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학위 논문 주제를 정해야 한다고 해서 비트겐슈타인의 "논고"라고 알려 주었다. 비트겐슈타인이 철학계로 복귀한 때인 1929년 앞 뒤의 기록들을 위주로 독서를 했다. 몽크의 전기에서, 비트겐슈타인이 오그덴의 책에 대해서 "철학은 그렇게 쉽게 정리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야!"라고 비판한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비트겐슈타인과 무어는 마냥 무난한 관계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비트겐슈타인이 철학계에 복귀하여 첫 강의를 시작했을 때부터 무어는 그 강의에 참석하여 강의를 노트한다. 비트겐슈타인이 죽고 난 후 무어는 이 강의들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발표한다. 오늘 그 일부를 읽었는데, 학생들의 강의 노트보다 생생한 맛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 같았다.(다시 말해서 무지 지루했다.) 무어는 매우 솔직 담백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의 논문을 보면, 어떤 면에서는 과격할 정도로 담백한 면도 있는 것 같다. 비트겐슈타인은 무어의 그런 순수함을, 철학적으로 깊지 못하다고 비판하곤 했다. 무어는 비트겐슈타인을 인간적으로 좋아하지 않았고 비트겐슈타인에게 직접 그렇다고 말했다. 너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너가 철학적 영감을 주니까 너의 강의에 참석하고 너와 철학 토론을 하는 것이라고. 무어의 그런 솔직함이 비트겐슈타인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으리라. 비트겐슈타인이 죽기 직전까지 몰두한 작업도 무어의 논문에서 발단이 된 것이었다. 나도 비트겐슈타인을 인간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무어처럼 비트겐슈타인이 매우 계발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의 사유의 흔적을 탐색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제너시스 음악의 어떤 부분은 매우 병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제너시스에서 가장 즐겨 듣는 부분은 바로 그 병적인 부분이다. 나는 무어만큼 솔직할 수는 없는 사람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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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8 1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weekly 2012-11-08 19:31   좋아요 0 | URL
럿셀의 묘사에 따르면 무어는 순수한, 혹은 솔직한 사람의 전형과 같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무어가 비트겐슈타인을 인간적으로 싫어하지만, 그의 철학에는 흥미가 있다고 말했다면 정말 그랬을 겁니다. 영국에는 이런 양단이 확실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요. 예를 들면 스펜서 같은 경우지요. 친구 하나가 스펜서에게, 속기사를 두고 책을 받아 적게 할 때 속기사가 예쁜 아가씨면 집중하기가 매우 힘들다고 말하자, 스펜서는 그 친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정말 그래?"하고 되물었답니다. 스펜서는 젊고 예쁜 여자 속기사에서 "젊고 예쁜 여자"는 제끼고, 속기사를 속기사로만 바라볼 수 있는 도통한(!) 사람이었던 거죠. "도통한"을 우리말로 하면 "비인간적"이 될 터이구요. 이런, 이성이 지나치게 발달한 사람들의 교우 관계는 지적 콘텐츠를 매개로 하는 경우가 많겠죠.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경외를 받고는 있지만 사랑을 받고 있지는 못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사랑을 갈구했었고, 그랬기에, 제 생각에는, 종교, 즉 신이라는 관념에서 결코 이탈하려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반면, 스피노자는 친구들과 이웃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함께 받았죠. 어떤 친구가 스피노자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 애정 어린 표현들에 제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고요. 제 생각에는, 예쁜 여자 속기사에서 "예쁜 여자"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도통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에 무감각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예쁨, 지성, 위트, 유머, 관대함, 재력 등등은 분명 그 사람의 매력을 구성하는 주요 부분들일 겁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지적 능력은 탁월한데 성격이 까칠하다고 한다면, 저라면 그 사람의 성격적인 단점은 가능한 제끼고 그 사람의 장점에만 주목해서 관계를 유지하려 할 것 같습니다. 까칠한 성격을 감수할 정도로 그 사람의 지성이 뛰어나다면 말이죠. 그런데 이 말은 그 사람이 내게 매력적이라면, 이라는 말을 복잡하게 말하는 것에 불과할 겁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엄청난 갑부이지만, 제가 그 사람의 재력에 별 관심이 없다면, 그 사람의 재력은 제게 별 매력을 주지 못하는 거겠죠. 그 사람의 다른 어떤 부분이 특별히 제게 매력을 주지 않는 한 그 사람은 제게 전혀 매력이 없을 수도 있을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서적 교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인간적 편안함, 관대함, 신뢰감 등에서 커다란 매력을 느끼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대체로 덜 관계지향적인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아이리스 머독이 "I hate contingency. I want everything in my life to have a sufficient reason."("그물을 헤치고" 중에서) 라고 말한 바 있는데, 저도 물론 공감합니다. 엊그제 도서관에서 비트겐슈타인의 글을 적어 온 게 있는데, 물론 크게 공감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철학자(도)들의 기본 성향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하지 못하겠습니다.

"Don't be dependent on the external world and then you have no fear of what happens in it... It is x times easier to be independent of things than to be independent of people. But one must be capable of that as well."
 

비트겐슈타인의 캠브릿지 강의록을 다시 꼼꼼하게 읽고 있다. "논고"나 "탐구"를 읽고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그 깊이에 의구심을 느낀 적이 있다면(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 책을 읽어 봐도 좋을 것 같다. 비트겐슈타인이 의심의 여지없이 심오한 철학자라는 걸 단박에 느끼게 될 테니까. 이 책에 나타난 비트겐슈타인은 럿셀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철학자다. 비트겐슈타인이 육성으로 자신의 철학에 대해 해명한 자료가 그토록 많음에도 그가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거의 이해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이 그를 기를 쓰고 오해하려 하지 않은 한은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 점을 점점 의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와이즈만이 기록한 대화록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단 한번 하이데거에 대해 언급한다. 그런데 웃기게도 필로소피컬 리뷰에 실려 출판되었을 때, 와이즈만의 원래 대화록에서 "하이데거에 대해서: 나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불안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주 잘 알 수 있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은 삭제되어 버렸다. 이 말이 삭제된 이유는 너무도 분명해 보인다. 바로 이와 같다! 세상엔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차라리 이해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더 왕성하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철학자들의 세계는 다를 거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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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가 독서 주간이라서 강의가 없다. 그래서 이번 주 내내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공부할까 했는데... 집에서는 집중력이 떨어지더라. 주로 지난 주말에 빌려온  비트겐슈타인의 1930-1932 캠브릿지 강의를 읽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여전히 가장 불투명한 철학자 중 하나로 남아 있는 것 같은데, 그 불투명성은 참으로 이해하기가 힘든 면이 있다. 강의록, 대화록, 철학 노트 등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고, 비트겐슈타인과, 예컨대 "논고"를 한 줄 한 줄 토론한 사람이, 내가 알기로 적어도 세 명은 되기 때문이다(럿셀, 램지, 노만 맬컴).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한번 느끼게 되는 것은, 특히 초기 철학에 관한한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가장 훌륭한 해석서는 비트겐슈타인 자신의 노트나 대화록, 강의록 등이라는 점이다. 당연한 이야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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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공부, 이후에 푹 놀았다. 밤에 테레비로 지옥의 묵시룩을 봤다. 말이 필요없는 걸작. 광기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인간 광기 일반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하는 것은 이 영화에 대한 가장 끔찍한(!) 오독이 될 것이다. 이런 오독에 기대어 사람들은 곧장 허무주의자가 되고 현실주의자가 되고 보수주의자가 된다. 즉, 알리바이에 기대어 사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말을 비틀어 말하자면, 전쟁터의 군인들의 광기는 높고 화려한 빌딩 숲의 사무실에 앉아 계산기를 두드리는 자본가의 광기와 많이 다르다. 이러한 분별력만이 우리를 진정한 현실주의자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일요일밤, 자기 전에 보기에 좋은 영화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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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은 없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고, 철학 토론을 했고, 새로운 철학자를 발견했고, 감질나는 진전에 애를 태웠고, 일주일 안에 이 문제에 대한 완전한 이해에 도달하고 말 것이야, 라는 다짐과 함께, 배가 고파 집으로 돌아왔다. 미쳐가고 있는 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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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4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weekly 2012-11-05 18:37   좋아요 0 | URL
하하 말씀 감사합니다. "끝도 안나는 공부를 끝내다", 멋진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