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무늬 민음의 시 88
이상희 지음 / 민음사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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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이 몹시 얇고 시들도 모두 짧은 편이라 정말정말 빨리 읽었다. 단상들,이란 생각이 든다. 이 시집 안에 시들은 단상들이구나 하는. 그런데 아파하는 사람의 단상이란 어디에도 자신의 그 아픔을 놓지 못하고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되나 보다. 해설의 김혜순 시인의 말이 이 시집에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너는 언제까지 가늘게 앓기만 할꺼니?' 가늘게 앓는 소리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악몽을 꾸고 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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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논리야 이야기로 익히는 논리학습 1
위기철 글, 김우선 그림 / 사계절 / 199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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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초등학교 때 읽었다는 책을 나는 이제 읽는다. 내가 초등학교 때 뭘 읽었지,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원래는 논리학입문 이런 책을 읽으려고 했다. 논리적이지 못한 언술은 타인을 짜증스럽게 한다는 경험을 하고, 나 역시 그다지 논리적인 인간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책이라도 한 권 읽어 1%나마 논리적이고 싶어서? 논리학입문이라던가 하는 그런 제목의 책을 몇 권 살펴봤지만 아무래도 너무 답답해 보여서 도저히 읽을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조금 가볍게 시작해보자, 하고 고른 책이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어린이들'이란 표현, 중학교에 가면 배우게 될 것이다, 등의 저자의 말을 보고 핀트가 조금 어긋났나 싶었지만 그래도 한 번 마음먹었으니, 하며 계속 읽었다. 평소 동화나 교훈적인 이야기에 그다지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 스무 편이 넘는 이야기들이 재미있다는 점은 신기하기도 했다.

초등학생 때 이 책을 읽었어도 재밌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꽤 빨리 책장을 모두 넘기고, 또 거기 있는 문제들도 풀어보고, 도움말도 차근차근 읽고.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별로 논리적이지 못한 나 같은 애가 읽어도 들어본 개념들이 많았지만, 이야기랑 대비시켜 가며 그 개념들을 오랫만에 개념 자체로 떠올려보니 꽤나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아직 내가 더 논리적이어지진 않았을 거다. 그냥 차근차근 가야지 마음 먹고 봤을 때, 꽤나 유쾌한 시작이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 단순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논리학 책 몇 권 읽는다고 갑작스레 인간이 논리적으로 변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별로 논리적이지 못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책을 손에 잡긴 어려워도 그 책과 만나고 나면 즐거우니, 그저 경험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안 읽어본 분이 있다면 읽어보시면,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이 웃겨 혼자 키득거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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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니체전집 13
프리드리히 니체 / 책세상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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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처음으로 읽은 철학서이다. 철학이라는 것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인해 아무래도 철학서를 기피하는 경향이 나도 모르게 내게 있었던 것 같다. 운이 좋았던 걸까? 이 책은 철학서, 하면 생각나는 딱딱함이 없었다. 해설에도 나와있지만 스토리가 있기 때문일까. 비교적 쉽게 쑥쑥 읽히는 글이었다. 어려운 내용도 없고 대부분 다 이해가 간다.

요새는 누구도 normal하길 원하지 않는다. 나라는 주체의 확립이 요새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라면, 니체의 이 책은 꽤나 괜찮은 책이다. 차라투스트라의 견고함이 때로는 받아들이기 힘들기도 하지만, 우리가 이제껏 믿어왔던 진리에 대한 차라투스트라의 생각은 충분한 공감의 여지를 제공한다. 착하게 살라는 옛이야기에 느끼는 실증을 극복해주고 있다.

그러나 해설에서 보면 이 책은 니체 철학의 입문서라기보다는 니체 철학의 종합서에 가깝다고 한다. 내가 니체의 책 중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은 것은 좋지 못한 선택이었을까, 의심스럽기도 했지만 읽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방학 중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 것은 '시란 무엇인가'라는 애매한 질문에 시달리던 무렵, 누군가가 너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읽어보았냐고 해서 이다. 그는 그 책을 읽고 나면 다시 이야기를 하자고 했고 오기가 생긴 나는 방학이 되자마자 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왜 그가 그렇게 물었던가 가끔씩 생각해보게 되는데 아마도 시인이 쓰고자 하는 것은 모두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니체의 인간에 대한 이야기,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존재이다라는 말을 되새겨 보는 것이다. 또한 내가 이제껏 해왔던 많은 도피들의 비겁함을 한층 반성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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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병철 옮김 / 범우사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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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가 다 그런지 모르지만 나는 고전에 대한 막막함을 안고 있는 사람이다. 고전을 몇 권 읽고 딱히 재미가 없었다는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고전을 집어들면 말 그대로 고전(^^)할 것이라는 예감이 먼저 드는 것이다. 그래서 헤밍웨이의 그 유명한 소설 <노인과 바다>도 나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그것은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잉그리트 버그만 때문이었다. 희대의 미인 잉그리트 버그만의 영화를 찾으러 비디오 가게를 돌아다녔지만 너무 오래된 영화라며 없는 통에 결국은 책을 잡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너무 어렸다. 지금 기억하기로는 중학생 무렵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마리아와 조던이 만나는 장면도 보지 못하고 책을 덮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서 우연히 다시 읽게 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그때와는 달랐다. 아직도 나는 고전이라면 약간은 터부시하고 마는 경향이 있어서 커다란 결심을 하고 집어든 책이었는데(선생님들이 제발 고전 좀 읽으라고 법석을 하셨는데 도서관에 이 책이 가장 먼저 눈 앞에 있었던 것이다) 그때처럼 처음부분은 조금 힘이 들었다.
그러나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이 책을 초반부에서 어찌 평가할 수 있겠는가, 싶어 계속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발견한 것은 헤밍웨이가 참 소설을 잘 쓴다는 것이었다. 단 사흘만의 일을 어쩜 이렇게 길게 써나갈 수 있는가, 나는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물론 이와 같은 방대한 분량을 순환구조를 통해 모두 드러낸다면 당연히 지루할 것이다. 그래서 헤밍웨이는 이 작품에서 여러가지 기법을 도입해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있다. 또한 그 시간과 공간 속에 짜여진 인물들(굳이 주인공 뿐만이 아니라 해도)이 마치 그의 인생역정을 모두 돌아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은 정말 이 소설을 재밌게 한다.

이 책은 물론 휴머니즘에 입각하여 쓰여졌으며 따라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바로 당신을 위해서가 된다. 그러나 이것은 당연한만큼, 분명한 답이기도 하다. 헤밍웨이가 묘사한 사실적인 전쟁의 참상들이 그 안에서 싸워나가는 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누구를 위하여 벌어진 일이겠는가? 적군과 아군에 대한 편파적 시선을 던지기보다는 헤밍웨이는 끝까지 이러한 전인류애적 입장을 견지하며 그 입장은 감동을 준다.
소설은 주제이기도 하지만 기법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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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5
조세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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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프롤로그 형식을 취한 「뫼비우스의 띠」에서 그 상징성을 확보하며 시작된다.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곡면인 뫼비우스의 띠는 선조대부터 가난과 함께하는 비참한 삶이 계속되어온 난쟁이 일가와 부유층의 삶의 대비 구조가 선명히 드러난 작품을 통해 작자가 바라는 사랑이 있는 사회를 제시한다. 그러나 뫼비우스의 띠, 혹은 안이 곧 밖이고 밖이 곧 안인 클라인씨의 병은 과학적으로 있지 않다는 논리 역시 제시함으로써 사랑이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없어 자살을 택한 난쟁이 김불이씨의 모습도 보여준다. 그의 아들인 영수 역시 살인죄로 사형을 당한다는 세습되는 가난과 불행의 모습 뒤에는 사랑의 마음이 있다. 영수가 이상주의자로 불릴 수밖에 없는 모순성이 작품 전체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작품은 문체에서 다시 한 번 그 특이성을 보인다. 처음 작품을 대하게 되면 그 이질감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만큼 건조하며 진술은 과거를 넘나든다. 이 역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사이를 오고 가는 작품의 전체적 구조와 상관관계를 갖는다. 난쟁이가 진정 원했던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회, 그리하여 사랑이 없는 사람은 아무런 혜택도 받을 수 없는 사회에 반하는 현실, 진정한 가치가 상실된 사회 모습이 문체의 차갑고 건조함을 낫게 된 것이다.

난쟁이는 결국 달나라에 세워질 천문대에서 일할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는데 이처럼 난쟁이의 의식은 점차 현실을 떠날 수밖에 없는 벽에 부딪히는 것이다. 벽에 부딪힌 난쟁이가 선택한 자살은 작가의 절망적 인식을 담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문체는 짧고 건조해진다. 그러나 이 건조함은 결코 독자를 건조하게 하지 않는다. 작가의 의식 구조를 따라가게 되는 독자는 모순을 다시 한 번 깨우치게 되고 그 모순을 통해 난쟁이의 바램이 독자에게로 전이되는 경험을 한다.

난쟁이가 바랬던 '그 세상 사람들은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비도 사랑으로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꽃줄기에까지 머물게 하'는 불가능의 세계를 꿈꿀 수 있게 하는 것이다.『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여기에서 그 의의를 갖게 된다.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 잃어버린 것의 가치를 다시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작품의 독자층을 굳이 소설 속 인물 중 분류하자면 「궤도 회전」의 '경애'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경애'와 같은 부유층보다는 중산층의 삶을 살거나 그보다 못한 삶을 살며 그 고통을 숨기는데 자신의 에너지를 소비하지만 작품에 나타난 '경애'의 사고방식의 일면에는 분명 많은 자신들의 모습이 숨어있지 않을까 싶다. 작가는 단지 피해 받는 사람들의 모습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해서 작품이 자신의 모습을 비춰줄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해주는 장치를 한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비극적 인식이 그 바탕이라 할 수 있다. 난쟁이 일가가 살던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지명의 아이러니는 이를 뒷받침해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난쟁이가 바라던 낙원에는 사회 전체의 의식 속에 영생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낙원, 난쟁이가 진정 살고자 했던 곳에서 난쟁이가 자살함으로 해서 이 사회에서의 행복과 죽음의 상관 관계는 설명된다. 이러한 절망적 현실 인식은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지명을 단순한 아이러니의 차원을 넘어서게 하며 그 복합적 의미를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절망적 현실 인식은 단순한 절망으로 끝맺지 않는다. 인식은 행동의 체계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빼앗겨버린 한 차원을 생각하게 하고 그 차원으로 들어서기 위한 발판의 기회를 얻는 것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극적인 대립을 작품 전체적으로 내세워 그 대립의 이완작용을 이용한 감동을 맛보게 하며 현실을 되돌아보는 성찰 의지가 중심으로 서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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