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시인들이 모여 요즘 젊은것들의 시는 소통이 안 된다고 호통을 쳤다. 정확하게 말해야지, 소통은 무슨, 자기들이 읽어보니 뭔 소린지 모르겠다고 해야지. 문학 담론에 소통 같은 말은 아예 없어져야 한다. 소통은 신문 기사 같은 글이 가장 잘되지 않는가.
〈왕좌의 게임〉 6 시즌 1, 2를 보았다. 존 스노우가 다시 살아난다는 이야기는 스포일러도 아닐 것이다. 여기에는 온갖 가능한 이야기와 불가능한 이야기가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섞여 있으나 그 안에도 의식의 진보라는 것은 있다. 아무튼 스노우는 살아난다.
〈왕좌의 게임〉은 무자비한 마키아벨리즘의 세계이지만, 거기에서도 최고의 책략은 세상이 어떻게 변해야 한다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리는 능력에서 나온다.
"그거 있잖아"라고 말하면 "있기는 개뿔이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과 그게 뭘까 생각해보는 사람과 그게 뭔지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다.
옛날 『0년 구멍과 뱀의 대화』 『서울의 밤』 같은 야릇한 책을 쓰고 『선데이서울』 등에 야설을 쓰던 박승훈이라는 교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무얼 하는지 모르겠다. 한때 재판도 받고 그랬는데. 봄날 일요일이라 별게 다 생각난다.
옛날에도 노랑나비는 흰나비보다 귀했다. 흰나비보다 노랑나비를 먼저 보면 짝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도 있었다. 그런데 여러 해 전부터 노랑나비가 아예 보이지 않는다. 짝사랑하는 사람들에겐 불행한 일이다. 짝사랑 같은 것은 아예 없어졌는지도 모르겠다.
"프랑스인들은 인종주의자이고, 한국인들은 민족주의자야." 시인 김이듬이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책의 원고에서 읽은 말. 한국에서 태어나 프랑스에 입양, 지금은 로맹롤랑 도서관의 사서인 여자가 이 말을 했다. 이 말을 읽으며 가슴이 찢어지도록 슬프다.
한글이 좋기는 좋다. 멊 같은 글자도 쓸 수 있고.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했다. 축하한다. 번역본 The Vegetarian은 헌국 문학을 전공한 영국인이 혼자 번역한 책이라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한국 문학 전공 외국인이 믾아지면 상을 탈 한국 문학 작품 많다.
번역도 글쓰기라는 사실은 잊히기 쉽다. 한국인이 한국 문학 작품을 외국어로 번역할 때 그 글쓰기의 한계는 명백하다. 그 결과를 놓고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이 윤문을 할 때 모든 말을 상투어로 바꾸어놓기 십상이다. 내용은 허술하고 표현은 상투어.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과 관련하여 한 신문이 ‘문학 한류’라는 제목을 뽑았다. 문학에 한류 같은 것은 없다. 정신 좀 차리자.
여자는 남자보다 약해야 하는데 여자가 자기보다 강하거나, 자기보다 강한 남자 곁에 있으면 턱없이 화를 내는 남자들이 있다. 실은 얼마 전만 해도 정규 교육 기관에서까지 여자는 남자보다 약해야 한다는 식으로(따지고 보면 그런 식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식민지 시대의 조선인들과 지금의 여자들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나를 공박하는 사람들이 있다. 약자들, 혐오받는 사람들에 대한 감수성의 문제겠다.
"여성 혐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 혐오다. 계층의 단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단절이다. 당신의 불행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불행이다." 말이 되는 것 같다. 의미 없는 말일수록 말이 되는 것 같다.
작은 수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가 무한정 친절할 필요는 없겠다.
여제자들이나 질녀들이 결혼에 대해 내 의견을 듣고 싶어할 때가 있다. 내 대답은 이렇다. 결혼하지 않아도 무방하고, 특히 여자들에게 결혼은 공부에 방해될 때가 많다. 그러나 혼자 살아도 성생활의 상대는 있어야 하고.
겸손이란 혼자의 힘으로는 못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때 가장 중요한 협조자는 시간이고 역사다. 삶이 내 세대의 생명으로만 끝난다면 나는 신중하게 살지 않을 수도 있다. 삶이 미래에도 속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여기서 힘도 얻는 것이다.
겸손은 경건함의 시작이고 자기 발견의 시작이다.
나는 내가 남자였기 때문에 얻게 된 이득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지 못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누구를 칭찬하는 것이 누구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대로 칭찬받을 일이 있다. 삶은 다양하고 그 가치도 다양하며, 서로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의 삶이다.
노란 꽃을 주세요 금이 간 꽃이라도 노란 꽃을 주세요 하얘져가는 꽃이라도 노란 꽃을 주세요 넓어져가는 소란이라도
이렇게 바꿔 읽어보자고 했더니, 한 노인이 매우 신기해하며, "시를 이렇게 쓰는 거구나"라고 말했다. 그 노인이 시 쓸까 걱정된다.
아무도 그런 말 안 하는데, 『채식주의자』가 매우 깊이 있는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관점에서도 읽혀졌으면 좋겠다.
‘읽혔으면’이라고 써야 할 것을 ‘읽혀졌으면’이라고 썼구나. 이건 중학교 때 영어 시간에 붙은 습관이 아직까지 남은 것이다. 그렇게 오래 글을 써왔는데도 어렸을 때 붙은 습관은 쉽게 교정되지 않는다.
그날은 모두가 웃고 있었고 당신은 술병을 높이 들어올렸다 아무도 모르게 둘이서만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헝클어진 신발들 틈에서 나는 당신의 신발을 한눈에 알아본다. ―유진목 『연애의 책』에서
안과에 갔더니 오타 내지 않느냐고 물었다. 심한 짝눈이어서 그렇단다. 방치하면 맞춤법까지 잊어먹는다고.
담배 끊은 지 1년 5개월, 이제 완전히 끊은 것 같다. 담배 생각 안 하고 글을 쓸 수 있다. 그런데 오래 못 쓴다.
누이가 산에서 넘어져 발목이 부러졌다.(인천 송도에도 산이 있나.) 남자 넷이 단가에 실어 운반했다. 아픈 것보다 몸무게 때문에 창피해죽을 뻔했다고. 단지 튼튼하고 건강한 몸일 뿐인데.
〈곡성〉에 대한 권석찬 논설위원의 의견은 훌륭하다. 논리적이고 희망적이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가 악의 근원을 ‘외지인’에게서 찾도록 사주하고(시골에서 자주 있는 일), 악한 세력의 가장 만만한 공격점이 여자아이라고 믿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싫다.
2005년부터 2010년 사이에 프랑스에서 나온 로맹 가리 연구서 10여 권을 도서관에 구입 신청했는데, 모두 품절이라서 구입할 수 없단다. 책을 몇 권이나 찍었는데 그럴까. 아마도 거의 모두 도서관에 들어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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