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래서 이슈에 대해 글을 쓰기 싫어합니다. 제 두뇌회전의 몇십 %가 계속 이 문제에 사용되고 있네요. 아주 피곤합니다 ㅠ_ㅠ 게다가 키조작 잘못으로 쓰던 글의 절반이 날아가는 사고(?)까지 겪다보니, 짜증 지수까지 하늘을 찌르네요;;
그래도 일단 돌맹이 하나 던진 죄가 있으니, 글들을 다시 꼼꼼히 읽고, 다른 입장에서도 살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저는 김종호씨의 해고와 관련하여 알라딘의 책임을 묻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만, 이미 불매운동이라는 사태(?)는 원래의 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보다 한편으로는 포괄적이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다른 각도에서 구체적인 지점을 지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에 따라 몇 가지 판단의 변화가 생겨서 다시 글을 남깁니다.
1. 김종호 씨의 해고와 불매운동의 관계
여전히 저는 이 둘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볼빨간 님께서는 알라딘에서 일하던 누군가가 해고를 당했다는 것만으로 더 이상 무슨 이유가 필요하냐고 말씀하고 계십니다만, 그렇게 단순화 하기엔 문제가 훨씬 복잡한 것 같네요. 볼빨간 님께서 전제하시는 바는 비정규직은 "악"이므로 그 "악"으로부터 파생된 모든 문제는 투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겠는데, 문제는 그 "악"이 너무 거대한 것이어서 우리 삶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직접적으로는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컨데, 우리는 화석연료의 사용이 지구를 갉아먹는 "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화석연료 없이 살아갈 수는 없지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점진적으로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고 다른 대체연료 개발을 위한 투자를 활성화하는 것 뿐이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어떤 기업이 화석연료를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불매운동을 하자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만약 그 기업이 다른 기업보다 유난히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던가, 여타 편법으로 몰래 탄소를 배출하고 있었다면 응당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지만요.
김종호씨의 해고와 관련하여 개별 사안에 대한 정보는 부족하다는 것도 바로 이 부분에 대한 지적입니다. 현재까지 드러난 바로는 알라딘이 김종호씨의 해고와 관련 특별히 부당한 행위를 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기 위해 2년이 지나기 전에 서둘러 해고한 것도 아니고, 아니면 다른 사적인 감정을 배출하기 위해 특정인을 해고했다는 정황도 없습니다. 왜 하필이면 김종호씨였냐 라는 질문에는 단기 채용(이 부분은 뒤에 다시 의문을 제기하겠습니다) 과정에서 발생한 해프닝이라고 밖에 답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해고는 가슴 아픈 일입니다만, 우리가 비정규직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는 이상, 해고 역시 현실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지요. 그것은 한국사회, 더 나아가 자본주의 일반의 문제이지, 우리가 특정 기업(알라딘)을 불매해야 한다는 근거가 되기 어렵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2. 비정규직과 알라딘의 관계
하지만 이번 사태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알라딘 역시 비정규직이라는 한국 사회의 현안에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물론 알라딘의 입장은 비정규직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노력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립서비스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러한 노력이 있었는지/앞으로 있을 것인지는 잘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알라딘이 비정규직을 자신들의 유통 과정에 활용하는 이상, 알라딘의 어떠한 상황 변화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활을 지극히 불안정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만은 분명한 현실입니다.
사실, 그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인 책임도 있습니다. 곰곰히 글을 읽다 보니, 알라딘이 이번 사태에 대한 변명으로 사용하는 단기 채용이라는 표현이 굉장히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알라딘은 인트잡을 통해 인력을 채용하는데, 단기 채용이 사실이라고 한다더라도 거기엔 두 가지 방식이 가능합니다. 1)개별 인력을 언제부터 언제까지 쓰겠다고 계약, 2)개별 인력이 아니라 전체 인력 몇 명을 언제부터 언제까지 쓰겠다는 계약. 제가 별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1번의 경우입니다. 그런데, 2번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예컨데, 알라딘은 인트잡과 평소에는 50명 규모의 인력만을 쓰는데, 성수기에는 한달 간 60명 규모의 인력을 쓰겠다 라고 계약을 하는거지요. 단기 채용이라고 해서 그냥 모호하게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보통 하도급 계약 방식을 봤을 때, 후자의 방식으로 계약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큰 것 같네요.
이 경우, 형식적으로야 알라딘에서는 성수기 동안만 10명을 추가 채용했을 뿐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글쎄요 상황이 별로 그렇게 흘러가진 않을 것 같군요. 인트잡 쪽에서는 장기/단기 구분 없이 무작정 사람을 뽑고 그 때 그 때 불필요한 인력은 해고를 하거나, (상황이 좋을 때는) 다른 계약 쪽으로 돌리는 편이 훨씬 간편할 겁니다. (김종호 씨 주장에서 드러나는 정황 증거는 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비수기 감원을 이유로 단기 계약한 사람이 아니라,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쳐 낼 수 있을테니까요. 만약 이런 계약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면, 매년 성수기가 지날 때마다 알라딘에서 일하는 비정규직들은 고용 상황에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아무리 비정규직과 해고가 한 몸이라고 해도, 해고가 이루어질 상황을 알라딘이 상시적으로 만들어 낸다면 그것은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앞서 화석연료의 예를 든 것처럼 우리는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누군가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계속 비정규직을 쓰라는 뜻은 결코 아니겠지요. 비정규직을 쓰더라도 그들의 삶이 알라딘의 사소한 변덕에 흔들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그리고 장기적으로 비정규직 자체를 지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뜻에 더 가깝습니다. 특히 알라딘처럼, 혹은 알라딘 사장처럼 진보적 가치를 기업 활동의 한 축으로 활용해 왔던 경우라면 그러한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 더더욱 과도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3. 알라딘 서재마을과 알라딘의 관계
이 지점에서 비정규직 일반의 문제로 확장되었던 이슈는 보다 구체적인 논점, 알라딘을 이용하는 사람(이후 알라디너로 통칭합니다)이 알라딘에게 그런 요구를 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논점으로 넘어옵니다. 물론 굳이 알라디너가 아니더라도, 참여의식을 지닌 시민 누구라도 특정 기업의 문제점을 시정하도록 요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묻는 것은 알라딘이라는 기업에 "평균 이하"의 문제점이 아닌 "평균 이상"의 가치를 요구할 수 있냐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불매운동의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겠지요.
예상하시겠지만, 제 대답은 당연히 YES 입니다. 왜냐면 알라디너의 서재활동은 알라딘의 기업활동과 공생관계였기 때문입니다. 알라딘은 알라디너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이념을 서로 엮어내고 공론화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고, 그로부터 쉽게 가치를 따질 수 없을만큼의 큰 홍보 효과를 얻어내 왔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공간이 알라디너들이 풀어내는 가치를 담보할 수 없다면 이 공생관계는 틀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진보적 지식인이 조중동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그러니, 그 공생관계가 틀어지기 전에 그 둘 사이에 조정 작업이 벌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알라딘의 대응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 세력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알라디너 사이에서 불매라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의 사안이면 보다 직접적인 대응을 보여주었어야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침묵과 비공식적인 답변으로만 일관하고 있다는 생각을 피할 수가 없군요. 불매에 동의하고 말고를 떠나서, 이것은 제가 생각하는 알라딘과 알라디너의 관계 근간을 허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껏해야 적립금으로나 유지되는 공생관계라면 책 리뷰 말고는 올릴 필요가 없겠지요.
하여, 저는 (제 개인적으로) 사태의 초점을 불매 여부에서 알라디너로서의 연대로 옮기려 합니다. 저는 여전히 불매의 원래 목적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알라딘이 알라디너들의 질문에 성의 있는 답변을 보일 때까지 구매와 함께 리뷰 활동도 중단하겠습니다. 구매는 원래 하는게 없었으니 새삼스러울게 없고, 적어도 책을 사라는 권유라고 할 수 있는 리뷰는 중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잡문으로 알라디너와의 소통은 계속할 예정입니다.
별로 어렵지도 않은 일인데, 알라딘은 왜 이리 질질 끄는지 모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