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간쯤의 나이에 벌써 쓸쓸함을 안다. 깨고 나면 달콤했던 예전의 쓸쓸함이 아니고 쓸쓸함은 이제 내 머릿골속에서 중력을 갖는다. 쓸쓸함이 뿌리를 내리고 인생의 뒤켠 죽음의 근처를 응시하는 눈을 갖는다. 어떤 거대한 힘에의해 보이지도 않게 조금씩 망가져가고 있는 기분이 들기때문이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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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길고 편안한 숨을 들이쉬었다. 인생에 걱정거리라고는 놀랄 만큼 적고, 자기 일을 좋아하며, 딸과 잘 지내고, 결혼 생활도 기대만큼 평탄한 여자.

"매덕스를 데려온 우리가 참 순진했어." 재니스가 말했다. "어린 여자애를 엄마한테서, 살던 동네에서, 학교에서 떼어내 데려와서는, 그냥 그 모든 것에 잘 적응할 거라고 생각했다니." 그녀의 시선이 허드슨 강 쪽으로 향했다. "어떻게 그 애가 그냥 고마워할 거라고 여겼나 몰라."

그녀에 대한 기억은 점차로 희미해지다가, 마침내는 누구나 살아가다 겪는 불쾌한 기억 중 하나가 될 운명이었다.

지하철역은 겨우 몇 블록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타임스 스퀘어의 인파 사이를 걸어갔다. 범죄의 냄새가 희미하게 풍기는 부류와 정신없는 관광객들이 뒤섞이는 시간대였다.

시간이 지난 뒤에 아이들이 인식하고 기억하는 것은 어른들이 아는 것과 완전히 다를 수 있으니까. 혹은 어른들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어쩌면 그 애는 애초에 그렇게 살게끔, 그 암울하고 불 꺼진 곳에서 죽게끔 운명지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아는 건 단 한 가지다. 내게 있어, 그리고 모든 부모에게 있어,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이란 그저 어둠 속을 더듬어 나아가는 것뿐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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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고인을 위해 한마디 해야죠!" 그가 외쳤다. "그 아가씨는 말했어요, 사람들에게 친절히 대하라고.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는 감정이 북받쳐 얼굴이 벌게진 채 다시 앉았다.

그는 궁금해졌다. 만약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했다면,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했을까?

제일 좋아하는 단편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깨끗하고 환한 곳」으로, 해야 할 말을 다 했고 깊은 감정과 이해를 불러오며, 그 모든 것을 깨끗하고 환한 문장으로 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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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행동은 전투 현장에서의 승리는 바로 군화의 광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경험으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지난밤에 문질러 닦은 덕에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고리에 걸린 냄비들은 분명 뭔가 잘 풀릴 것 같다는 느낌을 넌지시 비치는 듯했다.

3시께에 뿌리채소들이 썰리는 소리를 들으며 지글지글 익어가는 마늘 향을 맡았을 때는 존재라는 것이 나름의 위안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마지못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낭비하지 않으면 부족하지도 않는 법이고, 돈은 빌리지도 빌려주지도 말아야 하는 법이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구별해내는 게 신사의 일이지요."

"벨기에 남부의 왈롱 사람을 모욕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를 프랑스 사람으로 오인하는 겁니다. 두 지역 사람들이 불과 몇 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고, 또한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특정한 와인을 주문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고향의 추억은 가장 바람직한 이유 가운데 하나지요.

새벽 1시, 공모자들이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그들 앞의 탁자에는 촛대 하나, 빵 한 덩이, 로제 와인 한 병, 그리고 부야베스* 세 그릇이 놓여 있었다.(* 향신료를 많이 넣은 프랑스 남부 지방의 생선 스튜.)

그들은 지나간 왕년의 시절에 대해, 간절히 바라는 바와 멋진 일들에 대해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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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는 어마어마하게 늙었고 인류는 너무나도 어리다.

생산된 정자 또는 난자 세포의 10퍼센트가 다음 세대의 구성을 결정짓는, 새롭고 후세에 유전되는 변화를 겪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돌연변이는 무작위적으로 발생하고, 거의 모든 돌연변이가 생물에게 해롭다. 정교한 기계가 무작위적 설계 변화를 통해 성능이 더욱 개선되는 일은 거의 없는 법이다.

(동양인이 백인보다 조금 더 뇌가 큰 편이다.)

가장 큰 공룡도 향유고래의 뇌의 1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뇌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도대체 고래는 그토록 무거운 뇌를 가지고 무엇을 하는 것일까? 고래들도 생각을 하고, 통찰력을 발휘하고, 예술을 즐기고, 과학을 발달시키고 전설을 남기는 것일까?

우리가 아기나 다른 새끼 포유류들에게 특별히 매력을 느끼는 것 역시 몸무게 대비 뇌 무게의 비율의 중요성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기 때문은 아닐까?(아기나 새끼 동물은 성인이나 다 자란 동물에 비해서 신체 대비 머리의 비율이 크다.)

악천후 때문에 알프스 산 속에 갇히게 된 영국의 문인들은 누가 가장 무서운 소설을 쓰는지 내기를 벌였다. 그중 한 사람이었던 메리 월스톤크래프트 셸리(시인인 퍼시 비시 셸리의 아내로, 당시 셸리와 바이런에게 힌트를 얻어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썼다고 전해진다. ? 옮긴이)가 창조해 낸 괴물이 바로 그 유명한 프랑켄슈타인 박사이다. 엄청난 양의 전기가 몸 속에 흘러 들어와서 프랑켄슈타인은 새 생명을 얻게 되었다. 그 후로 전기 장치는 괴기 소설이나 공포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근본적으로 갈바니의 실험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사실상 그릇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개념은 많은 서구의 언어에 스며들어 갔다. 예를 들자면 지금 나는 이 책을 쓰도록 ‘자극받은(galbanized)’ 상태이다.

인간의 뇌는 약 1013개의 시냅스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인간의 뇌가 가질 수 있는 상태의 수는 2를 1013번만큼 곱해 준 수, 즉 2의 1013제곱 개이다. 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 수이다. 심지어 우주 전체에 존재하는 기본 입자(전자와 양성자)의 수도 이에 훨씬 못 미치는 2의 103제곱 개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뇌가 취할 수 있는 기능적 구성 상태의 수가 이처럼 어마어마하게 크기 때문에, 심지어 같이 태어나 같이 자란 일란성 쌍둥이라고 할지라도 완전히 동일한 순간이 결코 존재할 수 없다.

뇌의 구성 상태의 가능한 수가 이처럼 어마어마하게 크다 보니 인간 행동에는 항상 예측할 수 없는 측면이 도사리고 있고, 우리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에 놀라게 되는 순간이 있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가능한 모든 뇌의 상태가 실제로 모두 실현되는 것은 아니며, 구성 가능한 마음 가운데 상당수는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어떤 사람에게도 단 한 순간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고 결론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은 참으로 독특하고 귀한 존재이며, 그로부터 우리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윤리적 결론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낼 수 있다.

미세 회로의 존재는 지능이 몸무게 대비 뇌의 무게 비율뿐만 아니라 뇌에 있는 특화된 교환 소자의 발달 정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임을 암시한다. 또한 실제의 미세 회로들로 이루어진 뇌는 앞의 단락에서 계산한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각 개인의 뇌가 가진 놀랄 만한 독특성을 한층 더 강조해 준다.

대뇌피질의 증가는 어린 쥐뿐만 아니라 다 자란 쥐에게서도 나타났다.

이러한 실험은 지적 경험에 생리적 변화가 수반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또한 뇌의 가소성(plasticity)이 어떻게 해부학적으로 조절되는지를 보여 준다. 대뇌피질이 더 커진다는 것은 미래에 학습이 더욱 용이하게 이루어질 것임을 의미하는만큼, 이 실험에서 우리는 어린 시절의 풍부한 환경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앞서 말했듯 약 1013비트의 정보를 103세제곱센티미터가 조금 넘는 부피에 저장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뇌는 컴퓨터에 비해 정보 밀도가 약 1만 배 더 높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의 전자 컴퓨터는 초당 1016~1017비트의 속도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우리 뇌의 최고 속도보다 100억 배 더 빠른 속도이다. 우리의 뇌가 그토록 작은 정보 용량에 그토록 느린 처리 속도를 가지고 그토록 중요한 작업들을 최고의 컴퓨터보다 그토록 더 훌륭하게 해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우리의 뇌가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정보를 채워 넣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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