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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2018년 독서정산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곱씹었다. 한 해 동안 어떤 책에 관심을 뒀고 어떤 책을 인상 깊게 읽었는지. 만족스러운 한 해는 아니었다. 천천히 깊게 읽는 게 여전히 어려웠고 그랬던 만큼 책을 읽고 바뀌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책에서 나를 찾았다.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현실을 직시하는 과정에서 위안을 얻었으니까.

한 해의 독서를 갈무리하고자 읽고 훑은 책 중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책과 괜찮았던 책, 다 읽지 못해 아쉬웠던 책을 위주로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2. 인상 깊었던 책들


의도하진 않았지만 뇌리에 깊게 박힌 책들이 주로 문학 작품이었다.


(1)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이 단어가 자꾸 나를 이 비극으로 이끌었다. 에픽하이의 백야를 통해 처음 접한 단어. 하마르티아(hamartia). ‘과녁을 벗어난 상태를 뜻하는 그리스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실(하마르티아) 때문에 불행을 당한 인물이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무지해서 행한 비자발적 잘못을 비극의 주인공이 범해야만 그가 연민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여기에서 '잘못'은 우리가 이해하는 ''와는 다른 개념어다. 인간이 불완전하기에 범하게 되는 어떤 해로운 결과를 지칭하는 말이랄까.' 그게 곧 하마르티아의 핵심, '무시해서 행한 비자발적 잘못'의 의미기도 하다. 그리고 하마르티아는 근대를 뒷받침하는 개념(자유, 책임, , 이성)이 포섭하지 못하는 부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나는 이 부분이 매력적이었다.

우리는 불완전에서 오는 '잘못'''와 섞어 쓴다. 또한, 개인의 자유가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덕분에(?) 한 개인에게 과도한 형이상학적 책임을 지우곤 한다. 하지만 불완전하기에 하마르티아가 가져온 결과 앞에서 전율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개체가 우리 인간이다. 고통 속에서 뭔가를 깨달아가고, 누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기에 오롯한 내 책임이 아님에도 많은 것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하마르티아가 가져온 비극적 결과를 회피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기 눈을 찔렀다. 그만큼 주체적, 능동적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심리적으로 학대하거나 책망하지 않았다. 덕분에 편안하게, 숭고하게, 영웅적으로 잠들 수 있었다. 수용하고 책임졌으나 자기를 책망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저기 뒤틀린 자아, 책임 없는 회피, 혐오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오이디푸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적절한 모델이다. 적어도 내게 오이디푸스는 좇고 싶은 하나의 이상이었다.


(2)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 수업



올해는 불교 관련 서적 뇌과학 서적과 함께 꽤 읽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불교 서적이 이 책이다.

김사업 씨는 동대학 교수였던 장휘옥 씨와 함께 교수직을 버렸다. 그리곤 경남 통영 앞바다에 있는 오곡도에 명상 수련원을 세웠다. 직접 돌을 나르고 나무를 다듬어서.

이 책은 불교계 잡지인 월간 불광에 연재된 글을 솎아 펴낸 것이다. 연재 때부터 ''했다. 읽어보면 이해가 간다. '무아, 연기, , 자성, , 유식, 마음, 열반, 해탈' 등 불교의 핵심 개념들을 구체적인 삶과 연결하면서도 깊이를 잃지 않았다. 정갈하다. 필력도 깔끔하다.


'종자'란 키워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유식에서는 모든 행위(, karman - 신체적 행위인 신업 + 말과 관련된 행위인 구업 + 생각과 관련된 행위인 의업)가 흔적을 남긴다고 봤다. 그리고 흔적들이 아뢰야식(알라야식)이라 불리는 '마음'에 빠짐없이 새겨진다고 생각했다.

유식에서는 이 과정을 '종자'라는 단어를 통해 설명했다. 어떤 행위든 모두 특정한 씨앗을 심는 것과 같고 그 씨앗은 하나의 잠재태로서 특정한 조건이 갖춰지면 현실태로 발현된다는 게 요지다. 그래서 사소한 게 중요하다. 뭐든 마음에 씨를 뿌리고, 그 씨는 언제든 조건만 갖춰지면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기 때문.

'이 정도면 괜찮겠지.'하는 생각이 들 때 '종자'를 떠올렸다. 내게 해로울 수 있는 건 아예 하지 않는 게 낫다.


(3) J.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4년 만에 홀든을 다시 만났다. 친숙하고 반가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4년 전 이 책도 그렇고 홀든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얘는 왜 이러는지.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이번에는 책을 거울처럼 봤다. 활자와의 공명이 표상하는 내 모습과 치밀하게 대화를 나눴고, 나를 설득했고, 책에서 샐린저의 메시지를 길어내고자 애썼다. 덕분에 책을 읽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서평을 쓰는 과정에서 비좁은 백지에 활자를 욱여넣는 게 고됐다.

뒤틀린 홀든과의 동일시에서 오는 위안만을 좇으며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읽으면 이 책은 독이 되기 십상이다. 세상을 향한 대책 없는 분노를 키워가는 데 기폭제가 될 만한 작품이라;; 하지만 샐린저가 하고 싶은 말은 있었다. 모호하고 해석의 여지가 많긴 해도. 핵심은 세상은 이분법적 시각으로 바라볼 만큼 단순하지 않으므로, 명확한 답이 없고, 따라서 자기가 처한 맥락에 맞게 자신만의 답을 찾아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


(4) 귀스타브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대단한 작가다. 보바리를 읽으며 플로베르에게 푹 빠졌다. 활자를 조탁하는 장인이 작가라면 플로베르라는 작가는 진정한 장인일 것이다. 루이즈 콜레에게 '스타일의 내적인 힘'만으로 지탱되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던 것처럼 그는 독자의 머릿속에 뭔가를 억지로 욱여넣으려 하지 않았다. 다만, 치밀하게 보여줬을 뿐이었다.

활자를 조탁한 장인의 솜씨에서만 매력을 느꼈던 것은 아니다. 낭만을 향한 갈망이 큰 탓에 현실의 권태를 견디지 못하는 엠마의 모습은 반면교사였다. 엠마에게서 형이상학적 갈망이 큰 탓에 현실의 권태를 견디지 못했던 나를 봤다. 또한, 그 갈망이 충족만 되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던 내 치기 어린 이상이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지를 다시 한 번 느꼈다.

엠마와 같은 갈망은 종국에는 허무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비현실적인 욕망은 현실에서 충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욕망이 있으면 그 욕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과정과 결과에 책임을 지고, 얻은 것은 감사해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실천 없는 욕망, 책임 없는 욕망, 수용 없는 욕망은 조금씩 자아를 갉아먹으며 자아를 파괴할 뿐이다.


(5) 필립로스, 에브리맨



이런 작가를 여태 몰랐다니. 책을 덮고 들었던 생각이다. 어떻게 200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에 죽음을 주제로 생각해볼 만한 고민거리를 이토록 탁월하게 담아낼 수 있는 걸까? 디테일한 묘사와 짜임새 있는 구조에 혀를 내둘렀다. 대단한 작가였다.


나는 이 작품을 '근대''죽음'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읽고자 했다.


자세한 맥락은 서평 후반부로 갈음한다.


<그는 죽는다. 자아에 약간의 균열이 가지만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은 채로, 완전한 자아를 향한 갈망을 버리지 못한 채로, 흠을 찾는 루페로 완전함을 본다는 착각에 빠진 채로, 그렇게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바로 그대로.” 그런데 그래서 어떻다는 건가? 딱히 뭐 없다. 로스는 죽음을 고독히, 괴롭게, 두렵게 마주하는 근대인의 초상을 냉혹히 묘사하며 적막을 선물할 뿐이다. 굳이 교훈을 끌어내자면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염두에 두면서 후회 없이 살도록 노력하라거나 죽음 자체를 제대로 준비하라는 정도.

그런데 그런 교훈은 일리치의 죽음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에브리맨이 현재 지닌 매력은 일리치보다 근대인에 더 가깝다는 데에 있는 것 같다. 더 개체화, 합리화, 세속화한 근대인 말이다. ‘가 아버지의 유품으로 루페나 다이아몬드 주머니가 아니라 시계를 고른 이유도 그 때문 아닐까. 세분화한 시간(시계)에 따라 사람을 규율하는 것은 근대의 특징이니까. 불멸을 상징하는 다이아몬드 주머니가 아니라 유한한 삶을 상기시키는 시계를 골랐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는 불멸과 구원을 믿던 아버지와 달리 철저히 세속화한 사람이었다. 문제는 유한함, 연약함, 불확실함 등을 회피, 배제하면서 완전한 자아를 갈망했다는 점이었다.

 

초월(, 불멸, 구원)을 배제한 근대인은 완전한 자아를 욕망했다. 그런데 초월이나 완전한 자아를 향한 욕망은 유한함을 직시하기보다 부정하고 회피한다는 점에서 매한가지다. 부정하고 회피해왔으니 유약함을 받아들이질 못한다. 주인공뿐만이 아니다. ‘징징거리는 걸 혐오한다며 자살한 밀리선트도 그렇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못 참는어떤 제조회사의 전직 최고경영자도 그렇고, ‘사람의 결함을 지워 불행으로부터 숨으려 하는피비도 그렇다. 그들은 자신의 나약함과 불완전함을 직시하며 살아가지 못했다.

 

주인공은 루페를 잘못 썼다. 루페는 십억, , 천조 캐럿짜리완벽한 행성을 보기 위한 게 아니었다. 흠을 보기 위한 것이었다. 완전, 완벽이 아니라 연약함, 결함, 불완전함을 말이다. 주인공이 시계뿐만 아니라 루페도 골라 자신의 불완전함을 들여다보고 받아들였으면 어땠을까. 삶이 조금은 덜 후회스러웠을까, 죽음이 조금은 덜 두려웠을까. 모를 일이다.

 

어쨌든 사람은 병들고, 늙고, 죽는다. 그러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6) 버드런트 러셀, 행복의 정복



3년 만에 다시 봤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그랬듯, 이 책도 다시 읽으니 더 많은 게 보였다.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읽혔던 이유가 있었다.

러셀은 추상적인 것, 뭉뚱그려 탐구하는 것을 지양했다. 의심하고, 문제를 명확히 정의하고, 원인을 구체적으로 탐구했다. 이런 합리적 사고를 통해 행복과 불행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며 처리해나가는 그의 태도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7)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영광이다. 흐라발을 알게 돼서. 상징과 은유가 만들어낸 공백 덕에 나는 이 책을 다양한 방식으로 읽었다. 책이라는 메시아를 매개로 자기만의 소중한 가치, 자유 등을 지켜나가려는 한탸의 슬픈 이야기로 읽기도 했고, 근대의 한계를 '개인의 자아, 사랑'이라는 키워드와 연결 지어 이야기하는 작품으로도 읽었다. 특히, 두 번째 해석과 관련해 같은 체코 작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교차해가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문학 동네 연말 결산 리뷰대회'에 아주 일부를 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깊이 풀어낼 능력도, 시간도 없었으니까.


(8) 구약성경(욥기)


성경을 조금 읽었었다. 특히, '유다'''이란 캐릭터가 흥미로워 잠시 파고들다가 명확한 매듭을 짓진 못하고 그만뒀다.

욥기는 '죄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고통'이라는 (기독교에서) 골치 아픈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다. 죄 없는 자의 고통을 받아들인다면, ‘신은 전능하지 않거나 신은 선하지 않다.’라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욥의 절규, 친구들과의 논쟁, 엘리후와의 논쟁이 보여주는 죄, 인과응보, 용서 등과 관련한 묵직한 생각거리도 좋았지만, 결말이 흥미로웠다.

결말 부분에서 야훼가 직접 등장해 욥을 꾸짖고, 자기의 위대함을 자랑한다. 예를 들자면,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거기에 있기라도 하였느냐? 네가 그처럼 많이 알면, 내 물음에 대답해 보아라.

누가 이 땅을 설계하였는지, 너는 아느냐? 누가 그 위에 측량줄을 띄웠는지, 너는 아느냐?


이렇게.

애초에 내게 신정론의 문제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욥기에 등장하는 야훼의 모습, ,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던 신의 모습에 주목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야훼는 '선한 신',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고 죄를 대신 짊어진 신'과 같은 이미지가 아니다. 인격화하기 이전의 신, 거칠고 두려운 자연에 가까운 신이다. 욥기를 보면 신약이 제시하는 예수의 이미지가 얼마나 기발한 지가 느껴진다. '인간과 같은 고통을 직접 느끼고, 그 고통을 헤아리고, 죄를 대신 짊어진 예수'라니!

욥기는 영화 "밀양", "시리어스 맨", 그리고 책 "오이디푸스"와 함께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앞서 말했듯 명확한 매듭은 못 지었지만, 답은 저 위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에게 있다는 사실 정도는 다시 한번 곱씹게 됐다.


(9) 강석경, 숲속의 방



"숲속의 방"의 소양은 "광장"의 이명준과 닮았다. 둘 모두 복잡한 현실이 개인과 집단의 갈등으로, 추상적인 말과 담론이 빚어낸 이데올로기적 갈등으로 재단되는 데 환멸감을 느끼는 캐릭터다. 둘 다 부조리 자체를 견디지 못하고, 즉 어떤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자아의 소멸'을 지향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나는 그 부조리 때문에 고뇌하고 갈등하는 소양에게 공감했다. 또한, 그 부조리 자체를 감당하지 못해 자꾸만 자아를 파괴하는 소양의 모습에 감정을 이입해 마음 졸였다. 출구는 찾지 못했지만, 내가 느낀 환멸감, 혼란이 근거가 없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에 많은 위안이 됐다.


3. 괜찮았던 책들 및 제대로 읽지 못해 아쉬웠던 책들


주로 인문학(문학, 불교 서적, 철학)과 과학(심리학, 뇌과학) 류의 책을 많이 훑었다. 따로 정리는 못하겠고 몇몇 서명을 옮겨놓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 형이상학, 존재론 등에 대한 고민의 위안처로 '들뢰즈, 스피노자, 붓다,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 뇌과학'에 더 확실히 기대게 됐다. 저 세 사람과 과학은 내게 종교가 됐다.


- 이반 일리치의 죽음, 위대한 개츠비, 지하에서 쓴 수기, 이방인, 햄릿






















- 공이란 무엇인가, 붓다 브레인, 설법하는 고양이와 부처가 된 로봇, 법륜스님의 금강경 강의,


 


















- 뇌와 삶의 의미, 불안, 뇌 과학 시간, 시냅스와 자아, 스피노자의 뇌




















- 고요한 폭풍 스피노자,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현대 미국 사상, 로지코믹스, 위대한 탈출, 옳고 그름, 우리는 사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위험한 도덕주의자, 시간 연대기, 객관주의와 상대주의를 넘어서, 차이와 반복 등.





 

 






























4. 18년의 독서를 돌아보며


작년에 세운 목표를 도중에 버렸다. 


2018년 독서의 핵심은 '좋은 삶'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지키지 못했다. 버렸기 때문. 

'좋은 삶이 뭐지? 뭐가 필요하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방구석에서 책을, 그리고 자아를 들여다본다고 알 수 있는 부류의 것이 아니었다. 또한, 작년의 내 목표는 복잡한 맥락을 사상한 추상적 원칙을 찾아 안정을 구하려는 이뤄질 수 없는 욕망에 기초했다. 그래서 나는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마음에 새겨야 할 명제들'이라며 끼적인 생각을 다 버렸다. 대신, '~해야 한다'에서 벗어나 하루하루 맥락에 따른 내 내면의 목소리를 좇아 자아가 통합되는 경험을 지향하기로 했다. 

문학 작품을 주로 읽게 된 것도 추상적인 이론에서 잠시 벗어나 구체적인 맥락으로 들어간 내 모습을 상상하기 위해서였다. 한계가 있긴 했다. 어쨌든 현실은 아니니까. 하지만 여러 문학 작품을 통해 여러 삶을 살아본 일이 자아의 내적 갈등을 봉합하는 데 도움이 됐던 건 사실이다. 책 때문은 아니었지만, 책이 주는 위안을 발판 삼아,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고 목표도 달성했다. 덕분에 과거를 어느 정도 매듭짓고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다.

이런 태도가 나를 어디로 이끌지는 모르겠다. 지금까지의 맥락과는 다른 뭔가를 지향하고, 공부하고, 고민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여하튼, 상황이 허락하는 한 부단히 읽고 쓰고 배우고 성장하며 살고 싶으니 뭐 어떻게든 되지 싶다. 아직 새로운 목표들이 명확하진 않지만 계속 나아가고 부딪치다 보면 길이 보이겠지.


'좋은 삶을 위한 독서'라는 목표만 버렸을 뿐, 작년에 지향하고자 했던 독서의 방식은 앞으로도 그대로 가져갈 것이다.


1)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또는 강박과 초조에 휩싸여 책을 읽지 않는다.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독서. 강박과 초조에 휩싸인 독서. 경계할 대상이다. 지식을 가져다줄 뿐 지혜를 가져다 주진 않으니까. 지식은 되레 내면에 굳건한 성을 세우기 위한 재료로 사용될 수도 있다. (헛 공부한 사람이 그래서 더 무섭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보다 읽고 싶다는 욕망에 집중하자. 많은 책을 삼킨 탓에 설사하지 말고 한 권의 책이라도 잘 소화시키자.


2) 책을 읽을 때 ''를 중심에 둔다. 

''를 중심에 두는 건 여전히 어렵다. 책의 요점을 파악한 후 저자의 생각을 자꾸 내 머리에 옮기려고만 한다. 그렇다고 책을 내 마음대로 읽고 싶다는 건 아니다. 책에서 내 생각만 찾아내기 십상이니까. 저자의 생각을 내 머리에 옮기려는 태도나 책을 마음대로 읽으려는 태도는 남는 것도 없고, 자아를 변화시키지도 않는다.

책의 핵심을 왜곡하지 않고, 책이 내게 주는 울림과 공명을 깊이 음미하자. 곱씹고, 또 곱씹자.


3) 당장 내가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책에 관심을 둔다. 

무분별한 호기심은 내면에 혼란만 가져다준다. 모든 책을 당장 다 읽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재 내가 관심을 두고 읽으면 좋을 책들을 하나 둘 읽어나가자.


2018. 12. 30

독서정산,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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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서정산이라는 걸 해보기로 했다.


 한 해 동안 어떤 책에 관심을 뒀고 어떤 책을 인상 깊게 읽었는가. 기록해두면 나중에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다. 어떤 책을 읽었는지 모두 기록하거나 몇 권을 읽었는지 정확히 기록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어차피 독서는 권수가 아니라 '얼마나 밀도 있게 읽었는가' '책을 읽은 후 내가 얼마나 바뀌었는가'와 같은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니까. 읽고 훑은 책 중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책, 다 읽지 못해 아쉬웠던 책을 위주로 기록을 남겨보려고 한다.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라서 나중에 또 생각나는 게 있으면 추가해야겠다.


2. 인상깊었던 책들.


 올해는 거의 심리학 책을 위주로 읽었다. 올 한 해의 핵심이 내 내면이었기 때문이다. 주로 '나는 어떤 사람인가?'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었다. 순서는 순위와는 상관없다.


(1) 제롬 케이건, 성격의 발견.


 


 성격과 관련해 심리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저작이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제롬 케이건이 쓴 책이다. 성격의 형성에서 개인의 기질이 끼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환경, 경험으로만 성격을 분석하는 태도를 비판하면서도 생물학적 결정론에 빠지는 걸 거부했다. 흥미로운 주장을 설득력있게 논증하는데 책 자체는 무지 딱딱하고 지루하다. 이 책을 읽고 노력만하면 나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확실하게 버렸다. 내가 바꿀 수 있는 나의 부분들은 제한적이다. 프로이트, , 아들러 심리학과 조금 더 결별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 책이기도 하다.


(2) 마틴 셀리그만, 낙관성 학습.



 마틴 셀리그만은 설명양식을 바꾸면 행복한, 성공적인,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낙관성을 기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설명양식은 왜 이런저런 일이 일어났는지 자기에게 습관적으로 설명하는 특정한 방식을 지칭하는 말이다. 셀리그만에 따르면 낙관적인 사람과 비관적인 사람은 개인화, 만연성, 지속성의 측면에서 설명양식에 차이가 있다. 그는 비관적 설명양식을 ABCDE 모형을 통해 낙관적 설명양식으로 바꿀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셀리그만이 제시하는 ABCDE 모형은 일상에서 꾸준히, 의식적으로 실천하는 게 쉽진 않지만 정말 효과가 좋다. 외부 사건이 우리에게 특정한 감정을 바로 촉발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핵심이다. 사건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 사건에 대한 특정한 해석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인지심리학에 대한 원리를 알게됐다. 너무 늦게 알게 되어 아쉬운 책. 덕분에 사람이 낙관적으로 많이 바뀌기도 했다. 관성을 고치기 어려워 고생이지만 전처럼 내가 느끼는 감정에 덜 혼란스러워하게 됐다.


(3) 너세니얼 브랜든, 자존감의 여섯 기둥.



 자존감에 관한 고전이다. 너새니얼 브랜든은 자존감을 '자신이 삶에서 마주하는 기본적인 도전에 맞서 대처할 능력이 있으며, 행복을 누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내적 경향'으로 정의한다. 자존감의 두 핵심 요인은 자기 효능감과 자기 존중이다. 전자는 '삶에서 마주하는 기본적인 도전에 맞서 대처할 능력이 있다는 믿음", 후자는 '자신이 행복을 누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너새니얼은 자존감을 기르기 위한 여섯 가지 기둥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책을 덮으며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난다. '나를 사랑하라.'는 말의 의미, 느낌을 처음으로 알게해준 책이다.


(4) 일레인 아론,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감수성이 무지 풍부한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아서 그런지 나도 감수성이 적잖게 풍부하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은 대개 민감한 기질을 타고났다. 이 책은 그 민감한 기질에 대한 다양한 설명을 제공한다. 일레인 아론에 따르면 민감한 사람은 외적, 내적 자극을 섬세하게 받아들이는 능력을 타고났다. 같은 자극에도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이 다르다. 그는 민감함은 결점이 아니라 특별한 것이며 긍정적인 측면도 많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민감함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은 책이지만 가독성이 썩 좋진 않았다. 추상적이라고 해야하나. 뒤쪽으로 갈수록 책이 재미없어져 대충 훑어봤던 기억이 난다.


(5) 브레네 브라운,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브레네 브라운은 TED 강의로도 유명한 심리 연구가, 강연가이다. (말을 재밌게 잘하니 TED 강의를 보면 좋을 것 같다. 흥미롭게 말을 하려다보니 핵심을 논리 정연하게 전달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이 좀 늘어지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브레네 브라운은 이 책에서 '수치심'을 중점적으로 설명한다. 수치심이란 '나에게 문제가 있어서 사랑받거나 소속감을 느낄 가치가 없다고 느낄 때 겪는 극심한 고통'이다. 수치심이 무서운 이유는 존재에 관한 감정이라는 데에 있다. 행동은 고치면 되지만 존재가 부정당한 사람은 무기력해지고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이 책을 읽고 '수치심'이란 단어가 내 삶의 한 가운데 들어오게 됐다. 내 무의식 속에 내 존재에 대한 뿌리깊은 수치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6) 라이언 홀리데이, 에고라는 적



 여기에서 EGO란 프로이트식의 에고는 아니다. 라이언 홀리데이가 말하는 에고란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건강하지 못한 믿음'이다. 누구보다 잘해야 하고, 대단해야 하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과잉된 자의식이다. 친구가 추천해줬는데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지나친 자의식, 특히 도덕적 강박, 도덕적 자의식, 도덕적 소아병에 조금씩 균열이 가던 중 이 책을 읽고 버드맨을 본 후 멘탈이 나갔다. 내 세계관의 비현실성을 절절히 깨달아버려서 무척이나 괴로웠다. (분명 모르고 있던 건 아니었는데 멘탈이 나갔다는 건 내가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았단 증거겠다 싶다.) 관성 때문에 한번에 고치긴 쉽지 않지만 그래도 꾸준히 나아지고 있다.


(7) 마거릿 폴, 내 안의 어린아이.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주제로 책을 읽어봐야겠다 싶어 빌린 책 중에 하나다. 다른 하나는 존 브래드 쇼의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상처받은 내면아이에 대한 지식, 정보를 간단 명료하게 얻기엔 위의 "내 안의 어린아이"가 좋고, 구체적으로 내면을 탐색하는 데에는 존 브래드 쇼의 책이 좋다.

 사실 브랜드 쇼의 책을 여기에 넣고 싶었는데 9월부터 붙잡고 있던 걸 아직도 다 읽지 못했다. 직접 서술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 탓. 청소년기에서 막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8)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리사 펠드먼 배럿은 노스이스턴대학의 심리학 석좌교수다. 저자는 책에서 매우 파격적인 주장을 전개하는데 바로 "우리는 스스로 감정을 구성하는 설계자"라는 사실이다. '감정에 대한 고유한 지문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을 읽을 수 있다.'는 통속적인 견해를 저자는 반박한다.

 감정코칭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그들은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 감정을 읽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우리 내면의 정동(저자는 감정과 정동을 구분한다. 저자에 따르면 정동은 감정 이전의 단순한 느낌이다.)에 감정이란 이름을 붙일 때도 그렇다. 우리는 내면의 감정을 '읽는다.'고 표현하지만 과연 그런가? 감정이 개념, 범주 이전에 존재하고(실재), 우리는 그 감정을 읽는(실재를 인식)다는 이야기는 적절한가? 저자는 책에서 이런 질문에 대한 철학적, 과학적 탐구를 진행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하반기 최고의 책으로 꼽고 싶다. 위의 심리학 책들은 순전히 내 개인적 효용에 따라 선택한 것이지만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개인적 효용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매우 훌륭한 책이어서.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과학철학적 세계관이 실제 과학에 반영되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를 직접 보여준 책이었다. 조야한, 소박한 실재론을 비판하면서도 상대주의로 빠지지 않았다. 최고다. 멋진 책. ㅠㅠ (소장하고 싶지만 책이 비싸 도서관에 신청했던 책인데 친구가 사줬다. 사랑한다 민수야)


(9) 장하석,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책이다. 토대론과 정합론, 실재론과 관념론을 종합하는 방식에 관심이 있어 읽었는데 최고였다. 사변적 논의를 정말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서도 과학사를 곁들여 철학적 내용에 구체성을 부여해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는 궁극적으로 실재주의, 진보적 정합주의, 다원주의를 주장한다. 산소이론과 플로지스톤이론의 경합, 그 경합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이득 등을 설명한 부분이 아직도 인상깊게 남아있다.


(10) 남한산성



 김훈을 향한 내 마음은 좀 복잡했다. 여성을 묘사하는 그의 방식 때문에. 그의 문체는 좋아하지만 글이 불편했기 때문에. '화장'''를 읽을 때였다. 솔직히 글 읽는 게 너무 불편했다. 화장에서 아내가 너무 처량하게 묘사 돼 묘사된 모습만으로도 가슴이 너무 아팠다. 남편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장면은 정말;;

 문체는 존경하지만 세계관-가치관이 맞지 않아 뭔가 불편한, 그런 어중간한 마음을 김훈에게 가지고 있던 때에 이 책을 읽게 됐다. 이 책을 읽을 때부터 목적 의식은 분명했다. 김훈은 도대체 어떤 세계관을 가진 사람인가? 그래서 처음부터 역사적 고증, 치욕의 역사 같은 키워드는 아예 배제했다. 물론 이런 맥락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 조선의 외교를 이해하려면 조선이 속해있던 동아시아의 세계체제(책봉조공)를 이해해야하고, 전쟁이 발생했던 구체적인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근대적 사고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견지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런 것들은 이 소설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 김훈의 인터뷰를 여럿 찾아보며, 그가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게 무엇이었는지 파악하려 애썼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김훈의 세계관, 가치관에 무척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훈은 소설에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논리와 생존의 당위성만이 존재하는 세계, 그런 세계를 바꾸지 못하는 허망한 말들, 말의 외부에 있으면서 먹고살아야 한다는 당위를 따라 무참함을 견디며 살아가는 백성들을 묘사했다. 그의 소설에선 삶의 구체성이 결여된 담론이 비판받고, 직접 현실과 부딪치며 노동하는 사람들이 부각된다. 나는 김훈의 허무주의적 논리를 받아들이긴 어려웠으나, 삶의 구체성이 결여된 뚱딴지같은 말들에 대한 비판적 관점, 노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긍정적 시선에는 깊이 공감했다.

 직접 살림살이를 하고 육체를 쓰며 일하는 사람들을 동경하고, 엘리티즘에 사로잡힌 허망한 말들에 어떤 염오를 느끼고 있었단 사실을 확실하게 자각하게 됐다.


(11) 나의 아름다운 정원



 동구는 말수가 적어 말하기보다 벙긋 웃는 일이 더 편한 아이다. 감수성이 풍부해 다양한 느낌을 늘 마음에 품고 있다. 섬세한 감성을 언어란 도구에 담는 게 벅차 글을 읽고, 쓰고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심윤경은 "나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가족에게 지진아로 규정된 동구가 동생 영주를 돌보고 주리 삼촌과 박영은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그려냈다. 심윤경이 소설에 담은 성장의 핵심은 '이해'였다. 이해하기 어려웠던 자기 자신, 이해할 수 없었던 부모님과 할머니를 이해하게 되면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뭘까'라고 동구는 묻는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 비록 그 길이 쉬운 길은 아니지만 - 선택하며 소설은 끝이난다.

 내면의 다양한 느낌을 언어로 잘 벼리지 못해 말없이 벙긋 웃는 동구의 모습에서 내 어릴 적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내가 성장을 그토록 갈망했으면서도 성장하지 못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 자신을 깊이 이해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톨스토이는 성장의 출발이 나 자신에 대한 이해에 있다고 하지 않던가.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인 후 지금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했던 동구의 지혜와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3. 제대로 다 읽지 못해 아쉬웠던 책.


 제대로 다 읽지 못해 아쉬웠던 책은 대개 역사, 정치, 경제, 사회, 철학, 과학 등과 관련된 서적들이다. 구체적인 주제로 이야기해보자면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정치 사상사, 신자유주의와 맑시즘이 아닌 다른 정치경제학, 경험주의-실증주의-조야한 실재론과 반실재론-포스트모더니즘을 종합하길 시도하는 비판적 실재론과 관련된 과학철학과 사회철학, 롤즈와 드워킨 등 자유주의적 정의론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기본소득론, 물리학 입문, 수학 입문, 필연과 우연에 관한 철학적-역사적 성찰, 좋은 삶에 관한 철학적 성찰 정도가 떠오른다.

 묵직한 책을 읽기 전에 읽어야 하는 입문서, 개론서를 제외하고 떠오르는 것을 나열해 보려고 한다. 아마도 아래의 책들은 내년에도 몇 권을 제외하곤 읽지 못할 게 분명하다. 내년에도 나 자신에 대한 이해, 성장, 현실을 잘 살기 위해 필요한 지혜에 초점을 맞추고 책을 읽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중에, 내가 이맘 때 이런 분야와 책들에 관심을 두고 있었구나, 란 사실을 알게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기록해 놓으려 한다.


* 마키아벨리, 군주론 : 마키아벨리는 곽준혁 교수의 논문을 읽고 관심을 두게 됐다. 내가 읽었던 군주론은 최장집 교수가 해설을 단 후마니타스의 "군주론"이었다. 집에 길 출판사의 "군주론"이 있긴하지만 처음 입문하기엔 후마니타스의 "군주론"이 더 좋다는 생각에 후마니타스의 역본을 집어 읽었다. 절반 정도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흥미롭게도 읽으면서 정치적 고찰보다 마키아벨리의 삶에 대한 태도에 더 관심이 갔다. 포르투나와 비르투 사이의 투쟁에서 내가 평생 지니고 싶은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이는 우연과 필연을 둘러싼 내 관심과도 맞물린 지점이었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 내가 처음으로 끝까지 읽은 철학서적이 아닌가 싶다. 인생의 주요한 화두가 '행복'이었던 시절 행복을 해명한다는 이 책을 기다리면서 무척 설렜던 기억이 난다. 5년 전, 군대에서 공군 수첩에 이 책을 빼곡히 필사했다. 통째로 필사한 처음이자 마지막 책이다. 그땐 무식하게 했다. 물론 내용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ㅎㅎ 거슬리의 책이나 길 출판사에서 나온 서양고대철학1,2 시리즈라도 읽고 봤으면 남는 게 많았을 텐데 좀 아쉽다. 올 해 삶의 목표를 다시 세우는 과정에서, 좋은 삶을 사는 게 내 목표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좋은 삶은 무엇이며 좋은 삶을 살기 위해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두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조언을 얻어보기 위해 오랜만에 다시 꺼냈다. 슬프게도 책 대부분을 아직 거의 읽지 못했다.


*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 : 마크 블라이스의 "긴축"을 읽다가 관심을 두게 됐다. 블라이스가 폴라니와 허시먼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평소 주류경제학과 고전적 자유주의를 아직도 신봉하고 고집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워 두 분야를 비판하는 서적에 관심을 두고 있었기에 폴라니의 책을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홍기빈의 도움을 얻어 조금 읽어보다가 말았다. 폴라니는 매우 흥미로운 논점을 여럿 제기한다. 자기조정시정이 어떻게 사회를 망가뜨리는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시장-교환에 대한 생각이 현실과 얼마나 괴리됐는지, 호모이코노미쿠스라는 개념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4차산업혁명이 왜 사회적 혁신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지 등등.


* 앤드류 콜리어, 비판적 실재론 : 로이 바스카의 비판적 실재론을 나름 종합해 풀어쓴 입문서다. 실증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적 관점과 들뢰즈의 존재론에 대한 관심이 맞물려 읽게 된 책인데 무척 흥미로우면서도 어려웠다. 비판적 실재론은 초월적 실재론과 비판적 자연주의를 조합한 용어로 로이 바스카가 주도했던 철학적 사조다. 로이 바스카는 비판적 실재론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의 관념론적 경향과 경험주의를 비판적으로 종합하고자 했다. 비판적 실재론은 이영훈 등 한국 근대화에 관심이 많은 뉴라이트 계열의 경제학자들의(주류경제학자, 고전적 자유주의 신봉자) 학문적 방법론에 어떤 결함이 있는지 드러내는 데 매우 유용한 이론이다. 강원대 사회학과 이기홍 교수가 비판적 실재론을 국내에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 필리프 판 파레이스,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 - 도널드 드워킨, 자유주의적 평등 : 정의론, 자유, 평등과 같은 추상적 개념을 철학적으로 성찰하는 책들이다. 두 책 모두 목차, 서문, 1~2장 정도까지 밖에 읽지 못했다. 쉽게 읽을 만한 책은 아니었다. 특히,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을 읽으려면 자유주의 정치철학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필요했다.




















그 외, E.K. 헌트의 경제사상사권력자본론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역사와 우연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리차드 쿠랑의 수학이란 무엇인가논증의 탄생안나 카레니나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등이 떠오른다논증의 탄생안나 카레니나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은 내년에 읽어야 할 책들이다문제가 없으면 문제를 만들어서 생각하려는 버릇 때문에수학에 취미를 들여볼까 생각 중이라 수학이란 무엇인가도 읽어볼까한다수학을 수능 본 이후 공부한 적이 없는데최근에 내면에 수학 공부에 대한 조갈이 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취미로 수학 공부 좀 해보고 싶다.





























4. 17년의 독서를 돌아보며


 올 해엔 책을 읽는 방식에 많은 변화가 있던 해였다.


1) 막연한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강박적으로 책을 읽던 습관을 고치기로 했다.


 강박적으로 읽은 책은 지식을 가져다줬을 뿐 지혜를 가져다주진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고도 나는 변하지 못했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보다 '읽고 싶다'는 욕망에 집중했고, 많은 책을 읽기보다 한 권의 책을 더 잘 읽으려고 노력했다.


2) 책을 읽을 때 ''를 중심에 두는 연습을 했다.


 책을 읽을 때도 평상시의 관성처럼(나를 중심에 두는 게 아니라 타인을 중심에 두는 관성) ''를 중심에 두지 않고 ''을 중심에 두는 버릇이 있었다. '저자가 책에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저자의 생각을 내 머리에 옮기려고만 애를 썼지 책을 읽은 후 내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부여잡고 곱씹으려는 노력은 게을리했다.

 하지만 이렇게 책을 읽으니 남는 것도 별로 없었고, 남는 게 없으니 내가 변화하지도 않았으며, 책을 읽은 후 복잡한 느낌만 쌓여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안 좋은 경험을 자주하기도 했다. 책의 핵심을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책이 내게 주는 울림, 느낌을 깊이 음미하며 몸으로 느끼고자 노력하기로 했다. 그런 후에 내 목소리를, 나만의 방식으로 하는 노력을 해보기로 했다.


3) 당장 내가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책들에 관심을 두려고 노력했다.


 관심의 폭이 너무 넓다보니 읽어보고 싶은 책의 주제가 매우 다양하다. 그래서 늘 읽고 싶은 책의 우선 순위를 설정하는 게 무척이나 어려웠다. 무분별한 호기심은 이 책을 붙잡았다가 저 책을 붙잡았다가 하는 등 하나를 끈질기게 붙잡는 걸 방해하는 원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책을 당장 다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현재 내가 관심을 두고 읽어야 할 책들을 하나 둘 읽어나가는 게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다. 물론 우선 순위가 떨어질지라도 흥미를 위해 다른 주제와 분야의 책을 읽을 수는 있다. 중요한 건 큰 줄기를 세우는 일이다. 이런 다짐을 마음 속에 새기기로 했다.


 내년에도 1), 2), 3)을 실천하는 데 힘을 쓰며 책을 읽어나갈 계획이다.


 내년 독서의 핵심은 이것이다. 좋은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좋은 삶에 대한 나만의 정의, 좋은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한 분류 및 고찰, 좋은 삶을 살기 위해 해야 하는 것들, 그리고 실천하기 위해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들을 주제로 생각해보려고 한다.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내가 내년에 마음에 새겨야 할 명제들은 다음과 같다. 존재에 대한 뿌리깊은 수치심과 죄책감, 죄의식을 덜어내기. 유아적 도덕관에서 벗어나기. 자기 회의에서 벗어나기. 불완전하고 여러모로 부족한 나를 이해하고 포용하기. 나만의 목소리와 욕망을 찾기. 건강하고 튼실한 자아를 향해 성장하기.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객관적 요건들을 받아들이기. 구체적인 삶, 현실적인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실용적 지식과 기술 익히기. 돈과 생산적이고 건전한 관계 맺기. 구체적인 삶의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위한 동기부여를 확실히 하고, 실천을 위한 용기를 기르기. 관찰자가 아니라 참여자로 현실을 적극 살아가기. 현실을 참여해 실천하는 걸 막는 장애물 파악하고 극복하기.

 내년에는 이런 명제를 실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을 읽을 것이다.


2017.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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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5-05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지신거 아닙니까 도전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책잡힌사람 2018-05-08 22:4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ㅎㅎ 실천이 쉽진 않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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