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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도 인생도 만만치 않아

<런던 일러스트 수업>의 두 저자, 일러스트레이터 먼지mungi & 써니sunni 인터뷰



인터뷰를 몇 번 해 봤지만, 동시에 두 사람을 인터뷰할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네, 저자가 두 명이었죠.

나름 놀라운 인터뷰였습니다. 질문이 던져지면 두 분이 서로 논쟁과 토론을 거듭하며 자체 진행을 해 나가는 편리한 방식이었죠(;;). 편집 과정에서 제거된 "아니 내 생각엔", "아냐, 그건 아닌 것 같아", "(갑자기 저를 보며)근데 있잖아요" 등등이 수십 개  있었습니다. 그만큼 거침없고 자유로운 인터뷰였죠. 가끔은 받아적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쏟아져 나왔지만, 그보다는 기분이 더 좋았습니다. 이런 친구들이 있다면 참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누님들이셔서 친구먹자는 얘기는 못했습니다)

보시죠. 서로 다른 두 분의, 두 개의 런던입니다. 혹 여러분이 떠나고 싶을 때, 누구에 맞추어 몸과 마음을 준비해야 할지 한번 보세요. 아참, 본문 일러스트는 써니/먼지님 꺼니깐 막 퍼가시면 안됩니다~

-예술MD 최원호





써니와 먼지는 달라요


알라딘- 안녕하세요 알라딘입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써니- 출판사에서 일했었어요. 디자인 파트도 했고, 아트디렉팅도 했고요. 신인 작가들도 발굴하고, 책도 기획하고, 저도 같이 작업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회사 그만두고 영국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그림책 <검은 사자>를 냈어요. 이제 다음 책도 준비하고, 전시랑 책 표지작업도 하고 있어요.

먼지- 인터넷에 만화를 연재했었거든요. 웹툰요. 그러다가 카툰북을 냈고, 말아먹었고(웃음) 한참이나 그 상태로만 있다가(웃음) 영국에 갔어요. 애니메이션 과라고 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일러스트 작업을 같이 했고요. 그러다 우연히 표지 일러스트 작업을 맡았는데, 하나 하고 나니 계속 의뢰가 들어와서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무심코 던진 행운에 개구리가 맞는달까(웃음).


  
먼지님(왼쪽)과 써니님(오른쪽). 아무리 봐도 동안 콤비.



알라딘- 일과 유학이라는 긴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데요. 지금의 자기 모습에는 만족하시나요?

써니- 지금이 얼만큼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전 안좋은 것보다 좋은 것들에 더 집중해요. 행복주의자라고 할까. 물론 영국에 있을 때도 불만이나 불안한 점들이 있었어요. 거기에 빠져서 살 수도 있었죠. 그런데 거기 빠져들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일부러라도 신경쓰지 않으려고 해요.

먼지- 저 분은 인상 자체가 벌써 여유로와 보이시잖아요(웃음). 알아서 호감을 불러 일으키는(웃음). 자신감도 있어보이고.

써니- (웃음) 생각해보면 언제나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게 있잖아요. 작업이든 취미든, 그런 다른 것들에 주의를 돌리면 부정적인 생각이나 고민을 잊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단점보다는 좋았던 걸 기억하는 편이에요. 회사 다닐 때도 그랬고, 영국에서도 결국 모든 과정이 내가 원하는 작업을 위해 하나씩 쌓아온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먼지- 그런데 언니 그림은 안그렇잖아요. 완전 우울하고(웃음). 사람들은 자기 인생이랑 다른 그림을 그려요. 자신이 느껴보지 못했던 세계에 대한 동경이랄까, 매력을 느낀달까. 그래서 제 그림은 밝아요(웃음).

알라딘- 그럼 먼지님은 상대적으로 비관적인 편이신가요?

먼지- 기본적으로는... 과거는 그게 힘들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재밌는 기억으로 남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현실을 보고 있으면 늘 힘들고, 이런저런 작업 다 해보고 싶은데 아무도 나한테 기회를 주지 않는 것 같고 그래요. 지금도 표지 일러스트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프리랜서는 힘들거든요. 제가 버는 돈을 연봉으로 치면...(웃음)

써니- (먼지에게) 그래도 좋은 점들도 있지 않아?

먼지-
아, 있어요. 유학 다녀오고 나니 알바생 취급 안한다는 거(웃음). 그런 게 좀 있거든요. 하청받는 느낌이랄까. 유학 다녀와서는 책도 냈고, 첫 책이 잘 돼서 좋았죠. 이거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돼! 했는데 다음 책이 안 나가고(웃음) 하면서 왔다갔다 해요.

써니- 이 친구가 욕심이 많아서 그래요.

먼지- 그게, 잘 됐을 때는 주변에서 막 이것저것 해 보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잘 안 되면 사람들이 아무 말도 안해요. 그러면 왠지 망한 것 같고 부족한 것들만 보이고 그래요. 나 좀 예뻐해주지.

알라딘- 그거 진심으로 안타깝네요. 그런데 두 분 정말 다르시군요.;

먼지&써니-
네 그래서 사람들이 재밌대요.


    
Sunni(왼쪽) & Mungi(오른쪽) in London



유학을 앞둔 두 가지 자세


알라딘- 영국에 가기로 확정되었을 때, 어떤 기분이셨나요?

써니- 원래 가볍게 다녀올 생각이었어요. 출장 다녀오듯이요. 마음 편히 공부하고 그림 그리고 와야지라는 생각 밖에 없었어요. 걱정같은 것도 없었고요.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문제였달까?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다들 아쉬움도 느끼고 걱정도 하는데 저는 아무 두려움도 없었거든요. 제가 원래 겁이 좀 없어요.

먼지- 저는 20대일 때는 아무 두려움도 없었는데(웃음) 서른 즈음이 되면서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게 생겼어요. 언제든지 어떤 일이 터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하고싶은 일이 아니라 사건들이 터지는 거예요. 영국에도 가자마자 별별 일로 엄청 고생했잖아요(웃음). 그런 걸 대비해서 계속 계획을 짜고 준비를 하려고 해요. 걱정이 많은 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네거티브하달까.

써니- 그러고보니 얘가 이 책의 처음 컨셉트에 대해서도 얼마나 부정적이었는지...(웃음) 그런데 그런 성격 때문에 준비성이 참 좋아요. 이런저런 일에 다 대비를 하는 거죠. 만약의 사태를 다 떠올려 놓는 거예요.

먼지- 제가, 남들이 보기에는 막 아무렇게나 하는 것 같지만요. 혼자서 시뮬레이션을 많이 돌려요. 예상 상황을 만드는 거죠. 그래서 생각만큼 안되면 괴로워요. 사람들도 제가 20대일 때는 막 잘해주더니, 그 시절 지나니까 나한테 잘해달라고만 하고(웃음).



불친절해서 매력적인(?) 영국 

알라딘- 왠지 이렇게 다른 두 분이면, 영국에서 느낀 것도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특징은 뭐가 있었나요?


써니- 어떻게 보면 정말로 가르쳐주는 건 없어요. 한국에서 생각하는 그런 가르침 같은 게 없어요. 한 친구한테 얘길 해 줬더니 그 친구는 막 뭐라고 하더라구요. 대체 뭘 가르치냐고.

먼지- 아 그게 무슨 말이냐면요. 스킬을 절대로 안 가르쳐준다는 거예요. MA과정이 그래서 어려워요. 우리나라처럼 툴 사용법 가르쳐주고 하는 게 없어요. 자기가 다 알아서 해야 돼요.

써니- 숙제 내주는 건 딱 하나예요. 프로젝트. 주제를 내 주고 나면 학생들이 전부 알아서 해야 해요. 그 완성도가 유학 생활의 모든 것이에요.

먼지- 미국이랑 그런 점에서 달라요. 미국은 커리큘럼이 아주 꼼꼼하게 짜여져 있어요. 이거 하는 법, 저거 쓰는 법에 대해서 수업이 다 있구요. 분야별로 전문가들이 수업마다 다 가르쳐 주고요.

써니- 미국에서 배우게 되면 학생들한테 하나 이상의 스킬을 만들어 줘요. 포토샵이든 아날로그 페인팅이든 그 분야에서 어떤 툴을 노련하게 다루게 만들어 주거든요.

먼지- 영국은 반대로 큰 틀만 만들어주고 그 안에서 학생들은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제약이 없어요. 그게 자유일 수도 있고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지만요. MA 1년 과정은 짧다면 아주 짧은데, 그 안에 최대한 빨리 적응해야 돼요. 그래서 유학오기 전에 실무를 하던 친구들이 잘 해요. 공부만 하다 온 친구들은 바뀐 시스템에 적응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는 경우가 많아요.

알라딘- 성격이나 성향은 적응력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나요?

먼지- 그런 것들도 영향을 끼치긴 하지만, 성격보다는 태도가 중요해요. 유학 목적이 중요하거든요. 학벌에 목적을 두면 그냥 졸업만 해도 돼요. 실제로 그것 때문에 오는 친구들도 꽤 있어요. 그런데 자기가 뭔가 이뤄야 할 목적이 있으면 거기에 모든 걸 쏟아야 돼요. 나이가 있는 유학생들이 그런 걸 잘 하죠. 목적을 갖고 오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알라딘- 목적의식이 가장 중요한 거겠네요.

먼지-
(잠시 고민) 사실은 돈이 제일 중요해요. 그게 없으면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요. 유학을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도 돈 문제가 많고요. 한국에서 뭘 배우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들이면서 배우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과제를 메꾸기만 하면 안돼요. 그 과제가 나한테 뭘 만들어 줄건가를 늘 생각하는 게 중요해요.

알라딘-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 게 가장 문제라는 거죠?

먼지- 현실적으로 말하면 중퇴가 최악이에요. 돈은 돈대로 날아가고, 한국에서는 졸업장도 없으니 자리잡기도 힘들어요. 미처 다 배우지 못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써니-
그 모든 걸, 유학 온 자기자신이 스스로 찾아내야 돼요.

먼지- 영국식의 막강한 단점이기도 하죠.

써니- 맞아요. 자기자신에 대해 많이 알아둬야 해요. 계속 시야를 넓혀야 하고요. 영국에선 일러스트의 응용 범위가 유독 넓어요. 데이빗 슈링글리만 봐도 그래요. 얼핏 보면 낙서같고 장난 같은 일러스트인데 영국에서는 다들 알아주거든요. 경계인이 인정받는 구조예요. 다양성이 존중받고 창의력에 대해 개방적이에요.

먼지-
영국은 주류 미디어가 특히 보수적인 편이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발전할 여지가 있고, 거기서 스타도 생기고 그래요. 언더에서 시작해서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어요.

알라딘- 영국이 개방적인 문화 시스템을 갖고 있나봐요?

먼지- 네, 근데 작아서...(웃음)

써니-
시장이 작은 건 어쩔 수 없어요. 특히 어린이 쪽이 그래요. 그런데 잠시 프랑스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거긴 완전 다른 세상이었어요. 그림책 독자 중에 성인들이 아주 많고, 어릴 때부터 일러스트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나이 들어 다시 작가가 되는 식의, 아름다움이 재생산되는 시스템이 거기는 이미 만들어져 있었어요. 영국은 일러스트의 실험성에는 열려 있지만, 자국 작품 위주로 돌아가는데다가 분야가 딱 나뉘어 있어요. 왠만한 작품은 번역도 잘 안 해요. 시장이 좁은데 그게 프라이드하고도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음, 프랑스가 더 나은가? (웃음)



프랑스가 더 나은가? (농담)


먼지-
대신 영국은 미디어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의 위력이 커요. 마치 일본에서 만화가 사회 전체에 퍼져있는 거랑 비슷해요. 그 사회의 사고방식에 스며들어 있달까? 말은 안하지만 생활 속에서 느끼고 있는 거예요. 영국에서 공부하다 보면 그게 느껴져요. 불친절함의 매력이죠(웃음). 말없이 직접 보여주는 스타일이니까, 옆에서 도와주는 것 없고, 대신 뭐라고 하지도 않는.



남다른 영국에서 살아남는 두 가지 방법


알라딘- 그 자유 말인데요. 적응 못하는 사람들이 꽤 될 것 같은데, 책에는 나오지 않거든요. 그런 경우가 얼마나 되나요? 유학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걸까요?

먼지- 음, 모든 건 결과가 말해줘요. 과제도 결과가 말해주고요. 다 끝났을 때, 뭘 갖고 왔느냐가 중요해요. 조기유학 1세대 출신의 사회인들 설문을 봤어요. 그 중에서 70%가 유학을 잘 갔다고 생각했더라고요. 투자비용 대비해서 이득을 봤다고. 그런데 그 설문에는 진짜 실패한 사람들은 없다고 봐요. 실패한 사람들이 설문에 참여할 리가 없잖아요. 결국 자기가 마지막 결과를 직접 확인해보는 수밖에 없어요. 그게 성공인지 실패인지 알려면 그때까지 해보는 수밖에 없어요.

써니-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해요. 과정이 즐거우면 의미가 있다고 봐요. 학교에서 1등했다고 해서 그게 뭔가를 보장해주지는 않거든요. 유학이라는 과정 전체를 통틀어서 느끼고 배운 게 있으면 가치가 있어요. 결과에만 연연하면 정말 나중에 '진짜 결과'가 필요할 때 안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어요.
공부가 아닌 유학 자체에 대해 말하자면, 그거야말로 진정한 독립이에요. 도와줄 사람은 물론이고 푸념을 들어줄 친구들조차 지구 반대편에 있으니까요. 거기서는 혼자 이겨내야 돼요. 그것만으로도 배우는 거예요. 작은 문제 하나하나를 극복하고 이겨나가는 거예요. 그 매 과정마다 더 성장하느냐 아니면 무너지느냐의 갈림길이 되는 거죠.




갈림길들. 혹은 창문들.



알라딘- '런던 일러스트'와 '유학'에 대해 할 말이 정말 많으셨네요(웃음).

먼지- 네 그게, 원래는 학교의 프로젝트 소개를 하는 책으로 만들 계획이었어요. 사람들이 각자 프로젝트를 할 때도 도움이 될 수 있고, 한국에서도 그런 수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써니- 그런데 제가 그러지 말자고 했어요. 프로젝트 위주로만 보여주면 모자란 게 있다고 생각했어요. 커리큘럼만 가지고 보여줄 수 없는 게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학교를 다니는 과정 전체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먼지- 사실 혼자 작업하는 게 정말 힘들어요. 그냥 '이런 게 있으니까 해 보세요'만 가지고는 힘들어요. 호기심으로 해 보는 작업이 아니라, 열심히 작업하다 보면 어떤 전환점이 올 때가 있거든요? 그때 어떤 아이디어를 줄 수 있는 책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발견하라, 무엇이든



미래는 일러스트의 것이다!

알라딘-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들께, 혹은 일러스트레이터 지망생 여러분께 덕담 한마디.

먼지-
개인적인 희망인데요. 일러스트랑 관련된 책들은 주로 전공자들이 봐요. 그런데 전공자들이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재밌어 했으면 좋겠어요. 요즘 취미로 그림 그리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잖아요. 그 중에서 특히 일러스트가 인기가 좋고요. 책 표지에 이렇게 일러스트를 많이 쓰는 나라가 없어요. 그 외에도 문화 전반에서 이렇게 일러스트가 많이 쓰이는 나라는 드물 거예요. 아마 디자인이나 각종 시각적 작업에서 기본 토대처럼 여겨질 때가 오지 않을까 해요. 잘 될 거예요(웃음).

써니- 일러스트 왕국이 되면 좋겠어요(웃음). 일본만 해도 성인들에게서 만화가 어떤 원초적인 호응을 받잖아요. 어릴 때부터 봐 와서 그런 것 같아요. 그림책이랑 일러스트, 그리고 다른 시각 예술들도 그렇게 서로 이어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더 많이 보고, 그러고 나서 더 많이 만들고 그렸으면 좋겠어요. 좀 더 세상이 아름다워지는거죠(웃음). 그리고 그렇게 더 아름다워진 곳에서 아이들이 자라고 커 갔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그렇게 되기 위해 준비하는 단계 같아요. 앞으로 더 커 나갈 거예요.

알라딘- 희망하시는 대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네요. 긴 시간동안 인터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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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4 0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4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선, 지나치셔도 되는 머릿말. 책 이야기.

그러니까.. 포인트는 미란다 줄라이였죠. 공저자인 헤럴 플레처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책을 처음 봤을 때의 포인트는 그녀였습니다. 앤 유 앤 에브리원. <나를 더 사랑하는 법>은 아직까지 사랑받는 저 영화의 다큐멘터리 버전에 다름아니었어요. 아무도 마음의 상처를 완치받거나 회개하지 않고, 그저 머나먼 곳에서 서로 신호를 깜빡여주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 정도. 작은 우연에 미소짓는 정도. 굳이 미덕이라 하면 겨우 그런 쪼가리들만 남은 고독한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고 스쳐 지나가는 모습들.

아카데미보다 선댄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던 그 담백하고 귀엽고 슬픈 영화의 리얼 버전이라니. 그렇다면 이 책도 사랑받을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 리뷰들을 보니 그렇게 생각하신 분도 있고, 아닌 분도 있더군요. 그냥 스타일 차이겠죠. 아마추어들과의 연합작업은 확실히 퀄리티에 약점이 있으니까요. 퀄리티를 기준삼아 이 책을 보게 되면 흠잡기 쉽죠. 특히 '국내편'은 본편이랑 핀트가 좀 달랐어요. 과제들 자체가 일정한 의도를 띄고 있거든요. 행복 컨설팅같은 느낌이랄까. 어쨌든, 본편만 언급하자면

이 책의 매력이라면, 그냥 그런 겁니다. 잠든 애인의 등에 난 점들을 볼펜으로 이은 다음에, 참 못그렸다, 나 그림 되게 못그리네, 그래서 괜히 코를 대 보면 희미하게 잉크 냄새가 나는거죠. 뭐하냐고 물으면 별자리를 그려봤다, 그러면 무슨 별자리냐, 모르겠다. 그런 대화를 나누고 다시 쳐다보는 겁니다. 무의미하고 구불구불한 선 몇개를요. 아, 계속 쳐다보니 날개 같아, 근데 날개가 하나뿐이라 좀 그러네 미안. 아냐 괜찮아 그래서 여기서 너랑 이러고 있는 거니까.

네. 예쁘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 책에 강제로 주어진 과제는 하나도 없거든요. 문득, 장난을 치고 싶어지고, 그걸 쳐다보다가 또 문득, 평소에 하지 않았던 생각들을 하게 되고... 그런 겁니다. 존 버거는 사진의 위력 중 하나로 '정지한 장면'의 앞뒤를 우리가 상상하게 만드는 자동적인 힘을 말했죠. 이 책도 제게는 그랬어요. 모든 작은 것들, 예술하고는 별 상관 없던 이들의 과제 속에 새겨진 알 수 없는 이야기들. 알 수 없을 이야기들. 미 앤 유 앤 에브리원도 그래서 좋지 않았나요? 서로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위안이 되었다는 게 놀라워서.

물론 이게 다 헛소리라고 보셔도 상관은 없어요. 어차피 도스토예프스키조차 만장일치는 이뤄지지 않을 테니까.

다만 시시한 인생들에게도 축복 있기를. 만약 없으면 서로서로 축복되기를 바랍니다. 이 책도 그렇게 보면 좋지 않을까요.


...

처음엔 농담으로 출판사에 얘길 했었는데 정말로 이메일 인터뷰를 하게 됐습니다.
섭외와 번역에 힘써주신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미란다 줄라이 인터뷰,


Q: 예술MD 최원호
A: 미란다 줄라이



“예술이란 소통과 치유에 다름 아니예요.”



알라딘: 영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은 극영화이지만 마치 행위예술과 비디오아트, 덤으로 뮤직비디오까지 포함되어 있는 종합 영상 세트 같습니다. 그런가하면 <나를 더 사랑하는 법>은 마치 <미 앤 유…>의 다큐멘터리 버전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서로 다양한 장르의 작업임에도, 소통과 치유라고 요약할 수 있는 주제가 두 작업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이 주제들에 지속적인 애정을 갖게 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미란다 줄라이: 내 삶에서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들은 주제상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편이에요. 내가 끄집어 내는 것들은 하나의 나(자아,self)에게서 나오니까요. 또한, 나에게 예술이란 (나 자신의) 소통과 치유에 다름 아니예요. 그러니 내 아이디어들은 결코 나와 동떨어진 것들이 아니죠.

*영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은 대중예술작업 '나를 더 사랑하는 법'의 진행 중에 제작되었음

알라딘: 자신이 직접 작업하는 것에 비해 <나를 더 사랑하는 법>처럼 불특정 다수의 작업을 모아 보여주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그 과정 중에 흥미로운 경험은 있었는지?

미란다 줄라이: 책이나 영화처럼 전적으로 내게서 나오는 작품을 만드는 건 대개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죠. 물론 흥미롭고, 때로는 재미있기까지 하지만, 고통과 혼란은 언제나 작업 과정의 일부를 차지해요. (그러나) 대중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을 때, 그 과정은 전적으로 즐길 수 있어요. 카타르시스와 위험을 공유하니까요. 그럴 때 나는 전혀 외롭다고 느낄 필요가 없고, 계획하고 조직하기를 좋아하는 내 일부가 직접 행동에 뛰어들 수 있게끔 하죠. 그러는 동안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건 어떤 선물 같은 거예요.

알라딘: <나를 더 사랑하는 법> 같은 공공 예술을 앞으로도 시도할 계획이 있나요?

미란다 줄라이: 네, 언제나 적어도 하나쯤은 대중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다음 프로젝트는〈나를 더 사랑하는 법> 이전에 했던 옛 프로젝트의 리바이벌이에요. ‘조아니 포 재키(Joanie4Jackie)’ 예요.

Joanie4Jackie 보러가기
Learning to love you more (나를 더 사랑하는 법) 홈페이지 가기


알라딘: <나를 더 사랑하는 법>은 거기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이 고백한 것처럼, 그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작업이었습니다. 당신에게도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미란다 줄라이: 물론이에요. <나를 더 사랑하는 법>을 책으로 엮은 건, 우리가 제시한 과제에 대한 사람들의 응답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영감을 주었는지를 표현하는 우리만의 방식이었다고 생각해요. 지난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매일같이 감탄했어요. 해럴과 유리와 나는 언제나 서로에게 “너 이거 봤어?” 하고 이메일을 써댔죠.




예술가의 삶


알라딘: 서로 다른 분야에서 성공적인 수준의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전방위 예술가는 극히 드뭅니다. 그 비결이 있나요? 이 모든 다른 종류의 예술들을 성공적으로 이뤄내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미란다 줄라이: 서로 다른 매체를 다룸으로써 그것들 중에 어느 하나도 아주 잘하거나 숙달되지 못하는 면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게다가 난 기억력이 끔찍하게 나빠서 매번 처음 하는 것처럼 그 매체를 대하죠. 이걸 전에 해봤던가 싶을 만큼 희미한 기억만 남아 있어서, 마치 전생이나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일처럼 느껴질 정도예요. 어쩌면 뭔가를 만들려면 그런 상태에 있는 것이 좋은지도 모르겠어요.

알라딘: 익숙한, 혹은 성공한 분야를 뒤로 하고 새로운 종류의 예술에 뛰어들 때는 어떤 특별한 각오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방면의 작업을 함에 있어서 창작의 스트레스는 어떤 방식으로 발생하나요?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돌파하나요?

미란다 줄라이: 아웃사이더가 된다는 느낌을 즐겨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틀에 갇히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당신 말이 맞아요. 바로 그것 때문에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죠. 그리고 내가 스트레스를 덜어낼 수 있는지도 자신이 없네요.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스트레스란, 반려동물처럼 함께 살아야 하는 그 무엇이란 거죠.




“나는 언제나 도전해야 해요. 매일 사자에게 내 자신을 던지는 것처럼.”

알라딘: 위 질문을 좀 더 키워보자면, 삶 전체에서,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돌파하나요? 그 과정 혹은 결과가 당신의 작업에는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미란다 줄라이: 음, 돌이켜보면... 창작을 할 때, 나는 늘 가장 도전적인 과제들을 선택했어요. 내 자신을 사자lion들에게 던지고 또 던지는 거죠. 밖에서는 내 그런 모습이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어요. 매일 매일의 일상적인 선택들과 연결돼 있거든요.
하지만 또 한편으로, 나는 수줍고, 집에 있는 걸 좋아하고, 변화와 이행을 아주 어려워하고, 불안하며 약간 융통성이 없는 편이에요. 그래서 난 내 자신을 사자들에게 던져야만 해요.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보호막 밑에만 머무르려고 할 테니까.



알라딘: 당신에게 영향을 끼친, 혹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은 어떤 게 있나요?

미란다 줄라이: 요즘에는, 브루노 무나리, 니키 드 생팔, 스티븐 레커, 찰리 채플린.

*
스티븐 레커는 브루클린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작곡가, 안무가이자 퍼포머.




“좋은 작업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커뮤니티를 만드세요.”



알라딘: (아마 어느 곳이라도 그렇겠지만) 한국에서는 독립 예술인들의 경제적 처지가 그들의 삶과 예술에 커다란 영향을 끼칩니다. 보통은 좌절로 이어지고요. 자기 작업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어떤 특별한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그리고 당신은 어떻게 그 난관을 헤쳐 왔나요? (이 질문에는 한국의 수많은 당신의 팬 겸 예술가 지망생들이 두 눈을 반짝거리며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란다 줄라이: 참 어려운 일이죠. 나역시 정말로 경제적으로 유지가 가능하게 된 건 최근의 일이에요.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는 프로젝트들을 하는 게 중요해요. 그 프로젝트가 자기 작업의 중심이 아니더라도요. 왜냐하면 당신이 지지받기를 바라는 세계에 당신도 뭔가를 해줘야 하니까요.


당신의 작업이 좋으니까 사람들이 먼저 다가올 거라고 기대해선 안돼요. 나는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 밖으로 나와서 당신에게 다가올 더 좋은 구실을 찾아야 돼요. (당신이 뭔가를 보여줄 때) 그들의 작업 또한 함께 선보이는 것도 좋은 구실이 될 수 있겠죠. 어쩌면 전시회, 해프닝, 밤샘 파티, 실험 같은 것을 조직할 수도 있을 거고요. 그래서 스스로 예술가이면서 참가자가 되고, 서로에게 팬이 되며, 어쩌면 친구까지 될 수도 있겠죠.

이게 바로 커뮤니티를 만드는 법이에요. 당신을 지지하는 모종의 커뮤니티가 없다면 뭘 하든간에 참 어려울 거예요. 이건 직접 몸으로 겪어봐야 해요.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온라인으로라도 해보세요.

어쩌면, 누군가가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발견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죽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먼저) 누군가, 혹은 뭔가를 발견해야 하고, 누가 뭐라 해도 당신이 발견한 것들은 당신에게 힘이 될 거예요.



“계속하는 것.”

알라딘: 예술가 혹은 그 지망생들 이외에 <나를 더 사랑하는 법>에 참여했던, 혹은 아쉽게 참여하지 못한 수많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뭔가 말씀해주지 않겠어요? 무엇이든 좋습니다. 두 문장만이라도. (너무 포괄적인 질문 같지만, 당신이 아니면 이런 질문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 같아요)

미란다 줄라이: 그저 일반적인 대답밖에 줄 수 없겠네요. 매초, 매일이 무척 어려울 수도 있지만, 자유를 느끼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어요. 나는 주로 뭔가를 만듦으로써 그걸 느껴요. 만드는 데 딱 1분밖에 안 걸리는 아주 작은 거라도요. 만일 당신이 아주 피곤하거나 일터에 있어서 그런 걸 할 수 없다면, 그저 당신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걸 기억이라도 하세요. 계속하는 것, 그게 중요해요.


급bye

알라딘: 당신의 다른 작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작중인 영화 <Satisfaction>은 언제쯤 공개될지, 소설이나 영상 작품 중에 한국에 소개될 예정인 작품은 있는지 궁금합니다.

미란다 줄라이: 막 촬영을 마쳤는데, 제목은 실은 〈더 퓨처(The Future)〉예요. 지금은 편집하는 중인데, 아마 2011년까지는 나오지 못할 것 같아요.

*소식통에 따르면 미란다 줄라이의 소설집이 연내에 국내 발간될 가능성 있음


알라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미란다 줄라이: 감사합니다!






처음 해 본 이메일 인터뷰. 답변을 보면서 훨씬 많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직접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영어고 뭐고...
이미지 여기저기 뒤졌는데 이게 제일 맘에 들었네요. 예뻐서는 아니고 뭔가 내용이랑 어울려서요.
네, just kidding. 진지하게, 웃자고 하는 겁니다. 저 진지하게 잠든 모습을 보세요. 열심히 농담하는 겁니다.
진인사대천명이라니까 평가는 신이 하겠죠. 기죽지 말고, 자기자신을 기죽이지도 말고, 오늘 뭔가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발췌로 마무리.


예일 대학에서 가르칠 때 나는 유머 작가 S.J.페럴먼을 수업에 초청했다. 이야기를 듣던 학생 중 하나가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코믹 작가가 되려면 뭐가 필요한가요?"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뻔뻔하고 씩씩하고 명랑해야 합니다. 그 중에 제일 중요한 건 뻔뻔함이죠." 또 이런 말도 했다. "독자는 작가가 기분이 좋다는 걸 느껴야 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 머릿속에 불이 번쩍하는 것 같았다. 즐거움에 관한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말이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실제로 그렇지 않더라도요." 그 말 역시 나에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페럴먼이 실제 삶에서 보통 이상으로 우울과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매일같이 타자기 앞에 앉아 언어를 춤추게 했던 것이다. 좋지 않은 기분으로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애써 그렇게 노력했던 것이다.

-윌리엄 진서, <글쓰기 생각쓰기> 2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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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란다 줄라이 인터뷰
    from 아름다운 섬 2010-05-31 15:43 
    책이랑 영화랑 보고 늘 궁금해하던 사람인데  역시 인터뷰도 생각대로 귀엽다.  전방위 아티스트가 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웽스북스 2010-05-11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한번밖에 안됩니까? 아. 마음으로 백개 날려요. 최MD님 완전 초멋지십니다. 미란다 줄라이 인터뷰라니.

더 많이 생각하고, 출판사에 농담반으로 더 많이 건의해주세요. 앞으로 계속 계속 이런 즐거운 결과물들을 쏟아내주시면 정말 좋겠어요. 정말 잘 읽었어요. 그나저나 2011년도 지나야 한다고요? 킁. ㅜㅜ

외국소설/예술MD 2010-05-11 16:55   좋아요 0 | URL
영광은 웬디양님(뭔가 이중호칭;)의 가득한 팬심에게로 돌리겠습니다. 꾸벅

네 영화는 그렇게 늦대요. 그치만 소설집이 나올 수도 있대요.
이메일 인터뷰 처음 한거라 되게.. 아쉬워요. 즐거우셨다니 부끄러울 나름입니다;

담부터는 더 잘해야지;

치니 2010-05-11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아무래도 엠디님이 알라딘의 초절정 중요 인재로 떠오르는 듯. 지난 번에 엽서 기획에 이어 영어 인터뷰까지!
완전 쩔어요. ㅎ
담에는 누구? 와 - 점점 귀추가 주목됩니다. :)
저도 미앤유에브리원을 워낙 좋게 봤던 지라 이 책도 찜 해두었는데 아무래도 원본을 봐야겠네요. 영어의 압박이 있더라도, 뭔가 자기 계발서 냄새 풍기는 번역본이라면 사양하고 싶어서요.

외국소설/예술MD 2010-05-11 18:13   좋아요 0 | URL
아 번역이랑 재번역은 많은 분들께서 도와주셨어요. 혼자 하라고 했으면 절대, 결코, 네버..못해요.;
(참고로 한겨울에 기획된 인터뷰였습니다; 이제서야 빛을 보네요;;)

한국판 책에 대해 말씀드리면, 번역은 문제가 없구요. 다만 오리지널 본편에 더해서 보너스로 '한국편'이 들어가 있거든요. 본편이 거의 아무런 목적의식 없는 유희-과제였다고 치면, 한국판은 (번역하신 분이 과제를 기획) 좀 더 행복하게 사는 법에 대해 고민한 뒤에 과제가 나왔다고 할까요. 미묘한 차이인데, 결국 목적론적인 차이가 생깁니다. 그건 생각보다 크더라구요. 느낌이요.

즉, 한국판 사셔도 됩니다. 제 매출도 좀 도와주시고..ㅎ

치니 2010-05-12 09:29   좋아요 0 | URL
어익후, 이런이런, 엠디님의 매출을 생각 못하다니, 저는 바보천치인가봐요.
네네 한국어판도 영어판도 다 사도록 하죠, 까짓 거 얼마면 돼? 마인드로다가. :)

외국소설/예술MD 2010-05-12 11:33   좋아요 0 | URL
매출은 농담이에요. 정말입니다 (웃음)

얼그레이효과 2010-05-12 0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감독님 영화보고,,홀딱 반했는데. 좋구만요.

외국소설/예술MD 2010-05-12 11:55   좋아요 0 | URL
아유 반갑습니다. 서재는 잘 보고 있습니다. ^^

고수님께서는 이 책의 행간 틈바구니에 있는 느슨한 연대의 가능성을 눈여겨 보아주시리라 믿습니다.
홈페이지에 가시면 헐렁함을 더욱 본격적으로 느끼실 수 있어요.;

wordsfall 2010-05-29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우 잘 보았소.

외국소설/예술MD 2010-05-31 09:25   좋아요 0 | URL
건승하고 계시오이까.

키위녀 2010-05-29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완전 이쁘세요...

외국소설/예술MD 2010-05-31 09:26   좋아요 0 | URL
네 이것저것 다 좋으니까 좀 질투납니다. 주이 디샤넬보다 더 멋있어요.

향기로운이끼 2010-10-12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외국소설/예술MD 2010-10-13 21:10   좋아요 0 | URL
즐겁게 읽으셨나요? 감사합니다. ^^

비법 2011-04-21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미란다 줄라이 영화 " ME AND YOU AND EVERYONE WE KNOW"

*-.-* -_-; @_@


처 음 읽 었 습 니 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

외국소설/예술MD 2011-04-22 15:26   좋아요 0 | URL
이보나의 그림들도 정말 좋지요. ^^ 미란다 줄라이와 왠지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하네요. 완소!
 

 

            미술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 연인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리움 미술관, 무더운 가을 오후, 예술MD이니까

 미술을 사랑하는 남자, 이주헌을 인터뷰하다

 

  

-글 쓰는 사람, 이주헌

알라딘: 현재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미술 칼럼니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비결이나 원동력이라고 하면 뭐가 있을까요?

이주헌: 좋아서 하는 일이라서 그래요. 재미있어요. 그래서 계속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책을 내고 나서는 늘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금방 또 새 책을 구상한다거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발전시킨다거나 하게 돼요. 그 과정이 제게는 재미있는 일입니다. 그게 삶의 활력소가 돼요.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죠. 처음에 미술 담당 기자로 시작했는데, 기사라는 게 정해진 형식이 있잖아요? 그 틀에 적응하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지만, 제가 좋아하는 미술 얘기라서 더욱 좋았어요.

아, 처음에 책을 낼 때를 생각해 보면 처음에는 의무감이랄까 사명감도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쉽게 그림에 친숙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생각만 하고 있으니 아무도 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직접 써 보자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 사명감을 성취하는 게 가장 즐거운 일이죠.

알라딘: 특별히 특화된 분야가 없는 다방면의 미술 칼럼니스트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주헌: 음... 저는 처음에는 화가가 되려고 했었어요. 그게 주인공이고 주연 같잖아요(웃음). 화가의 그 창조성, 빛나는 어떤 것. 그 외의 비평가라든가 같은 사람들은 주변인처럼 보였달까? 그런데 기자 생활을 하면서 예술가와 사람들 사이의 매개체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미술을 친근하게 만들어주는 글을 썼는데 다행히 처음부터 반응이 좋았죠. 그때 가장 중요한 게 뭐냐면, 사람들에게 미술의 여러 채널을 알려주고 관심사를 확장시켜 줄 수 있는 다양한 시도예요. 그건 지금도 필요한 거고요. 

그러다보니 제가 전공이 없는 사람인데(웃음) 학술적으로 보면 그건 확실한 약점이에요. 그런데 그게 저를 겸손하게 해 줘요. 그리고 그 겸손함이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해요. 

알라딘: 미술 분야 책을 쓰시는 분들 중에서는 다작하는 편에 속하시는데요, 혹시 슬럼프를 겪은 적은 없으세요?

이주헌: (단호히)없어요. 저는 열심히는 쓰지만 완벽주의자는 아니에요. 책이 완전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지금이 이 책이 가장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들면 바로 냅니다. 일반 독자들이 원하는 지식이나 그 분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책은 그때그때 달라져요. 그 타이밍을 잡아서 바로 보여줘야 돼요.  

저는 쌓아놓은 지식보다는 어떤 순간의 영감을 중요시하는 편이거든요. 하나의 아이디어가 머릿속에서 자라나서 계속 가지를 치는 거죠. 책을 내고 나서는 늘 아쉬움이 있지만, 금방 다른 발상으로 머리가 가득 차서 아쉬움은 곧 잊어버려요. 슬럼프가 있을 수가 없죠. (웃음) 

 

 

 

 

 

 

 

 

등등등.....

 

 

 

알라딘: <지식의 미술관>에서 다섯 개로 나눠진 주제는 사회적 시선, 예술가의 자아, 도상학적 이야기 등 각각 미술을 바라보는 다른 방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권의 책 속에서 미술을 둘러싼 여러 측면을 동시에 다룬 대중 미술서는 신선한 시도로 보이는데요. 구상하실 때 어떤 특별한 고민이 있었는지요?

이주헌: 특별한 고민이라기보다는... 제가 내는 책은 크게 세 종류로 볼 수 있는데, 기행문 형식을 띈 미술 탐방기가 있고요. 사는 이야기와 미술 이야기를 섞은 에세이 류의 책이 있죠. 그리고 마지막 종류가 미술과 관련된 역사-사회-문화 이야기죠. <지식의 미술관>은 세 번째 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마 앞으로는 세 번째 종류의 책을 내는 비중이 높아지겠죠. 그건 책을 내는 시기가 어떤 시기냐에 따라 늘 달라져요. 처음에 대중적인 미술 책이 없을 때는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느낌이나 감상에 확신을 갖지 못했어요. 뭐가 맞는지 틀린지를 궁금해 하고 자신감이 없었죠. 그럴 때는 사람들에게 미술 에세이 같은 책이 필요해요. 분석하고 비평하기보다 공감하고 공유하는 게 필요한 거죠. 일단 미술에 친숙해질 필요가 있으니까요. 이제 시간이 흐를수록 독자층이 넓어지기도 하고 깊어지기도 하니까... 앞으로 독자들도 앞서 말씀드린 세 번째 부류의 책들에 좀 더 주목하지 않을까 해요.

알라딘: 우리나라에서는 앞서 말씀하신 분류 중에 두 번째, 그러니까 미술과 일상의 삶을 합치거나 일종의 심리 테라피를 시도하는 책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최근의 흐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주헌: 위로하는 책들이죠. 사실 위로가 가장 중요하죠. 그게 제일 중요한 거예요. 우리가 어떤 구조나 체계 안에 들어갈 때에는 억압을 느끼게 되죠. 그렇지만 그 체계에 익숙해지는 순간 그 체계가 자신만의 위로를 줄 수 있어요. 특히 예술의 위안이란 건 사람들에게 정말 커다란 힘이 되는 거예요. 

미술도 하나의 체계다보니 처음에는 벽 같은 게 있어요. 그렇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돼요. 미술 테라피나 일상과 미술을 섞은 책들은 그래서 늘 가치가 있어요. 벽을 낮추고 예술의 위로하는 특성을 알려 주니까요. 사람들이 거기에서 위로를 얻고 힘을 얻으면 좋은 거죠. 매우 중요한 일이고, 언제나 중요한 일이죠. 

그렇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 지식의 확충도 중요한 일이예요. 왜냐면 지적 호기심을 가장 재미있는 방식으로 충족시키는 게 미술이거든요. 언어와는 다른 감수성을 통해서 세계의 다른 면을 바라볼 수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책들도 중요해요. 우리나라 독자들도 점점 더 그런 종류의 책들을 좋아하고 있으니 좋은 책들이 더 많이 나올 겁니다.
 


한국 미술계를 긍정하는 웃음이다(웃음).


알라딘: 좀 더 풍부하고 다양한 지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까지 다루신 적 없는 분야, 예를 들면 현대미술이나 사진 같은 분야의 책을 내 보실 생각은 없으신지?

이주헌: 아, 생각은 늘 하고 있어요. 막 보여드리고 싶죠(웃음). 그런데 그건 현실적인 제약이 아직은 커요. 일단은 책에 수록될 도판 가격이 비싸거든요. 현대미술이나 사진은 저작권이 거의 다 살아있어서 도판의 저작권 비용에만 돈이 많이 들어가요. 그러면 책은 그 단가 때문에 점점 커지고 비싸지거든요. 물론 그래도 사서 보는 분들은 사서 봐요. 그런데 보통 독자들이 그 책에 관심을 보이기는 너무 어렵겠죠? 그건 제가 원하는 게 아니에요. 앞으로 시장이 더 커져서 그런 걱정 없이 책을 낼 수 있는 날이 오겠죠(웃음).   

 

-책, 지식의 미술관 

알라딘: 깊이 있는 교양 미술서 얘기가 나왔는데요. <지식의 미술관>의 서문에서는 미술 감상에 있어서 직관적인 접근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의 본문은 그 직관적 판단을 돕기 위한 일종의 자료집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여 집니다. 

개인적으로는 혹시 선생님의 다음 책이 ‘직관적으로 그림 보기’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매우 궁금한데요. 어쩌면 그건 교양 미술서의 궁극이 아닐까(웃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존에 철학자들이나 학자들이 쓴 비슷한 테마의 책들이 있습니다만, 혹시 일반 독자들을 위해 그런 글을 써 보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이주헌: 네, 매우 관심 있어요. 정말 관심이 많은 분야죠(웃음). 어떤 파편화된 지식이 아니라 본질을 어떻게 순간적으로 낚아챌 것인가, 기존의 논리를 넘어서 사물의 본질을 잡아낼 수 있을까. 저도 늘 궁금해요(웃음). 심리학이기도 하겠고, 미학이라든가 역사에도 관련이 있고... 정말 많은 공부가 필요하겠죠. 

특정한 분야의 학문 대신 그저 이미지를 계속 봐 오고 그걸 전달해 온 사람으로서, 직관, 이미지를 사유한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 시작하는 상상력, 그런 것들의 시스템이 늘 궁금해요.  

이건 매우 중요한 거거든요. 창의력, 틀을 뛰어넘는 것들의 발상은 어디에서 올까요? 직관에서 오죠. 직관은 말, 언어, 문장이 아니라 이미지적으로 사고하는 거예요. 그래서 기존의 논리적 사고 체계와는 다른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는 거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에서 유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 속에 있는 어떤 상(像)에서 갑자기 출발하는 거예요. 갑작스러워서 기존의 세계와 충돌할 수밖에 없죠.

알라딘: 비언어적인 사고의 필요성에 주목하고 계신 거군요?

이주헌: 그렇죠. 성경에서는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잖아요. 그건 종교의 순수함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상의 위력 때문이에요. 상을 만드는 순간, 인간의 지적 능력과 창의력은 급속히 성장하게 되거든요. 그건 결국 전복적인 사고와 이어지게 되죠. 모든 지배층은 그걸 두려워할 수밖에 없어요. 어떤 시대든, 어떤 예술이든 마찬가지에요.  

연상은 상에서 상을 잇는 거죠. 그건 언어와는 달리 논리나 체계를 선호하지 않아요. 그걸 뛰어넘는다고 할까... 다른 세계에 있어요. 충격적이고 강렬한 세계죠.

알라딘: 예술의 전복적 성향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요. <지식의 미술관>의 4,5장에서는 정치권력과 결탁하거나 자본 등의 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예술 자체의 성향과는 별개로 예술가의 사회적 의무 같은 것도 있을까요?

이주헌: 사실 미술은 권력과 결탁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요. 어떻게 보면 뗄 수 없는 관계죠. 미술 역시 소통과 사유를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언어와 마찬가지의 매개체에요. 그래서 모두들 그 소통 매체를 선점하려고 하죠. 민중이든 권력이든, 그 수단을 장악하려는 방식은 서로 다르겠지만 그 목적은 같아요. 서로 자신의 계층에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하려는 거죠. 

예술가는 모두가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작업할 수 있다고 봐요. 그게 돈이 될 수도 있겠고 권력이 될 수도 있겠죠. 그들도 똑같은 인간이니까요.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 살아남은 작품이나 작가들은 하나같이 보편적인 매력을 갖고 있어요. 시대를 불문하고 전 인류와 소통 가능한 보편성이죠.


알라딘: 사회적 의무와 예술가적 자의식은 별개의 문제라는 거군요. 피카소와 공산당처럼 말입니다. (우측은 피카소가 1953년에 그린 스탈린의 스케치)

이주헌: 그렇다고 봐야죠. 피카소가 투철한 정치의식으로 공산당에 가입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고 봐요. 자의식의 연장 같은 거였죠. 제스추어라고 할까.

알라딘: 책이나 그림, 영화 등을 통틀어서 요즘 인상 깊게 접한 작품이 있는지요?

이주헌: 아주 신작이라고는 할 수 없고, <괴짜 경제학>이란 책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제가 경제학에 대해 특별히 아는 건 없지만요(웃음). 독창적인 사고로 경제 문제에 접근하는 점이 좋았어요. 기존에 경제학 입문에 대한 선입견을 부수고 새로운 길을 찾아낸 거죠. 어떤 문제에 마주쳤을 때 그 문제 자체만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인데, 그러면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각을 발휘할 수 있거든요.

 

 

-For Fan 

알라딘: 책을 읽을 때의 습관이라거나 규칙이 있으신가요? 선호하는 작가라던가...

이주헌: (웃음) 중구난방이에요.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읽어요. 여러 분야의 책들을 읽으면서 새로운 느낌, 영감 같은 걸 얻으려고 해요. 

방금 영화 하나가 생각이 났어요. 얼마 전에 개봉한 <서로게이트>라는 영화인데,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높으냐 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영화의 아이디어는 좋았어요. 보통 영화에서 로봇이라고 하면 독립적인 지능을 갖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 영화에서는 로봇은 각 인간의 완전한 복제품이 되어서 그 주인에게 직접 조종되는 일종의 대리 인간이에요. 이런 것처럼 제가 기존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보게 되면 즐거워져요. 나중에 글을 쓸 때도 그런 아이디어들이 좋은 소재가 되고요. 

박찬욱 감독의 <박쥐>도 논란이 좀 있지만 저는 참 좋게 봤어요. 이미 대중적인 부담을 상당히 떠안고 있는 감독이잖아요. 그런데 자기 나름의 스타일을 가지고 그걸 밀어붙였어요. 그런 장면장면들, 특히 몇몇 디테일들은 잊을 수 없는 것들이죠. 첫 장면에 나무의 그림자가 비칠 때부터 좋았어요(웃음).

알라딘: 네, 인터뷰를 관통하는 어떤 지론이 느껴지네요(웃음). 혹시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꼭 봤으면 하고 추천하고 싶은 게
있으시다면?


이주헌: 하나를 정하기는 참 어렵네요. <지식의 미술관>에도 나오는 마티스의 성 프란체스코. 로제르 예배당의 벽화죠. 근처를 지나갈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무조건 봐야 할 그림이에요. 선 몇 개로 이루어진 단순한 그림이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면 꼭 천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리고 모네의 수련 연작. 오랑주리 미술관에 있죠. 수련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예술이 왜 좋은지 저절로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마크 로스코의 그림들도 상당히 좋죠. 꼭 보셨으면 좋겠어요. 


로제르 예배당 내부 전경
 



알라딘: 저도 꼭 보고 싶었던 것들이네요. (웃음) 마지막으로 알라딘 독자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주헌: 미술은, 사귀어서 손해 볼 게 없어요. (웃음) 애인은 배신해도 미술은 배신하지 않거든요. (웃음) 그렇게 곁에서 항상 위로와 깨달음을 줘요.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한 번 사랑해 보셨으면 합니다. 

알라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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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랑 2010-03-10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지막 문장 참 좋네요. 망설이지 말고 한 번 사랑해 보라는......미술과 사랑에 빠져볼까요

외국소설/예술MD 2010-04-09 15:19   좋아요 0 | URL
네 뭐든 망설이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살다보니깐요.
 

박찬욱 감독과의 대담, 

더 깊은 책 이야기 혹은 '이야기들에 관한 이야기' 

-언제 시작할지도 모를 인터뷰를 기다리기를 한 시간 반. 동갑내기 두 명의 MD는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이미 모 사이트에서 책 얘기 다 해버린 것 같던데 어쩌나부터 시작해서 결국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로 마무리된 두서없는 이야기. 중복된 질문들을 지워나가다가 결국 팽개쳐버린 질문지와 식은 커피, 길어봐야 30분이 못될 거라는 인터뷰 스케쥴 조정 통보. 두 청년(!)은 박찬욱 감독이 커트 보네거트를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만 믿고 밀어붙여 보기로 했습니다. 좀 더 '책 ' 이야기를 뽑아내 보기로, 운이 좋으면 '무엇이든' 작은 조언을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인터뷰어: 알라딘 도서팀 금정연, 최원호 

 


알라딘:
SF와 장르문학 매니아로 유명하신데요.
 

박찬욱: 특별히 가리지는 않아요. 인문사회 쪽이나 과학쪽 책들도 읽는 편입니다. 문학을 좋아하긴 하죠.

알라딘: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보니까 커트 보네거트 책들이 많아서 반가웠습니다(두 MD는 모두 커트 보네거트 광팬임). 혹시 보네거트의 작품 중에서 이게 최고다라고 추천해주실만한 작품이 있을까요? 

박찬욱: (10여초를 고민) 음... 그 분이 편차가 별로 없이 퀄리티가 좋은 분이라서 고르기가 상당히 힘든데, 하나를 고르라면 <제 5 도살장>을 꼽겠어요. 물론 작품 자체도 유명하고 좋지만, 제가 처음으로 읽은 보네거트의 소설이라서 의미가 각별해요. 

 

알라딘: 그 외에 추천하고 싶은 책을 딱 다섯 권 정도만 뽑을 수 있을까요? 

박찬욱: (다시 10여초를 고민) 음... 그 때 100권 짜리 추천도서 목록을 고른 건 커피숖 같은데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라고 생각하고 골랐어요. 좀 대중적으로. 

알라딘: 그럼 아무 조건 없이... 

박찬욱: <관촌수필>도 좋고(이 책은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도 최고의 책으로 꼽았었음), <제 5 도살장>, 카프카의 <소송>, 졸라의 <떼레즈 라깽>... 도스토예프스키가...(10여초를 고민함)...이 분 소설도 참 다 좋은데...<백치>로 할까. <악령>도 좋은데. 이건 너무 고르기 힘드네요(웃음). 말 나온 김에 7개쯤 채워볼까? 존 르 까레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그리고 SF문고 시리즈 중에서 어린 시절에 제일 재밌게 읽었던 <우주선 비글호>. 

                    (우주선 비글호는 절판)

알라딘: 도스토예프스키 얘기가 나와서 말입니다만, 지인 중에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을 보고 도스토예프스키가 떠올랐다고 한 분이 있었습니다. 혹시 책들 중에 영화 작업에 영향을 준 작품이 있나요? 

박찬욱: 아, [복수는 나의 것]은 아까 얘기했던 <악령>을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특히 숲 속 살인장면. 이번에 나올 신작 [박쥐]의 경우는 <떼레즈 라깽>. 그 외에 특별히 어떤 책을 떠올리면서 영화를 만들진 않았어요. 그냥 느낌 가는 대로 가는거죠. 

   

알라딘: 그럼 영화를 만들 때의 영감이랄까, 느낌은 어디서 얻는 편이세요? 

박찬욱: 글쎄, 다 달라요. 그게 어디서 오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고. 데이빗 린치같은 경우에는 초월명상 같은 걸 한다는데, 저는 그런 데는 전혀 관심이 없으니까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때그때 다른 것 같고, 특별한 근원같은 건 잘 모르겠어요.  

 <-문제의 초월명상 매니아 데이빗 린치의 영화/인생 이야기.

알라딘: 그렇다면 소재로써 영화화하고 싶은 책은 어떤 게 있나요? 

박찬욱: 코맥 맥카시의 <핏빛 자오선>을 생각해 봤어요. 제가 서부극을, 그것도 인디언이 많이 나오는 서부극을 정말 해 보고 싶었거든요. 너무 잔혹한 이야기라서 쉽진 않겠죠. 그리고 정말 좋아하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같은 경우는 실제로 판권까지 알아 봤는데 간발의 차로 누가 이미 사 갔더라구요(웃음). 아마 잘 만들고 있겠지?  

알라딘: SF나 추리물 등은 20-30대 젊은 층이 주 독서층인데요. 감독님께서도 독서광이자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장르물 팬이신데(웃음), 이 땅에 함께 있는 '장르 동지'들께 한말씀.

박찬욱: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작품들, 문학이나 문화쪽 결과물들이 상당히 뛰어난 점들이 있어요. 그런데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은 역시 상상력과 지성 같은 거예요. 인생에 대한 성찰같은 지적인 작업도 상상력과 충분히 결합할 수 있잖아요. 그게 가장 잘 발휘되는 분야가 싸이-파이(Sci-Fi, SF, 과학소설)죠. 국내 창작물에 대해서는 거기에 늘 갈증을 느껴요. 그런 책들을 통해서 자극을 많이 받고, 영감을 많이 받게 되는 거니까. 상상력의 자극이 가장 필요한 젊은이라면 Sci-Fi죠.  


알라딘:
지성과 상상력의 결합이라... 가장 성공적인 작가로는 누가 있을까요?
 

박찬욱: 음, 어슐러 르 귄 여사죠. 글마다 자신의 세계를 완전히 구축한 경지를 느낄 수가 있어요. 물론 문체도 아름답고. 

알라딘: 너무 책 얘기만 한 것 같은데요(웃음). 영화 얘기도 한 번 드려볼까 합니다(웃음). [올드 보이]의 엔딩 장면에서 오대수가 최면을 통해 기억을 지우는데요. 사실은 기억이 지워지지 않은 채로 끝났다는 해석이 있었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박찬욱: 아, 그것도 어떤 책에 나왔던거죠? 뭐드라... 

알라딘: <몰락의 에티카>요. 

박찬욱: 아 신형철 씨. 나도 읽어봐야겠네. 어쨌든 저는 그 결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실례라는 생각도 들고. 중요한 건 오대수가 (기억을 지우려는) 시도를 했다는 거죠. 기억을 지워가면서까지 미도와의 사랑을 지키겠다고 결심한 의도가 소중한 거예요. 패륜적인 발상이기도 하고, 반사회적인 면도 있는데, 그런 내용은 이제 하나의 신화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니까(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인륜이나 도덕을 뛰어넘는 것이야말로 신화 속 인물들의 삶이잖아요. 최민식 씨는 연기를 할 때 최면이 실패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건 배우가 연기를 하기 위해 선택한 거고, 저하고는 상관 없는 거예요. 

알라딘: (30분 경과) 벌써 시간이 다 됐네요. 마지막 질문 드릴께요. 요즘 실의에 빠진 젊은이들, 꿈을 잃었거나 포기한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그걸로 성과를 거두신 입장에서 조언을 한마디 해주실 수 있을까요? 

박찬욱: 글쎄.. 조언이라. 특별히 제가 무슨 충고를 하기보다는 영화 하나 소개해 드릴께요. 서울 아트 시네마에서 씨네마떼끄의 친구들이라는 영화제를 하는데(영화제는 3/1 까지입니다), 거기 개막작이 [선라이즈]라는 무성영화예요. 가뜩이나 사는 것도 힘든데 무슨 영화냐고 할지 몰라도, 한 번 그 영화를 봤으면 좋겠어요. 온갖 고생과 난관을 뚫고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는 열정, 힘을 느낄 수 있어요.  

알라딘: 인터뷰에 감사드립니다. 

 

선라이즈. 지친 청춘들을 위한 박찬욱 감독의 기습 추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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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hoho 2009-02-26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보이 마지막 장면의 웃음이 궁금했는데. 배우의 그런 의도가 있었군요.

짱미 2009-02-26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언젠가 영화로 나올 "핏빛 자오선" 꼭 봐야겠네요. ^^

외국소설/예술MD 2009-02-26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ohoho님/ 그 미소의 의미는 해답은 없겠지만, 감독과 배우 사이의 묘한 갭을 알고 나니 저도 다시 보고 싶어요. ㅎ

짱미님/ 저도 박찬욱 감독님께서 만드셨으면 좋겠습니다. ^^;; 팅커테일러..는 정말 아까워요 개인적으로.

독서하는청춘 2009-03-19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식인의 서재에 나왔던 만큼 책도 정말 사랑하시는 거 같습니다.
앞으로 나올 영화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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