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핑크 플로이드를 즐겨 듣는다. 어렸을 때는 이 밴드를 좋아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느리고 블루스적인 연주, 온갖 시각적, 음향적 효과의 과다한 사용, 촌스러운 신디사이저 사운드, 웬지 느껴지는 뽕끼 등등. 아마 레드 제플린의 기타 연주자 지미 페이지의 코멘트도 일조를 했을 것이다. "요즘 밴드들의 지적 우월성 과시가 도에 지나치다. 우린 그냥 사랑 얘기만 연주할 것이다." 


위 동영상은 The Wall 앨범 중의 한 곡이다. Mother라는 제목으로 이런 잔인한 가사를 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이에게는 매우 매우 가슴 아픈 노래일 것이다. 특히나 영국에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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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개혁에 대한 생각을 몇 번 적어 올렸으므로 마무리를 짓기 위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낙관론자이므로 사태가 여기까지 이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어쨌든 일은 이렇게 진행되고 있고, 검찰은 어떻게든 조국 전 장관을 구속 기소하려 할 것이다. --- 이것이 사태의 한 가닥이다.


검찰이 이길 수 있는 시나리오를 생각해 본다. 그것은 검찰 개혁을 좌절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을 심각하게 깍아먹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일단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와 기소가 문재인의 지지율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 같지는 않다. 


검찰에게 가장 좋았던 시나리오는 검찰의 조국 수사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개입해 오고, 그리하여 검찰과 대통령이 충돌하는 모양새를 빚어 내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의 할 일과 법무부가 할 일을 분명하게 경계지음으로써 이중의 효과를 보았다. 첫째는 검찰의 자율성을 철저히 보장한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고, 둘째는 법무부의 업무 영역에 검찰이 치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경고를 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법무부 장관은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 본인이다.


공수처나 검경 수사권 조정의 국회 통과와 상관없이 행정부 수반의 검찰 개혁 의지가 이렇게 강력하다면 검찰이 달리 저항할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예전처럼 검찰 개혁을 주창하는 정치인들 몇을 날려 버린다고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예전처럼 검찰이 집단적으로 항명한다고 끝날 일도 아니다. 여전히 총선 전망은 현 여당이 우세하고, 다음 대선 전망도 현 여당이 우세하다. 


검찰이 좀 더 똑똑했더라면 조국 일가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를 벌일 것이 아니라 조국의 개혁안에 대해 일일이 꼬투리를 잡고 딴지를 걸어서 어느 정도 양보를 얻어내려 했을 것이다. 어정쩡한 타협안을 만들게 해서 이저 저도 아닌 개혁이 되게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는 조국 장관을 검찰과 절연하게 했고, 그리하여 조국의 개혁안에 검찰 쪽 의견은 거의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 연장선상에서 검찰 개혁은 철저하게 법무부와 문재인 대통령 본인 주도하에 논의되고 있고, 검찰은 여기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버린 것으로 본다. 검찰이 징징거리면 문재인 대통령은 예의 그 업무 분장을 이야기하면 된다. --- 검찰이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검찰 개혁은 결국 한국 민주주의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이다. 역사는 목적론적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예컨대 모순이 어떤 마술에 의해 저절로 지양되는 식으로 운동하지 않는다. 어떤 철학자의 말대로 하루에 두 끼만 먹는 이탈리아의 가난한 노동자들에게는 하루 두 끼가 정상 상태인 것이다. 그것이 운동이 되고 혁명이 되기에는 그 객관적 상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한국 민주주의의 마술과 같은 전진을 보노라면, 한국 역사의 어떤 특권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한국의 역사가 특권 계급의 창설 없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어쩌면 이상이란 기억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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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튭으로 핑크 플로이드 음악을 즐겨 들었더니 위와 같은 타겟 광고가 왔고, 그래서 아내와 함께 동네 극장에 가서 보았다. 핑크 플로이드의 베이스 주자이자 주 작사/작곡자인 로저 워터스가 2017/18에 전세계를 돌며 공연한 것 중 네덜란드 단일 공연을 영상화한 것이다. 로저 워터스의 나이가 이미 70대 중반에 이르렀기 때문에 목소리가 나오기나 할까 걱정을 했었는데, 그의 목 상태나 활기는 전혀 걱정할 바가 아니었다. 핑크 플로이드의 베스트 곡들에 2017년에 나온 로저 워터스의 새 앨범의 몇 곡을 더해 연주하였다. (위 영상에서 젊은 여성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인상적인데 로저 워터스의 신보 중 '데쟈뷰' 라는 곡이 연주 중이었다. 미국의 드론 폭격 정책 등을 비판하는 매우 정치적인 곡이다.) 



같은 투어 영상 중 멕시코에서 공연한 것이라 한다. 핑크 플로이드 앨범 중 가장 에너지와 긴장감이 넘치는 '애니멀스' 중의 한 곡인데, 가히 멕시코 관중들을 미치게 만들었다고 할 만 하다. 멕시코 젊은이들 앞에서 트럼프를 비꼬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할 것 같다. (로저 워터스는 내년에, 그러니까 트럼프 재선의 해에 미국, 멕시코 등지에서 공연을 연다고 한다. 공연 장소 중 하나로 멕시코를 선택한 이유는 설명이 달리 필요 없을 것 같다. 아쉽게도 내년 공연이 그의 마지막 공연일 것이라고 한다. 유럽에서 공연하면 꼭 보러 가려 했는데...)


저번 주 아침에 뉴스 프로그램에서 샌 프란시스코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다뤘다는 영화 The last black man in san francisco 리뷰를 보고는 이건 놓치면 안되겠다 싶어 저녁에 바로 근처 오데온 극장에서 가서 이 영화를 봤다. 잘 만든 영화이긴 했는데 뭔가 아쉬움이 많이 남더라. 내가 느끼기에 가장 큰 문제는 주인공들이 현실과 밀착된 생활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영화는 시와 같았다. 이런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작가로 내 머리에 떠오른 사람은 오직 하나 뿐이었다. 켄 로치. (알아보니 마침 그의 새 영화가 개봉했고 이번 주말에 런던으로 보러 갈 예정이다. 택배 배달과 같은 임시직 문제를 다룬 영화라고 한다.)


이런 것들이 현대의 빈곤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시리아에 떨어지는 폭탄들, 난민들 문제가 뉴스를 가득 메운다. 그러나 어느 작가도 이 극명한 현실을 다루려고 하지 않는다. 오직 70대의 로저 워터스만이 그 문제를 다루고, 그것으로 앨범을 만든다. 진작 은퇴했어야 할 사람을 두고, 나도 나의 아내도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는 공연을 더 하라고, 앨범을 더 만들라고 아우성이다. 은퇴하면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모든 것이 대체가능한 자본주의의 세상에서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켄 로치는 진작 은퇴를 선언했었다. 그러다 다시 나와서 '다니엘 블레이크'를 만들었고, 이번에 다시 새로운 영화를 만들었다. 켄 로치가 은퇴를 번복한 이유는 너무도 명확하다. 현대 사회의 절대적 빈곤. 감독 하나를 대체할 수 없는 절대적 빈곤 탓이다. 버니 샌더스같은 정치인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값싼 번민들은 넘쳐 난다. 우리가 그것을 값싸다고 하는 이유는 거기에는 쏘울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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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이 사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얘기를 듣자 마자 든 생각은, 조국 이 분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어제 나경원이 검찰 개혁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과 관련하여 검경 수사권 조정은 협의할 수 있으나 공수처 설치 문제는 조국의 사퇴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고민을 좀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아마 조국은 그 뉴스를 듣고 즉각 사퇴를 결심했을 것 같다. 자신이 개혁의 걸림돌이 될 시에는 언제든 사퇴할 것이고, 자신을 불쏘시개 삼아 검찰 개혁을 해야 한다고 늘상 말해 왔기 때문이다. --- 사실 엊그제 조국이 발표한 법무부의 검찰 개혁안을 모든 지상파 방송들이 머릿기사로 다루는 것을 보면서, 조국이 할 만큼 했다고, 검찰 개혁을 전국민적 의제로 만드는데, 자의든 타의든, 성공했다고, 그러므로 검찰 개혁안이 국회 통과가 되면 사퇴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문재인은 참여 정부의 검찰 개혁 노력에 대해 순진했다고 어떤 책에서 사후적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순진'이라는 말이 덮고 있는, 혹은 표현하고 있는 것은, 노무현 당시에는 검찰 개혁에 대한 물적 토대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검찰 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높았다고는 하지만 전혀 조직되지 않은 열망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러한 열망을 조직해낼 비전이 없었다. 지금이야 검경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치, 검찰의 직접 수사의 축소 내지는 폐지, 법무부의 탈검찰화를 통한 검찰에 대한 문민 통제의 강화 등등, 사소하게는 피의 사실 공표 금지까지, 수 많이 많은 사안들이 구체화되어 국민들의 머리 속에 들어가 있다. (이런 비젼을 만들어 낸 인물이 조국인 것으로 알고 있다.)


또 다른 것으로는, 만일 검찰이 조직적으로 개혁에 저항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노무현에게는 그 대응책이 없었고 그리하여 만들어 낸 것이 아마도 법학전문대학원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검사의 수급원을 다원화하여 검찰 조직의 동일성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검찰 개혁에 대한 검찰의 집단적 반발의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신규 검사 공급원을 마련해 놓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내 생각에는 검찰 개혁에 대한 물적 토대이다. 그런데 그것을 정책화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다. 정책화를 위해서는 대통령의 정치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보아하니, 문재인은 중소 정당들과, 선거법 개혁안과 검찰 개혁안을 주고 받는 식으로 신속 처리 법안으로 지정한 것 같다. (나는 패스트 트랙이라는 말도 최근에 알았다.) 놀라운 것은 이번 선거법 개혁안이 거대 정당에는 불리한 것이고, 그러므로 여당에서 당연히 반발이 있었을 것인데, 적어도 내 귀에는 별 파열음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그런 파열음의 시간들이 다 지나간 것일까?) 여당을 단속하여 선거법 개정안(이번 선거법 개정안도 물론 개혁안이라고 본다)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중소 정당들에게 제시하면서 검찰 개혁안을 아울러 국회 본회의에 상정 가능하게 만들어 낸 것은 분명히 정치인 문재인의 전략의 성공이라고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검찰 개혁이 성공하기 위한 여건에는 아직 한 가지 사항이 남았다. 개혁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일단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본다. 검찰 개혁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진 자, 그리고 밖에서 봤을 때 대통령의 분신급으로 그만큼 강하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조국 이상이 없었을 것이다. (더불어 차기 혹은 차차기 대권 주자로 키우고자 하는 생각이었을 것이고)  


그러나 윤석열의 검찰 총장 임명에 대해서는, 나는 문재인이 어느 정도는 실수한 것으로, 혹은 문재인이 순진했던 것으로 본다. 행정부의 수반으로 당연히 대통령은 검찰을 개혁의 주체로 믿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말 그대로의 믿음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행정부의 수반으로 대통령은 국정원을 믿을 것인가? 물론 큰 틀에서는 믿어야 하지만, 국정원 내부에 온갖 견제 장치를 심어 놓은 한에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감시하는 한에서 믿어야 할 것이다. 검찰에 대해서도 똑같았어야 했다고 본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검찰을 개혁의 주체라고 표방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검찰을 철저히 개혁의 대상, 즉 검찰 스스로는 절대 개혁을 할 수 없다는, 정치인 문재인의 확신 속에서 그랬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윤석열은 단지 개혁의 대상에 머물 수는 없는, 나름의 확고한 입지를 가진 인물이었던 것이다.


(검찰이 스스로 개혁할 수 있는가? 심야 조사 폐지 발표 다음 날 검찰은 정경심씨의 자산 관리인을 심야 조사했다. 검찰의 직접 수사를 축소한다는 발표 직후에 유시민에 대한 검찰 직접 수사를 발표했다. 별 생각없이, 관성대로, 하던 대로 하는 것이다. 내부 개혁은 관성에 의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갈 뿐이다.)


아마도 문재인이 윤석열을 검찰 총장으로 임명한 것은 국정 농단 수사로 국민의 신망을 얻고 있는 윤석열이 검찰 개혁의 취지에 동의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상대적으로라도 개혁적인 인물을, 그 개혁적 이미지로 국민적 신망을 얻고 있는 인물을 검찰 총장으로 임명한 데에는 아마도 상당히 중요한 현실적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검찰이 검찰 개혁을 좌절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개혁을 주창하는 정치인들을 수사로서 압박하는 것이다. 그 상징적인 결과가 모두들 알다시피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이다. 아마도 지금의 검찰 총장이 국민들에게 개혁적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은 인물이었다면 미친 척 하고(어차피 견제 장치는 전무하므로) 검찰 개혁을 주창하는 정치인들(지금 즉각 내 머리에 떠오르는 인물은 박주민 의원이다)에 대해 직접 수사를 개시하여 압박했을지도 모른다. 


여튼 모두들 알다시피 역사는 행위자들의 의도와는 달리 흘러간다. 문재인은 검찰 개혁 추진 세력(박주민, 김종민, 이해찬, 이인영 등, 그리고 조국)을 보호하기 위해 윤석열을 검찰 총장에 앉혀 놓았지만, 윤석열은 그 어떤 검찰 총장도 할 수 없었을 정도의 규모로 특수부를 총동원하여 조국 일가를 수사로 압박했다(윤석열이 국민적 신망을 얻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역으로 윤석열은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로 문재인의 검찰 개혁을 좌초시키고자 하였지만, 검찰 개혁을 어마 어마한 수준의 에너지가 집결된 국민적 의제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 최종 결과는 다시 미래에 대해 열려 있다. (행위에 대해 반-목적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행위의 근거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실재의 운동이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여기서 회의주의를 도출해내고자 하는 사람이 없기를.)


(현실이 꽉 막혔을 때, 정보가 극히 제한되어 있을 때 사람들은 점을 본다. 재미로지만 나도 그랬다. 유튭에 조국, 윤석열의 사주가 많이 올라와 있다.:) 조국에 대해서는 중간에 낙마하는 것으로 많이들 점치더라. 올 연말에는 낙마하지만 내년 봄에 재기한다고 한다. 윤석열에 대해서는 올 연말까지가 심각하게 위기란다. 그 위기를 넘기면 계속 가고, 그렇지 않으면 낙마라는 이야기. 주로 보수적 색채의 유튭에서 하는 이야기였는데, 그들의 해석은 윤석열이 연말까지 살아 남으면 낙마하는 것은 조국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재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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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저녁 먹고 아내와 나란히 앉아 한국 뉴스를 체크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유튭으로 JTBC 등을 틀어놓고, 사모 펀드 자금 흐름도를 설명하는 대목이면 중간 중간 멈춤을 하고 토론을 벌인다. 엊그제 JTBC 보도를 보고 우리가 내린 결론은, 사실 내역이야 어떻든 검찰이 정경심씨를 펀드 운영사의 실소유주로 판단할 충분한 정황은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김어준의 방송을 보고 --- 적어도 내 관점에서는 검찰이 사모 펀드와 관련하여 조국 일가를 엮는 것은 불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관점'이라 함은 김어준과 나의 아내 등은 검찰이 거기서 포기할 자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아마 일반적인 관점일 것 같기 때문이다.


정경심씨를 사모 펀드와 관련하여 기소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정경심씨가 펀드 운영사의 소유주임을 검찰이 증명해내는 것 뿐인 것 같다. 그러나 등기부에 설립 자본을 댄 자는 익성이라는 회사로 나와 있기 때문에 정경심씨가 단독으로 소유자가 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고, 검찰에게 남은 방법은 정경심씨와 익성이 사실상 공동 소유 관계에 있다는 점을 밝히는 것 뿐인 것 같다. 그러니까 검찰은 동양대 영문학 여자 교수와 현대차에 납품하는 자동차 부품 회사 경영진 사이에 어떤 관계를 만들어 내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검찰에게 뼈저리게 필요한 것은 사실 관계보다는 창의성인 것으로 보인다. 


여튼 검찰은 펀드 운영사가 익성의 우회 상장을 추진하면서 벌인 이상한 일들(영어 교재 회사가 갑자기 배터리 회사가 되어 버린다든지 하는)을 불법 거래죄 등으로 처단하기 위해 또다시 대규모로 수사단을 보강했다고 한다. 이 사안은 분명 구속 기소가 떨어질 사안일 것이고, 범죄 사실을 밝혀내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여기에 정경심씨만 엮어넣는다면 검찰은 조국발 검찰 개혁을 좌초시킬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이 정경심씨를 어떻게든 엮어서 구속 기소를 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엮는 것이 무리한 부분을 포함하는 이상 법원은 범죄 사실에 대한 다툼의 여지를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검찰이 정경심씨를 구속시키지 못하는 한 조국은 사퇴할 리가 없을 것이다. 정경심씨에 대한 소환과 기소는 이미 예정된 것으로 국민들이 보고 있기 때문에 구속 영장 기각은 대중에게 유죄 심증보다는 오히려 검찰의 무리한 수사라는 심증을 형성케 할 것이기 때문이다.  --- 이상이 나의 관점이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나도 한국의 언론 현황에 대해 염려를 하게 되었다. 나만 해도 더 이상 기존 방송을 볼 생각이 없다. 적어도 당분간은. (박사모 할아버지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모든 언론이 조국 일가를 범죄자로 몰고 김어준만이 조국 일가를 변호한다. 여론은 문재인 지지자와 반대자로 나뉘어 치열하게 진영 싸움을 하고 있지만 언론은 진영 논리 없이 일치하여 조국 일가를 비판한다. 그렇다면 진영 논리에 빠져 조국 일가를 옹호하고 있는 내가 문제인 것은 아닐까? 그러나 보자. 명확한 사실에 기초해 판단해 보자. 등기부상으로 펀드 운용사의 소유주는 익성으로 확인되어 있고, 오촌조카가 횡령한 돈의 최종 도착지도, 녹취록에 의해서나 오촌조카의 검찰 진술에 의해서나, 익성인 것으로 되어 있다. 또 개인 정경심과 한 해 천억대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기업과는 동원한 수 있는 자본의 크기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김어준을 제외한 모든 언론들은 익성에 대한 언급 없이 정경심씨를 펀드 운용사의 핵심 행위자로 모는 보도만을 쏟아내고 있다. 이는 합리적 상식에 너무도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보도들을 보는 것이 너무도 괴롭고, 결국 시청을 포기하게 된다. 옳은 것은 김어준이고 틀린 것은 그를 제외한 모든 언론사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고 마는 것이다. --- 어쨌거나 기쁘다. 시대의 거대한 사태를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목격할 수 있어서. 한국 언론의 집단적 광기와 그로 인한 자멸의 현장을.


이번 한국 언론 사태는 사회학적으로 대단히 흥미로운 주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사태는 한국의 전체 언론이 진영 논리를 뛰어 넘어 일치된 목소리를 내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독특한 일이 아닌가? 예컨대 반일 이슈에 대해 언론이 이토록 단결된 입장을 보였는가? 나는 이 대단한 결속을 이해해 보고 싶다! --- 그러나 퍼뜩 그 답이 대단히 허망할 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스쳐 지나간다. 한국의 언론인들이 이런 독특한 모습을 보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한국의 언론인들이 진영 논리를 넘어서서 절대적으로 일치된 모습을 보여주던 장면들... 대표적으로는 한국에서 열린 어떤 컨퍼런스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호스트 역할을 잘 해준 한국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한국 기자에게 먼저 질문 기회를 주겠다고 했는데도 질문 하는 한국 기자가 단 한명도 없었던 장면. --- 어쩌면 그때의 장면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장면이 크게 다른 것이 아니고, 그렇다면 현재 한국 언론의 이 광기를 해명해보고자 하는 작업의 결론은 매우 허망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여튼 그것도 한국이라는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추). 국정농단 사태 등에서도 이런 일치된 목소리가 있었을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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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9-20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의성, 집단광기, 결속이라는 키워드가 돋보입니다.

저는 여기에 사실 확인이라는 언론의 기능을 상실한
미디어 밴드왜건이라는 키워드를 추가하고 싶네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선이해를 바탕으로 자신
들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을 저돌적으로 유포한
언론의 모습에 그저 아연할 따름입니다.

weekly 2019-09-21 01:52   좋아요 0 | URL
예 같은 생각입니다. 이 폭풍이 지나고 나서 언론에 대해서든 검찰에 대해서든 깊이 있는 성찰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