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를 말하진 않았어도 전해지는 것들이
우리에게는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녹음 중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때만큼은 따라 부르는 것을 하지 않았다. 그저 듣기만 했다. "동그랗게 동그랗게"를 부를 때부터 엄마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울먹이면서 끝까지 불렀다. 저절로 엄마의 울먹임까지 녹음이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엄마의 흔적들이 불현듯 발견되는 것이 버거웠던 어느 날, 이 녹음 파일이 있다는 걸 기억해내어 찾아서 들었다. 비가 왔던 날이어서 와이퍼 소리에다 깜빡이 소리까지 배경음으로 흘러나왔다. "동그랗게"라는 노랫말이 나오기 직전에 나는 스톱 버튼을 눌렀다. 아주 나중에 다시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 모인 글들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꼈던 시간 속에서 썼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하여 한자리에 오래 웅크려 있었다. 자주 지쳤고 쉽게 엉망이 되었다. 그래도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들을 열렬히 지키고 싶어 했다. 균형을 찾기 위해 자주 어금니를 깨물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은 이를 악물고 가장 열심히 산 시간이라는 것을, 여기 모인 글들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피로한 얼굴로 잠이 들지만 화창한 아침을 맞이하게 되는 일처럼. 오직 화창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소외감이 느껴지는 날도 있고, 오직 화창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함이 생기는 날도 있는 것처럼. 돌아보면, 잘 지나왔구나 싶어 조금 기쁘기도 하다.

이런 유의 덧없는 기쁨이 누군가의 뒷모습에 잘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이 책이 부디 누군가를 뒤에서 안아주는 인기척이 되면 좋겠다.

나는 엄마를 오래 싫어했다. 엄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를 착취하는 사람이었고, 오빠보다 뒤에 서 있기를 지나치게 종용해온 억압의 주체였다.

나는 자랑스러운 딸이어야 하되 오빠보다 더 자랑스러우면 안 되었다.

엄마는 평생 동안 미안함과 미안할 것까지는 없음을 왕복하며 나를 대했다. 그걸 나에게 굳이 다 말하고 굳이 다 이해받으려 했다.

엄마의 고백들을 나는 주로 농담으로 웃어넘겼고, 아주 드물게는 적나라하게 분노를 표출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아주 징그러운 것을 쳐다보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엄마를 싫어하지 않게 됐다. 화해를 한 것도 아니고, 용서를 한 것도 아닌 채로 저절로 그렇게 됐다. 알츠하이머를 앓기 시작하면서 엄마는 누군가의 엄마로 살았던 시간들을 거의 다 망각해버렸다.

오빠는 25년 전에 죽고 없는데 엄마의 기억 속에서만큼은 기특하고 온순하게 잘 살아 있었다.

두 딸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감정마저 외면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미안함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했고, 소중한 기억을 공유한 적이 너무 없어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엄마는 엄마를 끝낸 사람처럼 존재하고 있는데, 나 혼자 엄마를 엄마로 기억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였다.

TV 리모컨이 말을 듣지 않는다거나 전기밥솥 작동법을 갑자기 잊어버렸다거나, 지갑이나 통장, 주민등록증 같은 것을 어디 두었는지 도무지 찾을 수 없다든가 하는,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혼자 있고 싶어 했다.

엄마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다 위아래로 훑어보곤 했다. 그 순간을 나는 가장 싫어했다. 그 눈빛 앞에 있기만 해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내가 숨기는 것들이 엄마에게 보일까봐, 바깥에서 내가 만난 사람과 보낸 시간과 해본 경험들이 엄마에게 읽힐까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엄마가 다 알아버릴까봐, 엄마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들킬까봐 싫었다.

엄마 덕분에 나는 엄마를 제외한 다른 이들과는 충분히 단절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기에 더없이 유리했던 이 핑계가 이제 사라져버렸다.

이제 나는 엄마를 위해서는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도 된다.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된다. 초조함을 안고 엄마를 향해 달려가지 않아도 된다. 기나긴 돌봄노동이 끝났다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홀가분해져서 엄마에 대한 원망을 모두 잊게 된 것일까.

자신의 생년월일도 집 주소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마흔 살 이후의 자신의 삶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예전에 부르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게 거짓말처럼 아름다웠다.

무능했지만 무해했던 아빠와 자주 비교했다. 같은 무능이었어도 엄마의 무능은 유해했다고 확신했다.

작은 것일지라도 그걸 잃지 않기 위해서는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늘상 주먹을 꽉 쥐며 생각해왔다.

면회를 가면 엄마는 유리 벽 너머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엄마는 울기 시작했다. 내가 최선을 다해 웃고 농담하면 그제야 울음을 지우고 웃었다. 엄마는 엄마를 끝내고 나의 자식이 되어 유리 벽 너머에 앉아 있었다.

과일을 먹을 때 과도를 드는 일을 좋아한다. 특히 멜론이나 망고를 한입에 먹기 좋게 자르는 일을 좋아한다. 과즙이 흠뻑 묻는 두 손도 좋고, 과도가 부드럽게 들어가는 느낌 또한 좋다. 접시에 담아놓고서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보며 하나씩 하나씩 먹어치우는 시간이 좋다. 과일 한 조각을 입에 넣고 달콤한 과즙이 퍼지는 입안의 공간을 느끼는 게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젓가락을 쓸 때에는 손에게 쾌락을 주는 느낌이라면, 숟가락을 쓸 때에는 크게 벌린 입에게 쾌락을 주는 느낌이 든다.

놀이가 비중이 높은 날은 어째서 많이 걷고 많이 서 있어도 피곤이 다디단지. 김밥 같은 걸 만들고 난 날은 설거짓거리가 수북하게 쌓여도 어찌하여 즐겁기만 한지. 접시에 수북하게 담아 입을 크게 벌리고 입에 넣는 순간.

아빠에겐 아빠만의 은숟가락이 있었고 아빠만의 밥그릇과 국그릇이 있었다. 엄마와 우리들은 스테인리스 재질의 숟가락, 대나무로 만든 숟가락 등을 마구잡이로 사용했다. 주인이 따로 있지 않고 짝도 맞지 않는 식기들을 나머지 식구들은 공유했다.

어느 여름날에 엄마가 나를 불러 아빠의 숟가락을 보여주었다. 엄마가 혼수로 장만해 와서,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빠의 손에 들려 밥을 담당했던 유일한 숟가락. 아버지의 유품을 미리 챙기듯, 나는 그걸 받아 내가 좋아하는 목재 오르골 옆에 두고 자주 쳐다보았다. 아빠에게 정식으로 물려받은 물건이 한평생 아빠의 입속을 드나들던 구멍 난 숟가락이란 것이 좋았다.

가족들 중 그 누구도 아빠에게 새 숟가락을 선물할 생각을 안 했다는 것이다. 새 숟가락과 더불어 새 인생을 시작하기엔 늦었다는 사실을 묵묵히 받아들인 채로, 그제야 여느 식구처럼 아무 숟가락으로 식사를 하며 아빠는 여생을 보냈다.

너무 많이 늙어버린 엄마와 함께 늙어가고 있는 큰딸은 서로를 너무 가엾게만 여겼지만, 내가 만든 음식을 엄마가 먹던, 그렇게 관계가 뒤바뀌는 시간이 우리에게 왔던 것이 새삼스러워서 나는 입을 채 다물지 못한 채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막으려는 마음으로는 하려는 마음이 행사하는 힘을 결코 막을 수 없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힘센 오빠를 밀치고 나는 거울을 보았다. 누더기 머리 꼴을 한 아이가 거울 속에 있었다. 이 사태가 나에겐 큰 기회라는 것을 나는 동물적으로 알아차렸다. 더 억울하게, 더 서럽게, 꺼이꺼이 목 놓아 울면서 쪽마루에 걸터앉아 엄마를 기다렸다.

할머니를 꿈에서 보면 나에게 좋은 일이 있다. 실제로 무슨 대단한 좋은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고, 내가 그렇게 여기기로 마음을 먹었다.

윤단비 감독의 영화 <남매의 여름밤>에서, 마당의 식물들에게 물을 주는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하고 동주가 부르면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었다. 두 사람이 잠깐 마주 보고 웃는 장면을 보는데 옆집에 사는 가족을 담 너머 훔쳐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장면을 영화 속에 넣어야 했던 감독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이런 방식으로 이해라는 것이 나에게 올 때, 나 자신을 조금쯤 더 아끼게 된다.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았다는 기억은 선연하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내가 든든해하는 것은 할머니라는 존재가 아니라 나의 기억일 수도 있겠다 싶다. 할머니의 이름이라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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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발한 벚꽃나무 숲속의 비밀은
지금껏 아무도 모릅니다.
어쩌면 ‘고독’이라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 사카쿠치 안고,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에서》(웅진닷컴) 중에서

교토를 사계절 동안 즐기는 교토인들의 이벤트는 여럿 있는데, 봄의 꽃놀이, 여름의 기온마쓰리와 불꽃놀이, 가을의 단풍, 겨울의 추위 등이다. (계절별 보기 중에서 어느 하나가 이상해 보인다면 그것은 당신의 기분 탓이다.) 그중 내가 가장 여러 번 참여한 것이 바로 꽃놀이다.

교토에 꽃이 없는 계절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5월쯤 되면 마루야마 공원에 겹벚꽃이 지천이다.

일본에서는 3월쯤 벚꽃의 개화 시기를 알려주는 벚꽃 지도가 뉴스를 통해 공개되는데, 이 지도를 믿었다가 낭패를 본 일이 적지 않다.

갑자기 날씨가 더워지면 일찍 만개해버리고, 비가 한번 내리면 순식간에 지며, 춥고 더운 날씨가 반복되면 이파리와 꽃이 동시에 돋아 어수선하다. (이것 역시 인간의 관점에서 하는 어리석은 말일 뿐이겠으나, 기대와 다른 광경에 마음이 에는 걸 막을 순 없다.)

료안지로 말하자면 들어서는 초입부터 넓은 연못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특히 벚꽃철의 료안지는 품종과 농담이 각기 다른 분홍의 벚나무가 장관을 이루어낸다. 봄볕에 어울리는 분홍 하늘 아래 서는 꿈 같은 경험도 할 수 있다.

일본 정원의 작정 철학은 자연을 인공적으로 조성하는 데 있다. 나무를 둥글게 깎아 모양을 다듬거나 뒷배경을 차단해 정원을 좀 더 통제 안에 둔다. 키 큰 나무들을 병풍처럼 둘러 세우는 경우도 많다. 한편 중국은 자연에 근본을 두되 자연보다 나은 형태를 만들고자高于自然 하고, 한국은 담양 소쇄원처럼 지형을 살려 정원을 조성하고 건물을 올린다. 이것을 인지제의因地制宜라고 한다.

다소간의 이끼는 있으나 물을 쓰지 않는 가레산스이. 하지만 물길처럼 보이도록 자갈밭 모양이 잡혀 있어, 크고 작은 돌들이 전부 섬처럼 보이는 가레산스이. 이것은 ‘바다’다.

어디서 보아도 자갈 정원에 놓인 열다섯 개의 돌을 한 번에 볼 수는 없다. (어떤 지점에 서도 안 보이는 돌이 반드시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가레산스이는 더 신비롭다. 깨달은 자만이 열다섯 개의 돌을 전부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깨닫지 못한 인간임을 스스로 잘 알아 굳이 열다섯 개의 돌을 한눈에 보고자 애쓴 적이 없다.

하지만 갈 때마다 돌이 전부 보이는 위치를 찾아보려고 요란하게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람들을 항상 발견하기 마련. 이봐, 그러지 않아야 깨닫는 거라고. 열다섯 개의 돌을 한 번에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올해도 살아서
벚꽃을 보고 있습니다.
사람은 한평생
몇 번이나 벚꽃을 볼까요.
─ 이바라기 노리코, 《처음 가는 마을》(봄날의책) 중에서

언제나 이 봄, 이 여름, 이 가을, 이 겨울은 마지막일 수 있다. 옆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여름방학이 끝날 때, "여름방학이 얼른 다시 오면 좋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내게 "그래도 이 여름방학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에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안다. 그 말을 한 아버지는 이제 세상에 없다. 한번 지나간 여름방학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벚꽃을 보러 꼭 교토에 갈 필요는 없다. 일본 어딜 가도, 그 동네만의 벚꽃 명소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요시노에 사쿠라가 만개했습니다"라는 문장이 있을 정도다. 두말이 필요 없다. ‘요시노에 사쿠라가 만개했다.’ 그것 말고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명승지만큼이나 많은 사슴으로도 유명한 나라 지역 최고의 여행서는 언제나 온다 리쿠의 손끝에서 나온다. 이야기는 나라의 구석구석을 돌며 신비로움을 더한다. 벚꽃 만발한 산속 작은 절에서 일어나는 오싹하고도 신비로운 기적 같은 일, 판타지가 이루어질 것 같은 스펙타클이 요시노산에 있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기에 이만큼 어울리는 곳은 또 없으리라. 즉, 온다 리쿠가 표현하는 노스탤지어는 실재하는 곳에서 시작해 실존하지 않는 것들을 불러내는 것으로 완성된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요시노산에서라면, ‘그러한’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운 사람을 만날 것 같은 곳이다….

히데요시는 "이처럼 아름다운 벚꽃은 몇 년이고 봄이 돌아와도 질리지 않을 것이다. 나의 영화도 이 벚꽃의 아름다움처럼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두 달 뒤 히데요시는 병으로 사망했다.

장마철에는 여행을 피하는 편이다. 신발 신기가 영 쉽지 않아서. 운동화는 금방 젖고, 샌들은 신고 다니다 감기로 몇 번 고생한 터라 그렇게 됐다. 그러다가 장마철에도 여행을 다닐 만하다고 생각하게 된 연유는 수국 보는 즐거움에 눈을 뜬 데 있다.

6월의 교토에 있다면 가야 할 곳이 있으니, 바로 미무로토지三室?寺다.

미무로토지는 한 해의 반 이상이 꽃으로 그득하다. 먼저 이른 봄에는 철쭉이 언덕 가득 피어난다. 4~5월에는 석남화가 1천 그루, 5월에는 다른 종의 철쭉이 2만 그루 가득 핀다. 계절이 바뀌는 6월에는 수국 1만 그루가 차례로 만개해 ‘초여름의 정원’이라 할 만한 라인업을 자랑한다. 6월 말에서 7월 중이라면 미무로토지에서 연꽃이 피기 시작해 여름의 끝인 7월부터 8월까지 본당 앞에 백 종류가 넘는 연꽃이 개화한다.

수국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운동화 속 퉁퉁 부은 발가락을 꼼지락거린다. 언젠가 젖은 발을 방치해서 감기에 걸린 적이 있다. 감기에 걸려도 앓고 말지 뭐! 하고 호언장담하던 때의 내가 있었는데, 이제는 스쳐가는 바람에도 옷깃을 여미며 귀가를 서두른다. 장마철의 즐거움에는 리스크가 있다. 개도 안 걸리는 여름 감기라는.

남의 아이는 예쁘다. 저렇게 부드러운 뺨을 가진 아이는 어른이 되어 연애 상대를 괴롭히는 존재가 되고, 배우자를 못살게 구는 사람이 된다. 혹은 혼자가 제일 좋은 어른이 될지도 모른다. 어느 쪽의 인간이 되든, 모든 게 바른 자리에 놓여 있는 것 같은 날에는, 젖은 운동화를 신고 걷는 일조차 ‘아주 좋다’ 싶어지는 것이다. 내리는 이 비가 아주 좋다고 말한 날이 있음을 나중에 꼭 기억해야지.

교토에는 아직
푸르른 녹음이
무성했는데
단풍이 지는구나
시라카와 관문
─ 미나모토 요리마사

입구에서부터 이미 사진 찍는 사람들로 만원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다시 나가고 싶지 않게 되는 에이칸도.

있었다.
수이메이水明, 즉 맑은 물이 햇빛에 비쳐 뚜렷이 보인다는 교토는 물이 좋고 풍부해서 두부로 유명하다. 난젠지 앞에는 그 유명한 두부 요릿집 준세이順正가 있는데, 두부만큼이나 정원이 기억에 남는 곳이다. 식사를 마치고 정원 구경을 하는 일이 큰 즐거움이다. 비라도 오는 날엔 정원을 보고 영영 앉아 있고 싶을 정도다.

언젠가 교토에 사는 주부에게 ‘일본에서는 생두부도 많이 먹더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일본에는 생두부라는 개념 자체가 없단다. 두부 자체를 이미 요리한 음식으로 보기 때문이다. 두부를 따로 조리하지 않고 그냥 먹는다 해도 달게 해서 디저트로 먹는 중국식 안닌도후나 데워 먹는 유도후처럼 그냥 조리법의 하나일 뿐이다.

기요미즈데라도 고다이지처럼 소중한 것을 안쪽 깊숙이 품고 있다. 표를 내기 전까지는 그 유명한 부타이舞台를 전혀 볼 수 없는 구조다.

세 갈래로 나뉘어 떨어지는 물줄기는 각각 장수, 사랑, 학업 운을 상승시킨다고 하는데, 일본인들도 왼쪽부터인지 오른쪽부터인지 헷갈려서 결국은 세 줄기 물을 전부 조금씩 받아 마시게 된다고 한다. (세 물줄기를 전부 탐내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그러면 효험이 없다는 도시전설도 들은 적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다.)

여학생들이 할 때면, 친구들이 곁에서 "오른쪽! 왼쪽!" 하면서 도와주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렇게 친구의 도움을 받아 다른 돌까지 가는 데 성공하면, 그 연애가 친구의 도움으로 성공한다는 전설도 있는 모양이다. 남학생들이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지만, 남학생들은 친구가 다른 돌까지 못 가도록 일부러 엉뚱한 방향을 알려주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아아, 할 수만 있다면 아르바이트 삼아 좌판을 깔고 연애운 부적이라도 팔고 싶다. 여기는 그런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까.

나는 애인을 생각했다. 지슈진자에서 뽑았으니까 당연히 기다리는 사람=애인. 하지만 그날 마치비토 항목에는 재미있고 처량하고 웃기게도 "늦지만, 온다"라고 적혀 있었다. 죽기 전에 오기는 하는 건지…? 사람 말고 돈도 받을 생각 있는데. 일곱 자릿수는 되어야 해.

오미쿠지를 뽑은 뒤 어떻게 해야 하는지 헷갈리는 이들을 위한 가이드. 한 번 뽑고 안 좋은 괘가 나오면 묶고, 좋은 괘가 나오면 가져오면 된다. 그리고 좋은 괘가 나올 때까지 절을 옮겨가며 뽑으면 된다. 좋은 운도 만드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거기에는 돈이 든다. 그러니 오미쿠지가 절로서는 쏠쏠한 수입원이 되는 셈.

고요했다. 바람도 없고 나무도 흔들리지 않고,
그림 앞에 있는 것 같았다.
─ 마스다 미리, 《영원한 외출》(이봄) 중에서

머무는 내내 나는 입을 떼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매일 저녁 숙소에서 목욕할 때 목욕 시간을 체크하는 종업원 아주머니의 부름에 대꾸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계기는 기억도 나지 않는데) 셋이 부엌에 둘러앉아 술을 한잔하게 되었고, 그간 두 사람이 나를 ‘조용한 이씨’라고 불렀음을 알게 되었다. 조용한 이씨…. 공포영화에 나오는 산장 주인 같지 않은가? 마음에 든다.

여기서 잠깐. 당신이 어느 절을 갔는데, ‘특별 배관’이라는 네 글자를 맞닥뜨렸다면 운이 좋은 날이다. ‘배관’은 사찰이나 궁, 보물 등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관람한다는 의미이다. 그 앞에 ‘특별’이 붙었으니 플러스알파가 있다는 뜻이다. 즉, 통상 문을 열지 않는 귀한 장소나 시간에 관람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리는 말이다. 벚꽃 철이나 단풍철에 라이트업을 하는 절에는 저렇게 ‘특별 배관’ 안내가 붙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특별 공개’도 당연히 같은 뜻이다.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 다들 마음에 담으려고 하염없이 정원을 응시하며 소리를 죽인다. 사진을 찍으며 무엇을 놓쳐왔는지, 사진 촬영이 금지된 낙원에서 실감한다.

하누키 씨가 취기에 몸을 맡긴 채 히구치 씨의 등에 업혀 조용히 있자 사람들은 그녀를 ‘잠든 사자’라고 불렀습니다. 그 하누키 씨가 갑자기 눈을 뜨더니 다른 사람의 맥주를 "네 것도 내 것"이라며 마구 마셔대고, "본토초 최고"라고 외치며 내 뺨을 핥았습니다. 눈을 뜬 사자는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 모리미 도미히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작가정신) 중에서

나는 저녁 식사를 하면서 맥주 한 잔을 곁들이거나 숙소에서 맥주 한 캔을 마시는 것 이외에 술을 마시러 어딜 찾아다니는 인간형은 아니게 되었다. 원래는 그랬지만 이제는 아니다. 술자리를 즐기지 않게 된 지 오래기 때문에 모리미 도미히코의 책을 읽을 때면, 교토의 밤에 대한 부분들이 다소 혼란스럽다고 생각했을 뿐, 크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와 더불어 모리미 도미히코의 기묘한 청춘 모험담을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이야기로, 작가의 능청스런 수다가 곳곳에서 웃음을 자아낸다. 무슨 뜻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 책 제목은 이야기 속 술꾼이 아가씨에게 해주는 충고인데, 그 말처럼 아가씨는 참으로 부단히 발을 놀리고 청년은 참으로 부단히 허탕을 친다.

이 책을 보면, 1년 정도 교토에 살면서 밤의 골목길을 쏘다니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교토가 이렇게 판타지와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나…. 놀라운 일이지만, 그렇다.

간사이 공항에서 출발해 교토 시내에 도착하니 때는 이미 밤. 식사를 위해 내가 사랑하는 식당 소바도코로 오카루そば?おかる로 향했다. 기온 뒷골목에 위치한 이곳은 뭐랄까, 내가 교토에 가는 이유 그 자체라고 할 정도로 좋아하는 곳이다.

생선 등으로 차린 가정식 요리인 오반자이 집에 들어가서 굉음 없이 술 한두 잔 기울이는 일도 가능하지만, 그날은 ‘걸어서 지나가기’라는 미션 자체의 난이도가 높았다.

낮의 오카루와 밤의 오카루, 낮의 본토초와 밤의 본토초. 생각해보면 다른 얼굴이 아닌데 전혀 같아 보이지 않는다.

더우나 추우나 가모가와 강변에 바보들처럼 나란히 앉은 연인들을 바라보면서, 아아, 정말 짜증 나는 풍경이구나 하고 생각했었지. 그런 것들은 물대포로 싹 쓸어버리면 좋겠다 싶었어. 하지만 아니었어. 실은 부러웠거든. 나도 언젠가 저 속에 섞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거야.
─ 마키베 마나부, 《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노블마인) 중에서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참 다들 다르다고 생각했었다. 인간은 다 다르다고. 우리는 그저 교복을 입고 있어서 비슷해 보일 뿐이라고. 서른을 넘기고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이 참 다 비슷하구나 생각하게 된다. 말만 앞서고 행동이 안 따르는 사람, 사랑에 빠지기를 즐기고 그 외의 사정은 잘 돌보지 않는 사람, 나이 들수록 나이 어린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 착한 척 하지만 욕망이 너무 커서 늘 휘청거리는 사람.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
오랑쥬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시름.

수박 냄새 같은 건 아침이든 저녁이든 물바람에 묻어 있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 가모가와니까.

낮에는 이렇지 않다. 낮에는 단추를 주웠는데 어쩌지 못하고 소맷부리에 넣는 심정이 되지 않는다.

조명 자체가 적당히 낮은 조도를 유지한 밤의 기온 뒷골목을 걷다 보면, 정말 달밤에 단추를 줍는 기분이 든다. 단추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나 자신에 대한 애틋함을 느끼는 것은 이런 밤의 시간에나 잠깐 허용될 뿐이다. 해가 뜨면 그런 감정은 소맷부리에 집어넣는다. 누군가는 버리는 것이지만 나는 버릴 수 없다. 나는 나를 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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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새로 산 일기장, 지금이 고비. 오늘 꼭 쓰세요. 벌써 잊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오늘을 넘기면 백지로 남은 일기장이 1년 동안 스트레스가 됩니다.

업주측에서건 손님측에서건 사람을 강제로 무릎 꿇리거나 90도 절을 하게 하는 등, 인간성 자체를 비굴하게 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하도록 법을 만들어야 한다. 법의 이름이 뭐가 되든.

인간이 어떤 경우에도 그 위엄을 잃지 않고 살 수 있게 하는 일, 그것도 국가가 먼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다. 왕조 시대에, 선비를 욕보여선 안 된다는 말이 있었다. 민주 시대에는 모든 시민이 그 선비에 해당한다.

새해에는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가 그 새해를 설날로 미루는 사람은 결심씩이나 하지 말고 그냥 이대로 사는 게 좋다.

평생 처음으로 담배를 피우지 않고 글 한 꼭지를 썼다. 200자 원고지 20매니 길지 않은 글이지만, 힘들었다. 이 나이에 증오에서 원기를 얻어 일을 해야 하니, 서글프다.

‘문전배달’이라고 써 붙인 차가 지나갔다. 데이트하던 여자가 남자에게 : "전문배달을 잘못 썼나봐." 남자의 대답 : "그러게." 익숙하게 쓰던 단어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도 비극적인 일이다. 문전박대, 문전걸식의 박대와 걸식은 사라지지 않았는데.

내가 모신 선생님 중 한 분은 젊었을 때 권투 선수였다. 수업중 학생에게 뭘 시켰는데 입을 다물고 있으면, "죽기 전에 해!"라고 말했다. "안 하면 너 죽는 수가 있다"는 뜻과 "너 그러고 있으면 죽을 때까지 못한다"는 또다른 뜻이 있었던 것 같다.

금연 나흘째, 내가 담배 피우는 상이 자주 어른거린다. 아무때나 졸음이 온다. 아직은 견딜 만하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을 좀 흥취 있게 ‘이름 좋은 하늘타리 빛 좋은 개살구’라고도 한다. 하늘타리는 맛없는 야생 수박, 개수박이라고도 한다. 요즘 생약 같은 것을 파는 사람들이 이를 하늘수박이라 부르는데, 하늘타리와 개수박을 조합한 말일 게다.

‘문화’는 제 땅을 벗어나는 순간 보편성의 시험을 거치기 마련이다.

우리가 아랍 문화와 대면할 때, 우리의 시각이 알게 모르게 서구화되어 있다는 자의식이 우리를 주저하게 하고 당황하게 한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랍 문화 내부에서 만든 여러 편의 영화이다. 나는 그 서사의 성찰을 믿는다.

책을 손에 들기는 했지만 읽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우리에게 그 용기를 숙제로 내주고 갔을 것이다.

젊은 날에 다른 사람은 모두 단단하고 투명한데 자기만 불투명하고 뒤죽박죽인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인간은 살아 움직이고 생각하고 실천하거나 못하며 애쓰는 존재들인데 누가 투명할 수 있겠는가. 나를 고정해서 바라보려는 시선을 오히려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팀 아이텔의 그림에는 뒷모습이 많다. 뒷모습은 서부의 총잡이들에게만 무방비 상태인 것은 아니다. 얼굴로는 온갖 표정을 써서 나를 표현하거나 감출 수 있지만, 내 뒷모습은 나를 감추지도 표현하지도 못한다. 뒷모습으로 내가 타인처럼 드러난다.

해방 전에 한국인이 미국행 여객선을 탔다. 승객 식탁마다 출신국 국기를 꽂는데, 선장이 한국인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백기를 꽂아주었다. 어릴 때 이런 글을 읽고 울었다. 이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났다. 그래서 나라가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때도 있었다.

어렸을 때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더라면 나도 IS 같은 데를 찾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IS를 찾아간 김군이 페미니스트들을 싫어한다고 했다는데, 그건 여자들이 자기를 좋아해주지 않는다는 개인적 원한을 이데올로기 형태로 바꾼 것일 뿐이다. 성폭행 앞에 ‘거룩한’이란 말을 덧붙이고 싶은 것. 좌절된 에로스는 자주 파괴의 욕망이 된다.

오늘 금연 열하루째, 원고지 10매짜리 글 한 꼭지를 썼다. 잠자리에 들어간다만 내일은 또 어찌하리.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을 읽고 기분이 나쁜 것은 나와 의견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엉성하고 못 쓴 글이기 때문이다. 나쁜 나라에서는 젊은이들이 나쁜 일에 동원된다. 나쁜 글쟁이에게서는 우리말이 나쁜 글에 동원된다.

한자 혼용 문제가 나오면 영어는 라틴어를 혼용하지 않는다는 식의 말을 당당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자는 글자고 라틴어는 언어가 아닌가. 글자 그 자체로만 말하자면 영어 알파벳이 바로 라틴 문자다. 한자를 라틴 문자와 비교하자면 영어는 한자 전용과 같다.

여성 혐오는 어머니 증오로부터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어머니는 아들을 사회로부터 보호해주는 사람이지만, 사회의 요청을 아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아들은 사회는 보지 못하고 어머니만 본다. 더구나 심약한 아들은 사회보다 어머니가 더 만만하다.

이 아들이 나중에 폭력 가장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또한 인종주의자가 되고 차별주의자가 된다. 그에게는 늘 복수해야 할 사회를 대신해줄 만만한 상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차별이건 지역 차별이건 비열하지 않은 차별주의자는 없다.

아내가 딸과 대화중에, "남자는 아무리 커도 애다." 그런데 그 애가 바로 나 아닌가. 남자는 제 어머니에게 기대했던 애정을 다른 여자에게도 기대한다. 끝내 애일 수밖에 없다. 이 유아적 사랑 투정이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면 대개 근본주의로 치닫는다.

내가 "남자는 아무리 커도 애"라고 썼던 말을 ‘그러니까 여자들이 돌봐줘야 한다’는 칭얼거림으로 이해한 분도 있군요. 나는 오히려 ‘네가 거대한 명분을 내걸고 실은 애처럼 떼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라’는 뜻으로 한 말인데.

현재 고2부터 대입 면접에서 인성 평가를 한단다. 이게 황우여 아이디언가 본데 곧 인성 학원이 생길 듯하다. 한 가지 더, 인성 깨알수첩도 나올 것이다.

퇴임 전에 오랫동안 논술 고사 출제위원으로 일했다. 학원 과외가 아무 소용없는 문제를 내는 게 늘 목표였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학원을 이길 수는 없었다. 학원은 수많은 젊은 두뇌가 1년 열두 달 생각하고, 출제위원들은 열 명이 한 달 정도 생각한다.

90년대던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족보를 베껴오라고 하고, 가훈을 적어오라고 했다. 가훈이 없는 집은 가훈을 만들어주겠다는 오지랖도 나왔다. 그런 생각을 했던 녀석들이 지금 늙은 뉴라이트들이다.

친정으로 시가로 울며 애 맡기러 다니며 대학원 수업에 들어오던 내 제자들은 전업주부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사물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개인의 감상을 버리고, 객관적으로, 자유롭고 엄정하게 기술하려는 태도를 흔히 산문 정신이라고 부른다. 피천득의 「수필」은 그런 정신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엄정함을 피해 달아나려는 감상 취향을 찬양한다.

"수필의 빛은 비둘깃빛이나 진줏빛이다." 이게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가 아니라면 무슨 소린가.

대입 인성 평가에 대한 질문. 1) 정부가 인성 평가를 하라고 하면 대학이 해야 하는가. 2) 인성이 나쁜 사람은 왜 대학에 가면 안 되는가. 3) 인성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4) 인성 나쁜 사람이 대학에 안 가면 국민 인성이 양호해지는가.

피천득의 「수필」에 대해 좀 심하게 말한 것 같기도. 그게 그냥 개인 수필집에나 들어 있었으면 미적 취향이 약간 후지긴 하지만 그런대로 깔끔한 한 편의 수필이었을 텐데, 교과서에 실려 수필 문학을 규정하고 그 예시가 됨으로써 한국 수필을 망친 것이다.

잠시 먹방을 봤는데 50년 후의 한국 음식은 세계에서 가장 조악한 음식이 될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때 나는 이 세상에 없을 텐데.

난 소박한 음식을 좋아한다. 장국밥, 고등어찌개, 만두, 좀 비싼 걸로는 생선국. 많이 먹는 편은 아니고. 내가 먹는 것보다도 같이 간 사람이 맛있어 하는 걸 좋아한다. 국물에 고춧가루 확 집어넣으면 정말 질색.

보육교사나 택시기사의 처우 개선 중요하다. 돈이 무섭다. 나만 해도 원고료 많이 주는 잡지는 더 힘들여 글 쓴다. 묵은 원고라도 좋은 원고 내주고. 트윗에서 오타 많이 내는 것도 원고료가 없기 때문이다.

과외 수업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난 최악의 학생. 재수생 여학생. 모든 걸 자기 엄마한테 물었다. 내가 숙제를 내주면 숙제를 해야 되는지까지도. 엄마의 판에 박은 대답 : 지 일은 지가 결정해야지 누구한테 묻냐? 학생의 대답 : 엄마가 이렇게 키웠잖아요.

아내가 뒤늦게 『삼국지』를 읽고 있다.
아내 : 관우 장비, 이 사람들 다 어떻게 되는 거야?
나 : 다 죽었어.
아내 : 그런데 왜 현재형이야?

지하철 시는 없애는 게 최상책이다. 바꾸어도 결국 그런 수준의 시가 들어온다. 지하철 기다리면서까지 시를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사람이 혼자 생각할 시간도 있어야지. 1분 1초도 쉬지 말아야 한다는 끔찍한 생각이 거기까지 시를 끌어들였을 것이다.

충무로역에서던가, 너무나 기가 막힌 ‘시’가 있어, 사진을 찍어두려고 폰을 들이댔더니, 옆에서 어떤 학생이 "저건 시도 아닌데"라고 내 귀에 들리게 말했다. 그래서 그게 시가 아닌 것을 확실히 알았다.

이 아무개 선생의 번역에 관한 트윗을 알티한 후 열 명 정도의 팔로워가 언팔을 했다. 비슷한 일을 이미 여러 번 겪은 뒤라 그러려니 하지만,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모여 앉아 목소리를 드높여서 얻게 되는 이익이 무엇일까.

"미국의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학생이 60대 교사를 무차별 폭행했습니다. 휴대전화를 빼앗겼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SBS뉴스가 이런 트윗을 올렸다. 이때 ‘무차별’이란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어떤 단어를 옮긴 것일까.

내가 살면서 제일 황당한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결혼하고 직업을 갖고 애를 낳아 키우면서도, 옛날 보았던 어른들처럼 나는 우람하지도 단단하지도 못하고 늘 허약할 뿐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늙어버렸다. 준비만 하다가.

학교가 모든 걸 다 가르칠 수는 없는데 모든 시간을 다 뺏는 것이 문제.

IS 무장 군인들이 모술 도서관에서 이슬람 신앙 서적 이외의 책을 모두 수거해갔다는 이야기는 고토 겐지의 참수 소식만큼 가슴 아프다. 이런 폭거는 이슬람 세계에 대한 서방의 침탈로 합리화될 수 없다. 세상을 몽매 속에 끌고들어가는 투쟁에 미래가 있겠는가.

토론 수업을 주장하는 사람이 많은데, 중요 저작들이 모두 외국어로 되어 있는 상태에선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열쇠만 있으면 이용할 수 있는 곡식 창고가 옆에 있는데, 토론을 한답시고 마당에서 낟알을 줍겠는가. 토론은 지식 생산의 의지 아래서만 가능하다.

JS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신판이 나왔다기에 알라딘에 들어가는 수고를 무릅썼다. 저자는 늙고 표지만 젊어졌구나.

누이동생에게 며느리가 시부모를 싫어하는 이유를 물어봤더니 시부모가 농촌 무지렁이로 무식하기 때문이라네요.

나는 제자들에게 글을 쓰거나 번역을 할 때, 단어 하나하나를 엄격하고 자유롭게 쓰라고 말한다. ‘엄격하게’는 그 뜻과 용법에 맞게라는 뜻, ‘자유롭게’는 인습적 문맥을 벗어나 새로운 문맥, 새로운 문장 환경에서 그 뜻이 완벽하게 발휘되게라는 뜻.

나는 내가 영락없는 유슬림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기막히게 머리 좋은 여제자들이 애를 낳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이다.

금연 한 달. 금단 현상이 여전히 심하지만,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나라도 무언가 달라진 게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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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들에겐 체면이 중요했다. 재대로 채면을 차리려면 적어도 하인 셋이 있어야 한다. 어머니와 아내가, 간혹 딸이 그 일을 대신했다. 체면 차리기의 마지막 단계는 그 여자들을 대범하고 무심하게 대하는 것이었다.

일곱 살 아이의 버릇을 고친다고 목검으로 100대를 때린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뿌리를 뽑는다, 이것도 어디서 들어본 말 같다.

체육대학 같은 데서 선배가 후배에게 가혹한 기합을 준다면, 그것은 그 대학만의 일이 아니다. 폭력으로 길들여진 그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살 사람들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폭력의 미신을 우리에게 전파한다는 것이다.

교수에게 강의를 듣는 학생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더 좋겠다. 대학에서 강사는 부교수라는 말처럼 호칭이 될 수 없다. 모두 선생이지. 고객이라는 말은 호칭이 될 수 없다. 손님이지.

‘교수’는 현재의 대학 제도가 생기기 전부터 써온 말이라서 호칭으로 가능하다.

비행기에서, 백화점에서, 횡포를 부리는 고객들 이야기를 들으면, 한국의 부자들은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부자다, 나는 발광할 권리가 있다, 고로 나는 행복하다, 이런 확인을 날마다 해야 하다니. 행복이 좀 가만히 내려앉게 두질 못하고.

제 정체성을 돈의 권력으로 구매한다는 것.

모든 여자들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또는 좋아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 같았다.

남녀 간에 성적 호오의 감정이 끼어들지 않은 관계는 드물 것이다. 모자간 부녀간이라고 하더라도. 그러나 그 감정은 인간관계의 한 요소일 뿐이지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다. 착각하기 쉬운 것 가운데 하나다.

학생들에게 노력이 필요한 보고서를 쓰게 하면, 그걸 쓰느라고 읽고 싶은 책을 못 읽는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그 보고서를 끝내고 나서 그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보고서 때문에 집중돼 있던 두뇌가 그 책을 읽고 싶은 욕망을 만든 것. 집중이 재능이다.

전남 해안 지방에서는 겨울에 흑산도 근해에서 잡힌 것만을 홍어라고 하고, 나머지는 모두 가오리로 쳤다.

내일은 신안문화원에 내려간다. 지난번 대설주의보와 풍랑 때문에 연기되었던 강연을 월요일 오전에 하게 되었다. 청중들이 모두 배를 타고 온다니 기차 타고 내려가는 내가 오히려 미안한 생각이 든다. 강연안 3개를 가지고 갈 텐데, 가서 선택해야겠다.

루소는 어느 나이나 다 불행하다고 말했다. 그 나이에 채워지지 않는 욕망 때문에. 그러나 어느 나이에나 욕망이 있다는 것은 어느 나이에나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는 말. 늙어가며 제 나이의 즐거움을 발견하지 못하면 젊은 세대를 욕하게 되는 듯도.

김진이라는 사람이 유신이 왜 나쁘냐고 물었다 한다. 나도 대답을 잘 못하겠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유신 시대에 대해, 경제 발전을 하려고 좀 고생했던 시댄가보다, 이런 식으로 생각지 마십시오. 정말 끔찍한 시대였죠.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시대의 정신 상태에서 가혹한 통치와 나라의 발전을 혼동하는 인간이 많았고, 박정희는 그걸 이용했지요.

인간에게 어려운 일은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이다. 독재 권력 아래에서는 선택과 결정의 고통이 면제된다. 어떤 가혹한 일이라도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사람들은 자기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자진해서 노예가 된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도 드물다.

번역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외국어 독해력과 한국어 작문력, 성실성과 책임감, 주의력 등을 검증해주는 기관이 있었으면 좋겠다. 자격증을 발부하자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게 해주자는 말.

명저를 한국어 번역으로 망쳐놓은 경우가 참 많지만, 두 개만 들라 하면, 바타유의 『에로티즘』과 랑시에르의 『문학의 정치』를 꼽겠다. 이런 경우는 출판사의 데스크에서 걸러내기가 쉽지 않다.

양력설, 음력설이 있던 시절 우리집은 딱 한 번 양력설에 제사를 지낼 뻔했다. 배운 자식들 의견 따라 상을 차리던 어머니가 밖을 보니 달이 떠 있다. ‘상 치워라. 어찌 섣달그믐밤에 달이 뜬단 말이냐.’ 상 치우고, 그후 양력설은 입에도 올리지 못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진짜로 읽은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 트윗을 보고 좀 놀랐다. 문학개론 같은 것을 가르칠 때 꼭 읽게 했던 것이 그것인데. 동시대의 명저들이 하나의 생각을 전해준다면, 고전은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높은 생산성.

"중단과 연속과 해학이 일치하듯이" 꽃이 핀다. 김수영의 말이다.

80년대 초의 방송. 현대 정주영 회장과 주부들의 대담. 산업 전선에서 일하는 가장을 위해 가족들이 협조해야 한다는 정회장의 말에, 한 주부가 질문. 가장과 자식들이 얼굴도 못 보는 이런 삶에 돈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정회장은 이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초등 때, 습자라는 붓글씨 연습 과목이 있었다. 보통 A4용지 크기 습자지를 6등분해서 여섯 글자를 쓴다. 습자 책에 ‘박애자 유평등’이라는 글씨가 있었다. 나는 그게 독립 열사들의 이름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박애 자유 평등.

‘박애’는 프랑스어fraternite의 번역어다. 어떤 사학자가fraternite는frere(형제)에서 온 말이니 ‘형제애’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 오해다. 여기서fraternite는 형제간의 사랑이 아니라, 만인을 형제처럼 사랑하기라는 뜻.

담배 끊기보다 더 쉬운 것은 없다. 나는 열여덟 번을 끊었다.

이 정부더러 누가 무능하다고 하는가. 담뱃세를 2000원이나 인상하고, 담배를 피우지 않을 수 없게 스트레스까지 줄 줄 아는데.

80년대까지 통금이 있었다. 그게 아무 쓸모없는 제도였다는 것은 통금이 없어진 이후 금방 밝혀졌다.

국립국어원이 ‘엔딩 크레딧’을 ‘끝 자막’ 또는 ‘맺음 자막’으로 다듬었다는데, 무언지 모르게 어설프다. ‘끝 자막’이 아니라 ‘끝내기 자막’, ‘맺음 자막’이 아니라 ‘마무리 자막’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딸가닥 소리가 나게 좀 말을 만들어보지.

오늘 날이 참 춥다고 말하는 사람 앞에서, ‘겨울은 원래 추운 거야’라고 말하면 엄청 똑똑해 보이지요.

정치적 이념으로 볼 때, 자기 마을 밖의 모든 세상을 없애버리려는 것이 일본의 극우라면, 아예 자기 마을을 없애려는 것은 한국의 극우이다.

애쓸 필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람들, 생각을 겁내는 사람들, 게을러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생각 하나를 붙들고 무슨 짓이든 다 하려는 사람들, 그걸 조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지금 억누르기 힘들다.

실제적인 권력을 지닌 집단이 종교적으로건 정치적으로건 극단적 순수주의를 지향하게 되면, 그것은 그 집단 내부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세계를 멸시하고 저주하고 파괴하려는 열정을 내면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베 같은 왜곡된 반항아들은 자기 정체성과 관련, 심각한 신경증을 앓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떼거리 속에서만 자기를 자기처럼 느낀다. 서로서로 ‘나 잘했지’라는 시선을 던지며 어떤 패악질도 두려워하지 않지만, 혼자 남으면 불안에 떨고 자괴감에 빠진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자신감이 없고 비열하기 때문에 엄마와 누이와 다른 여자들을, 약자들을 학대하는 데서 가장 손쉬운 패악질을 발견한다. 패거리 의식은 이 약자 괴롭히기를 이데올로기로 만들고, 옆에서 부추겨주는 사람이 있으면 급기야 애국질을 시작한다.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선택과 결정인데, 일베에게는 그 노력이 면제된다. 어떤 이념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엉성한 이념일수록 더 매혹적이다. 섬세한 이념은, 우둔한 이념과 달리, 여전히 선택과 결정의 숙제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일베가 폭발물을 사용하는 것은 상징적이다. 괴력난신이 된 것이다.

30세에 김수영은 다크호스였지만, 박인환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30세에 「아메리카 타임지」를 쓴 김수영은 47세에 우리 현대 시사의 일급 시인이 되었지만, 30세에 「세월이 가면」을 쓴 박인환은 세월이 가도 「목마와 숙녀」를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여러 종류의 난해시를 읽고 해설했지만, 이 시는 이해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조리 있게 설명한 글을 발견하지도 못했다. 현대적 감수성, 모더니즘의 감각, 도시적 서정, 이런 말 말고 착실한 설명.

애를 키울 때 기를 살린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직하게 생각하고 말하는 습관을 들이면 기는 저절로 살아난다.

종교는 근본적으로,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 세상까지 하나의 원리가 지배하고 있으며, 모든 인간이 그 원리를 숭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그 자체가 폭력이다.

시에는 다신교적 미덕이 있다.

오래된 종교들은 천동설 시대의 지식으로 세계를 모두 설명하려 했다. 문제는 그 설명에 윤리적 성격을 부여해야만 그것이 새로운 과학적 지식을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는 기독교 정교회가 들어선 뒤에도 옛 신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신들은 디오니소스신이 성디오니시오스로 바뀌는 식으로 성자가 되었다. 저승의 뱃사공 카론까지 성카론이 되고. 다신교의 신들은 평화롭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나라가 아니라 집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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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들에겐 체면이 중요했다. 재대로 채면을 차리려면 적어도 하인 셋이 있어야 한다. 어머니와 아내가, 간혹 딸이 그 일을 대신했다. 체면 차리기의 마지막 단계는 그 여자들을 대범하고 무심하게 대하는 것이었다.

일곱 살 아이의 버릇을 고친다고 목검으로 100대를 때린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뿌리를 뽑는다, 이것도 어디서 들어본 말 같다.

체육대학 같은 데서 선배가 후배에게 가혹한 기합을 준다면, 그것은 그 대학만의 일이 아니다. 폭력으로 길들여진 그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살 사람들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폭력의 미신을 우리에게 전파한다는 것이다.

교수에게 강의를 듣는 학생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더 좋겠다. 대학에서 강사는 부교수라는 말처럼 호칭이 될 수 없다. 모두 선생이지. 고객이라는 말은 호칭이 될 수 없다. 손님이지.

‘교수’는 현재의 대학 제도가 생기기 전부터 써온 말이라서 호칭으로 가능하다.

비행기에서, 백화점에서, 횡포를 부리는 고객들 이야기를 들으면, 한국의 부자들은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부자다, 나는 발광할 권리가 있다, 고로 나는 행복하다, 이런 확인을 날마다 해야 하다니. 행복이 좀 가만히 내려앉게 두질 못하고.

제 정체성을 돈의 권력으로 구매한다는 것.

모든 여자들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또는 좋아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 같았다.

남녀 간에 성적 호오의 감정이 끼어들지 않은 관계는 드물 것이다. 모자간 부녀간이라고 하더라도. 그러나 그 감정은 인간관계의 한 요소일 뿐이지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다. 착각하기 쉬운 것 가운데 하나다.

학생들에게 노력이 필요한 보고서를 쓰게 하면, 그걸 쓰느라고 읽고 싶은 책을 못 읽는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그 보고서를 끝내고 나서 그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보고서 때문에 집중돼 있던 두뇌가 그 책을 읽고 싶은 욕망을 만든 것. 집중이 재능이다.

전남 해안 지방에서는 겨울에 흑산도 근해에서 잡힌 것만을 홍어라고 하고, 나머지는 모두 가오리로 쳤다.

내일은 신안문화원에 내려간다. 지난번 대설주의보와 풍랑 때문에 연기되었던 강연을 월요일 오전에 하게 되었다. 청중들이 모두 배를 타고 온다니 기차 타고 내려가는 내가 오히려 미안한 생각이 든다. 강연안 3개를 가지고 갈 텐데, 가서 선택해야겠다.

루소는 어느 나이나 다 불행하다고 말했다. 그 나이에 채워지지 않는 욕망 때문에. 그러나 어느 나이에나 욕망이 있다는 것은 어느 나이에나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는 말. 늙어가며 제 나이의 즐거움을 발견하지 못하면 젊은 세대를 욕하게 되는 듯도.

김진이라는 사람이 유신이 왜 나쁘냐고 물었다 한다. 나도 대답을 잘 못하겠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유신 시대에 대해, 경제 발전을 하려고 좀 고생했던 시댄가보다, 이런 식으로 생각지 마십시오. 정말 끔찍한 시대였죠.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시대의 정신 상태에서 가혹한 통치와 나라의 발전을 혼동하는 인간이 많았고, 박정희는 그걸 이용했지요.

인간에게 어려운 일은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이다. 독재 권력 아래에서는 선택과 결정의 고통이 면제된다. 어떤 가혹한 일이라도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사람들은 자기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자진해서 노예가 된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도 드물다.

번역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외국어 독해력과 한국어 작문력, 성실성과 책임감, 주의력 등을 검증해주는 기관이 있었으면 좋겠다. 자격증을 발부하자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게 해주자는 말.

명저를 한국어 번역으로 망쳐놓은 경우가 참 많지만, 두 개만 들라 하면, 바타유의 『에로티즘』과 랑시에르의 『문학의 정치』를 꼽겠다. 이런 경우는 출판사의 데스크에서 걸러내기가 쉽지 않다.

양력설, 음력설이 있던 시절 우리집은 딱 한 번 양력설에 제사를 지낼 뻔했다. 배운 자식들 의견 따라 상을 차리던 어머니가 밖을 보니 달이 떠 있다. ‘상 치워라. 어찌 섣달그믐밤에 달이 뜬단 말이냐.’ 상 치우고, 그후 양력설은 입에도 올리지 못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진짜로 읽은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 트윗을 보고 좀 놀랐다. 문학개론 같은 것을 가르칠 때 꼭 읽게 했던 것이 그것인데. 동시대의 명저들이 하나의 생각을 전해준다면, 고전은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높은 생산성.

"중단과 연속과 해학이 일치하듯이" 꽃이 핀다. 김수영의 말이다.

80년대 초의 방송. 현대 정주영 회장과 주부들의 대담. 산업 전선에서 일하는 가장을 위해 가족들이 협조해야 한다는 정회장의 말에, 한 주부가 질문. 가장과 자식들이 얼굴도 못 보는 이런 삶에 돈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정회장은 이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초등 때, 습자라는 붓글씨 연습 과목이 있었다. 보통 A4용지 크기 습자지를 6등분해서 여섯 글자를 쓴다. 습자 책에 ‘박애자 유평등’이라는 글씨가 있었다. 나는 그게 독립 열사들의 이름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박애 자유 평등.

‘박애’는 프랑스어fraternite의 번역어다. 어떤 사학자가fraternite는frere(형제)에서 온 말이니 ‘형제애’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 오해다. 여기서fraternite는 형제간의 사랑이 아니라, 만인을 형제처럼 사랑하기라는 뜻.

담배 끊기보다 더 쉬운 것은 없다. 나는 열여덟 번을 끊었다.

이 정부더러 누가 무능하다고 하는가. 담뱃세를 2000원이나 인상하고, 담배를 피우지 않을 수 없게 스트레스까지 줄 줄 아는데.

80년대까지 통금이 있었다. 그게 아무 쓸모없는 제도였다는 것은 통금이 없어진 이후 금방 밝혀졌다.

국립국어원이 ‘엔딩 크레딧’을 ‘끝 자막’ 또는 ‘맺음 자막’으로 다듬었다는데, 무언지 모르게 어설프다. ‘끝 자막’이 아니라 ‘끝내기 자막’, ‘맺음 자막’이 아니라 ‘마무리 자막’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딸가닥 소리가 나게 좀 말을 만들어보지.

오늘 날이 참 춥다고 말하는 사람 앞에서, ‘겨울은 원래 추운 거야’라고 말하면 엄청 똑똑해 보이지요.

정치적 이념으로 볼 때, 자기 마을 밖의 모든 세상을 없애버리려는 것이 일본의 극우라면, 아예 자기 마을을 없애려는 것은 한국의 극우이다.

애쓸 필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람들, 생각을 겁내는 사람들, 게을러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생각 하나를 붙들고 무슨 짓이든 다 하려는 사람들, 그걸 조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지금 억누르기 힘들다.

실제적인 권력을 지닌 집단이 종교적으로건 정치적으로건 극단적 순수주의를 지향하게 되면, 그것은 그 집단 내부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세계를 멸시하고 저주하고 파괴하려는 열정을 내면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베 같은 왜곡된 반항아들은 자기 정체성과 관련, 심각한 신경증을 앓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떼거리 속에서만 자기를 자기처럼 느낀다. 서로서로 ‘나 잘했지’라는 시선을 던지며 어떤 패악질도 두려워하지 않지만, 혼자 남으면 불안에 떨고 자괴감에 빠진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자신감이 없고 비열하기 때문에 엄마와 누이와 다른 여자들을, 약자들을 학대하는 데서 가장 손쉬운 패악질을 발견한다. 패거리 의식은 이 약자 괴롭히기를 이데올로기로 만들고, 옆에서 부추겨주는 사람이 있으면 급기야 애국질을 시작한다.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선택과 결정인데, 일베에게는 그 노력이 면제된다. 어떤 이념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엉성한 이념일수록 더 매혹적이다. 섬세한 이념은, 우둔한 이념과 달리, 여전히 선택과 결정의 숙제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일베가 폭발물을 사용하는 것은 상징적이다. 괴력난신이 된 것이다.

30세에 김수영은 다크호스였지만, 박인환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30세에 「아메리카 타임지」를 쓴 김수영은 47세에 우리 현대 시사의 일급 시인이 되었지만, 30세에 「세월이 가면」을 쓴 박인환은 세월이 가도 「목마와 숙녀」를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여러 종류의 난해시를 읽고 해설했지만, 이 시는 이해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조리 있게 설명한 글을 발견하지도 못했다. 현대적 감수성, 모더니즘의 감각, 도시적 서정, 이런 말 말고 착실한 설명.

애를 키울 때 기를 살린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직하게 생각하고 말하는 습관을 들이면 기는 저절로 살아난다.

종교는 근본적으로,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 세상까지 하나의 원리가 지배하고 있으며, 모든 인간이 그 원리를 숭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그 자체가 폭력이다.

시에는 다신교적 미덕이 있다.

오래된 종교들은 천동설 시대의 지식으로 세계를 모두 설명하려 했다. 문제는 그 설명에 윤리적 성격을 부여해야만 그것이 새로운 과학적 지식을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는 기독교 정교회가 들어선 뒤에도 옛 신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신들은 디오니소스신이 성디오니시오스로 바뀌는 식으로 성자가 되었다. 저승의 뱃사공 카론까지 성카론이 되고. 다신교의 신들은 평화롭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나라가 아니라 집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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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8-13 2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황현산선생님 글은 저도 좋아해요.

라로 2022-08-15 13:10   좋아요 1 | URL
이 트윗글 모음 책은 너무 솔직하시고 막 그래서 더 밑줄을 많이 긋게 되네요. 다른 면모를 보는 것 같아서 흠칫 하기도 하고요. 저도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