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선셋을 보았다. 아내가 추천해 준 영화다.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내 기준에서는 아주 좋은 영화다. 

내 기준에서 좋은 영화는 배우가 좋아할 만한 영화다. 시나리오가 몸에 딱 맞아서 집중력 있게 연기할 수 있는 영화, 편집과 삽입음악 등으로 장난을 치지 않아서 최종 편집본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할 필요가 없는 영화가, 내 기준에는 좋은 영화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남녀 주인공과 감독의 공동 창작이라고 한다. 게다가 롱 테이크(나는 롱 테이크를 미치게 사랑한다. 내가 홍상수 감독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가 엄청 많다. 그러니 좋은 영화일 수 밖에...

영화는 일상의 언어(나이 듦, 시간)를 통해서 삶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그 물음은, 영화를 찍기 위해 만들어낸 위조품이 아니라 영화로 담아낼 가치가 충분한 진짜 질문들이다. 

영화는 구석 구석이 다 좋다. 일일이 들어 말하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으므로 감상만 짧게 말하자. 

난 이 영화를 보고 어느 명절날 동생과 어머니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동생은 아이가 하나 있는 남자 가장이다.

동생: 엄마, 난 나이 먹으면 뭔가 다른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똑같아. 옛날 어릴 때랑 지금 나랑 다른 게 없는 거 같아. 어떻게 된거지?
어머니: 원래 그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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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대웅의 걸작 "인간과 음악"을 읽었다. 한국에 다녀 온 친구에게 부탁하여 구한 것이다. 

(알라딘에서 구할 수 있다. 관심 있으신 분은 필구하여도 후회 없으시리라.)

이 책은 원래, 내가 기억하기로는, "중고생을 위한 음악 강의"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저자의 말로는 그게 1988년 봄이었다고 한다. 난 우연히, 아마도 도서관에서, 이 책을 읽었고 고전이 될 수 있는 책인데 아쉬운 부분이 많다고 느꼈었던 것 같다.

나중에 이 책을 구하려고 했었지만 구할 수가 없었다. 아마 절판 상태였을 것이다.

난 이 책에 계속 관심을 두었었고 나중에 "인간과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재출판된 책을, 아마 또 도서관에서 봤던 것 같다. 내용은 예전 책과 거의 같았지만 인쇄 상태가 아주 조잡했던 것이 특히 마음에 걸렸다.

그 후에 이 책을 사려고 했었는데, 그럴 때는 꼭 그렇듯이 책을 구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저자 백대웅이라는 이름을 기억해 두고 있었기 때문에 도서관에 가서 이 분 책들을 죽 훑어 보았다. 글쎄... (아내되는 분 말씀에 따르면) 책마다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는 굉장히 고집 센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 분의 저작들 중에서 "인간과 음악"의 대체품은 찾을 수가 없었다.

퇴임기념논문집인가 하는 책에 김용옥이 쓴 글이 있었다. "중고생을 위한 음악 강의"라는 책이 절판된 뒷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원고가 처음 편집부에 넘어 왔을 때는 책으로 출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70% 정도 대대적인 수술을 해야 했는데, 이 때문에 백대웅과 의견 충돌을 겪었고 책을 절판하기로 결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대폭 수정했는데도 출판된 책에는 좀 더 손봐야 할 부분이 많았다...-.-

이 책의 강점은 확고하고 일관된 시각에서 보편적인 음악 현상을 해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시각이 매우 강력하고 독보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백대웅은 피상적이고 조잡한 방식으로 자신의 사상을 서술하려는 유혹에 매우 자주 굴복하고 만다. 이 점이 이 책에서 대단히 아쉬운 점이다. 이 책은 대단한 걸작이 될 수도 있었고, 더 나아가 이 분야의 고전이 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이 상태로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한국에서 사 온 책의 활자 상태는 깨끗했다. 출판 정보를 보니 1999년에 초판을 찍었고 2013년에 중판을 찍었다고 한다. 그러니 나는 올해 새로 사식을 찍은 책을 손에 들고 있는 것이다. 내용은 거의 똑같은 것 같다. 여전히 찬탄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낀다.

나는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그 바램을 여전히 갖고 있다. 이 책이 완전히 새로 쓰여졌으면 좋겠다. 잡소리들과 피상적인 사상들,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 관념들을 다 걷어 치우고 세련되게, 영원을 바라보면서, 즉 고전으로서의 자리를 노리면서 다시 쓰여졌으면 한다. 이 책에 담긴 사상은 정말 귀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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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날 햇빛이 쨍하게 났다. 기온도 높아서 덮기까지 했다. 선물같은 날씨였다. 


카부츠에 갔다. 모처럼, 파란 하늘에 사람도 많아서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반 모리슨 씨디, 길모어 걸스 디브이디, 제프리 아처 소설 책 등등 해서 많이 샀다. 디브이디 5장인가 6장인가가 한 세트인 길모어 걸스 시즌 모음이 50 p(대략 천원) 밖에 안한다. 카부츠에 다니다 보면 물건값 개념이 없어져 다른 데서는 아무 것도 못산다.



원래는 런던 가서 영화를 볼 예정이었는데 날이 좋아서 리즈 캐슬에 갔다. 아이들을 동반한 젊은 부부들이 많았다. 리즈 캐슬은 800, 900 년 전에 처음 축조되었고 그 양식대로 후대에 축조된 성들이 붙어 있다. 그래서인지 벽은 두텁고 내부는 비좁다. 


리즈 캐슬 건축물 바깥에 덤불로 벽을 꾸민 미로가 있다. 미로 가운데 있는 작은 돌탑에 이르면 되는 것인데, 나를 비롯한 멍청한 세 팀 정도가 끝내 돌탑에 도달하지 못했다. 미로를 헤매다 아까 봤던 멍청이들을 다시 만나게 될 때 참 창피하더라. 처음엔 웃으며 인사하다가, 두번째 때엔 오 마이 갓을 외치다가, 세번째가 넘고 나서는 시선을 피하게 되더다. 관리 아저씨가 힌트를 줘서 돌탑에 도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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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3-10-08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사진으로만 봐도 좋네요~ 좋은 날입니다^^
첫 사진..책들이 박스에 많이 보이네요..ㅎ 리즈 캐슬은 저도 구경을 가고 싶을 정도입니다. 마지막 사진도...ㅜㅜ

weekly 2013-10-09 01:4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카부츠는 사람들이 자기네들 쓰던 거 그냥 들고 나오는 거라 싸기는 정말 싼데 이거다! 싶은 게 아주 많지는 않은 것 같더라구요. 책같은 경우는 범죄 소설과 로맨스 소설 등등이 대종...-.- 이번에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건진 게 그나마 건진 셈이구요.

리즈 캐슬은 성 자체도 운치있고 주변 풍광도 정말 좋아요. 성에 영국 역사가 이리 저리 엮여 있기도 하고... 영국 오신다면 방문해 봄직 할 거예요. 입장료가 좀 비싸긴 한데...

(혹 영국 오실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혹시 알아요 숙박비 아낄 수 있을지~^^)
 


오락가락하는 비와 숨바꼭질해 가며 작은 창고를 완성했다. 조립식이다. 별로 튼튼해 보이지는 않는다. 나사 조이느라 손바닥 껍질이 벗겨졌다.



펜스 옆에 작은 화단을 만들고 꽃을 심어 놓았다. 구석 나무 화단엔 국화. 물론 나는 몸만 빌려줬다. 정면으로 펜스 밑 흙더미가 보이는 데 내년에 사이프러스를 심을까 한다. 


막상 정원을 해놓고 보니 좋은 여름이 다 갔다. 한 두 계절 보내고 나면 정원이 자리를 잡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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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10-04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꽤 좋아 보입니다. 정원까지...부러운데요...

weekly 2013-10-06 06:2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합니다.^^
 

1. 남북정상회담록 논란에 대한 최종적인 결론은 회담록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 이관되지 않았다는 것인 것 같다. 후임 대통령이 회담록을 참고할 수 있도록 지정기록물로 지정하지 않았다는 설명이 가장 자연스러워 보인다.

첫째,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하는 주체가 대통령 본인일 것이므로, 회담록을 지정기록물로 지정한 후 폐기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아예 지정기록물로 지정하지 않았다면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봉하마을에서 반납된 이지원 시스템에서는 회담록이 발견되었으며 국정원 보관본과 거의 유사하다고 알려져 있다. 최종본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동일한 이지원 시스템에서 또다른 버전이 삭제된 채 발견된 것도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다(검찰에서 복구했다고 한다). 어떤 문서를 최종본으로 할 것이냐 역시 대통령의 재량일 것이고, 최종본을 남기고 중간 버전을 삭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셋째, 그러므로 법적으로든 윤리적으로든 문제가 될 것이 전혀 없다. 문재인이 이관해서 넘겼다고 말한 것은 착오로 보인다. 이 부분은 그가 사과하여야 할 것 같다.

넷째, 회담록 논란은 노무현이 김정일에게 NLL을 넘겼다고 한나라당이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북한이 먼저 한국 정부에, 노무현이 NLL을 넘겼으니 NLL 이남으로 물러나라고 요구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한국의 대통령이 북한에 NLL을 넘기겠다고 약속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런 게 바로 이적행위다.

다섯째, 이런 앞뒤가 맞지 않는 정치적 논쟁이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이 보여주는 것: 한국 사회, 정말 호락호락하다.


2.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기사를 봤다. 교과서 필진이 십자포화를 맞고 있었다.

일제 시대때 한국의 경제 지표는 눈에 띄게 좋아졌으며 각종 근대적인 제도들이 도입되었다. 이것은 명백한 팩트다. 이제 이 팩트에 대해 평가를 해보자. 교학사 필진들은 일제가 억압적이긴 했지만 긍정적인 기여도 했다는 걸 인정하자고 주장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일제에 협력한 사람들도 한국의 근대화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이 있다는 결론이 나올 것이다.

교학사 필진들의 논리를 부정할 수 있나? 난 못하겠다. 그것은 사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학사 필진을 비판하는 것은 결국 그 필진들의 사관을 비판하는 것이리라. 만약 과거 일제의 식민 통치가 정당화될 수 있다면 장래의 식민 통치도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이 문제가 된다. 

교학사 필진들로 대표되는 세력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 들어서 한국 사회가 극도로 보수화되어 가는 것을 보고 오랜 세월 마음 속에 품어두었던 주장을 공식화할 여건이 되었다고 본 것 같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그렇게까지 호락호락하지 않은 셈이다.

3. 전작권 관련 여론 조사에서 전작권을 한국군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70% 가까이 된다는 것을 봤다. 나로서는 놀랍도록 높은 수치였다.

통일될 때까지는 전작권을 미국이 갖는 것이 우리에게 이득이라는 의견이 있다. 가장 확실한 전쟁 억지력이 될 수 있고, 비용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이 전작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을 무시한 이상적, 낭만주의적 민족주의라는 비판도 곁들이면서.

이런 걸 갖고 논쟁을 벌인다 한들 결론은 나지 않는다. 난 내가 다수 세력에 속해 있어서 기쁠 뿐이다. 자칭 현실주의자들이 우리를 이상주의라고 비판하더라도 우리가 다수에 속해 있으면 그 자체가 든든한 방패가 된다. 애써 말대답을 해줄 필요도 없다. 

4. 네덜란드에 갔었던 기억이 난다. 네덜란드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나라의 하나이다. 그러나 국립 박물관에 갔을 때 나는 놀랐다. 네덜란드 국립 박물관은 네덜란드 국민들에게 네덜란드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내면화하게끔 디자인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게는 너무 국가주의적으로 보여서 충격적이었다. 네덜란드는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했는데, 바로 그 투쟁에 대한 자긍심이 박물관 전체를 도배하고 있었다. 박물관 이층에는 렘브란트의 대작 야경이 걸려 있었다. 그건 정말이지 네덜란드 국민들의 자긍심의 결정판이다 싶었다. 커다란 방 하나를 온통 차지하고 있는 걸작, 세계 회화사에서 최고로 치는 화가의 대표작인 이 그림은, 네덜란드의 민병대가 스스로의 자금으로 스스로를 무장하여 스스로를 수호하는 광경을 그린 것이다. 그 그림도 민병대 사람들이 돈을 모아 비용을 마련한 것이다. 자존의 근거는 자립이다.

5. 한국은 아직 갈 길이 아직 멀다. 그러나 빛은 언제나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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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2013-10-03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1항과 관련하여 추가. 검찰에서 회담록을 기록관으로 이관해야 할 대통령기록물이라고 규정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관되어야 할 것이 이관이 안되었으니 문제라는 지적인 것이다.

다음은 나의 상식에 입각한 의견이다.

회담록은 분명 지정기록물급이다. 그러나 지정기록물로 지정되면 국정원 보관본도 회수 파기되어야 할 것이고 후임대통령도 이를 참고할 수 없게 된다. 노무현이 국정원본을 후임대통령을 위해 보존하도록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회담록을 지정기록물로 걸어서는 안되는 게 당연하다.

회담록을 지정기록물이 아니라 일반 기록물로 기록관에 넘기면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런 중요한 문서를 일반 이관 문서로 넘긴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렇다면 회담록을 비밀기록물로 넘기면 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후임 대통령이 기록관에 찾아가서 열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금 번거롭기는 하겠지만.

내 생각에는 노무현은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사항을 진행 중에 있는 실무 사안으로 간주했던 것 같다. 그러므로 회담록을 기록관에 넘기지 않고 유관 기관이 공유할 수 있되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곳, 즉 국정원에 보관하도록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결정에 법적, 윤리적 문제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