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問喪)하러 갈 때마다 내 표정이 어색하다고 느낀다.
막상 내가 상제(喪制)였을 때는 조문(弔問)하는 이들의 표정이 어땠는지 전연 기억에 남아있지 않고,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드는 것도 아무렇지 않았었다.
그런데 조문객이 되면 절을 할 때부터 떠나올 때까지 거의 내내 내 표정에 신경이 쓰인다.
서양의 장례는 죽을 사람을 위한 것이고
우리나라의 장례는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남아 있는 가족들을 위한 것이라고도 하지만,
그래서 상가(喪家)에서 떠들썩하니 잔칫집 같은 소란스러움이 풍겨도 흉 될 것이 없다고 하지만,
불편한 걸 어쩔 수 없다.
이제는 뿔뿔이 흩어진 옛 직장 동료들이 수십명씩 만나게 되는 자리는 거개 예식장이나 장례식장이기 십상이고,
어제도 여기저기서 반가운 인사말이 넘쳐 났다.
술 권하고 간간이 웃음소리도 터져 나오고 이래저래 시끌벅적.
와중에 이제 겨우 열 예닐곱 되어 보이는 맏상제의 핏기 가신 얼굴을 보고 있자니 짠하다.
초등학교 1학년이라는 막내는 엄마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작은 누나에게 매달려 몸을 배배 꼬는 모습에서 별다른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이미 아내의 부재를 준비하시던 그 분은 담담해 보였고, 인사를 드리자 가벼운 미소까지 보여주셨다.
어떤 사람은 이런 악상(惡喪)도 없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요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달리하는 사람이 한둘도 아니다.
그러나, 역시 악상은 악상이다.
두 시간쯤 앉아있다 일어났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더 있으라고 붙잡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반가움보다는 불편함이 컸다.
세 번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동안 ‘무진기행’을 읽었는데,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다는, 국어 교과서에 등장한 표현을 다시 확인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10시. 발인할 시간이다.
화장하여 납골묘에 안치한다고 한다.
화장장에서 눈물지을 큰 아이 생각에 시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