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여는 집
방현석 지음 / 창비 / 199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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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석 선생님의 소설은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에 대한 내용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기 위해 공장의 자본가들과 대립하고 그 대립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어려운 상황들을 다루고 있다. 투쟁의 과정에서 대립된 두 계급의 문제만이 아닌, 함께 투쟁하지만 처음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 과정에서 지치게 되면서 발생하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처음 소설을 펼쳐들었을 때, 내게 '투쟁'이란 단어에서 풍겨오는 낯설음, 이질감 같은 것들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어제 처음으로 서울시청 앞에서 효순이와 미선이의 한을 풀어주고 SOFA를 개선하자는 내용의 집회에 갔었다. 텔레비전에서 보도되던 짤막한 내용의 기사가 아닌 직접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어떤 특정 집단이 아닌 나이와 직업이 다양한)과 함께 노래 부르고 투쟁을 외치고 함께 뛰었다. 너무 사람이 많아서 뒤를 돌아봐도 인파가 끝이 없었다. 대학에 오고 3년만에 친구들에게 말로만 듣던 집회에 참석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살아왔던 방식이 얼마나 이기적인가에 대해서 회의를 느꼈다. 내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 나는 너무나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가, 이기주의를 개인주의라는 말 아래 그럴싸하게 포장하려 했던 것은 아닌가, 자문해보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방현석 선생님의 소설은 이와 같은 집단의 문제에 대해(물론 그 내용은 다르지만) 고민하고 있다.

이번 미선이와 효순이의 사건이 있기 전에는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눈 앞에 닥친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타인의 문제, 내가 속해있지만 익숙해져버려 더 이상 의식되지 않는 집단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물론 나역시도 그랬다. 그래서 내게 방현석 선생님의 소설과 광화문 집회는 같은 맥락에서 나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질문하는 것으로 다가온 것이다. 광화문 쪽으로 친구의 손을 잡고 뛰며 내가 타인을 위해 내 다리에 힘을 주어본 적이 있는가, 크게 나의 목소리를 내본 적이 있는가 질문했고 방현석 선생님의 소설을 보며 쉽게 지나간 과거로 한 시대를 치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를 느꼈다. 아직도 이 곳에는 가난하고 못 배워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힘겨운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은 더 이상 소설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생존투쟁이 되어버린 이들, 꼭 문학이나 예술이 그러한 틀안에 갇혀서 고민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의식은 깨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에 부합하지 않는 여러 삶의 모습들에 대해 현실적으로 치열하게 부딪혀야 하는 것은 아닐까. 방현석 선생님의 소설이 단지 대립되는 계급 관계를 그린 것이 아니라, 그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문제를 그렸다는 것은 여기서 주목할만한 점이다. 또한 그 문제가 극복되는 양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극복을 위해 자신의 의지를 다지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는 것이 더욱 매력적이었다. 그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생각해야 할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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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창비시선 46
김용택 지음 / 창비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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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에 섬진강에 김용택 시인을 만나러 갔었다. 온통 푸르른 물과 산속에 자리잡은 마암분교에서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시인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남아 다시 한 번 여유가 된다면 찾아보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그때 시인의 이야기보다는 그 풍경에 넋을 놓았던 기억, 아~ 자연이란 이런거구나 싶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김용택 시인의 시는 이런 감상에 사로잡힌 도시민인 나에게 채찍질을 한다. 그는 쉽게 우리가 말하는 농촌, 자연이 그곳이 자신의 터전인 이들에게 얼마나 의미있는가를 밝혀내고 있다. 하루종일 밭일을 하며 지게를 지며 고단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농촌을 지켜내는 농촌민들의 삶이 김용택의 시에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것처럼 아름답다는 한 마디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농현상으로 인해 사람이 없는 곳, 일은 많고 고된 삶을 김용택 시인은 자신의 눈으로 묘사한다. 또한 그곳 사람들이 자신들의 땅에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있는가를 눈물겹게 그려낸다. 어떤 생생한 은유보다도 김용택의 시에는 농민의 단순한 삶을 단순한 언어로 그려냄으로 해서, 그 진실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새벽을 사는 모습, 부지런하고 정직한 모습, 배운 것은 없지만 그 없음이 부끄러움이 아닌데도 고단해지는 모습, 흙에 맡긴 생의 모습을 누가 이토록 생생하게 그려낼 것인가. 그의 시 역시 그의 맑은 땅에 터전을 두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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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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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소설이라는 것이 스토리만으로 승부한다고 해도 허삼관 매혈기는 전혀 뒤질 것이 없는 작품이다. 허삼관이라는 사내의 피를 파는 이야기라고 제목에 나와 있듯이, 이 책은 허삼관이라는 한 중국인이 피를 팔아 삶의 어려움을 해결해나가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왜 허삼관은 다른 많은 일자리가 있음에도 피를 팔아야만 했는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피는 책에서도 나와있듯이 목숨과도 같은 것이며 조상과도 같은 것인데 말이다. 허삼관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 피를 팔아 돈을 마련한다. 장가를 가게 될 때, 아들들이 아프거나 멀리 떠날 때 말이다. 사실 허삼관 매혈기는 그리 밝고 경쾌하지 않으며 중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나름의 해석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어떤 독자건 한 번은 웃게 될 것이다. 삶이 몹시도 고단해서 지치고 쓰러질 것 같은 순간을 위화는 결코 그것만으로 끝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이 삶을 버틸 수 있는가를 위화는 서사구조에서 밝혀내고 있는 것이다. 허삼관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양심적인 평민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세상은 또 살만한 것이라고... 나는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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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전집 5
프란츠 카프카 지음, 오용록 옮김 / 솔출판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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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작품은 이번으로 두 번째 접한다. 그러나 카프카라는 이름은 내가 그의 작품을 몇 권이나 접했는가와는 상관없이 나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데, 아마도 그의 이름을 대할 기회가 많아서가 아닐까 싶다. 아마 카프카는 현대문학에 있어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작가일 것이다. 그래서 카프카에 대한 문헌이 그리도 난무하며 그의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조차도 그의 이름을 쉽게 부를 수 있는 게 아닐까. '성'은 몽롱하다. '성'을 읽기 전에는 이 작품이 한 성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아닐까 싶었지만, 결국 카프카의 작품 전체의 분위기처럼 이 '성'이란 장소는 작품 내에서 정확히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며 'K'는 결국 '성'에 가지 못한 채 작품은 미완으로 끝이 나고 있다.

그렇다면 미완의 작품이 이다지도 유명세를 띠며 전세계적으로 문학인들에게 거론되는 이유는 뭘까(내가 이작품을 접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에서의 격찬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성'의 꿈과 같은 비현실적인, 결코 그 존재를 전면으로 드러내지 않는 몽롱함에 있지 않을까. 닿을 듯 닿을 듯 닿지 않는 곳, 보여줄 듯 보여줄 듯 보이지 않는 곳- 그것이 바로 인간의 생이라는 것을 카프카는 일찍이 깨달았던 것 같다. 우리는 실제적으로 이 생을 살아가며 우리가 매우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상황 속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시각안에서이며 '나'는 결코 '나' 이외의 무엇도 될 수가 없다. 많은 타인을 접하며 우리는 이 생을 살아가고 그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지만, 우리는 '나'이외의 무엇도 낯설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이 '나' 또한 얼마나 미완성이 존재인가는 말할 나위도없다.

카프카는 이 사실을 직시하고 있고, 'K'를 전혀 낯선 한 마을에 위치시킴으로써 그 사실을 독자에게 상기시킨다. 'K'의 유일한 목적인 '성'과 '클람'(이 목적성 역시 매우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지만 'K'에게는 그것이 주 당면 과제로써 느껴질수밖에 없는)을 'K'는 번번히 자신의 성향으로 인해 놓치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보여지는 존재의 부당함, 절대성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무지와 노정을 우리는 엿보게 된다. 카프카의 '성'을 통해 나는 우리가 그토록 현실적이며 논리적이라 믿고 싶어하는 우리의 삶의 비현실성을 목도하게 되었고, 이에 경악하게 되었으며 서글프게도 자신이 '나' 이외의 무엇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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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은 왜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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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써야 되니까 오히려 책이 잘 읽힌다 아니다 김영하 소설은 좀 재밌다 그래서 꽤 짧은 기간에 다 읽은 것 같다

아랑은 왜는 삼중주다 아랑전설과 현대 두 남녀의 이야기, 그리고 소설을 쓰는 것 -방식의 새로움은 사람을 잡아끌게 된다. 소설을 쓰는 사람이 소설 쓰는 행위를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모반이고 그 모반은 매력적이다. 이 이야기는 어차피 허구다, 라고 밝히고 이 인물이 이럴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라고 밝히는 것. 결말은 어떻게 해볼까 하는 고민의 흔적을 소설로 나타내는 것.

김영하는 현대적이다. 그의 소설에는 여러 문화 장르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영화, 음악, 미술... 그러나 이것이 멋으로 남지는 않는다. 다른 요새 소설들은 빈번하게 문화를 차용하고 예술을 소설에 써먹는다. 그래서 세련된 척을 한다. 하지만 김영하는 세련된 척만 하지는 않는다. 그의 모던함은 소설형식을 바꾸고 그 매력을 모색한다. 나는 언제쯤 이런 소설 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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