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중간에 마음이 자주 바뀐다. 솔직히 나는 그걸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 놀러 갔었을 때다. 살라미 파는 가게에 가서 주인에게 살라미를 12 조각 잘라달라고 했다. 다 잘라주었더니, 아내가 8 조각만 더 잘라주면 안되겠냐고 한다. 순간 그 프랑스 사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더라. 그리고는 음식을 휘휘 던지면서 짜증스러운 태도로 살라미를 잘라주더라. 나는 그 모양을 보면서 웃었다. 또, 빵가게에 가서 바게트를 샀을 때였다. 바게트를 봉지에 담아 건네 주니 아내가 좀 잘라주면 안되겠느냐고 했다. 빵가게 점원 아가씨의 볼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바람 소리를 쇳 내더라. 나는 또 웃었다. 


아내는 영국에서도 이런 짓을 곧잘 한다. 그러나 영국 사람들은 표정이 굳거나 태도가 퉁명스러워지지 않고 한결같이 친절하게, 추가된, 혹은 변경된 사항을 처리해 준다. 


그럼, (지나친 일반화지만) 프랑스 사람은 퉁명스러운데 반해 영국 사람은 친절하고 너그러운 것일까?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프랑스 사람의 기질을 이해하고 그 기질을 더 좋아한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는 당신의 것이 아니다. 당신이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게 한 만큼 당신은 나를 덜 배려한 것이다. 나를 존중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타인의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게 하는 데 있어 세계 챔피언일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늦도록 퇴근 못하게 잡아끌거나 회식으로 몰아대는 회사 상사들.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뭔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지난 주 내내 정원 데킹(마루) 견적을 받았다. 그리고 어제 가장 싼 가격에 가장 좋은 조건으로 공사 예약을 했다. 데킹 시공자는 우리집 정원의 큰 나무를 잘라 주었던 벤이라는 사람이 물고 온 사람이었다.


원래는 딴 사람과 나무 자르기 예약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벤이 또 나무 자르는 사람이라며 왔다. 나는 아내에게 이미 결정된 사람이 있으니 견적은 아예 받지 말라고 했었다. 그런데 아내는 견적을 받았고 가격이 훨씬 쌌다. 나는 이미 결정된 사람과 일을 진행할 것을 고집했지만, 결국 일은 벤이 맡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그 벤이 데킹할 사람을 하나 데려온 것이었다. 그 사람과 얘기해 보니, 데킹을 훨씬 튼튼하고 세심하게 해 줄 것 같았다. 나는 아내에게 견적이 좀 비싸도 이 사람과 일을 진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견적이 온 것을 보니, 훨씬 더 싸기까지 했다.


교훈은, 글쎄... 세상 일은 강물이 굽이쳐 흐르듯 그렇게 흐르는 것 같다는 것. 나같은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미 된 계약을 깨고 더 싼 사람을 쓰지 못한다. 나는 한 극단의 사람이다. 사실은 우리 모두 다 극단의 사람들이다. 나는 세상에 다양한 기질의 사람이 살고, 그에 따라 다양한 방식의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즐겁다.


(아침에 뉴스를 잠깐 보니까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대화록 정국에 대한 기자회견을 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타이밍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성명을 발표했다고 생각한다. 전투에 이기고 전쟁에 지는 미련한 짓을 할 필요는 없다. 그 전투에서마저 이길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는 더더욱이 그렇다. 새누리당은 대선에서 저지른 불법을 원죄처럼 안고 있기 때문에, 사안 사안마다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람들도 새누리당의 과민반응을 다 느끼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럴 때일수록 야당은 수권 정당의 책임감, 성실함, 정쟁을 자제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선명성, 투쟁성은 지금 필요한 미덕이 아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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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국에 있는 내 친구 얘기를 하려 한다. 내 블로그에 비밀댓글을 열심히 달아주는 친구인데, 아주 쿨한 친구이기 때문에 그냥 도마에 올려도 될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은 토론에 그리 능한 편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토론을 싫어(두려워) 하는 징후들을 흔하게 드러낸다. 가장 전형적인 토론 기피 증후는 다음과 같은 주장에서 흔하게 엿볼 수 있다: 남자는 군대 가지만, 여자는 임신하잖아? 이건 주장이 아니라, 그냥 토론 중지!를 외치는 말일 뿐이다. 

또 하나 전형적인 토론 기피 증후는 다음과 같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다 썩었어! 나는 이런 류의 말을 노가다 아저씨로부터 소설가 이인화, 그리고 문제의 나의 친구에 이르기까지 정말 전한국적으로, 허다하게 들었다. 이 말이 토론 중지!를 외치는 긴급한 발언임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의 95% 이상이 여당 성향일 것이라는 점에서 잘 알 수 있다. 

당신이 완벽한 도덕적 상태를 상정한다면, 그 기준에서는 누구나 썩었다. 그러나 당신이 완벽한 도덕적 상태를 상정한다는 말은, 그 자신 완벽한 도덕적 상태에 준하여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뜻해야 한다. 그러나 당신은 이 단계에서 돌연 방향을 바꾸어, 완벽한 도덕적 상태란 없으므로 49% 썩은 놈이나 20% 썩은 놈이나 썩은 놈은 썩은 놈이니, 난 차라리 49% 썩은 놈을 선택하겠다고 결론내린다(이인화의 논리가 이렇다. 도둑들의 자기변명도 이렇다). 이런 논리를 전문 용어로 알리바이라고 한다: 그러니 나의 선택에 토 달지 말라. -물론, 나의 이러한 말은 소크라테스적 순진함을 담고 있음을 인정한다.

(순수이성비판 들어가는 말까지 읽었다. 역자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칸트의 깊음에 감동하고 있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형이상학적 질문을 타고난 존재다. 우주에 시작이 있었을까, 우주에 끝이 있을까, 나란 누구일까, 죽으면 나는 어떻게 될까...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들은 이런 질문이 대답될 수 없는 것임을 깨닫고 한켠에 치워놓는다. 일부의 사람들만이, 즉 종교인, 과학자, 예술가... 등등 만이 이런 질문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계속 추구해나간다. 우리는 이런 류의 질문들이 확실하게 대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회의론자다. 그러나 이런 류의 질문들이 우리의 행동의 한 기준, 혹은 동기로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부정하지 못한다. 자유, 도덕의 기반에 대해 우리는 확고한 대답을 갖지 못할 것이지만, 여전히 그 정체불명의 도덕적 기준들은 우리의 판단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니체의 말대로 모든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 다음에 시작된다. 여당이 썩었고 야당이 썩었고 정치가 썪었고, 국민이 썩었다는 사실은 내가 내리는 판단들에 아무런 알리바이를 제공하지 못한다. 나는 변명할 수 없고, 나는 핑게댈 수 없다. 나의 선택, 나의 판단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알리바이는 부재한다. 한국 사람들은 알리바이가 부재한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인들의 자아는 작다. 그나마 그 작은 자아마저 가족의 영토 안에 흡수되어 버린다. 가족이란 한국인에게 유일한 실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은 자아에서 비롯되는 고민들에 면역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삶에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자아의 요구다. 한국인들이 자아의 일관성을 요구하는 계기들, 예를 들어 토론을 싫어하거나 두려워 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리라. 그런데 이런 작은 자아는 동양이나 한국의 전통이 아니다(강릉 오죽헌에 걸려있는 율곡이 20세때 지은 문장을 보라). 그것은 독립한지 60년 정도 되는 신생 한국의 특성이다. 서양이 이념과잉이라면 한국은 좀 더 이념적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계속 이념, 원칙을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런 거 없음, 정치에서 관심끊어를 계속 외친다. 한국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싸움은 결국 이 싸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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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랄 것도 없지만 재미(!) 삼아...


1. 노무현이 이관하지 않았을 가능성. 정황상 이건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만일 이관하지 않고 폐기했다면, 나의 법 상식으로 봤을 때, 이게 범죄를 구성하거나 국기를 흔드는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생산한 문서를 이관하도록 강제하는 법이 있지 않는 한 애초부터 지정기록물로 등록을 안한 거니까 이관안하고 폐기했다고 문제가 될 리는 없을 것 같다.


2. 이관했는데 기록원 시스템에 대화록이 없을 가능성. 이것도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기술적 장애가 발생한 경우 말고는. 지정기록물은 색인을 만들지 않았고, 문서간 링크도 달지 않았다니까 색인을 통해서도, 목록 참조를 통해서도 대화록을 찾는 건 어려워 보인다. 이런 상태라면 수백만 문헌을 일일이 수작업해서 찾는 방법 밖에 없지 않을까? 


3. 이지원에 없는 경우. 이것도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이지원 구동해서 찾으면 쉽게 찾아져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도 정말 없다면? 이지원에는 삭제 기능이 없다니까, 시스템 구축 기관에서 시스템을 재컴파일하여 삭제 기능을 갖추도록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너무 스케일이 큰 음모론일 것 같다. 그렇게 해서까지 대화록을 지워야 했을 필요가 있을까? 한가지 미심쩍은 건 국정원본 대화록이 2008년 거고, 2007년 거는 폐기한 것으로 밝혀 졌다는 것. 국정원 2008년 생산본을 정본으로 밀기 위해서는 국정원 2007년본과 기록원 원본을 폐기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지원 시스템 자체를 건드리면 너무 너무 큰 흔적을 남기게 된다. 들통이 안날 수 없다. 나는 이 가능성도 없다고 본다. 


결론. 대화록 원본은 기록원 시스템 안에도 있고(하지만 찾기 어렵다), 이지원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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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블로그를 읽다가 내가 쇼펜하우어의 저작에 대해 감상을 쓰면서 스스로에 대해 한 약속을 보게 되었다. 쇼펜하우어가 지시한 대로 칸트 등의 저작을 읽고나서 쇼펜하우어의 저서를 다시 읽어 보겠노라는... 그래서, 한국에서 가져온 최재희 번역의 순수이성비판을 다시 펴들었다. 책장에, '비무지에서'(비무장지대에서)라고 적혀 있더라. 군대 때 갖고 들어갔었나 보다. 물론, 제대로 읽었을 리는 없지만... 올해 안에 칸트의 주요 저작들을 다 읽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것도 역시 계획에서 그칠려나...? 두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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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g-in-itself 2013-07-20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몇 년 전에 순수이성비판 200페이지 정도 읽고 중도에 포기했던 아픈 과거가 떠오르네요ㅜㅜ 요새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읽고 있는데 이번에는 예전의 칸트에서의 실패를 딛고 완독하리라 의지를 불태우며 읽고 있습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Judith Norman et. al본이 번역이 잘 되어있더라구요^^

weekly 2013-07-22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건투를 빌겠습니다. 칸트든 쇼펜하우어든 같이 읽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읽은 부분 포스팅 하고 서로 코멘트해 주고!:) (제가 한국에서 갖고 온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Payne 번역으로 되어 있네요. 교보에서 샀던 기억이 납니다.)

yamoo 2013-07-28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클리님 안녕하세요! 쇼펜하워를 탐독하고 계시는군요~ 학부때 쇼펜하워를 좋아해서 저서들을 찾아 읽곤 했는데, 주저인 의지와표상으로서의세계만, 것두 날림으로 번역한 을유문화사 판만 있어 뭔소린지도 모르게 완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시 보니, 번역이 헬~이더군요.ㅎㅎ

쇼펜하우워 번역들이 속속 나오고 있어 김미영 역자의 본을 보니, 정말 번역이 잘 되었더라구요. 박사학위논문인 충족이유율에 관한 네겹의 뿌리를 보고 이 역자가 의지와표상으로서의세계를 번역하면 냉큼 사서 읽어야지...하고 있습니다^^

저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헤겔의 정신현상학 그리고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읽다가 계속해서 포기한 책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순수이성비판..아카넷 본도 그리 좋은 가독률을 자랑하지 않아 책세상 문고본인 서문만 번역한 걸 읽었는데....책세상 본이 가장 가독률이 좋았습니다. 이 분이 전역을 하면 꼭 사서 읽어야 겠다는 결심~!

그나저나 영국에서의 생활은 잘 적응 되셨는지요~^^

weekly 2013-07-29 16:02   좋아요 0 | URL
예, 야무님 안녕하세요:) 지금 쇼펜하워를 탐독하고... 있는 건 아니고 전에 한번 대충 읽었는데, 나중에 다시 한번 제대로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지금은 칸트를 읽고 있는 중이구요. 최재희 번역인데, 어투가 옛날식이라던지 선천, 선험 등의 용어가 좀 헷갈린다든지 하는 등의 사소한 부분들을 빼면... 그냥 감사하게 읽게 되네요. 번역에 너무 너무 많은 노고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 그냥 눈에 씹히더라구요. 야무님께서 혹 의지와 표상을 지금 읽고 계시다면 같이 읽는 것 어떨까요? 간단히 발제하고 서로 코멘트해 주고~ -여기 와서 보니 철학책은 혼자 읽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들 하시더라구요.

영국 생활은... 그럭 그럭 살고 있는 거 같아요. 그냥 요즘은 다 사람 사는 데구나 하는 생각이 들구요. 옆집에서 파티하느라 늦게까지 떠드는 소리도 들리고, 한국의 시골에서마냥 개짖는 소리도 들리고, 아이 떼쓰는 소리와 그걸 야단치는 젊은 아빠의 목소리... 주차 문제 때문에 조금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고... 동네 한가운데 들어와서 살아서 그런지 한국하고 별로 다르다는 느낌이 안들어요. 여기 이웃들과의 대화주제는 주로 날씨, 집안일(정원일)... 이런 것들이구요... -요건 좀 신선하네요:) 건강하시구요~

yamoo 2013-07-31 17:48   좋아요 0 | URL
아, 영국생활은...그렇군요^^ 적응 잘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지금 쇼펜하워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고 있지는 않아요. 우연히 김미영 역자의 쇼펜하워 박사학위 논문이 번역되어 나와 쓱~ 본것 뿐이에요. 현재 의지와표상은 좀더 좋은 번역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있습니다.

저는 지금 베르그손의 주저들을 열독하고 있어요. 박사논문 쓸 것은 아니지만 주저들 거의 암기할 정도로 회독수를 늘릴 예정입니다. 물질과 기억이나 창조적 진화 각 10회독 정도 되면 위클리님과 논제를 주고받을 수 있는 수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7회독 정도 되면 의사 타진 해볼께요^^

같이 읽는 게 참 많은 도움이 되더라구요~ 위클리님께서 베르그손의 저서들을 읽기 시작하시면 제게 귀뜸해주세요~ 간단히 발제하고 같이 읽어 보아요^^

weekly 2013-07-31 18:4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아, 베르그손은 이름 정도만 알고 있는 분인데...:) 어떤 사고를 한 철학자인지 좀 알아보고 기회가 되면 직접 저서를 읽어 보고 싶네요. 그때 꼭 야무님께 귀뜸 드릴게요~

yamoo 2013-08-01 16:39   좋아요 0 | URL
베르그손은 보통 철학사에서 생의 철학자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철학사의 주류가 아닌 비주류 계열이었는데....들뢰즈가 새롭게 해석한 이후 스피노자와 함께 각광받고 있습니다.

현대철학은 니체, 베르그손에 매우 많은 빚을 지고 있지요. 여기에 비트겐슈타인을 더하면 현대철학의 주요 원류들은 다 꼽은 셈이 아닐까요..^^;;

베르그손은 칸트의 형이상항을 거꾸로 세운 철학자로 평가받습니다. 근대 제가 직접 저서들을 읽어보니 세간의 평가보다 더 위대한 것 같습니다. 아주 지극하고 당연한 물리법칙으로부터 아주 새롭고도 독창적인 형이상학이 전개 됩니다. 위클리님도 읽어보시면 좋아하실 거 같습니다.

무엇보다 서구 형이상한 논쟁에서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문제를 베르그손만큼 빼어나게 해결한 철학자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여튼 그의 박사학위 논문인 <시론>만이라도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Weekly 2013-08-01 16:5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칸트의 형이상학을 거꾸로 세운 철학자라는 평가는 굉장히 유혹적인 것 같습니다. 조만간 꼭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비비씨의 어프렌티스라는 프로그램이 엊그제 시즌 마지막회를 방영했다. 최근 들어 가장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프로그램 같아서 요즘 찾아 보고 있었다. 어프렌티스 이번 시즌은 영국 실업계의 한 거물의 투자를 받아 수익을 반반으로 나누는 조건으로 사업을 함께 할 파트너를 뽑기 위해 16명(이던가?)의 후보자가 팀을 이뤄 경쟁하는 과정을 그린 리얼리티 컴피티션 쇼다. 이번에 비즈니스 파트너로 선정된 사람의 아이템은 런치 타임 피부 개선 클리닉 체인... 인 것 같다. 사람만 보면 다른 경쟁자가 더 나아보였는데, 그 사람은 사업 아이템이 별로였던 것 같다.


어프렌티스의 매력이라면... 한 시간 안에 인생의 흥망성세를 다 볼 수 있다는 것일 게다. 모든 후보자들은 자신감 충분하여 프로젝트에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것을 다짐하며 출발선에 선다. 그러나 누구 하나는 매주 매주 경쟁에서 탈락하게 되어 있다. 


지지난 주엔가 사업 아이템을 평가하는 편이 있었다. 투자를 받게 되면 이 사업을 해야지... 하고 마음 먹고 있던 아이템을 평가받는 날이다. 돈을 투자할 거물이 말한다. 이 계획, 말도 안돼. 후보자가 말한다. 아니, 이거 확실히 대박칠 겁니다. 거물: 아니, 안돼. 넌 무슨 근거라도 있어? 후보자: 그럼요. 난 이게 될 거라고 100% 확신하고 단 한점 의심도 없습니다. 빵!


안해 봤는데, 그걸 잘 해낼 수 있다고 주장할 근거가 어디 있겠는가? 그 거물이 신물나게 들었을 '100%의 확신'은, 그것이 실물에 근거하지 않은 한 객기일 뿐이다. 실물과 100% 확신 사이의 크기가 곧 객기의 크기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내 블로그를 되돌아 볼 때마다 느끼는 그런 것과 같다. 가진 것이 없을수록 목소리를 크게 낼 수 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면 묻혀버릴 거 같으니까... 스스로 돌이켜 보면 그 괴리가 무안함, 창피함, 안스러움... 등등의 복잡한 감정으로 남는다.


어프렌티스의 참가자들 중 적어도 15명은 자신의 실패기를 냉정하게, 전 국민과 함께 테레비에서 감상하게 된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관찰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어제 어프렌티스의 뒤풀이 쇼도 잠깐 봤는데, 참가자들이 참 건강해 보이더라. 자신의 객관적인 모습과 냉정하게 대면하는 것을 난 용기라고 부르고 싶다. 난 그 분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 리얼리티쇼와 컴피티션 쇼를 싫어함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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