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화학 무기를 사용한 시리아 정부에 군사적 응징을 할 것이냐를 두고 영국 의회에서 열띤 토론이 있었다. 결과는 다들 아다시피 군사 행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캐머런 총리의 패배였다. 이처럼 중대한 대외 정책에서 내각이 의회를 설득하는데 실패한 것도 드문 일인데다, 미국이 하자는 일을 감히(?) 영국이 거부한 셈이어서 여러 날 동안 시끄러웠다. 


시리아 공습과 관련한 복잡한 사안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영국 의회에서 군사 행동안을 거부한 이유는, 정서적으로는 대충 다음과 같다고 나는 느꼈다. 
1). 시리아 정부가 화학 무기를 사용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 (이라크 전쟁 때 정보기관은 의회에 거짓된 정보를 제공했었다. 그리고 당시 블레어 총리는 미국의 푸들이라는 명예를 얻었다. 그에 대한 반성이다.)
2). 영국은 더 이상 대영제국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러 저러한 일에 영국이 왜 끼여들어야 하나? 영국이 그 정도로 국력이 대단한 나라가 아니다. 이제 그만 착각에서 벗어나자.) 
  

이번 부결 사태를 보면서 느낀 것은 영국은 한국 못지 않게 친미 국가라는 것이었다. 물론, 일부 언론에서 부각시킨 것이긴 하지만 이번 일로 미국과 영국의 특수한 관계가 손상되었다고 아우성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부결 사태를 중대 뉴스로 취급하면서 하도 떠들길래 당시 의회 토론한 것을 챙겨 보았었다. 의원들이 질문과 비판을 하면 수상이 주로 답변, 반박, 설득을 한다. 의원들의 반응이 바로 바로 나오기 때문에 설득하는 사람의 논리와 정보가 확실해야만 한다. 


보면서 느낀 건... 한국은 내각책임제를 할 수 있는 나라가 전혀 아니구나 하는 것이었다. 저토록 집중되고 긴장된 순간에 짧고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거기 앉아 있는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고 있었다. 한국 국회의원들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체득 수준의 문제라고 느꼈다.    


엊그제 시리아 사태에 대해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하는 것을 챙겨 보았다. 설득력 있는, 아주 좋은 연설이었다.


보면서 느낀 건... 대통령 중심제의 대통령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영국은 물론이지만 미국도 시리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에 부정적인 여론이 많다. 오바마는 시리아 정권에 대한 군사적 응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의회를 설득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미국 국민들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그 정치적으로 복잡한 곳에 개입을 해야 하는가? 오바아의 대답은 이념적인 것이었다. -휴매니티. 


이 두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정치 과정을 지켜 보면서 많을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절정기 때의 노무현 대통령이 떠올랐다. 노무현은 자신의 신념에 근거한 안건을 만들어 토론에 붙이고 자신이 곧잘 최종 설득자로 나서고는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한국의 국민들은 의견수렴 과정으로서의 토론에 익숙해 있지 않았다. 즉, 노무현 시대는 시끄러웠다. 후임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이 시끄럽게 떠들 만한 일은 앞에 내놓지 않으려고 했다. 박근혜는 더 철저하다. 현재 한국의 정치 상황은 매우 혼란스럽고, 그것은 헌법의 가치와 관련되어 있다. 즉, 대통령으로서 상황 정리를 해주어야 하는 것이 박근혜의 헌법적 의무다. 그러나 박근혜는 그렇게 시끄러운 일에 손을 대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박근혜의 성공 공식이다. 정치에 초연한 대통령으로서 박근혜는 현재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것은 정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문화적인 것이라고 나는 느낀다. 나는 한국 사회가 이전보다 덜 위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한국 뉴스는 젊은 층들에 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엊그제 본 뉴스인가... 대학 내에서의 복학생 신고식같은 것, 유럽의 한인 민박 집에서의 나이로 줄지어 지는 서열 관련 이야기 등등(꽃보다 할배가 별 이야기인가?).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정치 과정은 정치 문제도, 세대 문제도 아닌 그저 한국의 문화 현상일 뿐이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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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3-09-13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weekly님. 지나는 길에 제 생각을 덧붙입니다.

어떤 행태의 뿌리가 문화적일 수도 있고, 뿌리는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 수 있지만 문화에서 영향을 받을 수도 있지요. 그리고 문화에 바탕을 두었다면 그 현상으로 나타나는 행태들이 쉽게 바뀔수도 없고요. 하지만 통상적인/대개의 경우는 문화 현상은 옳고 그름이 없지만, 어떤 것은 옳고 그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원숭이와 뿌리가 같지만 (그래서 공통적인 가치관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현재의 위치가 드르기 때문에 다른 가치관(기준)을 갖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 문화에 잘 적응 못하는 마립간의 생각입니다.)

weekly 2013-09-13 16:57   좋아요 0 | URL
마립간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제가 항상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바로 찔러 주셨습니다.
말씀 감사드립니다.

saint236 2013-09-13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론의 문화를 만들면 지도력이 없다면서 기어 오르고, 이렇게 해라는 명령을 내리면 위대한 영도자라면서 추켜세우는 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자라면서 습득한 문화의 실체가 아닐까요?

weekly 2013-09-16 17:3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옳은 의사결정 과정이라는 걸 잘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 옳기는 하지만, 너무 지루하고 번거롭고 비효율적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수 밖에 없을 거구요. 차라리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에게 의사결정과정을 일임하고 싶은 유혹은 언제 어디서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어쩌면 가장 큰 문제는 합리적인 토론과정을 고의적으로 훼손하는 사람들일 것 같습니다. 새나라당이나 조선일보 같은 언론사들은 토론의 룰을 이용해서 토론의 룰 자체를 훼손하는 세력들이라고 생각되구요. 이렇게 반칙을 일삼는 구성원들을 솎아내는 능력이 시민사회의 성숙도를 결정하는 것이겠습니다만 우리 사회는 이 점에 있어서 아직 많이 어린 것 같습니다. 때로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만약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지금 우리 사회는 얼마나 시끄러울까? 대북문제, 복지공약 재원마련, 증세, 청년실업, 일본 원전 누출, 국정원 개혁... 이 모든 이슈들을 가지고 보수 연합들은 연일 대공세를 벌이고 있겠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니 시끄러울 만한 이슈는 다 수면 아래로 내려가 버립니다. 조용하죠. 그걸 박근혜가 정치를 잘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전국민의 과반수는 확실히 넘을 겁니다. 그리고 분위기 파악 못한 채 이슈를 만들어 내는 이번 검찰총장 같은 사람들은 확실히 짤리구요... 이런 식으로 습득된 경험이 우리의 정치적 환경을 틀지우게 될 것이겠지요. 저는 국민들이 결국은 이런 권위주의적인 정권에 짜증을 내고 말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saint236 2013-09-19 11:58   좋아요 0 | URL
그런에 걱정인 것은요. 짜증나는 순간이 계속되다보면 원래 그래라면서 무감각해진다는 것입니다. 가장 최악이지만 요즘 그 최악이 현시로 나타나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weekly 2013-09-19 19:2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솔직히 저도 우리나라가 결국 일본과 비슷한 정치 환경에 고착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합니다. 노무현 때 저는 한국이 너무도 자랑스러웠거든요. 아시아에서도 이 정도 수준의 민주주의를 향유하는 나라가 있다! 한나라당 지지자는 30% 대 중반으로 내려 앉았고, 이제 시간은 우리 편이다! 이렇게 말이죠. 그러나 그때에 비하면 지금 한나라당 지지자는 오히려 10% 정도 는 것 같고, 시간도 우리 편이 아니라는 게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권력 기관이든 언론 기관이든 이미 다 접수를 당했기 때문에 반전의 계기도 더 이상 없다고 보는 게 현실적일 것 같습니다. 민간인 사찰, 사대강, 국정원 공작... 다 엄청난 반전의 계기들이었지만 아무 힘도 발휘 못했으니까요.

이대로라면 새나라당이 장기 집권, 아니 영구집권에 들어갔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그역시 한국 국민들이 선택한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한국이 고도의 민주주의를 향유하는 나라라면 세인트님이나 저의 한국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것이겠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해도, 박근혜가 왕처럼 군림하는 형세가 지속된다 해도, 세인트님이나 제가 살아가는 데 별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저는 다만 선거날마다 꼭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에 대한 기여를 할 것이라는 다짐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도 제가 믿고 있는 건 있습니다. 지금의 노년 세대들은 박근혜에 완전히 감정이입이 되어 있다는 걸 우리가 이해해 줄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분들은 어떻게든 박근혜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 분들도 국정원 사태, 채동욱 사태 등이 잘못된 일이라는 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테레비 뉴스가 맨날 생활 뉴스나 땡전 뉴스나 전하고 있는 것도 잘못이라는 걸 알고는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박근혜가 퇴임하고 나면 새나라가 두 번 했으니 민주당으로 한번 물 갈아 줄 때가 되었다고 주위를 돌러 볼 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행히도 다음 번 대선에는 문재인, 박원순, 손학규(저는 개인적으로 손학규가 정권 교체 카드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등 야당의 후보군이 좋습니다. 여당은 김무성, 김문수, 오세훈 등일 텐데, 역대 최약체 여당 후보군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국민들은 박근혜가 등용했으니까 김기춘을 눈감아 줬지만 대놓고 시대역행적인 김무성마저 인정해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대선이 다시 한번 기회가 될 수 있고, 충분히 희망을 가질 만 하다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saint236 2013-09-21 23:03   좋아요 0 | URL
전 박근혜에 대한 감정 이입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박근혜에 대한 감정 이입이 항상 박근혜는 잘하는데 그 밑엣놈들이 잘못이여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거든요. 이 생각이 깨지지 않는 이상 정권 교체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weekly 2013-09-23 04:2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만일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어서 노인 연금 등에 대한 공약을 후퇴시킨다면 온통 난리가 날 것입니다. 그러나 박근혜가 그리 한다면, 나라 경제가 어려우니 어쩔 수 없다, 지킬 수 없는 공약은 과감히, 그리고 솔직하게 정리하는 박근혜가 훌륭한 지도자인 거다... 이런 소리가 나오겠죠. 이런 적나라한 비일관성은 합리적인 토론으로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저도 박근혜에 대한 감정이입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어쨌든 그것이 우리의 정치적 현실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야당의 집권 전략은 이런 현실에 대한 인식에 기반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김대중에 의한 정권 교체는 머리 수 싸움에서 어떻게든 충청도를 끌어들여야 이길 수 있다는 전략이 성공하여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아이엠에프를 겪는 와중에도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아이엠프를 겪는 와중에도 여권을 선택하는 유권자를 비판하는 것에 그친다면 그것이야말로 정권 교체에서 더 멀어지는 일이겠죠. 어쨌거나 시대의 소명은 정권 교체일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언론사들, 권력 기관들이 어용화되었다고 비판한들, 정권 교체가 아니고서는 그것들을 되돌릴 방법이 전무하니까 말입니다...

saint236 2013-09-24 14:16   좋아요 0 | URL
정치가 너무 기술적이어서도 안되지만 너무 이상적이어서도 안되죠. 새누리당은 너무 기술적으로만 생각하고, 민주당은 너무 이상적으로만 생각하죠. 물론 그 기술도, 이상도 자기들 입맛에 맞는 것에 한해서만 그렇죠. 안철수는 둘다 모호하니 패스하고...

weekly 2013-09-24 17:0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새누리당의 기술이란... 정치 과정을 형해화시키는 거 뿐이라고 봅니다. 지난 대선 때도 시대의 화두인 경제민주화와 복지 이슈를 선점하여 여당, 야당의 정체성을 완전히 희석시켜 버렸습니다. 정작은 경제민주화 공약도 복지 공약도 실행할 의지가 전혀 없으면서 말입니다. 이런 게 반칙이죠. 성숙한 국민이라면 당연히 이런 플레이어에게 아웃 선언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그 정도로 성숙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공약으로 표얻어 당선되고 나면 싹 입닦는 행태가 반복되는 걸 몇 번 보고 나면 슬슬 짜증이 날만도 할 거 라고 저는 기대합니다.
 


그동안, 주로 주말 이용해서 틈틈이 마당의 흙을 파날랐었다. 땅 속에 콘크리트 구조물도 있고 나무 뿌리도 잔뜩 엉겨 있고 해서 단순히 흙만 파내는 수준의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이제 잔디만 깔면 된다. 어제 잔디를 주문했고 오늘 물건이 온다. 조금 긴장된다. 여름 내내 작업한 것이라 마무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이곳에선 여름이 완전히 갔다. 아침 5시에 뜨고 밤 10시 가까이 되서 지던 해가 이제 확연히 짧아졌다. 본격적으로 겨울에 들어서면 오후 3 시가 넘으면 어둑어둑해 질 거다. 요즘은 날도 쌀쌀하고 계속 먹장 구름에 비가 내린다.


하기, 동기가 이처럼 분명하다 보니 여름과 태양을 보내는 것에 다들 아쉬워 한다. 나도 해가 나는 날이 있으면 한번이라도 더 바베큐를 하고 싶다. (지난 주 토요일날 모처럼 해가 나서 친구네서 바베큐를 했는데 추워서 덜덜 떨어야 했다.) 


한국에 있을 때를 떠올려 보면, 한국에선 여름도 고통스러웠고 겨울도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여름엔 폭염과 장마와 열대야가 기억나고, 겨울은 머리가 깨지도록 추운 날씨가 머리에 떠오른다. 여름을 보내면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영국에서 가장 부러운 게 날씨다. 여름도 겨울도 나기에 고통스럽지 않다. 여름엔 날이 길어서 좋고 겨울엔 밤이 길어서 좋다. (영국의 이번 여름은 유난히 해가 많이 난 여름이라고 하더라.) 해가 지면 철학자의 시간이 시작된다고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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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인가 싶기도 한데 이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었고 관련 포스팅도 했고 해서...)

개성공단 정상화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소식에 나는 솔직히 놀랐다. 안될 거라고 봤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이렇다. 한국 입장에서는 개성공단이 폐쇄된다고 해서 별로 손해를 볼 것이 없다. 북한 입장에서는, 개성공단의 직접적인 경제 효과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는 하지만 추가적으로 (한국을 포함한) 해외투자를 유치하려면 개성공단을 잘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특히 중국과 일본에 보여주어야 한다. 즉, 아쉬운 건 북한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이번이 북한의 버롯을 단단이 고칠 기회이기도 했다. 그런데 결과를 보면 재발방지 주체에 있어 한국이 기존 주장을 꺽고 분명한 양보를 했다. 한국이 왜 갑자기 강경한 입장을 철회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잘했다고 격려해 주고 싶다.

북한은 아주 신난 것 같다. 한국에서 예의상 던지는 사업도 덥썩 덥썩 물 것 같다. 그만큼 북한이 궁하다는 얘기가 될 것 이다. 김정은이 정권을 유지할 방법은 이것 밖에 없으리라. 

그런데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딜레마고, 어떤 면에서는 파라독스다. 박근혜 정부의 입장에서는 북한과 날선 관계를 유지할 수록 인기가 올라간다. 더우기 북한과 협력 관계를 강화할 수록 북한에 더 많은 달러가 흘러갈 것인데, 그 의미는 전가의 보도인 종북이념 놀이의 파괴력이 심각하게 약해진다는 것이다. 즉, 대북 관계에서 성공적일 수록 박근혜 정부의 기반 이념이 약화된다. 이것이 박근혜 정부의 딜레마다. 

반면, 진보 정당이 대북 사업을 추진할 때 받곤 하는 엄청난 저항을, 보수 정당은 상당히 덜 받는다. 그래서 대북 협력 사업은 차라리 보수 정당에서 추진하는 것이 여러모로 덜 피곤하다. 이것이 파라독스다. 새나라당이 잘 해주었으면 좋겠다.

개성공단이 완전 정상화될 때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첫 궤도엔 잘 올라탄 것 같다. 박근혜 정부가 흔들리지 말고 뚜렷한 성과를 많이 많이 내어주었으면 좋겠다. 금강산 관광도 재개하고, 디엠젯에 평화공원도 만들고, 제2, 제3의 개성공단도 만들고, 서해 평화수역도 조성하고 했으면 좋겠다. -내가 박근혜 정부에 가장 기대하는 부분이다. 박근혜 자신이 이에 대한 의지가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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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신문에서 비비씨 뉴스와 채널4 뉴스(영국 민영 방송) 사이에 경쟁이 붙었다는 기사를 봤다. 나는 진작에 채널4 뉴스로 갈아탔던 차였다. 단순히 채널4 뉴스가 더 재밌기 때문이다. 엊그제 방송을 예로 들어보자.

이집트 사태가 있은 다음날 채널4 뉴스의 메인 앵커는 카이로로 날아가 라이브로 뉴스를 진행한다. 시신이 가득한 병원에서 앵커가 직접 취재한 영상을 보여준다. 이어서 이집트, 미국, 유엔 당국자를 인터뷰한 내용을 각각 방송한다. 뉴스 시간의 반 정도를 이집트에 몰빵한다. 영국 지역 뉴스는 스튜디오의 또다른 메인 앵커가 진행한다. 노동당 총수가 런던 빈민 지역의 시장을 찾았는데 이 앵커가 직접 따라갔더라. 운좋게도 시민 하나가 노동당 총수에게 달걀을 던지는 장면을 포착하였고, 총수와 그 달걀 던진 사람 모두를 인터뷰해 방송으로 보여준다. 현장에서 직접 뛰는 저널리스트들이군... 하며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된다. 

비비씨는 어떻게 보도하나 싶어 뉴스 시간에 맞춰 채널을 돌린다. 첫 꼭지는 이집트 특파원의 현장 보도다. 두 번째 꼭지는 미국의 대응에 관한 것이다. 인터뷰는 주로 기자나 교수들과 하고 있었다. 스튜디오에서 차분하게.

어느 쪽의 보도 방식이 옳은 것인지, 현장에 앵커가 직접 뛰어 들어가 흥분한 목소리로 방방 뜨는 것이 참된 저널리즘인지 어떤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더 재밌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 채널4 뉴스의 앵커는 인터뷰 상대자가 말을 빙빙 돌리거나 대답을 회피하거나 거짓말을 하도록 놔두지 않고, 정말 무례할 정도로 다그치곤 한다. 이게 옳은 건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확실히 흥미롭다.

덕분에 채널4 뉴스를 기다리면서 앞 시간에 하는 홀리옥스라는 드라마도 보게 된다. 채널4 뉴스 다음 것도 볼 만 하면 보겠는데 별로 볼 만 한게 없어서 거기서 테레비는 꺼진다. 
 
물론, 심층적으로 파고드는 뉴스보다는 평면적으로 나열하는 뉴스를 더 놓아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왜 영국에서 채널4 뉴스가 방송 뉴스의 최강자로 떠오를까?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 (듣자하니) 엠비씨 뉴스의 시청률이 그토록 떨어졌을까? -사람들은 지루한 것을 싫어하고 생생한 것을 좋아한다. 

보아하니 한국은 물반 고기반인데다가 완전히 무주공산이다. 몰빵하면서 뛰어들 데가 너무 너무 많다. 원전, 사대강, 국정원... 그런데 왜 아무도 안나서지? 뉴스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단번에 두 배 이상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뻔히 보이는데도 모두들 주저하는 것 같다. 아마도 저널리스트로서의  책임감때문에 상업성(시청률)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있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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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유성우가 쏟아진다는 뉴스를 듣고 잔뜩 껴입고, 모포와 자리를 준비해서(요즘 여기 저녁은 쌀쌀하다), 주말마다 크리켓 경기가 벌어지는 축구장만한 마을 공원에 갔다. 오레오 쿠키도 사려고 했는데 안팔아서 다이제스트만 하나 샀다. 공원에 사람들이 가득하리라 생각했는데 (나무 그늘이 짙어 잘 보이지 않아서인지) 사람 기색이 별로 없었다. 

자리에 누워 하늘을 주시했다. 많이는 아니지만 간간이 별똥이 떨어졌다. 꽤 큰 섬광을 일으키며 별똥 하나가 떨어질 때 아내와 나는 저도 모르게 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로 말미암아 공원에 누워 밤하늘을 주시하고 있는 건 우리 뿐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별똥이 많이 떨어지지 않았고, 아내가 무서워 했기 때문에 얼마 있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잔디는 아직 온기를 머금고 있어 따뜻했다.) 

(한국에서 친구가 놀러와서 한 열흘 머물다 갔다. 한국에서 손님이 오면 나도 덩달아 관광객이 된다. 세븐 시스터스라는, 백악의 해안 절벽에도 갔었는데 이 친구가 계속 "와, 저기 예쁘다, 저기도 예쁘다"를 연발하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내가 퍽 늙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파란 하늘, 파란 바다, 초록의 들판이 한 시야에 어우러져 있는 곳에서는 말이 필요하지 않다. 나는 조용히, 홀로 그것들 안에 있고 싶어졌다. 그러다 그러다 서정주의 싯귀 하나가 떠올랐다. "초록에 지쳐..." 그랬다. 황폐함의 유혹은 치명적이다. -쇼펜하우어가 잘 설명한 것처럼. 나는 마음 속으로 아프리카라는 단어를 발음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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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3-08-13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언젠가 친구가 사는 동네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바랜 벽화를 보고 감탄을 서슴치 않는 절 보며 친구는 익숙한 동네가 낯설게 보인다고 하더라구요. 이방인인 친구와 동네를 걷는 건 참 즐거운 일입니다. 유성우는, 경기도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어요. 구름이 많더라구요.

weekly 2013-08-14 01:48   좋아요 0 | URL
익숙함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능력이 우리를 젊게 하는 힘(감수성)이겠죠. 반면, 그 표면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는, 어떤 중량감을 획득해야 한다는 생각도 떨칠 수가 없어요. 그건 감수성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