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상자도 잊지 않았다. 런던의 아스프리*에서 특별히 그를 위해 만든 것에, 좋은 친구인 미시카가 아주 적절하게도 ‘대사’라는 이름을 붙여준 가죽 상자였다.(* 1781년 런던에서 창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급품 상점.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과 상품을 만들어주는 서비스가 가능하다.)
백작은 동경 어린 눈으로 스위트룸의 북서쪽 구석에 있는 창문으로 다가갔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 앞에서 보냈을까? 얼마나 많은 아침을 가운 차림으로 손에 커피를 든 채 서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새로 온 사람들, 택시에서 내리는 사람들, 밤새 기차를 타고 온 탓에 지치고 초췌해 보이는 사람들을 지켜보았을까? 얼마나 많은 겨울밤, 천천히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어떤 땅딸막한 남자의 고독한 실루엣이 가로등 밑을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곤 했을까?
그는 등에 배낭 하나만 짊어진 채 20일이 넘게 여섯 나라를 거치고, 서로 다른 다섯 개의 국기 아래 전투를 벌이는 여덟 개의 군대가 있는 지역 언저리를 지나 마침내 1918년 8월 7일에 티히차스에 도착했다.
물건들에 계속해서 추억이 쌓여 점점 더 중요성을 띠게 되는 것을 허용한다.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주었다.
백작은 카운터로 다가가서 연푸른색 앞치마를 두른 소녀에게 밀푀유(얼마나 적절한 이름인가)* 하나를 부탁하고 나서 그녀가 티스푼을 사용하여 밀푀유를 은색 삽에서 도자기 접시로 부드럽게 조금씩 밀어서 옮기는 모습을 감탄하며 바라볼 것이다.(* 밀푀유는 ‘천 겹의 잎사귀’라는 뜻이 있다.)
한 시간 이내에 방의 물건들을 꼭 필요한 것들로만 줄였다. 방은 이제 책상과 의자 한 벌, 침대와 침대 옆 탁자 한 벌, 손님맞이용으로 필요한 등받이가 높은 의자 한 개, 그리고 신사가 사색에 잠긴 채 서성이기에 적당한 3미터 정도의 통로가 있는 공간이 되었다.
아마 그 자수들에는 뭔가 있었을 거야, 백작은 생각했다. 하나하나 소품을 완성하면서 동생이 익히고 터득한 어떤 부드러운 지혜가 담겨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랬다. 열네 살 때 보인 그 같은 다정한 마음씨를 생각하면 스물다섯의 나이에 동생이 드러내 보였을 우아함은 충분히 상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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