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친구로부터 과소평가받아왔다고 한다면, 그것은 기분이 상할 이유가 된다. 왜냐하면 친구란 모름지기 서로의 능력을 과대평가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친구는 우리의 도덕적 강인함에 대해, 미적 감각에 대해, 지적 시야에 대해 과장된 견해를 가져야 한다.

친구라면 우리가 한 손에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다른 손에는 권총을 들고 결정적인 순간에 창문으로 뛰어나가는 모습을 실제로 상상해야 한다!

백작은 전에 그 사내를 본 적이 한 번인가 두 번밖에 없었지만, 급하게 걷고 급하게 말하고 심지어 급하게 걸음을 멈추기까지 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어떤 기관의 인민위원이 틀림없었다.

할머니는 저녁 만찬 시간은 사람들에게 일시적으로나마 삶의 고단함과 시련으로부터 벗어나 한숨 돌릴 수 있는 안온함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백작은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신 다음 평소 하던 대로 메뉴를 식사 순서의 역순으로 살펴보았다. 앙트레를 정하기 전에 애피타이저를 먼저 고르면 결과적으로 후회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곧잘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곤 했었다. 인내라는 것은 그토록 쉽게 시험당하기 때문에 우린 인내를 미덕으로 여기는 거야…….

이 지상에서의 한 인간의 시간은 유한하고 어느 순간에든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리는 어떤 생활 방식이 쇠퇴하기까지는 수 세대가 걸린다는 생각에서 위로를 찾기 마련이다. 어쨌든 우리는 조부모들이 좋아했던 노래들에 익숙하다. 비록 우리 자신들은 그 노래들에 맞추어 춤을 추지는 않는다 해도 말이다. 명절 때 우리가 서랍에서 꺼내 살펴보는 요리법은 변함없이 수십 년을 이어온 것들이고, 심지어 오래전에 사망한 친척이 손으로 써서 남기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우리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은? 동양식 커피 탁자나 고풍스럽게 낡은 책상들은 대대로 물려주고 물려받는 것들이 아니던가? 그것들은 ‘유행에 뒤떨어진 것’임에도 우리네 일상에 아름다움을 더해줄 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은 빙하의 움직임처럼 더딜 것이라는 우리의 추측에 물질적 신뢰성을 부여한다.

어떤 상황 아래서는 이 시간의 진행이 상대적으로 아주 짧은 동안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백작은 이제 인정하게 되었다. 민중의 궐기, 정치적 혼란, 산업의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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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9-27 16: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모스크바의 신사 시작하셨군요. 링컨 하이웨이 생각하면 이 책도 재미있을 듯요.

라로 2022-09-27 16:23   좋아요 1 | URL
넵! 시작했어요!! 링컨 하이웨이 지난번에도 말씀하셨는데 정말 재밌나봐요? 저도 읽고 싶어요, 사실 에이모 토울스는 믿을 만한 작가니까요.^^;;

레삭매냐 2022-09-27 1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전 <링컨 하이웨이> 닐거야
하는디... 어디에 두었는 지도 모
르겠네요.

라로 2022-09-28 14:38   좋아요 1 | URL
하하하 어디 있겠죠!!! ㅎㅎㅎ 책이 너무 많으시니 충분히 공감합니다!!! ㅎㅎㅎ
저 모스크바 다 읽으면 찾게 되길…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링컨 하이웨이 같이 읽기를…^^
 
[eBook] 레슨 인 케미스트리 2 레슨 인 케미스트리 2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평점 :
판매중지


1권은그래도 재밌다는 미덕이라도 있었는데 2권은 완전 신데렐라 스토리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실망했다. 서사의 흐름이 갑자기 해피엔딩, 신데렐라 식의 마무리,, 엘리자베스라는 멋진 인물이 2권에서는 입체감 제로. 1권 이후 결말은 편집자에게 쫓겨서 갑자기 결론짓는 느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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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2-09-26 14: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라로님 다 읽으셨네요~
2권은 1권 보다 별로라니 2배속으로 들어야겠군요...

라로 2022-09-27 01:2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좀 볗로였어요 전. 급작스러운 결말. 저와는 좀 안 맞는. 하지만 여기서 늘 주장하는 말은 많은 도움이 되죠! 톡톡튀던 맛이 덜해서 아쉬운 것도 있고. 2배속으로 읽으신다니 ㅎㅎㅎㅎ

바람돌이 2022-09-26 16: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안타까움.... 도서관에 이 책이 계속 대여중이라 아직 못읽고 있는데 읽을까 말까 고민되게 하는 100자평이군요. ^^

라로 2022-09-27 01:25   좋아요 0 | URL
인기가 많은 책인 것 같아요. 저와는 달리 바람돌이님은 좋아하실 수도 있어요. 좋아하시는 분들 많은데. 그냥 기다려 보시고 읽으신 후 판단을 해주세요. ^^

유부만두 2022-09-27 0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쵸… 마무리가 한국 드라마 같고 막..
2권은 늘어지더라고요.

라로 2022-09-27 16:25   좋아요 0 | URL
진짜 이 책 좀 산만하고 막 그랬어요,, 저도 이 권은 읽기 싫은 거 억지로 읽었어요,, 사실 별 3개를 줘야 하는데,,ㅋㅋ
 
[eBook] 레슨 인 케미스트리 1 레슨 인 케미스트리 1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평점 :
판매중지


기대가 컸는지 실망도 좀 있었다. 처음의 그 톡톡 튀면서 발랄한 느낌이 끝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인물들도 입체감이 없었다. 그렇다고 재미없게 읽은 건 아닌데 끝이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가 되는 것 같은 느낌과 산만함은 어쩔~. 그래도 별 4이다. 재밌는 부분과 몇몇 좋은 문장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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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니야, 아니다. 그런 잡지가 아니야. 가끔 웃고 싶을 때 이걸 읽는단다. 난 직업 특성상 웃을 일이 많지 않거든."

목사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목사라는 직업의 문제점은 하루에도 몇 번씩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걸 그리워할 수는 없대요. 하지만 난 경험한 적 없어도 그리워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비밀은 있다고 생각해. 특히 비밀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알고 보면 비밀이 있지. 평생 아무것도 부끄러워하거나 민망해하지 않고서 살 수는 없거든."

조상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네가 중요하거나 똑똑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란다. 너를 너답게 만드는 건 조상이 아니야.

"그럼 나를 나답게 만드는 건 뭐예요?"
"네가 선택하는 것들이지. 네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 너를 너답게 만든단다."

둘은 서로가 동갑일 뿐 아니라 공통점이 두 가지 더 있다는 걸 알아냈다. 바로 수상 스포츠를 광적이다시피 좋아한다는 점(캘빈은 조정을 했고 웨이클리는 서핑을 했다), 그리고 맑은 날씨에 집착한다는 점이었다.

하나님은 참으로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움직이시는구나.

오늘 우리는 세 가지 서로 다른 화학 결합을 공부할 겁니다. 바로 이온ionic 결합, 공유covalent 결합, 수소hydrogen 결합입니다. 왜 결합을 공부해야 할까요? 결합을 공부하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초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소 결합은 이 셋 중 가장 약하고 섬세한 결합입니다. 저는 이것을 ‘첫눈에 반한 사랑’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양쪽 다 그저 상대의 시각적 정보만을 근거로 끌리기 때문입니다.

숙녀분들. 만약 뭔가가 진짜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좋아 보인다면, 대부분 생각처럼 진짜일 리 없다는 걸 화학적으로 알려주는 표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봤지? 내가 뭐랬어? 너랑 그 남자애는 그저 수소 결합일 뿐이야. 언제쯤 정신 차리고 이온 결합할 만한 남자를 잡을래?"

"화학은 삶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룹니다. 그 말에 따르면 화학은 바로 삶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파이처럼 삶에는 튼튼한 토대가 필요합니다. 가정에서는 바로 여러분이 그 토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는 일에는 엄청난 책임감이 필요합니다. 이토록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주는데도 세상에서 가장 저평가되고 있지요."

"그럼 얘들아, 상을 차려라. 너희 어머니는 이제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모든 인간은 같은 조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기란 인간이 가족과 친구에 대해서 아주 악랄한 글을 써놓고 제발 그들이 보지 말아주십사 신에게 비는 것이었다.

나쁜 일을 겪었을 때 대처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 뭔지 아니?"
그녀는 귀에 꽂은 연필을 더듬으며 말했다.
"나쁜 일을 거꾸로 원동력으로 삼는 거야. 나쁜 일에 사로잡히는 걸 거부하렴. 맞서싸우렴."

"물질은 창조될 수도 파괴될 수도 없어. 재배열될 뿐이지. 한 마디로 말하자면, 토미 딕슨 옆에 앉지 마"라고 쓰여 있었다.

왜 남자들은 여자들이 남자 성기를 보면 꼼짝 못 하거나 무서워할 거라고 생각할까.

"그래서 저는 용감한 로자 파크스를 비롯한 민권 운동 지도자들을 지지합니다. 피부색에 근거한 차별은 과학적으로 터무니없을 뿐 아니라 대단히 무식하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저씨도 아시잖아요. 믿음에는 종교가 필요 없어요. 그렇지 않나요?"

"왜냐면 말이지, 알잖니, 종교는 믿음을 필요로 하거든."

위험에 대처하는 최고의 방안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존중하는 겁니다.

이토록 비열한 사람은 처음부터 그랬던 게 아니라, 남들로부터 비열한 대접을 받은 나머지 인간성이 그렇게 변한 것이니까.

"왜 펜이 아니라 연필을 쓰냐는 질문인가요? 잉크와는 달리 흑연은 지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실수하는 법이죠, 로스 씨. 연필은 실수해도 지운 다음 새로 쓸 수 있게 해줍니다. 과학자들은 실수가 당연히 일어나리라고 예상하기 때문에 실수를 포용합니다."

"개는 전부 물 줄 압니다. 모든 인간이 남을 해칠 능력을 지닌 것과 마찬가지로요. 그러니 누굴 해칠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좋습니다."

언론계에 자명한 이치가 있다면, 바로 기자가 질문을 멈추었을 때에야 비로소 인터뷰 대상이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사과는 말로 이루어지는 법이 좀처럼 없는 법이다.

여자들이 화학을 이해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하기 시작할 테니까요.

물리적 세계를 지배하는 진짜 규칙 말이죠. 여자들이 이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하면 그들을 위해 창조된 세상의 그릇된 한계를 보게 될 겁니다.

이기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문화적 관념으로 일부러 다른 이의 앞길을 막는 자들은 부정직할 뿐 아니라 참으로 게으른 인간들이에요.

대체 난 뭐가 문제지? 다른 이의 문제와 비극은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면서 자신의 상황에는 감사할 줄 모르는 나쁜 습관을 지닌 숱한 사람들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그 강의에서는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배우는 게 아니라, 우리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배운다.

"제가 요리에서 좋아하는 부분은 바로 요리가 본질적으로 유용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음식을 만들며 그저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만이 아니라 세포에 에너지를 주고 생명을 유지하는 무언가를 창조합니다. 요리는 다른 이들이 창조하는 것과는 아주 다릅니다.

세상은 무식한 사람들로 가득하지.

"아니야. 그렇지 않아. 모든 부모는 생활비를 벌어야 해. 그게 어른이란다."

어른들은 진실과 종잡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어떤 때는 진실을, 또 어떤 때는 거짓을 택하는 게 어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아주 못됐어. 그렇다는 생각이 들면 네 생각이 맞아."

사람은 저마다 한계점이 있게 마련이다.

매력의 원천은 바로 자신감이었다. 자신이 누군지 확실하게 아는 자가 내보이는 분명한 기색.

자식이 돈을 지지리도 못 버는 분야에 평생 헌신하겠노라 선언하는 말을 들은 어머니가 속내를 감춘 채 겉으로는 자랑스러운 척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그녀도 울음을 터뜨렸다.

제일 어려운 일은 학업을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니라 그럴 용기를 갖는 거란 사실을요."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이것만 기억하십시오. 용기는 변화의 뿌리라는 말을요.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니 내일 아침 일어나면 다짐하십시오. 무엇도 나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내가 뭘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더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규정하지 말자고. 누구도 더는 성별이나 인종, 경제적 수준이나 종교 같은 쓸모없는 범주로 나를 분류하게 두지 말자고. 여러분의 재능을 잠재우지 마십시오, 숙녀분들. 여러분의 미래를 직접 그려보십시오. 오늘 집에 가시면 본인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시작하십시오."

세상에, 내 사무실이 되니 청소하는 것도 너무 좋아!

엘리자베스 조트가 해리엇의 삶에 들어온 뒤 그녀는 마침내 깨달았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새 옷이나 헤어스타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어쩌면 정말 필요한 건 직업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특히 잡지 분야의 직업 말이다.

우리는 서로 화학 작용을 일으켰어요. 그건 우연한 사고가 아니었다고요."

과거는 그저 과거로 남겨두는 게 좋은 법이라고, 과거에서만 모든 게 말이 되기 때문이라고.

성차별은 성별을 이용해 권력과 경쟁의 영역을 좁혀가는 전략입니다.

편견을 ‘생물학적 사실’이라고 조작하며 타인의 재능을 배제한다는 걸 알아두십시오.

우리 마음속엔 언제나 무언가 이루고픈 욕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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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이 오븐의 온도를 232도로 해서 농어의 살은 부드럽고, 회향의 향은 향긋하고, 레몬 조각은 검게 타서 아삭아삭하도록 요리한 것이었다.

백작은 와인을 따르면서 드라이한 몽라셰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에밀의 농어 요리에 아주 잘 어울리는 와인으로, 분명 안드레이가 골랐을 것이다. 백작이 여배우를 향해 잔을 들어 올렸다.

매일 밤 저녁 식사로 생선을 먹는 것보다 더 안 좋은 삶을 살았을 수도 있잖아요.

해 질 녘에 엄마 몰래 집을 나와 마을의 굽이지고 경사진 길을 걸어 내려가곤 했다는 것이다. 해안가에 있는 아빠를 만나서 아빠가 그물을 수리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얘기를 들으면서 백작은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의 미덕을 다시 한번 인정해야 했다.

첫인상이라는 것은 단지 하나의 화음이 우리에게 베토벤에 관해 말해줄 수 있는 것, 또는 하나의 붓 터치가 우리에게 보티첼리에 관해 말해줄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너무 변덕스럽고 너무 복잡하고 엄청나게 모순적이어서 우리가 숙고해야 할 뿐만 아니라 거듭 숙고해야 하는 존재다.

인간은 우리가 가능한 한 많은 상황에서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겪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에 관한 견해를 보류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그곳엔 사과나무 숲이 있지요. 우리 러시아처럼 오래되고 자연적인 사과나무 숲이 있어요. 그 숲에서는 사과들이 무지개 빛깔처럼 갖가지 색깔로 자라죠.

"삶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생각에는 확실히 매력적인 게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어떻게 집과 여동생과 학창 시절의 기억들을 포기할 수 있겠어요."

젊은 남자로서 백작은 평소 한발 앞서 상황을 이끄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적시에 나타나기, 적절한 표현, 필요한 것을 예측하기……. 백작에게 이 같은 것들은 교양 있게 잘 자란 남자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한발 뒤처지는 것이 그 나름의 장점이 있다는 것을 백작은 새삼 깨달았다.

남녀 간의 사랑에서 한발 앞서는 것은 부단한 경계심을 요하는 일이다.

달리 말하면 남녀 간의 사랑에서 한발 앞서는 것은 진이 빠지는 일인 것이다. 반대로 한발 뒤처지는 것은? 유혹당하는 것은? 음, 그것은 의자에 기대앉아 와인을 홀짝이며 상대의 질문에 머릿속에 맨 먼저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말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한발 뒤처지는 것이 한발 앞서는 것보다 더 편안하면서 더 자극적이기까지 했다.

어쨌든 불과 몇 시간 전에 백작 자신이 관찰한 것처럼, 잘 훈련된 개에게는 노련한 사람의 손이 어울리는 법이다.

그들이 자정에 나도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그 시간에는 이 세상의 감정이 서린 잡스러운 소리와 분노 같은 것들에 시달리는 일 없이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생전의 그 모든 노력과 분투, 희망과 기도, 두 어깨에 짊어졌던 기대감, 참아야 했던 여러 견해들, 품위 있게 살고자 했던 바람, 그리고 수많은 대화들을 뒤로한 지금,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약간의 평화와 고요일 뿐이다. 이 생각이 옳든 그르든, 아무튼 백작은 복도를 걸어가면서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커피 한 잔보다 더 많은 쓰임새가 있는 게 어디 있겠는가? 우아한 리모주 도자기 컵에 마시든 집에서 양철 컵으로 마시든 간에 커피는 새벽녘에 부지런한 사람의 기운을 북돋우고, 정오에는 생각에 잠긴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밤중에는 괴로운 사람의 정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

"라일락이 피면 벌들은 알렉산드롭스키 정원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꿀에서 라일락 맛이 나지요. 그렇지만 일주일쯤 지나면 벌들은 사도보예 환상도로로 날아갈 것이고, 그러면 꿀에서 벚꽃 맛이 날 겁니다."

그리하여 여름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고, 불이 사위기 시작하고, 벌들이 머리 위에서 빙빙 돌기 시작했을 때, 두 사람은 각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었다. 길을 달리는 마차 바퀴가 덜컹거리고 잠자리가 풀밭 위를 날아다니고 시야가 온통 사과꽃으로 가득하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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