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요즘 최대 고민 중 하나는 쓸만한 보수를 찾는 일이다. 얼마전 모대학의 철학과 교수님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 쓸만한 보수 좀 없느냐고 웃으며 물었더니 아마도 전 편집장이 묻는 쓸만한 보수란 두 가지 점에서 쓸만하다는 이야기일 텐데 하나는 잡지에 글 써줄 만한 보수가 없느냐는 것일 테고, 다른 하나는 정말 괜찮은 합리적인 보수가 없느냐고 묻는 것인데 그런 사람 있으면 나부터 소개 좀 해달라고 말하여 웃었다.
트렌드긴 트렌드인가 보다.
지난 2006년 연말부터 <오마이뉴스>가 뉴라이트 특집 3부작을 하더니 뒤를 이어 <경향신문>이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부터 다시 바톤을 이어 <조선일보>까지 나서서 쓸 만한 보수들을 저인망으로 훑어간다. 정권이 바뀐 탓만은 아닐 게다. 뉴라이트의 기관지 성격을 띠고 있는 <시대정신> 지난 해 겨울호 특집은 보수와 진보의 소통 문제를 다루었다. 사회민주주의연대의 주대환도 그 필자 중 한 명이었는데, 그보다 내가 더 놀란 건 나와 함께 운동했던 친구가 그 잡지의 서평 필자로 나섰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진보진영 내부에서 꽤 명망있는 친구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친구가 전향했다거나 하는 의미로 놀란 것은 아니었다.
잡지하는 사람으로 진보와 보수의 상생하며 서로 소통함으로써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고 싶다는 욕심은 품을 만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내 머리로는 그것이 가능해도, 가슴으로는 참 어렵다. 그래서 그 친구가 거기에 글을 썼다는 사실이 놀랍다. 사실 나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이 잡지의 편집장과 전화로 서로 잡지 만드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오마이뉴스>가 대선 전에 시도했던 뉴라이트 특집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읽는 중이다. 불과 한두 해 전 일인데, 말이 바뀐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민중주의자에서 신자유주의자로 바뀐 이들이 어디 한둘이랴만, 그들을 향해 여전히 민중주의자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이 가하는 비판도 여전했는데, 읽노라니 입맛이 썼다. 비판 중에는 인성의 문제, 너 예전부터 언젠가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지적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진보와 보수를 정치적이거나 이념적, 계급적 문제이기 보다는 지리학적인 문제로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학문적으로 학술적으로 말하면 쪽팔리지만 솔직히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나저나 어딜 가서 쓸만한 보수를 찾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