다.

윌은 자신의 외도를 용서받기 위해 애쓰는 중이지만 그게 그리 오래갈 거 같지는 않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했다.

결혼으로 묶여서 가족을 이루어도 부부는 무촌이다.

내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자식이라도 다 알 수 없고,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어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부모라도 알 수 없다.

그러니 이웃은 말해 뭐 하겠는가.

 

누군가 내 가정을 파괴하려 하고, 촘촘하게 그물을 치고 조금씩 그 줄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사람 안에 수많은 나도 모르는 내가 존재하고 그것은 저마다 모습을 바꾸어 나를 만들어 낸다.

그저 범죄 소설로 치부해버리기에는 묘한 감상이 남는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의 학대는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그 상처가 어떻게 진화되는지 우리는 다 알지 못한다.

극복하며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그 <극복> 이란 것도 여러 단계의 과정이 있는 법이다.

아이들은 보호받아야 되고, 행복해질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지켜주지 못할 바에는 아이들 곁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이 옳은 거 같다.

 

사랑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마음이 남긴 미래의 일들은 누구의 책임일까?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람도 결코 그 책임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시간이 미움받는 것들을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탈바꿈시켜 준다면, 그건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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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호세 홈스 그림, 김수진 옮김, 스티그 라르손 원작, 실뱅 룅베르그 각색 / 책세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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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시리즈는 스웨덴의 사회파 기자이자 작가인 스티그 라르손이 10부작으로 계획한 시리즈였다.

자신의 분신인듯한 기자 미카엘 블룸크비스트와 천재 해커 리스베트 살란데르를 주인공으로 사회의 부조리함과 추악한 비밀을 밝히고자 한 추리스릴러로 기획되었으나 라르손이 3부작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출간 날짜를 얼마 앞두고 심장마비로 요절하고 만다.

최근 들어 스웨덴에서 라르손의 뜻을 가장 잘 이어갈 작가로 선정된 다비드 라게르크란츠에 의해 6부작으로 마무리되었다.

 

밀레니엄 시리즈는 스웨덴과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졌고, 최근에는 드라마로도 제작되고 있다고 하니 밀레니엄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르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거 같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래픽노블로 만들어진 밀레니엄을 읽었다.

 

거친 그림체가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밀레니엄 그래픽노블은 프랑스 시나리오 작가인 실뱅 룅베르그에 의해 각색되고 마블 코믹스에서 일러스트를 담당했던 호세 홈스의 손에 그려졌다.

원작을 깔끔하게 요약한 실뱅 룅베르그의 솜씨가 돋보이고, 거친 그림체로 이 이야기를 더욱 휘몰아치게 만들어 버린 호세 홈스의 실력은 마치 거친 평야를 질주하는 리스베트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결코 평탄한 삶을 살지 못하는 리스베트와 미카엘은 사회의 어두운 면을 세상에 알리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모습 같아서 더 주인공들에 대한 애착이 생긴다.

 

미카엘은 밀레니엄 잡지를 창간한 기자로 부패 재벌 한스에리크 벤네르스트룀의 공금유용혐의를 고발한 기사를 쓴다.

하지만 벤네르스트룀에게 한 방 먹고 밀레니엄을 살리고자 사표를 낸다.

그런 그에게 스웨덴 재벌 기업인 방에르가의 헨리크 회장에게서 가족사를 집필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문제는 가족사를 핑계로 오래전에 감쪽같이 사라진 손녀 하리에트의 사건을 재조사해 달라는 게 진짜 목적이었다.

게다가 그 사건을 재조사하는 대가로 한스에리크 벤네르스트룀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자료를 준다고 한다.

그런 한편 헨리크 방에르는 리스베트를 시켜서 미카엘에 대한 모든 정보를 입수한다.

 

리스베트는 관찰대상으로 자신을 돌봐주던 후견인이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악덕 변호사의 손에 넘겨지게 된다.

리스베트의 계좌를 움켜쥐고 그녀를 노리개로 삼으려던 변호사에게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복수를 하는 리스베트의 모습은 속이 시원하면서도 섬뜩한 면이 있다.

리스베트에겐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방에르 가문은 섬 하나를 차지하고 모여 살고 있다.

재벌 가문들의 가족사가 그렇듯 제정신을 유지하며 살고 있는 사람은 헨리크뿐인 거 같다.

2차대전의 나치 신봉자부터 여자를 노리개 이상으로 절대 생각하지 않는 자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히 움직이는 자가 있었다.

 

재벌 가문이라는 겉모습에 가려진 실제 그들의 모습들은 하리에트의 실종사건을 조사하면서 점점 드러난다.

미카엘과 리스베트는 하리에트의 실종이 그 이전부터 있었던 연쇄살인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폭력, 강간, 학대, 살인, 은폐, 실종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이 한 편의 이야기 속에 담겼다.

뭔가 뿌리 깊은 혐오와 편견들이 뭉쳐져서 거대한 살인의 행각이 이어지고 있었던 그들만의 세상.

그 세상 속에서 빠져나가기를 간절하게 원한 한 사람.

그리고 그런 행적을 어렴풋이 짐작하면서 살아오던 헨리크는 죽기 전에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가문을 위해 그것을 덮어버리는 게 아니라 미카엘과 리스베트를 통해 그것이 드러나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책을 읽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그래픽 노블을 읽으며 선명해진다.

헨리크는 죽음을 앞에 두고 모든 비밀을 파헤치기로 마음먹었던 거 같다.

그것이 자신의 가문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될지언정 가해자를 응징하고 피해자들이 세상을 보고 살 수 있도록.

 

거칠게 그려진 그림들이 프레임을 뚫고 나올 기세다.

보기 불편한 장면들도 담겨 있다.

어떤 장면은 책을 읽으며 상상한 것보다는 영화로 볼 때가 더 끔찍했고, 영화 보다 이 그래픽 노블이 더 끔찍하게 느껴진다.

가장 특징적인 것을 포착해서 그려내는 그림은 그래서 더 많은 것들을 드러낸다.

 

처음 밀레니엄을 읽었을 때 나는 리스베트를 주인공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북유럽 소설이 처음이었고, 그때까지 내가 접한 영미 스릴러 보다 훨씬 더 잔혹했던 이 이야기에서 나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여주인공을 만났었다.

그동안 여러 버전의 리스베트를 상상하고, 영화를 통해 보았지만 이 그림체의 리스베트만큼 강렬한 모습은 처음이다.

 

원작을 읽었던 사람들에게는 원작의 엑기스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이고

원작을 못 읽은 사람들에게는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흡수할 수 있는 기회인 밀레니엄 그래픽노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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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테임드 - 나는 길들지 않겠다 뒤란에서 에세이 읽기 2
글레넌 도일 지음, 이진경 옮김 / 뒤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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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것이 아닌 삶을 내 삶으로 여기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길들여진 대로가 아니라 자유로운 여자로서 내 영혼으로부터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싶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그럴 수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 이야기는 야생성을 잊은 철창 안의 치타 이야기로 시작한다.

동물원에서 태어나 사육사에게 길들여진 치타.

사람들 앞에서 재롱 떨 듯 야생성 비슷한 흉내를 내고는 철창 안으로 들어가서 마치 그곳이 내 집인 것처럼 순응해버리는 치타.

그 모습에서 자신을 본 글레넌은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느낀다.

 

세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결혼 생활 내내 남편은 바람을 피웠다.

부부관계를 개선해보기 위해 심리 상담을 받았지만 글레넌은 도저히 남편이 용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상담사에게 남편과의 섹스가 견딜 수 없다고 말한다.

솔직한 이야기에 대한 답은 '구강성교'를 하라는 것이었다.

글레넌은 결혼생활 내내 불성실했던 남편과 세 아이와 함께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각종 중독 문제도 가지고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내내 뭔가 자꾸 불편했다.

아마도 내가 이 글들에서 나 자신의 억압된 모습을 보게 되어서 그랬던 거 같다.

태어나면서부터 알게 모르게 지워진 사회적 규율들은 여자이던 남자이던 굴레가 되어 온몸에 동여매어진다.

마치 야생은 구경도 못한 채로 야생을 흉내 내야 하는 동물원 치타처럼.

 

 

이 글은 한 사람이 이런저런 사회적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감당하고, 싸우고, 이겨내고, 쟁취한 이야기다.

짤막한 에세이들로 이루어진 소설 한 편이다.

 

책을 읽기 전 수많은 찬사가 담긴 리뷰들을 먼저 접했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유명 인사들의 아낌없는 칭찬이 이 책에 쏟아졌다.

도대체 뭐길래?

 

책을 읽으며 내가 이런저런 굴레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그 굴레를 벗어나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여자이기에 감당해야 하고, 치러야 하고, 책임 지워지고, 참아내야 하는 것들의 부당함을 말하면서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나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봤자. 라는 생각이 내 안에 있었거나, 어쩜 내가 뭔지도 모른 채로 그렇게 살아지도록 강요받는 것을 당연시 해왔을지도 모른다.

 

나는 한국 여자들에게 <아줌마>라는 단계가 생성된 것이 바로 글레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도 엄마도 아닌 아줌마.

이 단어가 가진 강렬하고 강력한 힘은 알게 모르게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자들이 자신의 자아를 잃지 않기 위해

이 관습적인 사회에서 그나마 숨통을 트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 어떤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스스로 되어가는 단계가 <아줌마>가 아닐까.

어디에도 없는 <아줌마>는 우리 조상들이 일구어낸 본래의 야생성이 아닐까.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숨김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누군가가 주입시킨 모습이 아닌 내가 되고 싶은 내가 되자는 글레넌의 이야기는

우리 여성들에게 필요한 지침서 같다.

 

우리는 사회가 만들어낸 굴레에서 벗어나도 된다.

여자니까. 여자라서. 여자는. 이러한 굴레에서 벗어나서

사람이니까. 사람이라서. 사람은. 으로 살고 싶어졌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여자> 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여자이든, 여자가 아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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