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는 숲 - 개역판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까치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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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대한 관심+빌 브라이슨이라는 작가에 대한 관심으로 빌려온 책이다. 작가의 전작 '거의 모든 것의 역사'와 같은 류가 아닐까 했으나 알고 보니 그가 미국 애팔레치아 트레일을 걷는 과정을 기록한 에세이다.

나무의 종류나 이런 것을 알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는 상반되나 친구 카츠와 함께 걸으며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종일 하는 듯도 하지만, 평소에는 걷기에 문외한이던 그들이 조금씩 숲과 트레일에 적응해가며 상업의 세계, 인간이 이룩한 기묘한 세계에 대해 갖는 감상 같은 것들이 재미있어 계속 읽고 있다.

앞으로 하루 1권씩 책을 읽을 계획으로 어제 열심히 있었으나 하루만에 다 읽지는 못했다. 그래도 400페이지의 절반 이상을 읽게 되었고 과연 이 트레일을 다 마친 후 이들은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 계속 보았다. 그들은 3400km가 넘는 애팔레치아 트레일을 모두 걸었냐면, 그렇지는 않다. 그 중 1400km 약간 못되게 걸었다고 한다. 약 1/3 정도를 걸은 셈이다.
장비를 사고 위험을 인지하기 위해 책을 읽으며 곰에 대해 생각해보고 친구 카츠를 섭외하고 같이 걷고 3개 주를 지나 버지니아주에서 트레일을 멈추고 다음에 다시 걷기로 한 뒤 혼자 등산을 다니고 그러다 다시 카츠와 걷던 중 둘은 걷기를 그만둔다.

그러나 그가 애팔레치아 트레일을 걸으며 숲의 완벽함과 세계의 웅장한 규모를 직접 실감하며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디라도 어느 자연 속을 걷고 싶어지는 그런 책이다.

정말 앞으로 하루 1권씩 책을 읽어볼까 한다. 이게 다 뭔가 싶어 그동안 독서를 게을리 했는데, 어디 자양분이 된다고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사람 만나는 것보다 책 읽는 게 더 재밌을 때도 많다. 텔레비전과 영화와도 다른 뭔가가 확실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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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참 서로를 마주 보았는데, 서로 어떻게 할지 몰랐다. 이것이 분명 모험의 참맛이다. 또, 훨씬 겸손하고 소박한 뭔가가 있다. 그것은 지속적으로 시선을 맞추고 있는 데서 오는 존경스러운 상호 인정이 아니었을까.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한 터라 가슴이두근거렸다. 그렇지만 그놈은 조심스럽게 상대에 대해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나는 매혹되었다. - P366

나는 트레일이 지겨웠지만 여전히 이상하게도 그것의 노예가 되었고, 지루하고 힘든 일인 줄 알았지만 불가항력적이었으며, 끝없이 펼쳐진 숲에 신물이 났지만 그들의 광대무변함에 매혹되었다. 나는 그만두고 싶었지만,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싶기도했다. 침대에서 자고 싶기도 하고 텐트에서 자고 싶기도 했다. 봉우리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어했고, 다시는 봉우리를 안 보았으면 싶기도 했다. 트레일에 있을 때나 벗어났을 때나 항상 그랬다. - P411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상념에 잠기지만,
항상 어떤 지점에 이르면 숲의 감탄할 만한 미묘함에 놀라 고개를 들어 본다. 기본적인 요소들이 손쉽게 모여서 하나의 완벽한 합성물을 이룬다. 어떤 계절이든 간에 멍해진 내 눈길이 닿은 곳은 모두 그렇다. 아름답고 찬란할 뿐 아니라 더 이상, 개량의 여지 없이,
그 자체로 완벽하다.  - P415

삼림과 자연 그리고 숲의 온화한 힘에 대해 깊은 존경을 느꼈다. 나는 전에는 미처 몰랐지만, 세계의 웅장한 규모를 이해하게 되었다. 전에는 있는 줄 몰랐던 인내심과 용기도 발견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아직도 모르고 있는 아메리카를 발견했다. 친구를 얻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 요즘 산을 쳐다볼 때마다 나는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도려낸 화강암 같은 눈을 가늘게 뜨며 천천히 음미하면서 바라본다.
우린 3천520킬로미터를 다 걷지 못한 게 사실이지만, 여기에 한가지 유념해야 할 게 있다. 우린 시도했다. 카츠의 말이 옳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우린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다. - P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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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여느 공간과는 다르다. 무엇보다도 입체적이다. 나무들이 당신을 에워싸고 위에서 짓누르며 모든 방향에서 압박한다. 경치를 가로막고 당신이 어디 있는지 분간하지 못하도록 한다. 당신을 왜소하고 혼란스럽고 취약하게 해놓은 다음, 마치 낯선 사람들의 무수한 다리 사이에서 길을 잃은 아이가 된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사막이나 초원에 서면 광활한 공간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된다. 반면, 숲에 서면 당신은 오직 그걸 감지하는게 고작이다. 숲은 거대하면서도 특징 없는, 게다가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들은 살아 있다.
- P75

몇 해 동안 미국인들이 차에 잔뜩 싣고 엄청난 거리를 달려 경이로운 자연풍광의 입구까지 와서 결국 원하는 것은 미니 골프를 하거나 패스트푸드를 먹는 것이라는걸 간파한 상인들에 의해 이 마을은 번성했다.  - P164

이 15개 명소 중 9년이 지난 지금 남아있는 것은 3개밖에 안 된다. 대부분 다른 것들ㅡ신비로운 저택, 힐리빌리 골프장, 모형 자동차 경주장로 대체되었고, 이것들 역시 앞으로의 9년 동안 차례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미국식이기 때문이다. - P166

 미국에 있는 어떤 것도 그보다 오래가지 않는다. 상품이나 사업도 끊임없이 새로 개조하지 않으면 더 크고, 새롭고, 그리고 거의 항상 더 추한 것에 의해 잠식당하고, 버림받고, 밀려나고 만다. 그래서 오래된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좋은 것이다. 60년이 지나서도 조용히 숨쉬면서, 잘난 체하지 않으면서도 찬란하고, 창설정신에 충실하면서 세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다행히도 의식하지 않은 채 버티어 오지 않았는가. 그건 정말 기적이다. - P168

브라질의 밀림에 살아 정글 너머의 세계를 전혀 모르는 석기시대의 인디언들을 상파울루나 리우데자네이루로 데려와 높은 건물들과 차, 지나가는 항공기, 자신의 단순한 삶과는 너무나 다른 세계를 보도록 했을 때 오줌을 함부로, 그리고 일제히 누었다는 것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이제야 그들의 느낌에 공감이 간다.
기묘한 대조였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있을 때는 숲이야말로 무한한, 그리고 온전한 우주였다. 매일매일 경험하는 것이니까. 실제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기도 하다. 물론 지평선 너머 어딘가에 활발한 도시와 복잡한 공장들, 붐비는 고속도로가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눈이 미치는 범위 안의 모든 것이 나무인 곳에 있으면 숲이 지배를 한다. 프랭클린이나 하이어왜시, 그리고 심지어 개틀린버그마저도 숲의 거대한 우주 속에서 그냥 잠시 도움을 주는 정거장 같은 곳에 불과하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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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떠나는 사람은 익명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을 즐기고 함께 길을 가는 동행이나길에서 만난 사람들 이외에는 더 이상 그 어느 누구를 위해서도 존재하지 않는 입장이 된 것을 즐긴다. 주저해왔던 일을 결행하기 위하여 발을 내딛는다는 것은 길건 짧건 어느 한동안에 있어서 존재의 변화를 의미한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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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때 경험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돌아온다. 기차나 자동차는 육체의 수동성과 세계를 멀리하는 길만 가르쳐 주지만, 그와 달리 걷기는 눈의 활동만을 부추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목적 없이 그냥 걷는다. 지나가는 시간을 음미하고존재를 에돌아가서 길의 종착점에 더 확실하게 이르기 위하여 걷는다. 전에 알지 못했던 장소들과 얼굴들을 발견하고 몸을 통해서 무궁무진한 감각과 관능의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대하기 위하여 걷는다. 아니 길이 거기에있기에 걷는다. 걷기는 시간과 공간을 새로운 환희로 바꾸어놓는 고즈넉한 방법이다. 그것은 오직 순간의 떨림 속에만 있는 내면의 광맥에 닿음으로써 잠정적으로 자신의 전 재산을 포기하는 행위다. 걷기는 어떤 정신상태,
세계 앞에서의 행복한 겸손, 현대의 기술과 이동수단들에 대한 무관심, 사물에 대한 상대성의 감각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근본적인 것에 대한 관심,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즐기는 센스를 새롭게 해준다. 스티븐슨이 생각하기에 ‘진정한 걷기 애호가는 구경거리를 찾아서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기분을 찾아서 여행한다.  - P21

자동차 운전자나 대중교통의 이용자들과는 달리 발을 놀려 걷는 사람은 세상 앞에 벌거벗은 존재로 돌아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는 인간적인 높이에 서 있기에 가장 근원적인 인간성을 망각하지 않는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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