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는 학문의 최고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연구했다. 그것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최적의 루트, 즉 문경을 찾는 것이었다.

                                                                   (<세한도>, 박상철)


학문의 최고 경지... 이런 말은 좀 과도한 것 같고, 어떤 영역에 최대한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빠르고 깊게 접근하는 방법 정도로 문경을 이해하자.


철학에서라면 플라톤이나 칸트가 문경일까? 이상적으로는 그렇겠지만 이 사람들은 이미 죽었다. 이 사람들의 철학에 직접 도전하는 것은, 두 도시 사이의 최단 거리는 직선이라는 신념 하에 도로를 설계하는 것처럼 멍청한 일일지도 모른다.


플라톤이나 칸트가 에베레스트 산이라면 어떤 루트를 선택하여 어디에 베이스 캠프를 차리는가가 아주 중요할 것이다. 그러므로 베이스 캠프는 당연히 살아 있는 당대의 사람이어야 한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죽어있는 글이 아닌 살아 있는 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이 문경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추사 역시 당대의 인물 옹방공을 흠모하여 10년을 준비한 끝에 실제로 만나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 요즘 말로 하면 문경은 멘토와의 만남에서 시작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나는 여기에 대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것...


2.

(출처: http://www.paul-cezanne.org/Houses-In-Provence---The-Riaux-Valley-Near-L-Estaque.html)


너무 너무 예쁜 그림이다. 나는 요즘 금단 현상을 느끼듯 세잔에 빠져들어감을 느낀다. U2의 노래 가사 "Like powder needs a spark/ Like lies need the dark..." 처럼.


아마 예술가의 절대적인 윤리는 그의 창작이 실제의 모사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실재성을 결코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리라. 나는 그 실재성을 실존성이란 말로 대체하여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예전부터 죽. 그리고 그것을 스피노자한테서 배웠다고 생각해 왔다. 출전이야 어떻든 나는 아직도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 세잔은 나의 그러한 확신을 더욱 강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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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는 맷 데이먼 주연의 본 시리즈를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그 영화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영화를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예술 형태로 정의한다. 그런데 본 시리즈의 영화들은 1초도 안되는 쇼트들을 이어붙인 것이다. 배우의 연기가 필요없는 영화들이다.


내가 그 영화들을 보는 것이 괴로운 또다른 이유는 주연이 맷 데이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굿 윌 헌팅"이라는 영화에서 처음 만났다. 두 말할 것 없이 좋은 영화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맷 데이먼은 그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 거기서 맷 데이먼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내게 "좋은 발견"이었다. 본 시리즈에서 만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형태의 "좋은 발견"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본 시리즈에서 맷 데이먼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그가 소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걸어놓은 동영상은 "굿 윌 헌팅" 중의 한 장면이다. 아주 예전에 본 것이지만 유튜브는 찾는 대로 다 찾아주더라. 저 동영상에서 맷 데이먼과 하버드 거드름피우는 놈 중 누가 최후의 승자인가? 두 말할 것 없이 하버드 놈이다. 더 큰 상처를 입고 더 많이 당황한 것은 맷 데이먼이다. 맷 데이먼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사고의 독창성뿐이다. 그러나 그것의 팔할은 자기만족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방법은 없다.


본 시리즈를 볼 때마다 맷 데이먼에게 당신과 같이 재능있는 배우이자 작가가 왜 재능을 낭비하고 있는 거요, 왜 당신의 오리지널리티를 방기하는 거요, 라고 묻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게 괴롭다. 그런데 본 시리즈는 테레비에서 자주 해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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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학책을 읽으며 철학적 문제의 깊이에 대한 감탄과 배꼽 빠지는 웃음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을까? 플라톤의 "테아이테투스"라면 가능하다.


"테아이테투스"는 지식 이론에 대한 대화편이다. 대화 중의 한 결론이 "It is not possible to believe what is not, either about anything which is or in any absolute sense."였다. 화이트헤드가 서양 철학사를 플라톤에 대한 각주라고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 하며 감탄을 했다. (물론, 여기서 내가 상정하고 있는 철학자들은 무어, 럿셀, 비트겐쉬타인, 특히 비트겐쉬타인이다.)


그런데 저 결론이 있고 난 몇 줄 아래서 대화자인 테아이테투스가 소크라테스에게 "When someone thinks 'ugly' instead of 'beautiful', that is truly false belief."라고 하자 소크라테스가 받는 말이 가관이다: "You obviously have a low opinion of me, Theaetetus, and don't think you need be cautious." -아, 여기서 대박 웃음이 터져야 한다!


이 대목을 읽고 혼자 대꾸르르 구르다가 친구에게 설명하자니 설명하기가 힘들고 설명을 시도하다 포기하다, 혼자 안타까워 하다를 반복했다. 그랬더니 친구가 "혼자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뭐해?"라고 하더라.


아, 플라톤, 그대는 정말 악마적이오. 당신의 농담을 이해하고 배꼽을 잡고 웃을 수 있으려면 당신의 철학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다니, 그것도 무한한 깊이의 샘물과 같은 사상을!


2. <지웠음> 2012/03/10


3. "간송 전형필"이라는 책을 읽었다. 친구에게 빌린 것인데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어디까지가 저자의 상상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 스스로 책에 상상력을 발휘했음을 밝히고 있으니 크게 문제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내가 사실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부분은, 전형필이 오세창의 숙제를 받아 첫번째로 구입한 그림이 겸재의 그림이고 두번째로 구입한 그림이 조영석의 그림이라는 대목, 그리고 "훈민정음"과 관련하여 김태준과의 관계를 다룬 대목이다. 이런 부분들에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꺼리들을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꺼리들이 단순히 어떤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된 이차적 상상이 아니라면, 그 이야기들은 더 많은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전송에 대한 자료들을 더 읽다보면 충분히 검증가능한 부분이겠지 싶다. 계속 관심을 기울여 봐야 겠다. 


4. "길모어 걸스" 시즌1을 다 봤다. 생각보다는 실망. 미국 드라마의 한계라고나 할까... 싱글맘을 통해서 다룰 수 있는 소재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애초부터 한계를 안고 출발한다. 싱글맘의 부모들이 부자다. 그 부모들의 부모는 그 이상의 부자다. 이럴 경우 드라마의 갈등 구조는 딱 틀 안에 갇히게 된다. 테레비에서 나중 시즌 에피소드를 해 주어서 봤는데 싱글맘은 부자가 된 원래 아이 아버지와 파리로 여행 중이고 아이는 완전 공주마마가 되어 있고 그렇더라...


5. 테레비에서 "토토로"를 봤다. 영국은 더빙을 안하기 때문에 영어 자막으로 봤다. (프랑스에서는 죄다 더빙을 하더라) 재미있게 봤다. 얼마 전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조니 뎁, 헬레나 본 햄 카터 주연)을 봤었기 때문에 은근 비교하게 되더라. 나는 "토토로"가 훨씬 좋았다. "앨리스"는 감독이 뭔가 새로운 해석을 가하고자 한 것은 좋았는데 인위적이고 식상했다. "토토로"는 모든 게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것은 이념적이 아니었다. 나는 "토토로"를 보고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예를 들면 영화 "매트릭스"는 아주 유치하다. 봐주기가 곤란했다. 반면 "공각기동대"는 전혀 급이 다르다. 나는 일본의 문화에 대해서는 일부러라도 눈을 감고 있지만 내가 본 두 만화영화는 각자의 영역에서 탁월했다. 나는 일본의 힘에 대해서 두려워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토토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6. "세한도"를 읽고 있다. 좋은 책이다. 완당문집이 궁금해서 알아보니 번역이 되어 있더라. 완당이 문경이 되어 줄 수 있으리라.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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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거리든 어디든 차로 사람들로 넘쳐난다. 나도 어제 킹스턴에 가서 쇼핑을 좀 했다. DVD도 하나 사려고 했는데 줄이 너무 길게 늘어서 있어서 포기했다. 돌아오는 길. 라디오에서 서글픈 곡 하나가 흘러 나오더라. 구글링해보니 Johnny Cash의 Hurt라는 곡이었다. 이런 멜로디, 이런 가사를 얻을 수는 있겠지. 그러나 그것이 이런 목소리에 얹혀질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거야... 친구랑 이런 말을 주고 받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듣기 좋은 곡은 아니지만 생각난 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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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크리스마스고 한 해가 마무리되는 때이다. 올 해엔 나에게 많은 일이 일어났다. 정확히는 작년의 마지막 날부터. 올 여름 나는 공장 일을 그만 두고 영국으로 건너왔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도전하고 부서지고 있다. 새로운 경험들과 새로운 도전들이 나의 시야를 온통 차지하고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일이 곧 전부이다"라는 말로 끝난다. 숱한 방황과 실수들은 그것이 끊임없는 노력의 필연적인 부산물이었다는 것으로 가볍게 양해된다. 그것이 지혜로운 괴테의 마지막 사상이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것을 외면하고 만 것일 수도 있다. 즉, 시간과 관계라는. 그렇다. 인정하자. 괴테도 나도 관계지향적인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한 해의 이 즈음에는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의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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