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영국의 코리안 타운이라 할 수 있는 뉴몰든에 가서 친구랑 저녁을 먹었다. 나의 작은 논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내가 이야기를 하는데 친구가 자꾸 말을 자르는 것 같아서 답답해 했었는데... 나는 교수가 내 논문을 읽었는지도 밝히지 않아 당황스럽다는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었고, 그 친구는 교수가 읽었던 말던 추천서 써주겠다 했으니 얼른 받으면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였다. -그 친구가 옳다.


오전에, 일종의 자기 소개서를 썼다. 나의 철학적 성향을 언급하면서 짧게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인용했다. 한국에서 올 때 스피노자 전집을 갖고 왔었는데 펼쳐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습기를 먹어서 종이가 약간 눅눅해져 있었다. 오래된 친구처럼 반가왔다. (인용한 부분은 에티카 제2부, 명제 49다. 나는 스피노자의 투명성을 사랑한다. 이윽고는 그 투명성에도 결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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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제 런던의 중국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너무 많이 먹었다. 다시는 여기 올 생각이 안들 정도로.


2. 코톨드 갤러리에 갔다. 유료다. 입장료가 있다는 건 관람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내셔널 갤러리는 무료다. 잠깐 들러서 좋아하는 그림 몇 점 보고 머리를 환기시킨 후 가볍게 갤러리를 나설 수 있다. 유료인 경우는 가능한 많이 보려 한다. 결국 지친다. 코톨드 갤러리를 나서면서 나는 완전히 진이 빠져 버렸다.


코톨드에서 본 첫 그림은 성모와 성자를 그린 것이었다. 나는 팽팽했던 무엇이 갑자기 사르르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격해 있었고 팽팽하게 긴장해 있었던 것 같다. 격하게 표출되는 감정들(눈물, 흐느낌 등을 동반하는)은 그러한 이완의 반영일 것이다. 나는 숨을 고르며 차분히 옆 그림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잔의 풍경화 앞에 섰다. 세잔은 또다시 나에게 수수께끼를 준다. 나는 또다시, 세잔의 그림을 이해해 보려 애쓰고 있다. 왜, 그림 앞에서 이런 짓을 하여야 하는가? 모르겠다.


3.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내가 두번째로 논문을 보냈던 교수님에게 답장을 받았다. 나는 당혹감을 느꼈다. 우리는 작은 논쟁(철학 토론)을 벌이는 중이었다. 교수님은 나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당혹스러웠다. 나는 비트겐쉬타인의 "말할 수 있는 건 분명하게 말해져야 한다"는 금언의 강력한 옹호자라고 자임한다. 그러므로 "당신이 틀렸다"라는 말보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가 나에게 더 큰 심리적 타격을 준다.


그 교수님은 숱한 질문들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의아스러운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당신은 비트겐쉬타인의 판단 이론이 어떤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인가?" 같은 질문. 이 질문은 우리의 논쟁과 별 상관이 없다. 그래서 토론 중에 나는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그리고 이 문제는 나의 작은 논문의 한 주제다! 결국 그 교수님은 나의 논문을 읽지 않았다는 것인가? 


교수님은 추천서를 써주고 싶으니 나 자신에 대해 좀 더 많은 정보를 알려 달라고 했다. 그러나 내가 보낸 논문에 대해서는 단 한 줄의 평도 없었고, 읽었다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토론에 있어서는 나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고, 나의 철학적 자질에 대한 유일한 판단 근거인 나의 작은 논문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으면서도 추천서는 써주겠다고 한다!


나는 당혹과, 일종의 좌절을 느꼈다. 아마 코톨드에서 미리 진을 빼놓지 않았다면 그것은 불면의 밤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나는 확신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확신은 정당화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결국 내가 첫 번째로 논문을 보냈던 교수님의 평에 의존하기로 했다. 그 분은 나의 논문을 "It's a very good piece of work"라고 했었다. 나는 구체적인 코멘트가 없는 일반적인 평들은 무시하기 때문에 이 분의 평을 무게있게 여기지 않았었다. 이런 허울 좋은 말보다, 내가 바란 것은 차라리 "Your essay is full of common mistakes. First, ..." 같은 것이었으니까. 어쨌든 지금 나는 확신의 근거가 필요하다.


이런 지저분한 감정 속에서 나는 추천서를 얻기 위해 CV를 써 보낼 것이다. 그 교수님이 나의 CV를 읽고 과연 추천서를 써줄지는 또 다른 문제겠지만... 나는 아마 너무도 덜 성숙한 사람일 것이다. 그 교수님과 논쟁을 벌이지 말았어야 했을 것이다. 조용하게, 부드럽게, 실리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나의 한 친구에게 맬컴의 비트겐쉬타인 회상록을 읽으라고 강제하고 있다. 나의 의도는 뻔하다. 여기 나보다 훨씬 심한 사람도 있다, 최단 거리를 걷기 위해 벽을 뚫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그에 비하면 난 정말 부드러운 사람이다... -아, 정말로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나라는 사람이 피곤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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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제, 내가 첫번째로 논문을 보냈던 교수에게서 답장을 받았다. 편지는 답장이 늦어진 데 대한 변명, 나의 비판에 대한 놀라우리만큼 허약해 보이는 방어 논리, 나의 논문에 대한 입에 발린 칭찬, 그리고 당신이 누군지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추천서를 써줄 수 없다는 거절의 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의 논문에 대한 구체적 비평은 단 한 마디도 없었고, 내가 듣기를 원했던 형용사(fresh, original, strong)들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가볍게 재반박 메일을 써보냈다.


2. 친구랑 펍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양고기, 닭고기, 돼지 갈비, 야채, 납작한 빵 등의 모듬 요리를 맥주에 곁들여 먹었다. 영국에서 먹은 음식 중에서 최고로 맛있었다. 내일은 런던에 가기로 했다. 소호쪽에 있는 왕기라는 중국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을 것이며 이태리 식당에서 저녁을 먹을 것이다. 코톨드 갤러리에 가서 세잔 등을 감상할 것이다. 그리니치에도 가고 싶은데 시간이 될지 모르겠다. 웬지 영국을 정리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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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작은 논문을 모 대학의 모 교수에게 보냈었다. 읽어 보고 싹수가 보이면 추천서 하나 날려 달라고 했다. 보내놓고 나서 그 분의 논문을 읽어보고는 아차했다. 내가 논문에서 주장한 것과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었으니까.


교수의 논문을 열심히 읽고 신랄하게 씹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내가 씹은 만큼 날 씹어달라는 도발이었지만 씹힌 것은 나의 논문이 아니라 메일이었다. -코메디를 한판 벌인 셈...-.-


배운 것: 교수에게 메일을 쓸 때는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하자.


럿셀에 관한 책을 읽다가, 럿셀의 문장은 만연체라 현대의 독자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는 대목에서 깜짝 놀랐다. 나는 주로 럿셀의 책을 읽었고 논문에서도 럿셀을 많이 다루었기 때문에 문체가 럿셀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코메디다...-.-


나는 나의 작은 논문의 기다란 문장들을 잘라내고 필요없는 내용을 쳐내고 하여 논문의 분량을 거의 반으로 줄였다. 거의 뼈대만 남겼다. 


내가 읽고 있던 책의 저자에게 시비꺼리 하나와 나의 작은 논문을 던졌다. 그 교수님은 당장 답장을 보내왔다. 나는 한 친구에게 선량하신 교수님 한 분이 낚시에 걸려들었다고 말했다. 솔직히 미안했다. 나는 시비꺼리를 미끼 삼아 추천서라는 낚시 바늘에 그분을 걸어버린 것이었으니까...


그 분과의 메일 교환에서 배운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 내가 "the nature of his objections~" 라고 쓰는 데 비해 그 분은 "as to what his objections were~" 이런 식으로 쓰신다. 철학 교수님보다 내 글이 더 현학적이다!


다른 하나. 그 분은 나의 논문, 추천서 문제는 다음 주에, 그러니까 일주일 있다가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 분은 할 일 목록을 갖고 있어서 불시에 끼여든 일은 주말에 몰아서 처리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일을 관리하지 않으면 두터운 책을 쓰는 등의 커다란 프로젝트는 도저히 getting things done할 수가 없으리라. 그런 프로젝트는 하루에 몇 시간을 꾸준히 투자해야 하는 일이므로. 나는 나도 그래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 교수님에게 추천서를 받지 못하더라도 더 이상 다른 분들을 괴롭힐 생각은 없다. 시간도 없고, 두 분 괴롭힌 것으로 충분하기도 하고, 적어도 논문에 대한 코멘트는 받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이렇게 생각해 보자.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 짧은 논문 하나를 보내놓고 추천서를 요구하는 것이 상식에 맞는 일인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만약 그 논문이 대단한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면? 그러면 나의 논문은 대단한 아이디어를 담고 있는가?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감히 생면부지의 사람으로서 추천서를 요구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 대단한 아이디어는 단지 내 환상의 나라에서만 대단한 것일 수 있다. 나는 그걸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내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은 그것이 환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나는 깨뜨려지기를 원한다.


나는 한 친구에게 정면으로 부딪혀서 장렬하게 전사하겠다고 말했다. 변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영국에 온지 얼마 안되었다는 둥, 공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둥, 영어로 처음 써 보는 글이라는 둥의 변명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는 남의 학설을 죽 나열한 후 그 중 쓸만한 것을 살짝 손 보고는 그걸 나의 아이디어라고 포장하지 않았다. 나의 논문은 거의 나의 아이디어만을 담고 있다. 나는 확실하게 깨질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다. 더구나 나는 나의 아이디어의 참신함과 독창성을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다.


나는 이번 영국 여행이 나의 삶에서 모험이기를 바랬다. 그러므로 그에 걸맞는 짓을 하기를 원했다. 아마 나는 그런 짓을 벌이고 있음에 틀림없다. -나중에 다시 되돌아 볼 때 내가 시도를 하기는 했나... 하고 의심하지 않도록 이렇게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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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학원에 갔더니 승급해서 반이 바뀌었으니 이러 저러한 곳으로 가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든 생각은,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나를 승급시켜버리면 어쩌라는 거냐!!!


이번 달 말에 귀국한다. 어느새 영국에 온지 5달이 지난 것이다. 영어가 좀 늘었는가? 늘긴 했다. 아주 많이는 아니지만. 그러나... 학원에서말고는 영어 공부를 할 시간이 없었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나의 관심과 시간과 에너지를 몽땅 차지한 것은 ...이었다. 몰두하여 길을 걷다 스타벅스 유리문에 코를 찧기도 하고, 시각장애 여성의 지팡이를 걷어차기도 했다(내가 평생을 살면서 저지른 실수들 중 최악;<). 그럼에도 나는 다시 나의 첫 과제로 돌아와 있다. 나는 다시 럿셀의 책 제4장을 붙들고 낑낑매고 있다. 솔직히 피곤을 느낀다...


Look out your window and I’ll be gone
You’re the reason I’m trav’lin’ on

I give her my heart but she wanted my soul

You just kinda wasted my precious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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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5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weekly 2012-01-05 18:18   좋아요 0 | URL
말씀 감사합니다. 말씀을 듣고나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