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Arch 님이 콕 찝었을 때 아니라고 너스레를 떨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난 감정의 기복이 적고 무던한 편이다. 전에 한 선배와 밥을 먹다가 아주 평이한 톤으로 "아, 맵다" 라고 했더니, 그게 어디 매운 사람이 하는 표현이냐고 한참을 웃더라. 전쟁에서 총을 맞아도 "아, 맞았다" 이러고 말 놈이라면서. 

요즘 읽고 있는 [The Things They Carried] 의 작가 Tim O'Brien 이 딱 나 같은 스타일이 아닌가 싶다. 아비규환 같은 전쟁터의 모습을 이토록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관조하듯 써내려 갈 수도 있구나. 영화로 치자면 사방에서 불길이 솟고 총알이 날아다니며 전우들이 쓰러져가는 장면을 아무 소리도 없이 슬로우 모션으로 천천히 보여주는 기분이랄까. 덕분에 이 문장들은 감각을 자극하고 심장을 팔딱팔딱 뛰게 하는 대신, 잉크가 스며들듯 번져들어 그 문장 속에 내가 잠겨 들어가는 기분을 들게 한다.



You're pinned down in some hellhole of a paddy, getting your ass delivered to kingdom come, but then for a few seconds everything goes quiet and you look up and see the sun and a few puffy white clouds, and the immense serenity flashes against your eyeballs--the whole world gets rearranged--and even though you're pinned down by a war you never felt more at peace.

P.35 ~ 36

아, 그 완벽한 정적과 평화로움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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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3-23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잖고 과묵하신 타입이군요?ㅎㅎ

turnleft 2010-03-24 11:46   좋아요 0 | URL
아뇨, 딱히 과묵하진 않아요. 그냥 기복이 좀 적은 편이랄까..

무스탕 2010-03-23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있잖아요, 나중에(혹은 지금) 애인한테 '아~ 좋다' 라고 간단하게 말씀하실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

turnleft 2010-03-24 11:47   좋아요 0 | URL
어랏, 다른 말이 더 필요한가요? ^^;

프레이야 2010-03-23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타입인 건
재작년 만나뵙고 눈치챘지요.^^
참 좋던걸요, 전.
총맞고도 아 맞았다!,라구요? ㅎㅎ

Alicia 2010-03-24 11:06   좋아요 0 | URL

저는 그때 그런타입인지 몰랐어요.제가눈치가 좀없어요ㅎㅎ그래도 정중하고 따뜻한 분인건 알았어요ㅎㅎ

turnleft 2010-03-24 11:48   좋아요 0 | URL
생각해보니 아플 때도 아프다는 말 잘 안 해요.
어머니는 미련 곰탱이 같다고도 하던데 -_-;

리샤 2010-03-25 23:3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곰탱이! ㅎㅎ
덧글주신거 완전 잘못이해해가지구 한참헤매고..;;
어우 제가 곰인가요? ㅜㅜ


turnleft 2010-03-27 02:17   좋아요 0 | URL
겨울이라서 그래요. 봄이 왔으니 곰들은 이제 좀 덜 헤매지 않을까요? ㅎㅎ
 

여전히 책 읽는 진도는 느리고, 재고는 쌓였다. 마지막으로 책을 주문해 본건 몇 달 전인데, 헌책방에서 야금야금 사거나 선물 받은(!) 책들이 있어, 실제 재고 수는 거의 줄지가 않는다. 읽고 나서 리뷰를 미루고 있는 책도 무려 18 권 -_-;;; 휴가 내서 리뷰나 쓸까보다.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Camera Lucida
희망의 인문학
속죄
슬럼, 지구를 뒤덮다
질투 : 이 책 의외로 좋았다. 이성적 사유가 스스로를 유폐시켜 소외시키는 과정을 소설적으로 잘 형상화 시킨 듯.
어느 비평가의 죽음
마르크스의 유령들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법률사무소 김앤장 : 문제제기만으로도 책 값은 하고도 남는다.
소설의 이론
당신들의 천국
침묵의 봄
총 균 쇠
철의 시대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The Things They Carried(진행중) : 아직 초반인데도, 전율이 흐를 정도로 멋지다.
Travels in the Scriptorium
Man in the Dark : So so. 폴 오스터 스러움.
The Selected Works of T. S. Spivet
춘천, 마음으로 찍은 풍경 : 근래 읽은 책 중 최악.
주기율표
순례자의 책 : 사건은 있으나 이야기는 없고, 정보는 있으나 깨달음은 없다. 애매모호.

고삐 풀린 자본주의, 1980년 이후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Generation X
The Lacuna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 Lovely.
말 도둑놀이
매혹 : 별 3개와 4개 사이에서 갈등 중. 결말을 좋게 봐 줄 수도 있고, 나쁘게 봐 줄 수도 있는데 그에 따라 별점이 결정될 듯.
American Gods : 명성에 비해 많이 실망스러움.
남미를 말하다
: 인물에 매몰되서 정작 남미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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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0-03-20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벽 세시.. 는 간단하게 한 단어로 정리가 되었군요 ^^

turnleft 2010-03-21 09:47   좋아요 0 | URL
말이 더 필요 없는 책이지요 :)

다락방 2010-03-20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Lovely.


turnleft 2010-03-21 09:48   좋아요 0 | URL
Lovely!!! (보세요, 느낌표를 세개나 줬어요!)

다락방 2010-03-20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률사무소김앤장은 물론 쓰신대로 문제제기만으로도 가치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뭔가 좀 허술하게 느껴졌어요. 뭔가 더 많은 말들을 해주길 바랐는데 말입니다.

turnleft 2010-03-21 09:51   좋아요 0 | URL
저도 별점은 4개인데, 서로 겹치는 내용이 많아서 꽉 짜여진 느낌을 못 주더군요. 더 많은 말들이 나와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려운가봐요. 삼성 + 김앤장 + 조중동 의 신성동맹이 얼마나 견고한지도 새삼 느끼게 되구요.

2010-03-20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1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이 2010-03-20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야민, 바르트,루카치,카슨, 다이아몬드가 저와 겹치네요. 근데 '질투'는 로브그리예 작품인가요?

저도 레프트님 리뷰 보고싶어요. 휴가를 내시든 무리를 하시든 어떻게 쫌....

turnleft 2010-03-21 09:52   좋아요 0 | URL
음? 벤야민이 있었나요? 저는 왜 안 보이..;; 질투는 로브그리예 작품 맞아요.

말은 저렇게 해도, 막상 휴가 내면 뒹굴거리다가 시간 다 보낼거 알고 있습니다 -_-;

반딧불이 2010-03-23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 벤야민이 아니라 데이비드 하비였군요.. 저는 왜 모더니티 하면 파리, 파리 하면 보들레르, 보들레르 하면 벤야민이 떠오는걸까요?

turnleft 2010-03-25 11:53   좋아요 0 | URL
ㅋㅋ 조건반사? (무조건반사였나? 기억이..;;)
 

Clint Eastwood: 35 Films 35 Years at Warner Bros.

수록 작품 목록

1. Where Eagles Dare, 1968
2. Kelly's Heroes, 1970
3. Dirty Harry, 1971
4. Magnum Force, 1973
5. The Enforcer, 1975
6. The Outlaw Josey Wales, 1976
7. The Gauntlet, 1977
8. Every Which Way but Loose, 1978
9. Bronco Billy, 1980
10. Any Which Way You Can, 1980
11. Honkytonk Man, 1982
12. Firefox, 1982
13. Sudden Impact, 1983
14. City Heat, 1984
15. Tightrope, 1984
16. Pale Rider, 1985
17. Heartbreak Ridge, 1986
18. Bird, 1988
19. The Dead Pool, 1988
20. Pink Cadillac, 1989
21. White Hunter, Black Heart, 1990
22. The Rookie, 1990
23. Unforgiven, 1992
24. A Perfect World, 1993
25. 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1995
26. Absolute Power, 1997
27. Midnight in the Garden of Good and Evil, 1997
28. True Crime, 1999
29. Space Cowboys, 2000
30. Blood Work, 2002
31. Mystic River, 2003
32. Million Dollar Baby, 2004
33. Letters from Iwo Jima, 2006
34. Gran Torino, 2008
35. The Eastwood Factor short film.

지름신이 강림하시는걸 잠시 느꼈으나, 미디어룸이 있는 집이 생길 때까지(응?) 미루기로...;;

대신 지름신께 다른 사람들을 소개해주기로 약속했어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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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0-02-22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름신 제대로네요 ㅎㄷㄷ;; 얼마인가요?

turnleft 2010-02-23 03:10   좋아요 0 | URL
$120 이라고 붙어 있었으니 여기선 세금 합하면 $130 이 넘네요.
그래도 소장 가치가 있어 보이니.. +_+

비로그인 2010-02-22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 목록에서 전 빼주세요. 올해부터는 지름신 안모시기로 했거든요.ㅋㅋㅋ

turnleft 2010-02-23 03:10   좋아요 0 | URL
지름신을 피해 가시려면 이 글을 일곱 군데에 올리시.. (쿨럭;;)

visitor 2010-04-18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kindle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들르게 되었습니다.
kindle 사용기가 (잠재적 구매자로서) 제게 아주 도움이 되기도 했고,
책들 소개가 있는 이 블로그가 맘에 들기도 해서,
실상 제게는 흔치않은 일입니다만,
생면부지의 타인임에도 이렇게 댓글을 남기고 갑니다.

대개의 경우 지름신도 저만은 피해가십니다만,
이 Clint Eastwood 님은 꼭 좀 데려오고 싶네요. 후훗.

turnleft 2010-04-20 02:5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
킨들도 그렇고, 클간지님도 그렇고, 이래저래 지름신만 불러드리는 것 같군요;;
 

쩝, 엄하게 프로그램 하나 만드느라 여가 시간을 다 보내고 있는 관계로, 진도가 별로 안 나갔군요. 거기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American Gods] 를 헌책방에서 지르기까지도.. ^^;

2월에는 좀 더 분발을!!!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Camera Lucida
희망의 인문학
속죄
슬럼, 지구를 뒤덮다
질투
어느 비평가의 죽음
마르크스의 유령들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법률사무소 김앤장
소설의 이론
당신들의 천국
침묵의 봄
총 균 쇠
철의 시대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The Things They Carried
Travels in the Scriptorium
Man in the Dark
The Selected Works of T. S. Spivet
춘천, 마음으로 찍은 풍경
주기율표
순례자의 책

고삐 풀린 자본주의, 1980년 이후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Generation X
The Lacuna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말 도둑놀이
매혹
American Gods(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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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2-02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merican Gods를 헌책방에서 저도 만났다면 질렀을듯 해요 ^^ 전에 간단 소개보고 궁금했거든요~

turnleft 2010-02-02 11:51   좋아요 0 | URL
지금까지 1/5 정도 읽었는데, 아직은 좀 아리송해요. 전체적으로 mystical 한 분위기는 맘에 드는군요 :)

2010-02-02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02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03 2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04 0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10-02-02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소설의 이론이 얼마나 읽고 싶었으면 심설당과 문예출판사에서 나온걸 두개나 갖고 있어요. 멍청하게 둘 다 새책으로 주문했다능. 물론 아직 안 읽었구요. 뭐가 더 좋은지 잘 모르겠어요. 표지나 분위기는 심설당이 괜찮은데 문예출판사 번역하신 분이 루카치 연구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니까 더 모르겠는... 뭐, 둘 다 읽어보면 답이 나오겠죠.

'맛'을 아직도 안 읽으신거에요? ^^ 아, 너무 기대하게 만드는건가~

페이퍼에서 여전히 다락방님 냄새가 나요. ㅋㅋ

turnleft 2010-02-03 08:04   좋아요 0 | URL
제가 가진건 문예출판사에서 나온거에요. 읽고는 싶은데, 막상 뭐 읽을까 책장 앞에서서성이다보면 또 문득 집어들기 무서워지는건 또 뭔지.. ㅎㅎ '맛'은 정말 정말 아껴뒀다가 정말 정말 우울한 날 꺼내 읽을려고 쟁여두고 있지요.

그나저나, 낮선 남자에게서 다락방의 향기를 느끼시는 건가요?

Arch 2010-02-03 16:2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낯선 남자에게서 그녀의 냄새가 물씬~ 하악하악^^

아, 지르는걸 권하는건 아니고, '맛'을 다 읽고도 우울한 날이 가끔 찾아오면 말이죠.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를 권해드릴게요. 읽으셨을까?

turnleft 2010-02-04 03:37   좋아요 0 | URL
OK.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접수했습니다 ^^

saint236 2010-02-05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걸 다 읽은 건가요? 부럽습니다. 전아직도 재고소진은 고사하고 자꾸 지름신이 강림하시는지라. 왜 김두식씨와 김용철씨는 책을 또 내신것인지..보관함에 담아두고 매일 마우스 만지작 거립니다. 요즘은 서평단도서 중 운좋게 걸린 삼한지를 읽느라....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turnleft 2010-02-05 11:51   좋아요 0 | URL
어이쿠, 다 읽기는요. 안 읽은 목록입니다;; (줄 간 놈만 읽은 책;;)

뭘 하든 스트레스 안 받고 맘 가는데로 하는게 제일 좋죠 뭐. 오늘도 즐독하세요~~ ㅎㅎ

가시장미 2010-02-26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 많은 책 중에서 딱 두 권 겹칩니다. 슬럼, 지구를 뒤덮다와 희망의 인문학이요.
희망의 인문학은 방금 전까지 읽고 있었답니다. ㅋㅋ 어쨌든 두 권이라도 같이 읽은 책이 있다니. 반갑군요 ^^

예전에 형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눴을 때가 생각나네요. 가까이 살았으면 정말 좋았을텐데, 가끔 살기 힘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깊이있게 나누고 싶을 때 술한잔 할 수 있으면 좋잖아요. 아.. 이젠 유부녀고 애엄마라 그러면 안 되는건가 -_-;;;

어쨌든 잘 지내시죠? ^^ 어쩌다 한국오게 되시면 연락주세요. ㅋㅋ 이 글 비밀글로 하면 오해하실까봐 공개합니다. 어디까지나 제 마음은 순수해요~~ 아주~~ 아시죠? 크크


turnleft 2010-02-26 03:30   좋아요 0 | URL
유부녀고 애엄마지만 장미님은 제가 특별히 같이 만나 술한잔 할께요 ㅎㅎ

한국은 언제 갈지 모르겠네요. 갈수록 엉덩이가 무거워져서 태평양 건너기가 쉽지가 않아요...

향기로운 2010-02-26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많은 책들 중에 읽은 건 하나, 읽고 싶어 보관함에 담아둔 것도 한나 뿐이네요. 오랜만에 뵙네요^^

turnleft 2010-02-27 03:31   좋아요 0 | URL
백만년만에 한번씩 오시는 것 같군요!!! 잘 지내시죠? ^^
 

시간 참 빠르네요. 2010년이 시작되는가 했는데 어느새 1월이 다 지났습니다. 지난 연말 김종호님 사건 때문에 떠들썩했던 기억이 벌써 가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연말 이후로 저도 한 발짝 물러서 있던 관계로 알라딘 밖에서 김종호님과 관련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 소식이 없다는 것 자체가 별다른 상황 변화가 없다는 뜻이겠거니 짐작하고 있을 뿐이죠. 따라서 그 문제 자체와 관련해서는 딱히 더 할 말은 없습니다. 그와 별개로 제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조사장님이 약속하신 알라딘의 변화에 대한 소식이었죠. 하지만 그 역시 아무 소식이 없고, 아마도 별다른 상황 변화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애초에 저는 김종호님의 해고를 비정규직 일반의 문제와 연결시키기 어렵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알라딘의 해명이 충분히 개연성이 있었다고 보았고, 다소 의심스러운 점들도 있지만 한 사례만으로 그 해명이 거짓이라고 확언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도급 관련 알라딘으로서도 떳떳할 수만은 없는 관행(?)적 불법/편법 행위들이 일부 포착되었던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조사장님이 도급 중단을 선언했을 때 그것이 의미 있는 변화가 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기다려 보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달여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불매운동을 진행하시던 분들 다수는 알라딘 밖으로 나가셨고, 이 곳에는 표면상으로는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건 문제가 불거지기 이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분명해 집니다. 무엇이 바뀌었나요? 몇몇 알라디너들의 빈자리를 제외하면,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알라딘 내부적으로는 뭐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모릅니다. 알라디너들은 모릅니다. 그건, 알라딘과 알라디너 간의 관계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문제를 바라볼 때 권력 관계를 중요하게 바라봅니다. 예를 들어, 알라디너 간의 다툼이 있을 때는, 저는 좋은게 좋은거지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서로 저마다의 진실이 있을테고, 그 사이에서 어떤 권력 관계가 작용하는 것은 아닌 이상 당사자들 간에 알아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서로간에 어떤 권력 관계가 존재할 때, 당사자들에게만 해결을 맡기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봅니다. 사건 자체의 논리가 아닌, 힘의 논리가 관철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 때, "개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김종호님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해고 자체를 문제삼아 복직까지 요구하는 것은 어렵다고 봤지만,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그 피해를 김종호님에게 떠넘기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번 양보를 해도 잘못은 알라딘과 인트잡이 했는데, 책임은 노동자가 지게 되는 이유가 뭘까요? 어느날 갑작스래 해고를 통보받고 재취업은 물론 재취업 기간의 생계까지 왜 노동자가 다 알아서 해야 했을까요? 그게 바로 권력 관계의 차이였습니다. 그리고 한국 사회만큼 아무런 견제장치 없이 역학 관계가 일방적으로 적용되는 곳도 드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또 어떤가요?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재라는 공간을 활용하는 알라디너들. 알라딘과 알라디너 사이의 역학 관계는 또 어떤가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불만"을 제기하고, 알라딘이 그 불만을 "해결" 해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도 왠만큼 시끄럽게 굴지 않으면 제대로 된 반응을 기대하기도 어렵지요. 딱 그 정도의 관계인 겁니다, 저와 알라딘은. 철저하게 회사와 고객의 관계. 거기서 한 발짝도 더 앞으로 나가지 못했네요.

이제 기다릴 만큼은 기다렸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알라딘이 제가 이야기하는 것들을 잘 기록해 뒀다가 그대로 행동할 거라곤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조사장님께서 스스로 약속하신 부분에 대해 실행에 옮기고, 그 결과를 알려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그게 알라딘과 알라디너 사이의 역학 관계가 조금이라도 변할 수 있는 시발점이라고 봤습니다. 그게 지켜지지 않았고, 저도 더 이상 알라딘과의 관계를 지속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고, 이 공간을 떠날 생각은 없습니다. 이 곳은 알라딘이기 이전에 제가 알게 된 분들, 제가 좋아하는 분들이 있는, 제 놀이 공간입니다. 알라딘 때문에 제 놀이 공간을 떠날 생각은 없습니다. 대신, 알라딘의 상업 활동과는 완전히 결별합니다. 불매는 당연한 일이고, 제 글이 알라딘의 영업 활동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길들은 모두 차단합니다. 이미 일주일쯤 전에 마이 리뷰는 모두 비공개로 돌려 놨습니다.(Thanks to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_-) 앞으로 제 글 속에 알라딘 상품이 나타나는 일은 앞으로 없을겁니다. 그리고 이 글 이후로 모든 글을을 즐찾 서재브리핑에만 공개합니다. 다시 말해 알라딘이 제공하는 플랫폼을 철저하게 커뮤니티 공간으로만 이용해 먹겠다는 뜻이지요. 그것마저 꼬우면... 자르겠죠 뭐 -_-;

사전을 찾아보니 칩거(蟄居)는 "나가서 활동하지 아니하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음."을 뜻한다고 합니다. 교류는 계속할 예정이니 엄밀한 의미에서의 칩거는 아니지만, 제가 그나마 떳떳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항의가 여기까지라고 생각합니다. 조만간 남은 적립금 소진을 위해 조촐한 이벤트 하나 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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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2-01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런 방법도 있군요. 전 슬금슬금 자료를 옮겨놓기는 했습니다 --

turnleft 2010-02-02 04:36   좋아요 0 | URL
뭐, 궁여지책이라고 봐야겠죠. 대안 커뮤니티가 마땅치 않은 관계로.. -_-

마늘빵 2010-02-01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직까지 불매하고 있는 중이고, 다른 곳에서도 책을 사지 않고 있어요. 알라딘이 그 사건 이후 어떤 대책을 세웠다는 이야기를 아직 하지 않았죠. 저도 기다리고 있는 입장인데, 1월도 벌써 다 갔군요. 관련 페이퍼를 쓴다 쓴다 하면서 안 쓰고 계속 미루기만 하네요. 저도 이쯤이면 충분히 기다렸다고 봅니다.

turnleft 2010-02-02 04:37   좋아요 0 | URL
이제 슬슬 다른 곳에서 책은 사셔도 될 것 같은데요? 정리가 좀 끝나면 책장에 빈 구멍들이 보이기 시작하실 것 같은데.. ^^;

2010-02-01 1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02 0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02 2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03 0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perky 2010-02-05 0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글, 이제사 봤어요.(제가 알라딘에 통 안들어왔다보니;;)
turnleft님의 수준높은 리뷰들 정말 좋아했었는데..많이 아쉽네요.

turnleft 2010-02-05 10:29   좋아요 0 | URL
수준 높진 않지만, 리뷰는 계속 쓸거에요 ^^;
다만 밖으로 노출이 안 되게 할 뿐이니, 차우님 보시는데는 문제 없을겁니다.

라로 2010-02-08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제 글을 올리는 시간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알라딘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지라 주로 즐찾의 글들만 보고 즐찾의 글들도 제가 결석한 날 올라온 글들은 읽지 않아요,,,,지난 글들을 꺼내서 읽기엔 제 시간이 너무 없기 때문이죠,,,하지만 가끔 턴님의 사진들을 보러 오는데,,,올라오는 님의 포스팅이 너무 없고 사진도 보러 오랫만에 왔더니,,,,;;;;

turnleft 2010-02-09 05:09   좋아요 0 | URL
뭐, 외부로 드러내지 않겠다는 것 뿐이지, 즐찾 분들한테는 이전과 별 차이 없을겁니다. 요즘 글을 안 올리는건 그냥 다른 일로 바빠서.. ^^;

2010-02-09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10 0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10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