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수대 앞에 있던 엘리자베스와 우연히 부딪쳤다가 머리카락 향기가 훅 끼쳐왔을 때도 캘빈은 기절하지 않았다. 어떻게 머리카락에서 그런 냄새가 날까. 이 여자는 혹시 꽃으로 머리를 감는 걸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일하지 않을 때도 일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창의성과 독창성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여 불을 붙이면서 말이다.
훗날 과학계는 두 사람이 이룬 업적의 어마어마한 생산성에 경탄했지만, 만약 그들의 업적이 대부분 벌거벗은 채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더더욱 경탄했을 것이다.
타인의 어린 시절을 끝까지 파헤쳐서 쟤는 대체 누구 때문에 저런 사람이 되었는지 속속들이 파고들고 싶은 욕망은 다들 있는 것 아니겠는가? 엄격한 부모님 때문이었구나, 항상 이기려 드는 형제자매 때문이었구나, 미친 고모가 있기 때문이었구나 하며 이런저런 판단을 내리는 게 사람의 습성이다. 두 사람 역시 그런 욕망이 있었다.
그리하여 가족 이야기는 마치 유서 깊은 고택을 탐방하다가 마주친 ‘출입 금지’ 방 같은 화제가 되었다.
네가 많이 힘든 환경에서 자라나서 남의 마음을 헤아리기 힘들 수도 있다는 건 알아. 하지만 부모님이 있는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꼭 그 가족의 일원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법은 없어.
"캘빈, 내가 배운 게 하나 있어.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복잡한 문제를 풀 때 언제나 간단한 해결책을 간절히 바란다는 점이야.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설명할 수 없고, 변할 수 없는 걸 믿는 편이 훨씬 쉽거든. 실제로 보이고 만져지고 설명할 수 있는 걸 믿기는 오히려 어려워. 말하자면 실재하는 자기 자신을 믿기가 어렵다는 말이지."
꾸준히 슬픔을 먹으며 자라난 사람은 다른 이가 자신보다 더 큰 슬픔을 먹고 살았다는 걸 이해하기 힘든 법이다.
"어렸을 때 난 스스로 이렇게 말하곤 했어. 살아갈 날이 많으니까 힘내자, 내일은 달라질 거야. 뭐든 좋은 일이 일어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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