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해변이 그리워진 나는 살을 에는 추위와 호우 예보에도 불구하고 차를 몰아 에식스Essex로 두 번째 순례에 나선다.

나는 살짝 어지러움을 느낀다. 템스강이 50만 년 넘게 이곳을 흘렀고, 자갈 지층이 완성되었을 때 인간은 겨우 네안데르탈인으로 진화하려는 참이었다니.

이곳에서는 흔해서 찾기 쉬운 데다 붉은 바위층에 묻혀 살짝 녹슨 빛깔이라는 점만 빼면 그렇게 오래전에 쓸려온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엄연히 수백만 년 전의 화석들이다. 나는 오늘 두 번째로 아득한 과거의 흔적을 들여다보며 경이에 젖는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오늘 해변에서 찾은 것들을 지금껏 모은 조개껍질과 화석 옆에 펼쳐 놓는다. 채집한 식물과 화석을 늘어놓고 살펴볼 때 내 마음은 그림을 그리거나 빵을 반죽할 때와 비슷한 상태가 된다. 내면의 갈등이 누그러지고 평온이 찾아든다.

내가 아는 것은 단지 발견한 것들을 가지런히 늘어놓는 소위 ‘놀링knolling’이라는 행위가 스트레스를 덜어주고 은근한 도취감을 준다는 것이다.

다가오는 몇 달이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시기가 되리라는 것을 안다. 머릿속이 온통 오락가락하고 활력은 빠져나가 버렸다. 세로토닌과 도파민 분비 검사를 해보진 않았지만 이런 변화는 분명 12월에서 2월까지 뇌 내에 일어나는 화학작용 때문일 것이다.

마음이 이런 상태에 들어서면 아름다운 광경에 반응하는 능력조차 사라지는 것 같다.

내가 봄과 여름에 유난히 생기 있는 것은 눈에 들어오는 강한 햇살뿐만 아니라 앵초, 체꽃, 민들레, 벚꽃, 양귀비와 진초록빛 잎들이 이루는 현란한 풍경 때문이다.

햇빛이 약해지면 꽃은 시들고 풍경은 색채를 잃어버린다. 내 시냅스는 기력을 앗아가는 이중의 타격을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나 자신이 점점 고착되어 시무룩한 삿갓조개처럼 자리에 들러붙는 게 느껴진다.

나도 지난 8월에 여기서 산사나무 열매 수백 개를 따다가 진에 넣고 과일주를 만들었다. 장미과에 속하는 산사나무 열매로 담근 술은 터키시 딜라이트?와 아찔한 여름의 향내를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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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울한 계절이면 내가 찾아다니는 이런저런 사소한 광경이 있다. 미세한 식물학적 지표들, 결국에는 봄이 오고 말 거라며 나를 안심시켜주는 기분 좋은 신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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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미 Olika 만년필, 써보니까 괜찮다. 2,500원짜리 만년필이 Lamy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듯.

알고 보니 값싸고 성능 좋은, 거의 일회용에 가까운 만년필들이 많구나. 프레피, 파카 벡터도 써봐야겠다. 검은색이나 청색 잉크 만년필과 함께 붉은색 잉크 만년필도 필요하다.

한국에서 공부에 별 뜻이 없다가 외국에 나가 어떻게 박사학위를 얻어온 사람이 있다. 조심해야 할 사람이지만 특히 그 번역은 믿을 것이 못 된다. 내가 최근에 읽은 번역은 시종 한 문장도 맞지 않았다. 번역 전문가의 검증을 받는 게 좋으련만,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자기 번역이 문제투성이라는 것을 죽을 때까지 모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그가 교수라도 되는 날에는 누가 그를 가르칠 수 있겠는가.

변증법과 관련된 용어 가운데 하나인 ‘지양(止揚)’을 ‘벗어남’ ‘삼감’으로 순화했다는 것을 오늘 알았는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느와르’는 프랑스어 noir를 발음 그대로 적은 것이다. 그런데 문교부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누아르’라고 적어야 맞다. 그런데 왜 유독 이 단어만은 ‘느와르’라고 쓰는지 모르겠다.

비판에 비평 개념은 없고 비난 개념만 있으면 그것도 지옥이다.

누구의 책을 비판하려면 최소한 그 책을 읽어라. 신문 기사를 자동인형처럼 반복하며 그게 자기 의견인 것처럼 착각하지 말고.

인간은 복잡하고 섬세해서 자신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늘 타자화한다.

가을 소금, 여름 소금은 우리 어머니도 구분하셨다. 초여름의 소금을 가장 좋은 소금으로 쳤다.

구절판은 대갓집에서 아이들에게 젓가락질 연습을 시키기 위한 음식이라는 이야기도 그 집에서 들었다.

우리도 영미권처럼 방학중엔 교사들에게 월급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칼럼이 있다. 방학에 월급을 주지 않는 나라는 다른 기간에 월급을 많이 준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군. 연봉 개념이 익숙하지 않아선가. 이 나라 지식인들은 다른 직군에 대한 질투가 심하다.

원고 한 꼭지 마감했다. 한 번 읽고 보내야 하는데 읽기 싫다. 자고 나서 내일 보내기로 한다. 읽지 않아도 하루저녁을 묵혀둔다는 게 작은 위안은 된다.

나는 가끔 山林處士 선생의 트윗을 읽으면서 이거 고종석 선생 트윗 아닌가 의심할 때가 많다. 그 박식함하며, 그 문장의 또렷함하며, 그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증오하며.

아이를 키우면서 어떤 말들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 말들의 가짓수가 많기도 하다. 아이를 그렇게 먹물 단지 조심하듯 조심해서만 키우는 게 아이에게 꼭 이로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아이도 걸러서 들을 줄 안다. 아이의 판단력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우연한 인기를 권력으로 바꾸고 싶어하면 대개는 좋지 않게 끝나더군.

우리 선생님은 『악의 꽃』을 번역하다 돌아가셨다. 시 한 편에 100페이지 200페이지의 자료를 모으는 식으로 번역하셨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루에 5편도 번역한다. 생각을 더 해도 덜 해도 결과는 같으니까. 일종의 포기.

옛날에는 전자 기기 사면 매뉴얼 다 읽고 그대로 했다. 그후론 매뉴얼 안 읽고 대충 했다. 요즘은 읽어도 모르겠다.

칠레에서 여친을 때리고 눈을 도려낸 범인을 대법원이 23년형에서 18년형으로 감형하면서 살해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는데, 살해 의도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법이란 게 그렇다. 잔인성에 대한 죄도 있어야 한다. 인간성에 대한 모욕이니까.

(요즘은 농담에도 시비 거는 사람이 많아서.)

동네에 벽화를 그리는 것은 남의 생활 공간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리는 사람은 자기에게 그럴 능력과 권력이 있는지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시를 읽을 사람은 공짜로 읽을 생각 하지 말고 시집을 사서 읽어라.

요즘 가나다라……의 순서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종이 사전은 사용할 수가 없겠다. 심각한 문제 아닌가.

한국은 연구자 시장이 좁다. 대학이 대학원생들을 1/3도 수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젊은 시절 미국에서 이력을 쌓는다. 쓸 만한 논문은 거기서 다 쓰고 지쳐서 한국에 온다. 한국의 입장에서 미국은 연구자들을 기르는 곳이자 걸러내는 곳이다.

인문계, 그중에서 문사철 교수는 미국에서도 시장이 좁다. 문사철 대학원생들은 그걸 뻔히 알면서도 거의 열정만으로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걸 또 착취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왕좌의 게임〉을 복습하다 새삼 느낀 바지만 인간의 죄 중 비열함이 가장 큰 죄 같다. 그건 인간 전체에 대한 신의를 저버린 것이고 인간 자체를 모욕한 것이다. 비록 허위라 하더라도 용기와 신의에 열광하는 것은 인간이면 그렇게 돼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국 문학과 외국 문학의 관계는 특수성과 보편성의 관계와 같다. 외국 문학이 보편성을 확보하는 것은 언어 국경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현장 작품과 고전과의 관계도 마찬가진데 이제는 어떤 나라 문학도 자국 문학만으로 이 관계가 만족스럽게 해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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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uor1 2017년 6월 10일 오후 8:41모나미 Olika 만년필, 써보니까 괜찮다. 2,500원짜리 만년필이 Lamy와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듯.

한국에서 공부에 별 뜻이 없다가 외국에 나가 어떻게 박사학위를 얻어온 사람이 있다. 조심해야 할 사람이지만특히 그 번역은 믿을 것이 못 된다. 내가 최근에 읽은 번역은 시종 한 문장도 맞지 않았다. 번역 전문가의 검증을 받는 게 좋으련만,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자기 번역이문제투성이라는 것을 죽을 때까지 모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그가 교수라도 되는 날에는 누가 그를 가르칠수 있겠는가.

변증법과 관련된 용어 가운데 하나인‘지양(止揚)’을 ‘벗어남’ ‘삼감‘으로 순화했다는 것을 오늘 알았는데, 도무지이해가 가지 않는다.

‘느와르’는 프랑스어 noir를 발음 그대로 적은 것이다. 그런데 문교부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누아르‘라고적어야 맞다. 그런데 왜 유독 이 단어만은 ‘느와르‘라고 쓰는지 모르겠다.

비판에 비평 개념은 없고 비난 개념만있으면 그것도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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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문장 부호 세미콜론. 우리도 문장에 세미콜론 썼으면 좋겠다. 한국어는 어쩌고저쩌고하면서 그런 것 필요 없다고 할 놈이 하나가 아니라지만.

유럽에서 파시즘을 선도하거나 그에 경도했던 인물들 가운데는 나의 투쟁, 나의 젊은 날, 나를 키운 문화 등등의 제목으로 글을 쓴 사람이 많다. 중요한 것은 투쟁이나 젊은 날이 아니라 ‘나’다.

내게 시가 무엇인가를 체계적으로 가르쳐준 최초의 책. 중3 때 읽었지만 이 책이 그 책은 아니다. 나중에 동대문 헌책방에서 다시 산 책.

좀 늦었지만 이 책을 추천한다. 영화 〈콘택트〉의 원작 소설이 들어 있어서 유명해진 이 책에서는 철학적으로든 미학적으로든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상상력을 만날 수 있다.

미세먼지에 관한 택시기사의 말. 황사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매연조차도 별것 아니라고. 문제는 마모된 타이어 가루라고, 그게 거리 거리에 깔려 있으니 우리는 발암 물질 사이를 헤엄쳐 다니는 것과 같다고.

빈정거릴 일에나 아닌 일에나 빈정거리는 사람은 그 빈정거림이 결국 자신을 향하게 된다. 그는 늘 똑똑한 체하지만 자기 재능을 실현시킬 용기를 갖지 못한다.

어려운 책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되면 ‘남들도 다 모를 것이다, 저자도 무슨 소린지 모르고 썼을 것이다’라고 생각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지적으로 막장에 다다른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렵다는 것을 누가 실증적으로 연구했다고 하는데, 옛날에도 개천에서 용 나오기는 쉽지 않았다. 개천에서 그렇게 쉽게 용이 나올 수 있었으면 왜 그런 말이 생겼겠는가.

강경화씨의 외무부장관 내정을 환영하고 축하한다. 그러나 유엔의 조직과 한국 외무부 조직은 매우 다를 텐데 걱정도 된다. 그 끔찍한 아재 문화와 어떻게 싸울 것인지.

일본에는 화석이 된 유럽 같은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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