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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후배 녀석이 자신의 소설을 문집 형식으로 묶을 거라며 교정을 부탁했다. 두말없이 승락해서 녀석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교정에 들어가기 전에 녀석에게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 글 쓰는 거 포기해라.'

당시 주변엔 글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문과대라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였고, 문학 동아리 사람들과도 친했다. 가까운 사람들 중 아마 절반 쯤은 이런 저런 형태로 글을 쓰고자 애쓰고 있었던 듯 하다. 그들 중에는 교내 문학상을 수상하거나, 신춘 문예 본선에 오르거나, 잡지에 정기적으로 기고를 하거나, 이미 등단을 하는 등 일정 정도의 수준을 갖춘 이들도 상당수였다.

그들에 비하자면 녀석의 소설은, 한마디로 수준 이하였다. 무협 시대극이라는, 녀석이 택한 장르도 나와 친숙하지 않았지만, 구성이고 뭐고를 떠나서 주어 동사를 매끄럽게 연결한 '문장'을 찾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녀석은 결국 출판을 했고, 'specially thanks to ...'라고 내 이름까지 인쇄되어 지금도 내 책장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몇 년 전, 녀석이 하이텔인지 천리안인지의 문학 공모에서 수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의 무자비한 공격에도 아랑곳않고 계속 글을 쓰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지난 여름, 간만에 만난 자리에서 어느 출판사와 정식으로 계약을 했다고 알려주었다. 그때도 난, '야, 세상에는 책이 너무 많이 나오거든. 그 중에는 종이랑 잉크 낭비하는 쓸데없는 것들도 많단 말이야. 근데, 너까지 꼭 책을 내야겠냐?'라며 타박만 했다. 성격좋은 녀석은 히죽 웃으며 '맞아, 누난 옛날에도 그런 얘기 했었죠.' 할 뿐이었다. 

오늘, 갑자기 생각이 나서 알라딘에서 녀석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음...버젓이 등록이 되어 있다. 참...

예전에 글을 쓴다고 했던 그 많던 사람들 중에 지금도 글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끔 들리는 소식이라고는 직장을 옮겼다느니, 결혼해서 아저씨가 됐다느니, 애를 낳았다느니 하는 것 뿐이다. 모두들 생활을 이어가느라 바쁜 모양이다. 글을 쓴다는 건 그저 한 때 가졌던 꿈으로 가슴 한 켠에 접어둔 채. 

조정래 선생님인가, 누가 그랬던 것 같다. 소설은 몸으로, 시간으로 쓰는 거라고. 10년 간 꾸준히 글을 써 온 녀석의 노력을 인정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 녀석의 소설을 읽어 보지 않았기에 평할 건 없지만 말이다. 

내일은 녀석이랑 통화를 해야겠다. 그런데, 그 책을 과연 읽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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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때가 있다.

책상 위에 놓인 읽지 않은 책더미는 단 한권도 줄지 않고, 몇십만원 내고 등록한 영어 공부도 하지 않고, CD는 늘상 같은 것만 의미없이 돌아가고, 심지어 영화를 보거나 알라딘을 방문하는 것조차 귀찮아지는 때. 그렇게 한달이다.

게임에 열중하고 보지도 않는 TV앞에 앉아 흘려보낸 시간이 쌓이고 쌓여 어느새 한달이 되었다.

이쯤되면 다시 심기일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몸이 따라주는 건 생각과는 또 다르다. 해결 방법은 뭘까.

일단 책과 CD를 주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스시의 마법사> 1~3권    작년 여름부터 사려고 마음먹고 있던 건데, 이번에 3권이 나왔다길래 한꺼번에 주문. 어슐러 르 귄의 글솜씨와 상상력을 믿기에, 다시 책을 잡게 만드는 데는 적격일 듯.

<타인의 고통>    전에 서점에 갔다가 보고 찜해 놓았던 책.

<백범일지>    최근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후배가, 독후감 세 편을 제출해야 한다면서 독후감 써달라고 부탁한 책. 뭐 일단 대충 거절하긴 했지만 아직 읽지 않았기에 기회다 싶다.

내일은 영화라도 보고, 바깥 바람도 좀 쐬어야 겠다. 그동안 집안에만 쳐박혀 있었더니, 온몸에서 곰팡내가 나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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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새로 키우기 시작한 강아지 두마리. 왼쪽 녀석이 밤톨이, 오른쪽은 쥐똥이.

사실 강아지를 비롯해서 동물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지금까지 부모님이 몇마리의 강아지를 키워왔지만 지금 키우고있는 패키니즈를 빼면, 가끔 집에 가서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조금이나마 강아지를 예뻐하기 시작한건 이 패키니즈 '탱이'가 처음인데, 이 녀석이 워낙에 살갑게 굴기 때문이다. 어찌나 사람을 좋아하는지, 무조건 달려들어 안기는 통에 내치지도 못하고 그저 받아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위 두 녀석들. 이 놈들도 사람 좋아하기는 마찬가지다. 동생집에 가면 이 놈들이 꼭 내 다리 위에 올라와 자리를 잡거나 손에 턱을 올려놓고 잠을 청한다. 너무 작아서 밀쳐 내면 다칠 것 같은 생각도 들고, 얘네 왜 이래, 하면서 그냥 있는 수 밖에.

그러고보면, 소위 애완견이라고 하는 녀석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들이 할 일이 뭔지를 아는가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지, 어디까지 해도 괜찮은지 본능적인 감각이 있는 것 같다. 가끔 이 놈들이 사실은 굉장히 영악한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어쨌거나 예쁘기는 하다. 가끔 이 녀석들을 보러 동생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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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아름다워'를 볼 때면 자주 눈물이 난다. 못배우고 가진거 없고 애까지 딸린 이혼녀(배종옥 분)가 대학교수인 총각(박상면 분)과 연애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거나,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형님 댁에 보내놓고 안절부절못하는 며느리(박성미 분)가 남편에게 '그거 하나만 알아줘. 나 너무 힘들어'라고 애써 말하며 눈물 흘리거나, 남편과 바람난 젊은 여자의 병간호를 하러 집을 나서며 '엄마 바보짓하러 간다'라고 엄마(고두심 분)가 잠든 딸에게 말을 하거나, 등등의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눈이 뜨거워진다.

이 드라마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엄마와, 억척스럽게 일하며 엄마와 아이와 동생을 부양하는 이혼한 딸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사랑이 변한다고 해서 사랑을 안하는건 바보같다'며 유부남을 사랑하는 작은 딸(한고은 분)과, 남자를 바꿔가며 외로움을 달래는 여자도 있다. 이들은 모두 용감하다. 울고 아파하다가도 필요하면 세상과 부딪쳐 소리지르고 싸울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게는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모습이 안타깝지만, 동정하기보다는 힘내라고 응원을 하게 된다.

'거짓말' 이래로 노희경 작가의 팬이 되었다. 그는 과장하지 않으면서 삶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대사가 좋다.

'맨날 맨정신으로 살기 재미없잖아. 가끔...미치자. 야'

'희영씨가 너 싫다는데 이혼하면 안되니?'

'너무 한꺼번에 모든걸 잊으려 하지마. 그냥 시간에 의지해. 그러다 지나간 사람들한테 미안해지면, 미안해하면서...그렇게...'

'우리 변할 때 변하더라도 사랑하자. 이번만은 안 변할 수도 있다고 기대하면서.'

'화를 잘 낸다. 맘이 약하다. 가끔 되게 외로워한다. 그래도 긍정적이다. 강하다. 약하다. 유머가 있다. 유머가 없다. 어머니랑 민이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 목소리가 이쁘다. 사랑스럽다. 무서울 때도 있다. 진지하다. 생각이 없다. 생각이 깊다. 털털하다. 세심하다. 박영민이란 사람을 믿을까 말까 매일 고심한다.'  '..딱 나네..'

'우리가 엄마를 여자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어른이 되는거야.'

자꾸 눈물이 나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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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05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보다 아름다워를 좋아하시는 분을 만나서 반갑네요~ ^^ 정말 노희경 작가의 매력은 튀지않으면서 인상적인 대사 인거 같아요. 요새는 통 못챙겨봐서 괴롭지만...ㅠㅜ 드라마보다보면 인상적인 대사가 있잖아요. 그런거 정리해볼까 하구 대본을 받았는데, 뭐하나를 콕 찝을수가 없더라구요. ^^ 앞으로도 따뜻한 드라마 잘 챙겨보자구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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