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 내가 짝사랑한 사람도 있었고, 나를 짝사랑한 사람도 있었다. 인간의 일 가운데 짝사랑만큼 훌륭한 일도 드물다. 짝사랑은 아름다운 것이 항상 거기 있게 한다.

나는 내 제자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면 그 의견을 존중했다. 그러나 애정 생활을 같이할 사람은 있어야 한다는 말을 명시적으로건 암시적으로건 꼭 덧붙였다

이완구가 총리가 되면 젊은이들이 얼마나 절망할까. 나는 젊은 날 분노할 일이 많았지만 나라의 미래가 이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정치가들도 펜글씨 연습 좀 했으면 좋겠다. 김무성의 글씨는 옹졸하기 그지없고 문재인은 잘 쓴 것은 아니나 활달하다. 정치인들이 글씨 잘 쓴다고 세상 좋아지는 것은 아니겠으나, 그것도 문화의 한 귀퉁이다. 뭘 좀 본받을 것이 있어야지.

공자는 참 시적인 사람이었다. 공자는 규칙을 주입시키기보다 제자들의 판단력을 기르려 했다.

언젠가 ‘시인들의 육필’ 전시회를 관람했는데, ‘글씨 못 쓰게 된 역사’ 전시회 같았다. 이제는 손으로 글씨를 쓸 일이 거의 없으니. 그렇더라도 공적인 일을 할 사람은 글씨에도 신경써야 한다. 그것으로나마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어야지.

좋은 글씨를 보면 기분이 좋은 것은 중력에서 떠난 어떤 자유를 보는 것 같고, 좋은 세상 하나가 거기 구현되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좋은 풍경화가 그렇듯이.

좋은 글씨가 좋은 세상을 그 순간 구현하는 것 같다고 말했더니, 그럼 나쁜 글씨는 나쁜 세상을 구현한다는 말이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다. 맞다. 적어도 그 글씨 쓰는 순간은. 그래서 나는 가능한 한 손으로 글씨를 쓰지 않고 기계로 쓴다.

사람이 하는 일엔 항상 그 사람의 성격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글도 그렇고, 운전도 그렇고, 요리도 그렇고. 내 오랜 친구 김인환 교수는 글씨를 못 쓴다. 초등생 글씨. 그런데 글씨가 매우 고결하다. 뭐랄까, 사무사하다고 해야 할까. 명쾌하고 고졸하다.

아라공의 시구를 정확히 번역하면 ‘인간의 미래는 여자다’의 뜻으로 초현실주의 페미니즘을 단면적으로 드러낸다. 이념 관념에 의해 파악된 남성적 세계관에 맞서 사실적으로 파악된 여성적 세계관에 인간의 미래가 있다는 말. 따라서 여성 해방은 곧 인간 해방이다.

문학에서 여성 숭배와 여성 해방의 차이는 매우 미묘하다. 핍박받는 자들의 삶에 중점을 두면 여성 해방이 되고, 핍박받는 자들만이 지니는 사랑의 힘에 중점이 놓이면 여성 숭배가 된다.

초현실주의 페미니즘은 그 갈림길이기도 하고 그 종합이기도 하다.

@septuor1 2015년 2월 16일 오후 1:06
여성 숭배의 신화가 무너진 결정적 계기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1949)의 출간이지만, 문학 상상력의 미학적 근거가 되는 타자의 힘이라는 형식으로 남아 있다. 이 타자의 힘은 페미니즘의 실천에 무의미한 것일 수도 있지만, 환경주의의 예를 따른다

@septuor1 2015년 2월 16일 오후 2:46
면, 진보의 제반 주제를 페미니즘 안에 재배치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거기서 발견할 수도 있다.

군대 있을 때 우리 부대 옆에 군 인쇄소가 있었다. 내게 불어를 배웠던 인쇄소 상병이 두툼한 공책을 만들어 제대하는 내게 선물했다. 40년 넘게 간직했던 걸 오늘 버렸다. 흔한 게 빈 공책인데 어디 쓰겠는가. ‘풍요’를 감당할 수 없는 것도 슬픔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명령이어서 윗사람에게 쓰면 안 된다는 말이 있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어떤 언어건 명령법에는 기원의 뜻이 있다. ‘만수무강하소서’가 어찌 명령이겠는가.

그림엽서 뒷면의 메모 : "육체적 관능의 기쁨, 조용하지만 열정적인 연애 시집. 행복한 삶의 체험에 의해 글자의 세계를 갱신하고 활성화하며, 억압과 권력이 되어버린 언어에 다시 생명의 형식을 부여한다." 누구의 어느 시집에 대한 메모였는지 모르겠다.

제사상의 과일 순서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아들딸도, 동생도 제수도, 조카들도. 매년 설명해도 귀담아듣지 않는 것은 난센스라고 여기기 때문. 대추씨 1, 밤쪽 2, 배씨 4, 감씨 8, 자손창생의 배수. 나는 이걸 오래된 농담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전이 하는 일은 보통 두 가지. 1)모든 낱말을 모으고 그 뜻과 용법을 모두 적는 것. 2)옳은 말과 옳은 용법, 옳은 뜻을 밝히는 것. 1과 2는 상치되기 쉽다. 국어연구원 사전은 2에 치중할뿐더러 2로 1의 일까지 하려 한다. 희극적 효과.

명랑하기는 성격만으로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명랑하기는 윤리이기도 할 것이다. 늘 희망을 가지려고 애쓰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야만 명랑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번역하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언어학자나 문법학자들이 번역론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어가 몸부림치면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장 긴박한 현장이 바로 번역이기 때문이다. 번역에 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다면 그건 언어학자도 문법학자도 아니다.

개항 이후 한국어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번역이다. 한국어의 어떤 단어는 번역서에만 나타난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국어학자들은 사전, 문법서 등에서 번역문은 예문으로 쓰지 않는다. 나는 이런 현상을 ‘국학’의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번역은 외국어에 서툰 사람을 위해 대체 텍스트 만들기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어로 셰익스피어를 번역한다는 것은 한국어로 셰익스피어를 읽게 하는 일이기 전에 한국어 ‘안’에 셰익스피어가 있게 하는 일이다. 셰익스피어를 번역하기 전과 후의 한국어는 다르다.

내 트친들 중에는 만화가들이 많고, 내가 그들에게 배우는 것도 많은데, 나는 만화를 읽지 못한다. 나이들면 인지도 행동도 단순해진다. 그래서 그림과 글씨를 함께 보는 일이 너무 복잡하다. 만화에 관한 한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늦은 때다.

『발레리 선집』(박은수 역, 1971) 중 「젊은 파르크」의 한 구절
내 달콤한 멍에들 속에서, 내 멎은 핏줄에서,
나는 구불구불한 나를 보는 나를 보고 있었고, 또
내 깊숙한 숲들을 샅샅이 금빛으로 칠하고 있었다.
40년 전 번역인데 읽을 만하다.

나라 사랑 정신을 기르기 위해 태극기 게양을 강제한단다. 사랑받는 나라를 만들면 사랑할 텐데…… 진절머리 칠 나라를 만들 생각이구나.

민주화 운동 한 사람들은 애국심이 없는가? 세월호 학부모들, 강정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은 비국민들인가? 굴뚝에 올라간 사람들과 페미니스트들은 인성이 나쁜 사람들인가? 문제는 이들 질문에 ‘그렇다’고 말하고 싶은 자들이 태극기 강제 게양법을 추진한다는 것.

차별적 발언은 내 기분과는 관계없이 차별적 발언인 것이다.

기도에 낀 먼지를 제거한다고 처음 삼겹살을 먹었던 것은 탄광촌의 광부들이었다. 광부들이 멍청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진폐증에 대비하는 길이 그것밖에 없었고, 자기를 위안할 길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한겨레를 보니 정희진 선생이 평화학연구자로 직함을 바꾸었다. 여러 번 눈여겨보게 된다. 그런데 고공 농성 노동자들 이야기를 하면서 ‘이기지 않으면 죽는 것’이라고 썼다. 평화학이 시학과 다르지 않구나.

조폭이 아니더라도 의리를 중요하게 여겨야 할 때가 많다. 한화갑, 한광옥, 김경제 이런 사람들은 민주화 열망자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자신의 정치적 운명이 어떻게 되건 그 열망을 배반할 수는 없는 것이다.

10년 전쯤 연구실에 어떤 청년이 찾아왔다. 자신의 시를 불어로 번역해서 프랑스에서 출판키로 했는데, 전문가에게 맡겨 번역한 시를 출판사에 보냈더니 대답이 없다고, 번역이 잘못된 것 같다고. 시를 보니 신춘문예 예심 통과도 어려운 수준.

그대로 말해줬더니, 시는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따진다. 반드시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큰일날 감정이 있느냐고 했더니, 대답하지 않고 갔다. 물론 내 질문이 성실한 것은 아니었다. 그 청년은 지금 뭐 하는지 모르겠다.

‘최애캐’가 ‘최고로 애정하는 캐릭터’라는 것을 나 혼자 생각해서 알아냈다. 나 대단한 것 같다.

딸이 지금 〈미생〉을 보고 있다. 나도 마루에 나갔다 들어오는 참에 흘끔거리면서 본다. 사람들이 저렇게 살고 있는데 책이 어떻고 시가 어떻고 하는 내가 나쁜 놈인 것 같다.

한국의 인터넷 보안 체계처럼 불가사의한 게 없다. 삼중 사중 보안프로그램을 깔고 핸폰으로 본인 확인하고, 공인인증서까지 쓰면서 사고는 사고대로 일어난다. 보안업체가 무식한 은행원들, 공무원들을 속이고 사기를 치거나 서로 짝짜꿍을 하고 있지 않다면 이해 불가다.

‘휘발성고양이’님의 독서 메모를 읽고 있으면 한 사람이 그렇게 책을 많이 읽고도 생명에 별 지장이 없다는 것이 오직 신기할 따름이다.

보안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고 IT업계가 열악한 조건에서 일한다는 게 사실일 것이다. 한데 왜 우리는 간단한 은행 업무만 보려 해도 코미디 같은 절차를 밞으며 그 많은 액티브엑스를 깔아야 하고, 왜 다른 운영 체계로는 불가능한지 IT업계는 설명한 적이 없다.

글을 쓰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말은 ‘말하는 것처럼 써라’일 터인데, 글을 쓰는 데 가장 해로운 것도 그 말이다. 글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말을 성찰한다는 것이다.

글을 쓸 때 부사나 수동태를 쓰지 말라는 등의 말에 구애될 필요가 없다. 뭐든 써도 됨. 그러나 왜 그렇게 썼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노트에 적힌 문장을 보고 ‘이건 내 문장 아님, 난 이렇게 쓰지 않음’이라 말할 수 있으면 글을 잘 쓰는 것이다.

번역서를 읽으면서 가장 화가 나는 것은 오역이 아니라 틀린 것도 맞은 것도 아닌 번역이다. 오역은 한 번으로 끝날 수 있지만 틀린 것도 맞은 것도 아닌 번역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된다.

번역자들 중에 기본 문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해당 외국에서 10년을 살아도 고쳐지지 않는다. 텍스트는 계속 오독을 한다. 번역자는 강독회 같은 데 참여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오역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은 인문학 그룹들이 생겨난 이후다.

초등학교 교사들이 옛날에는 부자 동네 학교로 발령받길 원했으나 요즘은 가난한 동네 학교를 원한다고 한다. 가난한 동네 아이들이 심성이 착하기 때문이라고. 이 이야기가 왜 슬프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꿈을 현실 언어로 바꾸고 나면 꿈은 사라지고 꿈 이야기만 남는다. 어렸을 때 독서 감상문도 마찬가지다, 책은 사라지고 감상문만 남는다. 어렸을 때 읽은 책은 내용을 비록 이해하지 못해도 우리와 함께 성장하는데, 독후감을 써버리면 책의 성장은 거기서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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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플로는 나도 좀 진저리 나고 심지어 요즘은 술을 잘 마시지도 않지만(확실히 해두기 위해 이 글을 쓰는 시기에는 음주 횟수가 한 달에 2회 미만임을 밝히는 바다), 여길 걷다 보면 갑자기 중독자처럼 ‘술! 술! 술을 다오!’ 하는 상태가 된다.

맥주 두 병을 마시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단추 따위는 잊어버린다. 술은 이러라고 마신다.

달밤의 해변

달 밝은 밤, 단추 하나가
물가에 떨어져 있다

그걸 주워서, 어딘가에 쓰려고
생각한 것도 아닌데
어쩐지 그냥 두지 못하고
소맷자락에 넣었다

달 밝은 밤에, 단추가 하나
물가에 떨어져 있다

그것을 주워서, 어딘가에 쓰려고
생각한 것도 아닌데
달을 향해 내던지지 못하고
파도를 향해 내던지지 못하고
나는 그것을, 소맷자락에 넣었다
달밤에 주운 단추는
손끝에 물들고 마음에 스몄다

달 밝은 밤에 주운 단추,
그 단추를 어찌 버릴 수 있을까?

?나카하라 추야, <달밤의 해변>

벗들이 다 나보다 훌륭하게 보이는 날엔
꽃을 사들고 와
아내와 즐기리라
─ 이시카와 다쿠보쿠, 《한 줌의 모래》(필요한책) 중에서

지인들이 교토에 간다며 "어디 한 곳만 추천해주세요"라고 할 때, 추천한 뒤 실패한 적 없는 곳이 바로 오하라大原다. 모르고 우연히 가기에는 너무 먼 곳이라서, 누가 좋다고 해야 발걸음하게 된다.

오하라는 좋은 야채가 많이 나는 농경지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교토는 교토의 야채로 만든 츠케모노(일본의 채소 절임)가 특히 유명한데(교토야채절임이라는 뜻으로 ‘교츠케모노’라는 단어도 따로 있다)

거기서 시식을 하면 빈손으로 나올 수가 없다. 오하라의 절들로 가는 길은 그렇게 유혹으로 가득하다.

오하라에 새벽 장이 열리면, 교토 시내에서 식당을 하는 요리사들이 오하라까지 차를 몰고 온다. 그 새벽 장보기에 동행한 적이 있다, 신선한 야채가 맑은 산 공기 아래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신기할 정도로 기분이 맑고 좋아졌다.

오하라메라는 명명에는 생명력이 강한 여성이라는 뜻이 포함된다. 버스를 타고 앉아서 이동해도 쉽지 않은 거리를 농산물을 이고 지고 움직였을 가난한 여성들을 떠올리면, 교토 시내보다 기온이 낮은 오하라가 더 춥게 느껴진다.

산젠인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때나 좋다. 수국 정원도 있고, 벚꽃 필 때도 볼거리가 있고. 하지만 관광지로서 산젠인의 절정은 가을이 아닐까 한다. 가장 붉고 선명해서 투명한 느낌마저 드는 단풍이 매표소 앞 단풍이라는 점이 미스터리하지만.

호센인을 유명하게 하는 건 바로 액자 정원이다. 죽어가는 700살 먹은 소나무가 건물 한쪽 면에 크게 난 기둥 사이로 보이는 모습이, 꼭 액자 안의 그림 같아서 액자 정원이라고 불린다.

단풍철이면 호센인은 실내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북적이는데, 그래도 방문할 가치가 있다. 액자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더 그림 같고 더 완전해 보이는 기묘한 효과를 알고 지은 것일까? 당연히 연출이라는 표현은 우연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연을 오랫동안 보고 즐겨온 사람들이 갖는 특유의 미감이다.

그해 여름, 여름이라는 계절을 좋아하게 된 첫 여름.
<마쿠라노소시> 식으로 그 시간에 대해 말하자면, 이렇게 되겠지

남자란 행여 상대 여자가 자기 이상형이 아니고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어도, 면전에서는 결코 싫은 소리를 하지 않고 마구 칭찬해 기대를 품도록 한다.

남자라는 동물은 처지가 딱한 여자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딴 여자에게 가는 냉혈 동물인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알 수 없다. 그런 주제에 자기 일은 쏙 빼놓고 다른 남자의 냉정한 행동을 열을 올리며 비난한다. 정말 남자란 동물은 도저히 이해 안 된다. 특별히 의지할 사람도 없는 뇨보랑 사귀어서 애까지 갖게 해 놓고 그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 몰라라 하는 작자들도 있으니까 말이다.

더울 때는 걸어야 해서 괴롭고, 추울 때도 걸어야 해서 괴롭고, 지쳤을 때도 걸어야 해서 괴롭다.

규모가 큰 정원에 가면 안 피는 꽃이 없고 취향 따질 것도 없이 네 맛 내 맛 다 충족시킬 수 있는데, 여기는 그저 누군가의 세계에 들어가서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하는 것뿐인 듯한 감격이 있다.

이런 곳에 올 때면, 한밤의 풍경을 알 수 없다는 데 눈물이 날 것처럼 서운함을 느낀다. 그것만큼은 살았던 사람만 아는 것이다. 한밤에 별이 어디까지 보이는지, 물소리는 어떤 다른 울림을 갖는지, 시시오도시의 소리는 밤이 되면 더 커지는지…. 짐승과 벌레 소리는 얼마나 가까워지고, 바람은 어디서부터 불어오는지, 툇마루에 누워서 한여름 밤을 보내는 일은 어떤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 된다.

이시카와 조잔은 작정에 재능이 있었다고 하며, 59세에 완성해 90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액자 정원, 단풍, 시시오도시 등 유명한 것으로 따지면 끝이 없지만 시센도는 한여름 뙤약볕에도, 한겨울의 으스스함에도 고고함을 잃지 않는다.

가는 수고로움에 비해 보는 것은 잠깐인데도 계속 생각난다. 정원 구석구석 나무들의 배치도 신기하고, 좁은데 뭐가 많아서 계속 발견하게 된다.

시센도는 규모로 말하는 곳이 아니다. 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보일 것이고, 지나치는 사람에게는 그저 또 하나의 교토의 절일 뿐이다. 그래서 아껴가며 간다.

시센도에 가보고도 뭐가 좋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하고는 친구가 될 수 없다. 물론 그래서겠지만 친구가 몇 없다. (쓸쓸하다….)

"화장실에는 아름다운 여신님이 있단다. 그러니까 매일 깨끗이 청소하면 여신님처럼 아름다워질 수 있단다."

"왜일까. 사람은 사람을 상처 입히고 소중한 것을 잃어가."

나도 K씨도 할머니와 살았다. 그래서 끔찍할 정도의 빚진 마음은 우에무라 카나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갖고 있다. 노래를 부른 우에무라 카나처럼 미인이 되려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은 없었지만, 할머니가 밤늦게까지 떠드는 나를 재우려고 협박하는 일(아파트에 살았는데도 나는 "밤에 노래를 하면 뱀이 나온다"는 말을 믿었다)은 얼마든지 있었다.

어릴 때는 할머니가 가장 좋은 친구였는데, 커가면서 할머니를 아무도 아닌 사람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소중한 것을 잃어간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전부였던 시절을, 믿고 사랑했던 것들을 잊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야 앞으로 나갈 수 있으니까. 그런데 가끔은, 거기 있던 것들이 한꺼번에 찾아오는 때가 있다. 그런 장소가 있다.

슬픔으로 끝난 관계들이 가장 반짝거렸을 때를 상기시키는 장소가 있다.

그 사람과 같이 방문하지 않았음에도 그런 것들을 깨닫게 하는 장소가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장소 찾기의 중독자들이다.

사랑은
먼 옛날의
불꽃이
아니다
─ 산토리 올드 위스키 광고 카피 중에서

나를 처음 두 곳으로 데리고 갔던 현지 지인도 그랬지만, 몇 번이나 다른 일행들과 가게 되면서 알게 된 게 있다. 견학은 둘째 치고 공짜 술을 마시러 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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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 출판사의 주요 작가는T.S. 엘리엇이었다.(동료들이 엘리엇을 부르는 호칭에는 위계가 있었다. 상사들은 그를 ‘톰’이라 불렀고, 아랫사람들은 ‘GLP’라고 불렀는데 이는 ‘현존하는 최고의 작가’GreatestLivingPoet의 약자였다.)

메리앤 무어와 그 어머니에 대해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들은 마치 삶을 정확히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모르는 사람처럼 살았다."

설상가상인 것은 좋은 어머니처럼 행동한다 해도 결코 충분치 않다는 점인데, 그런 행동에는 의지의 힘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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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구문이다. 나는 늙은 게 아니다. 그저 ‘타고난 상황‘을 겪고 있을 뿐이다.
번즈는 나이를 약점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걸 토대로 성취해 나가라고 조언했다. "우린 분명 아주 현명한 어른이에요. 자신의 인지력, 문학적 자질, 관심사를 잘 파악해서 그걸 통해 할 수 있는것에 집중하면 돼요. 성인 학생은 아이들과 완전히 다르거든. 그러니 스스로를 부족한 생물이라 단정짓지 말고 목표 달성하는데 어떤 강점이 있는지만 생각하세요." - P24

또한 사회적으로 성숙하다. "당신은 자의식이 충분히 정립되어 있어요. 열여덟이나 열아홉 살에는 그렇지가 못해. 이 나이 때에는 명확한 자아상 확립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때가 많죠. 자신의 정체성 확립에 애쓸 때니까. 당신은 최소한 당신 자신이 누군지는 정확하게 알잖아요."
나의 정체성이라....…… 네 시간쯤 전에 호텔 TV로 <바보 삼총사 - P24

Three Stooges>를 보며 낄낄댄 게 마지막으로 확인한 내 정체성인데, 이건 그녀에게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 - P25

"하지만 난 누군가 나를 보며 ‘어이쿠, 진짜 멍청한 여자네. 대체 왜저렇게 발음이 엉터리야?‘라고생각한다 해서 자의식에 큰 상처를 받지 않아요. 5주만 나한테 배우면 이런 마음을 극복하고 그 이상의 것을 달성하게 할 수 있어요. 당신도 분명 해낼 수 있을 거예요." - P25

다른 말은 다 잊어버리고 긍정적 측면만 기억해 두었다. 나는 부족한 학생이 아니다. 일을 망친다 해도 바보라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나는 자신감으로 충만한성인이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잘 안다.
아닌가? - P24

보여 준다. 아이디어 자체는 훌륭하다. 결국외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사람들과 의사소통하여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다. - P29

사실 앤이 하고 싶었던 말은 내가 앞으로 3개월만 프랑스어를공부하면 1년 전부터 계획해 온 10일간의 프랑스 지방 자전거여행에 차질이 없겠나는 것이다. - P31

뒤집어쓰도록 책상에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뭐랄까……… 그러니까… 나는 처음 시작하는 게 어려웠다………. 처음에는 프랑스어와 본격적으로 씨름하기 전에 우선 그 사람들의 문화를 알아보고 싶었다. 앞에서 번즈가 설명한, 조지타운 대학교 독일어학과에서 개발한 프로그램 생각나는가? - P31

대체로 프랑스어를 정말로 공부하는 것보다 프랑스어 공부에대해 생각하는 게 훨씬 재미있고 스트레스도 적었다. 게다가 솔직히 그다지 급할 것도 없어 보였다. 미국무부 외교연수원에 의하면, 성인이 프랑스어를 기본 수준‘으로 습득하려면 약 480시간의 학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잠시 계산해봤다. 하루에 두 시간씩 일주일에 6일 꾸준히 공부하면, 딱 10개월 만에 ‘기본 수준으로 프랑스어를 구사할 수 있다. 조금 더 단축시킬 수도 있다. 고등학교 때 프랑스어를 몇 년 공부했으니까 약간 도움이 될 것이다. - P32

결국 단어를 기억하고 그것을 의미 있는 구조로 조립하는 능력을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 P33

노르망디 여행 계획에 들뜬 앤이 방을 나가다가 문에서 잠시멈춰 나를 돌아보더니 말했다. "당신, ‘봉수아bonsoir‘ 정도는 할수 있는 거지?"
그녀는 나의 프랑스어를 의심하고 있었다. - P35

군대에는 육군도 있고 해군도 있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이디시어학자 막스 바인리히 - P36

기차 시간 준수가 치즈만큼이나 중요한 이곳, 여기는 프랑스다.
하지만 나는 지하철을 잡아타는 게 베이글만큼이나 중요한 뉴욕 사람이다. - P36

영어와 프랑스어의 유사성은 사랑과 기사도가 아니라 전쟁과 배반의 역사에서 유래한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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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영화도 같이 보지 못했지만
모든 마감을 곁에서 지켜준
나의 개 수지, 타티 그리고 아로하에게

질주인지 비상인지 구분하기 힘든 이미지 앞에 떨면서
나는 딱 한 가지만 잊지 않으려고 했다.
예술이 세계를, 예술가가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동료 인간을
염려하고 사랑하는 좋은 방법을 아는 영화를
방금 봤다는 사실을.

10년 넘도록 잡지 일에 종사해도 개선되지 않는 글의 속도와 질에 괴로웠던 당시 나에게, 몸집에 비해 턱없이 가늘고 짧은 공룡의 팔은 마치 자판 앞에 매주 무력한 내 손가락처럼 보였다. 전문기자겠거니 믿어주는 독자들의 짐작과 달리 나는 짤막한 팔로 버둥거리고 있었다.

기타노 다케시의 공룡에게 난데없이 동병상련을 느낀 이후에도 나의 글쓰기는 쉬워지거나 빨라지지 않았다. 이런 유형의 인간이 영화산업과 영화제의 주기에 발맞추는 주간지 마감을 어쨌거나 20년 넘게 해낸 것은 기적 아니면 뭔가 구린 데가 있어서일 텐데 진실은 후자다.

내가 중과부적이라고 나자빠지면 편집장과 동료들은 마감 주기를 늘려가며 독려해주었고 다시 마감은 가늘고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물론, 언제나 영화가 있었다. 어제까지 그만 써야 할 100가지 이유를 만지작거렸던 자신을 까맣게 잊고 흥분해서 키보드 앞에 앉게 부추겼던 영화들이.

적진 가운데에서 마구잡이로 혈로血路를 뚫는 조자룡마냥 ‘일단 살고 보자’는 심정으로 두리번대다 비상구가 되어줄 문장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내처 말을 달려 가는 것이 대략 나의 목요일 풍경이었다.

우리는 매력적인 사람을 보면 사진 찍기 원하고 귀에 감기는 노래를 들으면 따라 부르려 한다. 영화에 이목구비가 있다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그 초상을 그려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게 해석은 묘사의 길을 걷다 보면 종종 예기치 못하게 마주치는 전망 좋은 언덕과 같았다. 묘사하는 마음이란, 그런 요행에 대한 기대와 ‘아님 말고. 이걸로도 족해’ 하는 태평스러운 태도를 포함한다. 묘사는 미수에 그칠 수밖에 없지만, 제법 낙천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는 기상천외한 사건이 아니라,
양질의 시간을 찾아서 영화관에 간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가 『봉인된 시간』에 쓴 대로다.
"인간은 보통 잃어버린 시간, 놓쳐버린 시간,
또는 아직 성취하지 못한 시간 때문에 영화관에 간다."

"나는 내 캐릭터를 연민하지 않고 이해만 하려고 한다.
동정은 이상화로 이어진다."

여신을 여성성의 총화라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배우 이자벨 위페르의 경력은 여신의 그것이다. 그는 엠마 보바리였고 마리 퀴리였고 앤 브론테였으며 무대에서는 블랑시 뒤부아, 메데이아, 올란도였다. 자포자기한 가출 소녀부터 권태에 찌든 상류층 사모님까지, 강간 피해자부터 사색하는 팜파탈까지 ‘여자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인간적 속성의 편람을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옥상에서 지하까지 섭렵했다. 그 와중에 위페르의 여자들은 그야말로 ‘온갖 짓’을 저지른다. 쓰레기통에서 정액 묻은 휴지를 주워 냄새 맡고, 일가족을 몰살시키고(때로는 본인의 가족도), 자위하는 아들의 손을 잡아주고, 본인 가슴팍에 식칼을 꽂는다.

위페르의 연기적 풍부함은 어제는 A를, 내일은 Z를 연기할 수 있다는 개념이 아니라 한 캐릭터 안에서 동시에 A나 Z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A인지 Z인지 모호한 연기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두 가지가 공존하는 표현을 보여준다는 뜻이고 통합된 퍼스낼리티를 유지하면서 모순을 설득한다는 말이다.

일일이 꼽기 힘든 영화에서 위페르는 분노인지 상처인지 가리기 힘든 표정을 지으며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분별할 수 없는 인간을 구현했다.

이자벨 위페르는 냉정과 열정 사이에 있지 않다. 그는 냉정이자 열정이다.

게이냐 스트레이트냐를 떠나 일단 컴버배치의 셜록 홈스는 섹스에 관심을 갖기에는 너무 생각거리가 많고 바쁜 무성애자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그의 프로모션 투어를 맞이하는 공항의 여성 팬들은 비틀즈라도 본 듯 자지러지고 <더 선>지는 독자 투표를 통해 2년째 컴버배치를 영국에서 가장 섹시한 남성으로 선정했다.

컴버배치의 인기는 "똑똑함이 새로운 섹시함이다(Brainy is the new sexy)"라는 슬로건의 증거인 셈이다.

한편 그는 여전히 수줍은 팬으로서 동료 배우들을 대한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존 허트, 콜린 퍼스, 마크 스트롱, 토비 존스와 공연한 컴버배치는 촬영 일정표를 액자에 넣어 보관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를 가장 기쁘게 만드는 찬사도 동업자들의 인정이다. <스타트렉 다크니스>의 레드카펫에서 공연 배우들의 칭찬을 들은 그는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이 원만한 노력파 배우가 카메라 앞에 서면 섬광을 낸다. 컴버배치의 연기는 정확하되, 힘을 가하지 않아도 칼날 자체의 무게로 살을 절개하는 메스처럼 수월해 보인다. 뭐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 남자가 있을까? 사실 이 갭이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저력이다. 작품 선택에서나, 스크린 안에서 그는 다음 순간 어떤 행동을 취할지 넘겨짚기 어려운 배우다. 한번 눈이 맞으면 시선을 떼기 힘든 이유다.2013. 6.

"그는 배우가 직접 감행하는 액션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차이와
그것이 객석에 가져다주는 쾌감의 차이를 믿고 실천한다."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이하 <폴아웃>)의 경우, 런던 질주 시퀀스 중 톰 크루즈의 발목이 부러지는 메이킹필름이 공개됐고 클라이맥스 액션을 위해 크루즈가 2년 동안 헬기 조종 면허를 획득했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물론 이른바 리얼 액션에는 CG로 지운 와이어와 안전장치가 포함되어 있으며 아마도 스태프들 역시 내부 기밀 유지 계약에 서명했을 것이므로 실제로 우리가 보는 액션의 얼마가 ‘진짜’인지 확인할 도리는 없다.

빼어난 전문 스턴트맨이 즐비하고 뭐든 디지털 기술로 그려낼 수 있는 시대에 톰 크루즈는 배우가 직접 감행하는 액션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차이와 그것이 객석에 가져다주는 쾌감의 차이를 믿고 실천한다는 점이다.

<폴아웃>에는 왜 좀 더 간단한 방법으로 작전을 수행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에단 헌트가 "그렇지만 나는 더 나은 방법으로 하고 싶다"고 답하는 장면이 있다. 자못 자기 반영적이다.

이제 와 돌아보면, <미션 임파서블> 1편(1996)의 랭리 침투 신에서 바닥에 똑 떨어지는 땀 한 방울의 숏은 시리즈 전체의 정수다.

<폴아웃>의 많은 관객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톰 크루즈의 애크러배틱, 달리 말하면 대중의 오락을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는 백만장자 스타를 보기 위해 멀티플렉스를 찾는다.

톰 크루즈의 액션 연기는 놀라운 몸 관리로 남보다 빨리 달리고 절벽을 잘 타는 예외적 운동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톰 크루즈가 세계에서, 아니 영화계에서도 제일 빨리 오래 뛰는 인간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는 확실히 카메라와 호흡을 맞춰 가능한 한 최고의 속도로 꾸준히 달리는 인물을 가장 잘 연기할 수 있는 배우다.

모래 폭풍과 대형 폭발을 등지고 제일 폼 나게 점프할 수 있는 배우다.

2000년 이후의 톰 크루즈 커리어는, 몇몇 저널리스트들이 이미 말한 대로 개인의 나르시시즘이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는 희귀한 예다.

톰 크루즈는 지구상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영화배우이면서도, 데뷔 후 40여 년째 인정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 중인 이상한 인간이다.

인터뷰에서 톰 크루즈는 어려서부터 자신이 성취하기 위해서는 넘어서야 할 방해물이 아주 많다고 여겼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요컨대 이 스타는 극복의 아이콘이다. 현재 그가 대놓고 극복 중인 대상은 세월이다. 톰 크루즈는 내가 아는 한 이자벨 위페르와 더불어 본인의 나이를 절대 먼저 거론하지 않는 배우다.

22년 전 에단 헌트는 자신의 유능함에 취한 경솔한 엘리트였고 본부에 카푸치노 머신을 놓아달라고 조르는 청년이었다. <폴아웃> 도입부의 에단 헌트가 읽고 있는 책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다. 그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길 위에서 영원처럼 긴 모험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중년이다.

남의 얼굴을 감쪽같이 뒤집어쓸 수 있는 가면 트릭은 그새 테러리스트들에게 소문이 났을 법도 한데 22년째 잘 통한다.

대개 하나의 스위치를 내리면 해결되지 않고 두세 곳에서 동시에 해체에 성공해야 하는데, 이유는 단순하다. 에단 헌트가 이끄는 끈끈한 팀워크가 에단 개인의 활약만큼이나 이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남이 날 해칠 리 없다고 대충 믿는 폴 러드의 인물들은
위태로운 상황에 빠져도 천진하게 유유하다."

외모도, 경력도 경이롭게 꾸준한 이 오십대 배우는 분량이 미미한 조연을 마다하는 법이 없고, 주연작의 다수가 할리우드에서 점점 홀대받는 중급 예산 드라마와 저드 애퍼타우<40살까지 못해본 남자> <사고 친 후에>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 등을 작업한 유명 코미디 감독 사단표 남성 앙상블 코미디라 배우론을 쓸 계기가 마땅치 않았다. 마침내 <앤트맨>으로 <씨네21> 표지를 장식한 폴 러드의 사진을 보며 나는 남몰래 눈물을 훔치진 않았지만, 자못 감격했다.

환경법에 관심을 가진 법대생으로 분한 출세작 <클루리스>(1995)부터 <내가 사랑한 사람>(1998), <아이 러브 유, 맨>(2009) 등에서도 폴 러드는 능력 있지만 자기 능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남자, 그리고 동료 엘리자베스 뱅크스의 표현에 따르면 "잘생겼지만 안 잘생긴 것처럼 행동하는" 남자였다(폴 러드가 영화에서 막춤 추는 장면만 모아도 5분짜리 클립은 너끈히 나올 것이다).

남부럽지 않게 똑똑한 스콧 랭은 도둑질하러 온 게 아니라 훔친 걸 되돌려주러 왔다고 해명하다 체포된다. 보통 같으면 말도 안 되는 바보짓에 각본가의 자질을 의심하겠지만, 폴 러드라면 얘기가 다르다. 멀쩡히 똑똑하면서도 얼간이의 실수를 심심찮게 저지르는 남자로 그는 그럴싸하다.

여기에는 ‘타인의 악의에 대한 방심’으로 요약할 수 있는 폴 러드 캐릭터 특유의 성향도 무관하지 않다. <아워 이디엇 브라더>(2011)의 농부 네드(폴 러드)는 우울증을 호소하는 정복 입은 경찰에게 유기농 대마를 한 줌 집어줬다가 옥살이를 해서 못난 놈 취급을 받는다. 이유 없이 남이 날 해칠 리 없다고 대충 믿는 폴 러드의 인물들은 위태로운 상황에 빠져도 천진하게 유유하다.

영화 속 그는 자기보다 작고 약하거나 뒤처진 상대들과, 가르치려는 자세 없이 쉽게 어울린다. 초등학생도, 집주인 할머니도 그를 붙들고 하소연한다. <40살까지 못해본 남자>(2005) <사고 친 후에>(2007)에서 유치한 철부지 남자들과 소파에서 속없이 뒹굴거리고 있는 반듯한 폴 러드를 보고 있자면 "이봐, 당신은 거기 속하지 않는다고"라고 외치며 귀를 잡고 끌어내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는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중이다.

배우가 보유한 자질을 곧장 슈퍼히어로 캐릭터로 연장했다는 점에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토니 스타크와 폴 러드의 스콧 랭은 유사한 예다.

다우니 주니어와 프랫에겐 없고 폴 러드에게 있는 것은, 살면서 모서리가 군데군데 닳은 부드러운 단념의 표정이다.

그의 캐릭터들은 실망하더라도 티를 내거나 곧장 노하지 않는다. <아이 러브 유, 맨>에서 동성 또래 친구를 사귀러 나간 자리에 할아버지가 나온 걸 본 피터(폴 러드)는 낙심하면서도 이런저런 담소를 나눈다.

스크린의 폴 러드는 언제나 지나치게 애쓰지 않는 남자다. 유일한 노력 분야는 농담 정도다. 영화 밖에서도 만만찮은 장난꾼이어서 <앤트맨> 촬영장에서 스콧이 줄어드는 장면의 상대역 연기를 찍을라치면 도와준다고 옆에서 몸을 동그랗게 웅크리거나 소파 뒤로 다이빙해 폭소로 인한 NG를 냈다고 한다.

이 장난스런 태평함에 로맨틱한 페이소스를 불어넣는 요소는 독특한 눈이다. 크게 치뜨는 일이 드문 폴 러드의 아주 옅은 카키색 눈은 때로는 저 너머를 보는 듯도 하고 다른 때는 안쪽으로 끝없이 가라앉아 있는 것도 같다(물론 그가 자주 하는, 숙취가 남아 있는 연기에도 매우 유용한 눈이다).

<앤트맨>의 페이턴 리드 감독은, <아이언맨> 시리즈와 달리 앤트맨의 헬멧 내부 숏을 찍지 않고, 슈트 입은 스콧이 헬멧을 젖힌 모습을 넣은 이유를 묻자 "폴 러드는 눈이 매우 아름답다. 앤트맨일 때도 그 눈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언젠가 베티 데이비스처럼 이 배우의 눈에 헌정된 팝송이 나오더라도 나는 놀라지 않을 거다. 어쩌면 벌써 나왔을지도?

폴 러드가 줄리엣의 구혼자 패리스로 분한 배즈 루어먼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오랜만에 다시 봤다. 그는 로미오에게 시선을 앗긴 줄리엣의 손을 붙들고 열심히 막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아가씨, 로미오 말고 저 물색없는 남자를 택해! 그래야 훨씬 길고 복된 생애를 누릴 수 있어!’

폴 러드가 연기하는 남자들은 숭배하진 않을지언정 싫어하기 매우 어렵다. 오죽하면 폴 러드는 어떤 외부자도 끝내 끼어들지 못한 6인조 시트콤 <프렌즈>의 일곱 번째 ‘프렌드’였다.

그러고 보면 호들갑 없이 꼭 필요한 연기를 꼭 필요한 만큼 완수하는 동시에 관객과의 친근감을 지속하는 이 배우는, 미국 배우와 영국 배우의 미덕을 아무렇지도 않게 아우른 케이스인지도 모르겠다.201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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