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내내 나의 작은 논문을 손보며 지냈다. 문장들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재고가 완성된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논지는 확고한 상태다.


한 친구를 논문과 관련한 토론에 끌어 들이려 애를 썼다. 친구는, 내가 새로운 지적 호기심의 발동을 기대하며 마음 졸이는 순간마다 "이런 거 왜 해?" 하며 나를 실망시켰다. 나는 "지금 얘기한 이 아이디어는 함의가 굉장히 풍부해. 너가 좋아하는 진중권이 이런 아이디어를 받아다 미학책에 써먹는 거야." 라는 식으로 응대하곤 했다. 친구는 내내 무표정과 볼맨 소리를 했다. 그러다가, 내가 친구를 철학 토론에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완전히 포기한 후에, 그 친구가 뜬금없이 한 마디 툭 던졌다. "근데 비트겐쉬타인이 똑똑하긴 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지?" -그 순간 나의 눈은 초롱 초롱 빛나고 있었을 것 같다.


지난 금요일에 런던 호일스 서점에 가서 럿셀에 대한 책을 한 권 샀다. 학생 할인 기간이 다 끝나서 요즘은 호일스에 잘 안가고 아마존uk에서 중고로 책들을 구입한다. 어쨌든. 예기치 않게 곁가지를 치긴 하였지만 여전히 나의 탐구 주제는 럿셀이다. 인간적으로도, 나는 럿셀을 비트겐쉬타인보다 더 좋아한다. -친구에게는 이렇게 말했었다. 럿셀은 나의 첫번째 철학자였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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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학원 가는 데 기차가 연착해서 많이 지각을 했다. 집에 올때도 플랫폼마다 죄다 연착 사태였다. 어쨌든 나는 덕분에 7시 10분쯤에 워털루역에 도착해서 연착된 6시 50분 급행 차를 타고 집에 올 수 있었다(차는 7시 40분 가까이 되어서 출발했다). 차 안은 북새통이었지만 영국인들은 그런 사태에 익숙한 탓인지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다. 혹은 집에 도착해서야 짜증을 느낄지도~


영어 강사가 나의 작은 논문에 대해 아무 말도 안한다. 1). 내가 지각을 해서 화가 났다. 2). 아직 다 검토하지 못했다. 3). 그냥 넘어가려는 수작이다. 친구 말은 2번일 거란다. 하긴 분량이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을 거다. 그런데 친구 말이 원래는 강사들이 논문 교정 같은 거 절대로 안해 준단다. 이곳 사람들은 공사가 확실하니까. -암튼 오늘은 늦지 않게 집에서 일찍 출발할 생각이다.


소논문에 대해서는 거의 잊고 지내고 있다. 더 읽어보지도 않는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도 않는다. 어느 정도는 내가 다루고 있는 주제에 대해 확신을 하고 있다. 확신의 계기는 구글 북스 등을 통해 비트겐쉬타인이 직접 "논고"의 이러 저러한 부분에 대해 해설한 것을 일부 읽었기 때문이다. 나의 논지는 "논고"와도 일치하고 비트겐쉬타인의 해설과도 일치한다. -현재는 이렇게 느끼고 있다.


잠깐 설명하면 이렇다. 비트겐쉬타인은 "노트북"에서 주-술 관계니 2항 관계니 하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나는 비트겐쉬타인이 뭘 의도하는지 알 것 같다. 예를 들어 "this is white"는 주-술 관계로 이해된다. 그런데 이 명제는 'this is identical in colour with that"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때 that이 white 색상을 정의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일항 관계니 이항 관계니 하는 것이 자의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럼 이런 명제들이 표현하는 사실들의 존재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다.


비트겐쉬타인은, 그러므로, 이런 자의적인 명제 형태가 아닌 완전히 일반화될 수 있는 명제 형태를 찾게 된다. 그게 내가 보기에는 "논고"의 궁극적인 작업이다. 그 작업을 위해 선행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논고" 서두의 온톨로지다. "논고"의 나머지 부분은 이 작업의 단순 적용이다. 그 단순 적용의 예 중 하나가 5.542다. 이 명제는 정말로 단순하게 이해되어야 한다!


이것이 나의 "논고"에 대한 이해의 핵심이다. 재밌는 건 "this is white" 운운하는 예를 나는 럿셀의 책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럿셀의 책("The philosophy of logical atomism")에 럿셀의 강의 중에 저런 질문들이 나온다. 럿셀은 이런 질문들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비트겐쉬타인은 심각하게 다룬 셈이고.


비트겐쉬타인이 "논고"에서 한 작업이 궁극적인 진리인지 아닌지는 나도 모른다. 물론 당연히 아닐 것이다. 비트겐쉬타인 스스로 자아 비판하고 있는 판이니까. 그럼에도 "논고"가 대단히 중요하고 어려운 지적 작업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럿셀의 말 그대로 말이다). 거기엔 하나의 사상이 완비된 상태로 체계화되어 있다.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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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나의 작은 논문을 예쁘게 프린트해서 영어 강사에게 주었다. 내가 한 달 동안 낑낑대며 쓴 거다, 나의 첫번째 독자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주제가 철학이고 어 그레이트 메니 미스테익스를 담고 있을 거다, 안읽어봐도 상관은 없다, 내가 그동안 뭘 하느라 그렇게 바쁜 척 했는지를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 강사가 교정을 봐주겠단다.^^ 안그래도 된다고 사양했는데... 그 친구는 꼼꼼하게 교정을 봐 줄 친구다. 오늘 학원 가는 길이 기대가 된다.^^


나의 작은 논문을 쓰느라 난장판이었던 책상을 깨끗히 치웠다. 책들, 논문 프린트들, 메모들을 그것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보냈다. 일상으로 복귀하는 기분이다. 친구에게 얻은 크리스마스 트리로 방 한쪽 구석을 꾸몄다. 오색 불빛이 반짝 거리며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아침에 읽을 책으로 호일스에서 산 윌프리드 호지스의 'logic'이란 책을 선택했다. 싸고 얇아서 산 책이다. 30년도 더 전에 초판을 내고 10년 전에 재판을 찍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이 책 참 재밌다. 책의 첫 번째 문장이 "Nothing in this book is original, except perhaps by mistake."이라니 처음부터 사람을 잡아끈다.


Your breast will not lie by the breast

    Of your beloved in sleep.


인용 표시가 없다. 저자가 직접 쓴 문장이라는 뜻이다. 오, 이 분, 시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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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논문 재고를 다 썼고 기념으로 피쉬 앤 칲스를 먹었다. 사나흘 정도 간간히 손 볼 시간이 날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것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더 많은 참고 자료를 입수하지 않는 한 나의 작은 논문은 견고한 상태로 있을 것이다.

나의 소논문의 주제는 내 머리 속에서 이런 식으로 바뀌어간다.

-럿셀의 판단이론에 대한 비트겐쉬타인의 비판의 정체가 무엇인가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사실 그것은 이렇다.
-비트겐쉬타인의 초기 철학은 럿셀 독트린에서의 이탈로 봐야 한다.
-럿셀의 판단이론을 비판하면서 비트겐쉬타인은 명제의 뜻에 대해 천착하게 되고 그것은 "논고"에서 그림 이론으로 결실을 맺는다.
-"논고"는 단 하나의 문제만을 다루고 있다. 그것은 완전히 일반화된 명제 형태에 대한 연구다. "논고"의 나머지 부분은 이 결론을 단순 적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나의 머리는 저 마지막 논제로 가득 차 있다. 물론 그걸 소논문에서 다루지는 못했다. 그것은 너무나 큰 주제이고 너무나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방향이 맞다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앞으로 1, 2년을 저 주제에 바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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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노트북을 빌려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안에서 나의 작은 논문 편집을 하고 있다. 철자 교정을 하는데는 워드 프로세서가 유용한 것 같다.

초고가 20점이라면 이번 재고는 60점은 되는 것 같다. 내가 초고를 가지고 철학의 문외한인 나의 친구에게 "논고"를 설명해 준다면 그 친구는 "비트겐쉬타인 별 거 아니네!"라고 반응할 것 같다. 재고를 가지고 설명해 준다면 그 친구는 "어쨌든 비트겐쉬타인이 천재긴 천재네..."라고 반응할 것 같다. -이런 반응은 나를 기쁘게 할 것이다.

내가 나의 작은 논문에서 해결을 시도한 문제는 세 가지다.
첫째, 럿셀의 판단 이론에 대한 비트겐쉬타인의 비판의 정체는 정확히 무엇인가?
둘째, 명제의 그림 이론이란 "정확히" 어떻게 동작하는 것인가?
셋째, "논고"의 5.542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나는 형이상학적 주체 개념을 이용하여 6.54를 아주 명쾌하게 해설할 수 있다고 믿지만 논문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 부분을 날려 버렸다. 내 생각에는 이 삭제가 나의 소논문을 훨씬 설득력있게 만든 것 같다.)

스스로 치하하고 싶은 것은, 나는 결코 문제를 우회하지 않고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혔다는 것이다. 사빌 가든에서 돌아오는 길 도로변의 아름다운 수풀들을 보면서 나는 비트겐쉬타인의 명제 이론을 그 풍경에 적용하는 방법들을 궁리하고 있었다. -훗날 영국에서의 나를 돌아보기 쉽게 이렇게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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