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핑하다가 재미있는 기사를 발견하여 몇몇 부분을 번역하여 붙인다. 전문은 http://www.nytimes.com/roomfordebate/2011/03/20/career-counselor-bill-gates-or-steve-jobs/rival-philosophies-both-compelling에 있다.

   
  Gates hopes to analyze and adjust the education system in order to produce a more efficient and effective learning environment. He advocates sophisticated metrics to measure results. What makes one teacher better at her job than another and how can best practices be shared? Technology enables analysis and is also the delivery mechanism.  
   
빌 게이츠는 교육 시스템을 분석하고 개선하여 효율적인 학습 환경을 조성하자고 주장한다. 학습 성과를 엄밀하게 측정하여 더 나은 성과를 낳는 요인을 찾아내고 그것을 교사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빌 게이츠에게 기술이란 이러한 분석을 돕는 것이자 효율적인 학습 환경을 제공하는 매체이다.

   
  Jobs is focused more on individual learning and less on systemic education. Technology is his way to get a well-integrated mind flowing in multiple directions. His learning philosophy gives each person the ability to chart his own course. It is less about the structure of the system and more about free will.  
   
스티브 잡스는 체계화된 교육보다는 개인적 학습에 주안점을 둔다. 스티브 잡스에게 기술이란 다양한 관심사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지성을 보조하는 수단이다. 스티브 잡스의 교육 철학의 핵심은 학습 과정을 만드는 능력을 기르는 데 있다. 그것은 체계적이라기보다는 개성적이다.

   
  Jobs’ approach allows for individual experimentation to find a unique solution to each person’s quest. It is the symbol of intellectual multi-tasking. This is a more experimental, integrated search for a holistic view of the universe, one that has multiple access points. Each student becomes his or her own teacher.  
   
스티브 잡스의 방식에 따르면 사람마다 문제도 다르고 해법도 다르게 때문에 각자는 실험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실험적 행동은 지적인 멀티 태스킹의 상징이다. 진리는 다양한 관점의 총합이기 때문에 실험적이면서 집중된 탐구가 필요하다. 이제 학생은 스스로의 교사가 된다.

   
  My heart is with Jobs. But my mind fully understands Gates’ mandate to discover ways to maximize scarce resources to best prepare the workforce. It is beyond noble; it is essential. He is looking for the vaccine to cure education’s ailing health. Jobs is tripping our mind with the jazz of life put before us to spark awareness that the more we learn the more powerful we become.  
   
나의 가슴은 스티브 잡스를 향하고 있지만 머리는 빌 게이츠의 말에 공감한다. 빌 게이츠는 어떻게 하면 부족한 교육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우수한 인력을 양성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너무 실용적인 접근이라고? 천만에! 빌 게이츠는 현실을 말하고 있다. 반면 스티브 잡스는 더 많은 인식을 얻을 수록 더 큰 힘을 갖게 되리라는 각성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선사와 같다.
   
  How does this relate to the curriculum of higher education? Keep poetry, architectural history and Russian literature alongside mechanical engineering and agricultural studies. A discerning mind, one that blends science and Springsteen, is the backbone of the creative spirit: ideas fuel entrepreneurship.  
   
스티브 잡스의 교육 철학을 커리큐럼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기계공학이나 농학 책 옆에 시집과 건축사 책, 러시아 소설들이 놓여 있는 걸 보게 되겠지. 통찰력 있는 정신은 과학과 브루스 스프링스턴 사이에서도 연결점을 볼 수 있다. 바로 그것이 창의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창의성이 기업가 정신의 핵심이다.

   
  Gates is studying the science of education. Jobs is creating the art of learning. I’m sure there is an app for teaching arithmetic by watching the heavens and counting the stars.  
   
빌 게이츠는 교육을 개선할 방법을 연구한다. 스티브 잡스는 배움의 기술을 창조한다. 아마 둘의 장점을 한데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들판에 누워 하늘의 별을 헤아리면서 산수를 배울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나의 코멘트]
1. 빌 게이츠는 교육 부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TED에 관련 강연도 올라와 있다. 그러므로 윗 글의 빌 게이츠의 교육 철학에 대한 부분은 분명한 전거가 있을 것이다. -내가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2. 반면 스티브 잡스의 경우는 윗 글의 필자가 확실한 전거를 갖고 있는지 난 잘 모르겠다. 어쨌든 스티브 잡스의 교육관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으로 웹에서 내가 찾은 부분을 아래 붙여 본다. 전문은 http://www.albireo.net/forum/showthread.php?t=13617&highlight=%BD%BA%C6%BC%BA%EA+%C0%E2%BD%BA에 있다. 젊은 날(1985년)의 스티브 잡스의 긴 인터뷰 기사다. 차분히 읽어 볼 만한 좋은 글이다. 참고로 이 사이트에는 매우 재미있는 읽을 거리들이 많다. 방문을 강추한다. 또, 좋은 글을 번역하여 주신 데 대해 위 사이트의 관계자분께 감사를 드린다.

   
  인도에서 돌아왔을 때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서구 사회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인류의 천성은 아니다는 사실입니다. 학습의 결과이지요. 아무도 생각 방식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들 하고 있죠.

분명, 우리 교육 최대의 문제는 생각하는 방식 가르치기입니다. 컴퓨터가 생각의 품질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칠 테고, 아이들도 이 툴을 점점 더 활용하게 될 겁니다. 인간은 수단을 사용하죠. 책에 대해 정말 기적같은 일이 뭐냐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뭘 썼는지 읽을 수 있다는 겁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선생님이 설명해줄 필요가 없지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무엇을 썼는지 읽을 수 있습니다. 이해하시겠죠?

이러한 직접적인 지식/아이디어의 전송이야말로 우리가 사회로서 이룬 것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책의 문제가 있죠.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질문을 던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컴퓨터의 잠재성이 여기에 필요하죠. 근본을 잡아서 경험을 통해 깔려 있는 원칙을 알도록 돕는 것입니다.

매우 유치한 사례를 들자면요. 비디오 게임, Pong은 중력과 각운동량(angular momentum) 원칙을 알려줍니다. 이 원칙에 따라 게임이 돌아가지요. 물론 모든 게임은, 각자의 인생만큼 다릅니다. 제일 단순한 사례이죠.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깔려 있는 원칙, 본질을 끄집어내서 이를 원칙의 인식에 따라 움직이도록 할 수 있습니다.

자,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을 배울 수 있다면, 그의 세계관의 원칙을 알 수 있다면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OK.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니잖나 말씀하실 수 있겠죠. 틀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맞을 수도 있죠.

이 수단을 수 백만, 수 천만 명에게 안겨다 주는 것이 문제에요. 언젠가는 우리가 할 수 있겠지만요. 보다 더 개선시켜서 아리스토텔레스나 아인슈타인, 혹은 아직 살아계신 에드윈 랜드를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교육을 받은 아이가 자라나서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십시오. 아니, 아이 말고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가 도전할 점이 바로 이겁니다.

지적 탐구 부문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한 가지 있어요. 우아하게 늙어가는 겁니다. 너무나 빨리 상황이 변해서 80년대 후반 쯤 되면, 근본 통찰부터가 최고의 통찰이 될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고 싶겠지요.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이요. 우리의 어깨를 타고 미래를 보는 겁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우아하게 늙어가는 겁니다.
 
   

3.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뭘 하든지 잘 하고 잘 살았을 것이다. 빌 게이츠는 2류 제품을 가지고도 시장에서 장기간 독점적 지위를 유지해낸 탁월한 수완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 워즈니악의 손에 이끌려 자작 키트 클럽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스티브 잡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노숙자가 되었을 수도 있고 테레리스트가 되었을 수도 있고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겉보기에는 평범한 가장이되 가슴 속에는 항상 출몰하는 이상에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스티브 잡스의 진폭이다.

4. 빌 게이츠의 교육관은 빌 게이츠를 낳을 것이고 스티브 잡스의 교육관은 스티브 잡스를 낳을 것이다. 미국이라는 사회의 위대한 점은 스티브 잡스에게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실패를 했을 때도 그 실패를 자산으로 인정해 주었다는 것이다. 사르뜨르가 프랑스산 특제이듯이 스티브 잡스는 미국산 특제이다.

5.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만드는 컴퓨터를 무엇보다도 교육용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빌 게이츠는 방대한 비디오 튜터리얼 라이브러리를 갖고 있는 칸 아카데미를 지원하고 있다. 둘의 공통점은 교사라는 중개자의 역할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빌 게이츠는 학습 진전의 측정을 특히 중요하게 여긴다. 아마 빌 게이츠는 명시적이고 스티브 잡스는 묵시적이라는 점에서만 다를 것이다. 자기 주도 학습에서 성과의 측정은 핵심 사항이기 때문이다. 아마 둘의 차이점은 한 사람은 좀 더 이상적이고 다른 한 사람은 좀 더 실용적이라는 것일 테다. 당연히 둘은 상보적이다.

6. 분명 들판에 누워 하늘의 별을 헤아리면서 산수를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산수보다는 기하학이 더 적절하겠지. 그러면 정말 무궁무진한 얘기를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여기서 내 머리에 떠오르는 우화는...

   
  죤과 그의 아버지는 별들을 보려고 나간다. 죤은 두 개의 파란색 별들과 한 개의 붉은 색 별을 본다. 그의 아버지는 한 개의 초록색 별, 한 개의 보라색 별 그리고 두 개의 노란색 별들을 본다. 죤과 그의 아버지가 본 별들의 온도의 총합계는 얼마인가?
                                             ("파인만씨 농담도 정말 잘 하시네요!"에서)
 
   

스스로 의문을 갖고 그것을 질문 형식으로 만든 후 답을 찾는 사람은 이런 식의 문제를 꾸며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저것은 의문 없이 만든 문제이고 오로지 평가만을 위한 문제이다. 여기서 악역은 교사다. 그러므로 합창. We don't need no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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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7-14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개인적으로 잡스와 빌게이츠에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만...꼭 이런식으로 글을꼬아서 어렵게써서 자신의 지식을 과시 하고 싶으신가봐요,,,,결코 좋은글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네여,..

weekly 2011-07-17 11:29   좋아요 0 | URL
^^
지적하신 것 중 하나엔 공감하고 다른 하나엔 공감하지 않으렵니다.
결코 좋은 글이 아니라는 것에 천번 만번 공감합니다.
그러나 지식 과시용은 전혀 아니구요.

제 블로그 포스팅의 상당 부분은 탐색용 글들이랍니다.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관심이 뭔지, 어떤 모색을 하고 싶은지, 저것이 그것에 속하는지를 제 두뇌의 내외를 안가리고 죽 탐색해 보는 것이지요. 해서 저 글보다 환장하게 산만하고 꼬인 글들도 많지요...-.-

제 블로그 특성이 그렇다는 건데요... 저 역시 검색 엔진을 타고 다른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제가 관심 있어 하는 주제를 놓고 횡설수설하는 글을 보면 짜증이 날 때가 많았다는 경험을 되새겨 좀 더 정돈된 글을 써야 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더랬습니다.

암튼 지적 감사합니다.

행인 2012-02-17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나가다 좋은 글 보고 갑니다..
위에 분한테는 좋은 글이 사탕발림처럼 좋은 말만 늘여 쓰는게 좋은 글의 기준인가 보네요.

행인-1 2012-11-20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맨 처음 댓글 다신분은 '지식 과시용'이라고 느끼신 것부터 내재한 열등감을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참.
저도 지나가다 이 홈페이지에 들르게 되었는데요,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알라딘 블로그는 멀티미디어를 지원하지 않는 것 같다. 약간 삽질을 해보다 포기하고 대신 알라딘 블로그팀을 욕하기로 했다. 게으른 것인가, 시대착오적인 것인가? 멀티미디어가 사고와 대화의 원천이 되는 현실을 외면하려면 두 눈만 꼬옥 감으면 된다. 얼마나 쉬운가? huh?)

1. 구글의 크롬북이 드디어 출시되었단다. 크롬북의 개념은 모든 컴퓨팅을 웹 브라우저 위에서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스프레드쉬트 작업도 웹 브라우저 위에서 한다. 물론, 이 스프레드쉬트 프로그램은 웹 어플리케이션으로 인터넷 어디엔가 떠 있다가 사용자가 웹 브라우저로 불러 들여 사용하게 된다.

2. 이 프로젝트의 주체는 물론 구글이다. 구글은 웹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기업이다. 그리고 크롬 오에스는 구글의 가장 야심적인 프로젝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3.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개발사들에게 거의 모든 어플리케이션이 웹앱(웹 어플리케이션)으로 통일되는 현상은 참으로 고마운 일일 것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단 하나의 플랫폼만 고려하여 개발하고 배포하면 되니까.

4. 그러면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웹입이든 네이티브앱이든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아무 차이가 없어야 한다. 예컨대 크롬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네이티브앱과 동일한 사용자 경험을 웹앱을 통해 제공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구글독스에 가서, 예컨대 스프레드쉬트 프로그램을 열어보면 된다. 끝.

5. 스티브 잡스가 전지전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앱 스토어는 애초 그의 구상 속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본 것은 그의 통제권 밖에서 아이오에스용 네이티브 앱들이 인기를 얻는 현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한 일은 네이티브 앱의 유통 공간을 자신의 통제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네이티브 앱들은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거기에 가격을 매길 수 있었다. 앱에 가격을 매길 수 있게 되자 컨텐츠를 앱으로 포장한 컨텐츠 앱이 등장했다. 컨텐츠 앱은 컨텐츠를 유료화하는 수단일 뿐이다. 더 데일리가 대표적인 예. 문득 깨닫고 보니 애플은 네이티브 앱의 옹호자가 되어 있었고 구글은 웹 앱의 수호자가 되어 있었다. 큰 줄기는 컨텐츠라고 본다. 애플은 컨텐츠를 앱으로 포장하여 유료화하는 대신 더 나은 질을 보장하겠다는 입장이고 구글은 누구나 쉽게 컨텐츠에 접근할 수 있다는 개방성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6. 누가 이길까? 물론,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쪽이겠지. 그런데 궁극의 사용자 경험이란, 요컨대 기기가 중국인(혹은 영국인?) 비서처럼 되는 것일 게다. 즉, 극도로 인격화되고 개인화된 기기(미디어 랩). 이런 기기들은 딱히 웹에 의존적이지 않을 것이다. 이런 기기들의 원초적 형태라 볼 수 있는 RSS 피드기나 신문 구독앱들을 보라. 웹은 보편적이고 개방적이고 광대하다. 그런데,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개인화된 비서들을 필요로 한다! 수십년 전에 사람들이 예상한 방향이 이러한 방향이었다.

7. 물론 웹에서도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꼭 웹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구글은 꼭 웹이어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 걸어 놓은 크롬 오에스 광고를 보라. 그것이 크롬 오에스에서만 가능한 것인가? 아니. 그것이 크롬 오에스가 더 잘 하는 일인가? 아니. 그것이 컴퓨팅의 전부인가? 아니. 그럼 크롬 오에스는 무얼 하자는 것이지? 침묵.

8. 그러므로. 크롬 오에스 프로젝트는 구글의 처참한 실패로 기록될 것이다.

9. 그러나. Dear Sophie라는 저 광고는 구글스럽지 않은 감성으로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아마 세상의 많은 젊은 남자들의 감성을 일깨워 준 광고이리라.^^ 하여 크롬 오에스에 관한 숱한 말들이 세월에 흩어져 가다 어느덧 잊혀져 버린 날에도,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날에 맞추어 아이에게 메일을 쓰기 시작한 세상의 많은 젊은 아버지들이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다 혹 크롬이라는 낱말을 되살려 낼지도 모르겠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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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1-06-20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 2011-06-20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튜브에서 '이전 소스코드 사용하기' 체크셨나요?

크롬이라던가 파이어폭스라던가 기타 다른 문제라면 모르겠지만, 만약 위의 소스코드 잘못 긁어와서 동영상 재생이 안되었던거라면, 누가 게으르고 시대착오적이고 두 눈 꼭 감고 있는 걸까요?

weekly 2011-06-20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게으르고 시대착오적인 것은 저였군요...-.-

weekly 2011-06-21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롬에서 엔터키가 이상하게 먹는다든지, 제가 쓴 댓글이 등록이 안된다든지, 먼댓글을 썼다 지웠는데 상대편 블로그에 흔적이 그대로 남는다든지 하는 자잘한 오류를 겪다 보니 이것도 당연히(-.-) 안되는 것으로 생각해 버렸습니다.

파이어폭스로 옮겨 왔으니 크롬에서의 엔터키 이상은 이제 문제가 아닌데 나머지 것들에는 신경이 쓰이네요. 혹 제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깨쳐 주실 수 있을런지요?
 

아래 포스팅에 이어 계속한다.

리버럴 아트는 깨어있는 시민이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을 구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글쓰기이다.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개진하고 다른 사람의 논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요컨대 소통의 기본 전제이기 때문이다. 또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리버럴 아트에 속한다. 무엇보다도 현대 세계의 수많은 정보가 영어로 작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의 전문가들은 소통의 다리이기보다는 소통의 장벽이기 때문에 그네들의 속임수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보에 직접 접근하고 그에 기반해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절대로 필요하다.

음악을 제대로 소비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 미술을 제대로 소비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 영화를 제대로 소비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 전문가들의 통계 조작에 속지 않는 능력... 이 모든 것들이 리버럴 아트에 속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일상적인 필요 이상의 것을 전제한다. 다른 말로 하면 생존이 아니라 생활을 요구한다. 삶이란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향유하는 것이어야 함을 요구한다. 그리고 다시 반복하자면 이러한 삶을 위한 환경, 도구가 곧 리버럴 아트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영역에서 리버럴 아트에 기여할 수 있는 제품을 세상에 제공하고자 노력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애플 기기들의 특성, 즉 사용자 경험을 최우선으로 한 디자인은 그 자체가 리버럴 아트로서의 자신들의 미적 취향을 반영하는 것인 동시에 사용자들로 하여금 리버럴 아트에 대한 접근을 쉽게 해 준다. 

자 이제 몇 가지 인용이다.

   
  We ascribe beauty to that which is simple,
which has no superflous parts,
which exactly answers its end,
which stands related to all things,
which is the mean of many extrems.
                -Ralph Waldo Emerson, The Conduct of Life
                  (How to Design Programs, 페이지 xxiv에서 재인용)
 
   
   
  아름다운 것이란 단순하고, 불필요한 부분이 없고, 목적에 딱 들어맞고, 모든 것과 관련이 있고, 극단들 사이에서 중용을 유지하는 것이다.
 

리버럴 아트란 바로 저러한 미적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다. 즉, 단순하고 목적에 딱 맞는 것들을 골라낼 수 있는 능력. 그러므로 리버럴 아트는 능력이자 태도이다. 도구이자 내용이다. 직관적 사용성과 단순성이 미학과 연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합하자면 리버럴 아트는 삶의 질과 관련된 것이고 더 높은 질을 골라 내는 기준이자 태도이자 능력이자 도구이자 결과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름답다는 느낌을 동반한다.

   
  If you want to enjoy art, you must be an aristically cultivated person; if you want to exercise influence over other people, you must be a person with a stimulating and encourging effect on other people. Every one of your relations to man and to nature must be a specific expression, corresponding to the object of your will, of your real individual life. If you love without evoking love in return - that is, if your loving as loving does not produce reciprocal love; if through a living expression of yourself as a loving person you do not make yourself a beloved one, then your love is impotent - a misfortune.
                                                         -Karl Marks
             (Economic and Philosophic Manuscripts of 1844, XLIII 마지막 문단)
 
   
   
  그대가 예술을 향유하고 싶다면 예술적인 소양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대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려면 다른 사람을 북돋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대가 인간이나 자연과 맺게 되는 모든 관계는 그대의 삶의 정확한 실존적 표현이어야 합니다. 그대의 삶의 표현을 통해 그대의 사랑이 그대를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그대의 사랑은 불모이며 하나의 불행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리버럴 아트는 능력이다. 예술을 향유하는 능력이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능력이고 사랑을 표현하는 능력이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를 사랑하게 하는 능력이다. 능력이고 도구이고 표현이다. 곧 우리의 실존을 구성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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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애플(WWDC 2011을 보고)

아래 포스팅(http://blog.aladin.co.kr/weekly/4850380)의 4번 항목은 과장이라고 생각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다시피 스티브 잡스는 기판의 회로 배선처럼 사용자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도 아름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약간 미친 CEO임에 틀림없다.

(공학적으로 우수한 것은 미학적으로도 우수하다는 것을 많이들 경험해 보았을 것이므로 그리 튀는 얘기가 아닐 것 같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휴대폰을 손으로 정상적으로(!) 잡았을 때 수신율이 떨어지는 제품을 세상에 내놓을 회사는 아마 애플 밖에 없을 것이다. 휴대폰 안에 유닉스라는 거대한 운영체제를 구겨 넣고도 내장형 배터리 하나만으로 충분할 거라고 믿는 회사도 애플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 사례들은 사용성과 미적 기준이 충돌하였을 때 스티브 잡스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혹은 애초 어떤 항목이 더 높은 우선순위에 있었는지를 시사해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스티브 잡스의 변명은 이러할 지도 모르겠다. 사용성이란 기술의 발전으로 계속 개선될 수 있는 것인 반면 미학은 영원한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미학이란 궁극의 사용성이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미학이란 미래의 사용성이다.

(그러므로 스티브 잡스는 예술가다. 예술가들은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모두는 아니더라도 누군가에 의해서는 즐겁게 향유될 수 있는 어떤, 말하자면 영원한 가치를 염두에 두고 자신의 창조물을 평가한다.)

(물론 안테나 게이트는 미학보다는 공학, 즉 기술적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아야 하겠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의 고집을 인정해 주느냐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불평을 하면서도 그의 고집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예컨대 탈착불가능한 배터리는 분명 많이 불편하다. 그러나 배터리를 탈착가능하도록 만들면 나의 아이폰4의 외양 디자인이 어떻게 변할까를 생각해 보면 끔찍하다. 차라리 지금의 불편한 사용성을 감수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조차 든다.

물론,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전적으로 스티브 잡스의 존재로 인한 것이다. 나의 자연스러운 성향대로라면 미적 요구 때문에 내장형 배터리를 선택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미친 얘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티브 잡스는 교주거나 예술가, 또는 교사, 또는 사상가다. 그들은 모두 우리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면 피카소 이전이라면 우리는 피카소의 그림을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든 것은 요즘 웹 서핑을 많이 하면서 한 장의 사진을 보았기 때문이다. 기술과 리버럴 아트의 교차로에 스티브 잡스가 서 있는 사진. 물론 스티브 잡스식의 포장하기일 뿐이라고 반박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재반박하겠다. 모든 것은 포장하기일 뿐이라고, 나는 그대의 잘 된 포장을 요구하겠노라고, 그러니 나를 감탄시킬 그대의 포장을 내게 보여주시라고...

























(이미지 출처: http://live.gdgt.com/2010/01/27/live-apple-come-see-our-latest-creation-tablet-event-coverage/#07-53-00-pm)

스티브 잡스의 이상은 두 가지 인간형을 전제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직관적 사용성이 전제하고 있는 인간형이다. 예컨대 어린 아이, 할머니, 할아버지 등이다. 파일의 디렉토리 구조가 나에게는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저 분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는 그 차이를 안다.

다른 하나는 애플 제품들의 미적 가치관이 염두에 두고 있는 인간형이다. 애플의 제품들은 버튼이 여러 개 달리고 번쩍번쩍 하는 최첨단의 이미지를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 오히려 아름답지만 저런 것이 어떻게 동작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경우마저 있다. 즉, 스티브 잡스는 공학 제품을 마치 예술 작품인냥 내놓는 것이다. 즉 그것을 미적 경험의 장소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reviews.cnet.com/2300-33_7-10002000-3.html)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제품들이 일상적인 도구로 사용되기를 바라면서도 일상적인 가치 이상의 것을 그 도구들에 심어 놓는다. 어린 아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전혀 어렵지 않은 사용성을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독특한 미적 경험을 선사하고 싶어한다. 이 둘 사이에 모순이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미적 가치, 미적 경험을 일상적인 것 이상의 가치, 일상적인 것 이상의 경험과 동일시하는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 물론 전자가 후자에 포함되는 것임을 잘 안다. 그러나 말을 순하게 하고 싶다.)

미적 경험을 추구한다는 것은 우리가 미적 경험의 환경 안에 놓여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여기서 미적 경험이란 미적인 것의 소비와 생산 모두를 의미한다. 그리고 미적인 것의 소비와 경험을 가능케 하는 환경을 우리는 미적 도구라고 말한다. 이 미적 도구를 다른 말로 무엇이라고 하는가? 리버럴 아트(liberal arts)!

(헤... 우선은 여기까지 하자. 이 글은 나의 아래 포스팅에 대한 나 자신의 댓글(주석)로 시작되었다. 해서 글이 이렇게 크게(?) 발전할 줄 몰랐다. 그러므로 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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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2 2012-06-05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놀랍군요, 이렇게 깊숙한 내용의 글을 쓰시다니...^^
대개는 이런 설명은 감적인 부분으로만 이해할 수 있기 떄문에 듣는 사람이 생각이 매우 깊거나 아예 생각이 없을때가 아니면 잘 안씁니다만...잘보고 갑니다.

덧붙힘 : 디자인과 효율의 적정 비율은, "특정 기준"을 중심으로 5.3 대 4.7이 아닐까 하네요, 여기서 5.3은 최대 5.7까지 올라갈 수 있고, "휴대폰" 이라는 기준에서 그 경우가 배터리 탈착이나 3.5인치 화면 등이 예라고 할 수 있겟네요.
 

1. 애플의 개발자 컨퍼런스를 챙겨 보았다. 스티브 잡스가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한 부분만. 행복한 배우다. 청중들이 기꺼이 박수와 환호를 준비하고 있다.

2. 애플만이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것 같다(아마 구글도). 애플은 앨런 케이의 "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to invent it"이란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애플은 자신의 방식대로 시장의 규칙을 바꾸어버렸고 애플의 속내를 알 수 없었던 다른 기업들은 허둥댔다. 항공모함같았던 노키아는 빠르게 가라앉고 있다.

3. 그렇다 해도 아이튠즈,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아이클라우드로 이어지는 애플의 행보는 놀랍다. 너무 일관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애플은 물리적 플랫폼(각종 기기들)과 운영체제, 생태계로서의 추상적 플랫폼 모두를 갖고 있는 유일한 기업이다. 구글도, 마이크로소프트도 삼성도 그 세가지 모두를 갖고 있지 못하다.

4. 애플은 제품에 미적 취향을 불어 넣으려 노력한 거의 유일한 기업이다. 애플의 기기들은 단순하며 직관적이며 성적이며 선적이다. 애플의 이러한 특성은 창업자의 인생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 같다. 스티브 잡스는 선에 심취해 있었으며 워즈니악이 디스크 드라이브의 배선을 축약하려고 머리를 짜내는 동안 케이스를 더 멋지게 만들기 위해 궁리하고 있었으며 제록스 파크에서 본 폰트들에 미쳐 날뛰었으며 마우스나 아이폰의 버튼이 하나여야 한다고 고집했다.  

5. 단순하고 직관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혁신자들이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를 살펴 보면 답이 나온다. 앨런 케이나 네그로폰테는 아이들과 컴퓨터를 연결하는 프로젝트에 자신들의 삶을 바치고 있다. 디지털 기기들은 인간화되어야 한다. 즉, 사용함에 있어 부대낌이 없어야 한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스티브 잡스는 "It just works(그냥 됩니다)"를 연발했다. 나는 서핑을 하다가 "아버님 댁에 아이패드 놔 드려야 겠어요"라는 문구를 읽고 미소를 짓는다.

6. 스티브 잡스는 피카소를 인용해 "유능한 예술가는 베끼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의 뜻은 이렇다. 첫째, 전적인 오리지널리티는 없다는 것이다. 창의적인 것은 항상 기존의 성과물 위에 기반하고 있다. 뉴턴도 그런 말을 했고 베르길리우스도 그런 말을 했다. 애플이 혁신적인 기업이라고 하지만 애플이 전적인 혁신을 산업계에 도입한 것은 아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둘째, 베낀 것과 훔친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베낀 것에는 위화감이 내포되어 있지만 훔친다는 것은 전적으로 자기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프 버클리의 "할레루야"는 제프 버클리의 대표곡이다. 원곡은 물론 레오나드 코헨의 것이지만 제프 버클리가 그것을 "훔쳤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전적으로 자기화하는 것이다.

7. 애플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아이클라우드가 새로운 기술은 아니다. 나는 드롭박스를 통해 리눅스에서 작성한 문서를 윈도에서 보고 아이폰에서 수정하는 일을, 마치 로컬 폴더 속의 문서 다루 듯이 한다. 그러면 애플이 이 서비스를 도입한 것에 무슨 커다란 의미가 있다는 것일까? 물론 사용자 편의가 증대된다. 그리고 애플의 생태계는 더욱 공고해 진다. 예를 들면 내가 아이폰을 갖고 있다면 이제 테블릿으로 삼성이나 모토로라를 선택할 리가 없다! 아이클라우드를 통해 애플의 모든 기기에서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마당에!

8. 이 모든 것은 애플이 아이튠즈 등의 생태계, 아이패드 등의 디지털 기기, 오에스텐 등의 운영체제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아이클라우드를 통해 애플이 그리고 있는 원의 마지막 조각이 맞춰 진 것 같다. 그래서 그 비젼이 놀랍다는 것이다.

9. 물론 한국 시장에서 애플의 힘은 미약하다. 한국 기업들이 벽 안의 갈라파고스를 짓는 것이 가능할 것도 같다. 그러나 세계 시장에서는? 아이폰을 갖고 있는 사람이 갤럭시탭을 사는 것이 바보같은 일이 되어 버렸다. 남편이 아이폰을 갖고 있는데 아내가 갤럭시를 사는 일이 바보같은 일이 되어 버렸다(아이메시지도 그렇고).

10. 결론? 애플이 쌓은 벽의 엄청난 두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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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티브 잡스와 리버럴 아트
    from weekly님의 서재 2011-06-19 16:05 
    아래 포스팅(http://blog.aladin.co.kr/weekly/4850380)의 4번 항목은 과장이라고 생각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다시피 스티브 잡스는 기판의 회로 배선처럼 사용자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도 아름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약간 미친 CEO임에 틀림없다.(공학적으로 우수한 것은 미학적으로도 우수하다는 것을 많이들 경험해 보았을 것이므로 그러므로 그리 튀는 얘기가 아
 
 
2222 2012-06-05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충분히 가능합니다. 조금 동떨어진 내용이지만 저같은 경우엔 폴더이름 하나 짓는데도 10분, 심하게는 하루종일 걸릴때도 있습니다. 디테일하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단순히 New Folder 가 아닌 윈도우에 있는 모든 폴더들과의 관계나 생성 원칙...으..도저히 설명이 안된다 ㅜㅜ. 여하튼 기판이 아름다워야 한다는건 납득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감적인 부분이 심화되면 어떤 현상이 발생하느냐 하면...회사에서 쓰는 PC 의 용도가 문서작성용이라면 PC가 고사양일 필요도, 클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대개는 PC 사양을 업그레이드 하길 바라는데 저는 반대로 다운그레이드 하길 원해 주변인들에게 미쳤다는 소리 듣습니다.

weekly 2012-06-06 05:5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좋은 댓글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예전에 썼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네요.
폴더 이름을 짓거나 폴더 구조를 정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과 기판을 아름답게 디자인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비슷한 성향, 그러니까 일종의 편집증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집증과 더 나은 것을 생산하려는 욕구는 별개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저는 항상 편집증을 존중하려고 합니다. 2222님께서도 비슷한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