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DVD를 사러 갔다. 나는 아론 소킨의 Studio 60과 우디 앨런의 Midnight in Paris를 골랐는데 예산 문제로 하나를 포기해야 했다. 우디 앨런을 포기했다. 나는 아직 우디 앨런 영화를 본 적이 없다.

Studio 60 에피소드 6개를 보았다. 속사포같이 쏟아지는 대사에 자막을 켜놓았는데도 따라가기가 벅찼다. 머리를 식힐 겸 친구가 고른 것들 중 2 days in Paris를 트레이에 걸었다. 쥴리 델피 제작, 주연이란다. 

Studio 60(TV 시리즈다)의 꽉 짜인 구도와 잘 계산된 대사들에 비하면 Paris의 영상과 대사는 느슨해 보였다. 나는 곧장 영화에 빠져들었다. 웃다 보니 영화가 끝나 버렸다. 박하사탕을 씹어먹은 것 같았다. 기분 전환할 때 가볍게 볼 만한 영화로 최고일 것 같다.

영화의 많은 부분은 핸드 핼드 카메라로 찍은 거 같았다. 영화를 찍는데 많은 돈이 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배우들, 각본, 그리고 제작비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 만한 시퀀스들이 눈에 들어왔다. 쥴리 델피가 직접 썼다는 각본이 아주 좋지는 않다. 가벼움과 희극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덜 상투적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영화는 프랑스와 미국의 문화적 충돌에 관한 것이었다. 그 충돌은 물론 과장된 것일 게다. 영화 내내 보수적인 미국 남자는 바보가 되고 놀림거리가 된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뻔뻔함이고 그에게 넘친 것은 진지함이리라. 그 반대편에는 영화에서 뻔뻔하게 옹호된 프랑스 문화가 놓여 있다. 프랑스 사람들이 남의 개인사에 거침없이 끼여드는 장면들에서 나는 놀라기도 하고 의아해 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택시 기사가 손님의 나이를 묻는 장면 등등. 나는 영국에서 나이를 묻고 말하는데 거침이 없긴 하지만 그것이 예의바른 일이 아니라는 것은 항상 의식하고 있다. 이런 글로벌 에티켓(?)이 어느 정도 보편적인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희극적인 장면 중 하나. 미국 남자의 우수꽝스러운 나체 사진을 여자 친구네 가족(프랑스인들)들이 다 돌려보며 킥킥대더라. 한편에서 보면 이건 엄청난 프라이버시의 침해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재밋지 않은가? 그게 그리 대수인가? 그런다고 누가 죽어나가거나 쓸데없이 돈이 소비되거나 환경이 오염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거꾸로, 예를 들면 미국의 전 대통령 클린턴이 인턴 직원과 가졌다는 부적절한 관계가, 그 엄청난 세금을 써가며 조사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나? (윤리적인 것의 강조, 훈육적인 것의 강조는 단연코 정치적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 그러나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므로 여기서 줄이자. (예를 들면 에티카의 백미는, 그 연역적이고 무표정한 논증 전개가 아니라 곳곳에 숨어 있는 촌철살인의 우스개들이다. 인간 조건을 진지하게 바라보면 비극이 되고, 뻔뻔하게 바라보면 희극이 된다. 웃지도 말고 울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척 하면 에티카가 된다. 적어도 희극의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려면 진지한 척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희극만이라면 웃음 뒤로 공허가 남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그 너머로 나아가려 한다. 그러니...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는 진지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저런 영화는 나에게 무거움을 덜어주는 청량제로 느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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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레이덴, 로테르담.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글이 길어지지 않도록 최대한 짧게 이야기하자.

-. 네덜란드 사람들은 매우 열심히 일하고, 일을 대단히 잘 하고, 대단히 친절한 것 같다. 친절함에 대해서만 예를 하나 들자. 기차를 타고 가는데 내 우산이 통로 쪽으로 또로로 굴러 갔다. 뒤쪽에서 누군가 다가와 우산을 주워 나에게 건네주는데 60대 할머니였다! 

-. 자전거. 특히 암스테르담에는 엄청난 수의 자전거가 도로를 누빈다. 도심 통행의 최우선 순위는 자전거인 듯 싶었다. 네덜란드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친구와 공원에 가서 가게에서 산 샌드위치를 먹었다. 친구는 빨간 문양이 든 화려한 색깔의 짧은 치마를 입고 도시를 누비고 싶어 했지만 날씨가 약간 쌀쌀하여 그 위에 코트를 입은 채 였다. 공원에서 샌드위치를 먹는 동안 우리가 발견한 것은, 치마를 입은 여성을 단 한명도 찾아낼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런던에 넘쳐나는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여성들의 여성적인 옷차림과 대비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자전거와 연결시켰다. 여성스러운 옷차림은 자전거 타기에 불편하다는 것! 어릴 때부터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자전거는 분명히 인간을 정의하게 될 터이다. 실용적으로, 외향적으로, 활동적으로. 네덜란드 사람들이 그러할 것 같았다. (우리도 자전거를 빌려 암스테르담을 쏘다녔다)

-. 레인스브르크에 있는 스피노자 집에 다녀왔다. 늘상 스피노자, 스피노자 하고 다니다가 드디어 스피노자 집 앞에 서니 심장이 살짝 흥분하더라. 문을 두드리자 다리를 저는 40, 5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함빡 웃으며 우리를 맞아 주었다. 점심이 지난 때였는데 우리가 그날의 첫번 방문자라고 하더라. 

-. 암스테르담에 있는 어떤 미술관에 갔다. 렘브란트의 야경이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이다. 내게 가장 커다란 충격을 준 것을 말하라면, 17 세기 네덜란드의 회화 예술이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국민적 통합성을 제공한다는 점을 들어야 할 것 같다(미술관 1층 입구 앞에 걸려 있는 대형 작품에서부터 깜짝 놀란데다 위트 형제의 처형 그림 앞에서는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대단히 뛰어난 화가들이었으며, 널리 인정되는 대로 렘브란트는 발군이었다. 야경 한 작품만으로도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네덜란드로 날아갈 가치가 있다. 단연코!

-. 반 고흐 박물관에 갔다. 우산을 받쳐 들고 개장 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다. 작품들이 연대 순으로 전시되어 있어서 고흐가 어떤 모색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실험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야망을 품고 있었는지를 이해하기 쉬웠다. 예술가는 스토리를 갖고 있지 말아야 한다. 고흐의 죽음을 설명하고 있는 판넬 앞에서 난데없이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젠장, 예술가는 자기 스토리를 갖지 말아야 해. 그냥 작품으로만 이야기해야 해." 하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러나, 나를 프랑스의 엑상 프로방스로 끌고 간 것은 세잔의 그림이 아니라 그의 라이프 스토리였다. 인정하자, 예술가(사상가)의 라이프 스토리는 작품 앞으로 우리를 불러모은다는 것을.)

-. 렘브란트의 집에 갔다. 렘브란트는 독특한 개성의 남자다. 그 독특함이 그의 작품을 독창적으로 만든다. 나는 렘브란트에게서 쾌활한 자의식을 발견한다. 그 자의식은 함부러 경건한 척 할 수 없다는 자의식이라고 나는 느낀다. 나는 그의 경건함을 어떤 초상화 속 인물의 손에 가득 쏟아져 내리던 빛으로 알 수 있다고 느낀다.

-. 일요일마다 암스테르담의 조그마한 광장에서 열리는 미술 전시회에서 작은 에칭 작품을 하나 샀다. 우리의 첫 번째 콜렉션이다. 85 유로였는데 친구가 5 유로를 깍았다. (전날엔 중고 서적 장터가 열려서 비트겐쉬타인, 럿셀 등의 책을 샀었다.)

-. 레이든. 운하와 카페, 젊음의 도시 같더라. 즐거웠다.

-. 로테르담. 이차 대전때 독일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것을 재건한 도시란다. 독특한 건축물들이 많았기 때문에 촌닭처럼 계속 두리번 거려야 했다. 서울같은 현대적인 도시가 어떻게 진화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좋은 롤 모델이리라. 미술관에 가서 바벨탑 등의 그림을 보았다. 

-. 나에게 네덜란드는 스피노자의 나라이다.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민주화되고 개방적인 나라라고 하니 스피노자가 자랑스러워 할 만하리라. 그러나 네덜란드가 스피노자에 빚진 것보다는 스피노자가 네덜란드에 빚진 것이 훨씬 많으리라. 당대의 네덜란드 사회가 제공한 자유와 관용이 아니었다면 스피노자의 사상은 씨도 터보지 못했으리라. 우리는 스피노자의 집 근처에 있다는 스피노자 상을 찾아 동네를 헤매었었다. 길 가던 총각한테 물어보니 어떤 노부부에게 뛰어 가서 몇 마디 주고 받고는 "이 분들이 여기서 수십년을 살았는데도 스피노자 상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단다. 그러므로..." 라고 하더라. 결국 택배 배달하는 사람에게 물어 대형 할인 매장 앞에 놓여 있는 스피노자 입상을 찾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오고가는 길목이었는데도 스피노자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못했던 것 같다. 스피노자는 언제나 홀로 사색하는 이미지다. 이 입상도 마찬가지였다. 스피노자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이해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스피노자의 입상에 아무런 아이디어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는 사진을 찍는다고 시간을 끄는 친구에게 사진 그만 찍고 빨리 가자고 툴툴거렸다. 네덜란드를 만든 것은 스피노자의 사상이 아니다. 스페인 제국을 격파하고 얻어낸 공화국의 독립, 상업을 위주로 한 포토폴리오, 대규모 간척 사업, 운하, 도시 시스템, 꽃, 자전거... 이런 것들이 네덜란드의 영혼을 만든 것이리라. 그러므로 사색하고 있는 스피노자의 표정은 나에게도 낯설었다. 차라리 렘브란트의 자화상처럼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면! 스피노자는 자전거를 타고 있는 모습으로 이해되고 있어야 했다! 네덜란드는 좁은 국토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다. 쓰레기통을 따로 비치하지 않고 집 앞에다 그냥 쓰레기 봉투를 내놓게 할 정도로 사랑스러운 실용주의의 나라다. 높은 인구 밀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아웅다웅하거나 각박해 하지 않는 것 같다. 대단히 실용적인 사람들인 것 같은데도 세속적이라는 느낌이 별로 없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우리는 스피노자의 고독을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고독이란 내향성을 뜻하지 않는다. 고독이란 자유인의 근거다.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주체성, 결단력, 활동성이 고독에 근거한다. 이러한 고독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걸작이 바로 렘브란트의 야경이다. 야경은 스페인 제국에 대항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의용군을 형성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니까. 시민들의 오합지졸같은 복장 꼬라지를 보라! 그게 바로 고독의 절대적인 징표이다. 즉, 자발성의 절대적인 징표이다. 그리고 그런 고독, 다시 말해 자발성을 철학적으로 서술해 놓은 작품이 바로 스피노자의 에티카다. 불행하게도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그리고 아마 세계의 대다수의 사람에게 에티카는 이렇게 이해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러므로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스피노자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나쁘지 않다. 철학은 무용하고 네덜란드는 렘브란트로 이미 차고도 넘친다. 그러나 이런 의미에서도 여전히 네덜란드는 스피노자의 나라이다. 그러므로 질문에 대한 나의 거친 대답은 시민적 자발성이다. 그러나 시민적 자발성은 우리의 전통에서 매우 미약하다. 한국은 가족을 볼모로 개개인을 극한적으로 경쟁시켜 사회를 유지하는 구조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개인적 자발성이란 가족적 이해의 표현에 지나지 않으며, 시민적 자발성이란 가족 영역 밖의 시민적 타율성(즉, 외적 규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질문에 대한 답이 시민적 자발성이라면 우리는 다시 이렇게 물어야 한다. 스피노자적 이상(적 개인과 사회)이 보편적인가, 지역적인가? 이 물음에  전자를 선택한다면 시민적 자발성의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만일 후자를 선택한다면 우리에게 스피노자란 그저 다른 문화권의 사람일 뿐이다. 우리는 다른 삶들을 엿볼 필요가 없다. 그네들은 그네들대로 모순이 있고 갈등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물론 전자를 선택했다. 그러므로 나는 "어떻게"에 대한 고민을 안게 된다. 아마 나는 소수에 속할 것이다. 나는 활동적인 소수에 속하기를 원한다. 

-. 네덜란드를 떠나면서 내 머리 속을 차지한 이미지는 렘브란트가 그린 초상화 인물의 손 위로 쏟아져 내리던 빛이었다. 네덜란드는 손에 대한 많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렌즈를 가는 스피노자의 손, 방죽에 뚫린 구멍을 막는 소년 한스의 손,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기름 묻은 손... 렘브란트 집에 갔더니 화가 한 분이 직접 에칭을 찍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러시아에서 온 10살이 안되어 보이는 아이에게 윤착기 핸들을 돌리게 했는데 힘겹게 핸들을 돌리던 그 아이의 손도 내 머리 속에 이미지로 남아 있다. 손은 내게 직접적인 삶의 상징이다. 렘브란트의 그림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만 경탄하는 것이 아니라, 렘브란트가 행한 작업을 직접 해봄으로써 렘브란트의 깊이를 손으로 이해하는 것, 그것이 내게는 직접적인 삶, 혹은 자발적인 삶의 상징인 것이다(자발성이란 나와 그것 사이에 아무런 매개도 없음을 뜻한다). 스피노자의 말대로 육체적 힘(자발적 컨트롤의 강도)은 정신적 힘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에릭 호퍼 또한 옳았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분명 손일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네덜란드를 여전히 스피노자의 나라라고 하는 것은 그 안에 이리 저리 방치되어 있는 스피노자의 흔적들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니라 그 나라의 도로들을 누비고 다니는 자전거들, 도로변에 엄청나게 쌓여 있는 자전거들을 보고 하는 말이다. 네덜란드는 내게, 자신의 근육의 힘으로 자전거 바퀴를 돌리며 한 손으로는 스마트 폰을 들고 수다를 떨면서 다른 한손으로는 핸들을 조정하며 가볍게 질주하는 스피노자들의 나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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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2-06-06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로 세로 크기가 거의 4미터나 되니.. 저도 렘브란트 보러 암스테르담에 한번 가보고 싶어지네요.

weekly 2012-06-07 14:44   좋아요 0 | URL
예, 크기가 주는 압도감도 굉장합니다. 작품의 규모에, 군상들의 배치에, 그 주제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렘브란트의 신기를 받은 곳에서 자체발광하는 그 신비한 빛에, 약간 어둡게 되어 있는 방에 들어서는 순간 입이 딱 벌어지더라고요.
 


복스 힐. 커다란 언덕이다. 초록으로 뒤덮인 비탈에서 사람들은 조용히 휴식을 취하거나 포도주를 마시며 친구들과 즐거이 떠들거나 언덕을 오르내리며 연을 띄우느라 분주해 하기도 한다. 정상의 평평한 땅에는 간소한 전망대가 있다. 주변으로 4 시간 짜리 트래킹 코스가 이어져 있다. 

복스 힐은 원래 개인 땅이었다고 한다. 매물로 나오자 어떤 신사가 사들여서 국립 재단에 기증한 것이란다. 그 신사의 이름이 전망대에 새겨져 있다. 덕분에 이 좋은 자연을 모두가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복스 힐 정상에서 탁 트인 하늘과 땅을 바라보자니 이 신사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세잔이나 모네의 그림 앞에서 그 화가들에 찬탄하는 것처럼 말이다. 세잔이나 모네의 그림은 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물론 한국 사람이고 내내 한국에서 살다가 작년 여름에 처음 외국에 나와 봤다. 한국에서 살 때도 한국은 종종 나에게 낯선 나라였다. 특히 한국의 효라는 관념은 내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었다. 놀랍게도 한국 사람들은 효의 완성을, 중국의 옛 경전에서 가르친 바에 따라 입신양명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념은 한국 사람들에게 완전히 체화되어 있다. 

복스 힐 정상에 서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일 한국 사람이 이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면? 이 땅은 내가 조상에게 받아서 후손에게 넘겨주어야 할 우리 가문의 것이다. 나의 것이 아니다. 그런 고로 내가 이것을 함부로 팔거나 어떻게 할 수 없다. 한국 사람이라면 이 땅이 자기 가문의 것임을 공표하기 위해 햇살이 잘 드는 가장 좋은 자리의 비탈을 깍아 조상의 무덤을 모실 것이다. 미안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강아지가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전봇대에 오줌을 누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역시 스피노자주의자이다.)

이 좋은 땅의 가장 좋은 자리에 인공과 독점의 흔적을 남기고 그 주변을 "접근금지"라는 표말이 달린 철책으로 둘러친다는 생각은 복스 힐 정상에서 할 수 있는 상상 중 최악의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한 상상을 할 수 있었다. 그런 상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나는 일종의 비극으로 여긴다. 물론 이러한 독점의 철책은 어느 문화에나 있다. 어떤 문화는 그 철책이 "나"로부터 열려 무차별적인 대중에게 완전히 개방되는 것을 성숙의 징표로 삼는다. 그리고 어떤 문화는 그 철책이 "나"로부터 열려 가족의 영역까지 확장되는 것을 성숙의 징표로 삼는다. 한국은 물론 후자에 속한다. 한국 사람에게 전자는 미성숙을 의미한다. 나는 한국 사람들의 이러한 성향을 인정한다. 그것은 생존에 특화되어 있으니까. 반면 그것은 생활에 무력하다. 그리고 운동이란 생존에서 생활로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운동이 삶을 정의한다고 믿는다. 물론 마르크스에게서 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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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들 두 분이 방문하여 함께 토론을 했다. 우리의 주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원죄에 대한 것, 다른 하나는 완전성에 대한 것.

나의 문제 제기 1: 아담의 원죄가 유전된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죄란 도덕적으로 성숙한 인격체가 행한 어떤 행위의 결과다. 아담은 신의 명령을 어겼고 그 결과로 죽음을 피하지 못할 존재가 되었다. 이제 막 태어난 아이는 원죄를 갖고 태어나는가? 그렇다. 그러면 이 아이의 원죄는 어떤 행위의 결과인가?   

그분들의 설명 1: 원판에 흠이 있을 경우 그걸 복사하면 복사본에 계속 흠이 남는다. (그분들은 다양한 버전으로 이러한 논리를 주장했고 나는 계속 불만족스러움을 표시했다.)

나의 문제 제기 2: 아담이 완전한 인간이었는가? 그렇다. 그러면 어떻게 아담이 신의 명령을 어길 수 있는가? 이 볼펜이 완전하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고 망가지지 않고 잘 기능한다는 의미 아닌가? 공장에서 막 나왔을 때는 완전했다고 말하고 싶은가?

그분들의 설명 2: 아담은 자유 의지를 갖고 있다. 아담은 선택할 수 있다. (역시 불만족스럽다. 게다가 나는 스피노자주의자이다.) 

토론은 치열했지만 합의점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다가...

나: 말했듯이 나는 죄나 완전성을 어떤 행위의 결과들, 혹은 총체들로 이해한다. 완전성에 대한 당신의 정의는 무엇인가?

그분들: 신이 보기에 좋으면 그것이 완전한 것이다. 신이 만들어 놓은 규칙들을 잘 지키면 완전한 것이고 어기면 죄인 것이다. 

토론에서 최악은 무엇일까? 독설, 인신 공격, 고성, 비꼼 등등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런 것들은 토론의 규칙 안에서 토론 기술로 포용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면 어떤 것이 토론의 규칙에 위배되는 것일까? 아이디어를 제공하지 않는 것! 아이디어가 오고 갈 때에만 토론은 가치를 가진다. 결론이나 합의점에 도달하는 것, 서로 예의를 지키는 것 등등은 토론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다. 

나는 그분들의 완전성에 대한 정의를 듣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내 말 이해하겠는가?" "이해한다. 솔직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이걸 생각해봐야만 한다." (영어 대화를 그대로 옮김)

그분들의 완전성에 대한 정의는 신선했다. 이 정의로 원죄가 어떻게 유전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은 해소된다. 완전한 인간이 어떻게 타락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도 해소된다. 

신이 제정한 규칙을 인지하고 그것을 잘 지켜나갈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완전한 사람일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 사람은 신의 테스트를 받고 항상 그것을 통과하는 사람일 테다. 이러한 맥락에서 구약의 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욥기를 읽어 보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는 다음에 만나 욥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것으로 토론을 마무리했다.

"느꼈겠지만 나는 굉장히 회의적이다." "나도 그랬다." 우리는 호탕하게 웃으며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방으로 돌아와 보니 탁자 위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영국 신사 할아버지가 놓고 간 팜플렛이 놓여 있었다. 표지의 그림이 3단으로 되어 있다. 맨 위는 죽그릇을 들고 있는 굶주린 아이, 그 아래는 한창 전쟁 중인 군인, 그 아래는 시커먼 매연을 내뿜는 공장, 그리고 "Will our world ever change?"라는 카피. 종교에 대한 토론에서 잇점을 갖고 출발하는 사람은 언제나 무종교자다. "처녀가 애기를 낳고, 죽은 자가 살아났다고? 그걸 믿어?"라고 공격할 수 있으니까. 반면, 기아, 폭력, 환경 오염 등에 대해 무종교자들은 어떤 전망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참으로 할 말이 없게 된다. 더구나 나는 스피노자주의자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적 재앙들은, 마치 늑대가 양을 잡아먹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자연사의 일부이다. 스피노자 등의 철학자들이 한 일이라고는 낙타가 바늘 구멍 통과하는 것처럼 힘들고 희소한 전망을 찾아내어 일말의 낙관적 세계관으로 제시하는 것이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자기 만족이자 자기 위안이다. 인류의 진보는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나도 그 방향이 옳은 방향이라고 믿고 있으므로), "진보적"이라는 말은 "다른"이라는 말을 오용한 것이라는 지적에도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진보라는 것이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인류에게 더 풍요로운 행복을 가져다 주었는가에 대해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이 아무리 척박하다 한들 현실 대신 환상을 바라보는 일은, 적어도 내게는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일종의 퇴행이다. 그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또다른 방법이다. 여기서 사르트르의 역설이 진리가 된다. 나치 치하에서보다 프랑스가 더 자유로웠던 적은 없었다. 자유의, 진리의, 진보의 바늘 구멍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나"라는 공간이다. 그 공간 안에 우리의 이상을 풀어놓아야 한다. 이러한 깨달음을 실천하기엔 너무 너무 늙었는가? 이런 변명을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다. 그게 현실일 경우가 많으니까!(나도 너무 너무 늙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아이들이 이러한 깨달음을 더 일찍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행복의 일부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체계는 "나"에게 나의 자유를 증명하도록 강요한다. "나"는 체계를 자유의, 진리의, 진보의 체계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에 일부로 참여함으로써 그 자유를 증명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운동의 정의이다. 물론, 스피노자에게 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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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2-05-31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랙북스라는 영국 시트콤 생각이 나네요. 회계 업무를 너무 하기 싫은 주인공이 온갖 다른 일(그동안 무척 하기 싫어했던)을 찾아서 하다가 결국은 교회인들의 방문까지 환호하며 접대하는 ㅋㅋㅋㅋㅋ 선교하는 신자들도 이런 반응은 처음이라며 의아해 하고 종교적인 토론을 열심히 하고 돌아갑니다. 집에 혼자 남은 주인공은 회계 업무를 떠올리곤 다시 한숨을.... 그닥 관련은 없지만 영국에서의 종교에 대한 토론이라니 이 에피소드가 생각나서요^^

weekly 2012-05-31 04:2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 저도 종교에 딱히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영어도 익힐 겸, 영국 사람들 속내도 알 겸 해서 오겠다는 사람 막지 말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거라서... 찔리는 것이 있는지라 그분들 올 때는 영어 학습 서적들을 죄다 책상에서 치워놓는답니다.^^ (이러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고 제가 신자가 되어 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루돌프 카르납의 " An Introduction To The Philosophy Of Science"를 읽기 시작했다. 카르납의 강의를 편집한 책이란다. 서문에서 편집자가 "이 책에 담긴 모든 아이디어는 다 카르납의 것이다"라고 한 대목에서 난 깜작 놀랐었다. 그렇다면 역으로 그 문장들은 상당 부분 편집자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일 수 있으므로. 아니, 철학자의 책의 문장을 편집자가? 쇼펜하우어가 알까 두려운 일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편집자가 마틴 가드너란다. 카르납이 위대한 철학자이긴 하지만 영어가 모어가 아니다보니 마틴 가드너같은 탁월한 작가에게 문장 기술의 상당 부분을 일임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책이 상당히 매끈하게 읽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더라는 이야기.

오늘 첫 장을 읽었다. 30장까지 있다. 시간이 무섭게 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시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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