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뉴몰든이라고, 런던 근처의 한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에 가서 돼지고기 볶음을 먹었다. 음식점 이름은, 좀 지나치게 촌스러운 진고개. 내가 뉴몰든에서 유일하게 좋아하는 식당이다. 영국에 처음 왔을 때는 뉴몰든 자체를 싫어했었다. 런던 중심부의 소호를 딱 차지하고 있는 중국인 지구에 비하면 뉴몰든 한인 동네는 정말 퇴락해 보였고, 식당 음식은 조미료 범벅이었고, 식당 분위기들도 절간 같았고, 소액은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다거나 사장 아줌마가 거의 바 분위기를 연출하며 대놓고 비즈니스를 하는 곳도 있고 해서 도저히 정이 가지 않았다. 진고개는 푸짐하고 저렴하고 분위기 좋고, 서비스도 좋다. (두번째 갔을 때부터 한국말을 잘 하는 네팔 아저씨가 알아보고는 반갑게 인사하드라.) 마치 신촌 돼지 껍데기 집에 와 있는 듯한 편한 느낌. 어제 옆자리엔 대학 초년생쯤으로 보이는 학생들 4명이 머리가 아플 정도로 떠들어 댔지만, 화가 나지는 않았다. 아직 영국화가 덜 된 학생들 같았고, 그만큼 진고개라는 식당의 분위기가 편하다는 뜻도 되니까. 떠들썩하고, 이 자리 저 자리에서 연기가 막 피어오르고, 종업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옷에 고기 냄새가 가득 베고 이런 역동적인 분위기... 어디에서 또 느낄 수 있을까? 전세계의 요식 산업을 장악해 가고 있는 중국인들의 식당에서, 아니면 이태리 식당에서? 한국, 한국의 고기집 말고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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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폴 사이먼의 목소리에서 영성을 느끼곤 한다. 이 얘기를 했더니 한 친구가 BBC의 폴 사이먼 다큐먼터리에서 짐바브웨이 뮤지션들이 폴 사이먼에 대해 그렇게 얘기하더라라는 말을 해주었다. 걸어놓은 비디오를 보면 폴 사이먼이, 마치 골방에 혼자 앉아 읖조리듯이 침묵의 소리를 노래한다. 사실은... 공부하는 동안 이 곡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 곡을 들으면 마음이 착 가라앉아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런 힘을 가진 다른 음악들을 찾아보았지만 이 곡만한 힘을 가진 것은 아직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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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학기(논문 학기 포함) 동안 8 개의 에세이와 한 개의 논문, 모두 합쳐서 대략 3만자를 썼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3만자의 쓰레기를 썼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첫번째 학기의 첫번 에세이는 두어 달을 끌고도 끝을 내지 못한 반면, 마지막 에세이는 단 하루만에 끝을 내버렸다. 물론 데드라인에 걸려서. 마감일 직전 일, 이주는 잠다운 잠을 잔 날이 없었고, 마지막 이틀 정도는 날밤을 꼬박 세워야 했다. (6월19일날 논문을 제출할 때도 그랬다.)


학위 논문은 언어 철학 관련 주제. 원래는 비트겐쉬타인에 대해 썼던 입학 에세이를 발전시켜 논문으로 완성해 보려 했었는데, 두번째 학기가 끝나갈 무렵 그동안 공부한 것들을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학기에 들었던 언어 철학 강의 때 나는 세미나를 하나 했다. 다른 학생들 하는 것을 참고하려고 맨 마지막 시간에 세미나를 하겠다고 했는데 이러 저러한 이유로 세미나들이 다 취소되어 나만 세미나를 하게 되었다. 세미나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그 주제를 학위 논문으로 발전시켜 보려 했는데, 딱 일주일 후 그것이 임시변통적인 이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폐기. 이래 저래 학위 논문 주제로 갈팡질팡했다. 


두번째 학기 에세이 제출날에서 학위 논문 제출날까지 딱 한 달이 주어졌다. (비정상적으로 짧은 기간이다.) 일주일 동안 자료들 읽고 생각 정리, 다음 일주일 동안 하루 2000자 꼴로 1만자 완성에 8000자를 썼다. 딱 하루만 더 쓰면 초고가 나오는데 그때부터 지독한 슬럼프가 찾아왔다. 이주 가까이 거의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마지막 일주일, 다시 엔진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썼던 것을 죄다 뒤집어 엎으며 제출날 아침까지 여전히 뒤집고 있었다. 슬럼프가 너무 길어서 세 번은 뒤집었어야 할 논문을 두 번을 채 다 뒤집지 못하고 제출해야 했다는 것은 정말 아쉽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나름 대견한 점은, 논문 전체를 통해서 하나의 이론 체계를 관철시킬 수 있었다는 것. 곧 오류가 드러날 것이겠지만... (내가 철학 논문들을 읽으며 배운 유일한 것은, 결코 오류를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 물론, 공부를 계속 하고 싶다. 현실이 허락한다면...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무엇을 잘 하지 못하는지, 무얼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예를 들어 나는 철학 서술을 하루에 2000 ~ 3000 자 정도 할 수 있다 등등.)


하나의 계절이 끝났고, 이제 다음 계절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다시 긴장 상태로...


(8000자 정도 쓰고나서 이제 하루만 더 쓰면 되겠다 싶었을 때 기념으로 이 사진을 찍어 놓았다. 초고 완성하고 나서 이 논문 저 논문을 읽으며 내 이론을 검토해 봐야지, 이러 저런 대목은 아마 누구를 읽어봐야 겠지...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그리고 긴장이 풀어진 걸까... 나는 그 후로 심각한 슬럼프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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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R을 만났다. 좋아 보였다. 영국에서 기분 장애 치료를 받다가 차도가 없어서 미국 존슨 홉킨스 병원에서 2주간 치료를 받고 4주 전에 퇴원했다고 한다. R은 그 치료를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R이 그동안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어 놓은 것.) 그것을 본 나의 즉각적인 반응은 이런 것이었다: "이거 너가 그린 거 맞아?" 그림이 골격에 있어서나 컬러에 있어서나 훨씬 건실해졌다. 나는 "way better"라고 말했다. R은 곧 미술 학교에 등록할 예정이란다. 이제 철학은 부차적인 일이고, 미술이 그의 확고한 관심사가 되었다. 잘 되었다. 그 치료법(CBT)에 대해 얘기하며 공원을 빙빙 돌았다. 이야기는 곧 스피노자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이제 R은 철학에 대한 관심이 확실히 사그라들었다. 그는 에티카를 "not practical, not pragmatic"하다고 말했다. 물론, 내 생각은 다르다. 우리가 스피노자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에티카를 읽을 필요조차도 없다. 스피노자는 우리가 지성이나 이성을 이용하여 더 나은 삶을 꾸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를 지성론자, 합리론자, 이성주의자 등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다소 열띤 토론을 했다. R과 헤어지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헌책방에 들렀다가 달라이 라마의 "The art of happiness"가 눈에 들어오길래 집어들었다. 3.99 파운드. 집에 오는 내내 읽으면서 웃었다. 우리가 공원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그 안에 잔뜩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몇몇 구절을 인용해서 R에게 메일을 줘야지 했는데 아예 책 하나를 사주어야 할 것 같았다. 집에 와서 컬리의 에티카 해설서를 읽었다. 컬리는 마음의 불멸성에 관한 스피노자의 이론을 에티카의 가장 어려운 대목으로 꼽고 있었다. 나는 나의 몸과 같은 것이 아니다. 이 말의 의미는 이중적이다. 첫째, 그러므로 나의 몸은 나에게 투명하지 않다. 둘째, 그러므로 나는 나의 몸에서 벌어지는 일을 마치 제3자인냥, 객관적 관점에서 기술할 수 있다. 후자가 바로 철학의 가능성이다. 혹은 영원의 가능성이다. 


R과의 대화 한 대목을 떠올린다. 의사들이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고 조언했다고. 나는 젠 마스터의 가르침과 비슷한 거 같다고 말했었지. 나는 지금 미래의 어떤 계획에 집착하고 있다. 사실 그런 집착함이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요는 그런 집착이 나를 비생산적으로 만들지 않도록 그걸 내가 관리할 수 있어야 하리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건 매우 쉬운 일일 수 있다. 아침에 108번의 절을 한다고 해보자. 108이라는숫자를 집착이라 말해도 좋고, 아니라고 말해도 좋다. 어쨌거나 그 숫자가 없다면 촛점이 맞추어진 행위도 없다. 중요한 건 108이라는 숫자를 마음에 갖고 1, 2, 3... 에 동일한 흥분을 분배하며 행위 하나 하나를 쌓아나가서 108이라는 숫자에 이르는 것이다. 108번의 절은 매우 훌륭한 훈련이다. 삶에는 점프가 없다. 시다르타도 108배를 하기 위해서는 108번 절을 해야 했을 것이고, 셰익스피어도 햄릿을 쓰기 위해서는 한번에 한 단어씩 써나가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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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계신 어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원에 있는 나무를 자를 거라고 하니까 큰 나무는 함부러 자르면 안된다고 하신다. 이미 죽어버려서 잘라야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다음날 절에 다녀오셔서는 막걸리로 잘 위로해 주라 하신다. 사실은 요즘 계속 나무귀신이 나타나고 있다. 자고 있는 나를 살짝 누르기도 하고(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뭐라 한 두 마디 하기도 하고... 한뺨 굵기의 나무 두 그루를 베어 낼 때 마음이 무척 안좋았다. 땅을 파헤치다 삽에 지렁이들이 걸려 나올 때도 마음이 안좋았다. 담장 쪽에 벌집이 있었는데 사람을 불러서 여왕벌만 죽였다. 그러면 나머지 일벌들이 다 흩어진다고. 그후 몇칠 동안 벌 한 두 마리가 벌집 근처를 빙빙 돌기도 하고, 창문에 머리를 들이받기도 했다. 살아있는 것들을 정말 하찮은 이유들로 죽이니 마음이 편할 수 없다. 오늘 저녁에 소주로 악어의 눈물을 흘려야 겠다. (집에 막걸리가 없다.)


(7월의 초순이 지나가고 있다. 연말까지 해야 할 일들이 있고, 오늘 아침부터 그걸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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