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 신청을 하였다. 인식론, 심리 철학, 근대 철학, 윤리학. 프로그램 소개와 수강 신청 다음엔 간단한 파티가 있었다. 학생들이 음료를 들며 담소하는 시간. 주변에 나를 비롯한 몇몇 대화 상대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기웃거리고 있었다. 나는 백포도주 한 잔을 따라 마시며 생각을 했다. 저 친구들이 한국 사람들이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대화 상대를 찾아내려 노력했을까?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포도주를 죽 들이킨 후 잔을 탁자 위에 올려 놓고 주저없이 파티가 열리고 있는 강의실을 빠져 나왔다. 

헌책방에 들러 책을 몇 권 샀다. 데카르트에 관한 논문 모음, 지각에 대한 이론, 그리고 약간 정체 불명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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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인식론에 대한 논문들을 읽고 있다. 어제 인식론 책을 받았는데 지루하더라. 그래서 차라리 논문들을 찾아 읽고 있다. 주로 게티어 문제와 관련한 것들이다. 재미있게 읽고 있지만 아직 나의 사고를 형성해 내지는 못했다. 

인식론 책 저자 서문에 재미있는 문장이 있다: "To have to live with someone whose thoughts are occupied by one topic to the exclusion of most other things is more than one can reasonably ask; it was certainly not in the original contract." 저자가 저자의 아내에게 하는 말이다. 일상사에는 모두지 무관심한 채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만 매달리고 있는 사람을 감내해 줘서 고맙다, 우리가 결혼할 때 머리 속에 그렸던 그림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뜻을 살피면 이런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웃음이 나왔다. 무거운 검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검객들이 존경스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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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보는 이번 대선의 의미는 패러다임의 교체라는 주제를 놓고 국민들이 벌이는 토론이다. 너무 뜬금없고 이상적인가? 얘기를 마저 하자. 아이엠에프 이후 들어선 3개의 정권은 모두 신자유주의적인 정권이었다. 그 결과는, 다른 모든 걸 다 접어두고 한 두개로 특정해서 말하자면, 최고의 자살률, 그리고 낮은 출산률로 대표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도 다 아는 얘기다. 그러므로 이제 대선의 이슈는 단연코 복지와 경제민주화가 되어야 한다. 대선 후보들이 한국이 처한 현재 상황을 국민들 앞에 소상히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한국에서는 이런 토론이 가능하지 않다. 아니, 가능하지 않았었다. 기득권층이 토론에 깽판을 놓기 위해 이념 문제를 갖고 들어오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다행히도 안철수라는 후보가 있다. 안철수는 이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정치 공학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정부가 무상 보육 정책을 폐지한단다. 후보들 모두 정부를 비난한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무상 보육 등의 복지 정책을 펴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그러면 이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대선 후보들 앞에 놓인 답안은 두 가지일 것이다. 첫째, 모범 답안. 지금의 재정만 효율적으로 운용해도 재원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둘째, 절대 피해야 할 답안. 세금을 올린다. 모범 답안은 사실상 거짓말과 같다. 노무현도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노무현이 거짓말을 할 당시 보수 언론들은 노무현더러 참을 말하라고 했다. 노무현이 참을 말했다면 노무현은 대선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선거 공학의 문제다. 그러나 안철수에게는 변명이 안되는 얘기다. 안철수는 선거 공학과 상관없이 분명하게, 복지를 위해서는 세금을 더 걷어야 겠다고 치고 나가야 한다. 증세를 의제의 하나로 내걸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마당을 만들어야 한다. 보수 언론에서 어마어마한 공세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슈화가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안철수의 지지율이 회복불능으로 떨어져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어쩌면 문재인이 보험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안철수의 진심이 받아들여져서, 헛소리나 하고 앉았는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되면서 대세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결과는 안철수의 몫이 아니다. 결과는 국민들의 몫이다. 국민들이 이념 공세에 편승해 앞에 놓인 불편한 현실을 바로 보는 것을 외면해 버린다면, 미래는 자명하다. 누구나 인정하듯 현재 한국의 체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어쩌면 이미 늦었다.)  (하고 싶은 얘기는 다 했으니 정치 얘기는 이제 그만 하도록 하자.)  

2.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로 흘러가는 사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실체의 갯수가 몇 개이냐가 아니라, 실체성이 점차 약화되고(추상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라이프니츠에 이르러 실체성은 극단적으로 추상화되어, 예컨대 두 개의 실체는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만 서로 구별가능하게 된다(물론, 이는 말장난이다). 라이프니츠는 여기서 동일성에 대한 이론을 끌어들이는데, 이 이론은 뜻 밖에도 대단히 생산적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이 문제에 대해 할 말이 무지 무지하게 많다. 그러므로...

3. 이 글을 쓰고 있는 도중 아마존에서 중고로 주문한 인식론 책이 왔다. 앞 장에 Tom 뭐시기라고 책 주인 이름이 적혀 있고 책 중간까지 형광펜이 잔뜩 그어져 있다. 얇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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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철수의 생각. 안철수 팀에 왜 이헌재가 끼여 있느냐는 논란이 나는 의아스러웠다.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걸까? 나는 이헌재에 대해 딱히 부정적인 생각이 없다. 언론에 나온, 예를 들면 장하준의 비판도, 아무 구체적인 논점 없이 단지 "그 사람은 안돼" 라고 이야기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렇게 아우성이라면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이 분명하고, 특히나 안철수에 대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안철수에 대해, 그의 생각에 대해 거의 아무 것도 모르면서 묻지마 지지를 표방하고 있다는 반성이 들었다.

(알라딘 이북으로 "안철수의 생각"을 사서 읽었다. 아이패드가 지원되지 않아 넷북으로 읽었다. 이북 서비스에서 알라딘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러나 공룡 아마존을 알라딘과 비교하는 것은 공정한 일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제 밤 시간에 넷북을 들고 침대에 누워 안철수의 생각을 다 읽었다. 독후감을 한 마디로 말하라면, 모든 염려가 사라졌다는 것! 안철수는 대단히 똑똑하고, 대통령으로서 모자랄 것이 없는 소양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블로그에 대선과 관련하여 썼던 이야기들이 안철수의 책에 그대로 나오더라. 그러나, 나는 결코  표절을 한 게 아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정상적인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상식적인 생각들이기에 그리 겹친 것일 뿐...)

이헌재에 대한 생각을 덧붙이고 넘어가자. 안철수는 내가 보기에 한국에서 충분히 진보적이다. 다시 말하면 상식적인 보수다. 노무현이 권력은 이미 시장(기업)으로 넘어갔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안철수가 온갖 아름다운 말로 수사하고 있는 그 모든 이야기들도 정부가 재벌들을 컨트롤해 낼 수 없다면 단지 말로 끝날 수 밖에 없다. 안철수가 아무리 중소기업, 벤처가 살아야 한다고 역설해도 현실은, 정부-대기업(예를 들면 SDS)-하청 중소 기업 순으로 주문과 돈이 흘러간다. 불필요한 추상층이 끼여 있다는 것이다. 재벌들은 한국에서 어마 어마한 부를 끌어가지만, 예를 들면 이건희의 탈세에 대해 한국 정부는 제대로 처벌을 하지도 못한다. 이래서는 정의를 말할 수 없다. (안철수는 미국에서 MBA를 한 사람이다. 예를 들면 회계부정에 대해 미국에서라면 어떤 처벌이 내려지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안철수의 정책이 구두선에 그치지 않으려면 재벌들을 실제로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나는 안철수와 이헌재의 접점을 거기서 본다. 무엇보다도 이헌재는 재벌을 휘둘러 본 실무 경험(!)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책에서 내가 특히 감명받은 부분은, 안철수가 법치에 대해 너무도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었다. 법치는 정권이 국민에게 준수할 것을 요구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국민이 정권에게 준수할 것을 요구하는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을 문서로 정리해 놓은 것이 대한민국 헌법이다. 그동안 이런 상식적인 이야기를 대한민국에서는 듣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나는 안철수가 그런 말을 해주어서 너무 너무 기뻤다.)

2. 형이상학적 상상력. 데카르트는 난로 옆에 발을 뻗고 앉아 근대 철학을 시작했다. 데카르트는 마치 그 이전에 아무도 없었다는 듯이 철학을 하였다. 데카르트가 시작한 사유의 방식이 스피노자를 거쳐 라이프니츠까지 내려오자 그 형이상학적 상상력이 여름밤의 불꽃놀이에서처럼 폭발한다. 데카르트가 구둣발로 짓이겨 버린 아리스토텔레스는 라이프니츠에게서 부활한다. 나는 스피노자를 사랑하지만, 어쩌면 라이프니츠에 빠져 바람을 피울지도 모르겠다. 라이프니츠에 비추어 보면 스피노자는 확실히 불만족스럽다. 라이프니츠는 놀랍게도 현대적이다. 나는 스피노자가 그렇다고 생각했었는데,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를 그의 시대로 되돌려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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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구가 한국에 다녀오면서 "콰이어트"와 "교수대 위의 까치"를 사다 주었다. 친구에게 "인간과 음악", "해석을 위한 한문 입문"을 부탁했었는데 서점에 이 책들이 없단다. 이 책들은 어제 이야기한 그 정체성에 대한 반성의 흔적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구매를 하든지 하여야 겠다.

2. 콰이어트. 빠르게 훑어 보았다. 예전에 이와 비슷한 내용의 책에 대한 소개를 뉴욕 타임스 컬럼에서 읽은 기억이 나서 검색해 봤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동유럽 출신의 여자가 쓴 책인데 미국에서는 자신이 검정 티만 입고 있어도 사람들이 다가와서 웃으라, 힘내라 등등 하며 야단을 한다는 것이다. 미국 문화의, 일종의 긍정 강박증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나중에 다시 찾아봐야 겠다. 콰이어트는 그저 그랬다. 

3. 교수대 위의 까치. 그냥 읽는데 갑자기 1장이 딱 끝났다. 어라? 이러면서 2장을 읽은데, 2장이 또 갑자기 딱 끝났다. 이 책을 이미 읽은 한 친구에게 "이 책 원래 아무 내용 없어?"라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아무 내용이 없단다. 그래서 마음 놓고 책을 던져 버릴 수 있었다. 내용 없는 책을 구매해 준 것으로 차릴 예의는 다 차린 것이니 굳이 끝까지 다 읽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4. 어제 종일 비가 왔다. 저녁 무렵에 근처에 있는 강가(운하)로 우산을 들고 산책을 나갔다. 배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모처럼 조용해진 강은 백조의 차지였다. 강 한가운데를 유유히 미끄러져 가는 백조가 신나 보였다. 보통 때라면 강 한가운데 길은 커누나 보트를 탄 사람들의 차지이니까. 돌아오는 길에 난데없이 위산이 쏟아져 내렸다. 석사 과정 강의는 반년 후에 끝나고 그 뒤엔 두 달 길이의 논문 학기만 남는다. 위산은 내가 그 과정을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을 의미한다.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은? 이 블로그를 매일 매일 적어야지 하고 다짐하는 것. 가이드라인 - 30분 이상 시간을 들이지 말 것! 스트레스는 받아치는게 맛이라고 나는 배웠다.

5. 오늘 오전부터 라이프니츠의 단자론 주석서를 읽고 있다. 흐뭇한 건 이걸 헌책방에서 샀다는 것. 아주 옛날에 단자론을 한국어본으로 읽은 적이 있었다. 그때의 느낌은, "I felt -as many others have felt- that the Monadology was a kind of fantastic fairy tale, coherent perhaps, but wholly arbitrary."(이 주석서의 서론에 인용되어 있는 어떤 학생의 말)과 똑같았다. 단지론의 첫 두 항을 해설과 함께 읽은 지금 나는 라이프니츠의 논증의 철저함을 긍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형이상학적 통찰에 감탄하고 있다. 라이프니츠의 접근 방법은 이렇다. 세계는 사물들의 집적들이 아니다. 세계는 어떤 통합성을 제공하고 있다. 맞나? 맞다. 그러면 이 통합성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것이 라이프니츠의 출발점인 듯 하다. 내가 품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라면 이런 버전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장은 단어들의 집적이 아니다. 문장은 단어들의 집적 이상의 어떤 통합성을 제공한다. 맞나? 맞다. 그러면 어떻게? 이것이 예를 들면 럿셀이나 비트겐쉬타인의 문제의식의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특정한 사례들에 폭넓은 적용성을 가지는 것, 이것이 형이상학적(철학적) 사유의 힘이다. 라이프니츠, 그대의 시작은 좋았소.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면서 그대의 논설을 끝까지 끌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소.

6. 이 글을 쓰는 와중에 데카르트의 철학 저작집 제1권이 왔다. 아마존에 중고로 주문한 것이다. 책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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