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사람들에게 함부로 자폐니 뭐니 이름을 붙이고 자기 멋대로 분류하는 것도 폭력이다. 사람은 사람마다 그 깊이가 있고 그것은 쉽게 짐작할 수 없다.
바람은 먼 숲으로 지나가고 꽃들은 이울어 다시 피지 않으니 이제는 그대와 나 같이 살 날이 없네. ?18세기 소설 속에 이런 시구가 있다.
하룻밤 자려고 만리장성 쌓는다는 잘 알려진 말. 많은 사람의 인생이 다 그런 것 같다. 그 하룻밤이 거기 이르기까지의 삶을 지켜주기도. 오늘을 즐기라 외치는 사람들조차 그렇다. 저 하룻밤이 오늘의 모델이다. 그 밤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지만.
트윗에 쌀 알레르기 있는 아이에게 강제로 밥 먹여서 아이 병원에 가게 만든 아버지 이야기가 있다. 남자다운 것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한다고 믿는 아버지들이 아직도 많다.
새희망씨앗의 전화를 나도 받은 적이 있다. 자선 단체를 내걸고 전화하는 사람이 많은데 대개 사기꾼들이지만 불우 아동 등을 내세우고 있어 전화를 끊기 어렵다. 이럴 때는 ‘나는 이런 전화 받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전화기를 내려놓는 것도 방법이다.
닭을 친환경적으로 기르면 계란값은 1000원 이상이 된다고 한다. 소비자들은 요구하는 수준이 높은데, 그만큼의 비용은 지불하려 하지 않는다.
중국이나 일본이 망해서 우리에게 좋을 일이 뭐가 있을까. 설사 좋을 일이 있다 한들 남이 망하기를 바란다는 게 옳은 일인가.
음악인 조동진씨가 별세했다. 조동진씨의 가사에는 한 편도 허투루 쓴 것이 없다. 그의 시에는 진정한 의미의 ‘전’이 있다. 감정의 반전은 스토리의 반전보다 더 심각한 어떤 것이 있음을 그 가사가 보여준다.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말했다, 설명했다, 주장했다…… 같은 말을 언어학에서 전달사라고 한다. 요즘에 이런 전달사를 아무렇게나 입에 씹히는 대로 붙이는 기사들이 많다. 글쓰기의 능력이 없어서도 그렇고 마음을 비워놓지 못해서도 그렇다.
개나 고양이의 죽음이 다른 죽음보다 더 슬픈 것은 개나 고양이가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고, 그래서 작별 인사 같은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욕탕에서 일하는 허리 굽은 노인이 거울을 깨끗이 닦아놓고 흐뭇해서 바라본다. "주인집 빨래를 해도 내 발꿈치 희어지는 재미로 한다"는 말이 있다. 인간은 어디서나 자기를 실현할 기회를 찾지만 존중되어야 할 그 열망이 자주 착취되기도 한다.
못 써도 고결하고 아름다운 글씨가 있고 잘 쓴 것 같은데도 무언가 마뜩지 않은 글씨가 있다. 나는 내 글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글씨가 달라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컴 세상이 오지 않았으면 나는 글을 쓰지 않았을지 모른다.
살아 있는 것 같은 책들이 자주 출판된다. 『사무치게 낯선 곳에서 너를 만났다』 저자 이주영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렸다. 낯선 곳에서 자기를 확인하려는 용기가 아마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내 고향 말에 ‘새수가리 없다’는 표현이 있다. 어떻게 된 말인지 늘 궁금했다. 아마도 새수가리는 소갈머리를 뜻할 것이다. 그러니 새수가리 없다는 ‘속없다’ 곧 ‘생각에 줏대가 없다’는 말일 것이다. 별게 다 생각나서.
예술이 지향하는 이상 가운데 하나는 아름다우면서 쓸모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해하지 말 것은 이 쓸모없다는 것은 ‘지금은 쓸모가 없다’는 말이다. 그것의 쓸모를 찾아내는 것이 문화의 발전이기도 하다.
아내는 홈 쇼핑에서 자기가 이미 구매한 상품의 광고를 보기도 한다. 신상품을 구입한 직후 매우 행복하지만 구입하기 직전만큼 행복하지는 않은 것 같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취준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미래에 없어질 직업에 첫번째로 번역가를 꼽았다고 한다. 이런 생각은 번역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하겠지만, 영혼 없는 번역들이 이런 생각을 부추기기도 했을 것이다.
뜬금없이 장기판과 장기말을 샀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플라스틱이 아닌 나무로 깎은 장기말을 본 것이다. 장기를 두게 될 시간은 끝내 오지 않겠지만.
한국 방송에는 코미디언들이 잠시 군인이 되어 온갖 바보 노릇을 다 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한국 군대 그 자체가 코미디라는 강력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말도로르의 노래』를 출판하기 위한 모든 일을 다 끝냈다. 『현대시학』에 연재하다가 중단했던 번역을 끝냈고, 그 번역을 수정했으며, 책 뒤에 붙여야 할 해설도 썼다. 이 책의 쓸 만한 한국어 번역본이 이제야 나온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밤이 선생이다』 『우물에서 하늘 보기』 이후 제가 쓴 글들을 모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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