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여애반다라 문학과지성 시인선 421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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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7 시라는별 9

아, 정말 얼마나 무서웠을까 
- 이성복 

냇물 가장자리 빈터에 새끼오리 너댓 마리 엄마 따라 나와 놀고 있었는데, 덤불숲 뒤에서 까치라는 놈 새끼들 낚아채려 달려드니, 어미는 날개 펼쳐 품속으로 거두었다 멋쩍은 듯 까치가 물러나고, 엄마 품 빠져나온 새끼들은 주억거리며 또 장난질이었다 그것도 잠시, 초록 물무늬 독사가 가는 혀 날름대며 나타나니, 절름발이 시늉하며 어미는 둔덕 아래로 뒷걸음질 쳤다 그 속내 알 리 없는 새끼들 멍하니 바라만 보고, 그때 덤불숲 까치가 다짜고짜 새끼 모가지 하나를 비틀어 물고 갔다 그리고 차례차례 그 가냘픈 모가지를 비틀어 물고 갈 때마다, 남은 새끼들은 정말 푸들, 푸들, 떨고 있었다 다 아 얼마나 무서웠을까? 돌아온 어미가 새끼들 부를 때, 덤불숲 까치는 제 새끼 입속에 피 묻은 살점을 뜯어 넣어주고 있었다 아, 저 엄마는 어떻게 살까?


이 시는 이성복 시인이 인생을 십 년 단위로 나눈 시기(래여애반다라 來如哀反多羅) 중 ‘哀‘에 해당하는 시다. 그러니까 ‘슬픔을 맛보‘는 때이다. 그 뜻 그대로 이 시를 읽고 펑펑 울 뻔했다. 흐르는 눈물은 그대로 두었고 꺼이꺼이 나오려는 울음은 삼켰다. 나를 울컥하게 만든 건 제목부터였고 기어이 눈물 터지게 한 건 마지막 구절, ˝아, 저 엄마는 어떻게 살까?˝였다. 많은 이들이 떠올랐다. 내 엄마, 세월호 부모, 각종 재난과 참사로 숨진 이들과 그들의 가족, 친지, 지인 등등등.

인생의 슬픔(哀)을 맛보는 때가 비단 스물에서 서른 사이에 국한되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시인은 이 시기에 그 어떤 것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슬픔을 맛보고 그 사실에 치를 떨고 그 사실 앞에 좌절하다 결국은 그 슬픔을 껴안고 살 수밖에 없는 삶의 본질을 깨달아버린 듯하다. 왜냐하면 까치도 뱀도 남의 새끼를 죽여야 제 새끼를 살릴 수 있다. 먹이사슬의 가장 밑바닥에 자리한 새끼오리들은 모가지 비틀린 채 어미 까치에게
물려가는 자매들을 두 눈 뜬 채 보면서 그저 ˝푸들, 푸들˝ 떨고 있을수밖에 없다. 엄마 무서워요, 엄마, 어디 있어요? 어미오리는 다리를 절뚝이며 뱀을 유인하러 갔다. 어미는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다 다가올 위기에 대비하지 못했다. 지킬 수 있을 줄 알고 지키려 했던 새끼들을 잃은 어미 오리는 이제 어이 살까?

이성복 시인은 1977년 계간 <문학과지성>에 발표한 시 <정든 유곽에서>으로 등단했고 1980년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출간했다. 데뷔 나이 스물여섯, 첫 시집 발표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이성복 시인은 대학 은사이자 문학평론가인 고 김현 선생의
추천사를 늘 가슴에 새기고 살려 한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이 시절(청년)의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쓴다고.

˝우리는 이번 호에도 새로운 시인을 소개하는 즐거움을 갖고 있다. 이성복 씨의 시에는 상처 받은 젊은이의 아픔과 아픔 그대로 선열하게 노출되어 있다. 그 아픔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는 획실하지 읺으니, 우리는 그것이 오히려 이성복 씨의 시가 가지고 있는 큰 장점 중의 하니라고 생각한다. 아픔의 근원과 증세가 확실하다면, 이미 그것은 아픔이 아니다. 그것은 치유될 수 있는 아픔이기 때문이다.˝(문학평론가 김현의 1977년 추천사 중 )

인생의 어느 때고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은 때가 없다. 이유가 있는 상처들은 그 어느 때고 지워질 수 있다. 그러나 흐려지되 절대 지워지지 않는 상처들도 있다. 남의 목숨에 빌붙어 사는 존재가 어디 저 시의 까치와 뱀 뿐이랴.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러하다. 모든 생명은 생명이 깃든 다른 존재를 등쳐먹고 살거나 잘해봐야 그것에 기대어 산다. 인생의 본질이 그러하다. 아프고 슬프다. 이 아픔과 슬픔은 결코 치유될 수 없고
죽어서야 끝이 날 터이다.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다. ˝아, 저 엄마는 어떻게 살까?˝ 라는 물음 뒤에 우리가 내릴 수 있는 답은그럼에도 . . . 그럼에도 여전히 살고 있고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슬프지만,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아름다움을 찾으려 애쓰리라. 몰라 그렇지, 아름다움 역시 지천에 깔려 있을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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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07 1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哀‘인생의 어느 때고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은 때가 없지만‘ 오늘처럼 공기는 탁하고 하늘도 뿌옇지만 햇살만큼은 1월보다 좀더 따뜻한, 매순간 반짝였던 햇살이 지난밤에 어둠을 잊게 만들죠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좀더 나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꺼라는 희망 그 희망이 삶에 버팀목이 되주는것 같습니다. 항상 느끼는거지만 행복한 책읽기님 사진 지인짜 잘찍으쉼 ^0^

행복한책읽기 2021-02-08 10:27   좋아요 2 | URL
ㅎㅎㅎ 사진 진 ~~~ 짜 잘 찍는다는 말 첨 들었음요. ㅋㅋ 지가 찍는다기보다 자연이 그저 보여주니 지도 그저 담을 뿐이지요. scott 님은 매순간의 반짝임을 잡아챌 줄 아는 눈 밝은 자로군요. 님의 희망 무지개는 바로 그런 눈과 마음이군요.^^

미미 2021-02-07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 너무너무 좋은데요? 두번읽었어요!!♡ 책 읽다 우는거 아주 반갑습니다ㅋㅋ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2-08 10:29   좋아요 2 | URL
와우. 걸출한 작가님들 훌륭한 글 많이 읽으시는 미미님이 두 번씩이나 읽어 주셨다 하니, 몸둘 바를 ㅎㅎㅎ. 전 책 읽다 자주 울어요. 어제는 책 한 권을 울며 다 읽었어요.^^;;; 미미님 오늘도 굿데이~~~~

희선 2021-02-09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살면서 어느 때든 슬픔을 맛보겠지요 슬프다 해도 그만 살 수도 없고, 그래도 살 수밖에 없는... 사람만 그렇지 않겠습니다 사는 것 자체가 슬픈 거겠지요 슬픔도 있지만 가끔은 기쁨도 있으니 좀 낫겠습니다


희선
 
래여애반다라 문학과지성 시인선 421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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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4  시라는별 8 

極地에서 
- 이성복 

무언가 안 될 때가 있다 

끝없는, 끝도 없는 얼어붙은 호수를 
절룩거리며 가는 흰, 흰 북극곰 새끼

그저, 녀석이 뜯어먹는 한두 잎 
푸른 잎새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얼어붙은 호수의 빙판을 내리찍을 
거뭇거뭇한 돌덩어리 하나 없고, 

그저, 저 웅크린 흰 북극곰 새끼라도 쫓을 
마른 나무 작대기 하나 없고, 

얼어붙은 발가락 마디마디가, 툭, 툭 부러지는 
가도 가도 끝없는 빙판 위로 

아까 지나쳤던 흰, 흰 북극곰 새끼가 
또다시 저만치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볼 때가 있다 

내 몸은, 내 발걸음은 점점 더 눈에 묻혀 가고 
무언가 안 되고 있다 

무언가, 무언가 안 되고 있다 


이성복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오라, 서럽더라‘로 풀이되는 <래여애반다라> 는 시인의 나이 예순이 되는 해에 완성된 시집으로 6장으로 나뉘어 있다. 시인이 육십 인생의 자취를 십 년 단위로 돌아본 것, 인생의 여섯 단계를 ‘래 여 애 반 다 라‘라는 여섯 글자로 요약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生이라는 것을 부여받은 인간이 ˝이곳에 와서, 같아지려 하다가, 슬픔을 맛보고, 맞서 대들다가, 많은 일을 겪고, 비단처럼 펼쳐지다˝ (시인의 말 중)라는 뜻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오늘 올리는 ‘極地에서‘는 저 여섯 단계 중 네 번째 단계, ˝맞서 대들다가˝ 시기에 들어 있는 시다. 서른에서 마흔 사이. ˝무언가 안 될 때가 있다˝ 라는 첫행과 ˝무언가, 무언가 안 되고 있다˝라는 마지막행의 대구가 돋보이는 시. 저 두 행만으로 ˝무언가˝가 북받쳐 올라 가슴이
짠해지는 시. ˝무언가˝가 안 되는 때가 어디 저 때뿐이랴. 인생의 어느 시점에 이르면 ˝무언가˝가 될 줄 알았던 자신이 무엇도 될 수 없는 존재로 살다 가는구라 라는 허무와 맞닥뜨리게 된다. 저 때는 아직 그 시기가 아니다. 저 때는 ˝무언가˝가 안 되고 있지만 그 ˝무언가˝를 향해 여전히 ˝맞서 대들˝ 수 있는 힘이 남아 있는 시기다. 생이 너를 배반할지라도 살으라 는 명령이 아닌, 살리라는 의지를 따르는 시기. 그래서 이 단계의 시들은 일상의 삶으로 도배되어 있다.

어제도 눈이 나려 오늘 아침 세상도 하얀 눈에 덮여 있다. 살으라.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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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04 2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인생의 어느 시점에 이르면 ˝무언가˝가 될 줄 알았던 자신이 무엇도 될 수 없는 존재로 살다 가는구라]
이구절에 가슴이 먹먹,,,

행복한 책읽기님에 사진은 수묵채색에 느낌이 ,,,,
2월4일 입춘날 눈을 먹고 있는 나무들

행복한 책읽기님 마이리뷰중 ‘시‘포스팅
가장 애정하고 있음^0^

행복한책읽기 2021-02-05 1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읽기 뿐 아니라 애정하고 계시다고라. 우와. 저 어깨 뽕 들어가게 생겼음요. scott 님이 이리 말씀해주니 더 힘이 납니다요. 오늘도 굿데이~~~^^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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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1 겨울밤 산책, 밤은 선생이다 

​겨울 찬바람이 귓전을 때릴 때면 엄마의 말소리도 덩달아 귓속에서 울린다. ˝니년은 머가 춥다고 그리 웅숭그리고 있노.˝ 엄마는 욕쟁이였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타는 작은 아이였고, 엄마는 추위를 모르는 기골 장대한 어른이었다. 추워서 몸이 자꾸만 움츠러드는데도 나는 겨울이 싫지 않았다. 아니 싫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겨울이 좋았다. 겨울의 알싸한 찬공기, 찬 담벼락에 스미는 따스한 햇살. 차가움과 따뜻함의 접속. 한류와 난류의 교류. 그 둘의 조화가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물론, 그 시절엔 그런 줄 모르고 좋아했다. 

​겨울이 문턱을 지나 방안까지 쳐들어올 즈음,  유튜브를 켜놓고 따라하는 실내 운동이 슬슬 지겨워지고 있던 즈음, 기온이 영하 깊숙이 내려간 날 집밖을 나섰는데, 차디찬 공기가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 겨울 바람의 매운 손찌검에 뒤따라온 것은 겨울 냄새였다. 내 몸이 기억하는 비릿한 한파 냄새. 아주 반가웠다. 겨울아, 진짜 너로구나. 그날부터 밤산책에 돌입했다. 밤이라 한동안은 아파트 단지를 뱅글뱅글 돌았는데, 재미가 덜해 요즘은 뒷산을 돈다. 뒷산에도 가로등이 켜져 있다. 나는 밤길을 그닥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늘밤의 기온은 영상 3도. 체감온도는 0도. 얼얼한 추위를 맛볼 기온은 아니지만 낮은 산이어도 찬바람이 들락거려 산 아래보다는 춥다. 바람을 밀며 바람을 쐬며 걷다 보면 몸이 조금씩 데워진다. 밖은 시리고 안은 훈훈하다. 겉은 따갑고 속은 따숩다. 극과 극의 교류는 정신을 깨우고 가슴을 때린다. 행복해진다. 땡전 한 푼 들이지 않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자는 행운아다. 비록 그 시간이 길지 않다 해도.  

​밤과 걷기는 사색의 좋은 친구다. 오늘밤이 묻는다. 밤은 선생인가? 두 권의 <<코스모스>>가 내게 알려준 바로는 밤은 확실히 선생이다. 밤은 내가 이 세상에 오기 훨씬 전에, 헤아릴 수도 없이 먼먼 시절부터 존재했으니, 먼저 난 존재 先生이 맞다. 무릇 존재하는 대부분의 것은 나의 선생이다. 문학평론가 황현산도 내게 선생이다. 그분은 내가 사랑하는 밤과 읽기 몰입의 희열을 동시에 안겨준 이였다. 

《밤이 선생이다》는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의 한 대목 ˝낮에 잃은 것을 밤에 되찾는다˝,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구절, ˝낮에 잃은 것을, 밤이여 돌려다오.˝를 빌어 선생이 밤에 대해 펼친 단상을 엮은 에세이다. 지성과 감성이 조화롭게 겸비된 글의 풍경이 펼쳐진 에세이.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다. 낮이 사회적 자아의 셰계라면 밤은 창조적 자아의 시간이다. . . 문제는 이성을 빙자하여 말과 이론과 법을 독점하고 있는 사회와 제도의 횡포에 있다. 낮에 잃은 것을 밤에 찾기란 결국 그 횡포의 희생자들을 복권하는 일이며, ˝어둠의 입˝이 해줄 수 있는 말이란 현실에서 통용되는 말의 권력을 넘어선 역사의 말이자 미래의 말이다.˝(220) ​ 

​황현산 선생의 글은 냉기와 온기가 교차하는 겨울밤 산책을 닮았다. 선생의 지성은 차가우면서 따뜻하다. 낮에 벼린 차가운 이성을 밤이 되면 따스한 감성으로 둥글린다. 그렇기에 선생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자상하다. 또한 선생의 사유는 가슴을 무겁게 누르기보다 마음을 촉촉이 적신다. 한파가 들이닥치기 전의 겨울밤, 걸음과 걸음이 포개지고 포개져 훈기가 발끝에서부터 머리꼭대기로 차오를 즈음 밤은, 말 그대로 나의 ‘선생‘으로 찾아와 내 삶에 윤기를 더해주었다. ​

˝삶을 깊이 있고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은 우리가 마음을 쏟기만 한다면 우리의 주변 어디에나 숨어 있다. 매우 하찮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 삶을 구성하는 것 하나하나에 깊이를 뚫어 마음을 쌓지 않는다면 저 바깥에 대한 지식도 쌓일 자리가 없다. 정신이 부지런한 자에게는 어디에나 희망이 있다고 새삼스럽게 말해야겠다.(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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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2-02 09: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야경 너무 근사하게 찍으셨네요~♡ 리뷰가 좋아요! 저도 밤길이 안무섭고 싶은데 인적이 드물면 한번씩 돌아보고 둘러보고 급해지고ㅋㅋ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2-02 11:34   좋아요 2 | URL
애인을 델고^^ 고것이 난감이면 강아지라도^^;; 저 사진은 지도 살짝 무서워 고개 돌렸다 얻어걸린 장면임다^^

scott 2021-02-02 10: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글만 있는줄 알았다가 마지막 사진이 예술!

행복한책읽기 2021-02-02 11:36   좋아요 2 | URL
자연과 인공이 연출해낸 예술^^
 
래여애반다라 문학과지성 시인선 421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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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31 시라는별 7 

나무에 대하여 
- 이성복 

때로 나무들은 아래로 내려가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나무의 몸통뿐만 아니라 가지도 잎새도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싶을 것이다 무슨 부끄러운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왼종일 마냥 서 있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을 것이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제 뿌리가 엉켜 있는 곳이 얼마나 어두운지 알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몸통과 가지와 잎새를 고스란히 제 뿌리 밑에 묻어 두고, 언젠가 두고 온 하늘 아래 다시 서 보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래여애반다라>는 이성복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으로 <아, 입이 없는 것들> 이후 십 년만인 2013년에 출간되었다. 시인의 나이는 61세. 내가 이 시집을 정확히 언제 구매했는지 기억에 없다. 알라딘 구매력을 훑으면 찾을 수 있겠으나 귀찮아서 하지 않는다. 사기만 하고 펼치지 않은 책이 여러 권이다.

<남해금산> <호랑가시나무의 기억>을 구매해서 읽었다 생각했으나 책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읽은 줄 여기나 내용이 기억에 없다. 이것이 시 읽기의 맹점이다. 기억 상실에 따른 기억 부재.

발음도 힘든 시집의 제목 ‘래여애반다라‘는 신라 향가인 ‘풍요‘(혹은 공덕가)의 한 구절이라고 한다. 풀이하면 ‘오라, 서럽더라.‘ 라는 뜻이라고. 이승에 와서 울고 웃고 넘어지고 깨지고 엎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다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생이라고, 그런 생의 서러움을 노래한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이 시집도 그러하다. 이순에 이른 시인의 시어들은 어렵지 않고 어조는 무겁지 않다. 그저 담담할 뿐이다. 생아, 이제 나는 너가 그런 줄 알겠다 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런데 읽고 있음 눈에 자꾸 물이 고인다. 안구 건조증 탓인지, 시어에 젖은 물기 탓인지,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어쨌든, 이 시집 좋다.

‘나무에 대하여‘는 푸른 잎새들 모두 벗고 앙상한 가지들 고스란히 드러낸 채 제 몸뚱이 하나로 시린 겨울을 버티는 나무들 이야기다. 이것은 겉보기 해석이다. 나무라는 시어에 ‘사람‘을 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다. 우리도 때로 그렇지 않나.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버거울 때가 있지 않나. 사람들 시선이 느껴지는 것이 싫을 때가 있지 않나. 내 속이 얼마나 엉켜 있길래 이리도 안 풀리나 싶을 때가 있지 않나. 그럴 때는 영양분을 저기 위, 가지 끝까지 밀어올리는 일을 삼가는 겨울나무처럼 사는 것이 더 낫다. 자기 안으로 침잠해 내 속의 엉킨 뿌리를 하나하나 들여다 보고 천천히 풀고 있는 편이 더 낫다. 그런 시간이 있어야 ˝언젠가 두고 온 하늘 아래 다시 서 보고 싶을 때가˝ 온다. 나는 그 시기를 통과했다 여겼는데, 그런 시기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고돌아 또 오는 모양이다.

풍요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럽다여
서럽다 우리들이여
공덕 닦으러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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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1-02-01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성복을 몰아서 읽고 나면 다음 시집 고르기가 만만치 않으실 거 같아요.
초콜릿 한 바가지 먹은 직후 먹는 수박맛...

행복한책읽기 2021-02-01 14:32   좋아요 0 | URL
대략 그럴 듯한 느낌이 ㅋ
 

20210131 나도 해본다 이런 거 


궁금했다. 북플에서는 책 배열이 하단에만 되는데, 책 고수들이 쓴 글 위, 아래, 옆에 책을 배열한다. 사진도 배열한다. 도대체 어떻게 하는거임? 라로님은 내 질문을 이해못했고 나는 라로님 답을 이해못했다. 꺼이~~~ 등산 후기 잘 올리는 알라알라북사랑님께 물었더니 정작 답은 다른 분이(누구였더라?? 기억 못해 죄송함다) 해주었다. "북플에선 안 돼요. 알라딘 서재에서만 돼요." 뭣이라. 고작 그런 이유. 그 답을 듣고 난 날로부터 몇십 일이 흘렀다. 오늘 시도한다. 잘 되려나?? 두-근근근근. 뭐 이 정도는 아님.^^


오늘의 현황. 

옆지기와 딸이 집을 비웠다. 아들은 . . . ㅠㅠㅠ 나의 불찰이다. 같이 딸려보냈어야 했다. 왜 그 생각을 못했단 말인가. 나는 엄마바라기 아들이 예뻐 죽겠는 때가 더 많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간절히 바란다. 코로나19가 이 시간을 앗아갔다. 


읽은 (syo님 흉내 중^^) 

 나만의 셰익스피어 읽기 첫 번째 권. 셰익스피어는 총 37편의 희곡 작품을 남겼다. 죽기 전에 셰익스피어 작품을 다 읽을래요 라는 나의 말에 대학 때 영국인 교수님(귀화하심)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검지를 메트로놈처럼 까딱까딱 가로저으며 "그럴 필요 없어"라고 말씀하셨다. 허나 나는 죽기 전 아니고 더 늙기 전에, 눈이 더 침침해지기 전에 교수님 권고를 무시하고(무릇 어른들 말씀은 어겨야 제맛이니) 읽겠다.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는 햄릿에 이은 두 번째 비극으로 셰익스피어 나이 40세에 쓰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 읽고 든 소감, 

네 이놈 이야고 ~~~~

어리석은 오셀로 ~~~~~

순진한 데스데모나 ~~~~~ 















1월 4일 매일 인증 시작해 1월 31일 오늘 대항해 아닌 소항해 완료. 세이건에 이어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중딩 딸이 물었다. "엄마, 이 책이 저번 코스모스보다 얇은데, 그럼 두 책 중 한 권을 본다면 이걸 읽을까?" 나의 대답. "아니아니. 이건 안 읽어도 돼! 세이건을 읽어!" 물론, 딸은 아직 읽지 않고 있다. 이 아이는 언젠가 읽을 것이다. 나의 집요한 강압에 무릎 꿇을 것이다. 나, 좀, 징글징글한 엄마다. 딸의 말이 그러하다. 아무튼,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는 세이건에 훨 못 미치지만 읽지 않았다면 궁금해서 계속 미련이 남았을 것이다. 완독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 약간 중구난방 중언부언으로 이어지는 이 책을 관통하는 한 가지 맥은 과학자들이다. 가히 과학자들의 향연이 펼쳐지는데, 이들의 이야기는 재미있다. 러시아 화학자 드리트리 멘델레예프, 노르웨이 과학자 빅토르 골드슈미트, 네덜란드 철학자이자 과학자 바뤼흐 스피노자, 오스트리아 성직자이자 박물학자 그레고어 멘델, 러시아 물리학자 세르게이 바빌로프(이 분 정말 감동적), 영국 물리학자 존 스튜어트 벨, 유대계 폴란드 물리학자 마리 퀴리, 유대계 미국 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 등이 인상적이었다. 이름은 읽음과 동시에 빛의 속도로 지워진다. ㅠㅠ 소항해 피날레를 마지막 페이지에 생명수를 쏟는 것으로 장식했다. 저기 보라. 구깃구깃해진 종이를! 앗. 서재에선 사진을 못 올리겠음 ㅡㅡ


읽는 


이성복 시인의 시론을 책꽂이에 얌전히 꽂고 대신 꺼내든 시집. 휘리릭 훑고 대번에 느낌 왔다. 좋다 좋다 좋다 좋다. 이걸 왜 이제서 꺼내든겨, 이 바보야. 살아 있음의 속절없음, 하고 있음의 부질없음을 대변해주는 책. 나의 책. 오늘은 시 한 편 올려야쥐~~~ 


2006년 여름 경주에서 신라 시대 진흙으로 빚은 불상들의 전시가 있었다. 이 전시회의 표제인 '來如哀反多羅'는 신라 향가인 풍요(공덕가)의 한 구절로서, '오다, 서럽더라'의 뜻으로 새겨진다. 당치도 않은 일이지만, 이 이두문자를 의역하면 '이곳에 와서, 같아지려 하다가, 슬픔을 맛보고, 맞서 대들다가, 많은 일을 겪고, 비단처럼 펼쳐지다'로 이해되는데, 그 또한 본래의 뜻과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오래전부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시들을 같은 제목으로 엮어보고 싶은 은밀한 바람이 있었다. ㅡ 시인의 말 


 2021년 독서모임 2월의 책. 오늘로 4일차. 총 570쪽 중 25쪽까지 읽고 가슴 따뜻한 저자와 아름다운 문체에 반했고 57쪽까지 읽고 가슴이 뜨거워졌고 65쪽까지 읽고 나의 제의는 무엇인가 질문하며 '책읽기'라는 답을 얻었다. 처음 접하는 북아메리카의 창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눈에서도 키머러 교수의 학생들처럼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24) 땅의 너그러운 품에 안긴 하늘여인이 에덴의 품에서 쫓겨난 이브에게 묻는다. "자매여, 어쩌다 그런 일을 겪게 되었나요 . . . "(22) 이 책은 "인디언 여자 치고는 공부를 꽤 잘했습니다"라고 말하는 무례한 백인 남자들의 세계에 조용하되 단호한 어조로 '그런 세계를 거절합니다'라고 말하는 책이다. 강추한다. 

"온 세상이 상품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가난해지겠는가. 온 세상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선물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부유해지겠는가."(57) 


 평단에서 밀려나 있던 캐서린 맨스필드를 이렇게 수면 위로 올려준 출판사와 번역자에게 고마움. 하루 한 편씩 읽겠다 했으나 총 아홉 편 중 겨우 두 편 읽음. 책의 제목인 <가든 파티> 재밌다. 나는 행복하나 너는 불행할 때, 내 행복을 감히 드러내기 부끄러운데 밀려오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다. 그런 내가 한심한데 그 마음을 어찌할 수 없다. 인간은 경이롭고 인생은 요지경이다. 







 지난주 도서관에서 대출해 총 110쪽 중 34쪽까지 읽고 멀리하고 있다. 엄마 이야기는 언제나 내게 뭉클함이어서 첫줄 읽자마자 눈물이 뚝뚝 떨어져 시야가 흐려졌다. 


"어머니가 4월 7일 월요일에 돌아가셨다. 퐁투아즈 병원에서 운영하는 노인 요양원에 들어간 지 두 해째였다. 간호사가 전화로 알려 왔다. <모친께서 오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운명하셨습니다." 10시쯤이었다."(7) 


아니 에르노의 글은 사실에 충실하다. 감정이나 회한을 최대한 배제한, 그저 있는 사실만을 쓴 저 글이 그 어떤 수사보다 울림이 컸다. 




 이 책을 미미님 서재에서 건졌던가? 아무튼 집에 <빨래하는 페미니즘>이 있는데, 그 책이랑 교차해 읽어야쥐 했다가 열다섯 꼭지 중 한 꼭지밖에 못 읽었다. 법륜 스님의 <엄마 수업> 편. 주부이자 엄마로서 저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서 짙은 동지애를 느꼈다. 나는 <엄마 수업>을 읽다 말그대로 책을 냅다 던져버렸다. 스님, 이러시면 안 돼요. 엄마들 대부분은 자신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구요!! 이런 죄책감 주지 말라구요!! 


코로나19의 끝을 알 수 없겠다 싶어졌을 때 옆지기와 아이들에게 선언했다. "내 퇴근 시간은 10시야. 10시 이후 내 이름도 부르지 마!!" 물론 잘 지켜지지 않는다. 나는 퇴근과 주말이 있는 삶, 월급 받는 삶을 원한다. 주부는 절대, 결단코, 집에서 놀지 않는다. 내가 집에서 무슨 일을 얼마나 하는지 낱낱이 알려주고 싶으나 이제 더는 글을 못 쓰겠다. 지친다. 첨이라 적응도 안 된다. 책 배열을 다르게 하고 싶으나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요걸 올리고 아들이랑 산에나 가야쥐~~~~^^


읽을 혹은 읽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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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1-31 15: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체로 쓰신 페이퍼 잘 봤어요!ㅎ<향모를 땋으며>가 관심이 많이 가는데 생각보다 두껍군요!ㅎ 건달산 잘 다녀오시고 담주도 즐건 한주되십시요!ㅎ

행복한책읽기 2021-01-31 18:37   좋아요 1 | URL
잘 다녀왔습니다. 막시무스님 기억력 짱이요. 건달산은 차를 타고 가야 해 주로 뒷산을 가구요. 홍법산이라 해요. <향모>는 막시무스님 좋아할 것 같아요. 저는 이런 다양한 시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메리카원주민이 식물을 대하는 태도는 동양과 닮아 있더라고요. 댓글도 산행 응원도 고마워요~~~~^^

라로 2021-01-31 16: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하 제가 진짜 책님의 질문을 이해 못했나봐요. ㅎㅎㅎ저는 당연히 저는 컴을 사용하시는 줄 알았어요. 그건 그렇고 제가 북플에서 안 된다고 안 했나요??😅 암튼 이제라도 성공하신 거 축하드려요!!👍

행복한책읽기 2021-01-31 18:39   좋아요 1 | URL
지가 라로님 말을 잘 못알아들었을 거예요. pc 북플 버전 따로 있을줄 정말 상상을 못한^^;;; 축하 고마워요. 성공해서 뿌듯뿌듯 ㅋ

scott 2021-01-31 2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로님에 댓글 바로 아래 제가 달았어요
북플은 처음 글이나 댓글 쓸때 가로로만 쓰이다가 수정 버튼을 누르면 세로폭으로 늘어나서 쓸수 있는데 책(검색어 입력시)이나 이미지 업로드는 세로 배열밖에 안되게 설계되었어요.(아마도 용량 제한때문인것 같음)
원래는 인스타그램과 핀터래스트 같이 검색과 이미지 업로드로 설계한것 같은데 저렴한 소프트 시스템업자 한테 맡겼는지 우유팩처럼 글과 이미지 검색 업로드가 자유자재로 편집 할수 없어요 ㅋㅋ
최근에 응24 스냅쳅 같이 움직이는 한줄 공감 이미지(사진 검색)로 바뀌었는데 알라딘은 기냥 이런 북플시스템으로 쭈욱 갈것 같아요 ㅋㅋㅋ
*pc북플에서 쓰면 블로그 기능이 되살아남 ㅋㅋ
갑자기 불쑥 긴댓글 달아서 죄송 ㅜ.ㅜ

행복한책읽기 2021-01-31 18:43   좋아요 1 | URL
아니에요아니에요. 알려주셨던것도 또 이렇게 알려주시는 것도 정말 고마워요. 덕에 도전했고 부실한 성공을 했습죠. 근데 응24스냅쳅 이런 거, 저 하나도 모릅니다. 기계치거든요. 우유팩처럼 이란 말도 못알아듣겠는...아. 진짜 ㅠㅠ

syo 2021-02-01 02: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로서 드리는 말씀인데, syo보다 훨씬 알찬데요?
앞으로 syo 따라했다 하지 마시고 syo야 나 좀 따라해봐 하셔도 되겠어요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