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화학 무기를 사용한 시리아 정부에 군사적 응징을 할 것이냐를 두고 영국 의회에서 열띤 토론이 있었다. 결과는 다들 아다시피 군사 행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캐머런 총리의 패배였다. 이처럼 중대한 대외 정책에서 내각이 의회를 설득하는데 실패한 것도 드문 일인데다, 미국이 하자는 일을 감히(?) 영국이 거부한 셈이어서 여러 날 동안 시끄러웠다.
시리아 공습과 관련한 복잡한 사안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영국 의회에서 군사 행동안을 거부한 이유는, 정서적으로는 대충 다음과 같다고 나는 느꼈다.
1). 시리아 정부가 화학 무기를 사용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 (이라크 전쟁 때 정보기관은 의회에 거짓된 정보를 제공했었다. 그리고 당시 블레어 총리는 미국의 푸들이라는 명예를 얻었다. 그에 대한 반성이다.)
2). 영국은 더 이상 대영제국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러 저러한 일에 영국이 왜 끼여들어야 하나? 영국이 그 정도로 국력이 대단한 나라가 아니다. 이제 그만 착각에서 벗어나자.)
이번 부결 사태를 보면서 느낀 것은 영국은 한국 못지 않게 친미 국가라는 것이었다. 물론, 일부 언론에서 부각시킨 것이긴 하지만 이번 일로 미국과 영국의 특수한 관계가 손상되었다고 아우성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부결 사태를 중대 뉴스로 취급하면서 하도 떠들길래 당시 의회 토론한 것을 챙겨 보았었다. 의원들이 질문과 비판을 하면 수상이 주로 답변, 반박, 설득을 한다. 의원들의 반응이 바로 바로 나오기 때문에 설득하는 사람의 논리와 정보가 확실해야만 한다.
보면서 느낀 건... 한국은 내각책임제를 할 수 있는 나라가 전혀 아니구나 하는 것이었다. 저토록 집중되고 긴장된 순간에 짧고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거기 앉아 있는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고 있었다. 한국 국회의원들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체득 수준의 문제라고 느꼈다.
엊그제 시리아 사태에 대해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하는 것을 챙겨 보았다. 설득력 있는, 아주 좋은 연설이었다.
보면서 느낀 건... 대통령 중심제의 대통령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영국은 물론이지만 미국도 시리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에 부정적인 여론이 많다. 오바마는 시리아 정권에 대한 군사적 응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의회를 설득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미국 국민들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그 정치적으로 복잡한 곳에 개입을 해야 하는가? 오바아의 대답은 이념적인 것이었다. -휴매니티.
이 두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정치 과정을 지켜 보면서 많을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절정기 때의 노무현 대통령이 떠올랐다. 노무현은 자신의 신념에 근거한 안건을 만들어 토론에 붙이고 자신이 곧잘 최종 설득자로 나서고는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한국의 국민들은 의견수렴 과정으로서의 토론에 익숙해 있지 않았다. 즉, 노무현 시대는 시끄러웠다. 후임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이 시끄럽게 떠들 만한 일은 앞에 내놓지 않으려고 했다. 박근혜는 더 철저하다. 현재 한국의 정치 상황은 매우 혼란스럽고, 그것은 헌법의 가치와 관련되어 있다. 즉, 대통령으로서 상황 정리를 해주어야 하는 것이 박근혜의 헌법적 의무다. 그러나 박근혜는 그렇게 시끄러운 일에 손을 대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박근혜의 성공 공식이다. 정치에 초연한 대통령으로서 박근혜는 현재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것은 정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문화적인 것이라고 나는 느낀다. 나는 한국 사회가 이전보다 덜 위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한국 뉴스는 젊은 층들에 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엊그제 본 뉴스인가... 대학 내에서의 복학생 신고식같은 것, 유럽의 한인 민박 집에서의 나이로 줄지어 지는 서열 관련 이야기 등등(꽃보다 할배가 별 이야기인가?).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정치 과정은 정치 문제도, 세대 문제도 아닌 그저 한국의 문화 현상일 뿐이라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