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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아이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8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평점 :
"제 뒤에 있는 문을 닫아버리는 아이들의 의도는 둘 중 하나야. 그 너머의 세계에서 도망치려 하거나, 아니면 이 안쪽 세계로 도피하려 하거나. 그 둘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지. 하지만 당장은 명확히 설명할 방법을 모르겠군."
이번 <귀신 들린 아이>는 끝까지 범인을 찾지 못해서 각인된 작품입니다.
제가 웬만하면 중간에 느낌이 딱! 오는데 이 이야기에서 범인 찾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더라고요.
의심한 사람은 많았지만 범인과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는~
중세 시대 수도원엔 자식들을 맡기는 부모들이 많았네요.
보통은 신심으로 자식들을 종교에 봉헌하는 느낌으로 맡겼고, 스스로 수도사의 길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죠.
그러나 귀족들 중에서는 재산을 상속받기 어렵거나, 군인으로 참전해서 공을 세울만한 인물이 못 되는 이들이 주로 수도사가 되는 경우가 많았던 거 같습니다.
<귀신 들린 아이>에서도 다섯 살 난 아이를 수도사로 들여보내는 일로 수도원 내에서 찬반의 토론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 슈롭셔주의 영주가 자신의 둘째 아들 메리엣을 수도원에 맡깁니다.
본인 의지가 충만한 소년이었지만 캐드펠은 왠지 이 아이가 수도사가 되는 것에 반대하는 마음이 듭니다.
척 봐도 사람을 꿰뚫어 보는 캐드펠 수사의 눈에 이 아이는 자신의 말처럼 수도사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강제적으로 온 느낌이 들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그 아이는 얼마 안 있어 밤에 악몽을 꾸기 시작합니다.
온 수도원 사람들을 다 깨워버리는 지독한 악몽이지만 본인은 그걸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때, 비명이 울렸다. 마치 악마의 두 손이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혼곤한 잠을, 밤의 장막 그 자체를 찢듯, 그 소리는 깊은 어둠과 침묵을 날카롭게 가르며 길게 울려 퍼지다가 천장의 들보에 부딪치면서 박쥐들의 울음만큼이나 사납고 음산한 울림이 되어 사방으로 메아리쳤다.
속세에서 어떤 사건이 있었음을 짐작한 캐드펠과 라둘푸스 수도원장은 귀신 들린 아이로 불리게 된 메리엣을 지켜보게 됩니다.
그러나 메리엣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물건을 압수한 제롬 수사를 그 자리에서 목졸라 버리는 만행(제롬 수사가 당하는 걸 보고 만행이라고 생각한 독자들은 없을 듯. 다들 고소해했을 듯~ 보고 있던 캐드펠도 그랬으니~ ㅋㅋㅋ)을 저지릅니다.
그래서 캐드펠은 메리엣을 마크 수사가 있는 곳으로 보냅니다. 그곳에서 마크 수사의 보호 아래 메리엇을 보살피게 합니다.
지금 정국은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로 나뉘어 여기저기서 편을 갈라 대치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주교는 슈롭셔 인근 영주들의 의견을 파악하기 위해 피터 클레멘스를 파견합니다만 그가 돌아오지 않죠.
메리엣의 가문과 먼 친척뻘인 피터 클레멘스는 메리엣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떠난 뒤로 행방이 묘연하다 그만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됩니다.
누가, 왜? 피터 클레멘스를 죽였을까요?
그녀가 캐드펠 앞에서 보이는 태도, 가벼우나 치밀하게 계산된 그 모든 동작들은 캐드펠이 이를 제대로 주시하리라 의식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매력 없는 날벌레 한 마리까지 기어코 사로잡으려는 거미줄이랄까.
메리엣은 형의 약혼자 로즈위타를 연모하고 있었죠. 캐드펠 수사의 눈길마저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로즈위타.
메리엣의 수도원행은 과연 로즈위타뿐일까요?
도대체 범인이 누구인지 아주 궁금해하며 읽었던 <귀신 들린 아이>
어리석은 젊음의 치기
다 가졌으면서도 다 가진 줄 모르는 젊음의 어리석음.
모두의 기대를 독차지하는 사람의 그늘에서 시들어가는 젊음.
그 그늘을 알아보고 사랑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강단 있는 아름다움.
그러나 어릴 때부터 속속들이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마음이 과연 내마음과 같을까요?
욕심 앞에선 우정도 사랑도 없는 법입니다...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 마음도 같은 건지 모르죠...
그러나 진실은 어떡하던 드러나기 마련!
콩깍지가 떨어져 나가면 비로소 보이는 진실이 <귀신 들린 아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요.
우리 모두 콩깍지를 씌운 눈과 색안경을 낀 눈을 가지고 있죠.
같은 듯 다른 그 콩깍지와 색안경을 벗고 본인의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워야겠습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읽으면서 법이라는 게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배우는 중입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모든 사정을 알아내서 그에 걸맞은 죗값을 치르게 하는 중세 시대의 관용의 법이 왜 이리 뭉클할까요...
법은 있어도 법이 없는 이 현실에서 잠깐이라도 놓여나게 되는 시간이 한없이 달갑기만 합니다.
잔인한 폭력과 치졸한 법 다툼 없이도 공정하게 벌과 보상을 내릴 줄 아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
그래서 자꾸 이 시리즈를 읽게 되는 거 같습니다.
현실에 없는 따뜻한 공정의 시선이 고파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