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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 지음, 김경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0월
평점 :
2020709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사회학자,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쓰다 / 기시 마사히코/ 김경원 옮김/ 이마(2016)
올해 <<진리의 발견>> 다음으로 애장하게 될 것 같은 책이다. 표지 사진은 어느 건물의 일부이다. 제목을 따라가자면 저 표지에서 어떤 사회를 그릴 수 있을까. 대도시의 풍경과는 거리가 멀고 2,3층 건물들이 줄지어 있고 사람들이 아주 많이 살지는 않는 소도시일까.
이 책의 저자 기시 마사히코는 사회학자이다. 좀 남다른 사회학자이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사회학을 연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 경우에는 한 사람씩 찾아가 어떤 역사적 사건을 체험한 당사자 개인의 생활사를 듣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 . / 통계 데이터를 활용하거나 역사적 자료를 뒤적이거나 사회학적 이론 틀로 분석하는 것이 내가 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일은 분석할 수 없는 것, 그냥 그곳에 있는 것, 색이 바래서 잊혀 사라지는것이다.˝ (머리말)
평론가와 해석이 난무하는 시대에 저자는 제삼자인 인터뷰어가 남의 인생을 멋대로 해석해도 되는 것이냐고 자문한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사회학
이론이나 자신의 협소한 판단으로 재단하지 말고 삶 그 자체, 사람 그 자체를 들여다보아야 제대로 된 이야기를 대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저자의 이런 견해에 적극 공감한다. 내가 내 어미를 존중하게 된 계기도, 그녀가 삶을 근사하게 살아서가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하는 숱한 역경과 절망과 허무함의 늪에서도 그 늪을 어떻게든 빠져나와 살아냈다는 것을, 어느 순간,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때 내게 찾아든 감정은 ‘연민‘이었다. 그리고 ‘사랑‘이었다.
정보가 난무하지도 난해한 문구가 가득하지도 않은 대신, 이 책은 사람 이야기와 저자의 ‘사색‘으로 넘실거린다. 시를 읊듯 조근조근 풀어나가는
저자의 사색은 마음의 눈과 귀를 활짝활짝 열어준다. 이따금 입가로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오기도 하고, 아, 그래, 나도 이런 생각했는데, 난 왜 이렇게 근사하게 말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과 질투감이 동시에 든다. 가령 이런 생각,
˝우리가 갖고 있는 행복의 이미지는, 때로, 다양한 형태로, 그것을 얻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폭력이 된다. 이를테면 행복을 믿은 탓에 행복에서 길을 벗어나 버렸을 때는 이미 대처할 수 없을 만큼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일 경우가 있다.˝(108)
˝우리는 고독하다. 뇌 속에서는, 우리는 특히 고독하다.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뇌 속에까지 놀러와 주지는 않는다.˝(132)
애장하고 싶은 만큼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우리는 해석, 혹은 평론이란 미명 하에 누군가를 깎아내린다. 아니면 비방, 억측, 침소봉대로 누군가를 죽여버린다. 말이 칼이 되고 있는 세상. 이 책은 그대들, 제발, 쫌, 그러지 말라고 조용히 질책하고 있다. 물론 저자는 나의 이런
해석(^^)에 뜨아해할지도 모르지만.
˝누구에게도 숨겨 놓지 않았지만,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서사는 아름답다. 철저하게 세속적이고, 철저하게 고독하며, 철저하게 방대한 훌륭한 서사는 하나하나의 서사가 무의미함으로써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